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 해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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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감성이 일치하는 여행 에세이. 정여울 작가 글은 처음인데 지나치게 감상적이진 않아서 다른 책도 읽어볼 계획.
해냄 편집자님께. 책이 안 펴져서 책을 펴느라 너무 힘들어서 짜증이 나요. 왜 이런 종이를 쓰시나요... 독서대의 도움이 없으면 정말 펼치고 읽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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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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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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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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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걷기여행- On Foot Guides
프랭크 쿠즈니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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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반적인 영화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대사의 힘이 엄청나게 좋다. 몹시 웃었는데 그 웃음의 진원지를 보면 슬프다. 즉 웃픈 영화. 마약강력반 형사팀이 정의 구현이라는 뜬구름 같은 목표보다는 하나의 직업군으로 설정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봉에다가 칼 맞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고, 근무 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잠복근무를 하게 되면 잠을 못 자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 영화는 추격전으로 시작하는데 전혀 근사하지도 멋있지도 않다. 건물의 창문을 깨고 기습하면 박봉에서 창문 수리비를 걱정해서 창문을 깰까봐 조심하고, 도로에서 추격전 벌이다 16중 추돌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돼서 사고 보험료 걱정한다. 기존의 액션 영화들이 깔끔하고 유려한 집단 액션에 집중했다면 영화 초반에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액션으로 루저같은 모습은 재미없을 수가 있지만 유머가 있다. 마땅히 예측할 수 있는 장면을 찌질하게, 실은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면서 미친 듯이 웃게 만든다.

경찰 조직의 위계는 어마 무시하고, 실적주이다. 복지 없는 건 당연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범인을 잡아야 능력 있는 형사로 인정받는다. 가정이 있는 형사라면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 어린 딸의 한때 소원은 용의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용의자가 되면 범인 잡느라 집에 안 들어오는 아빠를 자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런 대사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현실에 밀착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지 나올 수 있다.

2.

잠복근무지는 손님이라고는 형사들밖에 없는 치킨집이다. 치킨집 사장은 치킨집을 팔고, 잠복근무를 위해 인수한 치킨집을 갑자기 형사들은 운영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님 전화위복으로, 왕갈비 양념을 한 치킨이 대박맛집이 되어 버린다. 형사들은 칩거한 마약 책 두목을 잡기 위해 치킨을 파는데 매일매일 놀라울 정도로 매상이 오르고, 어떤 직업이든 요구되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장착한 형사들은 치킨을 파는데 본의 아니게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웃음 코드인데 닭을 튀기면서 기름에 끊임없이 팔을 데이고, 양파 4봉을 까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마약거래 일당을 소탕하는 일만큼 어려운 점이 많다. 둘 다 극한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형사반장이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모르나 본데 우리 소상공인들은 X나 목숨 걸고 하고 있다." 이런 말이 간지나는 액션을 펼쳐야 하는 형사라는 캐릭터 입에서 나오는데 현재의 상황을 담을 수는 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해서 웃음으로 승화하는 시나리오라니...!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모두 진심과 최선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치킨집 대박은 진심과 최선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목표한 일(범인 소탕)에 능력없어 보이는 이들이 부수적인 일(치킨집)에 매진하는 것 같은 착시. 사람 일은 들여다보면 이런 식이다. 원하는 걸 하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로 풀리는 일이 종종 있다. 모두 목표를 성취한다면 이 세상은 유망 직업군에만 쏠릴 것이고,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 과녁에서 탈락한 이들이 걷게되는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세상은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진다고 말하면 욕 먹으려나...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닭집 전국 체인으로 진짜 사업을 해 보려고 할 때, 닭집의 운명이 밝혀진다. 마약운반책으로 사용되는 걸 발견하는데, 이 시점은 바로 닭집으로 흥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을 때이다. 결국 마약거래상을 일망타진하고, 승진도 하고, 사랑도 샘솟는다. 그래, 영화니까.

3.

후반부는 간지나는 액션이 나온다. 고로 약간 지루하다. 서사는 영화려니 하고 보면 그럴 수 있다. 어차피 코미디물이므로.

4.

균신이 마약거래상 보스로 등장한다. 정보를 전혀 모른 채 봤는데 오랜만에 본 균신은 마르고, 역시나 연기는 신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얄팍한 말투인데 변덕스럽고, 의리 없는 보스의 이미지다. 보디가드가 자신을 위해 열일하고 있을 때 혼자 배 타고 도망가고, 싸움 못하고. 이런 현실 캐릭터에 얍삽한 이미지를 연기한다. 정말 그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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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지적 참견시점>이란 리얼리티 예능쇼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연예인과 로드 매니저의 관계를 밀착한 시선으로 담으면서 파생되는 유머를 생산하는 쇼다. 로드 매니저는 연예인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불편한 점이 없도록 종횡무진하면서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발레 valet 같은 역할을 한다. 현실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인데 각자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수직적 관계는 무너지고, 일시적이지만 수평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준다. 카메라 밖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도 적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만이라도 갑과 을의 위치를 벗어버리고 상대의 일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훈훈한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각박한 도시에서, 을의 위치가 배려 받을 수 있고, 미디어의 힘이 더해져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 로드 매니저 일도 할 만한 일처럼 편집되기도 한다.

2. <그린 북>은 <전지적 참견시점>의 미국 영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상황은 1962년. 미국 남부에서는 극심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공연을 위해 남부를 투어를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와 로드 매니저의 8주간의 해프닝을 담는다. 피아니스트는 흑인이고, 로드 매니저는 백인. 엘리트 백인을 위해 연주 여행을 하지만 정작 천재 피아니스트는 연주하는 무대가 아니면 식당 출입도 제한받고, 호텔도 유색인 전용을 이용해야 한다. '그린 북'은 유색인을 위한 호텔 가이드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고.

3. 영화는 적절하게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게 전개되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마음이 훈훈해져서 가볍게 극장을 나올 수 있다.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 즉 흑인에도 속하지 못하고, 백인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백인의 고급문화 도구로 사용되는 뮤지션의 고뇌를, 백인 로드 매니저의 떡 벌어진 어깨만큼 큰 배짱과 단순한 허풍이 어떻게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원칙주의자와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큰 갈등을 불러오지만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애정이 서로의 갈등 해결 방식을 타협해 간다. 자신의 방법 내지는 주장을 상대에 맞춰 조금씩 굽히면서 신뢰와 우정이 쌓인다. 갈등 없는 관계는 없다.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이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많은 훈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로 엮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모든 관계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4. 각자는 자신만의 색깔과 신념이 있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상대를 수용하기보다는 무시하고 배척하는 심리가 자라기 마련인데 이런 심리의 싹을 발견하고, 이따금씩 잘라낼 수 있으려면 단순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차 안에서 치킨을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가 없어서 안 먹거나 포크와 나이프를 구해오라고 하기보다는 상대가 시키는 대로 손으로 들고 먹어보는 것.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접시 위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손으로 집어 들고 닭 다리를 뜯어도 맛은 똑같다는 걸 그렇게 먹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이런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닥치고 나도 상대의 방법에 한번 맞춰봐야지, 다짐을 해 본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5. 인종차별 주제는 미국 영화에서 사랑 다음으로 무궁무진한 소재인데 참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미국 영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이따금씩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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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이탈리아의 그 로마인 줄 알고, 영화 보면서도 내내 왜 스페인어를 쓰지, 궁금했다. 너무 궁금해서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찾아봤더니 멕시코시티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고-.- 스펠링도 Rome 아니라 Roma. 아무튼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을 연상시키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한 영화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카메라는 클레오란 가정부의 일상을 밀착해서 따라가면서 중산층 가정을 들여다본다. 계급을 뛰어넘는 여성 연대를 보여주는 영화라서 뭉클한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계급을 뛰어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편이라 이 영화는 감독의 판타지로 읽히기도 한다. 클레오의 일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다행히 주인 부부는 갑질을 안 하는 품격 있는 사람들이다. 클레오가 계획 없는 임신을 하고,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알고 행방을 감춰버리는데 클레오의 임신 사실과 출산을 지켜주는 건 주인집 여자들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 침대를 사러 자신의 아이들의 가구를 샀던 가구점으로 하녀를 데려가는 주인이라니...하지만 배가 불러서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장면은 모두 생략되었으며 이런 미담들만이 카메라에는 담겼다.

클레오 개인의 급격한 환경 변화는 아마도 내전, 그리고 주인님 남편의 바람으로 혼자 남겨진 안주인의 심리 묘사가 함께 진행되는 이중 플롯이다. 쿠아론 감독은 내전의 혼돈과 안주인이 남편의 배신으로 겪는 혼란을 미니멀하지만 그 효과는 커다랗게 담는, 탁월한 묘사를 한다. 가령, 아기침대를 사러 갔을 때 경찰이 시위대를 쫓아서 가구점 안으로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면서 클레오의 양수가 터진다. 시각적 스펙터클을 심리적 스펙터클로 대체하는 장면인데 시위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이다. 또 남편이 바람이 나 젊은 여자랑 살러 집을 나가자 그 집의 상징인 커다란 차(갤럭시)가 좁은 주차장을 들어올 때, 이리저리 박아버린다. 남편이 차를 애지중지해서 주차의 달인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과 아주 대조적이다. 남편에게 소중했던 것을 파괴하려는 욕구로 대체하는 장면이다.

역시나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바닷가 장면이다. 높은 파도에 아이들이 떠밀려 가면서 수영을 못 하는 클로에는 아이들을 구하러 파도를 넘어간다. 자신의 아이를 사산한 후였다. 차분하고 말이 없던 클로에는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파도를 헤치고 나와서 숨을 몰아쉬면서 안주인에게 말한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요,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이럴 때 여성으로서의 연대는 빛을 발한다. 안주인은 우리는 너를 사랑해. 클로에게 가족이 생겼고, 안주인은 남편은 가족에서 이제 빠졌지만 여전히 가족은 건재하다는 걸 아는 강인한 사람이다. 써 놓고 보면 흔한 이야기를 쿠아론 감독은 담담하게 일상을 잡아내면서 살아가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살아가는 일은 가까이서 보면 참 힘겹지만 토막 단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사건도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 마음에 상처의 흔적은 강하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처에는 새 살이 돋고, 희미해지는 날이 올테니 그때까지 잘 버티는 자가 장땡이다. 버티는 데는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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