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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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입문서려니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깜놀. 머릿말이 더 어려워서 다시 정신 차리고 차근차근 읽어 나가게 되었다. 페미니즘 비기너로서 의식을 전환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는 정희진 선생님 글을 모토삼아 꾸준히 관력서적 읽어 나가야겠다.


근데... 왜 컴으론 이 책 검색이 안될까?
서재에서 분홍색 표지만 보고 올렸다가 e-book이어서 당황했다. ㅠㅠ
왜 e-book으로만 검색이 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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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3-3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들고 있어 읽어야 하는데 어렵군요ㅜㅜ
전 표지색이 빨간 책인데...분홍 표지도 있었군요? 파란색 표지도 있다고 들은 것도 같고? 책이 계속 변신했나 봅니다.

은하수 2023-03-31 00:05   좋아요 0 | URL
빨간색이라구욧? 검색도 안되던데요? 빨간색은 못봤어요
파란색은 15주년 기념 양장본인거 같았어요바코드로~~^^

전 페미니즘 제대로 읽은건 첨이라 용어들이 좀 어려웠구...정희진샘 책이 쉽진 않던데요?
정희진처럼 읽기도 예상과는 달리 관심영역이 광범위해서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나무님은 저보단 나으실 거예요^^
 

오늘은 수전 손택과 에이드리언 리치에 관한 글을 읽었다.










비범한 학자이자 빼어난 작가, 비평가였지만 학계와 문단 양쪽에서 거부당한 그는 그렇기에 더더욱 뚜렷한 캐릭터를 유지했다. 그는 자기 지성과 자의식을 결코 감추지도, 겸손해하지도않았다. 겸양의 자세를 취하며 자기 비하적인 유럽 쪽 지성계 분위기와 분명하게 다른 태도였다. 겸손함 따위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자기 홍보의 필요성을 인정해온 미국에서는 손택의 자기 홍보가 "지식인 문화와 중산층 문화 사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ㅡ수전 손택 - P79

"내가 몹시 싫어하는 침묵은 죽은 침묵이다. (-) 언어가 있어야 할 곳에 언어가 금지되는 침묵이다."
에이드언 리치 Adrienne Rich (1929~2012).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1976) 라고 선언한 페미니스트. 일찌감치 결혼해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세 아들을 낳은 뒤 ‘정신적인 이혼‘과 남편의 죽음을 거쳐 ‘아버지의 왕국‘을 고발하고, 뜨겁게 읽고 치열하게 쓰다가 떠난 미국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다. 페미니즘 대중화와 출판 붐에 힘입어 그의 멋진 글들이 여러 버전으로 번역돼 나온 것은 독자로서 꽤 즐거운 일이다.  - P87

그의 뛰어난 산문을 엮은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살도록 강요된 이성애 제도와 여성으로서 말하는 것의 정치성을 강하게 드러낸 글들로 이뤄져 있다. 리치는 그 자신 평생 깨달음과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고, 아는 대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읽고 쓰기와 실천이, 앎과 삶이 다르지 않았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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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장미의 도전 - 노동자의 이름으로 열어가는 혁명적 페미니즘
오연홍 엮음, 김요한 외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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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과 장미'는 새로운 여성주의 페미니즘을 선언하며 탄생한 사회주의 여성 단체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시작(2003년)되었고, 현재는 아르헨티나를 넘어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 볼리비아, 미국, 페루, 독일, 이탈리아,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등 14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국제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빵과 장미는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야만 전 세계 여성의 삶에 만연한 성차별도 끝장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기반으로 삼는다. 페미니즘 운동을 노동자 계급과 연결하고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채택하도록 밀고 있다. 빵과 장미의 활동은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여러가지 활동을 전개한다. 임신중지권(아르헨티나, 칠레, 미국 등) 운동, 여성 살해 반대 운동, 99%를 위한 페미니즘 운동, 성 소수자를 위한 법안 상정, 더 나아가 젠더 폭력이나 성별 격차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려 노력한다.  

  이 책의 소제목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열어가는 혁명적 페미니즘'이다. 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빵과 장미'는  생존권(빵)과 참정권(장미)으로 대표되는 이념들을 위하여 투쟁한 경험과 주장을 묶어 엮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마지막 4장에서 빵과 장미 국제 선언문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들어와 있지 않은 단체이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활동이 쉽지 않을거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에서 살펴본 임신 중지권 활동이나 니우나메노스(Ni Una Menos : '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라는 뜻으로서 아르헨티나에서 전개된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의 구호이다.) 등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특히 나와 같은 페미니즘 비기너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이중으로 억압하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 재생산으로 개념화하여 설명한 부분들 - 페미니즘 이론가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들까지... 사회주의니까 사실 빼놓고 설명하기가 더 어렵긴 하다. - 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끝까지 참고 읽어낸 나에게 그나마 작은 수확이 되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결국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도 들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ㅠ.ㅠ  읽을 수 있을지는 알수 없다는 것이 ....



                                                    *********************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이라고 단순히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사실 전혀 와닿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나에겐 장미에 대하여 이미 각인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빵과 장미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게 된 계기는 얼마 전 읽었던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를 읽으면서부터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오웰은 사회주의자로서 여러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였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도 그의 노선을 알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영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오웰이 활동하던 당시로 돌아가보자.  사회주의 잡지인 <트리뷴>지에 발표한 그의 글들을 보고 한 독자가, 그의 글들이 '부정적'이고 '항상 뭔가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비단 한 사람의 독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 중인 영국이라는 시대에 살고 있었으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도 작가도 부정적일 수밖에. 그래서 오웰의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글들은 독자로부터 더 비난받기 쉬웠다. 그러나 오웰은 "나는 칭찬할 거리가 있기만 하다면 칭찬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영국 울워스에 자신이 심었던 장미 나무에 대하여 글로 자기 자신을 칭찬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위트있는 행동이냔 말이다.

  

  오웰은 이렇게 제안한다. 

 

  "나무를 심는 것, 특히 오래가는 단단한 나무를 심는 것은 돈도 수고도 별로 들이지 않고 후세에 해줄 수 있는 선물이다. 만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당신이 선악 간에 행한 다른 어떤 일이 갖는 가시적 효과보다도 훨씬 오래갈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글인가!  '빵과 장미'에서 장미가 의미하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일상적인 즐거움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인간이 누리고 싶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것이며,  그래서 장미가 단순히 참정권으로만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오웰의 글을 읽어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여성의 참정권을 위하여 투쟁하던 시절,  여성이 투표를 해서 모든 사람이 빵을, 그리고 꽃도 갖게 된다는 사실이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눌린 여성들일지라도 식탁에는 한 송이 꽃을 꽂고 싶어하고, 작은 화분 하나일지라도 그저 비워두지 않고 꽃씨를 뿌리는 마음이 왜 소중하지 않겠는가!  참정권 운동과 노동 운동을 전개했던 억눌린 여성들은 투표로써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어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딸은 나와 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혁명적 페미니즘 운동이 "빵과 장미"라는 것이 너무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1910년대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헬렌 토드의 문구를 인용해본다.


   투표는 "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는 인생의 빵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 책이라는 인생의 장미를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누리게 될 때가 오도록 도울 것이다.  여성이 발언권을 갖는 정부에서는 그러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가 있게 되는 날에는 감옥도, 교수대도,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빵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내몰리는 소녀들도 없을 것이다."(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 120)



   빵과 장미를 위한 여성의 투쟁이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다.  죽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또는 성폭행 당하지 않을 권리, 나의 임신의 모든 과정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한, 그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노동 현장에 서지 않을 권리라는 것이 왜 힘없는 여성들에게서 더 많이 일어나는가.  이러한 권리들은 쟁취될 수 없는 것인가. 그래서 이러한 권리들을 쟁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빵과 장미'는 직장에서 학교에서 지역에서 단결하여 수 천을 조직해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싸울 것이며, 국가와 자본가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여성 운동을 펼침으로써 여성들의 성차별적 폭력에 멈추지 않고 맞설 것이라고 한다.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가 있게 되는 날'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남성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찬성한다.  빵과 장미의 도전이 구호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그리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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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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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올리브가 타자기로 친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고 하는 문장이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을 채우던 수 많은 삶의 기억들을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너무도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다시, 올리브>가 나에게는 그랬다.  너무 많은 기억들이 짧은 며칠 사이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 모든 기억을 갈무리해서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하지만 뭐 어떤가 모든 기억을, 그리고 드는 생각을 모두 말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가 이내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마음 속으로 갈무리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론 지금 드는 생각들을 조금만 남겨 두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드는 거다. 올리브가 타자기에 자신의 기억들 쳐서 쌓아두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기억들이 밀려와 머리로는 기억을 떠올리느라 바쁘고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순간순간 발견한다.

  올리브는 '헨리'와 '잭'이라는 두 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았는데, 나도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살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내가 홀로 살아간다면 남편에 대해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욕을 하면서 원망을 할지, 홀가분해 할지, 그도 아니면 깊은 슬픔의 감정을 가지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다. 배우자의 죽음이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라고 하던데 난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은 조금 충격?이기도 했다.  어떤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알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올리브는 혼자가 되면서 헨리와 잭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거 같았다.  먼저 가버린 남편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리워했다 미워했다 그런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지만 잘 견뎌 내고 있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었다고 다 그런건 아니란 걸 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느끼기에 올리브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성숙한 하나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처음엔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 툴툴거리면서 솔직한 것이 좋은건 줄 아는거야? 싶기도 했고 - 하고 생각할 정도로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인거 같다.  주위 사람들을 잘 살필 줄 알고 딱 알맞게 위로를 전하고 별 말 아닌데 멋진 말도 하면서 아주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남편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아서,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이 너무너무 무서울텐데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채워나가는 모습에서 나의 시간들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해도 올리브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지 알 수 없고,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올리브의 삶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로 아들 크리스토퍼와의 관계이다.  올리브가 생각하기에 아들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 첫 결혼에서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이혼을 하게 되면서부터인거 같다고 했는데,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 사람에 대해 싫은 감정이 어떻게 감춰질 수 있을까!  내가 올리브라도 그건 할 수 없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라는 여자를 좋아할 수 없을지라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참 다행스러웠던건 헨리도 그렇고 잭도 그렇고 그 두 남편이 정말 나쁜 남편들이 아니어서(사실 헨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 정말 나쁜 아버지가 아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딸에게 아버지는 항상 비열했다는 말을 듣는 아버지이자 남편(로저 라킨, '도움' 에서 수잰의 말), 딸을 범하는 아버지도 있었고,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남편들, 남자들을 어찌할 수 없어 고통받는 아내와 자녀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어찌나 빈번히 등장하던지 . . .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인생은 너무 슬프고 가슴이 미어질 거 같은데 하지만 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곁에 올리버! 우리의 올리버가 잠시 그 곁에 머물러 무심한 듯 따뜻한 위로를 건넬 때 한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또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올리버의 고향 메인 주의 크로스비와 셜리폴스가 정말 실재하는 도시이고 장소인 듯 미국 지도를 찾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으로 여러번 느꼈다.   

 



  오늘도 남편은 다락방 올라가서 열심히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밴드 활동도 꾼준하고. 주 중과 주말 동호회 가서 테니스도 열심히 치면서 동네 사람들도 잘 사귀고 있는 거 같다. 이 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말하길 아파트를 버리고 전원주택 이사 와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악기를 맘껏 불어도 된다는 거... 퇴근해서 얼른 집에 오고 싶단 생각이 든다는 거, 집에 오면 작지만 작은 텃밭을 일굴 생각에 신이 난다는 거, 갓 따온 채소들을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장점들 중에 하나라는 거. 음. . .  겨울은 추워서 좀 고생이긴 해도 어떻게든 추위에 적응하려고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며 아직은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하고 나도 남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 남는 시간에 넷플릭스 시청은 - 주로 액션, 스릴러를 본다. 알아서 계속 추천해준다. 근데 나중에 보면 본건데 아니라고 우기며 또 본다 ㅎㅎ 오늘 본 주지훈 주연의 암수살인 안봤다고 박박 우긴다 - 남편의 새로운 취미 생활 중 하나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물론 나도 역시 이미 예상했던 바와 같이 아주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떠나간 집은 너무도 조용해서 안하려고 들면 정말 하루 종일  남편 퇴근 전까지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한편으론 너무 감사하다가도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리는 날은  남편과 둘이 살아갈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무서워지는 거다. 바쁘게 살 땐 시간아 제발 빨리빨리 가라 하던 생각들이 시간이 많아지고 몸도 편해지니 이젠 우리 둘 앞에 남겨진 시간이 너무 무섭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로선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사실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 올리브> 읽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의 하루하루는 돌아온 봄을 한껏 즐기는 것으로 가득하다. 손바닥 정원에 심을 화살나무도 몇 그루 들이고 블루베리 나무도 한 주 더 들이고. 어수선하던 정원에 파쇄석 깔고 벽돌로 둘러 놓아서 단정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엌 옆 데크에 흙 덜 떨어지라고 텃밭에 디딤돌도 깔아서 텃밭도 아주 깔끔해졌다.  곧 올라올 새싹과 꽃봉오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가꿔갈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집이 너무 사랑스럽다.  올리브가 헨리와 살았던 집을 부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그래서 더 드는 거다.  아까워라!!!  



  마지막 장인 '친구'에서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또 다른 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의 이저벨이 올리브가 살고 있는 메이플 트리 공동주택에 입주를 하였다. 난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흠... 이름을 보니 그럴 거 같더라니...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서 서로 도우며 나누는 교감은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이라는 이 두려운 현실에서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는 공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으며 특히 메이플 트리 공동주택은 노인들만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빈번한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올리버와 이저벨이 인생의 거의 끝에 이르러 보여주는 진한 우정의 시간들이 더 간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1년 4개월.  나도 이곳에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다. 올리브가 이저벨과 기꺼이 친구가 되려고 애섰듯이 나도 선물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궁금하면... 나도 올리브처럼 더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음의 공포가 나를 붙잡으러 오는 그 시간까지 노력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보기 싫다고 투덜거리면서 남편과 <암수살인>을 보고 낮에 불려서 삶아 두었던 곤드레 들기름에 묻혀 곤드레밥 해서 채끝살 구워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다.  올리버가 타자기로 자신의 기억을 글로 한 자, 한 자 토닥토닥 기록했듯이 - 이것도 기록으로 남겨야 해. 이제 올리브가 너무 좋아졌다는 것^^* -나도 오늘의 일을 다소 장황하지만 글로 남겨본다.  오늘이 .... 훗날 돌아보면 간절히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나지 않을 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글로 이렇게 남겨 놓았으니 잊혀진다 해도 나의 기억 속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억 위에 기억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쌓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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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8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가 너무 좋은데 그건 좋은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조용하고 가만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시는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저는 아직 올리브 만큼의 나이를 먹진 않았지만 나이를 먹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올리브에게 닥친 일이 다 제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공동주택에서 이저벨과 서로 괜찮은지 수시로 들여다보는 일은 저에게도 앞으로 필요한 일인것 같았고요.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다소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것 같았는데 <다시, 올리브>에서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진 것 같더라고요. 그것은 세월과 나이가 그리고 그동안 쌓인 경험들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겠죠.

좋은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은데 좋은 책을 읽고 쓴 리뷰를 읽는 것도 참 좋으네요.
:)

은하수 2023-03-28 09:39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을 읽으니 정말 온 인생을 다 돌아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네요. 다락방님께서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올리브의 변화하는 모습도 좋았고.. 나이 먹었다고 누구나 저리 늙어가는건 아니란거 너무 잘 알잖아요. 아집만 느는 사람도 많단거.. 근데 어떻게 저렇게 나이들수 있는건지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친구로 만난 이저벨은 저에게 시사하는바가 컸어요
서로의 돌봄을 나누고 일상을 함께하는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간절히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앞으로 닥칠 시간들이 무섭지만은 않을거 같아요.

좋은 리뷰 읽는 재미에 제가 하루종일 여길 들락날락... 도장을 수십번 찍는다니까요^^
오늘도 즐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당~~

책읽는나무 2023-03-28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와 똑같은 삶은 아녀도 은하수님의 지금의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제가 가장 바라는 삶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 바랐던 각자의 삶에서 얼마나 그 바람이 실현되어 있을까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 젊은 시절 내가 바랐던 노년의 모습이 아닌 늙은 모습이 되어 있더라도 그저 삶을 관조하는 너그러운 할머니가 되어 있음 좋겠다! 그리고 키터리지처럼 잘 걷는 노인이 되어 있음 좋겠다! 늘 그 생각을 했네요.
암튼 은하수님의 생활도 응원합니다^^
참고로 저도 암수살인을 봤어요ㅋㅋㅋ

은하수 2023-03-28 22:49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꿈꾸시더라구요. 저도 40대 중반까지도 전원에서의 삶은 생각도 안했었거든요^^ 전 지금의 제 생활이 만족스러운데 지금처럼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살아갈수 있다면 더 바랄게 있을까 싶기도 해요.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책과 함께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요. 올리브처럼 점점 성숙해가는 삶이면 더없이 좋겠지요~~
나무님 바람도 응원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스릴러 별로 안좋아해서 보다가 잘 피하거든요 그래서 세세한 부분 기억을 못하니까 줄거리를 줄줄 말을 못하겠는데 암튼 마지막에 어찌어찌 되는거 아니냐구 했더니 자긴 본적이 없다는 거예요 어이없어서리..ㅠ 혼자선 절대 못보는데 난 대체 어떤 남자랑 본걸까요???
 

하나 하나 모든 에피소드가 왜 다 슬픈지..
읽고 있으면 모두 슬프다. 어쩌지...
이제 올리브가 80세가 넘었다!
헉...곧 이별 ㅠㅠ

그러나, 또 다시 멋진 문장 발견!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310)



그래서 밥은 발꿈치에 엉덩이를 붙인 채 쪼그려 앉아 있다가, 헬렌의 눈이 한동안 감겨 있자 맞은편 의자로 조용히 옮겨 앉았다. 그는 몸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은 것처럼 아팠다. 온몸이 아팠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내 영혼이 아파하고 있다고.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그것은 짐에게도, 헬렌에게도, 마거릿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망명자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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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7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너무 좋죠, 너무! 스트라우트는 연작 소설에서 항상 최신게 더 좋은것 같아요. <올리브 키터리지>너무 좋았는데 <다시, 올리브>는 더 좋더라고요! ㅠㅠ

은하수 2023-03-27 11: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러니 끝을 꼭 봐야죠
근데 올리브 두번째 남편 잭도 죽었네요 지금 그 부분 읽고 있는데 가슴이 아파요 ㅠㅠ
루시 바턴 후속작도 읽어야겠어요. 루시도 궁금하네요 너무^^

다락방 2023-03-27 11:32   좋아요 0 | URL
루시 바턴 후속작 오 윌리엄은 제가 읽은 스트라우트 소설들 중에 최고였어요!!

은하수 2023-03-27 12:08   좋아요 0 | URL
윌리엄은 저도 읽었답니다~~~~꺅~~넘 좋은걸요.
어떻게 안읽을 수 있겠어요~~
저 이제 무엇이든 가능하다 하나 남았어요 거기 루시 바턴이 나온다고 해서 곧 읽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