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작가님이 신춘문예 심사에서 뽑으신 유성은 작가님의 첫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네. 마음산책 표지 너무 좋다.

예전에는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하는 다짐 같은 것하지 않았다. 그런 다짐 하지 않아도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이렇게 농땡이 부리며 설렁설렁 사는 지금의 내가 좋다. 죽기 전까지 일을 하고 싶지만,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뒤로,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숨 좀 돌리고 여유 좀 갖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또 열심히 하지못하고 말았다.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 P19
삶을 심사하는 게 아니라 글을 심사하는 것이야, 하고굳게 마음먹어도 어느 한 편도 떨어뜨리기가 송구스럽다.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탈락, 보류, 합격‘으로 상자를 분류해놓고 읽던 중에 구세주처럼 유난히 반짝이는 글을 발견했다. 유성은 씨의 [인테그랄」이었다. 흑백인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유일하게 컬러로 기억되는 한 컷이 있는데, 파란 겨울 하늘과 남의 집 대문 앞에 놓인 하얀 병우유와 그해에 전국적으로 유행한 색색의 루빅스큐브가 있는 풍경이다. 「인테그랄」을 읽었을 때 딱 그 풍경이 떠오르며, 이 작품이야말로 새해 첫 신문에 실리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성격도 사고방식도 전혀 다른 수학자 남편과 합을 맞추어 살아가는 평범한 얘기를 담백한 문장으로 편안하게 쓴 산뜻한 글이었다. - P59
글 쓰는 사람으로 갓 세상에 신고식을 한 분들의 소감은 감동이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유성은 씨의 소감은 이러했다. "남편 연구실에서 일본 수학자가 쓴 산문집 한 권을 발견했다. 저자는 수학을 왜 연구하냐는 물음에 그저 들꽃같이 피어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누가 내게 글을 왜 쓰냐고 묻는다면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들꽃으로 열심히 피어 있겠다." - P62
사전 편집부에서 자주 언급하는 말 중에 "교정은 그 사람의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사전 교정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나타난다. 사람마다 깨닫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라고도 합니다. - P72
심지어 어른들의 무수한 연애를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텔 로열』이란 소설을 써서 나오키상까지 받았다. 성애 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이다. 목욕탕집 딸이었던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때(?)돈 버는 집이어서 책을 마음껏 사본 덕분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얻게 됐다고 애써 미화해본다. ‘호텔 로열’은 없어졌다고 들었다. 우리 목욕탕도 까마득한 옛날에 없어졌다. - P76
보통은 원서 제목이 그대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더러 출판사에서 책 제목을 확 바꾸어서 낼 때도 있다. "번역가는 제목을 왜 이따위로 번역했을까" 하는 서평을 가끔 보지만, 제목은 100퍼센트 출판사에서 정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도 ‘제목을 왜 이따위로 정했을까‘라고 속으로 욕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제목을 정할 때 역자의 의견은 그리 반영되지 않는다. 역자가 "제목 너무 별로예요"라고 말해봐야 1그램의 무게도 더해지지 않는다. 출판사에서는 마케팅부의 말발이 가장 세다고 한다. 봉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 만드는 책이니 당연하다. 제목을 보고 기함하기도 하지만 저자와 일본 출판사 측의 허락을 받고 바꾸는 것이니, 역자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대수가 아니다. - P77
꽃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면, 오역은 누군가가 까발려주어야 오역이 된다. 알고 오역을 하는사람은 없으니 지적받기 전까지는 바른 번역의 탈을 쓰고있다. 오욕의 오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것.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튀어나온다.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 P86
역주는 어디까지 달아야 할까. 번역하면서 늘 갈등하는문제다. 내가 모르는 건 독자도 모른다는 기준으로 달아야할까. 나는 알지만 독자는 모를 것 같을 때? 나도 알고 대부분 독자도 알겠지만 모를 수도 있는 일부 독자를 위해? 갈등하다 역주를 달기도 하고 어물쩍 넘어가기도 한다. 역주를 다는 게 귀찮아서가 절대 아니다. 너무 친절한 역주는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때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미주(본문 끝에 다는 역주)로 달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 P92
두 사람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은 나, 수줍게 끄덕거리며 "번역의 힘이긴 하죠"라고 혼잣말을 했다. 긴장한 탓에 진심이(?) 나와버렸다. 두 분 뒤에 앉은 통역가가 통역을해주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하며 만찬회장테이블이 넓어서 못 들었을 거라고 꾸역꾸역 생각했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라고 하면 "그죠"라고 대답하는 재수 없는 화법의 나. 앞으로는 누가 빈말을 해주면 "감사합니다" 혹은 "아이,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하고 겸손하게 대답해야지, 굳게 다짐했다. 어렸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을 너무 늦게 깨닫긴 했지만, 더 늦으면치매로 보일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원래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세상이 된 뒤로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겸손한 대화를 나눌 일이 없네. - P122
"신문에 이래 내는 데 얼마고?" "공짜야." "세상에, 누가 이래 내주노. 니가 엄마한테 잘하고 하도 착하게 살아서 복 받았는갑다." "맞아." 사람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 P140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시키며 살고 있다. 물론 외롭다. 외롭지만, 편하다. 편하지만, 찜찜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잠자리에 들며 혼자 반문하지만,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찜찜하지만 편한 외로움을 선택하고 있다. 아, 이렇게 고집스러운 독거노인이 돼가는 건가. - P169
애써 주류에 끼려고 애쓰지 않고, 고만고만한 주변 환경에 만족하며 사는 비주류의 행복. 인싸들 설칠 때 산은산이요, 물은 셀프지, 하고 혼자 노는 아싸의 여유. 행복회로는 돌리기 나름이죠.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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