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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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수를 유혹하다

    <나는 꼼수다>를 듣기 시작한건 트친들이 재밌다고 한 민간정보에 의해서였다. 나는 김어준을 몰랐고 그가 ‘딴지일보’를 운영해왔다는 사실조차 그런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처럼 가정, 학교, 직장 모두 철저한 보수 프레임에서 성장해온 독자로 보자면 그의 이력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할 만큼 흥미로운 경우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보수는 소위말하는 진보, 좌파 성향의 언론매체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심지어는 김어준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보수의 문제는 무언가 새로운 가치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인데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사항이 많아진다. 정치의 경우도 헤드라인 정도만 기억할뿐이지 진위여부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정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가 생기는데 그 무지가 들통나기 싫어 대체로 나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중도 합리화하게 된다. 그러곤 어이없게도 무관심하다 말했으니 진짜 무관심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관심을 가지는 건 무언가 자신답지 않다는 정당방위의 수순을 밟게 된다. 더 웃긴 건 아주 보편적인 사안이 아니면 의견을 말하지 않으며 하더라도 ‘경제는 발전되어야 한다’ 식의 원칙적인 발언만 하게 되므로 자기도 모르게 박근혜같은 아우라를 지니게 되며 점차 제대로 보수적으로 비춰지게 된다. 자발적 보수적 이미지 구축의 악순환. 내 주변의 보수들은 대체로 모르니까 알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듯 자신의 태도를 누군가에 의해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꿀 필요가 그다지 없다고 해야 맞지만 그 필요를 인식한다 해도 오랫동안 유지해온 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논리를 주장할만큼 자기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가 맞을 듯하다. 이명박이 사악한 건 얼추 알고들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욕해봤자 나에게 떡 하나 돌아오는 게 없으므로 굳이 남들 다하는 욕에 품위 떨어지게 동참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대개 진보논객들의 정치비평을 연예인 가쉽처럼 우습게 치부하며 그들의 논리를 들었을 때 논리의 전개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 이면의 개인적 열등감이나 자라온 환경, 학력, 재산, 직업등의 외양적인 정보들로 그들을 재단해 불순한 세력의 패키지로 싸잡아 저장한다. 내가 만나온 보수들은 사실 자신들이 보수적이어서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귀찮아서 더 이상 알려고도 않는 성향을 지녔다. 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김어준은 그들 사이에서 평가될 언어로 십중 팔구 욕설이 믹스된 세간의 언어일 확률이 높다. 아마 김어준의 논리를 욕하기 보다는(자세히 모르니까 논리로는 깔 수 없지만) 김어준이 말하는 방식, 그가 구사하는 구어적 애티튜드, 욕설의 스탠스, 외모적 예술성(?), 학벌의 비일류성 따위로 획일적 평가를 내릴 것이 분명하다. 늘 주장하는 것이지만 이 책은 바로 별 대안없이 길러진 보수들이 읽어주어야 할 책인데 그 작자들은 이런 책들에 하등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을 거의 신정아 에세이를 집어 드는 수준과 동일시한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김병만의 에세이를 읽겠다 말한다. 그들은 유시민, 강준만, 진중권, 김어준 등의 진보논객의 서적을 인문이나 정치, 사회과학의 범주에 절대 포함하는 일이 없고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에세이로 하향조정한다. 내가 읽은 유시민, 강준만, 진중권, 김어준의 글은 정치와 상관없이도 각자 분명한 나름의 논리가 있고 그 논리를 표현하는 개성있는 문체들이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보수는 이들의 논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해하므로)이들의 주장을 알 수는 없다. 알 수 없으니 심도높은 비난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 이들 보수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김어준이 주장하는 SNS를 통한 메시지 유통구조이다. 보수의 굳건한 프레임에 아래로부터 옆으로 파고들어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폭풍같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라디오방송이다.

    ‘나꼼수’가 괜히 ‘나가수’의 패러디를 한 것이 아니다. ‘나가수(나는 가수다)’에서 가수의 노래를 듣고 하염없이 우는 사람은 대개 보수일 확률이 많다. 노래 한 곡을 들으면서 그땐 아름답고 정의로왔는데 어느덧 나도 이렇게 변해버렸구나 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자극한다. 그들은 단지 김건모의 노래를 한 번 더 듣고 감동받기 위해 재도전을 수락한다. 김영희 PD는 ‘나가수’의 정확한 핵심 타겟은 중학생 정도의 아이를 둔 42세 주부였다고 밝힌 바 있다. 90년대 가요가 양적 질적으로 발전한 시기에 오렌지족과 같은 이십대를 보내고 중산층의 부푼 꿈을 지닌 채 결혼하여 33평의 강남아파트를 어느 정도 행복의 결산이라 미루어 짐작한 우리 사회 보통의 보수여성. 이들의 남편은 간혹 민주화 세대인 386 운동권일 확률이 있지만 그들도 이젠 어엿한 기득권 세력이 되어 좌에서 우로 자동 전향한 생활형 보수가 되었다. 좌파였다 성공하는 케이스는 계속하여 험난한 정치계에 입문하는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없이 일류대, 대기업, 신도시, 스톡옵션, 인센티브의 성공프레임에 자신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김어준은 ‘나가수’의 핵심 타겟인 42세 주부의 남편 격에 해당하는 연령대로서 그녀들이 보기에 당시 (죄송스럽지만)지방촌놈에 불과한 격이었을 확률이 농후한 인물이다. 소위 말해 오세훈의 강남 아우라와 극적으로 상반되는 위치에 있다. 나는 김어준이 이 나라 42세 보수 성향의 주부들 마음을 논리로 사로잡는다면 승산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감히 승산이 있다는 결론을 나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김어준은 내가 보기에 잘생긴 인물은 아니지만 어때, 씨바 이만하면 잘 생긴 거 아니냐 짓궂게도 물어온다. 니들이 말하는 잘생긴 인물들이 실은 속은 시커먼 족속들인데 나는 이렇게 생긴 대로 살아간다 왜, 내 얼굴은 곧 내 본능이고 나는 내 본능대로 살아가는데 그 본능은 적어도 그들만큼 시커멓지 않거든. 그들은 얼굴과 속이 다르지만 나는 적어도 내 얼굴과 속이 같다는 말이지. 그러니 그들이 이상하게 생긴 거고 내가 잘생긴 것이지.

    ‘나꼼수’의 대박을 예상한 김어준은 이제 연예인 급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상반기가 ‘나가수’의 임재범이라면 하반기는 ‘나꼼수’의 김어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임재범과 김어준의 공통점은 바로 본능에 강력히 호소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이 책의 표지처럼 블루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다. 소위말해 자신이 정통 화이트 컬러는 아니라는 뜻이며 그래도 노빠인 것은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가 야성미 있어 보이라고 장발과 턱수염을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본능적인 자신의 캐릭터와 일치시키는 외모로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42세로 대변되는 보수 성향의 신도시 주부인 내가 보기엔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색다른(?) 남성미를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녀들은 이삼십 대의 여성들보다 트윗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장애가 아닌 한방의 반전드라마의 요인이 되었다. 내 경우 트윗을 하다가 나꼼수를 알게 되었고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방송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아줌마들은 역으로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청취하다 카페에 가입하거나 트윗 계정을 만들게 된 것이다. 애청자로서 열렬히 책을 구매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2. 청춘에 호소하다

  
    어제(10.3)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국민 참여 경선 선거인단 투표가 진행되었다. 김어준을 앞세운 ‘나꼼수’팀도 장충체육관에 가겠다고(감시하겠다고 ㅋ) 미리 공지를 하였다. 물론 나는 그 방송을 들을 때 <닥치고, 정치> 사인회를 하겠구나 예상을 했다. 방송에서 어디다 사인해 드려야 할지 준비들 해오시라 너스레를 떨었기 때문이다. 김어준은 어제 자신의 책 마케팅도 하면서 동시에 선거독려운동도 했다. 젊은 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트위터에 '투표 인증샷'을 올리면 자신의 저서를 주겠다고 선물공세를 한 것이다. 이에 조국 서울대 교수, 공지영 작가도 인증샷을 올리는 시민에게 책과 영화티켓을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고 박원순 후보는 재빨리 공지영 작가의 ‘인증샷 놀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10. 3 국민 참여경선은 선거 베테랑인 민주당에서 조직력을 발휘해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측 지지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상황이었고 현장에서는 박원순 측 관계자들의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어준과 조국, 공지영이 SNS를 통해 끝까지 젊은 층에 호소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트윗 소식으로 뒤늦게 투표에 참여하러 나온 젊은 세대들로 지하철역은 혼잡해지기 시작했고 투표장인 장충체육관 주변은 팬 카페와 시민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던 것.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한 박원순이었지만 어제 경선에선 박영선 후보를 얼마나 따라잡느냐가 관건이었고 젊은 층 투표율이 높아져야 박원순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조직력을 앞세운 민주당에 많이 뒤쳐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박원순은 막판까지 박영선을 바짝 추격하며 최종합계에 앞서는 지지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뉴스에서 백날 투표하러 가시라 계몽해도 비오면 투표율이 낮아지고 날씨 좋으면 놀러가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김어준, 조국, 공지영, 김용민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저서가 있으면서 SNS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진보적 인사들이다. 이른바 SNS 계의 야권인사의 연대와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나도 궁금하다. 비주류 방송과 온라인커뮤니티, 트위터, 그리고 저서까지 다양하게 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김어준이 나는 이명박 못지 않게 치밀하고 꼼꼼하다 생각한다. 김어준은 이제 어두워진 보수 아줌마들의 귀를 뚫고 눈을 띄이게 만든 것은 물론이요 기존 진보인사들과의 연대에서도 젊은 층을 자극할 수 있는 촉매형 SNS 투사로 탄생했다. 그는 이 책이 이명박으로부터의 절망이 우리에게 남긴 희망을 다같이 찾아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하였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순간과는 달리 덮으면서 같이 인간된 어떤 연민을 느꼈는데 그는 라디오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예리하고 심지어는 철학적이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무학(無學)의 통찰이라는 말이 이미 학문을 넘어선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또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이 책에 대한 기대는 그리 높지 못하였다 할 수 있다. 그건 이미 ‘나꼼수’를 통해 BBK사건이나 인천공항 매각건과 같은 이명박 비리에 대해 잘 교육이 되어 있었고 김어준이 구사하는 방식에 열렬한 지지를 한 바 있기 때문에 굳이 책으로까지 반복 학습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택한 이유는 ‘나꼼수’ 이외의 진실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나꼼수’를 좀 더 심화적(?)으로 듣기 위한 개인적 방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이 예상외로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완전 지적이야) 책으로만 보았을 때 유시민은 학구적이고 강준만은 사회적이고 진중권은 미학적이라면 김어준은 이 모든 걸 아우른 대국민적 인간성을 강렬하게 지향하고 있다. 한국적 감성을 기반으로한 진보적 이성에 집요하게 호소한다. 하여 이번 리뷰는 책 읽기 전 한사람이 책 덮은 후 한사람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 책의 인터뷰 방식을 차용하고자 한다. 두 사람의 한사람은 같은 사람이며 편의상 한 1, 한 2로 지칭할 것이다.


3. 정치를 선동하다


-책 읽기 전 한사람(이하 한 1)_  먼저 이 책의 꼼수는 무엇인가. 정말로 조국 때문에 책을 썼다고 보는가.

-책 읽은 후 한사람(이하 한 2)_
글쎄, 일단은 조국바람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해는 갈만한데 일찍 수그러든 조국을 새삼 지지하려고 쓴 거 같지는 않고 조국의 한계를 통해 그 공감을 얻어낸 후 같은 방식으로 박근혜와 문재인을 꼼꼼하게 비교하려 한 것이 아닐까. 나도 처음엔 이 책의 꼼수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나꼼수’가 현재 아이튠즈 팟캐스트에서 미국 1위를 달리고 있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적 민감시기인데 아무래도 무언가 마음이 급했던 게 있지 않았을까 싶었거든. 내 생각엔 그의 절친 오시장이 무상급식 투표로 시장직 사퇴를 건 직후 책의 출간시기를 좀 앞당긴 것이 아닐까 추정. 왜냐하면 이 책에 실린 녹취록은 6월 2일이 마지막인데 아직 안철수가 등장하기 전이야. (원래는 오세훈과 안철수까지 다루었어야 한다고 본다) ‘나꼼수’에서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기자회견한 그날 밤 바로 박경철이 ‘나꼼수’에 등장한다. 그때 김어준이 왜 우셨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더군. 그분의 삶의 궤적이 그 순간 더욱 감동스러워서 울컥했다나.(그때 듣는 나도 좀 뭉클하더라고 살짝 목에 침을 삼키면서 그분은, 이러는데 목이 잠겨있었어)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 사람이 일치하는 분이 안철수이고 나는 그 분의 아우라에 감히 어떤 평가로도 그 흔적에 덧칠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더니 자기도(김어준) 여지껏 수많은 정치인을 만나보았는데 안철수 같은 사람이 딱 한사람 더 있고(문재인) 그러므로 이 바닥엔 자신이 아는 두 명의 사람이 삶과 사람이 일치하는 분이라 말했다. 알다시피 이 책의 결론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이명박이 죽었다 깨어나도 좇아갈 수 없는 고품격 정치 인격의 인물이잖아. 문재인을 부각시키려고 이 책을 썼나 싶었지만 그건 드러난 수이고 진정한 꼼수는 박근혜는 죽어도 안되니 야권연대 인물 중에서 제발 제대로 된 인물을 선별해서 택해보자 하는 일차적 동참요구인 것이지. 그때까지 시간을 벌자는 게 아닐까 싶다. 오세훈이 사퇴한 후 서울시장에 혹시라도 민주당 후보나 그럴리야 없겠지만 나경원이 당선되는 꼴은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게지. 그러니까 이 책은 일정보다 빨리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나와야 할 운명이 되어버렸고 오세훈과 안철수까지 정리하기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라 꼭 끼어들 이유가 명백했던 것이지. 또 자기 이후에도 같이 ‘나꼼수’하는 정봉주 의원이나 김용민 교수가 이차, 삼차적으로 다른 저서 발간계획이 있을 것이고. ‘나꼼수’가 흥행이 될지는 알았겠지만 완전 대박이 나버리니까 책의 완성도보다는 빨리 흥행몰이에 가세해 여론을 다지는 게 중요했던 것이라고 본다. 물론 예판까지 모양새를 갖춘 걸 보면 상당한 인세를 미리 땡겨 써야 할 개인적, 사업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뭐, 돈 때문에 책을 썼겠어. 김어준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에 오백원을 걸고 싶지는 않다) 하하


-한 1_ ‘나꼼수’가 '국내 유일 가카 헌정방송‘을 표방하잖아. 이 책의 컨셉은 무엇인가. 이 책도 가카의 꼼수를 정리하는 수준인가.

-한 2_
‘나꼼수’가 가카의 꼼꼼한 성격을 개그하듯 홍보하는 방송이라면 이 책은 나 김어준은 그런 거 다 안다고 그러니까 이 책 읽는 사람들도 좀 같이 알고나 비웃자는 공개조롱 요구서지. ‘나꼼수’에서 김어준은 사실 정봉주 의원이나 주진우 기자의 디테일에 서론과 결론을 부연하는 역할이야. 둘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고 누구는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그가 한 짓을 보았다, 이런 사실을 조사했다 이런 식으로 증인역할을 하고 김용민 교수가 바리톤으로 정정 혹은 참고발언을 해. 그럼 김어준이 판사식으로 이명박의 정체성을 ‘호연지기’다 ‘밥줄공안’이다 하며 결론짓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전지적 가카 시점으로. 그때 듣는 사람이나 그들이나 순간 가카 찬양의 도가니에 빠져 박수치며 죽는다고 배를 잡고 뒹구는데 유일하게 ‘좆나’, ‘씨바’같은 욕을 추임새로 곁들여 주는 게 김어준이다. 그 연출력은 타고나는 것 플러스 본능적인 직관, 순발력으로서 엄청 꼼꼼한 스킬을 보여준다. 대중의 카타르시스가 분출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도 이명박의 꼼수에 개념적, 문학적인 수사를 적극 활용하여 그를 다양한 개념의 인간으로 규정짓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책에선 조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래서, 그러니까 그 이후에 어쩔 건대 하는 대안의 지점을 자극한다. 더욱 더 이명박이 우리에게 남긴 바람직한 효과, 공로 이것들을 강조한다. 이명박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들까지도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시대적 결핍에 공감하게 되었고 이명박 때문에 지난 시절 우리가 누리던 것들이 실은 굉장히 어렵게 획득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주장한다. 어떤 진보인사도 하지 못한 일을 충격의 각성으로 한 번에 연대시켰다는 점에서 외려 두고두고 동상세우고 기념주화 만들어 감사할 사람이라는 것. 곧 이명박의 절망이 우리에게 남긴 희망을 찾아보자 선동한다. 여러 정치인이 등장하는데 나는 이 책을 덮고 우리 엄마를 차로 치어 죽게 한 운전수 그놈보다 이명박이 더 절절히 미워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욕망에 투표했다는 김어준의 분석에 흠칫하곤 얼굴이 달아오르더라. 솔직히 그때 우리 뭣같이 생긴 이명박 좋아서 찍어준 거 아니잖나. 이명박 뽑아주면 집값도 오를 거 같고 버스도 잘 달릴 거 같고 공원에 조각상도 많아 질 것 같고 월급도 오를 것 같고 삼성이 수출도 많이 할 거 같고 뭐 대충 우리 자신에 득 되는 게 많을 것 같아 눈 딱감고(인물 안보고 ㅋ) 찍어 줬던 거 아닌가. 열받네. 그래서 결국 이명박과 이건희만 졸라 영원한 부자 되었지만.


-한 1_ 이건희? 이 책에 이건희도 비난의 대상인가? 이건희라면 삼성을 비난하는 것일텐데 재벌비리 같은 걸 말하는 것인지.

-한 2_
이 책에서 밀도 높게 다루는 것이 ‘BBK 사건’의 본질과 재벌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먼저 BBK 사건은 ‘나꼼수’에서도 깊게 다룬 주제인데 김어준은 도곡동 땅, 다스, BBK, 옵셔널벤쳐스를 차근히 따라가면서 결국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추정을 단계적으로 마무리 한다. 책에 보면 루트를 상세히 알려주는 전개도도 있음. 아무리 언론에서 떠들어도 뭔 말하는지 몰랐던 독자들도 이 장을 읽고 BBK 사건을 이해 못하는 자들은 없을 것임. 완전 기업형 미니시리즈 시나리오를 완독하는 느낌인데 주인공만 잘생긴 배우로 바꾸면 흥행대박 조짐이 보이는 완벽한 구성이다. 김어준은 불법이 얼마나 성실한지 더 성실하게 꼼꼼히 알려줘. 우리가 모두를 기억할 순 없지만 왜 BBK 관련 기사가 뜨는 날엔 꼭 서태지-이지아, 강호동 세금 탈루 같은 연예인 대형사건이 언론을 장식하잖아. 이 책에 BBK가 어떻게 이지아와 연결되었는지 그리고 이지아의 결혼사실이 어떠한 과정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는지 작가 김어준이 치밀하게 추정소설을 쓴다. 김어준은 BBK를 중점에 놓고 검찰, 국세청, 대형로펌, 재단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 그 행보를 퍼즐 맞추듯 깔끔히 정리한다. BBK의 본질이 곧 우리 보수우파의 정체를 대변한다고 결론짓는다. 우리가 앞으로 유심히 봐야 할 것들은 말이야. 연예인 대형사건이 터질 때는 더욱 그 밑에 소심하게 아주 흐릿하게 뜬 기사를 유심히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건희. BBK가 주류 우파의 속성을 대변한다면 삼성은 우리 사회 경제 권력의 속성을 상징한다. 김어준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사건을 시작으로 삼성의 졸렬한 개그수준을 심판한다. 그리고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른바 서한샘식의 밑줄 좍 식의 강의로 이건희의 이익이 삼성의 이익이고 그것이 곧 가카의 이익이었다는 걸 밝혀준다. 그리고 거기서도 서태지-이지아는 보수우파의 아주 훌륭한 방패박이 되었다는 제보도 해준다. 그녀가 컴백한다는 게 좀 이르다고 누가 그래. 이지아는 결국 홀몸으로 이명박과 이건희를 야들야들 막아준 연예계 희생양이었던데 우리까지 그녀에게 손가락 질 하면 안되지. 그 때문에 애인 정우성도 잃었는데 말야. 아무리 우리가 서태지 왕팬이었고 정우성 신으로 여겼지만 이명박과 이건희가 이지아에 보상해줄 것도 아니므로 우리가 좀 너그러워지자.

    김어준은 이 책에서 삼성의 돈에 포로가 된 우리 공적 시스템을 고발한다. 리움 미술관이 세계 최고급 비자금 관리 창고라 주장한다. 그런데 삼성의 비자금은 삼성을 위해 조달된 것이 아니고 이건희 개인의 용돈이었다 소리친다. 여기서 중요한건 우리가 삼성을 까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이건희가 감옥을 가면 삼성이 망하게 되고 그럼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식의 논리를 제발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건 순전 삼성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일 뿐이고 권력을 회유하고 대중을 협박하고 언론을 통제해 만든 프레임이라는 시각이다. ‘삼성은 돈의 종교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메시아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데 성공한 기업이라는 말씀. 그들의 목적은 이건희가 아니면 사회, 경제가 불안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조성하는 일. 이건희가 망하면 삼성이 쓰러질 것이라는 공식을 정서로 포교하는 일. 김어준 왈. 제발 이건희와 삼성을 분리하자고 외친다. 우리 스스로 이건희 일가와 삼성을 동일시해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노예근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네. 잘못의 주체인 이건희를 벌준다고 삼성이 무너지지 않고 이건희가 악인 것이지 삼성이 악의 실체는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히 삼성 불매운동 할 필요 없다는 거야. 좋은 지적이야. 그리고 김어준은 부연한다. 이건희 치자고 이 책 쓴 건 아니고(그런다고 쳐질 사람은 아니잖아 ㅠ) 그러니까 이미 국가 수준의 권력을 가진 이건희 일가를 상대할 만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이명박은 시정잡배식으로 야합하고 보험들고 나중에 약발 떨어지면 교묘하게 뒤통수치잖아. 그들의 협박과 회유에 분노하고 소리치기 보다는 담담하고 묵묵하게 반대방향으로 그냥 걸어갈 사람. 그게 누구겠냐고.


-한 1_ 문재인을 결론으로 내는 방식이라면 그 사이 많은 정치인들을 다루었을텐데. 의미있는 평가는 없었는지.

-한 2_
글쎄, 나같이 문재인도 몰랐던 사람이 심상정이나 노회찬, 이정희를 알 리가 없지. 김어준은 그들의 언어가 대중에 설득적이지 않은 이유를 논리에의 집착으로 보았다. 나는 진보 정당의 정치인들을 잘 모르지만 김어준이 그들을 평하는 시각이 의미있다고 여겨진 건 그 정치인이 가진 아우라를 인간적으로 분석하고 자기 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중요한건 대중,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 마음이라는 자원은 한정적이어서 비슷한 여러 곳에 나누어 줄 수가 없고 또 생각만큼 논리적이지 않다. 그놈이 그놈이라 생각한다는 말은 꼭 나들으라고 하는 말 같더군. 내가 놀랍게 인식한 건 바로 해당 정치인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모두 김어준식으로 비유, 표현하면서 의미부여하는 건 기본이고 그걸 알게 모르게 이론화한다는 것이지. 이 사람이 가진 건 노무현의 심성이고 저 사람이 가진 것은 박근혜의 아우라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내가 심상정을 몰라도 심상정으로부터 정치인이 필요한 자질은 하나 기억할 수 있게 하지. 김어준이 진보인사들에게 무슨 종교단체처럼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죄의식 마케팅 하지 말라고 충고한건 아주 짜릿하더라구. 논리적으로 맞는데 논리적으로만 맞아서 웃기대. 논리적으로만 맞으면 맞는 줄 안다고. 감정으로 꼬인 매듭은 진보고 나발이고 절대 논리로 풀리지 않는다고. 눈에 띄던 평가중에 유시민을 말하던 부분도 기억나. 자기가 오래전부터 유시민을 좀 아는데 권력의지가 졸라 없는 사람이래. 유시민은 기꺼이 자기를 정치 도구화할 뿐이지 그럴 사람이 아니란다. 문성근을 아주 여성에 집착하는 정치인으로 표현한 것이 쬐금 걸리긴 해. 그러나 모두 참고할만 한 조언이었음. 문성근이 여자 밝힌다는 말만 충격적으로 보인 내 자신이 유치했지만.


-한 1_ 그럼 사람들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박근혜를 이길 수 있으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이미 사람들의 마음의 반쪽을 얻어버린 박근혜를 왜 그토록 이겨야 한다는 거야.

-한 2_
김어준은 정치인의 자질 중 자신이 속한 상황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능력, 전지적 작가시점 같은 능력이 중요하다 말한다. 자신이야 말로 균형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하하. 그런데 박근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모르는 아주 특수한 정치인이라 말한다. 박근혜에게 국가는 아버지 유산이며 정치는 효도이자 제사인데 그래서 국가와 국권, 애국, 비장의 아우라는 도통 좇아갈 정치인이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도무지 생활인, 자연인으로서 구체적이고도 인간적인 경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통찰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지. 생활인으로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삶의 균형감각이 없는 인물이고 자기 삶에서 사실상 인간이 빠진 채로 공주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에 예의를 갖추며 애정을 쏟는 것이 가능한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행보는 알기 때문이 아닌 알아야 하거나 아는 척 하는 수준의 결단일 확률이 매우 높다. 실체없는 국권, 관념적인 애국, 현실성없는 복지, 원칙적이기만 한 인사, 뭐 이런 정치를 지향하지 않겠는가. 구조와 프레임을 통찰하고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자기경험으로부터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다음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물쭈물하다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렇게 학을 떼며 이명박을 겪고도 또 박근혜를 찍게 된다. 끔찍하다. 뭐 이런.


-한 1_ 그렇담 김어준의 인기비결은 무엇인가. 그의 인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것은 무엇인지.

-한 2_ 김어준은 말한다. 구걸하지 않고 쫄지 않고 덕 볼 생각을 말자고. 기득권층을 향한 자세이다. 이미 자신은 기득권이 아니라는 전제를 포함하는데 내가 보았을 때 그도 이제 어엿한 SNS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닐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명박에 대한 증오심과 시대적 결핍, 중산층 추락에 대한 불안감등이 더해져 보수층도 김어준의 목소리와 글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김어준이 잘나서라기 보다는 지금 우리 정치가 민망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라 김어준의 본능화법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찬스에 강한 인물이었고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러한 역사적 찬스를 대단히 영리하게 붙잡은 듯하다. 이 책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진 모르겠으나 ‘나꼼수’의 방송과 연대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려 줄 것이라 믿는 바이다. 다행히 이 책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준이 높고 어느 부분 짠한 감동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김어준은 생활 스트레스의 원인이 정치 때문에 발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 강조한다. 나는 요즘 보수신문을 욕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결코 쿨해 보이거나 지적으로 보이는 수사가 아님을 인지하자. 무관심은 무지와 동일어이고 무지는 곧 무력이다. 아무런 힘을 창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독고다이로 홀홀단신 무관심해봤자 뻔한 프레임속에서 이자만 충실히 내면서 잘리지 말기를 기원하는 인생밖에 더 되겠는가. 이 책에서 외치는 구호는 정치적으로 일어나서 가능하다 서로 믿어보자는 것이지만 나는 그러한 기운 속에서 외려 내 일상의 용기를 감지한다. 어쩌면 정치란 돈 많고 잘난 사람들이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이 별 볼이 없는 대중이지만 그 하나뿐인 마음을 열어 모두 한 곳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김어준은 그 얼음같은 마음을 열게 하여 어디쯤인가 분명 뜨겁고 빛나는 그곳을 간절히 응시하도록 모두의 시선을 이동시켰다. 이명박이 질문을 던졌다면 김어준은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인물쯤 되겠다.(한동안은 말없음표, 말줄임표만 대안이었지 ㅋ) 관점의 축의 대이동. 분명 작은 일은 아니다. 그가 잘생긴 것에 완전(?) 동의는 못해도 그가 잘한 일이라는 것엔 마음껏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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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10-0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은 학구적이고, 강준만은 사회적이고, 진중권은 미학적이라면 김어준은 대국민적인 대중성을 지향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김어준의 가장 큰 공헌은 진중하고 복잡하게 생각했던 정치를 개콘처럼 재미있고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이죠.

cocon 2011-10-1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매력적이시네요^^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영광(?)스럽게도 9기에 이어 10기 인문평가단 활동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웃분이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문을 읽어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동감아닌 통감을 했다. 한달에 두권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들 동안 소설만으로는 할수 없었던 영역의 고민들을 할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당연히 소설을 읽어야 소설을 쓸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소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소설을 쓰려면 소설 읽는 것을 중단해야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내가 소설을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지만 사실 내가 소설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에 멈춘 상태였다.

   어느날 아침 나는 이제 소설을 쓰고 싶다에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무지막지한 믿음 하나로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역시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확인해가면서. 그래서인지 이번 평가단 활동은 처음 인문활동보다는 조금은 여유를 가질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한다.(어쨋든 시작은 했으니까 ㅋ)  짜집기식의 정치서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내 중심을 잡아줄 책들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바이다. 이상한 논리다.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을 안읽는다는. 그러기 위해 인문을 택하였다는.




1. 맹신자들 ( 에릭 호퍼 지음|이민아 옮김, 궁리 ).........................사회과학>사회사상


   세상은 한 번도 우리에게 신념을 요구한 적 없지만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맹신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에 선배따라 다단계회사의 설명회에 불려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어디를 보아도 멀쩡하고 똑똑해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같은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창궐한 집단 속에서 가치는 종교에 다름 없었다. 성공을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기 보다는 같은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듯했다. 이 책이 궁금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광신 현상의 심리적 요인’과 ‘대중운동의 본질’을 추적했다는 것이다. 맹신이라는 단어에 필요이상의 과다, 긍정 너머의 부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대중운동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동기와 심리, 내면을 통해 대중운동의 올바른 역할수행을 주장하고 있다.


“ 특히 군대, 증오, 설득과 강압, 지식인, 소수자 등을 논하는 호퍼의 혜안은 아주 빛난다. 호퍼는 마지막 장에서 대중운동의 발단과 성숙기까지를 살피며, 대중운동이 제대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 유형의 사람이 발전 단계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운동의 토대를 닦는 것은 지식인, 대중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대중운동을 굳건히 다지는 것은 실천적인 행동가라야 한다고. 나치즘이 재앙으로 끝난 것은 히틀러라는 광신적 지도자가 성숙기까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좋은 지도자, 나쁜 지도자를 예로 들며 궁극에 유익한 대중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이한건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 에릭 호퍼(Hoffer·1902~1983)가 '맹신자들'(원제:The True Believer)을 집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1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금광 및 부두 노동자, 웨이터등을 전전하며 노동자 시절에 이 책을 발표했다. 이론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나치즘과 파시즘, 스탈린의 전체주의의 폐해를 목격한 후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좋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피가 끓는 신빈곤층"이 맹신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무너진 중산층 출신 빈민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적절한 충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제대로 무너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일련의 사회현상은 마치 쓰나미처럼 신념에 호소한다. 이것이 집단의식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불평불만은 문제가 시정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가장 신랄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시정을 바래서가 아닌 불평을 위한 불만에 너무나 익숙하다. 마치 불평만이 우리를 연대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언론에서의 평도 좋은 평인데 그건 아마도 진보든 보수든 대중운동에 대한 필요성 이전에 그것을 행하려는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에 대한 공감때문인 듯하다.



2.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강신주, 동녘 )...................................인문학>교양인문


   솔직히 요즘 시 읽는 일이 내겐 즐겁지 않다. 언제부턴지 시는 인문보다 어려워졌고 시를 통해 철학을 발견하고 싶지 않은 나는 시를 외면해온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니 이 책도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고 작년에 출간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처럼 선택하기 맘 편한 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괴로움이라 고백하는 편이 내겐 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때 다루지 못했던 시인중 문정희, 고정희, 김행숙 등 여성 시인들과 백석, 신동엽, 이성복, 김정환, 허연 등을 다룬다고 한다. 전편을 읽지 못하고 속편을 읽는 부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다 대답하는 시인이 문정희님인데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성의 문화를 문정희님으로 대변하고 있다. 어떤 책에 끌리는 이유는 이처럼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이 가을을 기꺼이 시 읽는 괴로움으로 채워놓고 싶은 이유가 알고 보면 사소한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진실. 또 하나 대중철학자로 불리는 강신주 저자가 항상 학문이 아닌 우리 삶에 오랫동안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읽지 않고도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진다. 진실의 사실화, 이것이 추천 이유다

“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적 유사성은 바로 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3.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 백영미 옮김, 판미동......................과학>정신과학



   이 책은 아주 흥미롭다. 영적담론을 과학으로 펼쳐내 보인 책이다. 정신과학에 대한 서적은 최초의지만큼이나 이해도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 나를 만나다>를 비롯한 의식지도의 다양한 개념의 출발점이 된 책이고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완성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는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몸이 유해한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약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근육테스트법’을 통해 우리 몸의 다양한 반응을 관찰했다. 의식지도는 20년에 걸쳐, 모든 연령대와 성격 유형을 망라하는 각계각층의 피험자 수천 명에 대한 수백만 건의 테스트를 근거로 한 개념인 것이다.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로 대표되는 힘을 따르느냐 무감정,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으로 표현되는 위력을 따르느냐에 따라 사회, 문화, 정치 분야에서 우리가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위력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은 폭력, 전쟁, 죽음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했다. 즉, 힘과 위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숨어 있는 결정자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위력과 힘을 구분함으로써 ‘본인의 이익에 영합하고자 하는 정치인과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리의 의식 수준을 끌어내리는 예술 작품과 보기만 해도 의식 수준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예술 작품을 구분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고 말한다. 긍정과 부정을 가르는 기준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듯하다. 살아가는데 있어 철학은 과학을 보완하고 과학은 철학을 증명하는 일의 반복이 결국 생의 의미를 진화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선택의 과학 (리드 몬터규 지음 |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인문학>뇌과학


   이 책을 덮고 나면 인간이란 별스런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과 우리 뇌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 것 같았다. 저자의 연구결과를 훑어보니 결국 인간은 ‘다음 단계’라는 목표를 위해 죽음도 단식도 테러도 가능하다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 말한다. ‘다음 단계’라는 생각이 일종의 보상신호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보상신호가 우리 신경계의 내적구조를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이 결국 다음 단계라는 보상신호에 의해 반복되는 학습이며 이것을 다양하게 재배치하는 과정이 곧 선택하는 패턴이 되며 그 선택의 종류에 따라 얼마든지 자살이나 분신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어떤 사람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은 생의 시간과 비례하는 것 같아도 나이들수록 사실 그 어떤 선택에도 놀라지 않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이것이 더 궁금해진 독자였다. 막연히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게 하는 뇌구조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 수준에서 나는 생각을 멈추곤 했는데 이 생각하는 과정을 뇌과학으로 체계화한 것에 대한 인문서적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 책의 원제는 '왜 이 책을 고르지?(Why choose this book?)'이다. "당신의 인생이란 이 책을 고른 것과 같은 선택의 순간 수십억 가지가 합쳐진 것에 불과하다"는 도발적 선언이다. 선택의 과학적 과정,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그 보편적 원리를 찾는 최신 신경과학 실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


   이 과정을 이해하면 무엇을 선택하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 같다. 살다보면 의외로 똑똑한 여자들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남자를 택하곤 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녀들의 선택은 단지 과학적인 작용이었고 고로 그녀들의 인생은 상당히 과학적인 삶이었다는 사실을.




5. 자아폭발(스티브 테일러 지음 | 우태영 옮김, 다른세상)...............역사>고고학/인류학


   언론의 소개를 보았을 때 이 책은 역사적이면서 철학적이면서 또한 심리학적인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책은 방대한 사유와 그 깊이에 비해 자칫 막연하고 허탈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책 덮고 난후 저자와 같은 의문만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안보고 가진 의문보다는 다 읽고 난 후의 의문이 낫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추천하고픈 이유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지난 6천년 동안 인류가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 바깥이 아닌 우리 내부로 쟁점화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자아폭발’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자아폭발 이후가 곧 타락이라 규정한다. 그러므로 인류는 진보가 아닌 퇴보의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병리적 현상은 가부장제, 남녀불평등, 인종차별, 물질주의 같은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모든 진화의 산물들이다. 나는 사실 인간의 죄의식을 유발하는 인문서적들을 선호하지 않지만 내가 궁금한 건 문제의식을 통찰하는 관점이다. 알고 있는 역사과 알려진 사건이지만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 테일러는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아폭발” 이전, 즉 선사시대의 인류는 우리보다 훨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으며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고대 인류의 삶은 “자아폭발” 이후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삶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흔적은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메리카 인디언, 오스트리아 애버리진을 비롯한 원주민 집단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원주민 집단은 결코 “미개한” 존재가 아니다.“ 

“ 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원주민은 이미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라는 무계급사회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프랑스대혁명, 미국 헌법 기초에 깔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폭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썩 기분좋은 결말은 아닐 것이나 분명 인정하기 어려운 일만은 아닐 터이다. 타락이 진화의 다른 말인 것을 우리는 알고서도 침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덧붙임)

현재 10월 신간들을 추천하라는 안내 페이퍼는 올라오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대부분 신규로 선정된 평가단 분들이 벌써 추천 페이퍼를 작성하고 계시는 듯하다)
9월 말에 10기 평가단 발표가 있었고 바로 10월 달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연휴를 맞아 일정이 늦추어 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달 평가단 마지막 도서들도 선정공지만 뜬채로 아직 배달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정이 꼬이는 것 같아 짜증은 나지만 늘 그렇듯 운영측은 턱없이 바쁠 것이므로 속좁은 내가 이해하기로 한다.

어짜피 작성해야 할 페이퍼였고 안내페이퍼 공지없이도 이렇게 추천은 가능하다.
하지만 월례조회때 선생님없이 우리반 줄선 것 같은 기분은 든다.  

그리고, 2만원 넘어가는 서적들은 (눈물을 머금고 양심상? )제외했다.(정가는 2만원 넘어도 알라딘에서의 가격으로 결정)
사실 인문서적은 소설, 에세이보다 조금 비싼 편이다.
지난 평가단 활동때 <인지자본주의>같이 두껍고 비싼책을 받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런데 책이 비쌀 경우 더 전문적인 내용일 경우가 많아 그 책이 지지를 많이 받아도 선택될 확률이 적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비싼 책은 평가의 목적이 아니라 소장의 목적으로 추천을 한다는 소리도 들려와 스스로 좋은 책이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클릭을 망설이게 되더라는 것. 

내 스스로는 될만한 책 위주로 추천을 하지 말고 서점도 가보고 직접 확인을 해보고
한계를 인정한 상황내에서 최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해 책을 선택하려 노력은 한다.
그런데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출판사의 수락여부와 평가수용의 의지임을 인식하다보니
나 좋다고 책을 선뜻 추천하기는 힘들다 말하고 싶다.(그렇담 과연 이렇게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 큰 의미일까? 하는 딜레마에 당연히 봉착하게 된다) 

잔머리 굴리는 사람을 가장 혐오하지만 위의 페이퍼는 할수 없이 그러한 잔머리의 결과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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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0-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발송을 수, 목에 걸쳐 한다더니...
그렇지 않아도 물건 살 일이 있어 그것과 이것을 어떻게하면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받을 수 있을까? 잔머리 좀 굴려봤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어요.ㅠ

저는 그냥 추천해 달라고 공지 올라오면 그때 올릴 생각입니다.
암튼 참 부지런하심다.^^

한사람 2011-10-03 22:01   좋아요 0 | URL

숙제는 빨리하고 놀아야죠 ㅋ
연휴에 평가단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벌써 연휴는 끝났네요 ㅠ
날씨가 많이 추워졌더라구요
오늘 나갔다가 제대로 떨었습니다..

비로그인 2011-10-0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례조회 때 선생님 없이 줄 선 기분'이라는 표현이 재밌어요 ㅎㅎ
저는 대충 끌리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추천했는데, 조금 뒤통수가 구리네요.
저도 다음 기회가 되면 인문 서적에 도전해보렵니다!

한사람 2011-10-03 22:56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저도 소설때는 대충 본능적으로 끌리는 책으로 다섯개를 채웠어요 ㅋ
장르쪽 걸릴때가 가장 난감했는데 것도 읽고나서 리뷰쓰면서 새로운 시각은 생기더군요
평가단 하면서 무엇보다 같이 추천을 하게 되는 평가단분들을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택하지 않는 책이지만 다른 분들의 이유도 소중한 것이라는 배려가 없으면
나중에 택하지 않은 책이 왔을때 불만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저는 평가단 하면서 어렵고 지루하거나 내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이었지만
그런 책들 때문에 리뷰쓰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뭐, 소설은 편차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선호도의 문제일수 있지만
인문은 맨땅에 헤딩한 저를 생각하면 쉽게 도전할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ㅠ
그런데 인문에 도전하신다고 했으니 그렇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씀? 하하

그렇담 도전 강력히 추천합니다 !!

맥거핀 2011-10-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번에도 서평단을 하시는군요. 책 선정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저도 예전에 8기때 서평단을 했었는데(인문 분야) 하면서 늘상 책을 추천할 때 고민하게 되더군요. 어쩌면 그냥 아무 고민 없이 지금 현재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하면 될텐데도, 아무래도 어떤 정치적(?) 고려들을 알게모르게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알라딘 측에서 공식적으로 뭔가 확실히 세워놓은 원칙이 없기 때문에 조금은 이런저런 말들도 나오는 것 같구요.

추천해주신 책들 중에서는 <의식혁명>이나 <선택의 과학>과 같은 책이 흥미를 끄는군요. 특히 어떤 영적인 부분에 과학적인 측정을 도입했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 것이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흥미롭구요. 저는 오늘 홍대에서 하는 와우북 페스티벌에 가서 당장 읽지도 못할 몇 권의 책을 건져 왔어요. 날씨는 좋고, 읽을 책은 쌓여가고 큰일입니다. 서평단이라도 하면 억지로라도 읽게 될려나요..?^^;

한사람 2011-10-04 00:34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인문 선배셨군요 ㅋ
정치적 고려를 안할수 없죠. 기왕이면 내실있는 책을 읽고 싶은건 마찬가지니까요.
또 함부로 추천하기도 어렵구요.

저도 <의식혁명>은 관심이 많이 가는데요.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와요^^
오늘 날씨가 쌀쌀하던데 홍대는 활기찼겠어요. 책을 그만 사자하면서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수 없듯
책만 보이면 또 이것저것 사게 되는거 같아요. 책을 읽기 위해선 책을 그만 사야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
저는 평가단을 하게되면 억지로라도 리뷰를 쓰게되니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읽은 책들을 다 리뷰쓸수는 없고 자발적인 리뷰가 힘들죠. 소설리뷰는 그만하고 싶기도 하구요 ㅋ


가연 2011-10-0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오랜만에 들어왔네요ㅎㅎ 10기에도 뵐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네요ㅎ 개인적으로는 자아폭발이라는 책이 괜찮게 보이네요. 왠지 연작의 일부분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사람 2011-10-05 09:58   좋아요 0 | URL

10기도 같이 하는 관계군요 ㅋㅋ, 잘됬네요
리뷰쓰기전에 꼭 가연님글 컨닝해요, 하하
쓰 다음에도 확인하구요
9기때 보다 기대가 되네요
<자아폭발>이 역사분야로 분류되어 있어서 그래서 택했어요
도움이 될거 같아서리..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언제나 정성스런 페이퍼 :)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사람 2011-10-12 09:19   좋아요 0 | URL

히, 고생은요~(고생은 취합하고 선정하시는 쪽이 더 하겠죠 ㅋ)
언제나 안 읽어본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쓸 땐 민망한걸요.
대충 보니 이번 인문평가단의 성향을 알수 있겠던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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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절망이 우리에게 남긴 희망을 찾는 법. 일어나, 쫄지마 !,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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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9-3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사서 오늘 배송왔어요. ㅋㅋ 한사람님과 리뷰 경쟁을 하고 싶지만 전 선물 받은 책이 있어서 그 책들을 먼저 읽을려구요. 근데 김어준이 문재인을 지지하신 다는 사실을 아시다니 한사람님도 '나는 꼼수다' 팬이신가요? ㅋㅋ

비로그인 2011-09-3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엄청 기대하고 있는데.. 흙흙 ㅠㅠ

교고쿠도 2011-10-0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한사람님 ^^
저 신간평가단 10기 문학분야에 뽑혔습니다 ^^그동안에 한사람님과 인문사회분야에서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는 생각입니다. 이웃등록 해뒀으니 종종 들를께요.

cyrus 2011-10-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나꼼수 열풍이 대단하더군요. 나꼼수 콘서트도 진행된다던데 1분도 안 되어 표가 매진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한번도 나꼼수를 보지도 못했어요. 어떻게 보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
그리고 10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신거 축하드립니다. ^^

cyrus 2011-10-02 21: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부터 나꼼수를 꼭 들어봐야겠어요. ^^
 

  

 #1. 미학적 퍼포먼스

 

   이 책은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양철학 서적이다. 제목이 된 ‘아이콘’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아이콘(시각화된 명령어)을 뜻하는데, 저자는 복잡한 명령없이 아이콘을 클릭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이 말하는 ‘개념어’를 알고 있으면 전문적 철학지식이 없어도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여, 이 책에선 ‘파타피직스(pataphysics)’, ‘앵프라맹스(inframince)’같은 개념이 38가지가 등장하고 이 개념을 적용한 문화, 시사, 정치, 인물분석이 저자특유의 시선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분명 하나의 개념에 한 권(이상)의 책이 필요할 내용들이지만 저자는 이것들을 모두 모아 한 권에 요약집처럼 묶었으니 철학이나 인문학에 마음이 급한 독자들은 충분히 혹할만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개념정리나 하자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고  무엇보다 매뉴얼이라는 부제에 소장용의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래전 시험공부를 안해놓고 급한 마음에 참고서 요점정리만을 읽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 그냥 내 선택에 헛헛한 미소만 띄우고 말았다. (요점정리는 모든 걸 공부한 사람한테나 필요한 정리가 아니던가 ㅠ)

   한마디로 이 책은 주기적으로 생산된 기사를 잘 묶어 절차에 따라 잘 엮어진 모음집이었고 그걸 ‘진중권’이라는 네임 밸류와 인문학이라는 포장으로 그럴싸하게 상품화한 책이었다. 현재 이 책은 국내도서> 인문학> 철학일반 > 교양철학 혹은 국내도서 > 인문학> 동양철학>한국철학> 한국현대철학의 분류속에 어엿하게 자리하며 현재 인문학 주간 2, 3위를 달리고 있다. 나 같은 독자는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스스럼 없이 판매부수에 기여한 참으로 어리석은 독자였을 것이다. 이건, 출판기획이 아니라 전형적인 기획출판이다.

   나는 미학자이자 문화, 시사평론가인 진중권을 새삼 비판할 마음은 없다. 그럴 주제도 안되고 그런다고 내게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부 평론가들은 5천년이 넘는 한국의 문화를 서양의 이론 잣대로 분석하고자 하는 일 자체가 서구문화 사대주의라는 시각도 있다. 진중권의 비평을 '서양의 권위에 기대어 주체적인 사유나 고민도 없이 너무 쉽게 학자로 행세해 보려는 일종의 사기짓'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젝과 라캉, 벤야민만 들먹이면 모두 문화비평이냐는 것이다. (글쎄, 그럼 누구를 들먹여야 하는 것인지) 요즘 유행하는 심리학 책에 보니 작가와 작품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것이 굉장히 지적으로 보이는 지름길 서평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일반독자들은 잘 알려진 평론가나 유명 정치인, 성공한 소설가를 대놓고 지적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짜깁기나 쓰레기라고 하는 사람을 늘상 기다리며 그들의 논리에 일단 접고 들어가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적절한 논리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지식을 첨가하여 순수한 독자로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돈 한푼, 책 한권 안 받고 그런 글을 올렸다면 열에 아홉은 그 사람을 배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렇게 비난하는 걸 보니 믿는 구석이 있겠군 ㅋ, 그만큼 배웠겠지 ㅠ) 그 글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안한다  손을 들고 싶었지만 이곳 서재만 해도 ‘감동이다’하는 서평보다는 ‘문제있다’ 지적하는 서평이 일단 추천이나 댓글도 많은 걸로 보아서 어느정도 인정해야 하는 연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서평을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진중권의 비평시각이나 저자의 성향같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책을 덮고 났는데 38가지 개념 중 크게 기억나는 것이 없어 내 스스로 허탈감을 감당하지 못했다하는 건 제쳐두고 싶다.  몇가지 용어들은 수첩에 적어보고 입으로도 소리내 보았지만 이게 이렇게 간단히 말해야할 개념들인가, 하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아니 과연 저자가 이러한 개념들을 가르쳐 주고 이 개념을 기준으로 비평을 학습하라는 뜻으로 이 기사를 썼을까) 내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될 것이라는 무지의 전제를 배려하더라도 이건, 쫌.(이 책에 데리다가 두어번 등장하는데 내가 데리다를 모르면 도통 뭔말인지는 접수할 수 없다. 이 책은 데리다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에서 시작하는 식이 아니라 그건 데리다의 무엇이고 저건 벤야민의 무엇인데 내가 보기엔 이것이다, 식이다) 언젠가부터 트렌드가 된 신문 및 잡지 연재 기사, 칼럼이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으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출판되는 서적들에 관한 논의만 하고 싶다. 물론 소설도 카페나 계간지, 온라인 서재에 연재된 후 출판이 되고 있고 반응도 괜찮은 줄로 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은 처음부터 장편으로 기획된 창작물이고 어느 정도 수정이 가해지긴 하지만 집필하고 나서 시류에 맞춰 작가의 네임 밸류를 이용해 다른 장르로 왜곡, 포장, 출하하진 않는다.

   또 신문칼럼, 잡지기사, 특집토론등이 책으로 출간되는 것 자체의 출판기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정치성, 화제성, 의미성, 윤리성에 대한 판단은 출판기획의 몫이고 또 대중에 호소하며 유익한 책들도 있어왔다. 그런데 가끔은 원래 연재되었던 시사적 수준 이상의 과장적 수사를 적용하여 이렇듯 철학이나 인문, 문학서적으로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된 글은 철저하게 시의성을 담보로 한다. 까놓고 말해 철학 개념 정리하려고 그때 그 기사를 쓴 것은 아니라는 말씀. 예를 들어 지난 여름에 임재범이 콘서트에서 나치복장으로 카리스마를 강조해 공연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진중권은 그때 나치군복은 미학적으로 후진 퍼포먼스였다는 평가를 바로 ‘나치 코스프레의 구린 미감’이라는 제목으로 <진중권의 아이콘> 칼럼에 기재한 적이 있다.(2011.7.15) -물론 임재범 논란은 이 책에서 빠졌다. 빠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건 이런식의 주장을 연속하는 기사가 철학의 하위에 속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당시 그는 임재범의 공연미학과 공연윤리 수준을 언급하기 위해 아방가르드의 파토스와 벤야민을 인용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를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하던 90년대 베네통의 얄팍한, 그러나 탁월한 사진 프로젝트처럼’ 위선적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차라리 도발이 되길 원했다면 후에 변명같은 건 안했다면 좋았겠다고 부연했다. (임재범은 예전과 달리 요즘은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데 거기다 대고 미학적 기준을 천명할 것 까지는 없지 않았을지) 뭐 논리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미학적’이라는 잣대로 본다면 적어도 미학전공자인 그를 반박할 여지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그도 지적했듯이 그러한 퍼포먼스가 논란을 일으킬 것을 미리 알고서 애초부터 윤리적인 알라바이를 만들어 놓았던 임재범처럼, 그 역시 한창 인기 절정이었던 임재범의 단독콘서트 시즌에 바로 뜸들이지 않고 직설적인 평가를 내린 것, 어짜피 뜨거운 감자를 손대보고 뜨겁다 말하는 것 자체가 촌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의 한계만 같아서 ㅠ) 


<진중권의 아이콘- '나치 코스프레의 구린 미감'(2011.7.15) / 씨네 21 기사 中에서> 

http://www.cine21.com/do/article/columnList?menu=M551





#2. 지적인 퍼포먼스



   진중권의 아이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상대적 관점을 바라보는 너그러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유독 '시차적 관점'에 대한 사유를 빈번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되는 평가를 많이 해왔기 때문인지 내가 보기에 그 논리야 말로 저자자신을 지적으로 방어하는 습관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시차적 관점이 '팽팽한 긴장속에서 유지하는 새로운 사유의 습관'이라 말한다.  쉽게 말해 당신도 당신 기준 있듯이 나도 내 기준 있는데 서로 기준이 틀리다고 비난하기 보다는 각자 인정한 채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팽팽하지만 늘 새롭게.

   
 
말로 상대주의를 선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현실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데 있다. 어떤 가치가 진정으로 중요한지 말해줄 객관적 기준없이 우리는 살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선택을 대체 어떻게 정당화할수 있을까? 또 그 선택이 선택되지 않은 다른 입장들에 부당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78p
 
   

 
   이 책이 내게 고민을 던진건 철학적 개념들에 대한 요약과 상관없이 바로 저자가 고민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의 합목적성과 그 과정의 실현이다. 어느 한쪽을 위한 상대적 관점이 아니라 그냥 상대주의 자체를 목적하는 습관, 세간에 알려진 비평가들은 애석하게도 그렇게 보인다. 나는 그가 여러 문화, 정치 현상과 대중 예술계인사들을 평하는 잣대처럼 마찬가지로 그를 평하는 다른 잣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도 모르진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해한 그의 방식은 이런 것이다. 나는 지난 시절 여성잡지에서 열페이지 걸러 심심하면 등장하던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특정한 관계가 없다’는 한 줄의 변명과 같은 수준으로 그가 ‘이 책에서 표명한 나의 주관적 견해나 주장들은 고스란히 잊어도 좋다’는 안전장치를 인식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임재범과 타블로, 허경영, 그리고 요즘엔 양악으로 성형수술을 한 여배우들까지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철학개념들로 스스로 내린 평가는 ‘씨네 21’이라는 잡지속의 훌륭한 칼럼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양철학’이거나 ‘한국현대철학’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소견을 전해 드린다. (진중권의 아이콘 연재당시의 칼럼제목은 이 책의 소제목들과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종업계의 오래된 커넥션에 의해 트렌디한 '교양철학'을 기획했고 그것을 '한국현대철학'의 하위분류에 삽입되길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잘 모아서 크리넥스 뽑듯 철학적 개념을 톡톡 추려내고 그것을 기획된 순서에 의해 소제목으로 네이밍하느라 수고한 책이다. 후편집의 승리요, 기획포장의 진화이다.

   가뜩이나 어렵다는 출판계에 찬물을 끼얹는 독자가 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이런 식의 기획출판은 출판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히 지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가수’도 처음엔 장기침체된 음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되었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자신들의 음원사업 확장의 장기 프로젝트였었고 그 결과 새로운 음반 시장을 알게 모르게 죽이는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새로운 소설이나 시집, 정통 인문학 서적보다는 이러한 책이 잘 선택될 시장이라는 것을 알고서 저지르는 만행이 더 얄밉고 괘씸하다. 이건 내 생각인데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런 책은 장르를 따로 분류해 국내도서 > 연재 > 신문(잡지) > 칼럼(에세이) 식으로 위치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

   그는 이 책의 목적에 대해 말하기를 "이 책이 이른바 '인식의 효소'(fermanta cognitionis), 말하자면 독자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미학적으로 멋지고 촌스럽게 써먹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요즘 출간된 책들 중에서 마찬가지로 잡지와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잘 묶어서 더 잘 엮어낸 책들을 찾아 보았다. 그렇다고 다음 책들을 읽어보지 않고서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소장용의 목적도 의미가 있고 또 연재로 볼 때와 한권의 책으로 넘길 땐 그 진중함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바이다.(나 역시 인문서적 추천할때 선택한 책도 있다) 그러나 김여진의 글과 김영희 PD의 인터뷰를 온라인 기사로 보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의 차이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니 그쪽가서 클릭 한번으로 기사를 읽어보고 책의 구입은 그 판단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듯하다. (나같은 시행착오를 방지하려면)

  


 이 책도 '한겨계 훅hook'에 연재된 특집 기사를 엮은 에세이집이다. 그래도 이 책은 사회과학>여성문화, 외에도 에세이>명사에세이로 분류하긴 했다. 하지만 진짜 에세이집으로 출간된 책들에 좀 미안한 책은 아닐까. 아래 주소에 방문해서 김여진 글만 읽어봤다. 물론 다른 분들도 있다.

(http://hook.hani.co.kr/archives/category/%ec%97%b0%ec%9e%ac%ec%b9%bc%eb%9f%bc/%eb%b0%b0%ec%9a%b4-%eb%85%80%ec%9e%90)

 

 

 

 

 이 책 역시 한겨례에 연재한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을 묶어서 엮은 책이다. 장르는 사회과학> 비평/칼럼에 위치해 있다. 뒤늦게 인터뷰를 찾아서 읽어보니 온라인에서 더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책으로 출간되니 확실히 개념서적으로 보이는 건 맞다.

(http://www.hani.co.kr/arti/SERIES/248/)



마침, 오늘 이번 달 평가단 도서로 선정이 되어 이 책은 자세히 읽고 리뷰를 남길수 있게 되었다.
(안그래도 내가 추천한 책이라 또 실망스럽다면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ㅠ 얄궂은 운명이구나 ㅋ)

 

 

 

   지적인 저자, 더 지적인 출판사, 더더 지적인 서평자들은 많다. 우린 더더더 지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쓰고나니 괜히 좋은 기획으로 탄생한 책들을 싸잡아 깎아내린 듯한 기분이 들지만, 진중권의 <아이콘>은 아이쿠였다. 헐.  아침에 트윗에서 출판계에도 '나는 꼼수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인문 MD의 글을 보았는데 대단히 공감하는 바이다. 독자들은 사실 그 속내까지 판단해가며 책을 고르기가 쉽지않다. 마케팅과 화려한 광고, 그리고 기존 네임밸류를 믿고 책을 샀다가 읽은 후라야 후회할 수 있다. 그렇게해서라도 출판이 활성화되고 책 읽는 인구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글쎄, 그러한 기획출판이야 말로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구린 퍼포먼스'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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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아이콘] 읽고 있는데, 무지 재밌네요. 짧은 한 편 한 편이 어쩜 이렇게 깔끔하게 잘 써놨는지 모르겠어요. 지적인 독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이 제게 오지 않았나 싶네요 ㅎㅎ

한사람 2011-09-27 19:11   좋아요 0 | URL

하하, 수다쟁이님. 저 여기 있었어요 ㅋ
저도 재미는 좀 본거 같습니다 ㅠ 쬐금 속은 느낌은 들지만요~
글들이 영화잡지에 연재된 문화비평이라 철학개념서적으로 포장한건 .. 뭐 저같이 기대한 독자만 아니라면
요약집으로 꽂아둘만하구요. 그런데 저는 왜 그 개념들이 잘 기억이 안날까요 흑..

비로그인 2011-09-27 19:42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개념을 소개해주는 책이라서 많이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네요. 며칠 전에는 [철학 vs 철학]을 읽는 사람을 만났는데, 진짜 대단하게 보이던걸요. 칠백쪽이 넘는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하아, 소설만 읽는 소설쟁이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 '')~ 우선 이 책부터 다 읽고 나서 또 도전해봐야지요!

맥거핀 2011-09-2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을 상당히 자주 보는 독자로써 한마디 하면, 진중권 씨의 그 꼭지는 거의 시사칼럼에 가까웠거든요. 말씀하신 임재범 경우만이 아니라, 당시 회자되던 문제 중 진중권 씨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 - 예를 들어 민노당의 북한에 대한 입장, 진보 진영의 통합 문제 등등 - 에 대해서 철학이라는 옷을 입힌 다음에 돌려 까는(?) 글들이 거의 대다수였는데, 이것을 괜히 기초철학 입문서 같이 포장한 거 같네요. (시사와 철학의 연결이다 보니, 그래서 뭔가 상당히 논리정연한 듯이 보이는 글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글은 약간 뭔가 조금 이상해보이는 글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씨네21' 사이트에서 개념의 오용이니 어쩌니 하면서 댓글 논쟁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물론 그런 개념 오용에 대한 논쟁은 진중권 씨만이 아닌, 다른 분들의 글에서도 흔한 논쟁이긴 합니다만..)

진중권 씨 글들을 나름 재미있게 본 저같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이 글들을 모아서 차분히 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했었거든요.^^; (한사람님 글을 보니, 예전에 진중권의 '이매진'도 그렇고, 차라리 그냥 글을 잡지에 게재한 순서대로 묶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한사람 2011-09-28 14:55   좋아요 0 | URL

히히, 철학 옷 입혀서 돌려깐다 ㅋㅋㅋㅋㅋ, 이 죽이는 적절성^^
이게이게 온라인 서점에선 목차가 중요하잖아요. 한눈에 구성된 목차가 씨네 21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원 기사와 비교를 해보니 더 그래요. 차례도 잡지기고 순과는 상관없고(그러니 산발적으로 사건이 나오는데 뜬금없어 보이죠 ㅠ) 칼럼중에 개념용어다 싶으면 쏙 뽑아서 그걸 목차로 들이대요. 그러니 전체 구성만 보면 그럴싸해보이고 음...괜찮군 싶은거죠. 그걸 언제 다 공부하겠어요.

개념공부가 아니라 그냥 진중권 비평 관심있게 보는 독자들은 맥거핀님처럼 의미있을수도 있구요.
하지만, 다 좋은데 진짜 철학개념서적인척 홍보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출판해도 될텐데 꼭 장르이탈(을 통한 격상? ㅋ)을 원하는 자체가 열등감의 산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ㅠ
 

 

#1. 가을 곁, 증거


  가을은,

  방황하기 썩 좋은 계절은 아니다. 성인으로 이십년 살아 오면서 내 스스로 방황하고 있다 느낀 건 늘 여름이었다. 어떤 조짐이 보이는 건 약 오월 무렵 부터이고 한여름이 되면 뜨거워진 태양만큼이나 방황하는 깊이도 커지곤 했다.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하는 건 추석이 지나 찬바람이라는 가을이 피부로 체감될 때, 두어장 남은 달력을 넘겨보며 한해의 이익과 손실을 따져보게 되는 시기. 바로 시월이 오기 전, 이 무렵 부터인 것이다.


  같은 무렵,

  여자들은 필히 자신들의 노화 정도를 체감하게 되는데 주로 탈모, 피부처짐, 소화불량, 불면증등을 호소하게 된다. 이때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감기와 몸살에 시달리고 몸이 좀 나아진 후 여행이라도 가볼라치면 반드시 겨울이 눈앞에 닥쳐와 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준비없이 시간에 이끌려 관성대로 두어 개의 모임에 참석하고 나면 한해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 나이들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지만 한 계절을 무사히 그러고도 알차게 통과한다는 건 결코 쉽거나 작은 일이 아니다. 더불어 앞으로 계절이 중년에 축복이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인간은, 여자는 지나간 계절을 회상한다. 가을은 증상으로 여자의 노화를 유발한다.


  자주,

  발견되는 증상으로 흘러간 가요를 찾아 자꾸 듣게 된다는 것, 가사를 확인하고 새삼 몇 구절에 맞장구를 친다는 것. (나는 오늘 무도를 접고 불후의 명곡을 보았다.)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나 없이도 잘 살아갈까... 이런 류의 가사는 유독 전기고문처럼 가을의 일상을 내버려두지 못한다. 나의 첫사랑은 얼마 전 스마트폰의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사람들은 어떨 때 프로필 사진을 변경할까. 내 경운 하나의 사진에 꽂히면 그 사이트가 폐쇄될 때까지 프로필 사진 같은 건 잘 안 건드리는 쪽인데. 또 내가 아는 남자들은 사진같은 걸 자주 변경하고 꾸미는 세심함 같은 게 없는 사람이 많은지라 그가 멀쩡한 자신의 얼굴에서 그냥 바닷가 같은 사진으로 바꾸어 놓은 게 나는 자꾸 걸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면 사진은 보다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는 증거일 것이고 자연환경은 자신보다 메타포적이니까. 예를들면 떠나고 싶다거나, 자유가 그립다거나, 나는 사라졌다거나 뭐 이런. 그래 어쩜 그도 방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야무진 추측을 해보곤 폰을 던져버렸지만.



#2. 서점 옆, 영화관


   한 달에 한번은 직접 걸음으로 서점엘 가는 것 같다. 서점에 가보면 온라인에서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확실히, 사람들은 가을에 책을 안 읽는다. 텅텅빈 서점에서 나는 방황할 수 없겠다는 실망감이 들었다. 정신은 여름보다 더 뚜렷하고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가거나 떠나고 싶거나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나질 않는다. <도가니>의 개봉에 맞춰 현재 소설베스트는 도가니였고, 약 삼년 째 2,3위는 <엄마를 부탁해>이다. 지겹고 신물이 난다. 언제까지 공지영과 신경숙만이 소설을 지배하는 서점이 되어야 하는 걸까. 유재석과 강호동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이승철과 이문세도. 김건모와 신승훈도. 이들의 공통점은 한 시절이 십년은 간다는 것인데 그럼 앞으로 몇년은 더 공지영, 신경숙이어야 하지 않나. 제길.

 

 
<컨테이젼 -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캐이트 윈슬럿, 주드 로, 마리옹 꼬띠아르>


   울 동네는 운좋게도 서점과 영화관이 같은 건물에 있다. 아이와 함께 <도가니>를 볼 수 없어 <컨테이젼>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우린, 충격을 머금고 영화관을 나왔다. 장르와 소재가 전혀 다른 영화였지만 지난번 <혹성탈출>의 마지막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제 미국은 누구를 대놓고 비판하고 자기들을 치켜세우기 보다는 다같이 구별없이 인간임을 반성하자는 것이구나.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된건 자기들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늘 그렇듯 그들은 영리하다. 이데올로기나 경제, 테러, 환경 등 모든 문제를 따져보기 전에 그 모든 것은 우리 다같은 인간들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근본주의,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영화는 과도하지 않으면서 진중한 메시지를 남겼다. 스티븐 잡스와도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맷 데이먼, 주드 로, 케이트 윈슬럿, 기네스 팰트로같은 흥행배우들을 데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색다른 영화를 연출했다. 시간상 오래 견딘건(?) 맷 데이먼 이었지만 그의 연기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외려 평이해 보였달까. 나는 이들 주연배우들을 보면서 새삼 내가 살아온 그간의 세월을 느꼈다. 약 십년 전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는 <리플리, 2000>라는 영화에서 이미 삼각관계로 출연한 바 있다. 그땐 그들도 한창 팽팽했었는데 어느덧 나처럼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있더라는 것. 그들 중 그런대로 가장 원형을 보존(?)하고 있던 배우는 주드 로였고 솔직히 캐이트 윈슬럿은 이토록 연기파로 성장할지는 몰랐었다.  

 


<리플리 - 안소니 밍겔라 감독, 2000 /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주드 로>


   <컨테이전, Contagion, 2011>은 말 그대로 전염을 뜻하는 의학 스릴러 영화이다. 신종 플루처럼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내용상 소재가 전개되는 모습은 재난장르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재난형 블록버스터나 SF적 서사를 표방하진 않았다. 비슷한 류의 바이러스 의학 영화의 경우 대개 미국식 영웅주의를 결말로 내비치거나 가족의 의미, 사랑의 복원등 인간성 및 가치중심주의로 회기하는 패턴인 것에 비해 상당히 바이러스를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한 영화이다. 교육적으로 본다면 구성주의적이고 서사적으로 본다면 열린 결말에 가깝다. 한마디로 문제해결이 아닌 의제 제시형 컨텐츠에 해당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가 아닌,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이런 영화를 가지고 대개 평하는 자들은 감독의 주제의식이 높다, 이렇게 말하던가.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이튿날, 그러니까 최초 감염자가 전염된 다음 날인 D-2 번째 날부터 영화가 시작되고 라스트에 D-1, 그 첫째 날이 역으로 공개된다. 기네스 팰트로가 왜 어디서 어떠한 경로로 감염이 되었는지 마지막에 제시되는데 이 마지막 장면이 미치도록 뇌리에 남는다. 러닝타임으로 보았을때 기네스 팰트로는 그리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데 생각나는 건 온통 그 여자가 나오는 장면이 거의 지배적이다. (이런걸 밝히는 걸 스포일러라고 하던데 영화로 확인하시기 바란다. 기네스 팰트로 때문에 나는 구역질이 나올 뻔 했고 죽어도 부검은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ㅠ)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게 있다면 그건 치명적 바이러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위기상황에서의 인간이 행하게 되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다. 감독이 마음에 들었던 건 등장하는 인물마다 교묘하게 해당직업, 놓인 위치에 따라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기중심 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관객에게 그 정당성을 질문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던 인물은 유명 블로거로서 음모론 같은 걸 제기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주드 로였다. 그는 바이러스로 숨진 최초 피해자를 취재한 사람이었고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소위 말하는 민간요법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블로그에 게시하여 떼돈을 벌게 된다. 정부와 보건당국, 제약회사간의 이권을 둘러싼 꼼수를 고발하고 자신이 사회정의를 위해 취재를 하고 있다는 식의 인터뷰를 자행한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는 병이 걸리지도 않은 자신의 몸에 개나리즙이라는 요법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국민 대 사기를 친 인물이었고 나중에 이미 번 떼돈으로 보석금을 내고 당당히 석방이 된다. 처음엔 그도 정의감 불타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개인취재를 하던 블로거였지만 유명 인기 블로거가 되고 보니 자신의 말 한마디가 법전처럼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선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현상과 인터넷을 통해 사회학적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것을 동격화 한다. 정의감이라는 것도 결국 나르시시즘이라는 바이러스에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는 면역력 약한 인간의 심리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 작품에선 신기하게도 이렇게 사회나 국가를 위해 정의롭기 보다는 오로지 개인 자신만을 위해 정의롭던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누구보다 그 위선을 경쟁력 삼아 바이러스 가득한 이 사회를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선하지도 남달리 악하지도 않은 필요에 따라 자기위선과 자기기만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죽기직전까지 알량하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참 사소하고 애처롭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 이야기는 실종되고 문제의식만 남았다. 가을도 그렇지않나. 계절은 사라지고 언제나 고독만 남는것.



#3. 방황 후, 시작


   고로, 나는 방황한다.

   적어도 아직은 방황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금 방황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 괴롭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나는 언젠간 이 시기를 작별할 것이고 다시 세상과 조우하는 날을 맞이 할 것이다. 아마 내가 방황을 끝낼 시점엔 이렇게 팔자좋게 글이나 쓰고 있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많이 알지 못하는 친구 하나는 아침방송 보며 커피마시는 호사를 누리는 주부들이 제일로 부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주부들이 되기 싫어 사실 아침에 TV를 켜지는 않는 주부였다. 스마트폰에 내 소개가 ‘가장 얇은 단위의 인연의 끈’이라고 되어 있다는데 학습지 선생님은 나더러 혹시 책을 많이 읽으시냐고, 시집이나 아니면 특이한 책을 많이 읽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이 상당히 모욕적이었지만(선생님은 나 기분나쁘라고 한 질문이 아니지만 ㅠ, 나는 보기와 달리 책을 많이 읽으시는 군요 식의 평가가 미치도록 안듣고 싶었던 이중인격의 소유자이므로) 아,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기만 했다. 자존심이 센 것이랑 자존감이 높은 건 다른 문제인데 말이다. 괜한 일로, 사소한 한마디로 하루를 고민하기 싫어 나는 그 질문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 방황의 핵심에 그 '보기와 달리'는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어딜 가서 혹은 누군가가 책 많이 읽냐는 말이 왜 이리 싫은 걸까. 나는 정말이지,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는 말이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생애 지독한 욕처럼 들린다. 내가 그들 한테 책 사달라고 한 적 없으며 내 글 읽어 달라 한 적 없는데. 풋, 이런 막되먹은 식의 자기방어 논리를 갖다 붙이고 싶어진다. 모든 건 현재, 내가 방황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싶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펼쳤는데 거기 내 폐부를 정통으로 찌르는 말이 적혀 있었다. 심리학 책이었는데 사람들은 칭찬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을 더 지적이고 똑똑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필 예로 서평을 들었는데 어떤 책이 좋다고 하는 사람보다는 그 책과 작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에게 호감은 덜 느끼지만 그 작자가 훨씬 더 유능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느낀다는 연구결과. 하하하.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호감도는 낮더라도 능력있게 보이고 싶으면 누군가를, 무슨 책을, 이 사회를 실컷 비난하라는 말씀. 그 챕터를 읽고 나는 그 책을 사고 싶지 않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서가를 한참 방황했다.



   그러곤 그냥 본능적으로 방황스런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가장 못 견디는 것은 결국 사고 싶었던 옷을 그 옷을 입는 것과는 별개로 사고 만다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는 어떠한 책을 본능에 못 이겨 사고 만다는 것이다.  알라딘의 할인, 적립금같은 걸 포기하고 나는 그냥 제 값을 내고 말 때가 한달에 한번은 꼭 무슨 생리하듯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소설이 매우 싫어졌다. 대중소설에선 스토리에 대한 갈증을 못 느끼고 본격문학에선 난해함의 이성에 도무지 감성이 동하질 않는다. 시집에선 관념을 해체시키는 방식들이 지겹고 젊은 작가들의 말장난도 역겹다.(이것을 언어의 유희라고 할 너그러운 가슴이 아니시다, 지금은) 그렇다고 나이든 작가의 선 굵은 서사가 뭐 애국할 일 있다고 예전처럼 와 닿지도 않는다. 트렌디한 신문이나 잡지 연재 모음집은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빤한 정치서적들은 그들의 정의로운 위선이 내 선량한 존경심을 방해한다. 그래서 아무런 의도없이 내가 알지 못하는, 내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나만 조용히 알고 싶은 책들을 찾게 된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보물찾기라도 하듯 나는 서점에서 아무도 찾으라 한적 없는 책들을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사실, 진중권의 <아이콘>을 읽으며 약간 실망을 했다. 이 분은 참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하는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가지셨구나. 나는 그냥 무거운 것들은 무거운게 좋다.)

   그래, 나는 사실 조금은 더 방황하고 싶다. 가을에 자꾸 무언가를 계획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어제 이승철이 오래 간만에 뼈있는 한마디를 하더라. 언제든지 대중의 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사실 지난 시절, 오랜 세월동안 자타공인 달콤 쌉싸름한 껌이 되어온 그가 그렇게 씹어 대온 대중들에게 던지는 공개적인 대답이기도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고 마약, 이혼같은 음악인으로서 진부한 개인사로 잊어먹을라 하면 구설수에 오르곤 했었지. 그의 노래에도 '방황'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내가 대학생 때였던가. ‘파란 넥타이, 줄무늬 팬티, 그것만이 전부는 아냐’ 뭐 대충 이런 가사가 생각난다.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하던 구절도. 사랑을 찾아 떠난 것도 방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십 년전에 사랑을 찾아 헤매는 방황을 노래하는 가수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사랑을 찾아 헤메는 건 방황은 아닌 것 같다.

  방황은,

  방황은, 자기 자신을 찾을 때라야, 대체 어디있는 건지 자신을 찾아 떠날 때라야 방황답다는 결론이다. 나는 내 실체, 내 본질, 내 진실 이런 것들과 매일을 싸우고 견디느라 이 방황의 시간이 바쁜 사람에 속한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이제 내 방황의 내용이 아니고 그것의 종결 시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쩌면 내가 멈추고 싶은 것은 방황이 아니고 방황의 인식, 마무리, 그로 인한 또다른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더 방황하고 싶다. 나는 정신을 좀 똑바로 차린 채로 방황을 이어나가고 싶은데 이 책은 ‘정신차린 방황’을 선호하는 나의 의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 나는 이제 불확실한 삶이 가장 두렵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 꽤 영악한 방황기술자가 된 것은 아닐까.


   
 
방황의 기술이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와 경계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죽음과의 만남도 반드시 그에 포함될 것이다. 죽음은 납득할수 없는 우리 인생의 경계다. 죽음은 삶을 경솔하게 낭비하지 말라고 외치는, 삶을 존중하라고 호소하는 비밀이다. 그 비밀로 혼란에 빠져보자. 바로 지금. 모든 순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모든 순간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기회라는 것을 명심하자. ‘늙는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건 굳이 늙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시작하자.    -215p
 
   


   방황을 정신차리고 똑바로 제대로 기술적으로 시도하라는 건 사실 방황을 하지 말라는 뜻과도 통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건 방황이 아닐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웃기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을 울리거나 공부하지 말라고 하면서 공부하게 하는 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방황을 그만두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방황을 더 깊게 하고 싶어서라 반박하고 싶다. 올 가을엔 더. 제대로. 그건 어쩌면 방황을 끝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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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25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처음에 포스터만 보고는 이 영화 주연배우들 모으느라고 돈 좀 썼겠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한사람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화가 급 땡기네요. 소더버그 감독이라면, 오션스 시리즈나 트래픽 같은데서, 여러 배우 떼거리로 나오는 이야기를 솜씨좋게 비벼내던 능력이 있으니, 일단 기본은 할 거 같은데 말이죠.^^ 형이상학적인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영화라..도대체 어떤 식의 영화일지 짐작이 잘 안갑니다. (그리고, 혹시 방황이 끝나시더라도, 글은 계속 써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다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ㅋ)

한사람 2011-09-25 12:28   좋아요 0 | URL

예, 전 무심코 보았는데 나중에 기억해보니 '더 자켓'이라는 영화가 기억나더라구요.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감독으로 기억해요. 오션스 일레븐도 기억나고. 맥거핀님 말씀 처럼 떼거지 영화로서 어느 누구에게 촛점을 맞춘 연출보다는 모두 모아서 사회적 문제를 던지는 성향이 많은 것 같네요. 형이상학적 바이러스는 그냥 제 생각이고요. 주드 로가 계속 혼자서 취재를 하고 다니는데 감독은 정부의 거짓말이나 블로거의 거짓말이나 층위만 다를뿐 우리는 보도된 진실만을 비판할수 있다, 뭐 그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 적당한 위선과 거짓이야 말로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항체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ㅠ

전반적으로 저는 추천할 만했습니다~ 제가 워낙 영화보고는 아니다, 그런 말 안해요 ㅋㅋ
예전엔 책보다 영화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책으로 턴하면서 영화보면서 자꾸 문학적 분석을 하려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그냥 즐기지를 못하는게 아쉬워요. 그래서인지 저는 시각적 효과 화려한 영화보다는 이런 질문형 영화가 좋아요^^

글이야 뭐~ 하하, 그런 말 들으면 제가 감사하고 뭉클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소리 들을 자격있나, 뭐 그런 또 시답지 않은 자기검열로 들어가네요..병입니다 ㅠ

노이에자이트 2011-09-2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한사람 님이 가까이 있다면 왁스의 '여정'을 불러드리고 싶군요.이 노래 아시죠?

한사람 2011-09-25 23:30   좋아요 0 | URL

잘 기억이 안나서 찾아서 들어보았어요..
가을과, 여자와 잘 어울리더군요.
안그래도 어제 오늘 거의 지나간 노래들과 시간을 보내네요 ㅋ

고마와요. 근데 왁스는 요즘 보기 힘들죠. 나가수 같은데 안나오나 ㅠ

노이에자이트 2011-09-25 23:45   좋아요 0 | URL
왁스 노래 괜찮은 게 많죠.10대 부터 40대까지 팬도 다양하고...'여정'은 제 애창곡이죠.

2011-09-25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5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