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헨리 쎌윈 박사-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의 첫문장~~
헨리 쎌윈 박사와의 첫 만남부터 그와의 대화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
읽고 나니 참으로 놀라운 만남의 이야기들이었단 생각이 든다.





1970년 9월 말, 영국 동부에 있는 노리치 (노퍽주의 주도로 대학도시다. 제발트는 1970년부터 이 도시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의 새 일자리에서 근무를 시작하기 직전에 나는 살 집을 찾느라 클라라와 함께 힝엄으로 갔다. - P8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렇게 서있다가, 높이 뻗은 백양목이 정원의 남서쪽에 넓게 드리운 그늘 아래 어떤 사람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을알게 되었다. 늙은 남자였는데, 구부린 팔에 머리를 괴고 바로 눈앞에 있는 한치의 땅만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잔디가 푹신하여 놀랍도록 걷기가편했다. 우리가 코앞까지 다가가도록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이윽고 우리를 알아차리고 어색한 몸짓을 하며 일어섰다.  - P11

그의 동작들은 뻣뻣했지만 완벽한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헨리 쎌윈 박사라고 소개하는 방식도 이미 오래전부터 볼 수 없었던 구식 예절을 따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집을 보러 오신 거겠지요.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아는 바로는 아직 집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부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라고 했다. 아내가 집주인이고, 자신은 그저 정원에 기거하는 일종의 장식용 은둔자(a kind ofornamental hermit)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첫마디를 나눈 뒤에 우리는 공원과 집의 정원을 분리하는 철망을 따라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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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는 생존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서점에 여성주의 책 구매자가 4-50대 여성이 대다수라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나 바로대출로 이용하고 싶은 책은 사실 가격이 비싼 책들인데..
일부 책들은 가격이 그야말로 헉! 소리나게 비싸서 신청이 아예 되질 않는다. 희망도서나 바로대출 상한이 3만원이다. 그럴때 제일 아쉽고, 희망도서나 바로대출 예산이 너무 일찍 소진되어 보통 2,3월~10월 정도까지만 이용이 가능하니 길게 잡아야 이용기간이 7-8개월 정도이다.
보다 많은 책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도서구입 예산배정을 늘려야하고, 오르는 책값을 반영하여 정가상한선도 높여야 할 것이다.


어느 분야나 자기 언어를 갖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정도의 ‘엉덩이 훈련‘이 필요하고,사회는 이들의 
노력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지금 그런 이들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돈이 되지 않는(?) 여성주의 공부를 
선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될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 자기방어를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여성들에게 여성주의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공부 무용론‘ 선동에 큰 좌절감을 느낀다.
여성끼리 작은 공부 모임을 만들어 공부‘만해도 지구의 반을 구할 수 있다. 
지역 도서관에 여성주의 책을 희망 도서로 신청하고, 온라인에 성의 있는 댓글을 달자. 잔물결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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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서재의 달인. 북플 마니아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은하수 2023-12-05 00: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즐겁게 이어가겠습니다~~
 

1. 공부는 생존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 여성주의도 동등하게 학교에서 배워야한다는데 찬성. 당장 우리집만해도 우리 아들은 페미에 부정적. 자신이 피해자인줄 알고 있다. 싸우다 지친다. 모르는 것보다 잘못 알고 있는게 더 문제다. 바른 인식을 다시 심어 주려니 그게 더 지치고 진 빠진다.

남자들의 지식은 전수되는데, 왜 여성은 처음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나를 비롯해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젠더에 대해 알기어렵다. 여성주의는 과정의 사유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인 사유이기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여성이며,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현실이 계급 문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
젠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는 상식이지 논쟁거리(?)가 아니다. 젠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남녀 간 권력관계로 ‘보이는‘ 젠더는, 여성들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

이러한 여성주의의 모순과 복잡함은 사상의한계가 아니라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사고방식은 가성비가 높은 공부이며 빼어난 인식론일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는 다른 사유처럼 공부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어려운 인식이다. ‘여성(female)‘이 ‘여성(women)‘이 되는 과정 그리고 ‘우먼‘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 모두 엄청난 정치적 노정(路程)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현실과 지식을 만나게 된다. 문제는 사상과현실의 거리가 너무 멀고 동시에 너무 가까운듯 보여서, 누구도 이정표를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젠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젠더가 무엇인지 아는 이들도 없다고 본다. 여성운동 단체 출신 의원도 마찬가지다. 표 싸움일 뿐이다. 
2022년 윤석열정권이 무슨 심각한 가치관이 있어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당선 후여가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 여성 장관을 임명했다). ‘여성계‘를 포함해 한국 사회는 정치권,
시민 사회,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인식론으로서 젠더의 지위가 매우 낮다. 젠더가 문제가 될 때는 정치인의 성범죄로 상대방을 공격할 명분이 생겼을 때뿐이다. 그들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무엇이 성차별인지 ‘여성 우대‘인지 분별력이 없다. 그냥 젠더에 무지해도 되는 권력을 가졌을 뿐이다.

‘백래시‘라는 분석도 과분하다. 
지금 한국 남성 문화는 극소수 여성 인구가 과잉 재현된 ‘서울 강남에 사는 고학력 전문직 중산층 이성애자 금수저 여성‘을 조선시대 여성과 비교하며 분노하고 있다. 한국남성은 백래시의 주체가 아니다. 좋게 말해 문화 지체 현상이고, 예전처럼 ‘기 살려주기‘를 해 달라고 보채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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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어느 날 찾아온 기괴하지만 특별한 세계
---> 카프카
**그 어떤 해석도 허락하지 않는 <시골의사>
난해한 작품을 해석해 놓으니 이제 읽어볼수 있을거 같다.




.... 카프카가 쓴 대부분의 소설들은 어떤 맥락에서 고려하더라도 하나의 해석이 다른 해석들보다 명백하게 더 설득력을 얻도록 만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일부 작품들은 아예 그 어떤 해석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시골의사」다. - P279

「시골의사는 매우 짧은 편소설로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눈보라 치는 밤에 한 시골의사가 위급한 환자에게 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급히 출발하려는 의사는 지난밤에 마차를 끌던 자신의 말이 죽었다는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의사의 하녀 로자가 마을에서 말을 빌리려 하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만다. 그때 난감해하던 의사 앞에 갑자기 한 마부가 나타나 의사의 마구간에서 말 두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말이 있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의사가 마차에 타자 마부는 마차를 출발시키고, 마부는 의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녀를 덮친다.
- P279

마차는 마치 날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환자의 집에 도착한다. 집에는 한 소년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소년은 아픈곳이 없다. 이에 당황한 의사 
앞에서 사람들은 합창을 하고 의사에게 소년을 진찰하도록 한다. 그러자 의사는 갑자기 소년의 옆구리에서 끔찍한 상처를 발견한다. 
이제 사람들은 의사의 옷을 벗기고 그를 소년 옆에 눕힌다. 소년은 의사에게 자신은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왔으며 나을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의사는 소년에게 억지 위로의 말을 전하고는 자신의 옷을 창밖으로 던져 마차에 걸고 자신도 창밖으로 뛰어내려 알몸으로 말을 타고 도망친다. - P280

만약 초자연적 사건이 없는 환상문학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손에 꼽히는 작품이 바로 「시골의사」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우선은 이러한 개연성 없는 기괴한 줄거리에 놀라고, 곧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몰라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문학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훈련받은 독자라면 아마도 더 큰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P281

시골의사의 기이한 이야기는 꿈이 아닐까?
많은 연구자들은 바로 이 비유적 표현에서 「시골의사」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리고 실제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 소설을 들여다보면 불가해하게만 여겨졌던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무언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P284

의사를 ‘자아‘로, 의사 집을 ‘정신‘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어디서인지 갑자기 나타나 로자를 덮치는 마부와 남성성의 상징인 말은 모두 시골의사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로자에 대한) 성적 욕망의 의인화된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 P284

우선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곳은 꿈이거나 꿈과 유사한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이야말로 욕망에 대한 의식의 통제가 약해져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꿈속이라고 해도 욕망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자아의 다른 모습인 시골의사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욕망을 말과 마부의 형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 P284

시골의사의 이야기를 꿈이라고 가정하면 갑작스런 장소 이동 같은 황당한일도 쉽게 
이해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번개 같은 전환은 우리가 꿈속에서 매번 겪는 일이다. 이 때문에 시골의사가 마차에 타자마자 환자 집에 도착하는 장면은 우리 자신의 꿈을 삼인칭 시점에서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다가 말 두 마리가 창문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고 나자 눈에 띄는 소년의 상처 역시 사건 진행의 개연성과 내적 논리가 파괴된 꿈의 내러티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 P285

그런데 이때 말 두 마리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면은, 우리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의미심장하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말의 갑작스런 등장은 욕망의 발현, 혹은 욕망의 분출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말이 다시 등장하고 나서야 소년의 상처가 눈에 띄는데, 이 상처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구멍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홍빛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어로 ‘분홍색‘은 하녀 이름과 같은 ‘로자‘다.
이 장면은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욕망 대상이 되는 하녀 로자가 상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P285

카프카의 작품들은 정답에 해당하는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석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프카의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은 해석을 유도한다. 단지 그중 어떤 하나가 정답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카프카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카프카의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작품을 즐기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에 ‘카프카에스크kafkaesk‘라는 단어가 
있다. ‘카프카 같은‘이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자 부사다. 굳이 의미를 설명하자면 ‘기괴하고,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정도가 될텐데, 카프카의 작품들이 그 어떤 기존 단어로도 설명할 길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고, 통용된 단어일 것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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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이라는 책 제목으로 다 담지 못하는 극강의 슬픔과 고통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무섭다. 끔찍한 전쟁의 상황이 계속된다. 밤에 읽다 무서워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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