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읽은 책입니다요. 정리해 놓고 보니 참 맥락없이 읽었군요 

 

 

 

 

 

 

 

 

 

 

 

 

 

 

<위대한 왕>

서경식의 <내 서재 속의 고전>을 읽고 처음 알았다. <위대한 왕>에 서경식의 발문이 게재되어 있는데 <내 서재속의 고전>에 나오는 내용과 같은 것 같다. 서경식의 상찬과 달리 소생의 감상은 그냥 그렇다. 요즘같이 스펙타클한 드라마가 차서 넘치고 있는 마당에 스토리가 너무 차분해서 밋밋하다. 그래도 그게 그런대로 또 읽을만은 하다. 인간들은 아름답고 광활한 만주의 타이가 숲을 파괴하고 위대한 왕은 결국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인간 문명에 의해 파괴되고 멸절된 자연과 호랑이에게 진혼곡이자 애가다. 최민식 주연의 <대호>가 생각난다. 위대한 왕의 덩치는 아마 ‘대호’의 그 호랑이 정도일 것이다.

 

 

 

 

 

 

 

 

 

 

 

 

 

 

 

<암흑을 저지하라>

독자 제위께옵서 이구동성으로 재미가 철철넘쳐 줄줄흐른다고 침을 질질흘리며 말씀하셔서 볼 마음이 동했다. 더하여 왠지 장서가이자 수집가로서 불새 시리즈를 확보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충분히 재미있지만 소생 취향에 최고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이 고고학자이기는 하지만 고대 로마에 너무 잘 적응을 하고 결국에는 왕국의 막후 실력자가 되어 어느정도 암흑을 저지하기까지 하다니 놀랍다. 뭐 소설이니까 양해된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주인공이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회유하여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배신하고 조국인 비잔틴 제국에 대항하여 동고트 왕국을 위해 싸운다는 설정은 조금 놀랍다. 벨리사리우스로서는 대단히 치욕적인 설정일 것이다. <중세1>의 표지에 벨리사리우스의 얼굴이 나온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승효상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성씨에 승씨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아국 건축계의 거목인 김수근 문하에서 배웠고 이른바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하다. 같잖은 소생은 승효상이 건축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이 ‘빈자의 미학’이라는 문구가 조금 불편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賢哉라 回여, 一簞食一瓢飮으로 在陋巷하면서도 人不堪其憂하나 回也不改其樂이니 賢哉라 回여(어질구나 회여, 한소쿠리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거리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회는 오히려 그 기쁨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구나 안회여)

 

‘빈자의 미학’이란 뭐, 안회쯤은 아니라도 그래도 빈한하지만 고고한 선비가 말하는 것이 어울릴 법하다는 생각이다. 학식은 높으나 부유한 지주 선비가 빈자의 미학을 운운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다소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 숭효상은 성공한 건축가여서 그가 대표로 있는 이로재건축사무소는 거의 국제적인 대기업수준이다. 승효상이 유홍준의 집 ‘수졸당(守拙堂)’을 공짜로 설계해 주자 유홍준이 그 답례로 이로재(履露齋)의 현판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일요일의 인문학>

25세 연하의 박정연 시인과 결혼한 장석주 시인의 책이다. 일전에 출간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배려, 따뜻함, 차분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그런데 <일요일의 인문학>을 읽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초입에서는 시인이 자꾸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식으로 불초 소생을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뒤로 갈수록 훈계조의 이야기는 점점 없어졌지만, 누구나 자기를 자꾸 가르치려 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은 것이다. 자고로 선비는 불치하문일뿐더러 가르침 받기를 꺼려서는 안되는 것이관데 소생은 천품이 축생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소장도서가 삼만 권이라는 이야기와 경기도 안성 호숫가에 있다는 시인의 집필실인 ‘수졸재(守拙齋) 이야기. 유홍준의 집은 일명 ’수졸당이라고 한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여기 알라딘 마을에도 마린보이 한창훈 작가를 흠모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 줄로 알고 있다. 불초하고 아둔한 소생은 바다사나이 한창훈의 책을 이제야 처음으로 읽었다. 온통 회 이야기다. 소생이 어릴 때 먹은 회라고는 아나고 밖에 없었는데 그 눈처럼 하얀 놈을 붉은 초고추장 듬뿍 찍어 오드득 뽀드득 씹어먹으면 달달메콤한 고추장 맛 사이로 고소한 아나고 향이 입안 가득했다. 요즘도 아나고 회가 있는지 모르겠다.

 

농어, 우럭, 광어, 소라, 성게, 해삼, 가자미, 참돔, 돌돔, 감성돔 등등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돌게하시는 어족들이 속속 계속 등장한다. 새꼬시에 소주 일잔 생각이 안 날수 없다. 참고로 광어와 도다리 구분법. 도다리, 가자미, 넙치는 생긴 것이 비슷해서 헷갈린다. 셋다 가자미류다. 넙치는 광어고, 가자미는 가자미다. 참가자미, 줄가자미, 용가자미, 범가자미, 돌가자미 등이 있다. 돌가지미를 도다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생김새가 비슷하다보니 다른 가자미도 그냥 도다리라고 한다. 결국 도다리=가자미다. 광어와 도다리 구분법은 눈알이 어느쪽에 있느냐에 따라 좌도우광이니 우도좌광이니 하는데 이것도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고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장정일, 작가>

일전에 장정일의 <악서총람>을 읽고 팬심이 발동해서 이 책도 구입해서 읽었다. 장정일의 다양한 방면의 작가들 43인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김어준, 윤광준, 우석훈, 고미숙, 조용현 등 몇몇을 빼고는 거의 가 다 초면이다. 장정일이 애정하고 있는 희곡 작가가 많은 것도 한 이유다. 도서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이니 뭐니 해서 법원 판결에 의해 초판본 여러군데가 삭제되고, 작가의 월급이 압류되고, 작가가 자신의 책을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포 하는 등등 논란이 되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편의 일부를 옮겨본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의 새로운 시각이나 연구도 ‘일본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역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똑 같은 진실이라 하더라도 어떤 진실은 값어치가 있고 어떤 진실에는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런 사고 구조로 무장하고 이견을 틀어막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실’에는 ‘진실’이라는 값어치가 있다.”(p29)

 

 

 

 

 

 

 

 

 

 

 

 

 

 

 

 

여기서부터는 자고로 읽고 있는 책이다. 언제 어디쯤 읽고 있었다는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로 몇 자 적어본다. <로마제국쇠망사6>은 현재 스코어 414쪽을 읽고 있다. 동로마 제국은 이제 거의 밧데리가 다 되었다. 서유럽의 군사 원조를 얻기 위해 비잔틴의 황제들이 애처로운 구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지난 페이퍼를 들춰보니 2016. 1.19일에 223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하루 평균 3페이지 정도 읽은 게 된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중세1>은 현재 진도 70쪽을 읽고 있다. 2016. 1.19.에는 59쪽을 읽고 있었는데 두달 동안 거의 진척이 없었다.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아있다. <중세1>표지의 중앙에 배치된 인물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이고 그 오른쪽 뒤편의 인물이 벨리사리우스 장군이다. <암흑을 저지하라>에 등장하는 그 벨리사리우스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고 역시 호기롭게 시작한 <현대 중동의 탄생>은 지금 86쪽을 읽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같은 나라들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나라였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해체되면서 새로 생겨난 국가들인데 현대의 이 문제많은 국경이 당시 영국, 프랑스 등 몇 나라 지도부가 책상에 앉아 자기들 마음대로 뚝딱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중앙에 후광 뒤집어쓰고 계신 분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뒤에 계신 분이 벨리사리우스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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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12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툼한 책이네요.^^
붉은돼지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제 서재에서 퀴즈 준비합니다.^^

붉은돼지 2016-03-14 14:54   좋아요 1 | URL
앗! 어제는 바빠서 서니데이 님 퀴즈를 못 봤습니다. ㅎㅎㅎ
앞으론 열심히 보겠습니다. ^^

책읽는나무 2016-03-13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응원합니다^^

붉은돼지 2016-03-14 14:55   좋아요 1 | URL
어머!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

아타락시아 2016-03-1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읽으시네요. 근데, 중세 표지 두 명이 많이 닮았네요..^^

붉은돼지 2016-03-14 14:58   좋아요 1 | URL
전투마법사님 사실 뭐 많이 읽는 편은 아닙니다. 이 페이퍼에 올린 책들도 지난 2~3월 동안에 읽은 것들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똘똘해 보이고 벨리사리우스는 조금 우락부락해 보이는군요..ㅎㅎㅎ
 

<도시와 인간>, <불타는 평원>은 알라딘 중고로 구입했다. <도시와 인간>은 예전부터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것인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4번 <불타는 평원>과 함께 ‘딩동’ 중고입고 알림이 와서 얼른 구입했다. 조금이라도 뭉기적거리면 발빠른 누군신가 채어간다. <불타는 평원>은 금시초문이다. 작가 후안 룰포가 누군가 했는데 소개를 보니 <빼드로 빠라모>의 작가다. 소생은 물론 이것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귀 동냥으로 들어는 봤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화성에서도 질기게 버티는 종자들이니 뭐, 당연한 이야기다. 왠만해선 인간들이 살지 못할 곳은 없다. 얇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뜯어보니 사진은 하나도 없다. 어쨌든 포장되어 있으니 책이 깨끗하긴 하다. <이슬람 예술과 건축>은 책이 요렇게 작은 줄 몰랐다. 미처 규격을 확인하지 못한 소생의 불찰이오나 뭐 그런대로 볼 만은 하다. 일종의 사전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위대한 게츠비>는 펭귄 마카롱 시리즈 구비 목적으로 구입했다. 독서 목적이 아니다. 소생이 소장하고 있는 판본들을 모아보니 삼종이다. 열린책들판은 언젠가는 구입할 것이고 김석희 번역본은 구입할까 말까 조금 고민이다. 표지가 소생의 의지에 저항한다. 이 책들은 반디에서 구입했다. 

 

 

 

 

 

 

 

 

 

 

 

 

 

 

 

 

 

 

 

 

 

 

 

 

 

 

 

 

 

 

 

 

 

 

 

 

 

갱년기라서 그런가 요즘 소생 몸이 좀 이상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발기불능 비슷한 상태다. 발기불능이라기 보다는 욕망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소생의 몸이 요즘은 알라딘 굿즈에 도무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는 환장을 하며 빤스바람으로 달려들었었는데, 뭐 황금의 꽃같이 굳도 빛나던 옛 맹서도 차디찬 티끌이 되았듯이 소생도 이제는 다 된 모양이다. 아서라...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더냐~ 뭐 이런 이야기인지..어쨋든 파도처럼 끓어오르던 욕망이 한낱 포말이 되어 일순간에 없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석가세존께서 도달한 해탈이 이런 경지라면 굳이 애써 정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기 어디쯤에서 사뿐사뿐 봄날은 오고 계시는데, 춘래불사춘이 여기도 있더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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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 2016-03-12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구매하시는 욕망은 여전하신데요.^^

붉은돼지 2016-03-12 18: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
그것마저 없어지면 진짜 다 된 거 아니면 정말 해탈해버린 거 아닐까요??ㅎㅎㅎ

cyrus 2016-03-1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굿즈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

붉은돼지 2016-03-12 18:31   좋아요 0 | URL
저도 생각에 좋은 일인 거 같아요...굿즈 구입하느라 마일리지 안써도 되구요...
그 마일리지로 책을 더 구입할 수 있죠 ㅎㅎㅎㅎ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그 유명한 《자기 앞의 생》을 이제야 읽었다. 전에도 한두 번 주절댄 바 있거니와 축생 따위의 같잖은 것이 가당찮게 베스트셀러에 대한 반감이 있어 그동안 읽지않고 힘써 버티고 있었는데, 남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헛되이 전해진 이름은 없더라는 이야기.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늙으면 뭐든지 계속 버티기가 조금 곤란해진다. 골육이 약해져 뼈에는 구멍이 숭숭 뚫리고, 관절은 수시로 쑤시고, 조여주면서 버티는 근육은 한번씩 풀어져 참 황당하게도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아니,,,의도에 반하여) 몸속에 갈무리되어 있던 내용물들을 밖으로 조금 찔끔 내보내기도 한다. 내용물은 물론 밑에서 나오지만 앞 쪽으로 나올 때도 있고 뒤로 나올 때도 있다.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젊은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무슨 안드로메다로의 우주여행 비슷한 이야기로 여기겠지만 시간이란 놈은 북조선이 호기롭게 쏘아올린 대포동 미사일보다도 훨씬 더 날쌘 것이어서, 인간이나 축생이나 개나 소나 뭐든지간에 세월가면 찌그러지고 쭈그러지고 삭고 닳아 결국은 썩어 흙이 되는 것이다. 말인즉슨 발광(發光)을 하고 발광(發狂)을 하고 용천을 하고 승천을 해도 결국에는 한 웅큼 부토로...한 덩어리 똥떵거리로....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씀되겠다. 어머!!!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갔네. 호호호

 

각설하고, 비록 철은 지났지만 어쨌든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대중가요 ‘모모’의 ‘모모’가 마하엘 엔더(이것도 별 쓸데도 없는 이야기인데, 옛날엔 ‘미카엘 엔더’ 라고 했다. 외국어 표기법이 어떻게 바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데, ‘까라마...’ 어쩌고를 쓴 유명한 러시아 작가를 혹자는 ‘도스토예프스키’라고도 하고 또 혹자는 ‘도스또예쁘스끼’라고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토스토옙스키’라고도 하면서 혹자들 입맛대로 주절거리니 우리 고명하신 작가께옵서 어느날은 ‘도’선생도 되었다가 다른 날은 ‘토’선생도 되었다가 또 ‘또’선생도 되고 뭐 그렇다. 고호는 고흐가 되었고, 노통은 노통브가 되었고, 리건은 레이건이 되었고, 소생은 축생이 되었다. 다행이다. 뭐라도 되어서...)의 소설 <모모>의 그 ‘모모’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 계시는지 모르겠다. 한심한 소생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줄 알았다. 소생은 작년 연말인가 ‘모모’를 부른 가수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그 모모가 그 모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 부끄럽다....음...

 

금일에야 이 책을 읽으니 ‘모모’의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이 구절들이 모두 책 속에 그대로 나오는 문구였다. 옛날에는 ‘날아가는 니스’ 가 과연 무슨 말인가 약간 의아하기도 했던 것이관대, 뭐 나름의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홀로 짐작하고 애써 궁구하여 보지는 못하였다. 아둔한 소생은 다만 ‘니스’가 날아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니스’는 프랑스의 도시 이름이니 날아갈 리가 없고, 날아간 것은 역시 새였다. 아무렴!

 

쓸데없는 이야기 하나 더. 또다른 철지난 유행가 중에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노래가 있다.(드라마 주제곡이기도 하다) 가사 중에 ‘...말이 없이 살아가라고, 아주 쉽게 충고하지만, 세상 사는 어떤 사람도...’ 이라는 구절이 있다. 소생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친구의 별명은 ‘장소팔’이다. 짐작하셨다시피 역시 유유상종이다.)은 이 구절 ‘아주 쉽게 충고하지만’을 ‘아저씨께 충고하지만’ 이라고 불렀다. 소생도 그런 줄 알았다. (왜 유유상종이겠는가?) 물론, 왜 아저씨에게만 충고를 해야하나??? 아줌마에게는 과연 필요없나??? 하는 생각도 잠깐은 하기는 했지만, ‘아저씨께’가 ‘아주 쉽게’로 밝혀지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왜 아니겠는가!!!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라. 분명히 아줌마가 아니라 아저씨에게 충고하고 있다.

 

전직 창녀이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유태인 할망구가 창녀들이 낳아 버린 자식들을 맡아 키운다. 모모는 그 아이들 중 한명이다. 모모는 모하메드의 줄임말이다. 모모는 아랍인이고 이슬람교도다. 힘없는 늙은이들, 역시 힘없는 버려진 아이들, 유대인, 아랍인, 여장남자, 창녀들....저 밑바닥에서 이것저것 끌어모은 느낌이다. 인물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연이나 어쨌든 소설은 잘 읽히지만 독후에는 마음이 쓸쓸하고 속이 허하다. 로맹 가리하면 역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먼저 떠오른다. 책 뒤에 있는 작가 연표를 보고 인터넷에서 ‘진 세버그’를 찾아봤다. 숏카트 머리의 보이쉬한 미인이 검색된다. 그녀가 흑인인권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로맹 가리와 별거 중에 진 세버그가 임신을 하자 FBI는 진이 흑인 아이를 가졌다고 비열한 모략을 했다. 나중에 진은 그녀의 차 뒷자석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사인은 과음후 치사량의 약물복용. 진 세버그 사망 일년 후 로멩가리도 권총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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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재그 2016-03-07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앞의 생...너무 좋아하는 작품인데 여기서 보니 또 반갑네요~
리뷰 잘봤습니다.

붉은돼지 2016-03-07 20: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명성만 듣고 있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잡글은 `리뷰`라기에는 보시다시피 얼또당또 않습니다.
그냥 `자기 앞의 생`으로 부터 연상된 쓸데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입지요 ^^;;;

탕기 2016-03-07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젊은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무슨 안드로메다로의 우주여행 비슷한 이야기로 여기겠지만 시간이란 놈은 북조선이 호기롭게 쏘아올린 대포동 미사일보다도 훨씬 더 날쌘 것이어서, 인간이나 축생이나 개나 소나 뭐든지간에 세월가면 찌그러지고 쭈그러지고 삭고 닳아 결국은 썩어 흙이 되는 것이다.˝

아아! 이 구절은 언젠가 (아마도 제가 2~30년이 지나고 난다면)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와닿는군요! 아니, 제 나이에 와닿는다고 하면 혼쭐이 나겠죠... 그래도 참지 못하고 그 구절을 이면지에 옮겨가겠습니다.

『자기앞의 생』은 저도 붉은돼지 님처럼 `베스트셀러 반항증`이라는 중증에 걸려 있는 까닭에 서재에서 뺐다가 꼽았다가 다시 뺐다가 거꾸로 꼽곤 하는... 저의 불치병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런 대표작이라... 읽어봐야겠죠? ㅎㅎ

붉은돼지 2016-03-08 09:22   좋아요 0 | URL
저도 옛날에는 은근히 베스트셀러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일부러 안보고는 그랬습니다만.... 사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은 책들은 다 나름의 무언가가 있는것 같습니다.
탕기님께서 아직 <자기 앞의 생>을 안 읽으셨다고 하시니 언제 시간날 때 함 읽어보심이....
술술 잘 읽힙니다. 양도 많지가 않구요...^^

CREBBP 2016-03-07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저도 그 모모가 저쪽 모모인줄 알았는데, 마치 음성지원되는 목소리처럼 기억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그 가사에 있는데 말이죠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이 없어도 살 수가 있어요?` 라고, 마지막 부분의 클라이맥스(?) , 창녀가 병들어 온동네 사람들이 동원되던 난리부르스와 그 이후의 그 절절함은 말씀하신 대로 앞부분의 작위적인 부분을(그런데 그 작위적 이란 부분도 번역에서 우러나오는 말투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더라는)을 완전 상쇄시켰다는 생각이에요. 리뷰글 너무 재밌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붉은돼지 2016-03-08 09:37   좋아요 0 | URL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여기서 아마 시간도둑이 등장하는 모모를 많이들 떠올리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넷을 보니 `모모`가 78년도 대학가요제 입상 곡이더군요....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가 있는지 어떤지 소생은 잘 모르겠지만....뭐 축생 쯤이나 되고보면 사랑도 좋기는 하지만 역시 밥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죠.....네...^^;;;;

oren 2016-03-07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 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로맹 가리>를 읽고 나서 장문으로 쓴 글 속에 `감만준의 모모`를 슬쩍 집어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붉은돼지 님과 아주 닮은 이유로 말이지요. 제가 쓴 글에서는 `김만준의 모모`뿐 아니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가마우지`까지도 꽉꽉 우겨넣었었지요. 물론 진 세버그의 사진도 빼놓지 않았었구요. 로맹 가리도 대단하지만, 에밀 아자르도 참 대단한 인물이더라구요... http://blog.aladin.co.kr/oren/7383466

붉은돼지 2016-03-08 09:49   좋아요 0 | URL
모모에 새들은 페루에가서....에 가마우지에 진 세버그....등등 꽉꽉 우겨 넣은 글 잘 읽었씁니다.ㅎㅎㅎ

전쟁영웅, 외교관, 저명한 소설가, 여배우와의 사랑....생각해 보면 한 세상 멋지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픔과 상처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3-07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모가 모하메드 였네요.
오늘도 또 하나 더 배웁니다. ^^

붉은돼지 2016-03-08 09:50   좋아요 1 | URL
모모는 아랍소년이고 이슬람교를 믿고 있더군요 ^^

기억의집 2016-03-0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고등학교때 읽었어요.,그 때 이 책 화제만발이어서 사다 읽었는데..저는 마지막에 울었던 것 같아요. 후에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라는 걸 알았어요. 다기 읽으면 작위적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붉은돼지 2016-03-08 09:55   좋아요 0 | URL
지금 읽으시면 아마 감상이 또 다를 겁니다. 우시지는 않을 듯....
제가 작위적이라고 한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소위 비주류에 소외된 계층 인물들만 일부러 끌어모은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독거노인, 버려진 아이, 창녀, 유대인, 유럽의 아랍인, 여장남자, 가난한 흑인들 등등 말이죠 ^^

cyrus 2016-03-08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프로포즈`로 알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프러포즈`로 나오길래 잘못된 건 줄 알았습니다. ^^;;

붉은돼지 2016-03-08 12:33   좋아요 1 | URL
프로포즈가 더 라임이 맞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16-03-08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붉은돼지 2016-03-09 12:28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덕분에 좋은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 ㅎㅎ

에이바 2016-03-0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리뷰 읽으니 가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해요. 자기 앞의 생 딱 한 번 읽었는데, 저 역시 붉은돼지님이 말씀하시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크게 기억에 남아 있질 않아요. 오히려 로맹가리의 영화같은 생애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군요. 이렇게 좋다고 하시니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

붉은돼지 2016-03-09 12:32   좋아요 0 | URL
모모의 이야기도 참 소설같지만..사실 소설이지만.ㅎㅎ 로맹가리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도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일겁니다... 다른 읽을 책도 수두룩 빽빽한데 굳이 이 소설을 한 번 더 읽으실 필요는 없을 듯 하다는 게 소생의 소견입니다. 이 책보다는 차라리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의 사랑이야기`인가 뭔가 하는 책을 한번 읽어보심이.... ㅎㅎㅎ

한 번 더 읽어보실 필요는

에이바 2016-03-09 12:4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결국 말만 이렇디 한참 후에야 읽을 게 뻔해요. 로맹가리의 삶,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고 있어서... 책소개는 감사합니다. 언젠가 읽을 수 있겠죠...? ㅎㅎㅎ

비로그인 2016-03-14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붉은돼지님 좋은 하루되세요.

붉은돼지 2016-03-15 08:51   좋아요 0 | URL
개명하셨군요 ^^ 알파벳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호호호
 

얼마전에 탕기님께서 호텔 아드리아노를 언급하셔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뭔가 싶어 찾아봤더니 

아아아아!!! 제가 예전에 드나들던 호텔이었습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이름조차 잊어버리고 말았군요. 

말하자면, 소생이 말끝마다 주절대며 나불대던 바로 그 '축사'올습니다.....

 

여러분~ 호텔 아드리아노를 소개합니다.

 

 

 

 

 

 

 

 

<붉은 돼지>에 등장하는 호텔 아드리아노입니다.

붉은 돼지의 연인이자 옛 친구의 아내인 아름다운 여인이 운영하는 아드리아해에 있는 해상 호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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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2-2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사가 아닌 처소인거 같습니다. ㅎㅎ
풍광 하나는 끝내줄 것 같습니다. ^^

붉은돼지 2016-02-23 21:43   좋아요 0 | URL
진짜 그림같은 풍광이죠...
라고 쓰고보니 정말 그림이군요 ㅎㅎㅎ

탕기 2016-02-2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 님께서 `요정어` 댓글을 달아주셨을 때, `지브리의 닉네임을 알라딘에서 보다니?!` 했습니다.ㅎㅎ
제게 동심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면, 그건 순전히 미야자키 덕분이라고 늘 생각하거든요.

붉은돼지 님의 축사(?)인 호텔 아드리아노도 가보고 싶은 곳이고,
사츠키(サツキ)와 메이(メイ)가 사는 집과 동네도 가보고 싶습니다.^^

붉은돼지 2016-02-24 09:58   좋아요 0 | URL
사츠키가 살던 집 앞 마당에서 사츠키 메이, 토토로 등이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면 마당에 심은 씨앗이 뽕뽕하고 자라나서 거대한 나무가 되는 그 장면 너무 좋아합니다. 음악도 너무 좋구요...아주 오래전에 토토로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놀라움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야요는 정말 굉장한 것 같아요... 쓰고이!! ^^

CREBBP 2016-02-2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축사군요. 떠다닙니까?

붉은돼지 2016-02-24 09:59   좋아요 1 | URL
정말 멋지죠?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에 나오는 주산지 속의 그 절 생각도 납니다.
저거 아마 인공섬 위에 호텔을 지은 거 같아요..떠다니지는 않는줄 아옵니다.^^

서니데이 2016-02-2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님의 저택이군요. 참 멋있습니다.
날이 추워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붉은돼지 2016-02-24 10:00   좋아요 1 | URL
저게 제 저택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림의 떡이죠 ㅎㅎㅎㅎ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컨디션 2016-02-2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있나 모르겠는데 대전유성에 아드리아 호텔, 생각나네요 ㅎ

붉은돼지 2016-02-24 10:02   좋아요 0 | URL
대구에도 아무 아드리아 모텔 서너개는 있을 줄로 아옵니다.
`아드리아` 발음이 조금 아득한게 멋지구리 하잖아요??? ㅎㅎㅎ
그런데 컨디션님 대전유성의 아드리아 호텔은 어떻게 아시는지요?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신지요 ㅎㅎㅎ

서니데이 2016-02-2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돼지님, 좋은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6-02-2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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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한 개인이 인류의 일원으로 세계사의 흐름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 한 민족, 한 국가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 세상이 우리가 속해 있는 그 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일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1학년 때 다녀왔던 수학여행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소생은 수학여행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이른바 길동이 음주혼절사건이다. 수학여행 첫날 밤 우리반 길동이가 여관방 구석에서 소주 댓병을 혼자 다 쳐마시고는 기절해 자빠져 버린 사건이었는데, 길동이는 거의 혼수상태로 누워있었고 담임선생님이 밤새 병상을 지켰다.

 

소생에게도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놀라 자빠라진 수학여행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하건만 얼마전에 만난 고교 동창 갑돌이는 그 경천동지의 사건에 대하여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반이었지만 숙소의 다른 방에 묵어서 그랬던지 어쨋던지 간에 그 '사건'을 모른다는 것은 갑돌이 이놈이 바로 남파 간첩이라는 증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시간에 여관을 탈출하여 옆 여관에 투숙한 여고생과 짝짜꿍이 맞아 '나이트'에라도 갔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한다면 이해가 영 불가한 것도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음주혼절사건 따위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날 소생은 술이 취해 갑돌이와 엉뚱한 이야기만 하다가 갑돌이의 수학여행 당일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

 

 

각설허고,《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다 읽었다. 말하자면 ‘돼지의 눈으로 본 수학여행’이 아니라 ‘갑돌이의 눈으로 본 수학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제위께 감히 일독을 권한다. 역사를 보는 시야가 얼마간 넓어질 수도 있다. 이미 조망권을 확보하고 계신 분들은 상관없겠지만 시야가 좀 좁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일독하시라. 하기사 광할한 조망권을 확보한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뭐 기분상의 문제다.

   

사실 1600년에 이 세계 어디에서든 일반대중은 무슬림 제국들 그리고 인접한 국경지대를 ‘세계’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시키고 대학의 역사학자 마셜 호지슨을 인용하자면 “16세기에 화성에서 온 방문객은 인간 세계 전체가 무슬림이 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p321)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소아이사 일대를 장악한 오스만 제국, 옛 페르시아 제국의 자리를 확보한 사파비 제국, 인도의 무굴제국 이 3대 제국이 무슬림의 통치하에 있었고,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많은 부분이 이슬람을 믿는 크고 작은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독교 세력은 당시 세계지도 상에서는 서유럽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화성인은 잘못 생각했다. 십자군과 르네상스,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서유럽은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이슬람이 끝없이 확장될 것만 같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 책의 뒷부분은 이 거대한 이슬람 제국들이 어떻게 서유럽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속에서 뜯어먹히는지 그야말로 유혈낭자한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역사 용어도 처음 알았다. (‘그레이트 게임’은 중앙아시아를 뜯어먹기 위한 러시아제국과 대영제국 사이의 아귀다툼을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2차 대전 이후에 생겨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책도 있다 알고 보니 언젠가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쓴 피터 홉커크의 저작이다.)

 

과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위대한 제국을 일구었던 무슬림들은 이제 서유럽 열강에게 수십만, 수백만 명 단위로 집단 학살을 당하는데, 고문을 당해서 죽고, 굶어서 죽고, 얼어서 죽고,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고, 어떻게든 죽고 죽는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 네델란드 등 서구 열강의 이슬람제국 침탈의 역사는 마치 거대한 덩치의 늙고 병든 물소를 여러마리의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어 주디에 피칠갑을 하고 게걸스럽게 늙은 짐승의 사지를 뜯어먹는 세렝게티 초원을 무대로 한 ‘동물의 왕국’ 의 재방송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오늘날 일부 이슬람 과격단체의 미친 난동이 차라리 이해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현대의 테러가 무고하고 순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어났다고 흥분하지만 과거 역사 속에서 무슬림들이 20만 명, 혹은 200만 명이 학살되었을 때는 당연하게도 그들 모두가 무도하고 난폭한 폭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슬람 제국들이 무슨 죄없고 흠없는 무구한 어린 양이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슬람 내부에서는 승리에 도취된 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나태와 타락, 부패와 분열의 병증이 이미 깊었던 것이고, 또한 이슬람 제국(諸國)이 그들의 제국(帝國)을 빛나는 반석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반석이 다른 왕조 혹은 다른 종교의 수많은 무구한 인민들의 골육과 유혈로 갈고 닦아 단단하게 다져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제국(諸國)에 대한 서구 열강의 침탈은 인과응보란 말인가? 복수혈전이란 말인가? 아니면 역사란 결국 되돌이표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오선지 위에서만 깨춤을 추는 콩나물 대가리에 불과하다는 그런 이야기인가?

 

책의 제3장 ‘칼리프조의 탄생’, 제4장 ‘분열’ 부분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이 부분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계승자로 지목된 4명의 칼리프가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기간은 비록 29년밖에 안되지만 향후 수백년동안 이슬람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파란만장한 격동의 인간 드라마라가 펼쳐진다. 이슬람 태동 초기, 그들의 절치부심하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은 경의와 비통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른바 ‘올바르게 인도받은 사자들’인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이 4명의 칼리프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처형, 부활 등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슬람의 핵심적인 종교 우화를 형성한다. 이들은 모두 종교적 신념에 충실하고 놀랍도록 순수하며 또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일화를 소개한다.

   

2대 칼리프 우마르는 자기 옷을 언제나 직접 꿰맷는데 때로는 주요한 국정을 수행할 때 조차 그랬다. 우마르 통치기간 중에 3만의 이슬람군과 6만의 사산 왕족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승리의 소식을 전하러 전령이 급하게 달려와서 메디나에 가까워졌을 때, 기워 고친 외투를 입은 괴상한 늙은이가 길가에서 전령을 따라오며 ‘어떤 소식인가?’, ‘어떤 소식인가?’하고 간절하게 물었지만 전령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말한 뒤 계속 달렸다. 노인은 계속 따라오며 귀찮게 자꾸 물었다. 도시에 다다르자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전령은 거만하게 소리쳤다. ‘나는 당장 칼리프를 뵈어야 한다. 칼리프 우마르는 어디 계신가?’군중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바로 뒤에 있지 않소.’ 겉치레를 하지 않는 것. 전설에 따르면 그게 바로 우마르의 생활방식이었다. 1대 칼피프 아부 바크르는 부유한 상인이었다. 자선을 위해 특히 이슬람으로 개종한 노예들의 자유를 사기 위해 재산을 거의 다 썼다. 칼리프로 지내며 그는 적은 봉급만 받았고, 때때로 그는 돈을 몇 푼 더 벌기 위해 이웃의 소젖을 짜기까지 했다. 예수와 선지자들의 기적과 언행이 성경을 통해 전해졌듯이 칼리프들의 행적도 이슬람 역사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기 632~661년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이다.(p100에서 주로 인용)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제국의 황금시대에는 최고 통치자의 지위가 골육으로 세습되지 않았다. 고대 중국의 요순(堯舜)이 그러했고 (우의 아버지 곤은 치수에 실패해 순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순은 제위를 우에게 물려주었다.), 로마제정 초기의 오현제가 그러했고(철인황제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식에게는 유독 약했는지 윗대 황제들의 선례를 따르지 않고 무도하고 포악한 아들 코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또 이슬람 초기의 4명의 정통 칼리프들이 그러했다. 4대 칼리프인 알리 이후로 이슬람은 우마이야 왕조의 ‘수니파’와 알리를 추종하는 ‘시아파’로 나뉘면서 양쪽 모두가 골육 세습으로 통치자 지위가 승계된다

 

흔히 온고이지신이라고 하지만 로마제국쇠망사나 비잔티움연대기, 이슬람사 등의 역사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역시 인류가 수천년 이래 과연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지난날 핍박받았던 사람들은 이제 핍박하는 사람이 되었고, 복수는 복수를 낳고 유혈은 유혈을 부르고 살육은 살육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용서와 화해와 희생을 실천한 국가나 집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량생산소비사회에 걸맞게 그 복수와 유혈과 살육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답이 없다. 역사 허무주의다. 판을 새로 짜지 않고는 도리가 없다. 매트릭스 식으로 말해서 현재의 인류 역사발전 프로그램을 포맷하고 새 버전의 프로그램을 깔아야한다. 어쩔 수 없이 종말론이다. 일찍이 야훼께옵서 일곱빛깔 무지개로 약속했으니 인류의 종말은 역시 불로써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새 씨앗이 뿌려져야 할 것인 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이요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중동에 급관심이 생겨 《현대 중동의 탄생》을 구입했다. 예전에 구입만 해놓고 읽지 않은 《예루살렘 전기》도 함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로마제국쇠망사》도 아직 덜 읽었고《중세1》도 읽고 있는데 너무 문어발로 벌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뭐 세월대로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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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2-2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넘 좋죠?^^

붉은돼지 2016-02-23 11: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입니다. 재미도 있어요^^
저자의 다른 저서 <카불의 동쪽 뉴욕의 서쪽>도 번역이 되어있는지 찾아봤더니 없더군요...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탕기 2016-02-2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자란 독자일 뿐이라 타밈의 책을 사놓고 도무지 들여다보질 못하고 있습니다. 곁들여 산 책이 비자이 프리샤드의 『갈색의 세계사』인데, 역사책은 가볍게 읽을 수가 없는 터라... 사진의 맨밑에 깔린 사이먼의 『예루살렘 전기』는 더 그렇고요. 시공사에서 읽어달라고 보내줬지만 수 년 째 배신(?) 중입니다. 차라리 1년 짜리 강의를 듣는 편이 저 같은 하급독자에겐 알맞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붉은돼지님께서 말씀하신 `독자제위` 중 한 명이 꼭 되고 말 겁니다. <이슬람>은 관심의 선반 가장 위에 있는 키워드 중 하나거든요. 이 글을 읽으니 의욕과 용기가 전보다는 더 단단해진 듯도 합니다. 뭐, 그걸 읽어야 오르한 파묵을 읽을 테고, 살만 루시디도 읽을 테고, etc, etc... 이슬람을 모른다면(혹은 곡해한다면) 얼마나 많은 세상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요. 넓은 세상에 대한 푸념만 내뱉게 되는군요... 하... 호텔 아드리아노에 들린 취객 행세 하고 갑니다.ㅎㅎ

붉은돼지 2016-02-23 11:53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역사 관련해서 뭐 책이 많이 나와 있지도 않지만 몇 권 읽어볼 수록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 이슬람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전에 우리가 공산당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달린 악마의 모습 같은 ㅋㅋㅋ ) 과 어딘지 비슷하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 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을 이미 사놓으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제 경우에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호텔 아드리아노가 어딘가 했습니다. <붉은돼지>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섬 호텔이군요... ^^

지금행복하자 2016-02-22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지 털러 가야겠군요~ 때를 놓치고 만 책 먼지만 폴폴 날리고 있을겁니다 ㅎㅎ

붉은돼지 2016-02-23 11:55   좋아요 0 | URL
먼지를 털어야합니다. ㅎㅎㅎㅎ
정말 먼지 터는 이야기를 하니 책장에 뽀얗게 앉은 먼지를 좀 털어주고 닦아주고 해야 하는데....ㅜㅜ

서니데이 2016-02-2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붉은돼지 2016-02-23 11: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대보름 잘 보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대보름 잘 보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