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두려울 것은 없다. 

나에겐 처음부터 빈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하여 제대로 날아보기 위하여 나는 이제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려고 한다.

 

싸움은 두가지이다.

삶에 대한 세상과의 싸움이 첫째라면

내 자신과의 싸움이 진정한 싸움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대해 두려울 것은 없다.

분명 결과가 중요도 하겠지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 또한 나에겐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있다. 내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세상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보다 내 자신에게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되자.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삶이란 없다.

고생하지 않고 피땀 흘려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란 없다.

벼랑끝에서 마지막 밧줄에 매달려 있는데 유혹과 고통이란 놈들이 날카로운 비수로 내 마지막 밧줄을 잘라서 벼랑끝으로 떨어져보지 않은 사람또한 없다.

아주 특별한 삶을 제외하고 고생하고 힘들게 살지 않는 삶이란 없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 삶에서  그 삶을 극복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통의 수렁속에서 그 늪을 헤쳐나오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다.

늪을 헤쳐나오는 극복을 하는 사람을 나는 싸움꾼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한 싸움꾼은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싸움에서 이겨내는 방식을 즐기는 사람이다.

 

싸움은 가볍게 시작하여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제대로 된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   단 두가지 뿐이다.

그래서 머리가 깨지든 쌍코피가 터지든 일단은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싸움에서 체육관 관장님들이 무술 고수들이 다 싸움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은  죽기 살기로 하는 사람이 이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하는 놈에게는 당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알고 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은 준비운동이었다.

적어도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제대로 안된 원인을 찾는 것도 실패에서 얻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 자산들이 나에게 칼과 방패  수류탄이 되는 것이다.

알고 있다.  팬티조차도 걸치지 못하고 싸우려니 얼마나 힘들었으리라.

하나 하나 걸치고 달고 차고 무기들을 몸에 매다니 얼마나 힘이 세어지는가.

과거와 현재를 힘들게 지나왔기에 미래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맞고 얻어터지다 보니 자연스레 싸움하는 방식또한 얻었던 것이다.

누구도 비웃을 수 없을 것이다.

 

시도하라!  실패하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

 

 

세상은 오직 두사람으로 결정된다.

열정이 있는 사람과 열정이 없는 사람이다.

 

오직 그 두사람만이 존재한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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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

 

 



내가 항상 내 스스로 가지고 싶은 한 가지 마음이 있다.

 

그것은 담담한 마음이다.

 

미련하게 참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이겨내는 그런 차원의 담담함이 아니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다.

가벼우면 내 스스로  자신을 자제하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성공의 맛을 보기는 힘들다.

작은일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일을 치룰 수 있는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들 조차 못한 사람이 큰일을 이룰 수가 과연 있을까?




은인자중이라는 말이 있다.

“숨어서 참고 스스로를 무겁게 만든다.” 라는 말이다.  마음속으로 인내하면서 다가올 시간들에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이순간이 가장 힘들 것 같지만 사실 힘든 순간은 없었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되도록 어쩌면 방관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만이 이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아픈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있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가끔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한없이 허무하고 까닭없이 밀려드는 외로움이 있더라.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그 외로움과 힘겨움을 이겨내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럼으로 성공이란 마지막 레이서에서 테이프를 끓는 것이다.

삶도, 사랑도, 사업도, 막다른 골목길에서 만난 불량배를 대하듯이 헤쳐나갈 수만 있다면 새로운 출구에서의 인생은 아름다울 것이다.










멋진 사람.

남자나 여자나 단 한번을 보아도, 또 몇 년을 보고 또 봐도 정말 멋진 사람이 있다.

그가 잘 생기고 이뻐서  훤칠한 키와 멋진 옷차림을 하여서 멋지다는 말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외모지만 아니 더 못하더라도 풍겨지는 이미지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서 진지한 그  내면의 무게에서 멋지다 라는 말이 나오곤 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추어로서 노래를 프로처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가슴속에서 감정의 에너지로 호소력으로 열창하는 사람은 진정 가수보다 더 멋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말이다.

  

삶이란 고통이 있어야 쾌락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시련이라는 것도 때로는 즐거움이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듯이 세상을 다양하게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시행착오와 숨 쉬듯이 겪는 어려움이다.

꼭 시행착오와 시련을 겪어야 멋진, 훌륭한 삶이라 할 수가 없지만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들은 없다.  같은 시대를, 같은 나이에, 같은 계절 속에서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나름의 결과는 다 다르다.

이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삶이란 다시는 돌이 킬 수가 없는 시간이기에 나름의 최선보다는 더한 것들이 수반해야한다.

그래서 일가를 이루거나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 혹은 그런 글들을 묶어서 책을 낸 분들에게는 피나는 노고가 있기에 비판의 칼날을 갖다 대기가 송구스럽다.

이렇게 책을 읽는 마음처럼 살아가는 모든 만남에서 나외에는 모두 스승이다.

 

제대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뜸을 들이는 사람이다.

설익은 말이나 행동,게으르고 쉽게 표현하는  습관 자체를 없애야한다.

뜸을 들이는 사람은 결코 느리고 세월아 네월아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기다리고 인내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가슴 속 녹슬었던 생각에 기름을 가끔 쳐주는 생각을 가지자.

제대로 세상을 볼 줄 알고 제대로 들을 줄 아는 눈과 귀를 가져야한다.

그래서 난 한 우물을 파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무엇을 하던지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야한다.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것이 많다고 한다.

치타는 사람보다 빠르다.

기린은 사람보다 크고 몸무게로 따진다면 일곱 사람이 코끼리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한다.

눈 밝기로는 매나 독수리가 사람의 눈보다 앞서며 냄새 맡는 코는 개가 사람보다 1만배 이상 발달 되어 있다. 청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귀는 토끼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속에서 헤엄치기를 한다면 사람은 물개를 따라가지 못한다.

단 사람이 동물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 따뜻하고 진실 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발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잘 생기고 멋진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여도 내면에 들어있는 생각과 정신이 진실되지 않으면 감동이 생겨날 리가 없다.

조미료의  맛이 많이 들어간 생각과 사람들을 경계하고 성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멋진 인생을 살아가려면 잘 하건 못하건 일단 자신을 믿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용기와 베짱이 있는 사람이다.

진실 된 용기와 베짱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두려움이 없기에, 세상을 떳떳이 살기에  세상의 신들도 도와주신다.





삶에 성공과 부를 쌓는 것은 씨앗을 어떻게 뿌리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좌우가 된다.




제대로 된 씨앗을 심어야 한다.

농부들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서 가장 좋은 종자만 모아두었다가 그 씨앗을 봄에 심는다.

쭉정이를 심는 농부는 없다. 제일 좋은 씨앗을 심는 것이다.

가장 좋은 씨앗을 심는 때를 놓치지 않고 심는 것이 중요하다.

놀기 좋는 봄철에 산이나 들로 놀러다니다가 가을철에 와서 심어본들 절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어른들 말씀이 하나 틀린 것이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계절의 변화에 예민해야하고 또 때를 놓치지 말고 씨를 심어야 한다.




우리 삶이 이 농부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삶이라는 씨앗과 계절이라는 밭에서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가.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무엇을 일구 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제대로 된 씨앗을 뿌렸는가?

그리고 또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씨앗을 가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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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는 어머니에 대한 글은 쓰지도 못해도 아버지에 그리는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어머니에 대한 글은 어디서부터 또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하여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긴 역경 속에서 사셨던 분이라서 마음이 항상 아프다. 그렇다고 내가 어머니께 효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 먼저 술이 떠오르고 술에 취해서 아무데서도 잠드신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술을 몇 달간이고 안 드실 때면 근엄하게 항상 열심히 일하신 모습이 떠오른다.

저녁 일을 마치시고 어머니와 잠자리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이야기꽃이 아들인 나는 이것이 행복이구나를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고는 하였다.




어린 나의 기억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외딴집으로 이사간 것이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하신 모습이셨고 여름이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리 형제들 부르는 소리에 마중을 나갈때가  참 많았다.  너무 술에 취하신 날에는 부축을 할 수가 없으니 니어카를 가져다가 모셔오고는 했다. 어느 날에는 술에 취하셔서 언덕에서 굴러 넘어져서 얼굴을 다치시고는 하고 어떤 날에는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시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 40대 초반이셨겠구나.  지금 내 나이하고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았을 적의 일이구나.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시고 어머니를 그렇게 힘들게 하셨는지를..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시절.

제각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2미터 높이에서 떨어져서 기절을 한적이 있었다.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계셨고 나는 이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 큰아들이 나와 같이 자기를 바라는 맘이 이런 것일까?

나하고 자면 든든하고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고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그때야 한 것이다. 아버지는 기절에서 깬 나를 보시고 쾐찮냐고 물어보시고 젠 걸음으로 아무 말씀도 없이 앞장 서 가셨다.




동생과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먼 동네에 잔치나 결혼식장을 따라가고는 한적이 많았다.

그곳에 가셔서 항상 안주를 많이 드시지는 않으시고 술을 급하게 많이 마시는 것을 뵈었다.

술이 세신 편은 아니었는데 잔도 큰 잔에다 따라 마시고는 하였다.

금새 취하시고는 아무렇게나 주무시거나 하시면 동생과 나는 인적이 드문 곳에 모셔다가 술이 깨시기를 기다리다가 가까운 곳에서 동생과 놀고는 하였다.

언젠가는 수확이 다 끝난 과수원에 갔다가 그 곳에서 복숭아와 사과를 정말 많이 따 먹고는 하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원망스럽기 보다는 불쌍하다는 느낌과 안스러움이 항상 가슴을 짖누루 고는 하였다.

여름날에는 주무시는 옆에서 파리나 모기를 쫒는 것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 보다는 항상 밑의 남동생을 예뻐 하셨다.

오죽했으면 네 동생 변이나 햟아 먹으라고 농을 하셨을까...

그 당시 동생이 잘하긴 잘 했다. 손재주도 좋았고 나름 데로 똑똑한 동생 녀석이었다.



어느 겨울날 저녁 먹다가 내가 밥투정을 부렸는지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다가 말고는 그만 먹고 가라고 하신 적이 있다.

눈물이 나도록 배도 고프고 서러웠는데 저녁 늦게 아버지께서 라면 한 봉지를 주시면서 끓여먹으라고 주셨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그리고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그 라면이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아마 킹라면 이었을 것이다...

그때 만큼 라면을 맛있게 끓여먹었던 기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때의 일 일 것이다.

형은 고등학생으로 성숙한 나이 일 때였다.

어느 토요일저녁에 아버지와 형이 심하게 다투었다.

형은 아버지를 지서에 고발한다고 하는 것이엇다.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를 고발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인가.   아버지가 심하게 하셨던 형의 기분은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되는 일이 있고 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안되는 것이다.

니어카에 아버지를 태우고 가는 도중 나는 형에게 짱돌을 찍어서라도 말려야 된다는 심정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이 잘 해결되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때  정말 큰 사고를 쳐버린 일이 있었다.




이제 취업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고를 저질러 버렸다.

친구들과 중앙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혼자 귀가하는 도중 누군가에게 전화을 하였다.

어떤 격한 감정에 전화통화을 한후 주먹으로 유리창을 쳐버렷다.

그 강한 유리창이 박살이 나기는 커녕 그대로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붙어 있엇다.

수화기로 내리쳤다.

와장창하고 부서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걸어서 나왔다. 순간 욕설과 함게 중년의 남자가 내 허리띠를 잡아 버렸다.

힘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들었던 생각은 그저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집에 전화해서 물어 주겠노라 하고 전화하는 시늉을 하다가 잽다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아디다스 슬리퍼가 유행이었는데 죽기 살기로 뛰엇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뒤에서는 저놈 잡아라 하고 뛰어오지  막다른 길에서 나는 간다는 것이 친구 자취방으로 가버린 것이다. 숨어 버리면서 친구가 하는 말이 무조건 취한 척 하라는 말에 나는 취한 척 해버렸다. 이어서 경찰을 대동하고 그 문제의 자동차 주인이 온 것이다.




나는 내일 파출소로 출두하라는 소리을 들었다.

다음날 출두하여 들으니 견적이 80만원 가까이 나왔다는 것이다.

일이 바쁘고 돈이 있으실리 없는 부모님게 차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나는 일단 무대포롤 기다려보자 하다가 저녁무렵 경찰서로 연행이 되버렸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되는데 몇장에서 수십장으로 불어났다.

여러 가지 죄목이 붙기 시작한 것이 이 즈음 이다.

결국 시골에 게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정말 너무 죄송한 전화엿다.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는 알겠노라며 금방 갈터이니 기다리라고 하셧다.

유치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철장에 갇히노라니 마음이 그리 참담할 수가 없다.

밤이 깊을 수록 부모님은 오시질 않으셨다.




아침 일찍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오셨다.

밤에 도착했는데 면회를 시켜주지 않아서 여관에서 자고 이렇게 아침에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죄송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든든하고 힘이 되었다.

아버지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든 일이 잘 해결되길 바라고 계셨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고 차만 고쳐주는 문제를 떠나서 기물 파손, 폭력등 공공 등등 많은 죄목이 붙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천재일우 인지 정말 좋은 형사과장님을 만나서인지 서류를 흟어보시고서는 어린 학생에게 너무 일방적이라고 하시면서 이리저리 알아보시더니 그 차가 요즘 멀로 하면 대포차로 공중에 든 차였던 것이다.




그 차주가 반 건달이었다.

왜려 상황이 역전이 되어서 그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정말 너무 좋은 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니면 정말 유치장에 갈 것 인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아버지께서 공중전화 다 교체 해 주시고 여러 훈방에 대한 서류를 꾸미고 나는 24시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것 이다.




부모님과 자취방에 돌아오자 친구녀석들의 어지러운 술과 담배공초들을 치우었다.

나쁜 녀석들... 어찌 저리도 생각이 없는지.




어버지께서 방에 앉으시자마자 돈을 주시면서 막걸리와 두부를 사오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다리 하나 부러질 정도로 맞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와서 아버지께 한잔 따라 드렸다.

정말 가슴이 조마 조마 한 시간이엇다. 내가 저지른 실수로 인하여 부모님께 힘들게 했고 돈과 바쁘신 시간은 누가 변명하는가 말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래 남자라면 한번은 그럴 수다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한마디도 안하마   내일 못자리 벼농사 준비해야 하니까 아침 일찍 내려오거라  하는 말씀이셨다.  나는 차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당하신 그 수모와 여러 일들에 대해서는 일언바구도 없으시고 자식을 위하여 ....

다음날 나는 일찍 내려갔다.







그리 한 참후 나는 아버지와 같이 군산을 가게 되었다.

그일로 인하여 검찰청에 가서 검사앞에서 반성문 비숫한 것을 써야 하기에 아버지와 함게 군산을 일찍 가게 된 것이다.

정말 죄송한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검사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여셨고  여러 서루에 다시는 이런일을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사과문을 작성하셧다.




일을 마친후 아버지와 군산터미널에 같이 가게 되었다.

슈퍼에서 소주 한 병과 찐 계란을 사신 아버지는 종이컵 가득 소주를 따르시고는 쉬지 않고 잔을 비우셨다. 그리고 아들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거라.

한 대 맞거나 욕을 들었으면 더 서러웠을 것을 아버지는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

남은 소주를 다 드시고는 계란을 드셨다.

아버지는 전주행 나는이리행을 끊어 주시면서 잘 들어가거라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도 안되어 보이고 죄송한 마음이 한이 없었다.

그렇게 차장가에서 아버지를 배웅하고는 아버지가 타신 차를 멀어질때가지 보고만 있는 자식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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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삶이란 ...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이란 그리 특별한 삶이 아닌 누구나 살고 싶은 삶이다.

나는 아내가 항상 말하고는 한다.  참 성격도 특이하고 세상에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긴 것은 분명히 도시풍으로 잘 생겼다고 하는데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보면 영락없는 시골사람이라고...    솔직히 나는 농촌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일하여 온탓인지 정말 시골일 잘 한다.

 

지게도 잘지고 나무나  온갖 굳일일인 시골일 정말 잘하고 잘 할 자신이 있다.
특히 도끼로 장작 패는 일은 지금도 하고 싶고 밤이 되면 소 죽 끓이는 일은, 불 때는 일은 지금도 너무하고 싶다.  그 온돌에서 푹 자면 참으로 개운하다. 
땀이 적당히 흐르고 자면서도 더운 느낌이 드는 그 온돌이 아파트생활하는 요즘에 너무도 그립다.

 

아침이면 내가 지은 전원주택  (  목조건물과 흙으로 진 두채의 집을 지을 것이다.) 에서 새소리 나오는 아침을 맞는다. 아침이슬이 떠있는 산나물이나 직접 재배한 채소를 개울로 가서 씻어낸다.  흙을 씻어내어서 가지런히 소꾸리에 넣어서 가져온다.
군불을 지펴서 오래된 솥에 직접 밥을 지어 먹는다.
누릉지가 나오는 그 밥은 정말 꿀맛 이겠다.
내가 직접 만든 탁자에 방금 따온 산나물과 약초, 상추로 아침을 먹는다.  고추장은 순창이나 내가 직접 제조한 것이면 더욱 좋겠지. 녹차를 우려만든 물로 보리차를 대신한다.
점심에는 뒷산에서 칡을 캐어서 즙을 내어 만들어 먹기도 하고 뿌리는 국수를 만드는 것에 쓰기도 한다.

 

나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제법 쳐놓은 우리에서 오리며 닭도 키워본다.  
사온 돼지는 산속에서 살기에 말 그대로 산돼지가 되는 것이다.  염소도 키워보고 소도 한마리 송아지도 한마리 키워본다.  (요놈은 손이 아주 많이 갈 것이다.)
내가 어릴때 좋아하던 똥개 순종도 한마리 기르고 신풍이와 똑같은 코카스파니엘도 한마리 더 키워본다.

 

더우면 개울가로 발을 담구어 본다.  발을 담구어도 시원치 않으면 반신욕도 좋겠지. 참외면 오이는 내가 키우는 것이니 언제든 텃밭에서 따오면 된다.

목침하나 베고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자장가는 옆 개울에서 물소리가 자장가인 것이다.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한 재미나는 일이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소음이 조금 커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깨면 옆에 있는 책 하나를 펼쳐읽는다.
언제든 좋은 글귀는 밑줄을 그어야 하니까 색볼펜이 하나 있으면 그만이다.
독서는 저자와의 진지한 대화라고 했던가.   같이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네.

 

저녁이면 내가 직접 자르고 도끼질한 참나무나 통나무로 군불을 지피우고 불빛을 본다.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이름모를 새가 우는 것은 같이 있음이 좋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불이 약해져 숯불이 남거든 냉동실에 얼려둔 삼겹살 남은 것을 꺼내게 된다.
오래 묵혀둔 더덕술이면 더 좋고 매실주나 칡술도 관계가 없다.   이리 좋은 곳에 와서 독한 소주를 마실 일은 일년에 얼마 없을 것이다.

달빛이 너무도 좋구나.  별 빛 또한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구나.
신선이 따로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구나.
옛일을 명상 하는 것 또한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어제의 나와 지나온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를 않은가?   고생하고 힘든 삶은 잘 견디어 준 내 자신을 위하여 건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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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삶을 살면서 안정적인 삶을 거부한 사람이다.

안정적인 삶이라..  그래 참 좋은 수도 있겠다.

나에게서 안정적인 삶이란 밥먹고 자고 싸고 먹고 마시는 삶일 뿐이다.

그 어떤 도전도 없고 기차가 그 역을 항상 배회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일 뿐이다.

솔직히 안정적으로 살고 싶기도 하다.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쾌 주어진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지나온 나의 시간은 항상 나의 편이었다.

나는 선장이었고 선원이었다.  나는 주어진 일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배는 내가 의도하는 바와 다르게 항로를 이탈하는 일이 많아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키 조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못해서 였나. 배를 움직이기 위하여 나는 기름과 밧줄을 옭아매는 고통도 참으면서 항로를 제자리로 찾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말이다.




고통과 실패와 눈물과 땀이 있어야만 제대로 가는 항해라는 말인가.

이제것 내가 살아온 삶의 항해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나...  나는 쉽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의 인생 또한 쉽게 산것은 아니다.

살아온 것은 중요하다.  현재는 과거가 만들어낸 속에서 나온 지금의 투영이다.




내안의 최고의 자산을 이끌어 내고 싶다.

항상 시각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새로운 눈을 가진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싶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 자신을 도매급 싸구려로 자신을 팔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안의 나를 정말 꺼내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내 안의 또다른 나의 몇사람을 내어 손오공처럼 세상에 대적하고 싶다.

진정한 싸움꾼은 타고 나는 사람이 아니다. 끈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훈련시키는 사람이다. 두 귀를 네 개의 귀로 들으면서 크고 싶다.




세상에서 내 자신이 작아보는 것은 왜인가?

내 자신의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바다처럼 산처럼 우주처럼 키우면 세상이 작아질 것이다. 성공도 내 꿈도 키우면 키울 수록 커지고 또 커지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적으로 살고 싶다.

내가 처한 현실에서 나의 힘으로 살고 싶다. 누구의 힘이 아닌 내 솔직한 의지로 말이다.

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읽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성공을 위한 나만의 질주 방식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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