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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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1월 돌아가신 아버지는 우리 3 남매에겐 더 없이 다정하고 세심하신 분이셨지만, 엄마와 결혼을 하고 군대가셨다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겨 의가사 제대를 하신 이후 몸이 계속 좋지 않으셨다.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 결국 퇴직하시고 계속 앓으셨기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은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그 충격이 여기 이 캐스린 슐츠와는 다른 강도로 다가왔던 거 같다. 엄마와 우리 3 남매는 늘 하던대로 엄마는 홀로 힘들게 우리 3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장사를 하시고 우린 학교 갔다 오면 누군가 한 명은 엄마를 도와드리고 우리는 그저 우리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버지께선 우리에게 더없이 다정다감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성격이 강하고 한편으론 우악스럽게 느껴지기도 한 우리 엄마와의 일상은 쉽지 않았고 불화의 연속이었으며 그래서 더욱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살아내느라 너무 바빠서 그걸 여유롭게 돌아보고 되새겨볼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더 오래 사시다 우리와 좋은 시간을 보내셨더라면 아마도 그 충격은 이 책의 작가와 같은 상실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난 아버지를 약간 어려워하면서도 너무 좋아했으니까...!



캐스린 슐츠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가지게 된 상실과 애도의 시간들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같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이러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공감하게 될 거라고 본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내 남동생이다.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겪은 상실감보다 젊고 건강했고 아버지를 닮아 다정하고 천상 선비 같았던 우리 남동생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병으로 급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 충격과 상실감, 애도와 눈물, 비탄과 후회의 시간은 길었다. 당시 9살, 초등학교 2학년이 막 되었던 조카가 이제 대학생이 되었을텐데...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 나는 최고의 눈물 버튼이다. 가끔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동생 얘기만 하면 목소리가 먹먹해지면서 둘 다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눈물 흘린다. 남동생은 아버지가 가신 후 우리 집안 여자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착한 우리 남동생을 계속 생각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이 잊혀지는 게 맘이 쓰이기 때문이다. 잊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까...



캐스린 슐츠는 '1부 상실'에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상실의 아픔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언제든 상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올 것임을 알기에 작가가 이끄는대로 함께 애도해나가는 친절한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애도하는 중이라도 우리의 일상은 충실하고 행복과 기쁨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상실과 애도의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나 혼자 이렇게 기뻐하고 웃고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행복한 시간 속에 우리 동생이 영원히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었다. 



'2부 발견'의 시작은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들판에서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발견한 소년 '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이 이야기의 결말은 놀라운 인연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1부에서도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놀라운 발견의 순간들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발견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전 작가는 사랑하는 여인 C를 만난다. 결혼을 결심하게 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서로의 닮은 점을 기뻐하고 차이점을 알아가면서 천천히 평생의 반려자,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도 들려준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 세상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과정을 듣다 보면 나의 인생에서도 이러한 소중한 일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C의 고향마을에 정착하게 된 캐스린 슐츠는 C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데 '빌'은 그녀의 아버지였던 것... 이 부분을 읽으며... 음, 이 작가 글을 풀어나가는 실력이 정말 뛰어난데... 오호....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3부 그리고'에서는 이 단순한 접속사가 가진 놀라운 힘을 말한다. 그리고는 한 단어와 한 단어, 하나의 개념과 다른 하나의 개념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우리와 세계가 연결될 때 어떤 상실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삶은 찰나이기에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것임을 말한다. 그 결과 '그리고'는 한낱 접속사와는 달리 연속된다는 기분을 안겨준다. 슐츠는 그녀 C와 결혼을 하고 나서 행복한 일상, "매일의 비범함(remarkableness)"을 경험하는 현재를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일본어로 "모노노 아와레"라 부르는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는 바꿀 수 없는 운명에 공감하고 불쌍히 여기며 그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감정을 말한단다.

 작가가 지금까지 말한 '상실과 발견'의 감정은 "찰나의 폭로를 통해 우리의 실존적 조건을 깨닫는 느낌이다. 삶이 얼마나 근사한가, 얼마나 허약한가, 얼마나 찰나인가. 이 감정이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조그만 위치에 대한 반응에서 일부 비롯되기는 해도, 경이로움awe과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이 감정에는 너무 많은 일상이, 또 너무 많은 슬픔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얘기하는 감정은 광휘도 공포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신 감사한 마음과 갈망, 그리고 예측된 슬픔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단어에서 이 감정과 가장 가까운 혈족은 '달콤 쌉싸름한bittersweet' 일 것이라고 말한다. '달콤 쌉싸름한' 이 행복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해도, "이 단어의 내밀한 기원은 우리가 세계와 마주할 때의 필연적인 측면, 즉 우리가 가진 전부를 언젠가는 상실하게 된다는 문제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유형의 '그리고'에 대해 이 말이 가장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슬픔은 어떤 형태건 우리의 슬픔과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자각". '그리고'에는 이토록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단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캐스린 슐츠는 아버지의 상실 이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상대적으로 어머님에 대해 소홀한 것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지 못하는 집안의 모든 대소사와 교육과 육아를 챙기면서 자신의 일도 잘 챙기신 분이셨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몫이 결코 아버지에 뒤지지 않았다고...

남동생이 떠나고 난 후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우리보다 더 남동생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엄마의 자부심이었던 동생은 남편의 대신이자 집안의 가장이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대단한 존재였다. 적어도 엄마에겐 그랬다. 그래서 우리와 엄마 사이엔 서로 이 공감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했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거나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즉시 서로의 해묵은 감정들이 올라와 싸움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강건하고 괴팍하고 독선적이고 독립적이어서 혼자서도 잘 드시면서 뭐... 천년만년 잘 살아가실 것 같던 엄마가 어느 날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특별히 병이 있으셨던 건 아니고 영양실조... 영양 불균형으로 쓰러지셨다고 했다. 특별한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동안은 엄마도 일흔이 훨씬 넘은 노인이라는 자각이 없었던데다 워낙 사이도 안좋으니 차라리 자주 만나지 말자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는 혼자서도 잘 사실 줄 알았다. 나이가 드시면서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던 육류를 전혀 드시지 않아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영양 불균형으로 쓰러지신건데... 영양불균형으로 그럴 수 있단 것에 깜놀!!! 한동안은 골고루 반찬을 해서 갖다 드렸는데 너무 멀고 번거롭고 특히 엄마와 우리의 음식 취향이 너무 달라 빠른 포기. 그런 후 차라리 엄마에게 고기를 보내드리는 것이 낫다 싶어 코스*코 가서 고기를 사서 한 번 먹을 양 만큼 소분해서 냉동시켰다 보내드린다. 스테이크용, 국거리용, 보쌈용, 구이용, 장조림용.... 소화도 잘 되고 부드러운 고기를 다양하게 보내드리려다보니 그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더 나이가 드셨고 그렇게라도 안하면 안드시는데 엄마가 이걸 또 엄청 좋아하신다. 의외로! 그래서 몇 년째 계속 해나간다. 그렇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더해지면서 조금씩 서로의 앙금이 풀려나가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의 삶을 공감해주고 격려하는 대화도 하게 되었다. 우리를 위해 무언가 남겨주려 애쓰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여행 마음대로 하시라고.... 내일 당장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건강할 때 하시라고... 이런 말들이 엄마의 감성을 건드렸나 보다. 요즘은 엄마와 거의 싸우지 않는다. 꽤 됐다~~^^ 그동안 몰랐던 건데 엄마와 어찌하면 잘 지낼 수 있는지 알게 된 것이 동생이 하늘나라 가고 내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다. 정말 안된 말이지만 동생이 있었다면(동생아 미안 ㅠㅠ) 아마 평생 엄마와 불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엄마와의 튀르키예 여행을 예약했다. 작년 가을 떠나려다 어그러져 엄마가 엄청 속상해 하셨다. 내가 엄마와 여행 가기 싫어서 취소한 걸로 오해하셨던 건데 이젠 엄마가 원하면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노인네는 이제 말끝마다 내가 언제까지 멀리 비행기 타고 여행을 갈 수 있겠냐고 반 협박조로 말씀하신다. 그러니 지금 건강이 허락할 때 꼭 딸하고 여행 가고 싶으시다니... 어쩌겠는가. 엄마가 경비를 다 내신다니 덕분에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럭셔리 여행을 가게 생겼다.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갈 밖에.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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