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해하는 계절


   환절(換節)의 계절입니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적이 있었어요. 돌아보면 그땐 내가 봄이었고 내가 여름이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내가 꽃보다 화려하고 내가 태양보다 뜨거운데 계절이 나보다 중요했을까요. 꽃이 떨어지는 게 슬플 리가 없는 시간이었죠. 그런 게 청춘인거 같아요.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다음 계절에 또 주인공이 될 줄로 믿고 있던 시간들. 계절을 의심하거나 계절에 배신당하지 않는 계절과 거리두기.

   여름이 길었습니다. 조금 지루하고 그래서 지쳤던 거 같아요. 초조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다보니 의식적으로 어느 여름보다 생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 이 사람은 이러니까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저 사람은 저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 글은 말이 아니고 생각의 전부도 아니고 사람의 본질도 아니야. 글도 여러 생각들 중에 선택한 하나의 감정이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느낌마저 판단할 수는 없는 거야. 나만해도 쓰고 싶은 글에만 노력을 기울이지. 글은 나라는 사람 전체에서 거의 모두를 빼버리고 난 나머지일거야.

   예전엔 어떤 사람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내심 기분은 나빴던 적이 많았어요. 이해는 머리로 하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이해라는 건 상대에 대한 사랑과 관심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슴이 먼저이어야 이해도 완성되는 것이라구요. 사랑이 누구에게나 그 앞에 ‘죽도록’이라는 수식이 포함된 개념이라면 이해도 그 앞에 ‘가슴깊이’라는 조건이 전제된 것이다, 그런 생각. 이해는 했는데 기분은 나쁜 것은 아마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자신은 그 정도는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은 어이없게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한없이 너그러운 존재니까요.

   그런데 웃긴 건 이러한 ‘이해보편주의’가 다시 세밀한 감성을 방해한다는 것이죠. 모두 이해하는 건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 모든 걸, 모든 사람을 이해해버리고 나면 마음은 편하지만 더 이상 치열할 건 없습니다. 다시 처음처럼 거리를 두게 되요. 그건 그만큼 이해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인데 또 다시 이해하라고 할까봐. 내가 노력해야 이해하는 일이 벌어질까봐. 물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용서나 관용하는 태도가 습관이 될 수는 있어요. 내가 손해 좀 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파여진 곳에 나도 모르는 것이 쌓여있더라구요.

   저는 이런 이해위주의 일상이 한번씩 브레이크가 걸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환절기, 지금의 계절이 떠나가고 다음의 계절이 다가올 때 잠시 두려운 진동을 느낍니다. 빛과 바람, 온도와 습도가 몸에 신호를 주나봐요. 가을이 되면 갑자기 빛줄기의 무게가 더해집니다. 빛의 색깔도 깊어져요. 무거워진 태양빛이 강물에 떨어질때 비로소 유속의 흐름이 느껴져요. 물이 흘러가는 게 그만 눈에 포착되는 겁니다. 제 눈이 갑자기 셔터스피드가 느려진 것도 아니고 조리개가 커진 것도 아닌데 피사체의 흐름이 초단위로 감지되곤 합니다. 흘러가고 있었구나 ! ... 그때 저는 비로소 여름이 갔다는 걸 깨달아요. 제가 시인이었다면 그 순간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을 거라는 확신을 합니다. 

 

#2. 방황하는 계절


   그리곤 잠시, 아주 짧지만 방황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지. 여름의 세상은 이러했어.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가끔 생각해요. 계간지를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상하죠.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면서 시사주간지를 집어 들고 문학을 잘 모른다 하면서 계간지를 구독해요. 생각해봐요. 몸이 허약하고 운동을 잘 못하는 친구들이 태권도를 배워서 다시 건강하고 근사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모르니까, 더 알고 싶으니까 정치도 문학도 기웃거리는 게 아닐까. 무관심하다는 표현도 사실은 무척이나 관심있는 대답이죠. 이건 관심이 없다는 뜻의 무관심과는 전혀 반대의 무심한듯한 관심인듯해요. 알려고 한다고 해서 내가 많이 아는 건 아니라는 뜻의 무관심, 그러니까 이정도면 관심있는 거라 할 수 없다는 (겸손하고 예의바른)무관심인 것 같아요.



창비 계간지를 이년째 구독하고 있는데 지난 일년은 그냥 제목만 확인하고 거의 책꽂이에 꽂아 두었어요. 구독도 자의적인 건 아니었고 어찌 알았는지 전화가 와서 하게 되었어요.(창비 홈페이지 회원이었다나) 여기서 제가 거절을 하지 않고 수락을 했다는 것이 바로 의미있는 선택이었다고 봐요. 매 계절마다 문학잡지를 받아보는 것에 동의하고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는 것. 그리고 일년이 지나 (연장 권유에) 다시 안볼 생각도 볼 생각도 없던 차에 무심한듯 수락을 또 했다는 것.

그리곤 처음으로 페이지를 꼼꼼히 넘겨보았습니다. 재미있더라구요. 이번 가을 호 특집이 바로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였거든요.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어요.

총체적 완력이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약할 수밖에 없는 진보정부가 가져야 할 무기와 자세가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대관소찰(大觀小察)’에서 나오는 심모원려(深謨源廬)의 지혜와 끈기,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의 견고한 연대일 것이다. 이 중심에는 국가경영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잘 조직된 정치집단과 지식인 집단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갖추지 않은 집권경쟁은 정치적 도살장에 들어가기 위한 싸움에 불과할 것이다. ...(중략) 그런 점에서 2012년 경쟁에 뛰어들 사람들은 욕망과 포부이 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할수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보면, 어떤 배를 만들고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야권연대 혹은 정치연합의 문제는 이 중차대한 민족사적 과제와 자신의 왜소한 힘을 인식할 때, 한마디로 백낙청의 말처럼 “원을 크게 세우면” 상당부분 부풀리게 되어있다. 2012년 대회전에서 성패의 관건은 시대와 국민을 아는 대관소찰, 자신을 아는 자아성찰(自我省察)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는 지공무사(至公無私) 분열과 유아독존을 뛰어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에 달려있다.

- 2013년 체제는 새로운 코리아 만들기, 김대호 / -115p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보자’는 결론은 내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인식하자는 위치감각에 대한 질문이겠죠. 저는 ‘대관소찰’이라는 어려운 말이 맘에 들어요. 바로 계절이 바뀌고 내가 지금 얼마나 와 있는 건지 내가 위치한 지점은 전체 바다에서 어디쯤일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어디에 써먹어도 좋은 사자성어 아닐까요?



그런데 정말 어떤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숙제 비슷하게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책을 집어 들때 왜 하필 이 책을 놓지 못하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말이죠.  

창비 계간지를 덮고서 우연히 알게 된 <기획회의>라는 출판 전문지입니다. 출판계 트친(아주 친한 건 아니구요. 그냥 답글 하는 사이 ㅋ)이 출판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아주 좋은 내용 많다고 해서 기웃거려봤는데 의외로 그쪽에선 품절사태로 잘 구할 수 없는 잡지이더군요. 이번 302호 특집이 ‘우리시대 어록‘ 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도 보니 트친계의 종교스타 조정민 목사와 혜민 스님, 高 율리안나 수녀님이 소개되었더라구요. 140자 안에서 위로와 깨달음을 주는 분들이라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1/2011090102745.html)

<기획회의>에서 특집으로 다룬 내용은 SNS시대의 촌철살인마들- 안철수, 김진숙, 박경철, 김여진, 이외수, 공병호, 김태원, 김애란, 김제동- 입니다. 이들의 어록을 분석하고 특징을 통해 역으로 우리가 얻어온 것들을 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출판인은 아니지만 독자로서도 재미난 기획이었습니다. 트윗을 하다보면 누구나 진보, 좌파가 되지요. 트윗에선 진보성향의 논객들이 이성, 감성, 교감, 공감의 주도권을 잡고 있으니까요. 저 역시 저들 중 두사람을 팔로잉 하고 있는데 이외수 작가님은 꼭 어디서 월급받는(?) 사람마냥 평범한 일상과 아무것도 못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어요.


진보 개혁논객들은 발이 척척맞는 축구를 한다. 조국 교수가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처럼 이슈를 조율하면 진중권 교수는 웨인 루니처럼 매섭게 몰아붙인다. 박경철과 선대인이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를 해주면 혜성처럼 나타난 김여진이 메시처럼 매서운 단독 드리블로 몰고 간다.     -20p


   이들 중에서 특이했던건 트윗상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어록을 남긴 작가가 되었다는 김애란에 대한 시각이었어요. 어록시대를 맞아 그녀의 소설 속 문장들이 어록에 익숙한 독자들의 기호와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였습니다. 유명인사들의 어록이 방송이나 트위터 상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김애란의 어록은 허구인 소설 속 상황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이죠. 김애란의 소설 속 유머와 희망이 아날로그적인 문장을 타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뻗어나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안해하지마.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야.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뻐” 같은 메인 카피형의 문장이나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같은 반전형 문장이 트위터에 가져오기 참 적절하다는 것이죠. 이건 소설의 서사와 작품성과는 별개의 문제인데 140자의 형식과 그 형식안에서의 감동의 습관이 김애란의 소설을 베스트셀러하는데 일조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분석이라 신선했고 출판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추석은 친척의 계절이요, 자존심의 명절입니다.

   제 기억으로 추석은 설날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나, 얼마나 발전했나를 가족적으로 점검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건 시기적으로도 한 해의 하반기를 향하고 있고 취직의 계절이 지나고 여름 휴가, 보너스를 챙긴 뒤라 아무래도 서로의 실적들을 의식하게 되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며느리들끼리 음식 준비하고 차롓상 차릴 때 주로 나누는 대화를 보면 누가 잘되었고 누구는 망했고 그런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니까요. 이번 추석엔 ‘이명박 이후’와 ‘이시대의 어록’에 대해 떠들어 보면 어떨까요. 남자들이 결론없이 정치이야기를 할 것이 뻔하고 여자들은 집값과 물가이야기 할 게 뻔한 이번 추석에 지적인 며느리가 되어 보는 것도 쏘쿨한 계획일 듯해요.  

   뭐 대놓고 갑자기 고사성어를 들이대면 웃기니까 ...예를 들면, 올밴처럼요. 엊그제 무릎팍 도사에서 올밴이 유홍준 교수에게 지식을 교정해주는 큰 일(?)이 있었잖아요? ‘G2’가 아니고 ‘G20’ 이며 ‘실험실’이 아니라 ‘표본실’이라고 한건 웃기면서도 짜릿했어요. 우리가 그 많고 많던 중간, 학기말, 모의고사에서 얼마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답안지에 써대었습니까. 이번엔 전부치면서 김애란의 소설에 대해 말해봅시다. 저도 트위터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 같은 엄마들이 트윗에서 이 나라, 이 사회를 위해 떠드는 건 잘 보지 못했어요. 죄다 아프니까 청춘인 분들, 아니면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한 아저씨 들이던걸요. 드라마 이야기, 김선아 부러운 이야기가 나와도 슬쩍 한예슬 사태를 견주며 여배우의 고달픔을 위로합시다. 나가수 이야기가 나오면 그게 실은 마흔두살 아줌마를 타겟으로 했다는 김영희 PD가 대단하지 않냐고 한마디 던집시다. 취직은 했냐, 시집은 안가냐, 전세는 구했냐 개념없는 질문을 던지지 말고 반대로 그런 질문을 듣고는 마음 상해 삐딱한 포커 페이스 짓지 말고 보다 사회통찰적인 시누이, 사회위로적인 며느리, 공감능력적인 딸자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ㅋ.

   물론, 저는 추석에 조용히 환절의 계절을 감당해야 할 듯 합니다. 여행은 시월로 미루었고 산소는 여행후로 넘겼어요. 기꺼이 환절의 고통, 그 우울을 기다립니다. 저는 리뷰는 남성적으로 페이퍼는 여성적으로 써볼까 싶습니다. 결론은 이중적이라는 말씀이네요 ㅠ. 볼트가 이번엔 서두르지 말고 잘 뛰어서 멋진 경기를 펼치기 바랍니다. 또 주말인가요... 더위가 참 끈질기네요. 그 고집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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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0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저에게 특별한 날이었어요. 개강하는 날이라서 일찍 마친 덕분에 무릎팍 도사를 볼 수 있었어요. ^^;;
원래대로 수업을 한다면 무릎팍 도사가 방영되는 첫 부분을 볼 수가 없거든요/ 제가 학교에서 집으로
도착하는 시간이 거의 11시 20분인데다가 씻고 하는데 20분 정도 감안한다면 황금어장을 라디오 스타를
먼저 보는 꼴이 된답니다. ㅎㅎ 그리고 어제 대구는 낮 최고 기온이 35도래요.. 어제 오전부터 예선 경기를
치뤘던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


한사람 2011-09-03 00:12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예전 11시 5분에 시작했던 예능프로가 드라마 늘리기 편성으로 완전 끝나면 1시가 다 되어야 하더군요
저는 피곤해서 중간에 끄고 자는 경우가 많아요(확실이 나이 드니까 초저녁 잠이 많아져서요 ㅋㅋ)

개강이라...참 아득한 단어네요
내일은 드디어 볼트가 200m 경기를 하네요. 결승전을 보면 대부분 마지막 1m앞에서 역전을 하더라구요
끝까지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숙연한 밤이네요^^
 
[강남좌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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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는 보수다

   솔직히 나는 이런 책에 별 흥미가 없다. 온라인 서점에서의 리뷰는 리뷰를 쓰는 사람들에게나 관심이 있듯 이 책 역시 대선주자에 관심있는 자들이나 집어들 책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았고 읽는 동안에도 종종 지루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이 책은 늘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기존 한국의 정치판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통찰하게 하는 기특한 미덕을 가졌다. 정리가 잘 되었고 문장이 예리하다. 서론을 끌지 않고 바로 본론, 결론으로 진입하는 방식은 객관적, 합리적으로 느껴지게까지 한다. 논점도 분명하고 결론도 설득력 있다. 다소 공격적인 문체를 예상했는데 튀거나 불편한 점도 없었다. 문제 제기의 범위가 넓지 않아 반복되는 단어가 많았고 지난시절 언론 기사를 복사, 편집해 상당분량을 채운 것 정도가 이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점은 있었지만 바로 그런 면이 일반대중의 눈높이와 흥미를 유발하기엔 무리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지금 시점에 잘 읽혀질 책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발빠른 출판기획력에 박수를 보내드린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식의 정치비평 책이 읽을 만하다 느껴지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쪽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의견을 표명하는 쪽은 아니(었)다. 사람들과 대화가 오갈 땐 논쟁이 되는 사안에 대해선 침묵하는 편에 가까웠다.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도 있지만 누가 물어봐서 꼭 답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건너뛰고 보는, 은폐형 유권자에 해당한다. 이 책에 제시된 유형으로 보자면 좌파적 언어를 구사하는 강남우파에 가깝다.(그렇다고 오세훈을 지지한다는 건 아니다 ㅋ) 그렇다면 이 책은 더없이 보수적인 것이 아닐까. 책이라는 것이 그 어떠한 진보적 의제를 모아놓았다고 해도 원래 보수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장르이긴 하나 나는 요즘 거의 모든 비평장르는 결국 보수적인 결론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의 보편성은 냉철하고 합리적인 비평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특수성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칫 책 덮고 난후 모아진 결론으로 최초 논점과 다른 결과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가장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 인물은 조국과 유시민, 문재인이고 평소의 칼날은 오세훈, 그보다 무딘 칼날을 사용한 인물은 손학규, 박근혜로 보이는데 나같이 정치에 둔감한 독자가 이를 느낄 정도라면 이 책은 결국 특수로 시작된 보수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강남좌파가 ‘배부른 진보’를 말한다면 결국 이 책의 제목이 바로 이 책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할 것이다. 문체는 좌파적인데 문장은 강남적인 책이다. 한국에서 학벌에 대해 가장 시끄럽게 떠드는 동네가 강남이 아니었던가. 아니 어쩌면 강남은 침묵해왔지만 비강남이 강남을 향해 떠들어대는 소음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 생각에 (이 책대로라면)강남좌파는 결국 보수다. 보수가 모두 강남좌파인 것은 아니나 좌파가 강남적이면 그건 보수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건 좌파가 아니고 강남이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강남성은 학벌성이고 학벌은 기득권의 세습을 상징한다. 한국사회에서 강남 출현이후 교육은 계급과 지위를 전복하는 기회가 아니라 그 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는 핵심통로가 되었고 강남은 그 지름길을 의미한다. 강남은 잘못한 게 없지만 강남사람들은 상대적인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위로해주는 것이 좌파적 사고방식이다. 마음껏 누리되 약자를 배려하고 소수의 편을 들어주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삼십프로 더 비싼 유기농 식품을 구매하고 고급단가의 환경친화적인 인테리어로 자기 집을 꾸미는 사람들. 하와이 특급리조트로 여름휴가를 가서 진보 논객의 책을 펼쳐드는 것. 트윗을 하다보면 의사, 변호사, 교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유시민적, 진중권적, 김진숙적 발언을 주도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 몇 개월 트윗에서 투표하자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건 알라딘도 비슷한데 알라딘 서재에는 주로 진보, 좌파성향의 글들이 자주 노출되고 토론을 활성화하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어 트윗에서 김진숙과 희망버스건의 RT율이 높아지면 알라딘은 그와 관련된 책을 이벤트 실시하고 재빠르게 그 책에 관한 페이퍼가 서재 메인 리스트에 등장한다. (프레시안의 뉴스가 네이버에 뜨는 것과 거의 동시적이다) 그러나 알라딘 서재를 운영하지 않거나 이용하지 않는 (구매위주의)일반 이용자들이 보게 되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는 정치와는 상관없는 단순 책에 관한 페이퍼들(신간위주의)이 노출된다.(이건 엄밀히 말하면 '알라디너의 선택'은 아니고 특정 책을 선택한 알라디너를 선정한 '알라딘의 선택'이다) 사고는 좌파적이지만 외모는 상업적, 라이프스타일은 문화적, 인문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 알라디너를 책 좀 읽고 글 좀 쓰는 지식인이라고 보았을 때 알라디너 역시 강남좌파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이 책대로라면 모든 정치인, 지식인은 강남좌파에 속한다 볼 수 있는데 물론,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강남우파는 강남좌파의 경력이다

   내 부모님은 경남출신의 YS 지지자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랜 세월 조선일보를 읽어 왔으며 70년대 후반부터 강남 아파트에서 거주했고 90년대 이후 분당으로 이주했지만 회사생활 십여 년을 강남에서 해왔다. 학벌 역시 8학군 출신에 SKY는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쳤다. 동창 역시 의사, 변호사 마누라, 중견기업 며느리, 아나운서, 기자, 방송인등 나빼고(?) 거의 잘된 편에 속한다. 외가와 친가에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기업 CEO의 친척들까지 두었으니 스펙상으로 나는 수구보수, 기득권층, 강남우파의 이력을 이미 오래전에 보유한 셈이다. 우리 집은 70년대 후반 남쪽에서 서울로 이주해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중산층으로서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나는 그 사업가의 외동딸이었다. 이런 내가 지난 시절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동의할 리는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굳이 살면서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에 투표를 했노라 말할 필요도 없었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강남’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들은 그다지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책의 반이 내 위선을 꼬집는 내용일텐데 뭐 좋을 일 있다고 그러고 싶을까) 미안하지만 강남성을 조금이라도 자신의 경쟁력으로 인식해온 사람들이라면 이런 책은 집어 들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된다.(심지어는 문재인도 모른다)

   (편의상 이 책의 좌표대로) 나같은 강남우파들은 만나서 정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만약 모임에서 정치관련 문제를 이야기하는 인물이 있다면 요즘말로 은따(왕따는 아니면서 은근히 따돌림당하는)가 될 확률이 많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선 정치를 화제로 하고 싶어하는 그 속성이야 말로 강남성을 저버리는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 씨, 정치에 관심있는지 몰랐네요, 정도가 그들의 답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지지자가 없어서 정치 이야기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지난 주민투표에서도 보았듯이 선거에서 좀처럼 기권하지 않는다. 투표율로 대변되는 숫자 25.7은 굳건한 보수층, 홍수가 터지거나 폭설이 와도 생각이 잘 안변하는 골수 우파라고 보면 된다. 대략 삼십으로 여기지만 이번 투표에선 투표장에 가는 것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에 삼십에서 좀 빠지는 수치가 (나같은)은폐된 유권자로 보면 될 듯하다. 서초구가 강남구보다 숫자가 높은 것은 강남구엔 교육 때문에 외부에서 유입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초구 부모님들은 강남구 부모님보다 강남을 지킨 횟수가 많으신 편인데 그들은 내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며 그들이 빚지게 될 것이 마음아픈 충분한 여력을 가졌다. 하지만 서초구에 속하지 않은 타워팰리스가 자기네 아파트내에 독립적인 투표소를 설치해 압도적인 투표율을 보여준 것은 강남성에 대한 오리지널리티 경쟁을 의미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강남에선 자기네가 진짜 강남이라는 (외부에서 보기엔 민망한) 자존심싸움이 팽배했다. 고등학교 대학 진학률, 교수및 국회의원 분포도, 백화점 규모, 아파트 브랜드, 자가용 댓수등등. 나는 학교다닐 때부터 서울대, 연대, 고대식의 학교 순위처럼 강남전체 아파트 순위를 보고 듣고 자랐다. 그 순위는 곧 건설업체 도급순위와도 비슷했고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일류와 이류, 삼류를 구분지어 사람을 계층화하는 일상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자라난 세대였다.

   (강남거주자로서)내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와 자식의 교육에 목숨을 건 분들이었고 이들의 교육열은 (고향을 버리고 올라온)자신들의 성공을 향한 야망과 열정과 비례했기에 사실 다른 구에 비해 유별날 수 밖에 없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외지인에게 영동, 반포, 잠실은 주거장소로서 서울에서 가장 싼 지역이었다. 그땐 강남이 변두리였기 때문에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새마을 정신으로 무장된 부지런함과 반공정신이 몸에 밴 우파인 채로 상경해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큰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서울의 성장은 강남의 성장이요, 그것은 자신들의 발전이었다. 이들의 자식들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목동과 분당이 신도시로 등장하게 되는데 노후준비를 위해 이들은 대거 강남의 주택을 팔아 신도시로 이주하게 된다. 부동산 시세차익은 물론 그들의 자식이 수혜를 입게 되고 대학졸업과 동시에 김영삼 정권에서 비교적 쉽게 취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자식세대가 결혼을 하고 완전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분당으로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90년대 말에서 2천 년대 초에 분당에서 둥지를 튼 사람들이 나같은 강남학군, 분당엄마 세대이다. 분당에서 새살림을 시작한 초기 정착자들은 지금 사십대 이상이 되었다. 이들은 현재 강남에 살지는 않지만 강남에서 공부하고 자라난 이력 때문에 분당에서 출신성분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이 인맥관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절차는 대학이 아니라 출신 고등학교이다. 이들의 남편이 근무하는 곳은 주로 분당에 둥지를 튼 IT기업이고 실패한 마르크스 주의자를 선배로 둔 비운동권 출신이다.(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학번) 이들이 지난 선거때 손학규를 찍은 것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한 응징일 뿐이었다. 지금 이들의 최대 관심은 과연 문재인이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 것인가로 요약된다. 웃긴 건 모두 박근혜에 대해선 박근혜처럼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아무말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분당이 사실상 강남우파출신이면서 좌파적 언어로 여당을 헤깔리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살아온 나날들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 간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이들은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언제나 방황한다. 적어도 대선직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내 위주지만) 강남성의 역사와 이동경로를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이 강남성을 학벌성으로 결론내리면서 마치 그것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문제적 정체성으로 귀결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다. 이 책은 좌파성이 아니라 강남성에 대한 접근에서 시작한 책이다. 내가 보다 잘 아는 것은 좌파성에 대한 정의가 아니고 강남성에 대한 시각인지라 이 책의 논제에서 보면 부수적인 것일 수 있으나 나로선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다. 나는 강남이 부자동네가 되기 전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강남성의 오리지널리티가 서울성이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욕망의 정체성이 되는 것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강남성은 애초부터 지방성, 변두리성에 대한 열등감에서 시작되었다. 강남에 강북의 명문학교가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릴 때였고 개발독재, 군사문화의 프레임에 익숙한 지방출신 촌사람들이 엘리트 열망을 극적으로 꽃피운 결과였다. 어찌 보면 강남성이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가장 큰 유산이다. 작년이 경부고속도로 개통 사십 주년인데 그건 꼭 강남이 무럭무럭 성장해 대한민국의 학벌성을 상징하게 되는 시간들이었고 그건 꼭 내 나이와 같다. 다시 말해 강남이 성장한 만큼이 곧 우리(같은 강남우파의) 나이인 것이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우리는 완전한 우파도 아닌 그렇다고 분명한 좌파도 아닌 중간적인 상태의 그야말로 중간세대가 되었다. 그러니까 강남좌파는 강남우파의 성장, 노화, 세대교체의 다른 말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강남우파의 경력이 없으면 강남좌파가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고해성사하듯 내 이력을 커밍아웃하는 심정이 된다. 강남에 살아왔고 우파였지만 좌파가 된 것이 마치 대한민국의 정치를 방해하는 집단이 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강남에 살지 않으면 강남좌파가 아니다

   저자는 강남좌파를 1)‘강남’의 성격, 2)주체의 위상, 3)좌파의 실천에 따라 각각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며 그 지형도를 제시했다. 먼저 강남의 성격에 따라 ‘경제적’ 강남좌파, ‘문화적’ 강남좌파, ‘연고적’ 강남좌파로 나누었다. 단순히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실제 거주하지 않더라도 돈이 많거나 라이프스타일이 강남적이거나 최상급의 학벌로 인해 인맥의 혜택을 누리는 경우를 모두 강남좌파의 영역에 위치시켰다. 주체의 위상에 따라 지도자, 정치인, 고위공직자등의 ‘공적’ 강남좌파와 언론인, 대학교수 등의 ‘중간적’ 강남좌파, 일반시민으로서의 ‘사적’ 강남좌파를 나누는 (직업군으로서)사회계층적 구분에 비하면 상당히 모호한 잣대라 할 수 있다. 좌파의 실천적 관점에서 이타적, 합리적, 기회주의적 강남좌파로 나누는 태도구분과 비교해서도 세밀하지 않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도식적, 논문적, 작위적이긴 하지만) 9가지로 세분화된 지형도에서 1)‘강남’의 성격은 동의할 수가 없다.

   이것은 보편화된 강남성에 대한 상징범위와 단순 해석 차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장소성이 분명한 ‘강남’을 타이틀화 한다는 점에서 경제와 문화를 강남과 별개로 보아도 강남성에 포함시킨다는 광범위성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강남사람들은 아무리 적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도, 아무리 월세를 살아도 자신이 강남에 산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주상복합 펜트 하우스에 살아도 아무리 집이 몇 채이어도 강남에 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강남인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행정구역상 강남을 주소로 두지 않아도 ‘라이프 스타일이 강남사람과 같다면’ 강남좌파에 속한다고 하는 저자의 잣대는 섬마을에 살아도 도시적 외모와 세련된 매너를 갖추었다면 도시인이라 칭하는 논리와 같다. 저자는 강남사람을 단순히 경제적 부와 문화 및 취미생활을 마음껏 향유하는 자본주의 수혜자로 규정지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강남은 스타일로 규정지어질 외양적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을 배경으로한 심리적 문제라 생각한다. 강남사람은 나머지를 버리고 강남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 나머지를 택하지 않고 강남을 못 버리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는 강남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문화생활을 더 많이 즐기기 때문에 강남적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강남사람들은 전화번호가 지역을 말하는 시절에 ‘5’자로 시작하는 국번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서울 ‘55’로 시작하는 자동차 번호판에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개인 사무실을 오픈할 때도 강남에 사무실을 낸 사업자는 명함에 ‘강남구’라고 적는 것에 우월감을 느낀다. 그들은 빌딩 임대료를 못 낼지언정 대부분 리스로라도 외제 승용차를 끌고 다니고 바세론 콘스탄틴의 시계를 차고 거래처를 방문하며 접대할 때 꼭 강남의 일식집을 고집한다. 다른 곳이 아닌 강남에 사무실이 있는 오너라는 인식은 갑과 을 모두에게 중요하다. 나는 이십대 때 영화와 CF, 삼십대에 인테리어와 디자인, 건축쪽에 종사했다. 모두 강남에 사무실이 집중되는 업종이었고 라이프 스타일이 철저하게 강남적이었지만 사는 곳이 강남이 아니면 절대로 강남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향이 어디 출신인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사는 주거지가 서울 어디인지는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 장소의 구속성이 심리적 보상감을 제공하기 때문에 강남성을 말하는데 강남이라는 장소는 배제되어선 안 될 요인인 것이다. 이렇듯 강남성은 강남이라는 지역을 벗어나 본질을 설명하기 적절치 않은 특질을 가졌는데 저자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강남을 일반화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는 강남에 사는 사람에게도 불쾌하고 강남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도 못마땅한 구분이다. 강남의 일반화는 현상의 일반화, 결론의 보편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보여 심층적이지 않았다고 본다. 강남좌파를 강남성의 본질과 별개로 생활패턴에 따른 정치트렌드적 용어로만 제시하기엔 깊이가 없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강남성의 본질적 연구없이 이미 결론을 도출해 놓고서 하위영역을 세분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식, 연구성과식 비평은 아니었을까.


지식인은 지식을 남용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강남(지역)이나 좌파(정치)에 대한 논의가 아니고 미래 엘리트(교육) 방향성 논의를 위한 인물비평인 것이다. 이 책은 새롭게 대두된 강남좌파라는 프레임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현상을 진단한 책이라기보다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인물분석을 통한 한국사회의 강준만식 미래적 패러다임을 강남좌파라는 타이틀롤로 묶었을 뿐이다. 궁극에 강남성으로 치환되는 엘리트 생성구조에 대한 질문을 함의한다. 대통령 후보는 정치인이요, 정치인은 엘리트요 엘리트는 강남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 구조적 특수성과 대안으로서 세계적 보편성을 잘 버무려 편집한 책인 것이다. 이는 기존 학벌사회를 뒤집을 의지나 용기가 없다면 굳이 좌파 프레임을 제시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 자식에게 일류대 가야한다고 하면서 조직에서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말 닥치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사회의 학벌을 타파하자는 목적으로 이 책을 출간하였을까, 하는 부분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결국 그도 사람 이야기 하고 싶어서 대선주자들의 특성과 장단점을 분석, 비교한 것은 아닐까. 인물중심주의를 탈피하고 목적 중심주의로 가기 바란다는 결론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는 이유이다. 나는 강준만도 잘 모르고 이 책에 소개된 대선주자 6인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받아서 읽어 내는 동안은 ‘사실상’ 세간의 관심사에 대한 독자로서의 ‘선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겪었듯이 사실과 선의는 시작을 말할 뿐 절대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저자가 말하길 지난 시절 문국현 현상은 ‘새것 신드롬’이었고 좌파 아이콘으로 부상한 조국은 철저한 폴리페서라 진단했다. 하지만 제 2의 김대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박근혜는 강남좌파의 거울현상이며 애국심, 품격, 강단, 책임감, 신뢰를 갖춘 언행일치 정치인으로서 (그 누구도 가지기 힘든)지도자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만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보다 차후 용인술이 중요하다고 조심스레 충고했다. 좌우 진영을 옮겨 다니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된 손학규도 경기고, 서울대, 옥스퍼드 박사라는 학력이 결국 그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니냐 반문했다. 정치인과 지식인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자신의 이득에 따라 자세를 취하는 편의주의 유시민은 노무현 유산계승 및 정신 구현이라는 ‘집착’과 ‘집중’이 그의 장점이자 치명적 단점이라 말하며 대세추종형의 철새정치인이라 비난했다. 유시민을 우리 현대사의 업보로 보고 지속적이고도 자기성찰 없는 행보를 강도높게 지적했다. 솔솔 불어오는 문재인 대망론에 대해선 막연한 책임의식, 불투명한 비전등을 지적하며 그 평가를 유보하는 듯 보였다. 오세훈은 이타적 강남좌파를 가장한 기회주의적 우파로 보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정치를 기획하는 인물로 진단했다. 타협이 가능한 의제를 두고도 벼랑끝 전술을 지향하는 투쟁적 호전성을 박근혜와 차별화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핵심은 한국사회에서 엘리트의 정치적 행보와 그로 인한 승자독식주의라 보편화했다.

   노무현 정권 상층부의 위선을 말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강남좌파는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으로서의 대학입시 전쟁을 상징하며 좌우를 능가하는 초강력 이데올로기로서의 학벌주의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의 요구처럼 학벌에 유연해지기는 퍽이나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학벌을 타파하라는 것보다는 진부하지만 학벌 가진 배운 자가 가져야 할 윤리나 대중이 현명해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면 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약소국 시민으로서 열등감, 패배감, 피해의식이 많았던 탓이다. 그런데 이제 나라의 위상이 달라졌고 세계속에서 동등하게 경쟁하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학벌에 유연해지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렇다고 계속 학벌 중심 사회에 적응하자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그동안 학벌을 좇아온 우리들의 비애일 것이다. 학벌 이야기 하자고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거의 체념분위기에 가깝고 모순된 구조를 꼬집느니 잘 가르치는 학원을 알아보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른다. 조국 교수도 딸을 외국어 고교에 보내고 일류대를 보내기 위해 고민했다고 하는 판국에 아무것도 되지 못한 우리가 어찌 다른 고민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쓴 저자 강준만도 성균관대, 조지아 대학, 위스콘신 대학을 나와 전북대 교수가 되었으니 이런 책도 쓰는 것이고 독자들도 관심을 가지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이 책은 지식인이 저지르는 가장 지식적인 작업으로서의 최상층의 모순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저자는 미국의 촘스키, 영국의 러셀, 프랑스의 사르트르도 상층 출신의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언급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퍼뜩 사르트르가 말했던(정확히는 변명했던) 지식인이 떠오른다. 사르트르는 60년대 말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에 대해 그 모순성을 분명하게 피력한 바 있다. 사르트르 시절 프랑스에선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자라는 의미로 지식인은 대게 좌파지식인을 뜻했다. 하지만 이들의 모순은 (강준만도 지적했듯이) 중간이상의 생활수준에서 태어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학습해온 실용적 전문가로서 다시 중간이상의 계층에 놓이게 된다는 것에 있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적 휴머니스트이지만 지식을 독점하고 계급을 재생산하므로 결과적으로는 휴머니스트의 평등주의를 위배하게 되어있다. 지식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에 노출된 모순들에 의하여 스스로의 모순을 자각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인의 직업적 활동은 사회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이 되고 그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지식을 운용하는게 아니지만 자기가 가진 지식의 정점에선 그 모순속에 가장 분명하게 자신이 위치해 있음을 증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열된 사회속에서 만들어진 지식인은 그 사회의 분열을 내면화한 까닭에 바로 그 분열된 사회의 증인이며 따라서 그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회도 자체의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고는 지식인을 비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인이란 결국 그 사회가 만들어낸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사르트르는 지식인이 피해야 할 위험으로 ‘지나치게 조급히 보편화하려는 태도’를 꼽았다. 결국 보편적 전문가를 자청해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행위, 근본적인 목적(평화, 인권, 평등등)을 수호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지식인은 근본적으로 영원히 좌파가 될 수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지적영역에서 오랫동안 쌓아 온 명성을 ‘남용’하여(서라도) 기존의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지식인의 본질은 보편성의 추구가 아니라 특수한 남용이라는 것. 남용의 정도와 수준, 남용의 목적과 결과, 남용의 과정과 오류, 이 모든 범위는 지식인의 몫이고 지식인의 능력에 따른다. 남용을 비난하고 지적하는 것은 독자와 대중의 몫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식인은 인간 각자의 모순과 사회전체의 모순을 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바라는게 있다면 학문적 모순의 영역속에서도 저자 나름의 남용이 추후 지혜를 발휘하는 긍정의 효과를 낳았으면 하는 것이다.

   앞으로 서울시장 보선과 총선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정치의 계절과 조우하는 국민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정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신기한건 오프건 온라인이건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처음엔 다들 정치엔 관심이 없다는 식의 중립적 의사를 내비친다는 것. 실제로 가치 중립적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기 싫거나 아니면 잘 모르기 때문일 경우가 많아서라 생각한다. 정치에 대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놓고 활발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쪽이 대개 진보, 좌파쪽이며 그렇기에 정치에 대해 잘 아는 쪽도 진보, 좌파라 보았을 때 바꿔 말하면 중립이라는 말, 무관심하다는 말은 보수라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안타까운건 2011년 현재 좌파는 트렌드이고 스타일이고 생활패턴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진짜 강남 사람들은 조직에서 왕따 당하기 싫어 좌파인척 하지 말 것이며 비강남 사람들은 괜히 강남을 의식해 시기심, 적대감의 표현으로 좌파적 언어를 구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좌파든 우파든 배운 사람들이라면 지식인으로서 스스로의 모순을 인정한 채로 자기 안에서 먼저 치열한 내재적 투쟁의 과정을 거친다면 어떨까. 이제 대중은 모두 지식인이고 독자는 모두 똑똑하다. 무엇이든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립다. 희망이라는 것이 전복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라면 나는 지식인으로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 <강남좌파>를 모두 뒤집어 생각해 본 것, 그것이 이번 독서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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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9-0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강준만도 한풀 꺾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런 책도 내는구나 싶기도 하고.
저도 제목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강남이 잘 사는 사람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서민으로 사는 사람도 많아요.
소위 나가요 사람들과 점쟁이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렇다고 그들처럼 강남의 서민들이 살 사는 사람한테 기생하며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비강남이 다 착한 사람만 사는 것도 아니고.
전 강남에서만도 35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강남 사람의 수준을 못 따라 가고 있어요.
따라 가야한다는 생각도 못해보고.
그냥 어찌 어찌 하다보니 강남권에서 살고 있다는 것뿐.
동네 바뀌는 거나 지켜보고 사는 것뿐. 다른 거 있나요?ㅋ

cyrus 2011-09-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읽어보려고 해요. 강남 좌파는 정말로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히 이들을 분류하고 있는 의미는 잘 모르거든요. 한사람님이 소개하신 사르트르의 책은
지난 달에 헌책방에서 구입하고 난 뒤에는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

oren 2011-09-0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신선한' 글이네요.

저 역시 한사람님처럼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흥미가 없다'는 쪽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공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었던 데다가, 한사람님의 정치적 감각 또한 남다른 것 같아 '고백'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많은 것 같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보수'니 '진보'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편가르기'를 통해 곧바로 '네 편과 내 편'으로 편입시키고 마는 '성급한 구분'을 특히 싫어하는 편인데, 그런 구분은 늘상 '정치적인 의도'에 끌려 들어가는 듯한 불쾌감부터 느껴 지고, 정치인들이나 정당이 표방하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궁극적으로는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한) 허울좋은 '장식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들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 획득한 빛나는 훈장'들은 고작 '국회의원 뱃지'와 맞바꾸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적나라하게 가르쳐준 덕분에 저절로 쉽게 터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좌파 정권 10년 동안 겪었던 '무능과 위선'에 이르러 정치에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만큼 우리를 낙담시킨 덕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80년대 초반 학번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환경'때문에라도 잠시나마 '좌파' 이데올로기를 피해 가기는 어려웠던 것 같고('서울의 봄'이 도래했던 1980년 고3 시절조차 대학생 형들과 '동조'한답시고 '교련수업'을 집단으로 거부하고 '교련복'을 입은 채 학교 운동장을 돌며 '전두환 군사독재 타도' 데모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대학 1학년부터 시작된 숱한 교내외 데모는 마침내 군복무 후 복학 첫해인 1986년에 와서 '시민혁명'으로 완성되는 '감격'도 경험하게 되었지만, 학교 졸업후 '오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 '따위'는 점차 식어 가거나 제 스스로 식혀갈 수 밖에 없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87년 대선부터 지난번 대선까지 5회 연속 '대통령 뽑기'에 실패할 정도로 '정치적 감각'이 한심한 수준이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87년 대선 때는 YS를 지지했다가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92년 대선에서는 DJ를 지지했다가 YS가 당선되었고, 가장 최근인 2007년에는 '문국현'을 적극 지지했다가 MB가 당선되는 걸 봤고, 철저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강남좌파'니 하는 주장과 책들 '따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강준만이니 조국이니 하는 인물들에도 그다지 관심이 별로 가지 않는데, 가만히 내 주위를 둘러 보면 나 스스로도 '참 많은 모순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떤 모임, 가령 '*** 민주 산악회'로 뭉친 친구들은 아직도 '희망버스'에 열심히 올라탈 것을 권유하고 있고, *** 민주열사 00주기 추도식에도 참석할 것을 권유하는 반면, 무슨 친목모임에 가면 '무상급식 투표장에 갔더니 사람들이 그렇게 적게 나올 줄 몰랐다'는 얘기를 너나 없이 이구동성으로 '자랑삼아' 내뱉는 이야기를 듣는 식입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강남'에 살든 어디에 살든, '좌파'든 아니든, 2011년 현재 좌파가 트렌드이든 아니든,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낸 결론은 결국 '강남좌파'라는 구분 또한 각자 제 나름대로 '먹고 살기 위한' 독특한 표현 형식을 지닌 '무리들'을 달리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에서는 생활수단의 유일한 원천이 '선거에서의 승리'에 달려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입'은 늘 특별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요즘입니다.

* * *

노력은 항상 그 필요성에 비례한다

어떤 직업에서도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노력은 그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에 항상 비례한다. 이 필요성이 가장 큰 것은 자기 직업에서 받는 보수가 그들이 획득하기를 기대하는 재산 또는 일반수입이나 생활수단의 유일한 원천인 사람들의 경우이다. (중략) 어떤 특정 직업에서의 성공으로 달성할 수 있는 위대한 목표는 물론 특별한 의지(spirit)와 야심(ambition)을 가진 소수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하도록 분발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대의 노력을 끌어내는 데 반드시 위대한 목표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비천한 직업에서도 경쟁과 대항의식이 남보다 성적이 뛰어나는 것을 야심의 목표로 하여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에 반해, 목적이 위대하긴 하나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별로 절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크게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 아담 스미스, 『국부론』中에서

교고쿠 2011-09-02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사실 저도 '강남좌파'라는 단어와 같은 일종의 내부적 분열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보다 더 좋은 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가장 작은 자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실제의 생활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가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네에 거주하거나, 가방끈이 길거나, 가진 것이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요...아직도 저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제 스스로를 좌파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저에게는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고쿠 2011-09-02 23:23   좋아요 0 | URL
아직도 몸 상태는 그닥인듯 합니다. ㅜ.ㅜ그래도 아주 약간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시몬느 베이유...가 저의 주보성인(?)이 된 듯 합니다. 시몬느 베이유가 간 길을 따라 걷고자 하는...생각을 합니다. ^^

가연 2011-09-0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네요ㅎㅎ 뭐라고 더 덧붙일 이야기가 없네요ㅎ
 

 


   8월의 마지막 주말은 혼자 감당하기에 참 버라이어티한 시간이었다. 수도권의 시민들은 보통 추석 전주 보다는 전전주를 벌초기간으로 떼어둔다. 그런데 올해는 추석이 빠른 편이라 공교롭게도 방학 말미와 겹치는 지난주엔 모든 것이 예민하고 피곤할 시점이었다. 달력은 좀처럼 여름을 차분히 정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바쁘고 몸은 아직 여름인데 시간은 벌써 하반기를 향해 속절없이 휙휙 떨어지고 있다. 시기적으로 분명 한숨 돌려야 할 시점인데 날씨마저 삼십도를 웃돌며 계절의 감각조차 무디게 만들었다. 독서 역시 한권의 책을 진득이 잡고 있기가 어려워 나는 이 책 저 책 방황을 했다.  어떻게 가을을.... 맞이하나.

   그 사이, 책 사이로 불쑥 불쑥 남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모두 남자였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신선했다.



#1. 다시보는 남자, 개리


   지난주 대세로 진입한 인물은 바로 리쌍의 개리이다. 개리는 우리가 즐겨보는 '런닝맨'에서 송지효와 함께 가장 이득을 본 예능의 수혜자로 생각된다. 우리 가족은 작년 런닝맨 1회부터 거의 본방으로 개리를 지켜봐 왔다고 할 수 있다. 출발할 땐 꽃미남 송중기나 광바타 이광수보다 존재감이 덜했고 게임 적응력도 눈에 띄진 않았다. 예능에선 캐릭터가 중요한데 유재석은 무도에서 길을 가이드하듯 개리도 평온개리라 부르며 그의 (음흉한?)침착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특별한 개인기도 웃기지 않고 또 런닝맨이 그다지 좋은 시청률도 아니었고, 프로에서 핵심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개리가 그의 이십년 친구 길의 말처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시기는 가끔 '놀러와'에 땜빵용, 게스트 덤으로 나오기 시작 할 무렵-길보다 더 웃긴 개리를 보고서-부터 였던것 같다. 내 생각에 개리가 길보다 예능대세의 가능성이 많다는 걸 최초로 확인한 사람은 유재석이지 싶다. 개리는 힙합이라는 전위성뒤에 숨겨진 (이미지로서)시골청년의 순수함, 아웃사이더로서의 겸손함, 실패나 좌절과 상관없이 묵묵히 나가는 성실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 순발력이 느리고 태생적으로 웃기지 못하는 길과 눈치가 빠르고 겉멋에 들리지 않는 개리를 각자 자기 프로그램에 최적화하여 활용하는 유재석이 새삼 놀랍긴하다.

   암튼 길과 개리는 특유의 뚝심과 성실함으로 이번 7집의 대박 신화를 새로 썼다. 나는 아이가 사춘기가 가까워 오면서 (그동안 멀리했던)가요를 많이 듣게 된다. 아이가 음원을 내려 받는 벅스는 내가 결제를 하기 때문에 ㅋ. 벅스는 MBC의 음원사업 앞잡이다. 나가수가 방송된 직후 현재 장혜진의 ‘가질 수 없는 너’는 1위를 달리고 있다.(나가수 끝나기 십분전에 음원이 공개된다는 문자가 온다) 지난 주말부터 며칠동안 리쌍 새 앨범은 한 곡이 아니라 십 여곡이 전 차트를 석권하며 아이돌과 나가수를 기분좋게 따돌렸다. 보통 아이돌 가수가 컴백하고 음원을 공개하면 만 하루는 호기심에 1위를 달리곤 하지만 며칠 연속 1위에서 10위까지 한 가수의 노래가 차트를 올킬하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들이 통으로 리쌍 노래를 전곡 다운 받았다는 뜻이렸다. 리쌍 노래에서 개리는 아주 솔직한 남자의 목소리로 현실적인 넋두리를 하곤 한다. 길은 반복되는 가사에 힘을 싣고 백지영, 하림등이 곡의 성격에 따라 피처링을 하는 형국이다. 피처링 인맥은 기획사의 전략이자 가수의 인지도와 상관성을 가진다. 가수에게 예능은 새로운 인맥의 형성 및 확대, 강화 수단이다. 글쎄. (극단적인 비유지만)나는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유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재석과 친해서 잘 안된 가수들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무도 서해안 가요제의 음원이 나가수를 누르고 몇주간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같은 이치다. 공교롭게도 무도에 출연한 10cm 의 노래도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리쌍도 그랬는데 웃긴 건 그들(?)이 언제부터 10cm와 리쌍 노래를 유심히 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번에 여성부에서 죽고 싶다는 가사의 노래가 방송부적격하다는 판정을 내렸을 때 길이 한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원래 옛날부터 10년 동안 그런 노래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특별히 이번이 더 비극적인 노래는 아니고 세상의 판정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도에서 조정대회 프로젝트 막바지에 조정대회 주제곡을 만들어 두어번 방송에 내보낸 노래 역시 며칠 일위를 달리곤 했다. 연이어 발표한 데프콘의 노래 역시 상위권을 장식했다. 리쌍, 10cm, 데프콘 모두 주류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남자이고 그다지 미남의 영역에 속하지는 않는다 할 수 있다. 1박 2일이 주로 여자가수(나비, 제이세라, 지아등의)나 발라드 가수의 신곡을 배경음악으로 까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행보이다. 사실 유재석도 행위가 찌질이 개그맨으로 시작해서 그렇지 그의 집안은 (내가 청소년 시절부터) 이미 강남의 압구정 아파트였고 본인도 노래에 썼듯이 한때 압구정 날라리로서 쫌 놀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명(이라기 보다는 비인기)개그맨으로서 오랜 세월 고생한 세월 때문인지 실력은 있는데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길을 가는) 연예인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동료가 망친 개그라도 잽싸게 주워서 살려내고 결과적으로 그 팀은 웃긴 팀을 만드는 리더로서 도가 튼 유재석은 이제 아무리 재미없는 멤버가 들어온다고 해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세간에 유행하는 음악의 흐름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낀 건 MBC의 음원사업 전략이다. SBS의 스포츠와 KBS의 드라마에 밀리는 분위기였던 M본부가 사활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 추석엔 트로트 가수로 90년대 음악과 힙합음악, 무도 가요제 음악에 이어 트로트 장르까지 부지런히 음원을 섭렵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건 지난 시절 강변가요제, MBC 대학 가요제를 통해 실력있는 가수를 배출해내고 십대 가수 가요제를 통해 굳히기에 들어간 방송사의 정통적 노하우와 그를 배경으로 한 시장 통찰력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수만도 이문세도 M사 (MC)출신이고 양현석은 M사를 통해 데뷔했다. 그런 면에서 MBC가 가요프로그램인 쇼, 음악중심에서 유일하게 순위발표를 안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본다. (사실 이것도 맨 마지막 엔딩곡이 일위에 해당하는 곡이라는걸 서로들 알고 있지만) 이건 가요발전을 위해 나가수 같은 프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은 정식 앨범을 내고 있는 가수들의 음악을 줄줄이 죽이는 결과를 내고 있는 이치와 같고 문화적으로(?) 강남좌파스런 MBC의 꼼수에 해당된다. 요즘 강준만의 <강남좌파>를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MBC가 딱 그 짝이다. 나는 강남우파인 오세훈이 사라져서 강남좌파가 갑자기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웬걸, 곽노현이 선의로 베풀었다는 이천도 아닌 이억을 보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암튼, 오늘자 조선일보에 (월요일이고 볼튼과 곽노현이 사고를 친 아침에도) 같은 크기의 정면사진이 떡하니 기사화 된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2. 낯설고 새로운 남자, 윤민수

   어제 나가수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순위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뭐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 이제 슬슬 나가수의 순위 매기기가 공정도 비공정도 아닌 그냥 일종의 전략인가 싶어진다. 이건 운영측이 어떤 꼼수를 부렸다는 뜻이 아니라 현장에서 청중평가단으로 선택된 분들이 시의 적절하게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일곱명 중에 세명을 찍으라는 투표방식에 그 세명 중 누가 일등이고 이등이고 삼등인지는 표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네명 중에 누가 사등이하 인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단 한명을 뽑으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윤민수는 그 세명에 끼워줄(?) 만한 감동에 가장 (교집합으로서)근접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해 그가 일곱명 중에 꼭 이등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선택하는 세 명 중에는 어쩐지 넣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합쳐보았더니)이등인 가수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 명' 과 ‘이 번’이 늘 동일하게 적용되는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1차 경연에선 '세명'이 2차 경연에선 '이번'이 중요하다. 어짜피 평가단은 전주에 누가 일등을 했고 누가 꼴찌를 했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투표를 임하게 된다. 즉 내가 하는 투표가 이번 한번만의 효력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는 과정상의 행위인 것이다. 내가 하는 투표 이전에 누가 일등을 했고 누가 꼴찌를 했는지는 (노래실력, 무대감동과는 별개로)중요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집에서 편집된 영상으로 TV를 구경하는 시청자와 현장에서 용지를 받아들고 잠시라도 고민을 하는 행위자와의 판단차이를 낳는다. 어제 우리끼리 일등은 김조한이었고 꼴등은 자우림이었다. 인순이는 모르겠고(?) 윤민수는 모아니면 도라는 누구의 말마따나 잘하면 상위권, 아니면 잊혀질 노래였다. 음원으로만 들어봐도 음정 몇 군데는 불안정하고 호흡이 불안했다. 이건 장혜진도 마찬가지였는데 가장 덜 불안하고 완벽해보였던 인순이는 누가 봐도 일등이었지만 어쩐지 초대가수라는 생각이 든 건 왜 였을까.(열외의 느낌으로 일단 제쳐두고 ㅋ) 하지만 윤민수는 인순이와 김조한을 제치고 2등을 했다. 글쎄, 난 새로움과 낯설음 그 속에 엿보이는 가능성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한다. 장혜진은 여지껏 실력에 비해 유난히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어젠 제일 자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고 본다. 그동안의 긴장을 이기고 드디어 자신감있게 불렀다는 것이 관객들은 듣기도 좋았지만 보기도 좋았다는 뜻 아닐까.

   암튼, 윤민수를 보면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대중들의 본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대중은 잔인하다. 기존의 자신을 넘지 못하는 가수나 똑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가수, 유난히 긴장을 하는 가수, 자기 감정을 우선시 하여 울컥하는 가수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새로운 감동, 낯설은 신선함에 우선 반응하는 족속들인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것이 공정한 것이라 여기는 부류일지 모른다.



#3. 먹고사는 남자, 우석훈


어제 '여인의 향기'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김선아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 보이는 태도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런데 나는 김선아의 연기에서 시한부 인생의 노처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배우로서 처절한 먹고사니즘을 엿본다. 한예슬 사태 이후라 거의 생방송 수준으로 제작된다는 이번 미니시리즈에서 한예슬과 똑같이 광고찍고 촬영장에 나타난 김선아의 피로도를 고스란히 감지한다. 누군 뭐 할 말 없어서 가만있는지 아느냐 하는 눈물로 보이는 것이다. 가끔,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 대본 자체에 몰입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처지나 자기 연민에 정말로 한껏 도취된 실제 상황 같은 걸 느낀다. 뭔가, 정말로 억울하고 서글픈 일이 있는 사람처럼. 덕분에 상대역에 동화되어 강지욱이라는 본부장(이동욱)도 조금씩 연기는 진일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곽노현을 보면서 그 밤 모처럼 다리를 뻗고 잘 다른 한명의 정치인이 떠올랐는데 그 연상을 보기 좋게 잠재우는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백미터 결승에서 실격을 당한 볼트였다. 그가 떠난 자리에 그의 연습파트너였던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인생은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부정출발이 한번이면 바로 실격을 당하는 규칙이 너무 엄중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기회는 두 번이 아니고 한번 뿐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는 인생도 다시 출발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준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여기까지 달려온 내 인생이 아니라고 해서 다시 처음으로 갈수 없다는 슬픔. 지금 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부터라도 그걸 잊고 계속 달릴수 밖에 없다는 냉혹함. 그러면서 벌초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 공장이 폭발해 죽어간 사람들은 자연스레 묻혀지고 다시 월요일이 되어 사람들은 복잡다난한 심경으로 일자리를 향한다.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인문 MD가 이 책을 소개할때 제일먼저 이택광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떠올렸다. 읽으면서 솔직히 문화비평의 수준에 대해 조금 실망은 했다. 문화비평이 정치의 이면인 것은 이해하나 문화비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치라는 것이 수가 읽히면 이미 정치의 실효성을 잃는 것이 아닐까. 좀 더 눈높이가 낮아 보이면서 실용적인 컨텐츠로 이해되는 이 책에 마음이 간다. 타겟도 분명하고 목적도 명쾌해 보이는 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책의 목차에 보니 ‘누구나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나라’라는 소제목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노회찬의 첼로 연주 장면을 연상시킨다. 내 생각에 이런 타이틀이 정치적이라는 느낌이다. 이 책은 정치다, 라고 말하는 이택광보다 이 책은 경제다, 말하는 우석훈이 한수 위가 아닐까 싶다만. 먹고 사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는 심정으로 주말을 잘 정리하고 싶었다. 8월달엔 내가 아는 '사실'이나 내가 들은 '선의'에 대한 상식이 뒤통수를 얻어 맞은 시간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부패하게 만드는 건지 부패가 자리를 만들어 내는 건지 자리와 부패가 불가분의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이 분명해 보였다. 나같은 사람은 누가 선의로 책을 공짜로 선물한 것도 빚으로 여겨지는데 오늘은 정말 상투적이고 진부한 부패로 떨떠름한 월요일이다. 이런 날은 개리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기 마련인데 리쌍의 노래로 걸그룹의 섹시함을 잠시 잊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잘난척 하는 이미지가 싫었는데 군대간다하니 김희철이 보고 싶다. ㅠ  이런게 대중의 뒤통수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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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9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우림이 의외로 난조를 보여 안타까워요. YB 보다 못했나?
YB만큼 오래 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가단 탈락이 가장 유력하지 않나 싶어요.
그에 반해 장혜진이 길게 오래 간다 싶구요.
이 여잔 가장 빨리 탈락할 줄 알았는데. 무엇보나 그녀의 흐느끼는 창법이 저의 신경을 오히려 긁고 있어
보고 있는 게 껄끄럽더군요. 윤민수도 죄짜는 게 싫구.
그래도 어젠 대체로 다들 자기 스탈에 맞는 곡들을 부른 것 같아 좋은 무대였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인순이가 가장 보기 좋았는데 3등이라닛!

여인의 향기가 그렇게 좋나요?
한예슬은 확실히 밉상입디다.
얼굴 예쁜 게 하나도 소용이 없어요.
그럼 연예질을 말던가.왠 추탠지.>.<

한사람 2011-08-29 22:52   좋아요 0 | URL

저도 자우림을 기대했었는데 매번 같은 방식인 것, 그리고 자문위원단 지적처럼
관객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즐기는 것, 관객에게 애원(?)하지 않는 성향이 외려
평가단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워 보여요.

누구나 속으론 일등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걸 위해 너무 오버해도 역효과지만
적당히 자신을 파괴하면서 관객에 오버스러움, 강한 열망을 설득 피력해야 결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여인의 향기>는 극본이나 연출, 음악등은 시크릿 가든에 비해 훨 떨어지는데
순전 김선아 매력으로 버텨가는 드라마여요 ㅋ 근데 중반이후 상투적인 설정에도 서서히 몰입하게 하는
로맨스에 힘이 실려가고 있어요. 제목이 김선아가 죽기전에 탱고를 근사하게 출 것으로 예상되고
이제 죽을 날이 가까와 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결말과 대치하는 순간이 오게되니까요..

대부분의 톱스타 여배우들이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몇개월 기꺼이 몸던지는 이유는 성공했을 경우 챙기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겠죠.
그런면에서 시청률이 저조하던 스파이 명월에 바짝 봉사할 마음이 생길리 없지 않았을까요?

stella.K 2011-08-30 13: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드라마의 인기도에 연연하지 않고
유종의 미를 보여주면 긴 안목에선 자기에게 득이 됐으면 됐지
실은 안 될텐데 말이죠.
어떻게 배우가 계속 히트치는 드라마에만 나오겠어요?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의심이 가요.쩝
 



#1. 엄마라는 철학


   꼭 일주일 남았다. 그럭저럭 8월도 여름도 방학도.

   아이가 방학이면 엄마는 대개 휴업인데 이번엔 그런대로 여유로왔달까. 실제로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모든 면에서 나는 좀 여유를 부렸다. 무엇이 변한 걸까.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여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기계적인 글쓰기에 매달렸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무식하게 읽고 내 식대로 쓰고 또 그 사이 벌어지는 틈이 싫어 책을 집어 들고. 그야말로 뒤돌아보지 않고 공장처럼 찍어 냈다. 물론, 그런 과정들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분명 있긴 했다. 정말로 책이 소중해졌고 글쓰기가 사랑스러워졌으니까. 누군가와 연애에 빠지면 딱 일 년 간이 가장 열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일 년은 리뷰와 연애기간이었나 보다. 상처도 많았고 기쁨도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확실히 새로운 전환기로서 스스로 변화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 좌충우돌. 시행착오. 이합집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무슨 책읽기, 어떤 글쓰기가 나를 지탱해줄 것인지, 어떻게 나아가야 지금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을 만들 것인지 그것은 올 여름 최대 화두였다. 그 뜨거운 여름이 지금 떠나려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냥 편하게 책 읽고 맘 가는대로 글을 쓸 수가 없다. 처음부터 취미로 독서하고 남들과 교류하기 위해 글을 써온 것은 아니므로 지금의 내 상태에 불만은 없다. 나는 지금 시점에 적절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내게 지난 여름은 어떤 의미였는가, 나는 여름에 무엇을 보았는가, 내가 본 것들은 나의 가을과 어떤 상관을 가질 것인가. 나로선 그냥 넘어가기 힘든 정리의 시점인 것이다. 내가 지금 독신이었다면 이러한 시기에 필경 여행이라도 떠났을지 모른다. 그럴싸하게 부모님의 고향같은 곳에 머물며 무언가 결심을 하고 돌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삶은 철저하게 자신이 진화시킨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시작도 결심도 맴도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엄마는 방학이 되면 더욱 자신에 대해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볼멘 소리를 하곤 했다. 모든 엄마들이 아이의 방학, 학습의 공백, 체험의 부담, 대화의 기회, 이런 의무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신만의 여름을 이룩하긴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내 고민을 잊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공백도 채워주어야 할 것인가.

   아이가 컸다. 눈에 띄게 팔 다리가 길어지고 심지어 발사이즈는 나와 같아졌다. 심부름도 곧잘 하고 읽는 책의 수준도 높아졌다. 조만간 사춘기 계절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는 질문도 단순 궁금증을 지나 답하는데 시간을 요하는 질문을 툭툭 던진다. 왜 저렇게 살아야 해?, 저 사람은 양심이 있을까?, 왜 친구인데도 서로를 공격해? 연예인이 공인이야? 군대를 다녀오면 왜 아저씨가 돼? 나 스파이 명월 안볼거야. 어른들은 가식적이야. 철학자가 과학자보다 똑똑해?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저런 질문을 절대 엄마에게 하지 않았다. 사실확인이 아닌 가치판단에 대한 문제는 거의 대부분 혼자 생각하거나 친구와 나누었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의 경우도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내 어머니의 가치판단체계를 가장 많이 답습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아깝게 여기며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쪽이라 (남들도 그런 줄 알고) 늘 약속시간보다 먼저 가서 서성이는 편인데 그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숙제 같은 것도 대부분 마감날짜에 임박해 제출하기 보다 훨씬 이전에 해놓고 남은 시간 룰루거리는 쪽이었는데 그 역시 어머니의 습관과 일치했다. 모든 문제를 일단 다 접수해 놓고 최종적으로 종합해 결론을 제시하는 성향도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제작자 보다는 플래너에 가까운 성격이 만들기 좋아하는 아버지가 아닌 계획에 통달했던 어머니를 닮아 버렸던 것 같다. 아니 길러졌던 것 같다. 특이했던 건 어머닌 손재주가 뛰어나 그리기, 만들기도 잘하셨는데 어머닌 잠재적인 내 소질을 확인만 하시고 키워주진 않으셨다. 예술가나 제작자의 삶보다는 그 위에서 사람들을 부리는 쪽이 되라고 늘 말씀하셨다. 아마도 본인이 살림을 잘하고 일도 잘하다 보니 늘 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인생을 살았던 것이 싫으셨던 듯하다. 지금에와서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한 사람은 단연 어머니이다. 딸에게 있어 엄마는 하나의 철학이자 과학이자 종교가 아닐까. 나는 이 사실을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그것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딸도 나와 같지 않을까. 내 딸에게 나도 혹시 철학은 아닐까. 엄마라는 철학이 딸이라는 학생에게 인생의 토양을 심어주는 건 당연하겠으나 그럼 나는, 나라는 엄마는 과연 질기고 튼튼한 토질을 제공하고 있기는 한 걸까.


#2. 엄마하고 철학



이 책은 창비계간지 구독을 연장하면서(특별히 내가 문학에 뜻을 두어서가 아니라 친절히 연장하라고 설득의 전화가 와서 할 수 없이) 별도 신청으로 받은 책인데 나같은 학부모를 위해 썩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덮고 나서 막연한 자신감까지 생겨났다. 저자는 어려운 철학을 쉽게 풀어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철학 멘토를 자처하신다고 들었다. 하여 처음엔 이 책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읽겠다고 펼쳤으나 명쾌하고 자신감있는 통찰력은 놀랍게도 방학 끄트머리에 들어선 심경 복잡한 엄마를 확실히 위로해주었다고 할까. 나도 철학하는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철학으로서 엄마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이 의미있었던 건 누구든 살면서 어떤 의미라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다시금 알려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자기만의 철학’은 어떤 유명한 철학자의 책을 읽고 그 깨우침을 통해 그 논리의 잣대로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책을 통달했다고 해서 자기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철학공부를 많이 하면 그 사유의 힘으로 자기만의 철학을 할 확률이 높아지기는 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자기 생각이라는 것이다. 생각의 힘을 믿고 꾸준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의 생각을 갖추는 것이 자기만의 철학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


“어려운 책을 통해 습득하는 철학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자기에게 맞는 철학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20 p


   저자는 어려워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철학을 하는 것은 겉멋을 유지하려는 나쁜 습관이라 꼬집는다. 영화, 소설보다 몇 배 어려운 평론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과시하려는 철학과 같다고 말한다. 남의 문제를 자신의 고민인양 떠안고 기만하는 철학이라 말한다.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남들에게 자기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어떤 자리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은 자기만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과 과학과 종교를 비교한 다음 철학을 기하학의 단계에 비유해 ‘전문철학’, ‘경험적 철학’, ‘잠재적 철학’으로 나눈다. 이는 곧 철학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 경험에 의해 자기 분야에 철학을 이룩한 사람, 그냥 인생을 살다보니 깨우침을 얻는 사람으로 비유할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류는 ‘경험적 철학’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철학은 아니지만 자기 분야에서 치열한 경험과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인물로서 자기분야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여행과 독학을 통해 세계적 건축가가 된 안도 다다오와 김성근 프로 야구 감독을 예로 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치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치열함이었다. 그리고 추상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일가견을 체계화, 일반화 하였다는 성과에 있었다. 예를 들어 동대문 시장의 상인도 한 평생 장사 경험을 통해 자영업과 성공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자본주의에서 상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상업이란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보편적 주제에 체계적으로 일반화하지 않았다면 경험적 철학자로 칭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퍼뜩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그는 철학을 전공으로 했지만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신제품을 발표할 때 나는 인문학적 배경을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의 근거로 삼는다 말하곤 한다. 얼마 전 삼성은 소프트 웨어 기술 개발자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기업 삼성의 인재채용 행보는 한국의 취업준비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는 곧 대학교육, 나아가 입시교육, 출판시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철학을 전공하지 않고 문학을 전공했더라면? 이 책을 덮은 내 대답은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아마 애플의 사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 내 답이다. 스티브 잡스가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전공 중에 한 과목이 철학이었다는 객관적 이력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바이다. 철학은 세계를 통째로 이해하는 공부이고 과학과 같이 논리를 그 과정으로 하며 극대화된 추상의 결과물을 지향하게 한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경험적 철학자’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만의 철학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문제, 자기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전쟁이나 평화, 복지와 민주주주의, 기후 온난화와 환경파괴같은 거창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금 당면한 자신의 사소한 고민을 깊게 생각하고 자기 삶의 문제를 주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칸트도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당대에 직면한 자신의 고민에서 출발하였다고.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21세기의 고민거리를 미리 예측하여 해결방안을 내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만의 철학>은 짧지만 많은 고민을 해결해주는 스마트한 책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정당한 것이며 나는 결국 이 고민을 해결할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이 책은 <자기만의 철학>을 덮고 본능적으로 집어든 책이다. <자기만의 철학>은 철학이 일상에서 왜 필요한지, 혼자 사유하는 힘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우리같은 학부모에게 가물가물하던 개념을 잘 정리해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이제 어쩌란 말인가. 이 책을 아이에게 그대로 읽어보라 권한다면 엄마, 나도 이제 나만의 철학을 할래,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통계상 내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권한 책은 스스로 집어 드는 시기를 더 길어지게 할뿐이다. 지금 아이는 한창 김병만의 에세이에 꽂혀있다. 김병만의 책은 내가 권한 바가 일절 없는데도 기웃기웃하더니 어느새 다 읽었다 한다.

내친 김에 지난 봄에 받아 놓고 잊어먹고 있던 책을 펼쳤다. 이 책은 방법론에 대한 책이다. 그냥 집에서 대화하면서 아이 생각도 알 수 있고 내 생각도 말할 수 있는 부담주지 않는 미덕을 가졌다. 나는 이 책을 넘겨가며 아이와 행복에 관한 수다를 떨었다. 거실에서 TV도 켜놓은 채로. 지나가다 툭하고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재미있었던지 또 없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는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물으면 자기 생각을 자신있게 대답할 친구가 몇이나 될까.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질문을 ‘행복이 말이야. 만약 행복이 색깔이라면 말야. 네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색깔이야?’ 이렇게 질문하면 대답이 바로 나온다. 아이는 바로 하늘색이라 답했고 이유를 물었더니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라 답했다. 노을색도 좋다고 했는데 노을을 바라볼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행복은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평안이 찾아오는 순간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행복을 꽃이라고 한다면 아이는 행복이 해바라기라 답했고 행복이 냄새라고 한다면 행복은 엄마냄새라 답했다. 이것은 ‘중국식 초상화 놀이’라고 하는 철학수업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답은 없고 언제든 답이 변할 수도 있는 이런 놀이는 아이들이 학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여기는 행복을 서로 번갈아가며 답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중국식 초상화 놀이 같은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창의적일 것 같아도 의외로 주관식형 질문에 창의적인 답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조기교육이라고 서너살 때부터 한글 학습지를 배우고 유치원에서 한글, 영어, 한자까지 선행학습을 해오고 학교 입학하면 바로 학원과 연계해 사교육의 대상자로 전락한다. 아이들은 우리때와 달리 너무 공부해 왔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없어졌다. 있다 하더라도 말할 시간이 없으며 말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르쳐준 답만을 기억해 낼 뿐이다. 방학이면 도식화된 캠프와 목적성의 체험학습, 부족한 과목의 보충수업에 매달리고 휴식이라곤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시청하는 시간외엔 뭐가 그리 바쁜지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기 마련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이와 마주앉아 진지하게 철학하자고 새삼스레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 어색해 아무 말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다하여도 지루하고 피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머릿속에 체계적인 나름의 프로그램이 없으면 질문도 대화도 답도 흐지부지 될 것이 분명하다. 요즘 개념연예인이라는 신종어가 있듯이 우리도 개념엄마가 되보는 건 어떨까. 명색이 그래도 늘 책을 끼고 살아가는데 개념없는 닶을 해주긴 싫지 않은가.



   시간을 정리하면서 다음 계절을 맞는 습관, 이는 아무래도 가을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다가올 계절을 준비한다는 건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잘 생각해보면 이야말로 시간에 좇기는 형국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만. 올해, 한여름은 없어도 날씨는 후덥지근한 여름날이 계속된다고 하는데 이는 가을에 정신차리겠다는 이들에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별이 길면 후유증이 크기 마련이니까.

   어제 서점에 갔더니 휴가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이 차분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 소양을 위해서 책을 두어 권 골라 왔다. 서점가서 직접 골랐으니(정가대로 샀으니 ㅋ) 만족도는 더 높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지금 내 팔자가 그리 암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이들 방학에 치여 밥과 빨래, 청소 해대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같은 엄마들이 다가오는 찬바람을 설레도록 기다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여름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모두가 우리에게 늘어나는 주름살이 아닌 더 넓어지는 마음살로 자라주길 바란다.
내 아픔과 상처는  언제나 상대의 고통을 헤아릴수 있는 드넓은 마음의 토양이 될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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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1-08-2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책을 좀 구입했지요ㅎㅎ 저는 가난한 학생이라서.. 최대한 할인을 많이 써서ㅎㅎㅎ 책이 옆에 있으니 기분이 정말 흐뭇한 것이 아주 그냥 좋네유
저보다 훨씬 이런 말을 많이 들으셨을테고 상투적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자녀에게 책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좋다고 그러던데ㅎㅎ 저 유년시절에는 동화를 많이 좋아했었답니다, 그러고보니

한사람 2011-08-24 21:3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에게 책 읽으라고 등 떠밀지는 않아요. 다행인지 아이가 책을 싫어하는 쪽이 아니라..
요즘은 외려 제가 읽는 책을 기웃거리고 옆에서 슬쩍 읽었다가 나중에 제가 꽂아놓으면 가져가더라구요 ㅋㅋ

어제 서점가니 소설보다는 인문쪽에 사람들이 많았어요. 새로운 책도 많았구요. 담달 추천 책 두어권 확인도 했답니다. 몇권 사오기도 하고.. 가연님도 가난한 학생이지만 책은 부자시죠? ㅋ

마녀고양이 2011-08-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군요,
요즘 조급해하고 무엇인지 모르고 불만족스러운 제게 위안이 되는 글이기도 하구요.

제게 알라딘 서재란 소통의 의미일 뿐, 글쓰기에 뜻이 없어서 그런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 하겠더라구요.
다시 생각해보고 꼼꼼히 글을 써보면 좋을텐데 그보다 앞선 일들이 있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사람님의 글이 좋습니다. 글을 쓰시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러니까 잘 표현하기 힘든데,
글이라는 것을 중심에 두고 쓰시는구나 랄까.......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

가을이 오려하네요.

한사람 2011-08-25 14:51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일어났더니 모든 공기와 빛이 가을색이었어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면 확실히 대기가 긴장을 한 탓인지
사물이 더 명료해보이고 빛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실은 아직도 알라딘 서재가 내게 무엇인지, 이곳에 쓰는 글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예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마녀 고양이님 같은 다른 분 서재도
가끔은 기웃거리고 다른 분들 글을 읽고 반갑기도,,또 울컥하기도 한다는 것.

저는 소통을 원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실은 조용히 소통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위안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며칠동안 매미가 그렇게 울어대드니..오늘부터 끊어졌습니다. 그게 좀 서운하네요 ㅠ

초록비 2011-08-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프로필에 있는 그림은 어디 작품인가요?
그림이 인상 갚어서 실례 무릎쓰고 여쭙니다. ^^

한사람 2011-08-29 18:31   좋아요 0 | URL

아, 그림은 피카소 작품이구요
피카소는 여성편력이 심했고 또 그 여인들을 작품으로 많이 남겨놓았는데
그들중에서 최초로 피카소에게 헤어지자고 한 여인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내용보다는 그냥 풍기는 분위기가 제가 좋아하는 톤이라서요^^

보물선 2011-08-3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오늘 우리 꼬마한테 상처 받았어.
아침에 안아달라고 그랬나본데(못알아챔) 무시하고 빨랑 준비해라 잔소리좀 했더니
"에잉,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요러는거야.

나쁜년.
지는 별생각없이 말했을테지만, 나는 열받아서 학교 안데려다주고 휙 회사 가버리려 했다니깐.
2학기 책 다 가져가는 날이라 꾹참고 데려다줬네~

엄마랑 철학하는건 고사하고
엄마 인정 받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ㅎㅎㅎ

한사람 2011-08-30 13:18   좋아요 0 | URL

자기말을 건너뛰고 대답안해주면 씹었다고 생각하더라구 ㅠ
그런게 아니라고 해도 조목조목 따져드는 나이가 시작된 것이지..

일하는 엄마들에겐 아이들이 더욱 보상심리가 많은데
특히 엄마와 같이 있을땐 자기나이보다 어리게 굴어서
아직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음
이것이 엄마와 딸 사이에 모종의 거래같은게 형성되기 쉽기 때문에
직장맘은 이 거래 종류와 수위를 잘 유지하는 것이 결국 아이를 독립시키는 관건이 되는 요인이라 생각함 ㅋ

보물선 2011-08-30 15:20   좋아요 0 | URL
완전 분석적인 한사람님!ㅋ
서로 누가 고수인지 밀당을 하고 있다는^^
밀리지 말아야지~ ㅎㅎ
 



#1. 대단한 사람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전성시대입니다. 안그래도 지난주에 방송된 ‘슈퍼스타 K3’는 아이와 함께 꼭 챙겨보기로 약속했죠.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짝퉁이라 불린 ‘위대한 탄생’보다 더 흥미롭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케이블 방송의 자유스러움이 심사위원이나 참가자 모두에게 잇점이 되는 것 같아요. 시청률에 너무 욕심내는 몇몇 그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감동과 자극을 주는 시간인 건 분명한 듯 합니다. 오디션 프로들을 보면서 느낀건데 우리들은 그들의 합격, 탈락의 여부보다는 독특한 사연, 드라마 같은 상황들에 현실의 아픔을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가 아니지만 우리와 같아 보이는 참가자들의 드라마에 중독되는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참가자들을 보면 가끔 민망한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도 꿈을 접기는 커녕 이곳저곳 오디션을 방황하는 것 같은 친구들을 봅니다. 꼭 연예인이 되고 싶은 열망은 누구보다 간절한 것 같은데 그 친구들 장기를 보고 나면 누가 좀 말려줄 사람은 없었는지 의문을 갖게 되요. 참가자의 여러 조건을 감안한다 해도 저 정도 실력이면 포기하는 게 맞다 싶은 사람들. 그런데 세상이 또 희안한 게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보란 듯이 성공을 하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찌질이라고 흉보았던 게 미안할 정도로 지금은 대스타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유재석만 해도 이십년 전엔 눈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잖아요 ㅋ. 그런데 요즘 유재석은 단순히 예능 MC로서의 매력뿐만이 아니라 그냥 남성 연예인으로서도 섹슈얼리티를 어엿하게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청자들이 국민 MC에게 거는 기대에 맞추어 선한 이미지, 타인을 배려하는 심성같은 소양도 그를 말하는 경쟁력이 되었죠. 이제는 그가 길가다가 무심코 할머니의 짐을 들었다 해도 ‘역시, 유재석’이라는 기사가 메인으로 뜨게 됩니다. 한번 좋은 이미지를 얻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성공하고 후광효과가 지속되는 시기엔 뭘해도 좋은 쪽으로 그를 보고 싶어지나 봅니다. 하지만 유재석도 잘 안 풀리고 무명일 때 내일은 뭐하지, 하면서 아침이 오는 게 싫었다고 하잖아요. 제 기억에도 친구 이휘재, 남희석, 선배 김용만, 박수홍이 잘 나갈 때 유재석은 주로 게임에서 두들겨 맞거나 물에 빠지거나 아니면 벌칙으로 특수분장을 하는 담당이었죠.(거의 신정환과도 비슷한) 그건 늦게 출발한 강호동도 마찬가지였는데 (이휘재, 신동엽이 실내에서 우아하게 방송할 때)야외에서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는 건 거의 유재석과 강호동의 몫이었어요. 그 지독한 세월이 그렇게 다져진 체력이 결국 지금의 ‘무한도전’과 ‘1박 2일’이 탄생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강호동, 한예슬 사태를 보면서 느낀 건 새삼 유재석이 대단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알기로 개그맨들은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와 달리 (공채출신)기수 서열이 엄격한 집단입니다. 어느 호텔에서 개그맨이 돌잔치를 하면 그날은 개그맨 선후배 친목회와 다름없습니다. 공채 개그맨들은 일단 희극이라는 연기가 되어야 하고 개인기 있거나 그냥 말 잘해서 웃기는 예능 MC와는 달리 자부심이 강한 편입니다. 이들은 철저히 밑바닥부터 연기를 배워왔고 벌레나 동물역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웬만한 소품들은 직접 만들고 발명하면서 혹시 잘리더라도 무대디자인, 인테리어라도 할수 있을 정도였죠. 실제 개그맨들 중에는 연극영화과, 연극과 출신들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이들은 이상하게도 못먹고 서러웠던 시절, 같이 월세방에서 아이디어 짜던 시절에 대한 육체적, 감성적 공유때문인지 의리가 강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유재석도 K본부 공채죠. 그러나 강호동은 그렇지 않아요. 스포츠라는 승부세계를 자신 정체성의 그 배경으로 합니다. 극단적인 비유겠지만 저는 찌질이로부터 출발했던 무한도전을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았던 유재석을 무작정 ‘성실’에 가치를 둔 것이라면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겠다는 강호동은 새로운 승리를 위한 ‘도전’에 무게를 두는 쪽이라 생각합니다. 강호동은 유재석보다 야망이 많은 인물형이라는 것이죠. 저는 솔직히 아주 오래전부터 강호동보다는 유재석을 선호해온 시청자였는데 요즘 새롭게 발견한 사람이 있습니다. 새롭다고 하는게 미안해요. 거의 십년이 다 되어서 저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정말 제가 그동안 무심했구나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만든 사람이 있었어요.


#2.  웃기는 사람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우연히도 친구가 이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왜 그 친구가 이 책을 저에게 보내주었는지는 묻지 않았어요.

청소년 소설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값진 작품을 만났습니다. 그래요, 이 책은 개그맨이 되고자 하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였어요. 중학교 일학년 게리라는 소년이 주인공인데요.(런닝맨의 게리가 자꾸 생각나더군요 ㅋ) 스탠딩 코미디언이 꿈인 소년인데 학교에서 찌질이로 인식되어 그만 무얼해도 왕따를 당하는 캐릭터입니다. 공부에는 일찌감치 담을 쌓고 집에서 유머 시리즈만 불철주야 연구하는 친구죠. 그런데 그것이 거의 허무개그 수준이라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로 말입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부모님도 무시하고 학교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도 게리의 농담에 웃지를 않았답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웃기지도 않은데 왜 웃길려고 할까, 고민에 빠지죠. 유일하게 재미나다 극찬을 하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연하의 천재소녀라네요. 크, 천재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천재만이 감동하는 유머라니 이 얼마나 희극적인가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책은 이 마지막 신을 위해 달려온 코미디 같아요. 빵 ~ 터집니다. 그동안 숱하게 실패했고 구박당했고 무시당했고 그래서 울고도 웃었던 이야기, 때로는 어디서 들었고 그래서 외워두었던 모든 개그소재들이 하나의 공연으로 연출됩니다. 그런데 왜 저는 눈물이 나던지요. 게리가 교내 장기자랑 대회에 출연해 마지막 참가자로 공연을 하는 순간이었거든요. 게리는 과연 많은 친구들을 그렇게 비웃던 선생님, 부모님을 웃기는데 성공했을까요?  

   정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휘날레입니다. 아니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구요. 장편이긴 한데 두시간이면 덮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이 책을 꿈이 있긴 한데 재능도 있는 거 같긴 한데 심지어는 도전도 해보았긴 한데 늘 실패하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되어요. 출판사는 이 책이 꿈이라는 것에 냉소적인 청소년들에게 읽히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꿈에 냉소적인 게 어디 청소년뿐이겠어요. 어른이 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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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베게 출판사팀 블로그 / http://imdol79.blog.me/10113258146 >

    편집자가 진솔하게 출판의도를 말하는 동영상을 허락받고 가져왔어요. 동영상 말미에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가 흐르는데 그 노래를 듣자마자 또 울컥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책을 덮고 나니 김병만이 자꾸 생각나는 겁니다. 최근에 자서전을 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며칠 전 김연아의 아이스쇼를 보면서 저기에 김병만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는 노래를 들으면서 책을 어제 주문했고 오늘 아침에 받아 오후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청승맞게 두어번 눈물까지 흘려가면서요.

   저는 한권의 책이 한사람에 오는 일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는 쪽에 속해요. 어떤 책이 우연히 저를 찾아왔건 제가 무심코 집어들었건 저에겐 그 책이 바로 지금 꼭 필요했다고 믿는 주의랍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몹시도 고기가 먹고 싶은 거라면 제 몸엔 단백질이라는 영양소가 필요한 것이었구나 생각하는 것처럼요. 책이 한가득 쌓여 있어도 분명 먼저 손이 가는 책이 있잖아요. 이 두 권의 책이 힘겨웠던 올 여름을 잘 마무리 하듯 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책이라 생각했어요. 다시 또 힘을 내자, 다시 걸어 보자, 이런 다짐을 하게 한다고 믿었어요.

인상깊었던 문장을 옮겨 볼께요.

   
 
불평 한번 안했던 건 유머였기 때문이야. 유머!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건 그 때문이야. 그래서 ‘유머’라고 하는 거라고.(‘humor'와 ’human'은 어원이 같다) 개가 언제 농담하는 것 봤냐?
 
   


  이건 슈니츠베리라는 할머니가 게리에게 하는 말씀이어요. 개는 유머감각이 없기 때문에 농담을 하지 않는다구요. 그러니까 유머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게리는 아주 의미있는 일에 시간을 쏟는 거라고. 이 책의 제목이 이제야 왜 <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인지 알 것 같았죠. 개 한 마리 안나오거든요 ㅋ

 

 #3. 눈물 흘리는 사람


손등으로 눈을 한번 훔치고, 코를 한번 시원하게 풀고는 다시 라면을 집어 입에 넣는데 봇물이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라면 국물과 콧물이 입에 문 면발을 타고 턱으로 목으로 바지로 떨어져도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오열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는 같이 울었습니다. ㅠ.ㅠ


김병만은 알려졌듯이 수많은 오디션, 공채 시험, 대학시험에 떨어졌었죠. 사글세방, 옥탑방을 오랜 세월 전전긍긍하던 어느날, 세워놓은 거울에 신문을 깔고 라면을 먹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더랍니다. 그날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며칠 후라는데 크게 실망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앞길이 막막한 심정에 저렇게 울었다고 합니다. 용기가 없어 제대로 도전해보지도 못한 저였지만 라면 국물에 눈물이 떨어지는 날이 저도 있기는 했습니다. 희안한 건 꼭 라면 먹을 때 서러움이 겉잡을수 없이 밀려온다는 것인데 그래도 또 더 웃긴 건 그런 와중에도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훌훌 털어 넣는 다는 거예요. 포만감이라도 꾹꾹 채워 넣어야 살 수 있을 것 처럼요. 눈물 콧물 빠트린 라면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말도 꺼내지 마라, 뭐 이런.

   저는 사실 달인코너를 즐겨봐 온 시청자는 아닙니다. 실컷 웃다가도 어떨 땐 슬랩스틱 코미디라 은근히 비하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개인기 위주의 말 잘하는 개그맨이 더 눈에 띄잖아요. 김병만의 일편단심 개인기는 큰 경쟁력이 없겠다 생각했답니다. 참. 이 책에는 김병만이 말 잘하는 예능인이 아닌 감동을 주는 희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마음을 차근차근 풀어 놓았어요.  저는 가수나 배우의 자서전보다는 개그맨의 자서전이 좋습니다. 몇년 전인가 박경림의 에세이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모두가 안될거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치명적 단점을 극복하는 분들.

   얼마 전에 채널을 돌리다가 ‘키스 앤 크라이’에서 채플린을 따라하는 그의 스케이팅 공연을 본 적 있어요. 모습은 웃겼지만 그의 눈빛이 어쩐지 짠하더라구요. 부상을 당했던거죠. 공연을 마치고 발목이 아프니까 서있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끝까지 연기인 척 하더라구요. 그 심정을 겪어본 김연아 선수가 울더군요. 그래도 이정도는 늘 있어 온 일이니 나 괜찮다, 하는 그 표정 잊지 못하겠어요. 책에 보니 발목을 다쳤지만 그럼 다음 주 쉬라고 할까봐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더군요. 한 쪽 발목이 불안하니까 한동안 점프하고 착지할 때 다른 쪽을 썼대요. 그런데 그쪽도 아파서 어느날 병원에 갔더니 발목의 뼈가 두 쪽 다 부러진 채로 그것도 모르고 긴 세월 견뎌온 것이었대요. 그런데 수술을 하면 삼 개월 정도 다리를 쓰지 못하잖아요. 지금까지 수술을 안하고 버티고 있대요. 일을 쉬면 안된다구요. 언젠가 승승장구에 나온 그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고 동생, 누나 모두 형편이 안 좋고 자기가 쓰러지면 안된다구요. 그런 형편을 아는 동료, 후배들이 모두 이제는 김병만이 아이디어 짜고 연습할 때 다칠까봐 제일 걱정한다구요. 김병만은 그런 자신을 스스로 미련한 놈이라고 말해요. 동생처럼 살며시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ㅠ.ㅠ

   책에 보니 김병만의 코미디를 논문의 주제로 하신분의 평가가 있습디다. 김병만의 슬랩스틱을 이렇게 말하더군요.

   
 
‘찰리 채플린’의 정교한 리듬과 타이밍의 절묘한 조화로 인해 생산되는 계산된 웃음과 ‘로완 앳킨슨’(미스터 빈)의 좌충우돌 사고뭉치 슬랩스틱, ‘배삼룡’ 선생님의 만담형태의 슬랩스틱, ‘심형래’ 선배님의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슬랩스틱이 모아진 희극적인 바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누구신지 참 잘 분석하셨네요. 그의 코미디를 보고 웃지 않고 운다는 이응진 PD는 ‘다른 곳으로부터 빛을 받아 그것을 반사해서 반짝이는’ 스타가 아니고 ‘스스로 발광하는 스타’라 말합니다. 모두가 ‘삶속에서 스스로 관찰하고 발안하고 학습하고 몸으로 작품을 빚어낸다’고요. 노력과 성실이라는 덕목으로 사람을 웃기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관객들은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밤새 흘렸을 땀과 눈물, 고통과 인내의 덩어리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것이죠. 그가 말하네요. 달인도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그건 나도 모르겠다구요.

   
 
모든 건 다 끝이 있으니까요. 구체적인 구상을 한 건 아니지만 만약 개그콘서트에서 ‘달인’코너를 마무리 한다면 평소처럼 할 거 같습니다. 만감이 교차하겠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그를 관두는게 아니잖아요. 다른 코미디를 또 계속 할거니까요. 다음 코너를 위해서 또 열심히 웃으며 달려가는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로 극장 무대 뒤 보조석에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어둠과 정적과 고독과 그리고 엄청난 먼지와 함께 잠들었다는 그가 지금보다 더 엄청난 성공을 하길 바라요. 기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그가 이제는 훨훨 날아 달인적인 여유를 만끽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뛰지는 못하지만 쉬지않고 계속 기어서 왔어. 한 순간에 확 뜨는 사람은 중간에 여유를 부릴수 있겠지. 나는 기어서라도 내 목표까지 가는 거잖아.
 
   



   <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를 '얼간이'라고 할께요.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거북이'로 부를께요. '얼간이'가 게리의 별명이라면 '거북이'는 김병만의 상징이어요. '얼간이'가 개그맨이 되고 싶은 한 소년의 성장과정이라면 '거북이'는 개그맨이 되어 가던 키 작은 청년의 도전과정이어요. '얼간이'는 소설적 허구인물이지만 '거북이'는 실제 인물이 자신을 말하네요.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코미디라는 꿈을 가졌다는 것 말구요. 꼭 언젠가 된다고 틀림없이 성공한다고 자신을 믿었대요. 한 명도 웃기지 못하더라도 그 한 명이라도 웃을 때까지 웃기고 싶었대요. 제게 그말은 한 명이라도 읽지 않더라도 그 한 명이 읽고서 감동할 때까지 쓰고 싶었다,로 들려요. 그러니까 누구나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땐 자신이 한심한 '얼간이'고 또 누구보다 느려터진 '거북이'가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얼간이처럼 웃기는 사람, 거북이처럼 울게 하는 사람이 마지막엔 대단한 사람이 되는거 같아요.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여요. 그들이 얼간이고 거북이인게 오늘 제 서늘한 가슴을 벅차게 달랩니다.

 

  저는 요즘 마음이 조금 급해지려고 해요. 바로 가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죠. 추석지나면 금방 연말로 달려가는 것 같아서요. 오늘 아침만 해도 찬바람이 살짝 스쳐 지나가던걸요. 이번 가을엔 지난 여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책하고 싶지 않아요. 슬퍼하고 싶지 않아요. 조금 늦었지만 한발 한발 거북이처럼 변함없이 기어가보려구요. 특별한 방법은 없는거 같아요. 그냥 얼간이처럼, 거북이처럼 다만, 꿈을 놓지 않고 계획대로 다가가는 것.

 

 

  혹시 당신도 나와 같이 얼간이로서 거북이가 되어 줄 수 있나요?   

  같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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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8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8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실력에 점수를 매기는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서 버거워요.
무한경쟁으로 달려나가는 듯 해서 더욱 힘들고, 당장 성과를 보이라고 하는거 같아서 정말 힘들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열망이 아닐까 싶고, 한사람님 페이퍼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그리고, 책이 결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에 절대 공감이예요.
몸이 필요한 영양소를 알 듯이, 우리 맘은 현재 필요한 부분을 알고 있는거 같아요. 억지로 바꿀 일이 아니죠.

아....... 얼간이와 거북이는, 정말 제가 되고픈 모습이네요.

한사람 2011-08-18 14:48   좋아요 0 | URL

제일 섬뜻했던 한마디는 저는 당신의 꿈을 사지 않겠습니다..였어요 ㅠ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할 줄은 몰라도 우리도 볼 줄은 아니까 평가할 수는 있잖아요
대놓고 그냥 집에가라, 다른걸 해라고 할 때가 필요한 말인지 알면서도
그때만은 참가자의 입장이 되더군요..

오늘은 어떤 성공한 분이 그래도 한 십년은 노력해봐야 되지 않겠냐는 말씀에 끄덕여요.
그럼 저는 아직 구년이나 남은 거거든요 ㅋㅋㅋ
우리 그렇게 얼간이, 거북이처럼 살아요 !

stella.K 2011-08-1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뒤늦게 S본부의 기적의 오디션 보고 있습니다.
위대한 탄생에서 안 좋은 인상이 남아서 오디션 프로 잘 안 보고 있는데
이건 좀 끌리는데가 있더군요.
특히 지난 주 김갑수 클래스 보여주는데, 김갑수씨가 참 달리 보이더군요.
참여한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 줘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리고 옛날 생각도 많이 나더군요.
저야 동호회 수준으로 연극에 참여한 건데, 연극이 얼마나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고 끝내게 되서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암튼 한동안 좀 지켜보고픈 프로예요.

강호동은 좀 호방한 스타일이라 야망이 없진 않을 겁니다.
유재석은 인간적여서 저도 호감이 많이 가요.
그렇지 않아도 김병만 자전에세이가 나와서 눈에 띄긴합니다.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라능.
김병만이 채플린 분장하고 보니 이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채플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간이 책은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한사람 2011-08-18 14:53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슈스케 하기 전까지 기적의 오디션을 주로 보았어요.
이미숙 편은 정말 후덜덜 ㅋㅋㅋ
많은 걸 차별화하려고 애는 쓰는거 같던데 시간대가 안좋아보여요

안그래도 김병만은 채플린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기학원을 다녔대요
젊었을때 사진 보니까 신동엽 필이 나더라구요 ㅋㅋ
그런데 모두들 키 작다고 연기 아무리 잘해도 너를 방송에서 안쓸거라고 했답니다.
학원 샘들까지도요.. ㅠ.ㅠ

얼간이 책도 뜻밖의 감동이었어요~

낭만인생 2011-08-1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감동입니다. 리뷰를 참 잘하시는 것 같네요. 읽을 거리가 풍성해서 좋습니다.

한사람 2011-08-18 14: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낭만인생님!!

하하하, 리뷰를 잘한다는 말 첨 들어봐요 ㅋㅋ 잘 쓴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ㅋ
이제 좀 문장력, 기타 글쓰기 위주의 리뷰를 줄이고 이런식의 편한 글을 써보려고 해요
풍성하다는 말씀, 감사해요~

(잠시 넘어 갔다가 왔는데...저와 같이 아이 키우시는 듯해요. 그래서 더 반가워요
얼간이 책도 읽어보신 듯한데 저와 느낌이 비슷했으면 합니다^^)

달사르 2011-08-1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적입니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비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는데 슬쩍 책 이야기로 넘어가셨어요. 또 게리에 감정이입되어 게리가 했던 썰렁한 '유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혹시나 웃음이 나올 수도 있을까. 얼마나 썰렁하기에 오직 한 사람, 천재소녀만 웃었을까. 게다가 마지막 장면의 하이라이트는 뭘까..궁금궁금하면서 읽었는데,다시 김병만으로 넘어가셨어요. 아..글의 흐름이 너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계속 따라읽으면서 살짝 울까..생각했었어요. ^^

한사람 2011-08-18 22:26   좋아요 0 | URL

히, 하나만 알려드릴께요.
게리가 아빠에게 물었죠. "가발을 쓴 대머리 독수리 얘기 들어보셨어요?"
"지금 그런걸 들은 시간이 없구나"
"벌써 다했는걸요. 그게 다여요."

저는 '가발을 쓴 대머리 독수리'가 페이지 넘기면서 갑자기 너무 웃긴거여요.(아빠가 대머리였어요 ㅋ)
미치도록 큰 소리를 내면서 거의 뒹굴면서 웃었어요 ㅋㅋㅋㅋ
뭐, 대략 이런 식입니다.

다들 유재석, 강호동만 모델로 생각하는 것 같은 개그계에 김병만은 드문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게리처럼 하루종일 사람을 웃기는 것만 생각했을거 같았어요.

바보같이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웃으면서..울면서..그랬어요 ^^

cyrus 2011-08-1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석은 정말로 노력형 대기만성 스타인거 같아요. 지난 주 무한도전에서 과거에 유재석이 MC를 봤던
동거동락을 리메이크하던데,, 동거동락이 제 기억으로는 2000년쯤에 처음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때도 유재석 나온 동거동락 참으로 재미있게 봤거든요. 연예인들이 하룻동안 같이 지내면서
다양한 버라이어티 게임을 즐긴다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 당시에는 신선했거든요,
그리고 게임하면서 나가수처럼 연예인 한 명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형식도 있었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때 유재석이 연예인들을 상대로 너무 깐족거린다거나 배려가 없는듯한
성의 없는 발언 진행 때문에 MBC 게시판에서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어요.
지금의 유재석의 모습이라는 상상이 안되는 일이었지만,, 제 기억으로는 과거 유재석의 진행은
재미있으면서도 가끔은 상대 연예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을 종종 했었거든요,
물론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 했는거겠지만요,, 그런데 그런 진행의 문제점을
같이 합숙하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동료 연예인들도 간혹 지적할 정도로 심했어요.
이에 대한 연예인들의 복수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방송을 진행해야하는 MC가 탈락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

그런데 사람이라는게 이율배반적이잖습니까? 유재석이 탈락하자마자 게시판에는 유재석의 진행이
재미있으니 부활시켜달라는 성원의 글이 올라오면서,, 다음 주 방송에서 MC로 복귀했어요.

막 쓰다보니 댓글이 길어버져버렸는데,, 결국에는 사람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노력은 해야하는거 같아요.
그 때 유재석도 동거동락에서 탈락하면서 적잖이 당황했고 자신의 진행 자질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했을거에요.
유재석이 동거동락에 복귀할 때도 시청자들과 동료 연예이들에게 자신의 경솔한 진행에 대해서 사과했거든요.

부단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행착오 역시 국민 MC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유재석뿐만 아니라 강호동, 김병만까지 정말 노력이 없다면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을거에요 ^^



한사람 2011-08-19 21:28   좋아요 0 | URL

ㅋ 저도기억나요 동고동락때 깐죽거리던 진행ㅡ머리도 바람돌이 ㅋㅋ 에고 여기가 바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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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제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유재석, 강호동만 노력하는 MC인줄 알았는데..
진정한 희극인이 되기 위해 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기어온 김병만을 이제서야 알아보게 되었다는
그래서 참 무심했구나..싶은 미안함이었어요.

오늘 하루 종일 놀다왔네요..ㅋ
1박 2일도 육개월 후면 종영한다던데 무엇이든 정상에서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하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다시 깨닫게 되더군요

시루스님, 이제 개강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하시느라 바쁠텐데
마음만은 편한 주말 되어요^^



가연 2011-08-24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달인 책은 읽어봤는데ㅎㅎ 이건 여담이지만.. 김병만씨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들어가기가 힘들구나, 혹은 서열이 엄격하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몰입하기가 어렵더군요 ㅎ 희극인들은 그렇게 심하다던데. 에휴

한사람 2011-08-24 2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희극인은 몇몇 유명 인기 개그맨을 제외하면 아주 열악한 현실인듯해요. 그러니 김병만도 결국 운이 나쁜 건 아닌 것이구요. 언제까지 달인을 할 것이냐도 중요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조연쪽으로 나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배우들도 코믹한 조연들이 많아서.. 판을 옮기면 것도 수월해 보이지 않아요. 다시 꽁트식의 코미디가 유행하지 않는 한 김병만은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네요.

2011-10-31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31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