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사전은 모두 옳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저승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승길의 뜻풀이를 그대로 열명길에 옮겨서 넣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승-길[저승길]
<명사>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
≒열명길, 황천길.
저승길을 떠나다.
그들도 웅보가 양반들처럼 만장 휘날리며 꽃상여 타고 저승길 떠나는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저승의 의미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이므로 저승길을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풀이하는 것은 맞지만 열명길이 저승길과 유의어라고 해서 저승길과 똑같이 뜻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P290

가령 샛별, 금성, 개밥바라기, 태백성이 유의어라고 해서 그 뜻풀이를 똑같이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를 바탕으로 뜻풀이를 해야 하지요. 열명길을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풀이함으로써 현재의 기술은 열명이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즉 저승과 유의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 P290

<이상곡>에 등장하는 ‘열명길헤‘라는 의미 미상의 표현이 ‘열명길→시왕길→ 저승길‘이라는 오해를 거쳐 국어사전에 ‘사람이 죽은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풀이와함께 버젓한 용례를 가진 현대어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이제라도 사전에서 열명길을 옛말로 의미 미상이라고 기술해두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이미 현대어에 자리를 잡고 버젓이 용례를 갖추고 있으니
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어휘력을 신장시킬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 사전을 충실히 공부하여 사라져가는 말들을 되살려 쓰려는 시도가 장려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열명길과 같은 유령어가 나타나 자리 잡는 현상도 나타나게 됩니다. - P291

사전 편찬자의 책무가 막중함을 느낍니다. 사전에는 온갖 전문적인 용어가 나옵니다. 사전 편찬자들은 모든 분야를 망라해 아는 전문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기존 사전의잘못을 답습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겠지요.
우리는 단어의 용법이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싶을 때 사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되 사전에서 기술하고 있다고 하여 모든 말이 다 옳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상하다 여겨지면 비판을 할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지요.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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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중국에서 유래한 말, 케첩


케첩은 어느 나라 말에서 왔을까요? 케첩은 
기원적으로 중국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토마토케첩의 케첩이 중국어에서 유래한 말이라니 다소 놀랍지 않습니까? 중국어 방언 중 민난어(한국 한자음으로는 민남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국의 푸젠성에서 광둥성 동부까지 널리 쓰이는 방언이며 이 방언이 화교들에 의해 동남아로도 많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 P243

이 민난어에 鮭汁[koe-chiap] (한국 한자음으로는 해즙)이란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말레이 지역에 전파되어 kicap 또는 kecap 정도로 불리게 되었고 다시 이 말이 영어로 들어가 ketchup이 되었다고 합니다.
鮭汁(해즙)은 물고기나 조개살(굴을 포함한다고 생각됩니다)을 얇게 썰어서 소금 등에 절여 향신료를 섞어 발효시켜 만든 소스를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액젓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요.
鮭汁(해즙)의 鮭(어채 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쓰이는 말이 아니나 汁(즙 즙)은 오렌지즙, 야채즙이라 할 때 쓰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요. - P243

따라서 영어에서도 애초의 ketchup (케첩)은 물고기로 만든 소스를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18세기에 와서는 버섯을 주재료로 하여 케첩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버섯 케첩이 일반적인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국에서는 일부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19세기에 와서야 토마토를 기반으로 한 케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케첩의 재료에 아직 멸치가 포함되어 있어 생선 소스라는 특징은 유지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 P244

특히 19세기 초 미국에서 식품회사 하인즈의 설립자인 헨리 J. 하인즈가 토마토를 갈아 만든 소스를 케첩의 메인 재료로 쓰기 시작하면서 토마토케첩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 미국의 힘을 업고 토마토케첩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현재 케첩이라고 하면 전 세계적으로 토마토케첩만을 의미하게 된 것은 미국 특히 하인즈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있습니다. - P244

케찹, 케찹, 케첩・・・
올바른 표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는 언제 토마토케첩이 들어왔을까요? 
1930년대 신문기사에 케챱, 케찹, 케첩 등 다양한 표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거쳐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936년 7월 9일 <조선일보>의 ‘양식에 쏘-스는 칠 데 쳐야 제격이다‘라는 기사를 볼까요.

‘빠다라든지 마요네스라든지 케챱이라든지‘ - P245

기사에서는 케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동아일보> 기사에도 토마케챱, 도마도케찹, 토마도케첩 등이 나타납니다. 다만 ‘도마도케찹이 없으면 설탕으로 대용하라‘라든가 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오늘날만큼 일반화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 토마토케찹은 해방 후 미국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90년전에 한국에 토마토케찹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 P244

외래어의 표기가 정해지며 케챱, 케찹, 케첩 등은 케첩으로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말할 때에는 케찹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식품회사인 오뚜기에서는 자신들의 상품명을 
케챂으로 정하여 이것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 역시 발음은 케찹으로 날 수밖에 없는 점도 케찹 쪽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고유 상표명이라 규범을 강제할 수 없다는 측면은 케챂뿐 아니라 회사명 오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범에 따르면 오뚝이로 적어야 하지만 식품회사 오뚜기는 상호를 오뚜기로 하여 상표명으로서 브랜드화한 것입니다. - P248

케첩과 뗄 수 없는 말이 된 토마토도 해외에서 유입이 되었지요. 중남미가 원산지인 토마토는 16세기에 유럽에 전파된 후 17세기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1614년에 완성된 《지봉유설》에서 토마토를 남쪽 오랑캐 땅에서 온 감이라는 의미에서 남만시(南蠻枾)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널리 재배되지 못하였었습니다. 토마토가 널리 보급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1920년대 신문에서는 도마도, 도마토, 토마도, 토마토 등 다양한 표기로 등장합니다. 이 외에 일년감이라 하여 우리식으로 명명한 표현도 보이며 번가(蕃茄)라는 중국어식 표현을 그대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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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우리 가족만의 공식적 '딸램 생일 주간'이었다. 결혼 전 엄마가 끓여주는 마지막 미역국을 먹으러 온다는 딸램과 쉴 틈 없이 뭔가를 하며 내리 3 일을 놀았다. 오전 수영 다녀오면 좀 지치기도 하고 매일 다니니 힘든 날은 잠시 낮잠도 자고 주말엔 아예 쉬는데 딸램이 오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어딘가를 자꾸 나가자는 딸램 장단에 맞추자니 좋으면서도 넘 힘들었다. 결혼식이채 1년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냥 집에서 밥만 해먹고 있는 것도 아쉬웠다. 지난 화요일에 결혼식 날짜를 받고 결혼식장을 예약했으니 아마도 하반기부턴 바빠서 엄마랑 놀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하면서 함께 할 수 있을 때 하자 싶어 무리를 하게 되었다.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읽던 책들도 진척이 없고 집중해서 읽고 싶은 책들도 진득하니 읽어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주말에 읽었던 몇 문장들로 인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속이 다 시원했다. 궁금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아리송 고개만 갸웃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게 해결이 된 거다.~~~


















소설 《동백꽃》 속 노란 동백꽃의 비밀...에 대하여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시작해 강원도 춘천까지 이어지는 철도 경춘선을 타고 가다 보면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김유정역이 있다. 예전에는 신남역이었는데 김유정의 고향이 바로 근처에 있어서 역 이름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한다. 

강원도가 고향인 김유정의 소설에는 강원도 방언이 많이 들어 있다. 소설 제목인 《동백꽃》도 마찬가지이다. 동백꽃은 우리나라 남쪽 해안가에서 주로 자란다. 추운 강원도 지방에서는 볼 수가 없는 꽃인데 어째서 소설의 제목이 동백꽃이 된 것인지 의아하다. 동백꽃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까? 강원도 방언으로 동백은 '생강나무'를 뜻한다. 김유정이 말한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을 말한다. 소설을 읽으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몇 문장을 일단 적어보자.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P136. 작가의 발췌 참조함)

                                                                                                                                                                                                                                                                                                                                                                                                                        내가 의아했던 것은 '노란 동백꽃'이라는 것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라는 구절이었는데 붉은 동백꽃을 익히 알고 있는 내 머리에 노란 동백은 너무도 생소했고 이 작품을 읽었던 30년도 더 지난 20대 초반이었을 때는 아직 컴퓨터도 없을 때이니 이 궁금증을 해소할 생각도 못하고 머릿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남쪽 지방을 여행하면서 동백꽃을 만나면 정말 알싸한 향이 나는가 싶어 붉은 동백꽃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알싸한' 향이라니... 그런 향이 날 리가 만무하지... 

그러고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해소가 되어 너무 시원했고, 그제서야 '노란 동백꽃'으로 검색을 해보니 너무도 쉽게 '생강나무꽃'이 줄줄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동백꽃》을 다시 읽을 기회가 오지는 않을텐데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지 뭔가~~~ 



강원도에서는 왜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이유는 두 식물의 용도가 공통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짜고 그 기름은 식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부녀자들이 머리에 바르는 기름으로도 사용하였는데 강원도에서는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고 사용을 했기에 후대로 가면서 이름까지도 동백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김유정의 《동백꽃》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동백나무를 뜻하는 《Camelia》라고 단순히 제목을 붙였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다.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작가가 나고 자란 지역과 방언, 배경이 얼마나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백꽃>



<생강나무꽃>

                                                                                                                                                                                                                                                                                                                                                                                                                        생강나무꽃 보면서 혹 산수유 꽃인가 싶어 검새해보니 분명 다른 꽃이다. 3둴 ~ 4월 초에 꽃이 핀다고 하니 등산이라도 하게 되면 산에 가서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두 나무의 꽃이 필 시기이다. 알싸한 향기를 풍기는 노란 빛깔 생강나무꽃을 올 봄에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가장 궁금한 건 '알싸~~~한' 향이다!







올리비아 랭의 『정원의 기쁨과 슬픔』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아왔다. 올리비아 랭의 작품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발자취를 따라 써내려간 『강으로』를 읽고 나서 두 번째 읽는 작품이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오케이~~~ 작가와 남편이 영국 서퍽 주에 위치한 주택을 구입하였는데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이었고 온갖 덩굴식물이 엉켜서 벽돌을 뒤덮었다. 벽은 장미로 뒤덮여있었고 그 집의 주인은 영국 정원의 설계자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전체 면적이 1/3에이커도 안되었지만 산울타리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구획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훨씬 크게 느껴졌다.  


팬데믹 시기에 주인의 죽음 이후 황폐해진 정원이 딸린 주택을 구입하고 정원의 설계도와 나무들의 위치를 그린 그림을 참조하며 정원을 가꿔 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이해되면서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팬데믹 시기에 정원을 가꾸고 꽃과 나무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에도 격하게 공감이 되어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지만 또 다른 에세이에서는 영국의 대규모 정원이 우리가 보기에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대규모 개발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작은 마을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하였고- 물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 심지어 학교나 병원 등도 강제적으로 이전을 당해야만 했다는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동물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잃었고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가 그 동안 내 마음 속에서 언젠가 이룰 로망으로 삼고 있었던 '영국 정원 기행의 꿈'이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젠더, 역사, 정치... 이 세 단어가 만났으니 쉽게 읽힐 리가 없다.

'1장 여성의 역사'에 머물고 있다. "여성을 역사적 주체로 구성하는 문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접근법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별칭으로 쓰던) "허스토리"her-story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히스토리"라는 단어에 대한 이 말장난이 시사하듯이, 허스토리의 초정은 간과되었던(따라서 가치절하되었던)ㄱ험에 가치를 부여하고 역사를 만들어온 과정에서 여성의 행위성을 주장하는 데 있다. 남성들도 단지 하나의 행위 집단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과 남성의 경험이 유사했건 상이했건 여성들도 명백히 역사가들의 고려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P48) 

                                 ... ... ... ......


이 책의 '2장 「젠더: 역사 분석의 유용한 범주」'는 1986년 출간 직후부터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도 여성학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논문 중 하나이다. 여성학계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스콧의 이 글은 사회사에서 문화사로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꽂이에 오래 남는 논문이 아니라 긴 생명력을 갖는 이 이론을 읽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지식 체계와 권력의 관계를 파헤치며 얽힌 의미를 풀어내는 스콧의 작업은 기존에 통용되는 '이해'의 방식에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어 세심히 읽어 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해결 불가능한 모순과 모호함, 불안정성과 불안으로 이끌 것이며, 그 통찰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시작을 보여줄 것이라고 스콧은 말한다(P376)


옮긴이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읽은 문장을 읽고 또 읽어도 알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모르는 문장인 듯 했다. 그래도 한 번 읽을 때, 두 번 읽을 때 이해도는 확실히 처음보다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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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오후 수업
"그러면 여러분은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젖이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말하는 이 희뿌연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선생님은 칠판에 매달아 놓은, 검은 물감으로 채색된 , 커다란 별자리 그림 중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희뿌연 은하 띠 같은 곳을 가리켰습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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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매일 사용하는 단어가 품은 수천 년 이야기

점심을 먹고 수영 같이 다니는 친구와 동넷길을 걸었다. 난 몰랐는데 우리 동네에도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이천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는게 아닌가. 난 작년까지도 기숙학원이 있는 큰 도로까지만 갔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내가 수영다니느라 걷기를 쉬고 있는 동안 끊어져 있던 산책로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정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 가만 있을 수 없지! 그러잖아도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몸이 근질근질 좀 나가서 걷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어 중간에서 만나 한참 걸어갔다가 이천과 용인 경계도로에서 다시 돌아왔다. 집까지 다시 오니 1만 5천보나 걸었더라는~~~

오랜만에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무겁다 ...
좀 일찍 자려고 양치질 하며 이 책을 펼쳤는데
이 무슨 우연의 일치란 말이냐...
엊그제의 상추때도 삼겹살데이에 상추쌈 맛있게 먹고 ‘상추‘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오늘은 양치질이란 단어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지 뭔가~~~!

양치질이란 단어가 간직한
중국, 인도, 우리나라 수천 년 이야기

우리가 매일 쓰는 단어와 말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문화와 풍습과 삶의 방식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되어 왜 이렇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주변 풍경이 달리 보이고 사람사는 세상이 새롭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됩니다. 당연하다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탐구하며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지요.
매일매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유래를 모르는 단어는 아주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양치질이 있습니다. 양치질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이어지는 문화의 전파와 그 이면에 남아 있는 문화사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 P75

사람들이 지금처럼 칫솔을 사용하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치약도 마찬가지고요. 그전에는 입에 소금을 넣고 손가락으로 이를 문지르는 방식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칫솔질은 칫솔을 사용하여 이를 닦는 행위를 말하고, 양치질은 칫솔이 없이도 이를 닦고 물로 입안을 가시는 행위 전반을 두고 말하지요.
저는 양치를 설명할 때 이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합니다.

"양치는 한자어일까요? 순수 우리말일까요?"

이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한자라고 대답합니다. 한자 중에 치아를 뜻하는 이치(齒)자를 떠올리기 때문이지요. ‘수양하다, 봉양하다‘를 뜻할 때 쓰이는 한자 기를 양(養)자에 이치(齒)자를 쓰면 치아를잘 닦는다는 뜻과도 딱 맞아떨어지고요.
- P76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국어사전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양치: 이를 닦고 물로 입 안을 가심. 한자를 빌려 
‘養齒‘로 적기도 한다.

일반적인 한자어라면 양치(養齒)라고 제시하고 뜻풀이를 하면 되는데 양치라고만 제시하여 고유어인 듯이 처리되어 있고 "한자를 빌려 ‘養齒‘로 적기도 한다"라고 설명을 달아놓았습니다. 이것은 양치의 어원에 다소 복잡한 문제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양지질은 어쩌다
양치질이 되었을까?

양치라는 말은 양지(楊)라는 말이 변한 것입니다. 양지는 버드나무양(楊)과 가지 지(枝)로 쓰여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버드나무가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양치질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다시 사전에서양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양지(楊枝):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 불교도들에게 냇버들가지로 이를깨끗이 하게 한 데서 유래한다. - P77

양지는 단순히 버드나무 가지가 아니라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이 닦는 데 쓰이는 도구‘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불교문화로부터 유래한 것이지요. 사전에서는 냇버들 가지라고 했는데, 사실 인도에서는 양치를 할 때 버드나무나 냇버들이 아닌 님나무(nimtree)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 P78

더구나 님나무 가지를 사용해 이를 쑤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나무 가지를 씹는 것이라고 하네요. 핀란드 사람들이 자일리톨 성분이있는 자작나무를 사용하여 양치를 하듯이 인도 사람들은 님나무를사용했습니다. 인도의 이러한 문화가 불교를 통해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전파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가 없는 까닭에 쉽게 구할 수 없었으므로, 같은효과를 낼 수 있는 식물로 대체하다 보니 버드나무를 이용하였지요.
즉,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였는데 그 도구를 재료의 명칭인 양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를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양지질이라는말이 이를 닦거나 헹구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고, 시간이 더 많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양지나 양지질이라는 말이 기원적으로 버드나무 가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 P78

우리나라는 한자 문화권이었으므로, 한자어 가운데 ‘이‘를 뜻하는 이치(齒)라는 한자가 있으니 세월이 흘러 양지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 쓰이면서 ‘지‘와 ‘치‘를 혼동하여 쓰게 되었고, 양지나 양지질이 양치 내지 양치질이라는 말로 바뀌게 됩니다.
단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용됩니다.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단어의 기원이 흐릿해지고 익숙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단어도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이는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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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5-03-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치질이라는 단어보다 ‘치카치카‘를 더 많이 쓰는 요즘이지만, 양치질 단어에 숨겨진 역사가 있었다니 새삼스럽네요.:)

은하수 2025-03-08 21:34   좋아요 0 | URL
흔히 쓰는 말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