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캔터 선생님은 그들에게 산책을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먼저 에이번 애비뉴의 드러그스토어에 들러 소다파운틴에서아이스크림콘을 하나 샀다. 그는 회전하는 선풍기 아래 스툴을골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데, 지금 그에게 요구되는 일은 놀이터의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가 그 요구를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다가오는 모든 요구를 이행한 완강한 식료품점 주인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샤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의 일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포코노 산맥으로 도망가는 것보다 더 형편없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 P95

"문제는 계속 애들이 공놀이를 하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네. 폴리오에 걸린 두 아이. 두 형제의 어머니가 그랬지요. 저도 그 어머니가 히스테리 상태였다는 건 압니다. 절망감 때문에저를 비난했다는 건 알지만, 그걸 아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의사도 그런 일을 만나게 되지.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우리가 폴리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아. 어디 가나 애들은 여름 내내 밖에서 열심히 놀지만 유행병이 돌 때도 병에 걸리는 애들 비율은 아주 낮아. 또 그것 때문에 심하게 아픈 애들 비율도 아주 낮고, 또 죽는 애들 비율도 아주 낮지. 사망 원인은 호흡기 마비인데, 이건 상대적으로 아주 드문 거야. 두통을 앓는 아이들이 모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 P106

 그래서 위험을 과장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하던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자네는 죄책감을 느낄 게 전혀 없어. 가끔은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그럴 이유가 없어." 그는 파이프설대로 의미심장하게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아무 근거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 P107

... 자네보다 나이도 많고 질병에 관한 경험도 훨씬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네는 알아야 하네. 의사로서 이 무시무시한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일세. 주로 애들만 공격해서 그 가운데 일부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 위력적인 병, 이건 어떤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 자네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고 양심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네가 자네의 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한다면 그건 귀한 게 아니게 되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 P109

... 이것은 라디오에서 흔히 듣거나 신문에서 흔히 읽는 비인격적인 수, 집을 찾거나 사람의 나이를 기록하거나 신발 가격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가 아니었다. 이것은 잔혹한 병의 진전을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수, 뉴어크의 열여섯 개 병동에서는 그 충격이라는 면에서 진짜 전쟁의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수에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수였다.
이 또한 진짜 전쟁, 살육과 폐허와 파괴와 저주의 전쟁, 전쟁 고유의 파괴력을 가진 전쟁-뉴어크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P135

"뭐?" 오개러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응? 당연히 선택할 수 있지.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바로 선택하는 거라고 해. 자네는 지금 폴리오한테서 도망치는 거야. 일을 하겠다고 계약을 했는데 폴리오가 발생하니까 일 같은 건 난모르겠다. 약속 같은 건 난 모르겠다,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미친듯이 달아나는 거야. 자네가 하는 건 그저 달아나는 것일 뿐이라고, 캔서, 자네 같은 세계 챔피언급 근육질의 사나이가 말이야.
자네는 기회주의자야, 캔서,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지만, 그거면 될 듯하네." 그러더니 마치 그 말이 한 남자에게 오명을 씌울 수있는 모든 불명예스러운 본능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혐오감을 담아 되풀이했다. "기회주의자." - P141

...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 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것이 너무 많았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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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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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이라는 작가의 발견! SF소설이라기엔 어색하고 환상소설이라는 말로 대체하기도 애매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오랜만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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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의 위로 세리프
그레텔 에를리히 지음, 노지양 옮김 / 빛소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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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오밍이라는 거대한 대자연과 평원에서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문장으로 그려진 인디언들과 카우보이, 그리고 척박하고 거대한 평원에서의 목장 일이란 것이 결코 평탄하고 낭만적인 삶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작가의 문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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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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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심장 쫄깃했지만... 중간엔 너무 지루했다. 이렇게까지 길었어야 했나 의문이...1부의 예원제와 3부의 청신이라는 두 여성의 삶이 마치 평행이론의 표본처럼 느껴지고 파란만장했다. 거대한 우주에서 티끌보다 못한 존재일지 모를 우리의 삶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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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마지막 6장

청신이 물었다.
"5킬로그램만 더 남겨도 될까요?"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의 다른 쪽에 떠 있는 그녀의 
손에 환하게 빛나는투명한 공이 들려 있었다. 지름 50센티쯤 되는 공 안에 커다란 물방울 몇개가 떠다니고 있는데 어떤 것은 안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어떤 것은 그 안에서 수초가 자라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풀이 자라는 작은육지도 떠다녔다. 투명 공의 천장에 있는 작은 발광체에서 빛이 발산되고있었다. 작은 세계의 태양이었다. 이 투명 공은 완전히 밀폐된 형태의 생태구체로 청신과 지자가 열흘 넘게 매달려서 완성한 것이었다. 작은 태양이빛을 내뿜고 있는 한 생태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것을 남겨두고 간다면 적어도 647호 우주가 생명이 없는 암흑의 세계는 아닌 셈이었다. - P796

관이판이 말했다.
"물론이에요. 5킬로그램 때문에 대우주의 빅크런치가 실패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대우주가 원자 하나만큼의 질량 차이로도 닫힌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자연의 정밀함이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려면 모든 우주의 매개변수가 몇조 분의 1의 정밀도로 정확히 맞물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P796

하지만 청신은 그 투명 공을 그곳에 남겼다. 수많은 문명이 만들어낸 수많은 소우주 가운데 상당수가 회귀 운동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대우주는 최소한 수억 톤, 심지어 수억조 톤의 질량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기때문이다.
대우주가 이 오차에 영향받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 P797

청신과 관이판이 우주선에 타고 지자가 마지막으로 탔다. 화려한 기모노를 벗고 위장복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다시 날렵하고 유능한 전사로 변신해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무기와 생존 장비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등에 메고 있는 무사도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지자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살아 있는 한 두 분을 안전하게 지킬 테니까."
핵융합 엔진이 작동하고 추진기가 푸른 불빛을 내뿜자 우주선이 천천히 이동해 우주의 문을 통과했다.
- P797

소우주에는 메시지가 담긴 표류병 하나와 투명 공만 남았다. 표류병은 어둠에 파묻히고  1세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우주에서 투명 공 속 작은  태양만이 가물거리는 빛을 토해냈다. 이 작은 생명의 세계 속에서 물방울이 무중력 유영을 하고 있었다. 물방울에서 뛰쳐나온 작은 물고기가 다른 물방울로 뛰어 들어가 한들거리는 수초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작은 육지의 풀잎에서 굴러 떨어진 이슬 한 방울이 핑그르르 돌아 날아오르며 우주를 향해 한 가닥 투명한 햇빛을 반사했다. - P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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