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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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한 개인이 인류의 일원으로 세계사의 흐름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 한 민족, 한 국가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 세상이 우리가 속해 있는 그 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일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1학년 때 다녀왔던 수학여행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소생은 수학여행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이른바 길동이 음주혼절사건이다. 수학여행 첫날 밤 우리반 길동이가 여관방 구석에서 소주 댓병을 혼자 다 쳐마시고는 기절해 자빠져 버린 사건이었는데, 길동이는 거의 혼수상태로 누워있었고 담임선생님이 밤새 병상을 지켰다.

 

소생에게도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놀라 자빠라진 수학여행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하건만 얼마전에 만난 고교 동창 갑돌이는 그 경천동지의 사건에 대하여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반이었지만 숙소의 다른 방에 묵어서 그랬던지 어쨋던지 간에 그 '사건'을 모른다는 것은 갑돌이 이놈이 바로 남파 간첩이라는 증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시간에 여관을 탈출하여 옆 여관에 투숙한 여고생과 짝짜꿍이 맞아 '나이트'에라도 갔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한다면 이해가 영 불가한 것도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음주혼절사건 따위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날 소생은 술이 취해 갑돌이와 엉뚱한 이야기만 하다가 갑돌이의 수학여행 당일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

 

 

각설허고,《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다 읽었다. 말하자면 ‘돼지의 눈으로 본 수학여행’이 아니라 ‘갑돌이의 눈으로 본 수학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제위께 감히 일독을 권한다. 역사를 보는 시야가 얼마간 넓어질 수도 있다. 이미 조망권을 확보하고 계신 분들은 상관없겠지만 시야가 좀 좁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일독하시라. 하기사 광할한 조망권을 확보한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뭐 기분상의 문제다.

   

사실 1600년에 이 세계 어디에서든 일반대중은 무슬림 제국들 그리고 인접한 국경지대를 ‘세계’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시키고 대학의 역사학자 마셜 호지슨을 인용하자면 “16세기에 화성에서 온 방문객은 인간 세계 전체가 무슬림이 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p321)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소아이사 일대를 장악한 오스만 제국, 옛 페르시아 제국의 자리를 확보한 사파비 제국, 인도의 무굴제국 이 3대 제국이 무슬림의 통치하에 있었고,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많은 부분이 이슬람을 믿는 크고 작은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독교 세력은 당시 세계지도 상에서는 서유럽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화성인은 잘못 생각했다. 십자군과 르네상스,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서유럽은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이슬람이 끝없이 확장될 것만 같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 책의 뒷부분은 이 거대한 이슬람 제국들이 어떻게 서유럽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속에서 뜯어먹히는지 그야말로 유혈낭자한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역사 용어도 처음 알았다. (‘그레이트 게임’은 중앙아시아를 뜯어먹기 위한 러시아제국과 대영제국 사이의 아귀다툼을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2차 대전 이후에 생겨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책도 있다 알고 보니 언젠가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쓴 피터 홉커크의 저작이다.)

 

과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위대한 제국을 일구었던 무슬림들은 이제 서유럽 열강에게 수십만, 수백만 명 단위로 집단 학살을 당하는데, 고문을 당해서 죽고, 굶어서 죽고, 얼어서 죽고,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고, 어떻게든 죽고 죽는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 네델란드 등 서구 열강의 이슬람제국 침탈의 역사는 마치 거대한 덩치의 늙고 병든 물소를 여러마리의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어 주디에 피칠갑을 하고 게걸스럽게 늙은 짐승의 사지를 뜯어먹는 세렝게티 초원을 무대로 한 ‘동물의 왕국’ 의 재방송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오늘날 일부 이슬람 과격단체의 미친 난동이 차라리 이해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현대의 테러가 무고하고 순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어났다고 흥분하지만 과거 역사 속에서 무슬림들이 20만 명, 혹은 200만 명이 학살되었을 때는 당연하게도 그들 모두가 무도하고 난폭한 폭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슬람 제국들이 무슨 죄없고 흠없는 무구한 어린 양이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슬람 내부에서는 승리에 도취된 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나태와 타락, 부패와 분열의 병증이 이미 깊었던 것이고, 또한 이슬람 제국(諸國)이 그들의 제국(帝國)을 빛나는 반석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반석이 다른 왕조 혹은 다른 종교의 수많은 무구한 인민들의 골육과 유혈로 갈고 닦아 단단하게 다져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제국(諸國)에 대한 서구 열강의 침탈은 인과응보란 말인가? 복수혈전이란 말인가? 아니면 역사란 결국 되돌이표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오선지 위에서만 깨춤을 추는 콩나물 대가리에 불과하다는 그런 이야기인가?

 

책의 제3장 ‘칼리프조의 탄생’, 제4장 ‘분열’ 부분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이 부분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계승자로 지목된 4명의 칼리프가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기간은 비록 29년밖에 안되지만 향후 수백년동안 이슬람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파란만장한 격동의 인간 드라마라가 펼쳐진다. 이슬람 태동 초기, 그들의 절치부심하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은 경의와 비통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른바 ‘올바르게 인도받은 사자들’인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이 4명의 칼리프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처형, 부활 등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슬람의 핵심적인 종교 우화를 형성한다. 이들은 모두 종교적 신념에 충실하고 놀랍도록 순수하며 또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일화를 소개한다.

   

2대 칼리프 우마르는 자기 옷을 언제나 직접 꿰맷는데 때로는 주요한 국정을 수행할 때 조차 그랬다. 우마르 통치기간 중에 3만의 이슬람군과 6만의 사산 왕족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승리의 소식을 전하러 전령이 급하게 달려와서 메디나에 가까워졌을 때, 기워 고친 외투를 입은 괴상한 늙은이가 길가에서 전령을 따라오며 ‘어떤 소식인가?’, ‘어떤 소식인가?’하고 간절하게 물었지만 전령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말한 뒤 계속 달렸다. 노인은 계속 따라오며 귀찮게 자꾸 물었다. 도시에 다다르자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전령은 거만하게 소리쳤다. ‘나는 당장 칼리프를 뵈어야 한다. 칼리프 우마르는 어디 계신가?’군중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바로 뒤에 있지 않소.’ 겉치레를 하지 않는 것. 전설에 따르면 그게 바로 우마르의 생활방식이었다. 1대 칼피프 아부 바크르는 부유한 상인이었다. 자선을 위해 특히 이슬람으로 개종한 노예들의 자유를 사기 위해 재산을 거의 다 썼다. 칼리프로 지내며 그는 적은 봉급만 받았고, 때때로 그는 돈을 몇 푼 더 벌기 위해 이웃의 소젖을 짜기까지 했다. 예수와 선지자들의 기적과 언행이 성경을 통해 전해졌듯이 칼리프들의 행적도 이슬람 역사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기 632~661년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이다.(p100에서 주로 인용)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제국의 황금시대에는 최고 통치자의 지위가 골육으로 세습되지 않았다. 고대 중국의 요순(堯舜)이 그러했고 (우의 아버지 곤은 치수에 실패해 순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순은 제위를 우에게 물려주었다.), 로마제정 초기의 오현제가 그러했고(철인황제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식에게는 유독 약했는지 윗대 황제들의 선례를 따르지 않고 무도하고 포악한 아들 코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또 이슬람 초기의 4명의 정통 칼리프들이 그러했다. 4대 칼리프인 알리 이후로 이슬람은 우마이야 왕조의 ‘수니파’와 알리를 추종하는 ‘시아파’로 나뉘면서 양쪽 모두가 골육 세습으로 통치자 지위가 승계된다

 

흔히 온고이지신이라고 하지만 로마제국쇠망사나 비잔티움연대기, 이슬람사 등의 역사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역시 인류가 수천년 이래 과연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지난날 핍박받았던 사람들은 이제 핍박하는 사람이 되었고, 복수는 복수를 낳고 유혈은 유혈을 부르고 살육은 살육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용서와 화해와 희생을 실천한 국가나 집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량생산소비사회에 걸맞게 그 복수와 유혈과 살육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답이 없다. 역사 허무주의다. 판을 새로 짜지 않고는 도리가 없다. 매트릭스 식으로 말해서 현재의 인류 역사발전 프로그램을 포맷하고 새 버전의 프로그램을 깔아야한다. 어쩔 수 없이 종말론이다. 일찍이 야훼께옵서 일곱빛깔 무지개로 약속했으니 인류의 종말은 역시 불로써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새 씨앗이 뿌려져야 할 것인 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이요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중동에 급관심이 생겨 《현대 중동의 탄생》을 구입했다. 예전에 구입만 해놓고 읽지 않은 《예루살렘 전기》도 함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로마제국쇠망사》도 아직 덜 읽었고《중세1》도 읽고 있는데 너무 문어발로 벌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뭐 세월대로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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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2-2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넘 좋죠?^^

붉은돼지 2016-02-23 11: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입니다. 재미도 있어요^^
저자의 다른 저서 <카불의 동쪽 뉴욕의 서쪽>도 번역이 되어있는지 찾아봤더니 없더군요...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탕기 2016-02-2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자란 독자일 뿐이라 타밈의 책을 사놓고 도무지 들여다보질 못하고 있습니다. 곁들여 산 책이 비자이 프리샤드의 『갈색의 세계사』인데, 역사책은 가볍게 읽을 수가 없는 터라... 사진의 맨밑에 깔린 사이먼의 『예루살렘 전기』는 더 그렇고요. 시공사에서 읽어달라고 보내줬지만 수 년 째 배신(?) 중입니다. 차라리 1년 짜리 강의를 듣는 편이 저 같은 하급독자에겐 알맞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붉은돼지님께서 말씀하신 `독자제위` 중 한 명이 꼭 되고 말 겁니다. <이슬람>은 관심의 선반 가장 위에 있는 키워드 중 하나거든요. 이 글을 읽으니 의욕과 용기가 전보다는 더 단단해진 듯도 합니다. 뭐, 그걸 읽어야 오르한 파묵을 읽을 테고, 살만 루시디도 읽을 테고, etc, etc... 이슬람을 모른다면(혹은 곡해한다면) 얼마나 많은 세상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요. 넓은 세상에 대한 푸념만 내뱉게 되는군요... 하... 호텔 아드리아노에 들린 취객 행세 하고 갑니다.ㅎㅎ

붉은돼지 2016-02-23 11:53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역사 관련해서 뭐 책이 많이 나와 있지도 않지만 몇 권 읽어볼 수록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 이슬람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전에 우리가 공산당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달린 악마의 모습 같은 ㅋㅋㅋ ) 과 어딘지 비슷하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 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을 이미 사놓으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제 경우에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호텔 아드리아노가 어딘가 했습니다. <붉은돼지>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섬 호텔이군요... ^^

지금행복하자 2016-02-22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지 털러 가야겠군요~ 때를 놓치고 만 책 먼지만 폴폴 날리고 있을겁니다 ㅎㅎ

붉은돼지 2016-02-23 11:55   좋아요 0 | URL
먼지를 털어야합니다. ㅎㅎㅎㅎ
정말 먼지 터는 이야기를 하니 책장에 뽀얗게 앉은 먼지를 좀 털어주고 닦아주고 해야 하는데....ㅜㅜ

서니데이 2016-02-2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붉은돼지 2016-02-23 11: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대보름 잘 보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대보름 잘 보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