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해녀들은 싸움을 그만두지 않았다. 제주도청으로 가서 "제주도지사는 해녀들과 직접 대화하라"며 노숙하고, 공사 예정지 진입로에컨테이너를 두고 밤낮으로 보초를 서서 공사 차량 진입을 막았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해녀회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신 동부하수처리장 시공을 맡은 대저건설이 해녀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했고, 비대위 네 명에게 각각 1억 9,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다. 해녀들을 억누른 상대는 마을 바깥의 행정기관, 건설사만이 아니었다. 반대입장을 고수한 해녀들은 마을 안에서도 고립되었다. 월정리미래발전위원회는 이장, 개발위원장, 청년회장, 부녀회장, 어촌계장으로구성되었다. 이 중 부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며, 어촌계장을포함해 모두 건설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마을대표단은제주도의 증설계획을 수용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해녀회장은 이를 거부했지만, 해녀회가 어촌계의 하위조직으로 - P45
포함되는 마을회 구조로 인해 어촌계장이 해녀회를 대변했다. 심지어마을청년회 소속 남성들은 마을의 어머니들인 해녀들이 활동하던 공사장 앞 컨테이너를 철거했다. 해녀들이 컨테이너를 다시 세우자 이번에는 전기를 끊어버렸다. - P46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었다. 김은아는 해녀에게 농사와 물질이 어떻게 다른 의미인지를 들려주었다. 해녀들은 물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짓지만, 농지는 대체로 남편 명의로 되어 있다. 농민보조금을 받기 위해 농사를 짓는 가구가 농업경영체로 등록할 때 남성은 경영자인반면 여성은 무급종사자로 기재되곤 한다. 하지만 공동어장에서는 다르다. 해녀들은 자치적으로 입어 시기, 입어 방식을 정하고 바다의 자원을 관리한다. 이로써 가정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스스로 확보한다. 해녀들은 함께 물질을 하며 서로가 바닷속에서 안전을 지켜준다. 이러한 주체성과 공동성은 여성인 해녀들에게 자긍심과 유대감을 - P46
안긴다. 이 이야기는 해녀들의 억척스런 싸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였다. - P47
착취는 생산과정에서 드러난 전가의 일부이다. 전가는 생산과 폐기에 걸쳐 있다. 빼앗는 것보다 떠넘기는 것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전가는 광범위하고 비가시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월정리 해녀들은 똑똑히 외쳤다. 더이상의 떠넘김을 떠맡지 않겠다고. 그로써 월정리가 전가의 땅임이 알려졌다.
마을은 성역이 아니다 월정리 해녀들의 싸움은 또 알려준다. 전가되는 마을, 그 안에도 권력과 위계가 있다. 해녀들이 싸울 때 제주도정과의 갈등은 언론에 드러냈으나, 마을 안에서의 시달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동부하수처리장증설로 마을 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해녀들일 텐데, 마을회 차원의 반대운동 궤도 변경 과정에서 그 목소리는 외면당했으며, 반대운동을 이어가자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는 마을조직의 가부장주의와 불평등성을 드러낸다. 가부장주의는 여전히 농어촌 마을에서 자원의 배치와 의사의 조직을 결정하는 중요한 권력관계이다. - P49
마을은 성역일 수 없다. 그 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상이하고도 비대칭적인 입장과 그에 따른 갈등들이 있다. 제주도에서 떠들썩하게 문제가 되어 여론조사를 한 개발 사안들마다 세대 이상으로 성별에 따른 입장차가 두드러진다. 마을에서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발언할 수 있었다면, 제주도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 P50
기록으로 저항하는 사람들 목수, 어린이책 작가, 전직 기자, 학생, 농부.….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정부의 부당하고 폭력적인 간척사업에저항하여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2003년 결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정기적인 조사와 기록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시민조사단은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갯벌의 생명과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군산으로 매월 첫째 주말 모였고, "10년은 해보자"고 했던 약속을 지켜냈다. 이들의 활동은 2023년 현재까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대 청년은 중년이 되었고, 아빠 손 잡고 걸음마를 할 때부터 도요새 - P54
를 찾으러 다니던 아기 승준은 이제 청년이 되어 수라갯벌의 생명들을조사하고 기록하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기록으로 망각과 왜곡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 P55
강들이 문명을 탄생시켰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문명이 강을 파괴했다는 사실은 말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수계(水)를 망가뜨렸을 때(문명이 붕괴했다는 사실은, 불편하긴 하지만 간과해도 좋은 사소한 일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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