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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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이 '별로'라는 그런 리뷰를 어딘가의 글에서 먼저 보아버린 나...

하필 왜 그런 리뷰를 먼저 읽어버린 거였을까? 그랬다면 편견 따위 가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 하지 않았던 작가였다. 세상엔 읽을 책이 무궁무진한데 굳이 별로라는데 읽으려 애쓸 게 뭐람 하면서 작가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져 있든, 영미 문학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든 관심이 없었다. 평소의 나의 습관대로 작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이 단편집의 초,중반 몇 몇 단편을 읽을 때까지도 "단편 소설의 정수"라고? 정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의심하면서 내 맘대로 되지도 않을 평가를 내려버리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뒤로 가면서 한 편, 한 편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을 읽고 나서는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을 만큼 좋아졌다! 세상에는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뛰어난 작가가 어딘가에 숨어있다 뿅 하고 나타나 나를 뒤흔들고 어지럽게 빙빙 돌리면서 가지고 놀다가 너 어디 맛 좀 봐라 에잇! 하면서 좁아터진 나의 세계관을 주욱 찢어발기고 어때? 하고 놀리기도 하고 옛다! 하면서 작가만의 고유한 무언갈 던져주고 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거다. 내가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잘 모르면서 왜 잘난 척을 해서 이런 낭패스러운 기분을 갖고 마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왜 학습이 안되고 이런 사태를 자꾸 반복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뭔가! 하지만 작품이 좋았고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고 해서 다 된 게 아니다. 단편집의 리뷰를 쓰는 일은 정말 또 별개의 일이라 난 단편집 리뷰 쓰는 것이 세상 제일 난감하더라는...ㅠㅠ  





이 단편집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연한 계기로 지금쯤은 - 설사 별로라고 알고 있었어도 여기저기서 자꾸 나타나는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이 작가의 작품을 - 읽어봐도 크게 손해날 건 없겠지 싶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는데 그때 든 생각으로는 이왕 읽을 거라면 이 한 권으로 끝날지도 모르니 수록 작품이 많을수록 좋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이 책을 대출 받아 온 거였다. 1922년 발표된 《가든파티》는 맨스필드의 최고의 작품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발표 당시 수록된 작품은 <대령의 딸들>,

<미스 브릴>, <마 파커의 인생>,<신식 결혼생활>, <가든 파티>,<만에서>의 6개 단편이었다. 나머지 단편 7편 중 <레만 식당>은 초기 작품집인 《독일 하숙에서》, <심리>, <영화>, <딜 피클>, <어린 가정교사>는 《환희》에 실렸었고, 남편이 편집자로 있었던 아방 가르드 잡지 『리듬』에 발표했던 <가겟집 여자>,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인형의 집>이 있다. <인형의 집>과 마지막 단편인 <만에서At the Bay>는 연작 단편이다. 그래서 짦은 중편 정도의 분량이라 난 더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여성 화자의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여 전개가 되고 있고, 주제도 다양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각한다든가 ,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 계급의식, 그리고 부르주아의 위선과 허위 의식 등을 짦은 단편 속에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에는 여성작가로서 폄하되고  동 시대 남성 작가들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점은 캐서린 맨스필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여성의 심리와 감정의 섬세한 변화를 잘 표현해낸 단편 <딜 피클>이나 <심리>와 같은 작품을 남성들이 과연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성 작가들을 비롯해서 일반 남성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여성의 "미묘한" 심리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평가절하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또한 가부장제의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다룬 <대령의 딸들>과 <만에서> 등의 작품에 나타난 남성, 아버지, 남편의 모습은 권위주의적이고 여성들을 옭아매듯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고만 하는 "야만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의 여성들은 그냥 참고만 있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맘에 들어~~! <대령의 딸들>에서는 권위주의의 화신이자 억압적인 아버지였던 대령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두 딸들이 이제는 아버지라는 유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용기를 내었고, 역시 <만에서>의 여성들은 남편의 권위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과 말을 은근히 무시하고 따돌리고 있으며 남편이자 형부, 사위인 남성이 흥분해서 체신 머리 없이 하는 행동에 훨씬 품위 있고 당당하며 차분하게 대처한다. 완전히 대비되는 남성과 여성의 행동에 웃음이 나고 재밌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단편 집을 구성하는 작품 중의 한 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훌륭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능할 때 모든 단편들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름답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이어서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미스 브릴과 미스 모스(단편 <영화>)에게도 희망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또 <마 파커의 인생>에서는 세상에 하나뿐인 예쁘고 소중한 손자를 잃고 마지막 희망마저 놓아버린 마 파커 할머니와 이에 대비되는 마 파커 할머니가 일을 해주는 집 주인 소설가 양반의 무감각한 가슴이 부디 좀 말랑말랑해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인간적인 위로까지는 아녀도 공감은 해 줄 수 있을텐데. 돈 많은 양반이면 뭐하고 소설가인데 돈만 많으면 뭐하나 싶었고 그 계급 의식은 대체 뭐에다 쓰는 건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싫어하지만 최소한 이 소설가 양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도 좀 실천해줬으면 오죽 좋았을까 싶었다. 정말 무심하기가 이를 데 없어 내가 신이라면 머리통을 한 대 날려버렸을 거다! 

 




표제작인 <가든파티>의 주제를 굳이 논하자면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 허위 의식 등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 파커의 인생>에서의 소설가 선생보다 더한 무신경하고 예의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든'에서 파티를 열 정도이니 돈도 많고 집도 으리으리 멋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금상첨화 아닐런지... 오죽하면 첫 문장이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가든 파티에 적당한 날씨를 미리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완벽한 날씨를 구하진 못했을 거다."(p231) 이 문장에 대해서라면 '로쟈'님의 탐구 정신이 빛나는, 《가든파티》의 리뷰 글이 있더라구요!)."라고 했을까! 정원사가 새벽부터 일어나 잔디를 깎고 비질을 해서 정원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정원의 장미는 하룻밤 사이에 수백 송이가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낸다. 아침부터 인부들이 차양을 치러 오고 엄마와 딸들은 파티를 위해 치장을 하느라 바쁘다. 

다른 꽃들은 하나도 없고 "큼직한 분홍색 꽃들이 활짝 피어 핏빛 줄기 위에서 무서울 정도로 싱싱하게 빛나는" 칸나 화분이 배달되어 오고 여러 가지 맛난 파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여기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길 하나 건너 대문 맞은 편 가난한 오두막집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발생한 죽음. 배달꾼의 말을 빌자면  "거기 스코트라고 짐마차 모는 젊은 사람이 살거든요. 오늘 아침 호크 거리 길모퉁이에서 말이 견인기관차를 피하려고 휙 도는 바람에 머리부터 길바닥으로 떨어졌어요. 그러곤 죽었죠."(p247) 아내하고 아이 다섯이 있다는데... 


이 집에서 유일하게 막내딸 '로라'만이 파티를 취소하라고 말한다. "당연히 파티는 못하는 거죠? 그렇죠? 악단도 오고 사람들이 몰려올 텐데. 소리가 다 들릴 거예요. 이웃이나 다름없잖아요."(p249)  하지만 모든 가족들은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말하고 파티는 계속 된다. 정말 "몰인정"한 사람들이다. 거기다 더 가관인 건 파티가 끝나고 남은 음식이 아까워 그것을 바구니에 챙겨 파티복을 갈아입히지도 않고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은 채 막내딸인 로라에게 들려 죽은 짐마차꾼의 집으로 조문을 보낸다는 거다. 하... 정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지키라고 있는 건 아닐 텐데 해도 해도 너무했다. 로라가 파티복을 입은 채 음식이 든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짐마차꾼의 집으로 걸어가는 그 때, 로라는 문득 깨닫는다. 

"...코트라도 입고 왔으면. 드레스가 번쩍거리는 것 같아! 벨벳 리본이 늘어진 커다란 모자까지...... 모자라도 다른 것을 쓰고 올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을까? 그렇겠지.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잘못이란 걸 알았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p256)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 지금까지 평온하던 삶의 균형이 깨지는 파열의 순간! 이 깨달음이 로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맨스필드가 로라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그녀가 비록 어린 여성이지만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충실히 쌓아가는 인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자각을 보여주는 주인공이 사실은 이 단편집에 여럿 등장한다. 호색한으로 무뢰한으로 폭군으로 권위적으로 무개념적인 남성상들에 대비되면서 근대적인 시각을 가진 여성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런 여성들을 만나는 재미가 남달랐던 단편집이었다. 강추합니다.





혼자 있을 때 삶을 생각하면 언제나 슬프기 마련이다. 흥분감 같은 것은 사라져버리고,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만에서> 중에서,
p347

작은 구름이 달을 가로질러 고요하게 흘러갔다. 그 암흑의 순간, 바다는 괴로운 듯 깊은 신음 소리를 냈다. 구름이 흘러가고, 막 음산한 꿈에서 깨어난 듯 희미하게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만에서>의 마지막 문장,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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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중 <만에서At the Bay>

˝아, 남자들이란!˝
스탠리가 출근 전에 하는 꼬락서니라니.. 온 집안 여자들을 다 들먹이면서 귀찮게 한다. 돈 벌어 오는게 무슨 그리 유세를 떨 일이라고...
아내 린다, 처제 베럴, 장모님과 세 딸들, 거기에 물론 하녀인 앨리스까지 모두 자신의 종처럼 부리며 군림하려 든다. 하지만 이 집 여자들은 은근히 그이의 말을 무시하거나 못들은 척 모르는 척 하면서 스탠리 놀려먹기를 즐긴다.^^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자들만 남은 집안의 평화로운 하루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베럴은 식탁에 앉아 차를 따라주었다.
"고마워!"
스탠리가 한 모금 마시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 설탕을 안 넣었잖아."
"아, 미안해요."
그러고도 베럴은 설탕을 타주는 게 아니라 설탕통만 밀어주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스탠리는 스스로 설탕을 타며 푸른 눈을 둥그렇게 떴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스탠리는 처제를 흘깃 쳐다보고 등받이에 기댔다.
"별일 없지? 응?"
스탠리는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척 물었다.
베럴이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으로는 접시를 돌리고 있었다.
"없어요." 
베럴이 가볍게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더니 스탠리에게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 아. 그렇겠지. 그냥 처제가 좀....." - P290

"장모님, 빵 한 쪽 잘라주세요. 합승마치가 올 때까지 십이분 남았어요. 제 신발은 하녀한테 닦으라고 줬나요?"
"그래. 준비 다 돼 있어."
페어필드 부인은 아주 차분했다. - P292

스탠리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장모님, 신발 좀 갖다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처제, 식사 다 했으면 대문으로 가서 마차 좀 잡아줘. 이자벨, 엄마한테 가서 모자 어디에 뒀는지 물어봐. 잠깐만, 너희들 내 지팡이 가지고 놀았니?" - P292

하녀 앨리스까지도 불려 나왔다.
"혹시 지팡이를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쓰진 않았겠지?"
스탠리는 린다가 누워 있는 침실로 달려갔다.
"정말 이상하군. 내 물건은 하나도 제 자리에 붙어 있지를 않아.
이제 내 지팡이까지 치워버렸어!"
"지팡이, 여보? 어떤 지팡이?"
린다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건가? - P293

... ... 무심한 여자들 같으니! 남자들이 자기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건 당연하고, 지팡이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려 들다니. 켈리가 말들 위로 채찍을 휘둘렀다. - P294

"다녀오세요, 형부."
베럴이 다정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인사하기는 쉽지! 베럴은 손을 눈가에 대고 햇살을 가리며 한가히 서 있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스탠리도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탠리는 베럴이 돌아서서 가볍게 깡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스탠리가 가버려서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 P295

실제로 그랬다. 거실로 달려 들어오며 베럴이 외쳤다.
"갔어!"
린다도 방에서 소리쳤다.
"베럴! 스탠리 갔어?"
페어필드 부인이 무명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나왔다.
"갔어?"
"갔어요!"
아, 이 편안함. 그 사람이 집에 없을 때는 얼마나 다른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조차 달라졌다. 비밀이라도 나눈 듯 다정하고 정겨운 목소리였다. 베럴이 식탁으로 갔다. - P294

"어머니, 차 한잔 드세요. 아직 따뜻해요."
베럴은 이렇게라도 이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싶었다. 방해할 남자가 없으니. 이 완벽한 하루가 그들의 것이었다.
"아니, 됐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기를 위로 들어올리며 
"우르르르까꿍!" 하는 모습이 페어필드 부인도 같은 심정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닭장에서 나온 병아리들처럼 방목장으로 달려나갔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하녀 앨리스도 같은 기분이 되어 아껴 써야 할 물탱크의 물을 아낌없이 써댔다.
"아, 남자들이란!"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며 찻주전자를 물통에 넣고 더 이상 공기방울이 올라오지 않는데도 그대로 잡고 있었다. 찻주전자가 남자라서 익사라도 시키려는 듯이.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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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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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참담함 사이에 얼마나 크나큰 간극이 있는지,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도 상상할 수조차 없이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전쟁이라는 상황에 처한 또 다른 ‘우리‘의 고통을 절절히 공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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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P162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 P163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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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P154

7.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P162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 P163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3

현대성의 시민들,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폭력의 소비자들, 전쟁터에 직접 가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그 참상을 세세히 말하는 데 정통한 사람들은 진실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비웃도록 단련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좀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온갖 일을 다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위험에서 멀리 떨어져 의자에 앉은 채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실제로 전쟁 지역에 가서 증인이 되어 왔던 사람들의 노력을 ‘전쟁 관광‘이라고 비웃는 행위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전쟁 사진을 일종의 가식으로서 보는 논의들에서 심심찮게 볼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 P164

이런 정서를 지닌 사람들은 전쟁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천박하거나 저급한 흥미라고, 즉 상업적인 병적행위라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포위되어 있을 당시의 사라예보에서는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을 호통치는 사라예보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 P164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그렇게 하기도 했다.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 거리에 나와 있는 사진작가는 [사진에 담으려고 자신이 좇고 있는 민간인들만큼이나 살해될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이 훌륭한 기사거리를 찾겠다는 일념만으로 당시의 포위 현장을 보도하려는 용기를 냈고, 그러기를 갈망했던 것도 아니었다. - P165

사라예보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던 사진작가들 중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던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전투가 지속되던 와중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사라예보 주민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참화가 사진으로 기록되기를 원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재현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뭔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 P165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이때 그는 몇 년 전 자신이 소말리아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함께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 P165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 행위의] 또 다른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욱 나쁜가?)이었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라예보 주민들의 분노에는
인종주의의 기미가 엿보였다. 그들은 보스니아인들이 유럽인이라는 점을 이방인 친구들에게 쉴새없이 지적해댔다. 그렇지만 이 전시회에 체첸이나 코소보, 또는 그밖에 다른 나라들의 민간인들이 겪은 잔악 행위의 사진이 포함됐더라도 사라예보 주민들은 반발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 P166

9.
... ...이 사진 속의 죽은 병사들은 놀랄 만큼 살아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자신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 말이다. 그렇지만 왜 그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를 꼭 들려줘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해준다 해도]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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