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가볍고 덜 진지하고 싶다. 흩날리는 꽃송이를 떠나 보내며 또 한철의 봄을 안녕하며 스스로 다짐해본다.
이곳은 어디인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무엇을 얻기 위해 글을 올리고 무언가를 확인하는가. 돌아보고자 한다.
이곳은 알라딘, 나의 서재名은 '책방 아저씨', 그리고 닉네임은 '한사람'인 내가 운영하는 온라인 서점의 서평블로그이다.
나는 '책방'을 하지 않고 '아저씨'도 아니다. 지난 날 내가 별명 지어준 사람, 그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프로필 이미지는 피카소의 우울한 여자, 배경 스킨은 꽤 추상적이다. 새 단장을 했다. 모두 내가 좋아라 하는 이미지들이다.
지난 일년간 올려 놓은 리뷰는 약 일백편 가량되며 신간 평가단 7기와 8기 소설분야를 담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9기엔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시작한다.
내 경우, 이곳 알라딘의 서재가 타 서점의 공간과 비교하여(인터페이스면에서) 좋은 건 두가지이다.
첫째,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일일 방문자 수만 알 수 있을 뿐 어떤 사람이 방문했는지는 발자취가 남지 않는다. 전에는 이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방문자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나로선 환영이다. 내가 알기로 타 온라인 서점들은 모두 다녀가신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는다. 물론, 삭제할 수도 있지만. 예스 24에서 나는 어떤 서평자의 블로그에 방문하였다가 '당신은 무엇때문에 내 블로그에 방문했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심지어는 (인기많은)자신의 블로그를 염탐하러 온 것이 아니냐는 몰상식한 의심도 받아보았다. 어떤 분은 (유입수가 많은)자신의 블로그에 자꾸 (쓸데없이)흔적을 남겨 외부로 부터 유입을 유도하려고 방문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반드시 흔적을 지우고 가라는 강경조의 포스트를 올리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이른바 파워블로거라고 불리는 그분들의 블로그에 우연찮게 방문한 나는 무심코 방문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나의 흔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염탐'이나 '유입'의 목적으로 비추어 진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친하지도 않고 자주 방문하는 곳이 아니니 나는 내 흔적을 지우고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전혀 내 닉네임을 지워야 할 사유가 없었기에 그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이웃들에게 잘 방문하지도 덧글을 남겨놓지도 않는 성향이라 나는 한번씩 방문하면 일수 찍듯이 일부러라도 내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흔적이 뜻하지 않게 민폐가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블로그에서도 들렀다가 흔적을 지우는 이웃분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기도 했다. 그분들은 평소 나에게 격려와 위로를 해주던 분들이라 나는 그것도 이해가지가 않았다. 혹시 방문만 해놓고 아무런 메시지를 남기지 않고 간 것에 대해 내가 서운해 할까봐 그런 걸까 앞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평소에 내 블로그엔 거의 덧글이 달리지 않는 쪽이었고 또 내 성향을 알고 있는 이웃들이라면 그런 염려는 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다른 이웃들이었다. 내 블로그에 다녀간 흔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 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혹은 내 블로그에서의 자신의 흔적이 그곳 블로그 생활에 그다지 득될 게 없었거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지는 흔적들과 지워지는 흔적들로 원치않는 메시지를 수신한 것이었다.
이곳은 흔적에서 자유로와 좋다. 물론, (알고 싶어도)내가 다녀갔음을 알릴 수 없듯이 누가 다녀가셨는지 알 수 없다는 공평한 궁금증이 불편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익숙해지니 곧 흔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하다.
둘째, 쪽지가 없다.
생각해보니 위의 흔적과 관련된 운영체제였다. 회원들간 일대일 메시지 통신 기능을 하는 쪽찌는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서 메일을 대신하는 중요 편리 기능이었다. 예스 24는 쪽지 천국이었다. 더 편리하라고 운영되는 기능이 이른바 '카더라'식의 음성 통신의 일등공신이었다. 흔적을 삭제하는 이웃들은 거의 쪽찌로 안부와 축하인사를 건네왔고 미처 내가 놓친 정보, 당첨 소식을 전해왔다. 쪽지로부터 위로도 받았지만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음해나 억측, 소문을 전달 받을땐 난감하고 괴로왔다. 모두들 나를 염려한다고 부러 띄우는 전갈이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나는 쪽찌에 일일이 친절히 대응하지 않아 어쩌면 왕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로긴하면 오른쪽 상단에 쪽지함이 열어보기가 겁나기 시작했다. 혼자서 상관없는 척 하는 것도 재수없어 보였던 것이다. 나라고 온전히 결백하고 혼자서 정의롭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결국 듣고 싶지 않다고 대응하기 싫다고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라 나는 스스로 자폭할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여쁜 우편함 하나가 지붕도 천장도 무너뜨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곳엔 쪽지 공포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이웃 서점을 비난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지만, 운영체제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블로거들의 운영방법이 내게는 힘들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예스 24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떤 이유에서 알라딘 서재는 '흔적'과 '쪽지'가 없는지 나는 모른다. 아직 개발을 하지 않은 것인지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 일부러 고안하지 않은 기능인 것인지 나는 모른다. 온라인 서점을 돌아다녀보니 각각 블로그 운영체제에 장단점이 분명히 느껴진다.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장점이 어떤 분에게는 확연한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서재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 두가지가 새삼, 퍽이나 마음에 든다. 이제 글만 쓰면 된다.
마음을 좀 열어야 겠다. 따지고 보면 폐쇄적인 은둔자 성향의 내가 문제의 시작지 였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꽃이 지는 건 여전히 슬프다.
나는 안녕한 걸까, 이곳은 안녕한 곳일까. 나를 즐겨찾는 서재로 등록하신 이웃분들은 안녕하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