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삼겹살 데이는 지났고 우린 그날 저녁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 싸서 볼 미어질 정도로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 『단어가 품은 세계 』에서 '상추'라는 단어의 어원을 소개하는 글, 그리고 옛 문헌에 나타난 상추쌈을 맛깔나게 먹는 모습을 담은 시詩를 만나게 되었다. 어찌나 맛있게, 생동감 있게 묘사를 해놓았는지 내가 아는 그 맛이 연상되어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이 상추를 먹는 과정을 묘사한 시詩의 일부를 실어본다.
밥은 입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뜨고
상추잎은 손바닥 크기만큼 퍼 놓고
장을 떠서 생선도 곁들여 얹고
푸른 부추에 하얀 파도 곁들이니
솟아오른 한 가운데 구멍은 꽃술을 머금은 듯
겹쳐오므린 모양은 피지 않은 연꽃봉오리인 듯
어쩌다가 터지면 조개가 진주를 뱉어 놓은 듯
다시 싸면(잎이 돌아간) 모습이 소라껍질인 듯
손에 있을 때엔 주름진 주머니더니
입에 들어와선 길고 둥근 베틀의 북일세.
쌈 하나가 정말 눈앞에 동동 떠 있는 듯 그려지는 묘사에서 능히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쌈은 일반적으로 서민들의 음식문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 양반님네들도 이렇게 맛있는 쌈 앞에서는 체면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테니 이렇게 맛깔난 시를 남긴 거 아니겠는가 말이다. "밥은 입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뜨고"라지만 푸른 부추 잔뜩 넣고, 하얀 파에 장, 그리고 생선을 같이 싸서 먹는 상추쌈이라니 그것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상추쌈 is 뭔들~~~ 저 정도면 찢어질 정도는 아녀도 쌈 크기가 충분히 입안 가득 찰 듯하다. 양반님네라도 역시 참을 수 없이 맛있긴 하지.
이 작품의 앞에서는 역시 동시대 실학자였던 이덕무가 쓴 『사소절』이란 책 - 일종의 매너 교본 - 에서는 선비가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할, 복식이나 식사 등의 사소한 예절에 관해 쓴 글이 등장한다. 거기에 선비의 체면에 맞는 쌈 먹는 방식을 언급한 것이 있어 위의 시詩와 대조되어 소개한다.
상추 ·취 ·김 따위로 쌈을 쌀 적에는 손바닥에 직접 놓고 싸지 말라. 무례한 행동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쌈을 싸는 순서는 반드시 먼저 숟가락으로 밥을 뭉쳐 떠 그릇 위에 가로 놓은 다음 젓가락으로 쌈 두세 잎을 집어다가 뭉쳐 놓은 밥 위에 단정히 덮은 후 비로소 숟가락을 들어다 입에 넣고 곧 장을 찍어서 먹는다. 그리고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게 하지 말라.
볼이 불거질 정도로 크게 싸서 먹어야 상추쌈을 제대로 먹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터... 양반님네의 쌈 싸먹기에 대한 글을 읽고 따라해 보려니 뭔가 아쉬움이 몹시 남는다. 쌈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먹어야 제 맛 아닐런지.
"상추잎을 모아 싸서, 상인이 짐을 실어 올리듯 두 손을 모아 쌈을 들어 올려, 숭례문이 활짝 열리듯 입을 떡 벌려 먹는데..."
(유몽인, 어우야담 중에서)
상추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에 이미 상추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므로 아마 통일신라시대 쯤에는 전래되었으리라 추정이 된다. 우리나라 문헌에 상추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3세기 초 《향약구급방》이라는 책인데, 이때부터 종종 상추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원나라 시인 양윤부란 사람이 쓴 시 구절에 '고려 사람들은 상추로 밥을 싸 먹는다'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고려시대 사람들이 이미 상추쌈을 즐겨 먹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목민이었던 원나라 사람들의 식생활과는 다른 우리 고려인들의 식생활이 특이하게 여겨진 면이 있어 글로 남기지 않았을까!. 고려시대 여몽전쟁 패전 이후 고려 사람들이 인질로 많이 끌려가기도 했고 원나라에 '고려양'이라는 고려 사람들 마을이 있었으니 고향을 떠난 고려 사람들이 자신들의 풍습과 식생활을 그대로 이어가고자 노력을 했을 것이고 상추쌈을 먹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원나라 풍습 속으로 유입되었으리라 추측된다.
1988년 이전까지 상추의 표준어는 '상치'였다. 오늘날에도 어르신들이 상추를 '상치'라고 부르는 것을 들을 적이 있다. 지방에 따라 아직 '상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표준어라고 해서 변화를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쓰는 단어가 힘을 얻게 되면 표준어가 바뀌기도 한다.
고추, 배추, 부추처럼 채소류에는 '추'로 끝나는 단어들이 많이 있는데 이중 고추를 제외한 나머지 배추, 부추, 상추는 채소를 의미하는 한자 채菜(나물 채)에서 유래했다. 이 글자의 옛날 발음은 아래아(、)가 들어있었는데 이 발음이 지역에 따라 '치'로 되기도 하고 '추'로 되기도 해서 상치와 상추로 발음이 되어 사용되었던 것이다.
상추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자 표기 없이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지만 상추의 '상'은 한자 生에서 발음이 변한 것이다. 이 글자 아래에도 아래아(、)가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상'으로 변화한 것이다. 즉 상추는 '생채生菜'라는 한자어가 변화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익히지 않고 날로 먹는 채소라는 뜻에서 생채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 발음이 상치, 상추 등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생채는 익히지 않은 나물이라는 의미로만 남아 '무생채'와 같은 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상추의 원말인 생채가 중국에서 온 말이라면 그 이전에 '상추'를 뭐라고 불렀을까? 생채라는 단어가 차용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데 그 이전 우리나라 문헌에는 두 가지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부루'와 '와거萵苣'라고 한다. 부루는 지금도 지역에 따라 쓰이고 있다고 하는데 특히 북한에서는 '부루'가 문화어로 인정되어 상추와 같이 쓰이고 있단다. '와거'라는 단어의 한자어는 '상추 와', '상추 거'이다. 보통 중국에 없던 작물이 외국에서 들어오면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2음절의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두 개의 한자어가 합쳐져 하나의 단어가 되고 이 두 한자어는 각기 별개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단어 구성의 예가 포도葡萄인데 포도를 뜻하는 두 한자어가 합쳐져 있어 이 식물이 고유의 식물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엄연히 실려 있다니 좀 의아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쓰이지 않는 말인데 아직 남아있다니 말이다.
이렇게 맛있는 쌈을 선사하는 식탁 위의 보물 상추... 우리 집 텃밭에서도 곧 만날 수 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면 모종을 사다 심을 수 있다. 지난 주 꽃시장 가면서 보니까 부지런한 농부들이 이미 밭을 갈아 아주 고르고 예쁜 밭을 만들어 놓았더라는~~~
우리집도 날이 좀 풀리고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 흙을 뒤집고 밭을 만들어서 모종을 심을 계획이다. 그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올핸 또 얼마나 맛있는 상추를 맛보게 될지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비바람 몰아치는 오늘이 아무리 거세다한들 봄은 어김없이 올테니까... 봄이여 어서 오라~~~~!
아무튼 알면 알수록 단어가 품은 세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상추라는 단어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시간이 담겼는지 그 깊이와 넓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아울러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이 우리 고유의 '쌈' 문화가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떻게 기억이 될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