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어제 12월 10일 밤 12시부터 오늘 새벽 사이에 방송된 노벨상 시상식 현장의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면서 온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과 언어에 빠져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시상식을 맞고 싶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며 미리 책을 구입해 놓고 기다리다가 엊그제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예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가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경험이 있었고,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을 읽으며 제주 4.3의 진상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나름의 준비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소년이 온다>나 <순이 삼촌>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큰 동요 없이 언어의 아름다움에 집중해서 작가가 이끄는 대로 보여주려는 그 세계로 바로 진입하여 모든 준비를 다 마친 사람처럼 의연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순이 삼촌>은 제주 4.3 그날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보여주어 충격을 던져 주었고, 반면에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날의 진실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면서 실종된 가족의 유해를 수습하고자 기울이는 노력의 과정을 보여주는 설정이어서 서로 상보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강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제주 4.3의 참혹함이 반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학습의 결과로 인해 개인적으로 그리 느낀 거라고 생각한다.
새벽 시간에 방송된 시상식 현장의 라이브 방송에서 한 강 작가의 심사평을 작성하여 읽는 스웨덴 아카데미 위원이자 노벨문학상 위원회 위원인 작가 엘렌 마트손의 심사평은 한강의 작품에 대한 찬사를 이어간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절묘하게도 <작별하지 않는다>를 중심으로 쓰인 심사평이어서 더 유심히 듣게 되었고 그 하나하나의 문장들을 받아 적어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없다. 펜을 열심히 놀려 적어놓은 심사평을 여기에 남겨본다.
*한강 작가 심사평 : 엘렌 마트손(스웨덴 아카데미 위원, 노벨 문학상 위원회 위원, 작가)
한강의 작품에서 두 가지 색, 흰 색과 붉은 색이 만납니다. 흰색은 눈을 나타내며 작가의 여러 작품에 눈이 내려서 화자와 세상 사이의 보호막을 드리워 줍니다. 하지만 흰색은 동시에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합니다. 붉은 색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고통, 피, 그리고 칼로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목소리는 매혹적일만큼 부드럽지만 차마 형용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을 말합니다. 학살로 쌓인 시체 더미에서 피가 흐르고 짙어지다가 이내 호소가 되며 또 그리 답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질문으로 변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죽은 자들, 납치된 자들, 그리고 실종된 자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을까요?
붉은 색과 흰색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합니다.
2021 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만날 공간을 생산합니다. 중간에 떠다니는 자들은 어디에 속하는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 소설은 내내 눈보라 속에서 전개됩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시간의 층을 미끄러지듯이 통과하고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소통하고 이들의 지식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것은 지식과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과정이 견디기 어렵다고 해도 말입니다.
절묘하게 구현된 한 환상에서 소설 속 친구는 육체가 머나먼 병상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에서 자료집이 담긴 상자를 꺼내 역사의 모자이크 한 조각을 더해줄 수 있는 문서를 찾아냅니다. 꿈은 현실로 넘쳐흐르고 과거는 현재로 이어집니다. 경계가 녹아 사라지는 이러한 변화는 한 강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더듬이를 뻗어 양 방향을 가리키며 신호를 포착하고 또 해석하려 합니다. 인물들은 때때로 본인이 보고 목격하는 것으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며 그럴 때는 매번 마음의 평화가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필요한 힘을 가지고 계속 나아갑니다. 결코 잊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죽였지? 살해 당한 소년의 혼이 묻습니다. 소년의 이목구비가 문드러지고 윤곽선이 무너집니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다른 질문이 남습니다. 오로지 고통만 남겨준 이 몸뚱이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문으로 으스러져 피 흘리는 이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몸이 포기하려 하면 영혼이 말을 이어갑니다. 혼이 피폐해지면 육체가 걸음을 이어나갑니다. 깊은 내면에는 고집스러운 저항, 말보다 강한 고요한 주장 또한 있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잊으려고 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강의 작품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 입고 취약하고 어떤 면에서는 약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힘을 가졌습니다. 또한 꼭 필요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한걸음 더 나아가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자료를 하나 더 요청하고 살아남은 목격자를 한 명 더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이 희미해지며 죽은 자들의 그림자는 벽 위를 계속 맴돕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으며 그 무엇도 끝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한 강 작가 님, 한림원을 대표하여 2024년도 노벨상 수상에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출처: SBS TV)
시상식이 끝나고 이어진 축하연에서 한 강 작가가 수상 소감을 영어로 낭독하였는데 한 편의 단편소설 같았던 이 글도 남겨둔다. 1,300 여 명만 초대 받은 연회장에 한강 작가를 소개하는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약간 어색하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소개하는 음성이 귀에 쏘옥 하고 들어와 박혔다. 올 블랙의 수수한 롱 드레스를 착용한 한강 작가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약 4 분간 연회장에 울려 퍼진다.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 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물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폭력에 맞서는 분들과
이 자리에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SBS TV)
아침 나절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 염색을 하고 왔다.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 흰머리가 몇 센티미터나 올라오고 있는 것도 상관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부부 동반 모임이 있어서 외출할 일이 생겼다. 한강 작가는 화장 안한 수수한 얼굴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던데 ... 그래서 더 멋지지 않으냔 말이다. 근데... 난 그게 안된다. 돌아와서 오후에 마리아 미즈의 <마을과 세계>를 펼쳤는데 서문에 이런 문장이 첫 문장으로 나온다.
우리 마을의 규범을 따르지 않던 타보 디디(Tabo Didi)는 언젠가 "인간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철학적인 말을 잊지 않았다.(9쪽)
한강 작가의 소감문을 읽으면서도 자연스레 든 거지만 이 문장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를 보고 드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 나라의 상황과 연결이 되었다. 물론 작가의 작품 제주 4.3 사건 당시의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힘없는 국민들은 국가 권력의 총칼 앞에, 장갑차 앞에 맨몸으로 맞선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인데 다시 또 계엄이라니... 머리가 쭈뼛 서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12월 3 일의 그 밤을 잊지 못한다. 살아서 계엄을 또 겪게 될 거라곤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한강 작가와 마리아 미즈는 잊지 않기 위해서, "망각에 저항해" 쓰고 또 쓰면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다. 문학의 힘을 믿는 한강 작가의 소감문이 주는 감동으로 오늘 하루도 이겨내고 다시 힘을 내본다.
기어코 ... 이루어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