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고난을 대하는 한가지 삶의 철학

위화<인생>
... 크게 보면 뺄셈의 연속이지만 그 중간에 덧셈도 있었다. 물론 뺄셈은 컸고, 덧셈은 작았다. 그래서늘 적자였다. 삶은 결국 고난으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삶은 불행했다. 하지만 행복학 전문가들이 말하지 않는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한두차례 큰 행복을 겪는 것보다는 크기는 작아도 작은 행복을 여러번 겪는 게 더 낫다고! 주인공은 큰 불행을 겪었지만 삶의 순간순간 작은 행복도 많았다. 그런 작은 순간순간의 행복에 즐거워하고 그것을 즐겼다. 이런 그의 삶의 태도야말로 행복론 교과서에서 말하는 행복 찾기의 전형적인 예다. 그는 반복된 고난 속에서도 순간순간 삶의 작은 행복에 기뻐하고, 그 행복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고난과 불행을 견뎠다. - P214

운명을 친구로 삼는 삶의 철학
그런데 소설에는 이런 행복학 교과서 차원만이 아니라 고난과 불행을 대하는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주인공의 태도가 들어 있다. 원망 없이 비극의 삶을 대할 수 있는 주인공만의 사고방식이 있다. 이런 주인공의 사고방식은 중국의 많은 독자가, 심지어 작가 위화조차도 주인공을 진정한 중국인의 상징이라고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사고방식, 즉 삶의 철학이나 인생관과 관련되어있다. 예고 없이 언제 삶에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이나 절망에 대응하는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그 삶의 철학으로 들어가보자. - P215

중국인의 삶의 철학을 가장 잘 압축하여 보여주는 고사성어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날 뜻밖에 생긴 말이 행운을 가져오기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우연히 말이 생긴 것은 행운. 그 말을 타다가 아들이 다친 것은 불행. 그런데 아들이 다쳐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게 되었으니까 이건 또 행운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행운과 불행이 교차한다. 인생에서 좋기만 한 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그것은 마치 달과 같다.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행운과 불행은 늘 인생이란 하나의 원에 같이 있고, 다만 어느 순간 밝은 면이 커지기도 하고 어두운 면이 커지기도 할 뿐이다. - P216

더구나 그런 행운과 불행은 내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처럼 행운과 불행이 오고 간다. 그러니 인생의 행운에 자만하거나 도취하지 말 것이며, 불행에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라는 게 새옹지마 고사의 교훈이다. 중국인이 때로는 운명론자이고 때로는 비극 앞에서도 낙관과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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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삶의 경계와 허상을 넘는 욕망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한국인, 아빠가 해준 음식이그리운 중국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 남자나 중국 남자나 다 공자의 후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남자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난 것일까? 중국 남자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무시하고, 부엌일은 여성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통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 시기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남자와 같았다.  - P102

그런데 사회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달라졌다.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를 두고 긍정적. 부정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녀관계 차원에서 보자면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는 가부장 문화를 단절하고, 남녀관계를 새롭게 세운 시대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을 제공하는 한편, 가사노동, 육아노동 부담을 줄였다. 밥도 공동 식당에서 먹거나 사다 먹어서 집에서 밥할 일이 없어졌다. 마오쩌둥 시대에 지은 아파트의 주방이 손바닥만 한 것은 이런 때문이다. 탁아소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출근할때 아이를 직장 탁아소에 맡기고, 퇴근할 때 찾았다. 심지어 아이를 일주일 동안 맡기는 시스템도 있었다.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은 보장되어 있지만, 밥하고 아이 키우는 부담이 여전하다면 여성은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오쩌둥 시대 중국은 여성의 가사와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확연히 달라지는 계기를 맞았다. - P103

여기에 가부장인 남자의 경제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남녀관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녀의 결혼 같은 집안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이 가부장의 손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직장의 장에게로 넘어갔다. 노동 점수에 따라 집에 필요한 물자를 배분하고, 돈을 줄 때도 집안 단위로 가부장에게 주는 게 아니라 집안 식구 수에 따라 배분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P103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우리 정부가 코로나 생계지원금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장이 아니라 집안의 가장 통장에 넣어준 것을 떠올리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권력은 결국 경제권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마오쩌둥 시대에 가장이 지닌 경제권과 집안 의사 결정권이 해체되었고, 이게 가부장제 해체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 P104

남녀의 경계가 그렇듯이, 삶을 나누는 경계란 한 걸음만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참 부질없는 허상이다. 대개 인간의 삶에 놓인 수많은 경계는 현실과 대상을 관념으로 재단하고 나누어서 생긴다. 달에게는 어둠과 밝음이 원래 자신안에서 하나인 채로 있는데, 인간의 눈은 그것을 상현달과 하현달로 나눈다. 원래 하나이고 분절할 수 없는 현실과 대상을 원래대로 보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관념의 눈으로 나누고, 그것을 질서로 만들고, 심지어 그 질서에 가치와 우열을 부여한다. 그러한 관념의 질서는 당연히 허상이다.  - P104

여름철 산둥의 농촌은 붉은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많은 수수는 식재료와 사료, 술을 만드는 데 쓴다. 붉은수수밭의 세계에 살던 순종 인간에게 고량주는 단순한 술이아니라 잠자는 야성을 깨우고 원시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도화선이었다. 그래서 고량주를 마실 때 첫잔은 으레 한입에털어넣어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한다. 소설에서 붉은 수수밭공간에 사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다들 술을 잘 마신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여성도 이곳에 시집와서는 독한 고량주 반병은 너끈히 마신다. 소설의 언급에 따르면 술은 이들을 의협심이 넘치게 만들고,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한다. 이들에게 술은 억압된 야성의본능과 원시적 충동을 불러일으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하는 마법의 액체다. - P162

인문여행에는 자연경관을 찾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인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문의 한자 뜻풀이는 사람의 무늬(人)다. 사람의 무늬는 슬쩍 봐서는, 겉을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보이고,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느낄 수 있다. 그래야 건물과 거리 풍경 속에 새겨진 사람의 무늬가 보인다 - P177

정신승리법은 아큐만이 아니라 누구든 사용한다. 그것은 정신승리법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방어 기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방어 기제로는, 유쾌하지 않거나 불안을 가져오는 일에서 도피하거나 부정하는 것,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그것을 투사하거나 전이하는것, 그리고 합리화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아큐도 이런 자기방어 기제로 정신승리법을 잘 사용한다. 이렇게 보자면 정신승리법은 자기를 보존하고, 힘들고 상처 입은 삶을 회복하는 방법의 하나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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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로 긴 타원의 섬 지도가 화면에 떠올랐다. 1948년 미군 기록물이라는 자막 위로, 해안선에서부터 오 킬로미터를 표시하는 경계선이 두드러진 굵기로 그어져 있었다. 한라산을 포함하는 그 안쪽 지역을 소개하며, 해당지를 통행하는 자를 폭도로 간주해 이유 불문 사살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이 자막으로 이어졌다. 놀라울 만큼 노이즈 없이 선명한 흑백 무성 영상이 뒤따라 들어왔다. 초가지붕들이 불탔다. 검은 연기가 불꽃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검이 장착된 장총을 멘 옅은 색 제복의 병사들이 현무암 밭담을 뛰어넘었다. - P161

흑백사진 석 장이 차례로 화면을 채우고 
사라졌다. 해송 숲 가운데 흰옷 입은 남자 넷이 서 있었다. 철모를 쓴 군인 넷이 그들에게 과녁 조끼를 입히고 있었다. 네 쌍의 모습이 측면에서 클로즈업되어 차려 자세로 서 있는 청년들의 콧날과 인중,
턱과 목을 잇는 앳된 선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카메라에 가장 가까워 얼굴이 크게 보이는 청년의 입술은 긴장한 듯 다물렸고, 막침을 삼킨 듯 목의 얇은 피부 아래 성대가 튀어나왔다.
다음 사진에서 청년들은 과녁 옷을 입고 한 명씩 소나무에 묶여 있었다. 사진의 화각이 좀전보다 넓어져, 오 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엎드려 쏴 자세로 과녁을 겨눈 병사들이 화면 안으로 들어 왔다. - P163

마지막사진에서 청년들의 몸은 비틀려 있었다. 끈으로 묶인 허리 위쪽 상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턱이 들리고 고개가 젖혀졌다. 무릎이 오그라졌다. 입이 벌어졌다. - P164

내 인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더이상 알 수 없게 되었어. 오랫동안 애써야 가까스로 기억할 수 있었어. 그때마다 물었어.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이제 내가 누군지. - P317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 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 P317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그 아이들을 생각하다 집을 나선 밤이었어. 태풍이 올 리 없는 10월이었는데 돌풍이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달을 삼켰다 뱉으며 구름들이 달리고, 별들이 쏟아질 듯 무더기로 빛나고, 모든 나무들이 뽑힐 듯 몸부림쳤어. 가지들이 불같이 일어서 날리고 점퍼 속으로 풍선처럼 부푸는 바람이 거의 내 몸을 들어올리려고 했어.
한 발씩 힘껏 땅을 디디고 그 바람을 가르며 걷던 한순간 생각했어. 그들이 왔구나. - P318

무섭지 않았어.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 고통인지 황홀인지 모를 이상한 격정 속에서 그 차가운 바람을, 바람의 몸을 입은 사람들을 가르며 걸었어. 수천 개 투명한 바늘이 온몸에 꽂힌 것처럼, 그걸 타고 수혈처럼 생명이 흘러들어오는 걸 느끼면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거나 실제로 미쳤을 거야. 심장이 쪼개질 것같이 격렬하고 기이한 기쁨 속에서 생각했어. 너와 하기로 한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고.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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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한강 작가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1
결정結晶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 P9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 P9

문득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어느 틈에 발등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 지금 밀물이 밀려오는 거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물었다.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 거야?
점점 빠르게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날마다 이렇게 밀물이 들었다 나가고 있었던 건가? 아래쪽 무덤들은 봉분만 남고 뼈들이 쓸려가버린 것 아닌가? - P10

그 꿈을 꾼 것은 2014년 여름, 내가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그후 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꿈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도시에 대한 꿈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빠르고 직관적이었던 그 결론은 내오해였거나 너무 단순한 이해였는지도 모른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이란 2014년 5월에 출간된 《소년이 온다》를 말하는 건가 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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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X김경훈, arte

‘세계 최고의 전쟁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로버트 카파였지만 그의 동생 코넬 카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카파는 실제로는 전쟁사진가War Photographer가 아닌 평화를 담는 사진가Peace Photographer였습니다. 그의 사진들은 전쟁이 아니라 거기에 연루되었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사진 찍기를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유심히 사진 들여다보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로버트 파카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카파는 군인이 아니지만 그가 거쳐온 전쟁은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일전쟁과 이스라엘 중동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이었다.

20세기 가장 잔인했으며 야만적인 전쟁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보여준 광기, 폭력, 아픔, 위험 등 여러 감정을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사진으로 캡쳐해 내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386쪽)

수많은 전쟁터를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가 사진을 남겼지만, 카파가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은 ˝(피사체가 되는)사람들을 사랑할 것, 그리고 그것을 그들이 알게 할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이자 절친이었던 존 스타인벡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카파는 자신이 사진으로 전쟁을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쟁의 본질은 감정적이고 복잡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파는 그러한 감정이 표현된 전쟁의 양상을 사진에 담아냈다. ...... 그에게 카메라는 인간의 감정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도구였다.˝(388쪽)

그의 사진의 저변에는 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즐거운 독서를 깨는 큰! ˝옥의 티˝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한데 아...정말 너무 많이 눈에 띄는 맞춤법 오류 들. 들. 들. 들
이건 뭐 너무 많아서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한 페이지에 한 개 정도는 기본으로 눈에 띈다.
아르테 클래식클라우드 책값은 점점 오르던데 교정 안함? 진심 궁금하다!



카파는 때로는 전쟁을 영웅들의 서사로, 때로는 시니컬한 시선으로, 때로는 전쟁이 주는 파괴를, 때로는 그 속에 감춰진 인간의 얼굴을, 때로는 적의 얼굴마저도 인간의 시각으로 보고 사진으로기록했다.

그가 수많은 사진 속에서 보여주었던 이야기는 진실 그 자체였으며 사진 속의 인물들은 모두 현실 속의 인물들이었다. 카파는 직접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카파가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매우 불편한 진실이었으며 카파 역시 그러한 불편한 현실의 한가운데 발을 딛지 않고서는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없었다. - P384

카파의 인생을 훑어보면 그의 삶은 극단으로 나누어진 명암에의해 균형을 잃은 불안정한 인생이었다. 따라서 모범적인 위인전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수많은 전설을 남긴 이 사진가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둘로 나누어졌다. 한쪽은 그를 전설 속의 인물로 만들어 그에게 신화를 부여했고, 또 다른 한쪽은 그의 삶에 점철된 불안정과 모순을 찾아 그에게 거짓과 허풍과 속임수의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 P388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는<쓰러지는 병사>에 대한 진실 공방은 어쩌면 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두 개의 평행 축으로 나누어진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냉철하게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보도사진가였으나 역설적으로 로버트 카파라는 허구의 인물이 되었던 카파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신의 인생의 감독이자 배우였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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