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퍼가기 시대 -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 서구 미혼모 잔혹사 1
캐런 윌슨-부터바우 지음, 권희정 옮김 / 안토니아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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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퍼가기 시대'라는 이 생경하고도 이상한 용어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의 세계 유수의 국가에서 자행된, 비공개 영아 입양이 대규모로 시행되던 시기를 말한다. 대체로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1973 년까지의 기간이며 이 책을 저술한 미국의 작가 캐런 윌슨-부터바우도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빼앗긴 어머니이다. 책의 표지에 인쇄된 사진을 참조하시라.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는 어머니라면 결코 저런 표정일 수가 없다. 아기를 낳고 잠시 안아본 게 다인데 바로 아기를 빼앗기고 원하지 않는 입양을 강요 당했다. 미국에서 150만 명 이상의 미혼모가 강제 입양으로 아기를 빼앗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는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그 유명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난 해를 즈음하여 공식적으로 끝난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상 이토록 많은 미혼모가 갓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전례는 없다(38쪽)"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미혼의 엄마들이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기를 빼앗겼다. 대부분의 엄마들의 나이는 만 16 ~ 18세였다. 그들은 피임약을 구할 길이 없어 배란기에 맺은 성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졌고 임신 사실을 알아도 밝힐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남자와 성 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아기를 낳을 때조차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 통증을 경감시켜주는 어떠한 처방도 받지 못했다. 미혼의 여성의 성행위는 금기였기에(그런데 왜 미혼의 남성에게는 금기가 아닌 것이죠?) 임신을 한 여성들은 "문제 있는 여자애들"이란 시각으로 보았다. 정말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친절하게도 캐런 윌슨-부터바우 이 작가는 처음 시작하는 1장부터 마지막 26장의 내용을 스스로 요약을 해 놓았다. 읽다 보면 전혀 생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접한 영미 문학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작년 하반기, 아일랜드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다 알게 된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음침하고 끔찍했던 그곳도 바로 미혼모 수용시설이지 않았던가.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이 시기 미혼 임신을 한 여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문제의 여자애'는 아이 아빠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지만, 그는 곧 타지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마을을 떠나거나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아니면, 임신한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회피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아이 아빠로부터 거절 당한 후 미혼의 임산부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이 반갑지 않은 소식에 충격을 받은 부모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러면 의사나 목회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딸을 미혼모 시설에 보내고 아기를 낳으면 입양 보내라고 조언한다.


<감금>

   2차 세계대전 이전 모자 위탁 가정forest home은 엄마들이 아기를 기를 수 있도록 돕던 곳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모자 위탁가정은 유급 위탁 가정wage home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변화를 거쳤다. 유급 위탁 가정에 머물던 미혼 임산부는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 미혼모 시설로 옮겨졌고, 거기서 별다른 대안없이 입양을 선택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혼모 시설을 제도화하는데 앞장서고 입양 산업화를 위해 시설을 활용한 입양 조사 복지사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유급 위탁 가정과 미혼모 시설은 입양 기관과 관련 변호사들의 협력을 얻으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던 미혼모를 포획하는 그물을 완성했다. 그물은 미혼모들을 꼼짝할 수 없이 가두었고 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아기라는 사냥감을 얻었다(Kunzel 1993: 169).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혼외관계" 임신이어야 했는데 이때 "혼외 관계"란 무조건 "잘못된 행동"을 의미했다(Vincent 1962: 10). 어린 나이에 임신하게 되면 대부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입양 기관에 오고, 입양 기관에 오면 복지사의 안내로 유급 위탁 가정(결혼한 부부의 가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임신 7개월이 될 때까지 숨어지내며 임금을 받고 집안일과 육아(자신의 아이는 돌보지 못하는데 육아를 한다? 어불성설이죠?)를 돕는다. 유급 위탁 가정은 미혼모 시설로 옮겨갈 때까지 머무는 단기적인 해결책이었다. 유급이라 했지만, 임금은 거의 지급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대가는 숙박비와 식비로 이미 빚을 질 만큼 충분히 받았고, 망신당하지 않도록 숨을 장소를 제공했으니 감사하라는 식이었다. 이 관행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및 뉴질랜드를 포함한 서방 국가에 널리 퍼졌다. 흔히 가사 도우미 같은 일을 했는데 이것은 당시 사회 정책이었다(Child Welfare League of America 1978: 28)


   유급 위탁 가정의 안주인은 미혼모에게 어머니 같은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부끄러운 짓을 한 어린 임산부가 산달이 다가와 미혼모 시설로 옮겨갈 자격이 될 때까지 숨겨 준 대가로 몇 달 동안 무료(또는 저렴한 임금을 받는) 입주 가정부를 들이는 정도로 생각하는 "정숙한", 즉 기혼 여성이었다(Pinson 1964: 21-22). 이러한 유급 위탁 가정은 미혼모 시설 및 입양 기관과 연계되어 있었다. 미혼모 시설에는 보육 시설이 없었다. 과거 복음주의 기독교에 기초해 미혼모들을 돕던 여성  종사자들과 달리 미혼모 시설은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아이와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돈과 음식, 옷 등을 친절하게 나누어주는 복지사들은 없었다. '아기 퍼가기 시대'에는 미혼모와 아기의 애착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아기를 가지려는 자의식에 가득 찬 결혼한 부부(불임이거나 또는 다른 이유가 있는)에게 필요한 것, 그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것, 그것을 충족시켜 줄 미혼모가 낳은 신생아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히 입양이 아동 복지의 한 분야로서 인정받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입양 종사자들이 '미혼모 전문가'로 존중받도록 하고, 새로운 학문으로 등장한 사회 복지 분야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기를 분리하여 결국 엄마들이 입양으로 아이를 상실하게 하는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경력을 쌓아 나갔다(Kunzel 1993: 169). 


   물론 모든 미혼모들이 시설로 보내진 것은 아니다. 어떤 미혼모는 자기 집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다. 가령 지하,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거나 먼 친척 집에 보내진 후 아기를 낳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드문 경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혼자 지내기도 했다. 이들의 거주 형태는 달랐지만 '아기 퍼가기 시대'의 모든 백인 미혼모는 사회복지사와의 만남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아기를 포기하라는 세뇌를 피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입양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Marshall & McDonald 2001:4: Carp 1998: 116).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후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끝나면 일주일에 2시간 외출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보호자가 따라붙었으며 장부에 외출과 귀가 시간을 적어야 한다. 그 밖에 기상 시간, 식사시간, 취침 시간 등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매일 밤에는 취침 점검이 있다. 식단표에 있는 음식 외에는 먹을 수 없고, 사전 허락 없이 방문객은 찾아올 수 없다. 전화는 걸 수도 받을 수도 없다. 간호사 소견이 없는 한, 낮 동안 방에 들어가 있으면 안된다. 시설 '입소자'인데 청소나 허드렛일도 해야 한다. 출입문에는 자물쇠도 달려 있다. 담장 너머 저편에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담장 안에서 볼 뿐이다.


   담장 안에서,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미혼모는 세상과 가족과 친구들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아이 아빠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 있다. 아이 아빠는 이미 그녀를 버리고 떠났겠지만. 설사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설에 있는 임신한 여자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아이 아빠와 전화 통화도, 면회도, 편지도 어떤 형태의 연락도 허용되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연락하고 싶어 한들, 여자친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전화나 편지로 연락할 방법도 알아낼 길이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그냥 없어져 버린 것이다. (254~258쪽) 




미혼모는 "사고를 개조"한다는 의미의 세뇌를 당하고 아기 포기와 입양을 하겠다고 결정을 강요 당했다.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면서 매일매일 밤이고 낮이고 똑같은 메세지가 끊임없이 반복된다.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 입양 복지사들, 입양 종사자들 - 입양 기관 종사자들, 변호사, 판사, 입법에 관련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입양 종사자들이다 - 인데 이들의 임무는 미국 시민을 돕는 것이다. 미혼모가 양육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아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야 하며, 양육 수당과 부모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직업 훈련을 받고 고용과 주거지원을 도와야 한다. 입양 종사자들은 또 미혼모의 임신. 진통, 분만에 관여한 일에서도 도움을 제공하여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든 과정에서 그들은 직무를 유기하였고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져야 할 입양만을 최선의 선택으로 강요하였다. 왜 그랬을까? 입양을 담당했던 사회복지사들은 어린 미혼모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능을 행사하고 돈을 챙겼다. 물론 변호사, 판사, 입양 기관도 입양 부부들에게서 막대한 돈을 챙겼다. '아기 퍼가기 시대'가 끝난 2000년 입양 산업은 연간 총 15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관련된 어떤 사람이든 입양 산업은 돈이 된다고 생각한다. 역시 '아기 퍼가기 시대' 엄마와 아기의 분리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고, 오늘날은 더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돈의 권력 관계에서 친모와 아기는 철저히 배제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이익이란 말인가.


미혼모들에게는 '죄', '신경증', '일탈적 행위'를 했다는 프레임을 씌워놓고 '치료'를 강요하면서 감금했다. 또 아기를 키우려는 미혼모들은 판사 앞에서 꾸중을 듣고 죄인처럼 서서 입양 서류에 서명할 때까지 정신병동에 집어 넣겠다는 둥, 소년원에 가둬 두겠다는 둥의 협박을 들어야 했다. 단지 자신의 아이를 키우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아기를 뺏겼다는, 아기는 버려졌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정서적 무감각, 수면 장애, 우울증, 불안, 과민성, 분노 및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감금되는 생생한 플레시백을 경험한다", "다시 내 인생이 어느 순간 갑자기 비참하게 중단될까 봐 두려워 장래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못한다", "밤은 최악이었다. 나를 파멸시킬 듯 위협적으로 몰아치는 회오리바람 한가운데 있는 거 같은 고통을 느꼈다", "몸 속에 쇠파이프가 있는 것처럼 그 안으로 통증을 밀어 넣고, 뚜껑을 덮고,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용접해 버리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상적인 일도, 아이를 돌보는 일도, 직장에 가는 일도 전혀 할 수 없는 절대 무능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매 순간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며 몇 주를 보냈다" .... ...


이와 같은 방식이 합법적인가? 이러한 방식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정말 미혼모들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었나? 충분히 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러한 질문은 이미 오래전에 했어야 한다고 작가인 캐런 윌슨-부터바우는 말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아기 퍼가기 시대'를 살았던 미혼 엄마들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입양 당시에 ... 올바른 정보를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듣거나 거짓 정보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진실의 축복을 받았고 누가 거짓 정보를 받았는지에 어떤 규칙이나 원인은 없어 보입니다. 입양 실천 방향이 바뀌고, 입양 후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입양 과정 중에 거짓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기만 당한 친부모들은 정신적 외상을 입고 분노(했습니다)... 거짓말을 정당화할 방법은 없습니다. 비공개 입양은 얼마든지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안됩니다. ... 가장 건설적인 길은 정한 뒤에 마무리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 과거의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뒤에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 입양 과정에 거짓 정보가 있었음을 아는 순간 친부모는 아이의 또 다른 부분을 도둑맞는 느낌을 갖습니다. 건설적인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들을 지지하고 공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Dorner 1997).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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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3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기장사’는 참 오래도록 어떤 뒷힘과 뒷손이 저지른 끔찍한 짓입니다. 우리나라도 ‘홀트’라는 곳이 쉰 해 남짓 이 짓을 했습니다. 외톨이(고아)가 아닌데 무턱대고 길에서 아이들을 붙잡아서 미국·유럽·호주로 팔아치웠는데, 독재정권이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할 수 없던 짓이지요.

여러모로 보면 ‘미혼모’란 이름은 조금더 안 어울리지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미혼부’란 이름을 안 쓰거든요. 그저 ‘아기엄마’인 사람을 사랑하는 길을 배운 바도 없고 배우려고 하지 않던 ‘철없는 아기아빠이되 아기아빠 자리에서 달아낸 사내’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을 테지요.

멍든 어제를 사랑으로 달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순이와 돌이 모두, 아기를 참사랑으로 맞이하는 새길을 차근차근 배우고 가르치는 자리를 부드러이 열 수 있기를 빌 뿐입니다.

은하수 2025-02-13 18:31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잘 짚어주셨어요.
사실 우리 홀트복지회 이야기도 넘 하고싶었는데
그럼 글이 너무 길어지더라구요!
그것에 대해서도 할말이 너무 많죠!
학교 다니던 시절 합정동 홀트아동 복지회 앞에서 버스 타고 다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더군요. 아동복지란 말이 무색하게요.
이런 이야기는 번역자의 서문에 또 자세히 나와 있어요.
많은 분들이 읽고 되새기는 기회가 되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아기엄마에 대한 용어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여러차례 논의가 있었더라구요.
친모‘라는 용어를 쓰자고도 했는데 이 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구요.
용어를 확정하기 참 어려운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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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투쟁이라."

이런 말을 책에다 이렇게 대놓고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의 박경석 대표를 처음 본 것이 아마도 2021년 12월 3일의 저녁 뉴스에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날 뉴스에서 본 영상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전장연 장애인들이 지하철 승강장에 대거 등장하여 지하철의 운행이 중단되었고 급기야 바닥으로 쓰러지거나 버티는 장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는 장면들이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는데도 그 당시 몹시 화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또 잊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일부나마 알게 된거지만 2001년부터 지금까지 박경석 대표와 장애인들이 투쟁으로 얻어내려 하는 것들은 비장애인이 보기엔 나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어서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이들이 그동안 다양한 의제를 놓고 투쟁을 해왔다는 것은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여러 곳에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사실 너무 많았다. 기사가 차고 넘쳐서 다 읽을 수도 없다.



     우리가 그 동안 정말 다양한 의제들을 걸고 싸워왔잖아요.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서부터 교육권 보장,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탈시설, 자립할 권리 보장, 노동권 보장 등등등.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 당장 법이나 제도를 바꿔내고, 예산을 적절한 수준만큼 확보하는 거가 단기적 목표긴 하죠. 그런데 그게 절대로 끝이 아니에요. 이 투쟁의 의미는 사실 더 넓은 차원에서도 발견이 되는 거거든.(329쪽)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침해당하면서 살아온 장애인들의 투쟁 방식에 우리는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투쟁 방식이 불법적인 건 사실이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결코 몰랐다. 비장애인인 나라는 사람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숱한 불법을 저지르고 비장애인들의 일상을 멈춰세우는,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세우고 버스에 탈 수 있게 해달라며 버스 앞을 막아서는 등의 이런 극단적이고  투쟁 방식 말고 좀 더 온건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박경석 대표의 대답은 "이렇게 합법적이고 착한 장애인들이 어딨어!"이다.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능력 없다고 시설이랑 방구석에 가둬 두고서, 교육도 못 받게 하고, 노동도 못 하게 하고 사회적 관계를 다 끊어 놓는 건 폭력 아닌가요? 뭐, 잘 돌봐준다고 말만 하면 땡인 건가? 이거 말고도 그래. 장애인들 싹 다 빼놓고서, 비 장애인만 태워가는 대중교통은 폭력이 아니에요? 그 상황을 유지하는 불의한 정권은 폭력이 아닌가? 국가가 헌법의 기준을 지키지 않는 건 어떻고, 그런 국가의 행태를 방관하고서, 그냥 누가 죽어나가건 말건, 권리를 침해 당하건 말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거기에 동참해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어마어마한 폭력일 수 있어요.(234~235쪽)




우리들의 당연한 일상, 지하철이나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출근을 하고 누군가와 만나 어딘가의 장소에서 담소를 나누고 음식과 술을 나누고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길 가다 눈에 들어오는 예쁜 장신구를 사기 위해 가게엘 들를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올 땐 내키는 대로 택시를 탈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 나는 매일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일상을 살고 있진 않지만 2001년의 그 영상을 보면서도 충분히 부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끌어내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 뭔지 모를 모멸감이 차오르는 기분... 그동안 내가 정말 아무 것도 알려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끝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가해자가 된 기분...




그 동안 거의 1년을 일주일에 두 번 씩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물 속이 너무너무 무서워서 좀 극복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언젠가 파타야 여행 갔다 수영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영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며 부러웠던 기억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1년 가까이 다녔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나를 앞질러 가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속상하기도 하고... 1월부턴 매일 해보자 싶어 등록을 했다. 문제는 내가 차가 있지만 화,목만 사용을 한다는 점. 어쩔 수없이 나도 엄마인지라 출퇴근이 약간 불편한 아들에게 3 일 간 차를 양보하고 있다는 것이 매일 수영의 걸림돌이었다. 아침엔 좀 이르지만 아들이 주민자치센터에 내려주고 가고 끝나면 부랴부랴 씻고 나와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안 그럼 1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오니 이런 점이 불편하다. 하필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동권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한데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 일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에겐 약간 불편한 경험이긴 하지만 충분히 즐겁게 이어갈 수 있다. 문득 버스를 타고 다시 생각한다. 저상버스이긴 하지만 장애인 휠체어는 어찌 타는 건지... 저상이긴 하지만 장애인 휠체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타려면 뭔가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그런 시설이 되어 있는 건지,  혹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면... 장애인 활동 지원가가 늘상 도움을 주고 있는지... 저 턱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의자들과 높은 단차의 좌석 배치는 과연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인지... 버스 창밖을 내다보면 참... 한숨이 나온다. 가끔 정말 절실하게 너무 걷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도시 외곽의 우리 동네는 마땅히 안전하게 산책을 하거나 걸을만한 공원도 정비된 개천변도 없다. 그럼에도 걸으려면 걸을 수는 있지만 군데군데 가다보면 느닷없이 인도가 없다!!! 좁디좁은 인도는 전봇대가 떡 하니 길을 막고 있다. 이러면 휠체어 타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닐 수가 없지 않나?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나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활동 지원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장애인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최소한의 교육은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을 받고 있는 줄 알았다. 거기다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너무도 먼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장애인들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단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박경석 대표가 말하는 정도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왜 길에서 그동안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지만 요즘은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왜 내 눈엔 안 띄는 건지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까? 장애인들도 분명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말 정말 최소한으로다가 이동권조차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고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일조차 힘들고 심지어 이런 이동권조차도 보장이 되지 않으니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더더구나 힘이 들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니 당연히 노동을 할 수도 없고 자립을 할 수도 없다. 장애인도 사람인데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하고 싶지 않겠는가. 시설에서 한방에 여러 명이 기거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정책이 수립되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란 것도 없이 단체 생활을 해야만 하고 이러니 자립이니 탈시설이니 하는 의제를 두고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말이다. 모든 것이 안되는 첫째 이유는 바로 돈!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고 그러니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정말, 목숨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걸까. 




     우리가 일상을 멈춰 세우면서 싸워온 건요, 바로 이 일상의 당연함이라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이 사회에다가 딱 하고 보여주기 위한 거예요. 그 일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살아 가는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235쪽)




     저는 노동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계속 변화시키는 과정이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이 일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분명히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기 확인이란 건 곧 이 사회가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죠. 그 사람의 존재부터 해가지고, 이 사회의 조건에 대해서까지 다시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거야.(180쪽)




     직접행동이란 건요, 언제나 정세를 잘 파악해야 해요. 어디서 투쟁을 할 건지 장소를 계속 같이 탐색해가야 하는 거야. 지금 이 지하철로 내려가야 할 때인지, 아니면 시청을 점거할 때인지, 광장에서 집회 신고 내고 집회를 할 것인지, 이런 것들. 선거철 되면은 선거철에 맞게 행동을 조직해야 하고, 어떤 법 통과시켜야만 하는 때는 뭘 해야 하고 이런 것들 있잖아.(208쪽)




     이렇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진짜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요,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은 진짜 말 그대로 장애인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런 거예요. 사실은 우리 주변 곳곳애 있는데, 완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아예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거지. 감각한다고 해봐야 기껏해야 동정과 시혜를 발휘할 대상쯤으로만 감각하는 거 아닌가? 제가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거는 동정과 시혜 베푸는 사람들한테나 따뜻함의 감각을 줄 뿐이지, 장애인의 존재와 목소리 자체를 감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께네 이것도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봤자 여전히 일종의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 상태인 거야. ... (315쪽)





장애인 운동을 하면 할 수록 더 어렵고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박경석 대표의 글을 읽을 수록 실감할 수 있었다. 대표 본인조차도 장애를 입기 전의 봉사활동과 장애를 입은 후 복지관 직업훈련 과정에서 이 사회에 이렇게나 많은 장애인이 있었다는 거에 놀라고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감각하는 수준이 아예 달라졌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겪을 때 자신보다 중증인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인데 경증인 사람들도 다들 차별을 겪고 있었다고 말한다. 노들야학에서 본격적인 장애인 활동을 하다 보니 뇌병변장애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또 경증인 사람과 완전히 다르단 점, 경증인 이들의 욕구와 사회와의 갈등 양상도 지체장애인과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뇌병변 장애인과 비교해보면 진짜 또 빙산의 일각! 

그러니까 그동안 감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어마어마하게 다가왔고 2010 년 경부터 발달장애인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중증이면서도 탈시설한 장애인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이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될 수 밖에 없단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의 반복 또 반복... 그런데 청각, 시각 장애인은 또 다르고... 

이들이 다들 속도도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르고 욕구도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다르기 때문에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다 다를 수 밖에... 장애인이니까 하나다! 하고 뭉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아가면서... 그럼에도 지지고 볶고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원해가면서 뭉치게 되는 과정을 또 하나하나 겪으면서 조금씩 이루어내는 박경석 대표의 구심점 역할은 지금도 끝난 게 아니라는 거다. 비장애인이었다가 사고로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고 필연적으로 장애인 운동을 하게 된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박경석 대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거를 계속 고민하는 그는 비장애인도 장애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고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것을 계속 고민하는 한에서는 이 사람들의 입장이나 의견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유튭에서 가끔 보는 #도깨비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상이 있다. 은탁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교실에 삼신 할머니(이 엘리아)가 새빨간 정장과 구두를 신고 풍성한 목화 꽃다발을 들고 등장한다. 무심한 담임은 졸업생들을 축하해주라며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들어오게 하는데 사고무친 은탁인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새빨간 정장을 입은 삼신 할머니가 은탁이를 꼭 안아주며 너 점지할 때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러곤 돌아서서 담임에게 다가가 말한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순 없었어?" 그 뒤에 무심한 담임은 참회의 울음을 터뜨린다. 설화에서도 삼신할머니가 꾸짖으면 바로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별로 없다는 댓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는데... 

나는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되새긴다. 너무 어이없을 수도 있는 여러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든다. 삼신 할머니에게 우리도 분명 꾸지람 들을 거라는 생각도! 이 세상 누구나 삼신 할머니가 점지하실 때 행복하셨을 거다. 그래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다 더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 옆에서 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무감각하면 안되는 거라고. 그 사람들도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우리가 바꿔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뭐 언제까지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만 하면서, 자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도 돈 남으면 대강은 좀 돌봐줄까 이럴 건데요. 그래선 안 되겠죠. 자본주의적인 노동 생산성 기준으로 무능력하다고 버려지는 사람들, 약해지는 사람들, 늙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노동의 관계를 새로 맺어가지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관계 맺어 갈 것인가, 이런 거를 국가가 잘 지원을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거야.(186쪽)


중증장애인들에게 최우선 적용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같은 거를 시작으로 해가지고 공적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자리, 권리를 생산하는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어놔 봐. 물론 임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주고, 그러면은 모두가 나이 들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 취급 안 당하면서.(187쪽)


활동가가 버티려면 일단 운동이란 게 지속 가능 해야 하죠. 그런데 이 지속가능성이란 건 절대로 우리 투쟁이 당장 어떤 성과를 냈는가에만 집중했을 때는 잘 마련이 안될 거예요. 성과가 전부라고 하면, 우리 투쟁 요구 관철 안 되면 좌절해서 관두고, 관두고 해버릴 거 아냐. 저는 당연히 성과도 중요하지만은 그게 당장 안 되더라도 조직 과정에서 고작 한두 명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게 된 거, 그 사람들의 존재가 거리의 정치 과정에서 조금씩 전환되는 거에 더 큰 의미를 둬야 한다고 봐요.

저는 장판을 넘어서 지금도 거리에서 열악한 상황 견뎌가며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잘 버텨주길 바라요. 그 버티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무리 비루하고 작아 보여도 사실은 그게 엄청 소중한 거란걸 같이 깨달아 가면서요. 진짜 아래로부터의 정치란 건 이미 당신들이 꼴아박고 있는 그 거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고,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인

저는 장판을 넘어서 지금도 거리에서 열악한 상황 견뎌가며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잘 버텨주길 바라요. 그 버티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무리 비루하고 작아 보여도 사실은 그게 엄청 소중한 거란걸 같이 깨달아 가면서요. 진짜 아래로부터의 정치란 건 이미 당신들이 꼴아박고 있는 그 거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고,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인 변혁의 씨앗이라는 것도 바로 그 작은 데서부터 발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여기만이, 사회에서 목소리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지예요.(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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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세계 -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삶과 시대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전환의 시대와 젠더 번역총서 1
마리아 미즈 지음, 안숙영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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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세계적 자유 무역에 반대한다면 대안으로 어떤 경제와 사회를 제시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리아 미즈의 답은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 증후군을 거부할 때 시작한다고 말한다. 

"대안은 없다" 증후군이라고 말하니 정말 대안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고 사실 너무 아득해서 답을 찾을 수나 있을지 솔직히 너무 어렵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 혼자만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도 "대안은 없다" 증후군에 빠져있는 거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무역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우리 경제가 IMF 사태를 겪으면서 부실기업은 강제로 통폐합 되거나 부도가 나고, 국가 주도로 강제로 워크 아웃, 흡수되거나 합병되는 등의 과정을 겪었다. 그 당시 남편 회사도 이익이 나는 사업부를 팔아 공장 증설로 인해 일시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았을 뿐인데 부실채권으로 분류되었던 모기업을 청산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유망한 사업부였는데도 거의 빼앗기다시피 다른 기업에 넘겨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양복 상의 주머니에 사표를 써서 넣고 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량실업이 발생하였고 자영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폐업이 속출하고, 가족이 흩어지고 일가족이 동반자살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다. 모든 규제는 철폐되어야 했고 기업은 무한경쟁의 시대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개인은 거대한 구조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IMF, IBRD, ADB 등의 거대 자본은 신자유주의 물결을 등에 없고 파산한 우리 경제를 쥐고 흔들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우리 국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익히 알다시피 금 모으기 운동으로도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 이유는 우리 국민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랬나.  그것은 북반구의 경제대국들과 세계의 경제를 쥐고 흔드는 거대 자본들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했으며, 비단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개발도상국, 남반구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20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고 앞으로의 미래도 희망적이지는 않다. 이제는 이 실패한 체제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한때 '세계화'라는 말로 모든 것이 가능했고 가능해야만 했던 무한 경쟁, 자유 무역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하는 실패한 것이 분명한 체제이지만 이 거대한 수레바퀴를 뒤로 돌릴 수 있을까? 대안이 있기는 할까?


마리아 미즈는 그렇기 때문에 "대안은 없다" 증후군을 거부하라고 말한다. "세계화 대신 지역화"를 강조하면서 거대 기업 권력에 반대하며 보낸 세월동안 희망을 준 것은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자 한다는 깨달음이었다고 말한다. 식량, 공기, 물, 보건 의료 체제, 학교, 환경, 대중교통 등의 필수 생활 조건들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민주적으로 조직하는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경제 단위를 제안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계 모든 시장의 개방화를 목표로 했다. 이는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뿐만 아니라 소규모 산업체도 망가뜨렸다. 거대자본을 가진 다국적 기업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곤경을 자양분 삼아 대규모 공장을 짓고 가장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이런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90퍼센트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은 임금삭감의 본질이 성별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 여성들은 살충제와 인공 비료를 거부하고 오래된 형태의 농업을 고수하고 재발견하며 전통을 지키고 의식적으로 다국적 기업을 거부함으로써 물, 유전적,문화적 다양성 등의 자급기반을 지키기 위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 미즈가 말하는 자급이란 무엇인가. 

   자급 또는 삶의 생산은 삶의 직접 유지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자급 생산은 상품 및 이여 가치 생산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자급 생산의 목적은 '삶'인 반면 상품 생산의 목표는 '돈'으로, 이 돈은 더 많은 돈 또는 자본 축적을 '생산'한다. 이런 생산 양식에서 삶은 말하자면 우연한 '부작용'일 뿐이다. 자본주의 산업 체제의 전형은 무상으로 착취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자연이나 천연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 3세계 농민의 노동뿐만 아니라 여성의 가사노동, 자연의 모든 생산성 역시 포함된다.(206쪽)

   전 지구에서 자급 생산의 상당 부분을 여성이 수행한다. 즉 그들은 자녀를 낳고 기르며, 무급 가사 노동을 하고, 노인과 환자를 돌본다. 한마디로 이른바 무임금 '재생산 노동'을 하는 것이다. ... 임금 없이 가사 노동을 전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구조적.직접적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폭려은 인간과 자연, 농민과 산업, 수도와 식민지 사이 모든 착취 관계의 특징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핵심은 식민지와 같다고 간주하는 이유다."(같은쪽)


오늘날에도 자급 관점은 여전히 친숙하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다양한 욕구와 활동을 포함하는 소규모 농업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텃밭과 정원, 채소와 과일의 저장, 공예, 농산물 직거래, 물물교환, 이웃의 도움을 받는 수리나 수선도 해당이 된다. 이러한 활동의 실천에는 제대로 기능하는 지역 공동체가 필요하다. 마리아 미즈와 여성들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대규모 농업, 다국적 기업의 단일 작물재배 사업, 식물 유전자 변형, 유전자 및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며 "여성의 식량 안보를 위한 라이프치히 호소"를 바탕으로 여성과 자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활동과 투쟁의 기록들인데 우린 왜 이다지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까.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 과정들을 돌아보는 글을 읽다보니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하고 가난한 제3세계, 인도, 라틴아메리카의 여성들이 우리 지구의 환경과 미래에 대한 투쟁에 더 적극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나도 이러한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던 글도 있었다. 좋은 삶을 위한 '텃밭 가꾸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약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텃밭을 일구고 소박하게 사는 삶을 예찬한다. 필요한 적절한 시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자연의 리듬에 따라 잘 자랄 수 "따뜻함, 물, 사랑"을 주었으며, 거름을 주고 단일 경작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을 경작하며 그 텃밭에서 난 작물을 이웃과 나누는 활동과 그것을 향유하는 좋은 삶! 이 과정에서 마리아 미즈가 느낀 것은 자연은 인색하지 않고 언제나 풍요로운 산출을 돕는다는 것,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줌으로써 나눔을 가르친다는 것, 그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나도 느끼고 그것을 즐기는 삶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작은 실천을 계속해 나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소규모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우리 마을을 넘어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마리아 미즈가 고향 마을에서 지낼 때 독일 전역을 강타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신시아로 인해 대규모 정전 사태를 직면했을 때의 일은 나에게도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나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정전이 발생하면 불을 피울 수도 없고 난방도 안되고 음식을 보관하고 조리할 수도 없으며 통신은 물론 안되고 찬물만 나올테니 어두운 욕실에서 목욕도 힘들고... 대체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게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지난달 첫 폭설 때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선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리 동네도 정전이 됐었다. 밤 사이 전기는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식구들을 불안하게 하였고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럼 다른 대안은? 글쎄? 하면서 얼른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거의 35 년간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오고 나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었다. 내가 아파트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펑펑 낭비하면서 살았는지를. 그때의 나는 미쳤었구나(물론 그때도 아껴쓰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아파트는 보일러를 안돌려도 20도 이하로는 절대 안떨어졌다. 남향이라 더 그럴지도)!


우리집은 주택이긴 하지만 그다지 넓지 않아서 벽난로를 설치하긴 애매했다. 거기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기점으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지역이라 난방은 LPG. 넋 놓고 보일러 돌렸다간 하루치 가스요금 얼만지 계산할 필요도 없이 정말 후덜덜 장난 아니게 나온다. 이젠 계산이 너무 잘돼. 넋 놓고 돌린 나란 여자 정말 응징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실내온도는 언제나 18 도를 넘지 못한다(자의반, 타의반 국가시책에 호응하는 애국자가 되었구나). 아낄 수 있는 한 최대로 아낀다. 겨울에 반팔 입고 거실을 활보하는 건 이제 먼나라 이야기가 됐다. 히트텍에 기모 상하의 필수, 거기에 패딩 조끼나 카디건, 숄이나 얇은 목도리, 두꺼운 양말, 그리고 목폴라. 겨울 동안 난 내 방에 틀어박혀 생활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만 보일러 풀로 해두긴 하지만 잠깐씩만 보일러를 돌린다. 그래서 난방 기구는 좀 다양하게 이용한다. 안 그럼 겨울나기 몹시 힘들다. 다행히 전기는 태양열로...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 관계로 오늘 해가 뜨나 안 뜨나 매일 궁금해 한다. 아파트 생활자가 절대 다수인 우리나라에서 겨울인데 최소한 반팔 입고 거실을 활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마리아 미즈의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걸 생각하게 된다. 아니 사실 생각할 게 너무 많다. 마치 방학 전에 엄청난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한편으론 마리아 미즈가 우리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 같기도 하고 에필로그를 읽을 땐 정말 기나긴 유언장을 읽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유언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건데... 그녀가 말한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현명해져야 하는 걸까. 이 미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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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2-2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셨군요!
읽느라 고생하셨고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언행일치 페미니스트의 삶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특히나 생명과학 쪽 부분에서는 이정도밖에 실리지 않은게 아쉽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 따로 글을 써주었다면, 그게 책으로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보부아르, 알리스 슈바르처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파이어스톤은 천재였고 혁명적이었지만, 그러나 제 마음은 마리아 미즈의 손을 들어주게 되고 말이지요. 꼭꼭 씹어읽을 좋은 책입니다. 저도 마저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은하수 2024-12-27 10:06   좋아요 0 | URL
생명과학... 저도 이부분이 좀 의아했어요. 여태 시험관 시술로라도 아기를 가질수 있다면 좋은거 아닌가 생각했었거든요. 입양이란 제도가 있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번쯤 다시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단 걸 알게 되었어요. 좀 더 알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책을 통하게 될지는...기회가 생길거라 생각합니다^^
파이어스톤과 보부아르.. 보단 저도 마리아 미즈의 편에 서고 싶네요. 넘 멋진 여성이고 존경심이 절로 솟게 만드는 분이었어요. ^^
완독하실거라 믿습니다~~!
 
식탁 위의 봄날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6
오 헨리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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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체질상 음식을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서 여기저기 채널을 찾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해보기도 하고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서 자주 먹어본다. 색다르면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도 식구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한 두 번 해보다 그만두는 경우도 다반사이지만 그럼에도 평소 우리 집에서 해 먹던 스타일대로가 아닌 새로운 방법을 살짝 가미해서 변형한 음식들의 반응이 좋을 때는 더없이 기분이 좋고 뿌듯해서 그 레시피대로 정착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책으로 읽게 되는 음식이야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넘넘 궁금하고 그 맛이 어떨지 상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우리나라 음식이나 먹어본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그 맛을 상상할래야 상상이 되지 않고, 그 음식이 이야기의 전개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는 특히 그 맛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궁금증은 외국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누구나 겪는 현상일 것이다.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외국 음식의 메뉴판을 보면 정말 친절하게도 그 음식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구구절절 친절하게 나열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소설 속에서도 뭐가 들어가고 그 재료는 어디에서 온 것이고 어떻게 조리가 되고 어떤 방식으로 숙성이 되고 등등 굳이 이런 거까지 다 써놔야 하나 싶은 것들까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다. 어이쿠야! 내가 그걸 읽는다고 해서 맛을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재료라면야 음... 그럼 이런 맛이겠군 싶다가도 결정적으로 모르는 양념이나 향신료가 나왔다간 다시 그 맛은 미궁으로 빠지기 일쑤이고 거기에 조리법마저 구구절절 세세히 설명하는 단계라면... 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아유 머리 아파 이게 대체 뭐람!"을 외치며 관심도는 나락으로 쳐박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곁들였을 때 내가 아는 요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너무 간단하지만 맛있게 굽기가 의외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스테이크. 지난주 코스** 갔을 때 스테이크용 고기가 넘 좋아보여서 대량 구매하게 되었다. 고기 상태가 너무 좋아서 소분하여 냉동시키기가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주말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구워 먹었다. 날이 좋을 때는 밖에서 숯불을 피워 구워 먹으면 다른 양념이나 가니쉬가 거의 필요가 없고 기름장만으로도 그야말로 금상첨화지만 지금은 추워서 불 피우기 엄두가 안나 따뜻한 실내에서 구워 먹기로 했다. 별거 아니지만 그날의 레시피를 적어보자.


   "먹기 한 시간 전에 스테이크용 소고기(미국산)를 꺼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블랙페퍼를 뿌려 시즈닝해두었다가 팬을 센불로 달군 후 스테이크를 앞뒤로 돌려가며 구워준다. 이때 염도가 낮아 스테이크용 소금으로 좋다는 잘츠부르크 소금을 뿌려준다. 스테이크에서 나온 기름을 이용하여 가니쉬를 구워준다. 가니쉬용으로는 아스파라거스, 마늘, 양파, 브라운송이 등을 준비했다. 중불에서 구워 접시에 세팅하고 파슬리 가루를 뿌려준다. 소금장을 내도 좋고 쥬세페 주스티 모데나 5 메달 20 년 산 발사믹을 종지에 담아내도 좋다." 


그야말로 식구들이 순식간에 흡입을 했다는 건 말하나 마나!

여기서 잠깐... 내가 만약 이 잘츠부르크 소금과 주세페 주스티 모데나 5 메달 20 년 산 발사막의 맛을 모른다면.... 그러면 어땠을까. 난 어떤 생각을 할까. 소금이 다 그렇지... 혹은 발사믹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면서 상상이 안되니 답답하지만 두루뭉실 그냥 넘어가겠지. 사실 잘추부르크 소금은 내가 생각하기에 염도만 살짝 다를 뿐 일반 소금과 별 차이를 모르겠고 발사믹은 분명 맛이 천차만별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레시피를 읽었다면 그 맛이 더 와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난 이렇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이 된 음식 이야기를 문장으로 읽을 때면 내가 그 맛을 모르고 상상할 수 없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더없이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깊이 빠져드는 나 자신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자세히 설명된 레시피나 메뉴판을 대할 때면 그 음식에서 정성과 사랑, 따뜻함, 배려가 느껴진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스테이크야 어떻게 구워도 맛있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 음식을 조리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 배려, 따뜻함을 함께 먹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없이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 헨리의 단편집 『식탁 위의 봄날』에는 음식과 관련한 18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익히 알고 있는 「마녀의 빵」,「크리스마스 선물」,「마지막 잎새」,「경찰과 찬송가」 등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이 단편집은 오 헨리의 수많은 단편들 중에서 음식과 관련한 단편들을 가려내어 묶었다는데 특별함이 있다. 그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대도시의 냉혹하고 무정한 뒷골목에서 가혹한 하층민으로서의 삶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작가의 눈에는 따뜻함이 머물러 있다. 가난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무는 기적과도 같은 한 순간을 그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사람들은 온기와 희망을 얻는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잠시 마음이 쉬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애정을 담아 집필했기에 더 음식이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정성을 다한 음식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일상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하그레이브스의 연기」에서 미국 남부 스타일의 줄렙(위스키에 설탕, 박하 등을 넣은 청량음료)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 대접하는 모습, 「녹색의 문」에서 며칠 간 굶어 쓰러지기까지 한 처음 만난 아가씨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나가 두 팔 가득 음식을 구해 온 젊은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굶주리고 있는 신사를 위해 식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배불리 먹이려는 마음을 담은 「추수 감사절의 두 신사 」,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복숭아를 구하기 위해 봄날의 늦은 밤거리를 헤매는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힘들게 얻은 과일의 작은 흠집」등을 읽노라면 재치있는 그 입담과 따스한 배려의 마음이 저절로 전해져 옴을 느끼게 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길다고 할 수 있는 「식탁 위의 큐피드」는 그야말로 음식 자체가 작품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식탁에서 먹고 또 먹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남성들의 모습을 "두 발 달린 되새김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두 청년의 구애를 거절하던 메임 양이 어느 날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프의 마차를 얻어타고 같이 길을 가게 되었는데 길을 잃은데다 갑작스런 폭우에 외딴 오두막에 피신을 하게 되고 물이 빠지지 않아 며칠 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배가 너무 고파진 그녀와 제프는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줄줄이 음식들을 나열하는데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거 아닌가. 두껍게 썬 고기는 레어로, 프렌치프라이랑 계란 여섯 개를 부드럽게 휘저은 스크램블드 에그를 토스트 위에 얹고, 생맥주 한 잔,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와 줄리엔(잘게 썬 야채를 넣은 묽은 수프) 세 개, 팬케이크는 노릇하게, 쌀을 곁들인 작은 카레 양념 닭구이, 아이스크림이랑 커스터드 한 컵, 닭간 파이랑 토스트에 바른 콩팥 소테, 양 구이, 박하 소스랑 칠면조 샐러드, 속을 채운 올리브, 산딸기 타르트랑 옥수수 빵, 하드 소스 뿌린 사과 파이에 듀베리 파이... 이 얼마나 즐거운 대화인지... 그들이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는 끝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녀는 남자들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린다. 

익히 아는 단편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의 두 연인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대단히 자랑스러운 재산을 기꺼이 팔아버린다. 아내 '델라'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남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의 줄을 장만한다. 남편 '짐'은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아름다운 머리를 더욱 윤기나게 빗어내릴 수 있는 빗 세트를 선물한다. 서로의 선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 ....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아무도 셀 수 없을 거예요. 고기 넣을까요. 짐?" 

   "델라,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치워두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라서요. 당신 빗을 살 돈을 마련하느라 시계를 팔았어요. 이제 고기를 넣어도 되겠군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 헨리는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평단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단편들의 전개가 지나치게 우연이 남발되고 있고 비극보다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 위의 봄날」,「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등은 모두 주인공들의 만남이 예기치 못한 우연에 의한 경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고 있고 이러한 플롯은 '오 헨리 트위스트'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고  할 정도로 억지스러운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오 헨리의 작품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는 거 같다. 사실 정말 짧은 단편인데도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고 제발 원하는 그 사람을 빨리 만나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 마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때! 세라가 그토록 기다리는 월터를 어떻게든 만나기를 바라게 되고(식탁 위의 봄날), 도시에서의 외롭고 힘든 삶에 지쳐 브로드웨이의 여름 휴양지에 있는 아르카디아로 찾아온 두 젊은이 메이미와 지미 맥매너스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게 되고(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 결정적으로 어린 딸 '애글레이아'를 잃어버리고 회한에 젖어 있던 방앗간 주인 에이브럼 신부가 체스터 양을 만났을 때 제발 그 체스터 양이 '애글레이아 양'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는 것은 정말 나도 어쩌지 못한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두 부녀의 극적인 재회가 정말 억지스럽고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싶지만 그럼에도 감격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음식 이야기이건 아니건 오 헨리의 단편들에는 역시 따뜻함이 느껴지고 뭔가 앞으로는 잘 될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갖게 되고 결국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에 감동하게 된다. 가끔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행복한 결말이나 신파조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달까... 마음이 우울할 땐 오 헨리의 단편을 읽으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오 헨리의 단편들처럼 우리 현실도 이렇게 따뜻하고 낙관적인 믿음으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좀 나아지려는지 도통 낙관할 수가 없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ㅈㅁ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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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12-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따뜻하게 읽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저 편견을 벗어나게 하고, 식당 메뉴판이 연인을 연결해 주고,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과거의 주인을 돕는 뭐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했지 말입니다. 맛을 상상하지는 못했어요. 그저 스프는 따뜻하다, 고기는 단백질이고, 질기면 소화가 힘들텐데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도 음식 맛을 상상하면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현실도 동화처럼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은하수 2024-12-14 23:25   좋아요 1 | URL
어... 저도 요정님과 같은 생각 했는걸요. 메뉴판이 연인을 연결해주고 과거의 주인을 돕는 일도 있을 수 있지... 그게 연기일지라도 멋진 일인걸... 하구요^^
근데 저 스테이크 이야기는... 제게 좀 특별한 날이어서 ... 그날 딸램 결혼할 남친이 처음 인사 온 날이라 특히 기억에 남아 있어서 더 이 단편들과 연결이 되었던 거 같아요... 물론 어릴 때부터 음식과 관련한 소설들을 좋아하긴 했지만요... 그 맛을 알 수 없어 늘 답답해하긴 했죠. 어른이 되어 여러 향신료의 냄새와 맛을 알게 되어 좋았던 기억은 잊지 못하죠~~
 
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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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2월 10일 밤 12시부터 오늘 새벽 사이에 방송된 노벨상 시상식 현장의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면서 온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과 언어에 빠져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시상식을 맞고 싶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며 미리 책을 구입해 놓고 기다리다가 엊그제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예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가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경험이 있었고,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을 읽으며 제주 4.3의 진상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나름의 준비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소년이 온다>나 <순이 삼촌>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큰 동요 없이 언어의 아름다움에 집중해서 작가가 이끄는 대로 보여주려는 그 세계로 바로 진입하여 모든 준비를 다 마친 사람처럼 의연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순이 삼촌>은 제주 4.3 그날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보여주어 충격을 던져 주었고, 반면에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날의 진실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면서 실종된 가족의 유해를 수습하고자 기울이는 노력의 과정을 보여주는 설정이어서 서로 상보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강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제주 4.3의 참혹함이 반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학습의 결과로 인해 개인적으로 그리 느낀 거라고 생각한다.



새벽 시간에 방송된 시상식 현장의 라이브 방송에서 한 강 작가의 심사평을 작성하여 읽는 스웨덴 아카데미 위원이자 노벨문학상 위원회 위원인 작가 엘렌 마트손의 심사평은 한강의 작품에 대한 찬사를 이어간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절묘하게도 <작별하지 않는다>를 중심으로 쓰인 심사평이어서 더 유심히 듣게 되었고 그 하나하나의 문장들을 받아 적어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없다. 펜을 열심히 놀려 적어놓은 심사평을 여기에 남겨본다.



*한강 작가 심사평 : 엘렌 마트손(스웨덴 아카데미 위원, 노벨 문학상 위원회 위원, 작가)


한강의 작품에서 두 가지 색, 흰 색과 붉은 색이 만납니다. 흰색은 눈을 나타내며 작가의 여러 작품에 눈이 내려서 화자와 세상 사이의 보호막을 드리워 줍니다. 하지만 흰색은 동시에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합니다. 붉은 색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고통, 피, 그리고 칼로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목소리는 매혹적일만큼 부드럽지만 차마 형용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을 말합니다. 학살로 쌓인 시체 더미에서 피가 흐르고 짙어지다가 이내 호소가 되며 또 그리 답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질문으로 변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죽은 자들, 납치된 자들, 그리고 실종된 자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을까요?

붉은 색과 흰색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합니다.

2021 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만날 공간을 생산합니다. 중간에 떠다니는 자들은 어디에 속하는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 소설은 내내 눈보라 속에서 전개됩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시간의 층을 미끄러지듯이 통과하고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소통하고 이들의 지식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것은 지식과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과정이 견디기 어렵다고 해도 말입니다. 

절묘하게 구현된 한 환상에서 소설 속 친구는 육체가 머나먼 병상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에서 자료집이 담긴 상자를 꺼내 역사의 모자이크 한 조각을 더해줄 수 있는 문서를 찾아냅니다. 꿈은 현실로 넘쳐흐르고 과거는 현재로 이어집니다. 경계가 녹아 사라지는 이러한 변화는 한 강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더듬이를 뻗어 양 방향을 가리키며 신호를 포착하고 또 해석하려 합니다. 인물들은 때때로 본인이 보고 목격하는 것으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며 그럴 때는 매번 마음의 평화가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필요한 힘을 가지고 계속 나아갑니다. 결코 잊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죽였지? 살해 당한 소년의 혼이 묻습니다. 소년의 이목구비가 문드러지고 윤곽선이 무너집니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다른 질문이 남습니다. 오로지 고통만 남겨준 이 몸뚱이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문으로 으스러져 피 흘리는 이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몸이 포기하려 하면 영혼이 말을 이어갑니다. 혼이 피폐해지면 육체가 걸음을 이어나갑니다. 깊은 내면에는 고집스러운 저항, 말보다 강한 고요한 주장 또한 있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잊으려고 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강의 작품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 입고 취약하고 어떤 면에서는 약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힘을 가졌습니다. 또한 꼭 필요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한걸음 더 나아가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자료를 하나 더 요청하고 살아남은 목격자를 한 명 더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이 희미해지며 죽은 자들의 그림자는 벽 위를 계속 맴돕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으며 그 무엇도 끝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한 강 작가 님, 한림원을 대표하여 2024년도 노벨상 수상에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출처: SBS TV)




시상식이 끝나고 이어진 축하연에서 한 강 작가가 수상 소감을 영어로 낭독하였는데 한 편의 단편소설 같았던 이 글도 남겨둔다. 1,300 여 명만 초대 받은 연회장에 한강 작가를 소개하는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약간 어색하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소개하는 음성이 귀에 쏘옥 하고 들어와 박혔다. 올 블랙의 수수한 롱 드레스를 착용한 한강 작가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약 4 분간 연회장에 울려 퍼진다.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 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물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폭력에 맞서는 분들과

이 자리에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SBS TV)




아침 나절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 염색을 하고 왔다.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 흰머리가 몇 센티미터나 올라오고 있는 것도 상관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부부 동반 모임이 있어서 외출할 일이 생겼다. 한강 작가는 화장 안한 수수한 얼굴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던데 ... 그래서 더 멋지지 않으냔 말이다. 근데... 난 그게 안된다. 돌아와서 오후에 마리아 미즈의 <마을과 세계>를 펼쳤는데 서문에 이런 문장이 첫 문장으로 나온다. 


     우리 마을의 규범을 따르지 않던 타보 디디(Tabo Didi)는 언젠가 "인간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철학적인 말을 잊지 않았다.(9쪽)


한강 작가의 소감문을 읽으면서도 자연스레 든 거지만 이 문장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를 보고 드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 나라의 상황과 연결이 되었다. 물론 작가의 작품 제주 4.3 사건 당시의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힘없는 국민들은 국가 권력의 총칼 앞에, 장갑차 앞에 맨몸으로 맞선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인데 다시 또 계엄이라니... 머리가 쭈뼛 서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12월 3 일의 그 밤을 잊지 못한다. 살아서 계엄을 또 겪게 될 거라곤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한강 작가와 마리아 미즈는 잊지 않기 위해서, "망각에 저항해" 쓰고 또 쓰면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다. 문학의 힘을 믿는 한강 작가의 소감문이 주는 감동으로 오늘 하루도 이겨내고 다시 힘을 내본다. 

기어코 ... 이루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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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4-12-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강 작가 심사평, 한강 작가 수상 소감 둘 다 너무 좋네요^^b

은하수 2024-12-12 11:10   좋아요 1 | URL
그쵸~~~~?^^
저 새벽에 이 문장들 들으면서 가슴이 너무 벅차오르더라구요!
조곤조곤 읽어나가는 두 작가의 목소리에 위안 받았답니다.~~
넘 멋진 여성들이지 않습니까!^^

고양이라디오 2024-12-13 22:10   좋아요 1 | URL
목소리 직접 들으면 더 좋을 거 같네요!!!

한강작가님 낭독도 너무 좋아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