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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엊그제 오전에 수영 끝나고 회원님들과 주민자치센터 앞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잠시 커피 타임을 가졌다. 처음엔 요즘 배우고 있는 영법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는 게 우리들의 국룰... 평영이 너무 안된다는 둥, 웨이브를 하는데 뭔가 자세가 어색하다는 둥, 연결 동작이 잘 안되고 너무 어렵다는 둥, 발 따로 팔 따로... 어깨를 눌러주라는 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둥,내가 하는 건 웨이브가 아니라니까 ㅠㅠ... 이런 이야기를 열나게 하다 보면 새삼 결론은 "언니... 그만두지 않고 계속 같이 가주셔셔 넘 고마워요"로 끝난다.
그러다 갑자기 포근해진 날씨 이야기로 넘어가고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또 나가서 마냥 걷고 싶다니까 이구동성으로 자기들도 그렇다고 하는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는 마음껏 편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마땅히 갖춰져 있는 곳이 아니다. 집에서 바라보는 한적한 시골 동네로서의 풍경은 더없이 고즈넉하고 아름답지만 실상은 변변한 산책로나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인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진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2021년 11월 지금의 용인 양지면으로 이사온 이후 다음 해 봄부터 동네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오늘은 집 앞쪽 동네로, 내일은 저 초등학교 뒷 동네로 또 다른 날은 총신대 앞쪽까지 가리라 하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이 집도 슬쩍 구경하고 저 집도 슬쩍 구경하면서 온 동네를 걸어다녔는데 지치지도 않고 그 짓을 그 다음 해까지도 했던 거다. 그것도 혼자서!
어느 날 약간의 불편함을 안고 계속 하던 산책 중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건데 뭔지 모르게 올라오는 불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거다. 번듯한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도시 외곽 지역은 변변한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넘 속상했고, 걷다 보면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옆으로 비켜서야 한다는 것이 기분이 상하면서 같은 용인시민인데 난 왜 이런 환경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건가 싶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다는 것에도 화가 났다. 오랜 시간 즐겁고 행복했던 산책이자 운동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혼자 노는 것도 좋았지만 그때쯤엔 나도 모르게 나도 어딘가엘 가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거다. 혼자 여기저기 산책을 다녀도 사람을 사귀는 건 불가능하고 아무리 시골이고 주택단지라 해도 나 어릴 때처럼 옆집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프게 자각하게 된 거다. 그래서 용인 수지에서는 물이 너무 무서워 엄두도 못내던 수영 강습에 용기내어 등록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 혼자서도 그다지 우울하지 않고 시간적으로 여유로우니 만족도도 높았는데도 어딘가에 소속이 된다는 것과 누군가와 교류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삶에 순응하게 된 것이다.^^
정기현 작가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에는 직장을 잠시 쉬면서 동네를 산책하는... 혹은 배회랄지 탐험이랄지... 아무튼 동네를 산책하는 '기은'이 나온다.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준영'을 만나는데 예배가 있는 주일을 제외하면 평일의 교회는 도서관이나 베이커리에 가까운 곳이었다. 교회 사모의 권유로 평일 낮에 교회에 나가 책도 읽고 빵도 마음대로 먹고 그러다 평일 낮 시간에 교회를 찾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었던 준영을 만난 것이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별다른 대화 없이도 시간을 함께하는 과정을 담담하고 보여준다. 우연히 어느 날 같은 시간에 귀가를 하게 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준영으로부터 기둥에 있는 낙서에 대해 듣게 된다. "김병철 들어라. ~~~"로 이어지는 낙서들... 동네 곳곳에 경고조로 쓰여진 낙서를 찾아 어느 날은 아예 날을 잡아 특정한 낙서를 찾아 동네를 샅샅이 훑다시피 돌아 다닌다. '기은'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낙서를 찾아 샅샅이 훑고 다니는 모습 어디에서도 나와 닮은 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데도 난 '기은'의 그런 행동들이 이상하게 너무 이해가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걸을 때의 '기은'은 원래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동네의 비밀을 파헤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 산책으로 변해간다. 어떠한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기은'의 산책이 자아내는 무언지 모를 슬픔의 분위기는 준영을 만나면서 변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준영에게 낙서의 비밀을 알아내서 이야기해 주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낙서를 찾아내고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까 초조해하기도 한다. 그러한 슬픈 마음의 정서가 준영과의 미래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아늑함"을 느끼는 부분에서 설렘이 감지되었다. 아... 기은이 그 마음을 "슬픔을 아는 마음"이라고 하면서 어째서 "아늑함"을 떠올리게 된 건지 알듯 모를듯했지만 그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산책은 이러한 서사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고 "슬픈 마음"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산책은 아녔지만 오히려 어이 없이 이게 뭔가 싶은 자괴감만 남기고 끝나버린 데 반해 -하지만 이로 인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나의 실패한 산책으로 인한 방향 전환도 사실은 대단히 긍정적인거 아닐까? - '기은'의 산책은 정말 약간의 설렘이 느껴지는 "아늑함"을 남기게 되어 좋았다. '기은'이 다른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김기태 작가의 단편 <일렉트릭 픽션>은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한 남자의 밋밋해 보였던 일상이 기타를 배우기로 하면서 크지는 않지만 변화하게 되었고 그 변화의 방향이 평소의 생활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교류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의 전환이어서 희망적으로 비쳤다. 거기다 소설의 구조가 특이해서 마지막에 "엇!" 하는 감탄사를 사용하게 된다. '전기 기타를 치는 그'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전기 기타를 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독특한 구조가 된다. 맞게 말한 건가?.... 특이한 구조로 기억에 남을 듯한데 작가와 선우은실 평론가의 대답을 읽어보니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왕왕 발견이 된다고 해서 작가가 이러한 서술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문지혁 작가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작가가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던 시절에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구성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허리케인이 몰아친 날 집에 물이 차서 친구의 집에 피신하게 되었는데 대형 로펌에 근무하다 자신의 법률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 피터의 집은 '럭셔리 콘도미니엄'의 펜트하우스였다. 외국어 고등학교 동창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이지만 대치동에서 한 해에 몇 십명이 입학하는 고등학교 출신이었던 피터와 중곡동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사회, 문화, 경제, 가정환경의 차이는 자석의 S극가 N극의 사이만큼 멀기만 했지만 내가 써서 인쇄한 소설을 우연히 읽었고 재미있었다며 다음에 또 보여달라는 피터의 말을 들었던- 불편한 - 기억을 떠올린다. 피터와의 사이는 이렇게 불편한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던 피터의 펜트하우스에서 랍스타를 저녁으로 먹고 쉬고 있는데 허리케인으로 인한 것이겠지만 갑작스레 정전이 발생한다. 안전하다 믿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러한 설정에서 유발되는 은근한 긴장감이 소설을 읽는데 흥미를 더한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건 고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다가 작은 소동이 벌어진 사건을 들려주는 데서 온다. 골대 근처에 주차된 자동차에 소지품을 올려두고 용준(피터)이와 아이들이 농구를 하던 사이 차는 사라져 버리고 아이들의 냄새나는 옷이나 양말 따위의 것들은 근처에 있었는데 유독 용준(피터)이의 - 롤렉스 -손목시계만은 찾지 못했던 것. 괜찮냐고 묻는 친구에 비해 너무 침착하고 무덤덤한 친구 피터의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거리감이 유발하는 긴장감과 불편한데도 계속 이어지는 두 사람의 동행, 그리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세계조차 무너진다면...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데 이 단편 전체의 인상을 바꿔버리는 결정적인 몇 개의 문장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집의 별점이 대거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 ... ... 아니, 이제는 내 롤렉스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어느덧 시계는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더 길고, 피터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롤렉스가 함께할 것이므로.(172쪽)"
내가 훔쳤지만 결코 빼앗지는 못했고 착용할 수도 없었던, 그래서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는, 내가 살 수도 없는 물건 때문에 겪는 내면의 갈등은 계속 되겠지.
퀴어 소설의 지향점이 어디일지 고민하며 썼다는 서장원 작가의 <리틀 프라이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상실감'과 욕망의 기록들도 읽는 재미가 있었고, 작가가 추천해 주었던 김원영의 <희망 대신 욕망>,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도 읽어 보고 싶다.
마지막 수록작인 최민우 작가의 <구아나>도 재미있었다. 연인 사이인 '도윤'과 '해영'은 동거하는 사이인데, 해영의 오빠인 해준이 두 사람의 집에 방문하는 사건을 계기로 도배도 하고 집안을 단장하게 된다.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지만 무작정 관습에 순응하기를 망설인다. 오빠인 해준이 해외 이민을 가게 되면서 가족 사긴을 찍자는 제안을 하는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도배를 하고 나니 거슬렸던 집안의 소소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기로 하고 가장 먼저 문손잡이를 바꾼다. 3개의 문손잡이 중 2개가 고장나 있었는데 문손잡이를 바꿨다고 큰 변화가 있을 거로는 생각되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 고치는 거야"라는 '해영'의 말에서 희망이 보였다. 전셋집이지만 사는 동안 내 집이니 문손잡이를 바꾸고 싱크대 수전도 바꾸고 욕실 곰팡이도 다 닦고 벽이랑 바닥 줄눈도 새로 그리고 후줄근한 상부장도 교체해서 멋진 집에서 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다. "흔들의자의 다리처럼 완만하게 휘어진 금속 곡선이 방금 이뤄진 간단한 성취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빛을 발했다. 어디든 무엇이든 붙들 것이 있다면 그 다음은 어찌어찌 해나갈 수 있었다(281쪽)"
그래서 현실의 모든 커플들이 이런 희망적인 결말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따뜻하고 세심하게 바라봐주는 작가의 시선이 나는 참 와닿았다. 결혼 적령기의 자녀가 둘이나 있으니 이게 도저히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보이는 거다. 우리 딸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남자 친구와 결혼을 결정한 걸까, 우리 아들도 '해영'과 같은 여성을 만나게 될까... 뭐 이런 생각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정말 사람이란 어쩔 수가 없는 건지 나도 모르게 생각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엊그제 사다 놓은 화분에 물을 주었더니 꽃들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천리향의 향기는 썬룸에 진하디 진한 향수를 뿌려놓은 듯하다. 제라늄의 작은 얼굴도 선명해졌고. 책상 앞에 창문을 열고 있어도 오늘은 바람이 차지 않고 상쾌하다. 책 보다 컴퓨터 검색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풍경에 취한다. 이런 평범한 일상과 인생이 이 작품집 속에도 있다. 마지막까지 읽기를 잘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