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편이 고등학교 때 빠져있었다던 김용의 [신조협려]를 읽기 위해 전편과 다름없는 이 책을 읽었다. 차마(?) 무협지를 사서 읽기는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더니 역시나 책 속 여러군데 음식 흘린 자국들이 너저분하게 묻어 있다. 깔끔한 성격이 아닌데 유난히 책에는 가탈을 부리는 건 왜 일꼬?

 

추석 연휴 전에 빌려서 신나게 읽다가 추석 대목에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바람에 읽고 싶어도 읽을 새가 없었다. 그랬더니 이놈저놈이 휙휙 날아가는 꿈을 꾸고 일을 하는데 자꾸 소설 생각이 났다. 그 얘기를 하니 남편이 이제 곧 한달 내내 꿈 꿀거야. 그런다.

 

중국 사람들이 신필(神筆)이라 부른다는 김용, 이 작가의 이야기 보따리 속에 아직도 못 다 꺼낸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소망은 굴뚝 같은데 떠오르는 이야기는 없다. 떠올라도 단편적으로 대강의 줄거리만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 뿐 구체적으로 인물들을 설정하고 극적인 사건은 무엇이며 시대적 배경-이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에 철저함을 부여해야 하고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이며... 끝도 없는 작업을 쉽게(?) 해내는 걸 보면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얘기들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신기하고 부럽다.

 

무협소설이다보니 문학성은 많이 떨어진다. 소설에서 환상성의 가치를 높게 보는 내게는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장르이긴 하지만 개연성도 약해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에 당황하게 된다. 이 맛으로 무협지를 즐겨읽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무엇보다 재미 없으면 안 읽는 나같은 사람들이 빠르게 집중해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이 참 좋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이런면 저런면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풀어 공감이 간다.

 

강호는 의리에 살고 죽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틀이 깨졌다. 단순히 누가누가 무공이 더 강한가를 가지고 싸우는 걸 보면 참 유치하다 싶기도 하고 어차피 인생살이라는게 단순하게 따지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기대한 수행자의 태도는 거의 엿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몽고와 금나라에 치어서 정통성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 조차 장담하기 힘든 격동의 시대, 송을 지키려는 협객들과 금에 협조해 송을 치려는 세력 간 갈등을 그려낸다. 실존인물과 허구 인물을 같이 등장시켜서 실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저 선하기만 한 인물이 없다보니 인물의 입체성이 부각되어 더 재미있다.

 

읽는 내내 답답하게 느껴진 것은 넓디 넓은 중국대륙에서 무선전화, 인터넷은 고사하고 유선전화도 없던 시절이다보니 가까운 사이도 소통이 되지 않아 끄떡하면 오해를 하게 된다. 그 오해 때문에 싸우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속고 속이고...조금 더 이른 나이에 읽었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신조협려』를 요양원에 봉사차원으로 장기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도서관 사서와 실랑이를 벌였다. 『신조협려』는 사조영웅문 다음 이야기인데 그 책을 장기대출 해주면 어떡하느냐고. 도서관에서 그 책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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