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우리 가족만의 공식적 '딸램 생일 주간'이었다. 결혼 전 엄마가 끓여주는 마지막 미역국을 먹으러 온다는 딸램과 쉴 틈 없이 뭔가를 하며 내리 3 일을 놀았다. 오전 수영 다녀오면 좀 지치기도 하고 매일 다니니 힘든 날은 잠시 낮잠도 자고 주말엔 아예 쉬는데 딸램이 오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어딘가를 자꾸 나가자는 딸램 장단에 맞추자니 좋으면서도 넘 힘들었다. 결혼식이채 1년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냥 집에서 밥만 해먹고 있는 것도 아쉬웠다. 지난 화요일에 결혼식 날짜를 받고 결혼식장을 예약했으니 아마도 하반기부턴 바빠서 엄마랑 놀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하면서 함께 할 수 있을 때 하자 싶어 무리를 하게 되었다.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읽던 책들도 진척이 없고 집중해서 읽고 싶은 책들도 진득하니 읽어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주말에 읽었던 몇 문장들로 인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속이 다 시원했다. 궁금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아리송 고개만 갸웃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게 해결이 된 거다.~~~
소설 《동백꽃》 속 노란 동백꽃의 비밀...에 대하여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시작해 강원도 춘천까지 이어지는 철도 경춘선을 타고 가다 보면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김유정역이 있다. 예전에는 신남역이었는데 김유정의 고향이 바로 근처에 있어서 역 이름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한다.
강원도가 고향인 김유정의 소설에는 강원도 방언이 많이 들어 있다. 소설 제목인 《동백꽃》도 마찬가지이다. 동백꽃은 우리나라 남쪽 해안가에서 주로 자란다. 추운 강원도 지방에서는 볼 수가 없는 꽃인데 어째서 소설의 제목이 동백꽃이 된 것인지 의아하다. 동백꽃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까? 강원도 방언으로 동백은 '생강나무'를 뜻한다. 김유정이 말한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을 말한다. 소설을 읽으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몇 문장을 일단 적어보자.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P136. 작가의 발췌 참조함)
내가 의아했던 것은 '노란 동백꽃'이라는 것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라는 구절이었는데 붉은 동백꽃을 익히 알고 있는 내 머리에 노란 동백은 너무도 생소했고 이 작품을 읽었던 30년도 더 지난 20대 초반이었을 때는 아직 컴퓨터도 없을 때이니 이 궁금증을 해소할 생각도 못하고 머릿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남쪽 지방을 여행하면서 동백꽃을 만나면 정말 알싸한 향이 나는가 싶어 붉은 동백꽃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알싸한' 향이라니... 그런 향이 날 리가 만무하지...
그러고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해소가 되어 너무 시원했고, 그제서야 '노란 동백꽃'으로 검색을 해보니 너무도 쉽게 '생강나무꽃'이 줄줄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동백꽃》을 다시 읽을 기회가 오지는 않을텐데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지 뭔가~~~
강원도에서는 왜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이유는 두 식물의 용도가 공통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짜고 그 기름은 식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부녀자들이 머리에 바르는 기름으로도 사용하였는데 강원도에서는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고 사용을 했기에 후대로 가면서 이름까지도 동백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김유정의 《동백꽃》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동백나무를 뜻하는 《Camelia》라고 단순히 제목을 붙였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다.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작가가 나고 자란 지역과 방언, 배경이 얼마나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백꽃>

<생강나무꽃>

생강나무꽃 보면서 혹 산수유 꽃인가 싶어 검새해보니 분명 다른 꽃이다. 3둴 ~ 4월 초에 꽃이 핀다고 하니 등산이라도 하게 되면 산에 가서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두 나무의 꽃이 필 시기이다. 알싸한 향기를 풍기는 노란 빛깔 생강나무꽃을 올 봄에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가장 궁금한 건 '알싸~~~한' 향이다!
올리비아 랭의 『정원의 기쁨과 슬픔』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아왔다. 올리비아 랭의 작품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발자취를 따라 써내려간 『강으로』를 읽고 나서 두 번째 읽는 작품이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오케이~~~ 작가와 남편이 영국 서퍽 주에 위치한 주택을 구입하였는데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이었고 온갖 덩굴식물이 엉켜서 벽돌을 뒤덮었다. 벽은 장미로 뒤덮여있었고 그 집의 주인은 영국 정원의 설계자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전체 면적이 1/3에이커도 안되었지만 산울타리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구획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훨씬 크게 느껴졌다.
팬데믹 시기에 주인의 죽음 이후 황폐해진 정원이 딸린 주택을 구입하고 정원의 설계도와 나무들의 위치를 그린 그림을 참조하며 정원을 가꿔 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이해되면서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팬데믹 시기에 정원을 가꾸고 꽃과 나무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에도 격하게 공감이 되어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지만 또 다른 에세이에서는 영국의 대규모 정원이 우리가 보기에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대규모 개발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작은 마을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하였고- 물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 심지어 학교나 병원 등도 강제적으로 이전을 당해야만 했다는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동물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잃었고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가 그 동안 내 마음 속에서 언젠가 이룰 로망으로 삼고 있었던 '영국 정원 기행의 꿈'이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젠더, 역사, 정치... 이 세 단어가 만났으니 쉽게 읽힐 리가 없다.
'1장 여성의 역사'에 머물고 있다. "여성을 역사적 주체로 구성하는 문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접근법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별칭으로 쓰던) "허스토리"her-story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히스토리"라는 단어에 대한 이 말장난이 시사하듯이, 허스토리의 초정은 간과되었던(따라서 가치절하되었던)ㄱ험에 가치를 부여하고 역사를 만들어온 과정에서 여성의 행위성을 주장하는 데 있다. 남성들도 단지 하나의 행위 집단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과 남성의 경험이 유사했건 상이했건 여성들도 명백히 역사가들의 고려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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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2장 「젠더: 역사 분석의 유용한 범주」'는 1986년 출간 직후부터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도 여성학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논문 중 하나이다. 여성학계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스콧의 이 글은 사회사에서 문화사로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꽂이에 오래 남는 논문이 아니라 긴 생명력을 갖는 이 이론을 읽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지식 체계와 권력의 관계를 파헤치며 얽힌 의미를 풀어내는 스콧의 작업은 기존에 통용되는 '이해'의 방식에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어 세심히 읽어 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해결 불가능한 모순과 모호함, 불안정성과 불안으로 이끌 것이며, 그 통찰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시작을 보여줄 것이라고 스콧은 말한다(P376)
옮긴이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읽은 문장을 읽고 또 읽어도 알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모르는 문장인 듯 했다. 그래도 한 번 읽을 때, 두 번 읽을 때 이해도는 확실히 처음보다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