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의 인터뷰
천양희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었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할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현대시학> 2014.7
시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또 거부할 수도 없다. '일흔'이라는 숫자가 믿기지 않아 확인해보니 시인이 1942년 출생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할 때 운다." 일흔의 나이로 요약한 생이 담담한듯 하면서도 절절하다. 연을 나누지 않고 빼곡히 적은 형식이 목울대를 넘어오는 눈물을 꾸욱 꾸욱 누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