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일본번역가로 활동해 온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다. 권남희 번역가는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인데, 나에게 일본번역가 하면 제일 먼저 김난주 번역가가 떠오른다. 내가 본 많은 책이 - 사노 요코의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 나카야 미와의 그림책 "크레파스" 시리즈, "도토리 마을" 시리즈, 고미 타로의 그림책,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 등등 - 김난주 번역가의 번역이었다. 집에 있는 책을 찾아보니 권남희 번역가가 번역한 책으로 마스다 미리의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와 가쿠타 미쓰요의 "종이달"이 있다. 내가 권남희 번역가가 주로 번역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마스다 미리 책을 많이 안 읽어서 인 듯.


초반은 마스다 미리 에세이처럼 너무 말랑말랑하고 순한 맛이어서 별로인가? 했는데, 1/3 지점부터 사노 요코 에세이(만큼은 아니지만)의 맛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마스다 미리의 순한 맛보다 사노 요코의 살짝 매운 맛 취향이다(마스마 미리와 사노 요코 에세이 1~2권 밖에 읽지 않은 내 맘대로 생각이지만^^). 작가님 바람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번역하시고, 에세이도 계속 쓰시면, 10년 후에는 좀 더 매운 맛이 많이 날 듯하다.


책에서 언급한 일본소설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와 유즈키 아사코의 "버터", 김소연 시인의 "시옷의 세계" 읽고 싶은 책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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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10 2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검색해보니까 이분 하루끼 책을 많이 번역하셨더라구요 ㅋ 번역가님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봐야겠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2-06-10 23:00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이 본 책도 많을 것 같은데요? 저도 믿고 읽는 번역가에 추가했습니다^^

독서괭 2022-06-10 23: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전 <종이달>을 읽었는데 이분이 번역한 거군요! 종이달 재밌습니다. 이 책도 관심이 가네요~^^

햇살과함께 2022-06-11 00:04   좋아요 4 | URL
네~ 저도 종이달 재밌게 읽었어요^^

mini74 2022-06-11 2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냥 하루키 책은 다 김난주? 겠거니 했는데 이 분 번역도 많네요. 저도 급관심이 갑니다 ㅎㅎ

햇살과함께 2022-06-13 17:10   좋아요 2 | URL
미니님 마스다 미리 책도 많이 보셨을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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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작가님이 신춘문예 심사에서 뽑으신 유성은 작가님의 첫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네. 마음산책 표지 너무 좋다.

예전에는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하는 다짐 같은 것하지 않았다. 그런 다짐 하지 않아도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이렇게 농땡이 부리며 설렁설렁 사는 지금의 내가 좋다. 죽기 전까지 일을 하고 싶지만,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뒤로,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숨 좀 돌리고 여유 좀 갖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또 열심히 하지못하고 말았다.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 P19

삶을 심사하는 게 아니라 글을 심사하는 것이야, 하고굳게 마음먹어도 어느 한 편도 떨어뜨리기가 송구스럽다.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탈락, 보류, 합격‘으로 상자를 분류해놓고 읽던 중에 구세주처럼 유난히 반짝이는 글을 발견했다. 유성은 씨의 [인테그랄」이었다. 흑백인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유일하게 컬러로 기억되는 한 컷이 있는데, 파란 겨울 하늘과 남의 집 대문 앞에 놓인 하얀 병우유와 그해에 전국적으로 유행한 색색의 루빅스큐브가 있는 풍경이다. 「인테그랄」을 읽었을 때 딱 그 풍경이 떠오르며, 이 작품이야말로 새해 첫 신문에 실리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성격도 사고방식도 전혀 다른 수학자 남편과 합을 맞추어 살아가는 평범한 얘기를 담백한 문장으로 편안하게 쓴 산뜻한 글이었다. - P59

글 쓰는 사람으로 갓 세상에 신고식을 한 분들의 소감은 감동이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유성은 씨의 소감은 이러했다.
"남편 연구실에서 일본 수학자가 쓴 산문집 한 권을 발견했다. 저자는 수학을 왜 연구하냐는 물음에 그저 들꽃같이 피어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누가 내게 글을 왜 쓰냐고 묻는다면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들꽃으로 열심히 피어 있겠다." - P62

사전 편집부에서 자주 언급하는 말 중에 "교정은 그 사람의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사전 교정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나타난다. 사람마다 깨닫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라고도 합니다. - P72

심지어 어른들의 무수한 연애를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텔 로열』이란 소설을 써서 나오키상까지 받았다. 성애 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이다.
목욕탕집 딸이었던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때(?)돈 버는 집이어서 책을 마음껏 사본 덕분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얻게 됐다고 애써 미화해본다. ‘호텔 로열’은 없어졌다고 들었다. 우리 목욕탕도 까마득한 옛날에 없어졌다. - P76

보통은 원서 제목이 그대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더러 출판사에서 책 제목을 확 바꾸어서 낼 때도 있다. "번역가는 제목을 왜 이따위로 번역했을까" 하는 서평을 가끔 보지만, 제목은 100퍼센트 출판사에서 정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도 ‘제목을 왜 이따위로 정했을까‘라고 속으로 욕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제목을 정할 때 역자의 의견은 그리 반영되지 않는다. 역자가 "제목 너무 별로예요"라고 말해봐야 1그램의 무게도 더해지지 않는다. 출판사에서는 마케팅부의 말발이 가장 세다고 한다. 봉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 만드는 책이니 당연하다. 제목을 보고 기함하기도 하지만 저자와 일본 출판사 측의 허락을 받고 바꾸는 것이니, 역자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대수가 아니다. - P77

꽃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면, 오역은 누군가가 까발려주어야 오역이 된다. 알고 오역을 하는사람은 없으니 지적받기 전까지는 바른 번역의 탈을 쓰고있다. 오욕의 오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것.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튀어나온다.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 P86

역주는 어디까지 달아야 할까. 번역하면서 늘 갈등하는문제다. 내가 모르는 건 독자도 모른다는 기준으로 달아야할까. 나는 알지만 독자는 모를 것 같을 때? 나도 알고 대부분 독자도 알겠지만 모를 수도 있는 일부 독자를 위해? 갈등하다 역주를 달기도 하고 어물쩍 넘어가기도 한다. 역주를 다는 게 귀찮아서가 절대 아니다. 너무 친절한 역주는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때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미주(본문 끝에 다는 역주)로 달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 P92

두 사람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은 나, 수줍게 끄덕거리며 "번역의 힘이긴 하죠"라고 혼잣말을 했다. 긴장한 탓에 진심이(?) 나와버렸다. 두 분 뒤에 앉은 통역가가 통역을해주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하며 만찬회장테이블이 넓어서 못 들었을 거라고 꾸역꾸역 생각했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라고 하면 "그죠"라고 대답하는 재수 없는 화법의 나. 앞으로는 누가 빈말을 해주면 "감사합니다" 혹은 "아이,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하고 겸손하게 대답해야지, 굳게 다짐했다. 어렸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을 너무 늦게 깨닫긴 했지만, 더 늦으면치매로 보일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원래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세상이 된 뒤로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겸손한 대화를 나눌 일이 없네. - P122

"신문에 이래 내는 데 얼마고?"
"공짜야."
"세상에, 누가 이래 내주노. 니가 엄마한테 잘하고 하도 착하게 살아서 복 받았는갑다."
"맞아."
사람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 P140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시키며 살고 있다. 물론 외롭다. 외롭지만, 편하다. 편하지만, 찜찜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잠자리에 들며 혼자 반문하지만,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찜찜하지만 편한 외로움을 선택하고 있다. 아, 이렇게 고집스러운 독거노인이 돼가는 건가. - P169

애써 주류에 끼려고 애쓰지 않고, 고만고만한 주변 환경에 만족하며 사는 비주류의 행복. 인싸들 설칠 때 산은산이요, 물은 셀프지, 하고 혼자 노는 아싸의 여유. 행복회로는 돌리기 나름이죠.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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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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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결핵을 비롯한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전쟁의 기억과 가난한 이웃과 자연을 끌어안고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성자 같은 삶은 실천하셨던 권정생 선생님. 모든 인세를 남북한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신 권정생 선생님의 귀한 글 모음이다.


몇 년 전 안동여행에서 찾아간 생가는 진정 '자발적 가난'이 아닌 '자발적 빈곤'의 삶을 택하신 선생님의 생전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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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09 2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지고 있습니다. 자발적 빈곤의 삶을 사셨던, 생가 다녀오셨군요. 전 못 가봤어요. 교회 종지기를 했던 교회도 여전히 있는지요?

햇살과함께 2022-06-09 19:28   좋아요 2 | URL
네 일직교회도 있어요. 근처 폐교를 개조한 권정생문학관도 있어요. 안동여행 가실 기회 있으면 들러보세요. 저도 안동 처음 가봤어요.

프레이야 2022-06-09 20:03   좋아요 2 | URL
넵 안동은 여러 번 갔는데 매번 이곳은 가보질 못했어요. 한번 날 잡아 가봐야겠어요. ^^

햇살과함께 2022-06-09 21:00   좋아요 1 | URL
다리 다 나으시면 가보세요^^

그레이스 2022-06-09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발적 빈곤!
저도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2-06-10 00:08   좋아요 1 | URL
가 보시길 추천드려요^^ 안동여행도 좋았어요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편지모음 책에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2015년에 출간된 양철북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는데. 한길사 사장이 살아계신 권 선생님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출판하다니. 양아치네.

그렇게 한반도에 불어친 바람은 제주도로 여수, 순천, 온 나라 곳곳으로 엄청난 태풍이 되어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6·25 전쟁이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고 고향을 잃고 소중한 인간성마저 파괴되어 버린 채 살고 있다. 일제침략에서시작된 고통의 세월이 백년을 넘었으니 어떻겠는가. 지금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도 가혹한 군사정치의 유산은 그대로 남아있고 어느 것이 참인지아닌지 구분조차 안된다.
동족상잔의 끔찍한 대학살은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저주하면서도, 우리의 적은 다름 아닌 동족이다. 그래서 스무살 아까운 젊은이들을동족의 가슴에 총대를 겨누도록 전쟁터로 내보내고 있다.
어느 누구의 국가를 지키기 위한 보안법인지 국회의원조차 하느님 모시듯 그 국가보안법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걸까.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회의원이란 자리를 잃을까 봐서 그런지, 그것도아니면 내가 아홉살 때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봤던 덩치 큰 미군병사가 휘두르던 몽둥이가 무서운 걸까.
정말 서글프다. (2005년) - P247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 P248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2000년) - P249

나중에 선생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청송 화목 장터에 살면서 화목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이오덕 선생이 그 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 두 사람이 서로 이런 사실을 안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연도를 맞춰보니 우연히 일치했다고 한다. 이 당시 화목은 경상도 골짜기였기 때문에 빨치산이 출몰했고, 붙잡힌 빨치산이 장터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면서 돌 맞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무섭더라고 회상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P281

이오덕, 전우익 선생과의 교분

이야기가 약간 달라지지만, 2003년에 출판된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라는 책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났다. 이 책은 이오덕 선생이 원고를 생전에 출판사에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 책 출간에 대해 권정생 선생은 동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책이 나와 시중에 깔리자, 선생은 매우 화를 내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돈 꿔달라는 편지처럼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적인 내용도 들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책은 내더라도 당사자들이 죽고 난 뒤에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 P285

선생이 아홉살 무렵 일본에서 귀국할 때, 두 형은 일본에 남겨두고 다른 가족들만 귀국했다. 당시 ‘조선인연맹‘ 에 가입해서 귀국하지 못했던두분 가운데 큰형은 작고했고, 작은형 한분은 살아있지만 투병중이라고한다. 가족들이 귀국한 이후 이분들은 ‘조총련‘에서 활동한 것 같다. 1982년으로 기억하는데, 한번은 조탑리 교회 문간방으로 찾아갔더니, 일본에계신 큰형님이 왔는데 조총련이라고 해서 형사들이 똥 누는 데까지 따라 다녀 얘기 한마디도 못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선생의 동화가 특히 분단문제,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게아닐까 생각해 본다. 통일에 대한 선생의 문제의식의 씨앗이 이런 불행한가족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 P287

흔히 동화에다 무리한 설교조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과연 그런 동화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만큼 유익한지 알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훈시나 설교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권의 도덕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고통을 겪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다. 한 포기의 나무와 꽃과 풀도 끊임없이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피운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빛깔로 세상을 밝혀주고있다. 공존은 성스럽다. 이웃사랑은 남의 것을 빼앗지만 않으면 된다. 되로 주고 말로 빼앗는 ‘자선사업‘은 가장 미워해야 할 폭력행위이다.
- <나의 동화 이야기> 중에서 - P289

그는 생전에 동화와 소설, 시와 수필 등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존경해왔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의 이러한 문필업적들은 오래도록 위로와 용기를, 또 가르침과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느 것이나 절실한 울림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 비할 바 없는 삶, 거의 성자의 후광에 둘러싸인 듯한 그의 흉내낼 수 없는 삶에 비하면 빙산(山)의 드러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가 이 세속의 삶을 마감하였고, 오늘 우리는 그를 보내기 위하여 여기 모였습니다.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평화와 통일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아니 사람들뿐 아니라 벌레와 새와 쥐와 개구리,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진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 P292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다운 사람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앞으로는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 권정생 - P293

선생은 짐작했던 대로 짧은 대화도 힘겨운 게 분명했고, 당시 내가 다니던 ‘민들레교회‘의 담임 목사이자 선생의 오랜 벗이기도 했던 최완택목사가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애면글면 찾아가서 수다스럽게 말붙이고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 선생을 돕는 길"이라는 말씀 때문에 다시선생을 찾아갈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논문을 끝마친 뒤에도 종종선생의 글을 찾아 읽으며 선생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권정생 선생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써오셨지만, 지난 100여년간의 우리 삶의 밑바닥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변화와 그 훼절을 가장 근본적으로, 아프게 그리는 대작가이자, 그분의 존재 자체가 이 땅의 일그러진 삶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되는 분이라고, 이라크전 발발 당시에,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겪었던 여러 혼란스러운사건들의 길목에서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선생의메시지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일부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실은 우리 사회 운동 전체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답답하고, 헷갈릴때 나는 종종 "권정생 선생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곤 했었다. - P295

내가 민들레교회를 다니던 시절, 선생이 보낸 안부 편지를 읽은 목사님이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나직히 노래를 읊조리던 모습을 엿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선생이 오래도록 사귀었던 종교인들, 최완택 목사, 이현주목사, 김영동 목사, 정호경 신부와의 교분은 우정의 훈훈함으로 가득 찬 한폭의 풍경화였을 것 같다. 선생은 이분들께 더러 익살스럽게 농을 걸기도 했던 것 같고, 2002년 3월 3일자 <민들레교회이야기〉에 보낸 선생의시는 지금 읽어도 싱긋이 웃음이 난다.

임오년의 기도

눈오는 날 / 김영동이 걸어가다가 / 꽈당 하고 뒤로 자빠졌으면 / 속이 시원하겠다.
오월달에 / 최완택이 산에 올라갔다가 / 미끄러져 가랑이 찢어졌으면 되게 고소하겠다.
칠월칠석날 / 이현주 대가리에 불이 붙어 / 머리카락 다 탈 때까지 /소방차가 불 안 꺼주면 / 돈 만원 내놓겠다
‘올해 ‘목‘자가 든 직업 가진 몇 사람 / 헌병대 잡혀가서/장 백대맞는다면 두 시간 반 동안 춤추겠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 / 모두 정신차려 거듭나기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기도하옵니다 / 아멘.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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