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시 (최신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김규중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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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었다. 예전처럼 전국의 학생이 똑같은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23종이나 되는 국어교과서 중에서 선택해서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습목표가 같고 학년을 고려한다면 모두 비슷한 수준의작품들이 실릴 것이지만 각 교과서마다 실려 있는 지문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통적으로 실리는 작품들도 많고 오직 하나의 교과서에만 실린 작품도 더러 있는 것 같다.

1학년에서 배우는 문학영역은 시, 소설, 수필, 시나리오, 고전소설 등 그 영역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희곡이 실려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교과서에서는 시나리오를 다루는 것을 보니 시대의 변화를 교과서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의 교과서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책들은 거의 도록에 가깝다. 종이의 질도 좋고 화려한 컬러의 그림들이 많아서 이거 교과서 맞아?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국어교과서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보니 아이들이 읽어야할 책들이 당연히 늘어났다. 1920-30년대 작품은 김소월, 김영랑, 정지용, 김유정 정도뿐이고 안도현, 이시영, 문정희, 박완서, 정호승, 전성태 등 대부분 현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에 대해서 작가들은 저작권료는 물론 통보조차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소설가 김영하의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라는 글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국가가 문학교육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원론적인 의문에서부터 자신의 글이 발췌, 편집되어 작품의 완결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 문제집의 지문이 되어 입시교육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미 중학교 1학년 2학기 교과서에 수록되어 전국에 배포된 상황이라고 한다.  

원문보기 http://kimyoungha.textcube.com/89

교과서 사업에 뛰어든 창비는 23종이나 되는 국어교과서 중에서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작품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시 90편을 모아서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중1시>라는 이름으로 엮어냈다. 소설과 수필도 각각 1권씩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중1소설>,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중1수필> 모두 세권이 한 셋트다. 모든 교과서를 찾아내는 것도, 그것에 수록된 작품을 골라내는 수고도 덜 수 있어서 독자들은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다.

<중학교 교과서 작품읽기 중1 시>는 동물원, 도서관, 식물원, 미술관 등의 소제목 아래 그와 관련한 작품을 적게는 12편에서 많게는 16편까지 수록하였다. 각 작품에는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짧은 설명도 곁들였다. 아이들에게 시를 읽혀보니 설명이 없었다면 무슨 내용인지 몰랐을 시가 더 많았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그 대상을 고려했기 때문에 대부분 짧고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그런 작품들은 거의 없다. 시보다 설명이 더 좋았다는 얘기도 한다. 설명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는 얘긴데 이해되지 않아도 왠지 가슴에 얹히는 시들은 많다.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가슴으로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만 시를 읽으려고 한다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보았다. 가장 일차적인 문제는 물론 시와 친해지지 않은 것이리라.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시는 박성우 시인의 <신나는 악몽>과 김용택의 <이 바쁜 때 웬 설사>였다.


신나는 악몽

 

기말고사 보려고 학교에 갔는데

고릴라가 교실을 비스킷처럼 끊어 먹고 있다

 

고릴라 곁에 있던 염소가

기말고사 시험지를 깡그리 먹어 치우고 있다

 

운동장에서는 능구렁이가

선생님들을 능글능글 가로막고 하품 중이다

 

쩔쩔매던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삼삼오오 모여 실컷 놀다가 집으로 간다

 

형용모순의 제목임에도 아이들은 이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완벽하게 이해했다. 아이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꿈에서 대리 충족한다고 말한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정작 나는 같이 기뻐하지 못했다.

 

이 바쁜 때 웬 설사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생각만 해도 편하게 앉아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라면 왠지 근엄하고 심각한 것으로만 알고 긴장하던 녀석들의 안면근육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봤다. 오탁번의 <폭설> 같은 시를 읽히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못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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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9-10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조카처럼 아끼는 6학년 아이에게 선물했는데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교회에서 한 번 보면 물어봐야겠네요. 일종의 선행 학습을 시켰는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되면 제 전공이니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아이가 별로 반길 것 같지도 않구요.
이제 찬 바람이 부는 듯 해요.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글들로 또 뵐게요^^

반딧불이 2010-09-10 21:4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닥나무님 페이퍼에서 보고 찜해두었더랬어요. 6학년이면 지금 보면 딱 좋을 때 같아요. 시,소설, 수필,시나리오 이렇게 장르별로 읽혔는데요. 아이들 반응은 좋았어요.

공부를 시작하셔서 바쁘시리라 짐직해봅니다. 환절기는 제가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해요. 닥나무님께서도 건강하셔요.
아참..일전에 보내주신 영화를 코닥인가 하는게 없어서 안된다고 해서 여태 못보다가 어찌어찌 어제 해결이 되었어요. 고맙게 보겠습니다.

2010-09-1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9-2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벌써 명절이 다가왔어요.
그런데 오늘 날씨도 비가 와서 그런지 가을 분위기가 완연합니다.
늘 바쁘신 분이시니 명절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랄께요~.^^
풍성한 시간 보내시길요.

반딧불이 2010-09-20 17:08   좋아요 0 | URL
나비님. 일부러 이렇게 찾아오셔서 인사주시니 황송합니다. 저는 자꾸만 습관처럼 나비님이라고 부르게 되네요. 점점점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수족관에서 찍은 헤든이 사진이 보니 제법 성숙해(?)보인던걸요~ 나비님 가족분들 모두 보름달처럼 환하고 행복 가득한 명절 보내시기 바래요. 고맙습니다. 꾸~벅

비로그인 2010-09-2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어느 해보다 즐겁고 여유롭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꼭이요^^

반딧불이 2010-09-21 00:35   좋아요 0 | URL
ㅎㅎ 넵. 후와님 말씀대로 하겠사옵니다. 그래야 후와님의 글을 올라올 때마다 때맞춰 볼 수 있을테니까요.
 
홍길동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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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판 홍길동전에는 완판본, 경판본, 영인본이 차례로 실려 있다. 18세기 말 민간출판업자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찍어낸 목판본을 통틀어 방각본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각본 중에 서울에서 찍은 것은 경판본, 전주에서 출판한 것은 완판본이라 하고 영인본은 이런 방각본을 사진 찍듯이 찍은 것을 말한다. 때문에 이 책의 맨 뒤에 실려 있는 영인본은 뒤쪽에서부터 페이지를 오른쪽으로 넘기며 읽어야한다.

 경판본은 24장본이고 완판본은 36장본이다. 경판본보다는 완판본의 묘사가 훨씬 사실적으로 되어있어서 재미가 더하다. 고전소설이 대부분 내용이 단순하고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어서 요즈음의 소설들에 비하면 상당히 쉽게 읽힌다. 그런 중에도 재미있었던 부분들은 더러 있다. 길동이 태어나기 전 길동의 아버지는 난간에 기대어 졸다가 용꿈을 꾼다. 그 꿈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장황하고 화려한지 그것을 읽고 있으면 신선도를 보는 듯하다. 그것이 태몽임을 직감하고 아내를 안으려하자 그 아내가 남편을 꾸짖는 장면도 재미있다. “승상은 한 나라의 재상입니다. 그 체면과 위상이 높으시거늘 한낮에 정실에 들어와 저를 노류장화 대하듯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남자를 꼼짝 못하게 꾸짖는 모습을 보니 양반가의 여성들은 할 말은 다 하고 살았던 듯싶다.

뒷부분에서의 재미있었던 부분들은 대부분 길동이 신통술을 행하는 부분이다. 한밤중에 까마귀가 나타나 ‘객자와 객자와’ 세 번 울고 서쪽으로 날아가자 자객이 올 조짐이라 생각하고 조화를 부리는 장면, 허수아비를 이용해 일곱 명의 길동을 만들어내는 모습, 자신이 붙잡히는 조건으로 병조판서를 제수 받는 것 등은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길동은 조선에서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기로 약속하고 활빈당의 도적떼들을 데리고 제도로 갔다가 훗날 율도국을 정복한다. 이후 그는 삼 년 만에 도적떼가 사라지고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지 않는 태평세계를 만들었다. 그는 두 아내를 두었고 삼자이녀를 낳아 장자 현을 세자로 삼고 나머지는 다 군으로 봉하였다고 한다. 서자로써의 차별이 서러워 가출을 하고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가 한 나라의 왕이 되고 난 후에는 고스란히 장자에게 권세를 물려주는 것은 어떻게 읽어야할까.

저자인 허균은 선조 때 사람인데 『홍길동전』은 세종대왕 즉위 15년 되는 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허균은 왜 하필 안정정인 이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을까 궁금해 하다가도 어느 시대에나 탐관오리들은 들끓었고, 조선시대 내내 적서차별은 지속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태평성대한 나날이 소설의 배경이 된들 무슨 대수란 말인가. 길동이 해인사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승려들을 농락하고 창고에 쌓여있는 곡식을 탈취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불교를 억압했지만 여전히 사찰의 창고는 두둑했던 모양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읽을 수 있고 시대 비판적으로 읽을 요소는 많았으나 마지막 부분은 씁쓸했다.  

허균의 또 다른 저서 <성소소부고>에 실린 <호민론>은 백성에 관한 글이다. 그는 천하의 두려워할 바는 백성이라 칭하고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눈다.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恒民)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란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길동은 호민이었고 허균은 길동을 빌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려 한 듯하다. 그는 광해균 10년에 역적모의를 했다는 이유로 국문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이때 허균의 죄상으로 거론된 내용들은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스펙타클하다. 홍길동전의 결말은 과연 허균의 생각 그대로였을까? 어째서 허균은 소설을 이렇게 결론지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시나 다양한 판본이 나오는 와중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당대의 문제들을 짚고 나갔지만 도무지 예견하지 못했던 결말을 보여주는 소설과는 달리 허균이 부안 기생 매창의 죽음을 애도한 시는  허균의 안타까움이 오롯이  묻어난다.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妙句堪擒錦)  

 청아한 노래는 가는 바람 멈추어라(淸歌解駐雲) 

 복숭아를 딴 죄로 인간에 귀양 왔고(偸桃來下界) 

 선약을 훔쳤던가 이승을 떠나다니(竊藥去人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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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전집은 우리나라 문학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좋은거 같아요.
특히 인지도 낮은 고전이요^^ 감히 댓글에 책 추천하기에는 그렇고
반딧불이님이 이 책을 읽으실수도 있지만..^^;;
민음사판 홍길동전도 읽으셨다면 역시 같은 시리즈에서 나온
김시습의 <금오신화>도 읽어보세요.
다섯 편으로 구성된 내용인데 안 읽어보셨다면 반딧불이님도
이 책을 읽게 되면 재미 있어 하실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슬픈 멜로드라마를 보는 거 같은 이야기도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반딧불이 2010-10-04 20:40   좋아요 0 | URL
아..금오신화도 나와있군요. 미처몰랐었는데..영양가 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 한문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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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명망 있는 의사집안 출신으로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그녀는 20여 년 동안 이 업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임상경험과 자신의 개인체험을 통해 여성 질병이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완쾌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성 질병의 원인으로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활환경이다. 그중에서도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오는 갈등, 성적 억압과 학대 등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의 몸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에 지배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몸뿐만 아니라 의학체계 역시 남성적인 관점에서 정의된 것이므로 여성에게는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전 세계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여아가 남아의 네 배에 달한다거나 약물과 수술을 선호하는 것 등은 공격적인 가부장 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가부장적 문화를 “중독된 사회구조”라 부른다. 중독된 사회구조는 육체를 뇌에 종속된 것,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기, 불안, 피로를 무시하도록 가르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무시하라고 가르치며 이런 것을 요구하는 육체를 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뇌를 짜증나게 만드는 메시지를 몸이 보낼 때 육체는 뇌의 숙적이 된다. 현대의학은 그 메시지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육체가 다시는 메시지 자체를 보내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폭력에 가장 유용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과학이다. 현대사회는 ‘과학적’이라고 이름 붙은 것이면 무엇이든 옳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중독된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가득 찬 문화적 산물이다. 특히 자연의 순환과 깊은 관계가 있는 여성의 몸을 과학만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한계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현대 과학 특히 의학은 인간이 아니라 질병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극단적인 예는 “수술은 성공했으나 사람은 죽었다”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병든 여성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생각과 감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러므로 감정을 억압하고, 이 억압된 감정이 축적되면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병의 시한폭탄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 저자는 치유와 치료를 분리한다. 치료는 의사가 행하는 것으로 주로 외과적인 처방이며 치유는 자연의 과정이며 누구에게나 내재된 천부적인 힘이다. 치료가 증상을 일으킨 근본원인을 생각하지 않는 반면 치유는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효과 또한 치료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런 치유를 위해서는 질병을 적이라 여기고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질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내면의 안내자’로 여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명랑하고 즐겁게 생활하라고, 슬픔이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해가라고 배워왔으며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슬픔이나 고통 역시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다. 눈물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며, 몸을 씻어내는 독성이 들어있다. 슬플 때 마음껏 울면 우리 몸이 깨끗이 소독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저자는 지구 에너지와 인간의 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는 동양철학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리고 이것을 임상에 적용하고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저자는 우리 몸의 에너지 중심점인 차크라에 주목한다. 일곱 군데의 차크라는 각각 그 관장영역이 다르다. 이것은 우리 몸에 에너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인데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주목했던 기(氣 )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치유와 치료의 의미를 정확하게 구분했지만 저자가 치료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로서 치료되지 않는 부분을 치유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다. 여성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병 즉 자궁, 유방과 관련된 모든 질병을 언급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은 그동안 중독된 사회구조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내 몸을 또 여성의 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폐경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은 차이가 있었다. 폐경이 오면 호르몬에 이상이 생기고 우울증, 골다공증, 안면홍조, 기억력 감퇴 등의 증세가 생기며 여성이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난소의 기능중단으로 인한 에스트로겐의 결핍상태로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고 배워왔던 것이다. 그러나 월경을 하고 있을 때 난소에서 분비되던 호르몬은 폐경이 오면 에스트로겐을 대신하여 작용할 수도 있고 에스트로겐의 전구체가 되는 안드로겐이라는 호르몬이 부신에서 두 배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폐경기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난소의 기능중단에 동조하기보다 부신을 잘 돌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는 저자의 관점이었다. 또 수많은 임상경험을 통해 여성과 관련된 모든 질병을 다루면서 그녀가 빼놓지 않는 것은 유제품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나오지 않았다. 통계에 따르면 소의 정상적인 우유 분비량은 3-4리터인데 최근의 소들은 20-30리터가량을 채취당한다고 한다. 젖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 과다한 호르몬제가 투여되고 이것은 소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며 소가 분비하는 젖에는 이런 성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제품을 먹게 되면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소의 스트레스까지 함께 내 몸에 축적되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후회했던 일은 연습 없이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엄마를 두고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지만 여전히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후회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여자로서 인생의 삼분의 이를 살아버리고 나서야 이 책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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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7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의보감 제1권 내경편(B형) 휴머니스트 동의보감 2
허준 엮음, 동의과학연구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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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시대의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었다. 인간이 이성에 눈뜨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농경이 시작되었으니 농경은 인류사를 양분 할 수 있는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착을 하게 되자 인간은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땅의 만물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해와 달은 움직이면서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땅의 변화하는 모든 것은 하늘의 사라지지 않는 태양과 달의 영향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늘의 해, 달, 별을 관측했고 그것의 결과에 따라 언제 씨를 뿌려야 할지 추수는 언제 해야 하는지 등 땅을 연구했다. 지혜로운 지도자의 역할은 하늘의 뜻을 잘 읽어 백성들을 배부르고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이 되었다. 해와 달과 별자리에 관한 관측, 즉 우주의 원리를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활에 응용하는 음양오행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탄생되었다. 


하늘을 관측하여 천문도를 그리고 그것을 땅에 적용하여 지리도를 그렸다. 지도자들은 우주의 원리를 농경에 적극 활용하였으며 인간의 몸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의보감』은 인체를 소우주로 보고 음양오행의 원리를 인체에 적용한 의학서이다. 16세기 말 선조의 명을 따라 허준이 중국의 의서를 두루 섭렵하고 ‘정기신’이라는 인체의 기본 구성 요소를 축으로 몸의 안팎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처음 선조의 명령을 받은 허준과 몇몇 사람들은 편찬국을 세우고 모은 책들의 주요줄거리를 간략히 정리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이 일어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은 중단 되었다. 선조는 다시 자신이 갖고 있던 책 오백 권을 허준에게 내어주며 혼자서라도 정리하라고 명했다.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 즉위 3년째에 허준은 마침내 14년(1597-1610)에 걸쳐 완성한 동의보감 25권을 진상하였다. 광해군은 허준에게 그 공을 치하하고 태복마(나라에서 쓰는 말을 키우던 기관에서 키운 말) 한 필을 상으로 내렸다고 한다. 당시의 말 한 필 값이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임금이 내린 상을 팔아 살림에 보탤 수는 없었을 것이고 허준은 이 말을 어떻게 사용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왕진 갈 때 타고 다녔을까? 어쨌거나 이렇게 탄생한 『동의보감』은 조선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발간되었다고 한다.  


『동의보감』이 특별한 것은 병을 중심에 두지 않고 인간의 몸에 중심을 둔 것이다. 당시 중국의 의서나 현대의학이 병증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일반적인 법칙을 동등하게 적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병 자체가 아니라 병든 사람의 몸에 초점을 둔 것이다. 또 의사는 환자의 병세를 진단하고 단순히 처방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도인에 가까운 존재였다. 선조가 내린 의서 오백 권말고도 무수한 책을 참조했지만 『동의보감』은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취했다. 책의 앞부분에는 원전을 밝힌 역대의방 70여권의 목록이 실려 있다. 또 백성들 누구나가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도록 처방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간소화하고 약재의 이름도 조선 땅에서 나는 것으로 바꾸어두었다. 약재의 이름을 바꾸어두긴 했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이름들도 많다. 

『동의보감』은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Ⅰ, 잡병편Ⅱ, 탕액편과 침구편으로 나누어져있다. 내가 본 것은 내경편으로 오늘날의 인체해부도와 비슷한 신형장부도가 맨 앞에 그려져 있다. 팔다리가 없는 인체의 측면도로 내부 장기의 위치가 모두 그려져 있다. 해부학을 근대임상의학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던 내게는 놀라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각 기관들의 생김새와 기관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각 장기를 다룰 때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내경편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것이 남성 위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남존여비사상이 여기에도 적용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부인병과 소아병은 잡병편에서 따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내경편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것은 정기신을 기준으로 오장육부와 대소변, 충으로 표현되어 있는 기생충 등이다. 인간의 목소리나 땀, 침, 혈, 꿈까지 다루고 있다. 설사의 형태와 색등을 살펴 20여 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처방을 달리한것도 놀랍지만 기생충 또한 제거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꼼꼼하게 살펴도 알똥말똥 한데 대충대충 건너뛰면서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보냐 마는 『동의보감』은 내게 의학서가 아니라 내 몸을 들여다보는 종이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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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8:02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비로그인 2010-07-2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리뷰 덕분에 관심이 생겨 책을 보니 윽.. 한문이예요.. 반딧불이님. ㅠㅠ~~ 옆에 한글이 번역되어있는 것인듯 보이긴 하는데요..

반딧불이 2010-07-26 10:05   좋아요 0 | URL
하이고 설마 제가 한문으로 읽었을라구요. 옆에 친절하게 번역이 되어있답니다. 그런데 아마 책을 구하실 수가 없으실거에요.

라로 2010-07-27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동의보감 간략하게 나온건 읽어 봤지만,,,존경스러워요.

도사님 저도 사주 봐주세요!!!요즘 엄청 힘들어 하고 있다는,,,ㅠㅠ

반딧불이 2010-07-27 01:52   좋아요 0 | URL
나비님은 말이에요..너무 행복해서 행복의 맛을 모를까봐~ 또는 행복의 맛을 더 즐기시라고 가끔 힘드신거에욧!!

라로 2010-07-27 11:37   좋아요 0 | URL
메렁~~3=3=3==333

반딧불이 2010-07-27 12:44   좋아요 0 | URL
지금 제말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대놓고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거 맞죠??
 
대통령의 독서법 - 성공으로 이끄는 책읽기의 즐거움
최진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최근 독서교육지원 시스템이 2학기부터 각 학교에 도입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중고생들은 독서교육지원 시스템 안에 자신의 독서활동을 기록 저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미 부산에서 시범운영을 했고 전국적으로 확대적용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기록은 대학입학전형에도 적극 활용될 모양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부담도 늘어나고 학생들 역시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할 책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문학작품 같은 경우 작품을 감상하는 질보다 축약본 등을 통한 량에 치우치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주위에서 나는 분명히 경험하고 있다. 그 사람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독서량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얼마만큼 체화 하느냐 하는 독서의 질이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독서의 효과를 가늠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대통령의 독서법』이 궁금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그들이 읽은 책이 그들에게 어떤 정책을 펴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이명박 현 대통령까지 대통령 8명의 독서기록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각각의 이름을 붙였다. 이명박은 ‘속독파의 실용 독서법’, 노무현은 ‘다독파의 비판 독서법’, 김대중은 ‘정독파의 관찰 독서법’ 등이다. 사투리 때문에 웃지 못 할 사건도 많았고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김영삼의 독서법은 ‘발췌독파의 알맹이 독서법’이다. 사과하나를 잘못 먹어 응급실에 실려가 단층촬영까지 받아야했던 나에게는 참 무서운 실언이었다. 그런 대통령의 실언이 발췌독의 부작용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십년도 더 전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총 8명의 대통령 중 이승만을 제외한 일곱 명 대통령의 시대를 나는 살아왔다. 나는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겼던 적도 있었고 대통령은 단지 우러러야할 대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무관하다고 여겼던 대통령이나 국가, 정부, 정치 같은 단어들이 내 삶에 속속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대통령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차야하는 날도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을 정치인으로 만나는 불편함은 잠시 괄호쳐두고 한 명의 독서인으로 만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읽은 독서의 영향력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미천하지만 그동안 접해왔던 역사서나 현재의 여론, 정책 등을 모두 연계시켜 보아야했다.

책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던 전두환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주변에 두었고, 충성도보다도 독서량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고 한다. 이러한 판단기준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은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인 듯 하고 가장 폭넓게 읽은 사람은 이승만 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독서법이 옳고 어떤 독서법이 그르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실패했다면 거기에는 일정정도 독서의 몫도 있었을터이니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거울 삼으면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독서 방식에는 왕도가 없다. 아니 왕도가 있다. 나만의 방식이 바로 왕도이다.” 능력이 된다면 그들의 다양한 독서법을 모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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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5 07: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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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5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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