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포기하지 마라!

골목길을 돌아서면

어떤 기회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짧지 않다.

먼훗날 그 골목길에서 울던 일이 추억이 될 것이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

 

때론 길을 잃고 당황하고

때론 너무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흘리는 눈물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마른 목에 침도 넘기지 못 할 정도로

절박하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이 탈때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순간이 또 다른 인연을 만들기 위한 쉼표이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색깔이라고 생각하라.

인생이란 고역과 기쁨과 방황과 쉼을 녹여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다.

치열한 색깔이 아름답게 수놓인 그림을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강렬한 색깔에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자.

 

지나가다 원두막에서 막걸리 한 잔 얻어 먹은 기억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고뇌에 몸부림 치더라도 멋진 까페에서

독한 양주를 마시는 그런 주인공같은 삶을 살자.

하루를 살더라도 세상 한가운데서 한판 붙어 보고 가자.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기웃거리며 남의 싸움을 구경만 하지말고

내가 피범벅이 되고 뼈가 살을 뚫고 나오더라도 한판 붙어보자.

그러다 죽어도 그렇게 살기 간절히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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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것이 너무도 많이 드는 훌륭한 글이다.

어느 곳에서 이 글을 발견하는 순간 전율이 일 정도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많은 분들이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같이 나누기로 한다.  같이 나누면 좋고 따뜻해지는 것이 말과 글이다...

 

 

 

 

 

인생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짧지가 않다. 먼훗날 그 골목에서 울던 일이 추억이 될 것이다.

 

맞다. 

인생이란 엄청나게 긴 것이다.  사람들은 자고 나면 몇날,몇달이 금새가고 나이를 들어  세월이 간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시간을 헛되이 보낸 이들이 하는 말이다.

이루어 놓은 일들이 없는 사람,  시간을 헛되이 보낸사람, 과거 1년이 지금 1년과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아주 간교한 변명이다.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하루를 1년처럼, 1년을 평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짧다는 말은 거짓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가장 공평한 시간.   이 시간을 주도하고 소중히 관리한 자만이 분명히 이룰 것이다.  그 먼훗날에 웃는 추억을 말이다.

먼훗날 그 골목뿐 아니라 곳곳에서 눈물나게 시린 기억들이 훈장이 될 것이다.

그 훈장을 기억하고 열어보고 싶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 기록하는 습관, 메모를 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피같이 시간을 아끼면서 맹렬히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후회가 없다.

 

마른 목에 침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절박하고 숨이 끊어 질 것 같이 목이 탈때도 있으리라..

 

살다보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기독교를 안 믿는 사람도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 할  때가 있다.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될 때나,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안되는 불가항력의 아픔이 엄습할 때 교만을 버리고 무릎을 끓는다.  꼭 절대절명의 순간에는 말한다.

" 하느님 도와 주세요! 꼭 도와 주세요!  제발 "   꼭 제발이라는 말을 쓰고는 한다.

마른 목에 침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을 안 겪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몇번 겪어보아서 그 절박한 심정을 알고 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이 타는 심정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그리 될 수가 있으니 준비를 하라는 말 일 것이다.

삶의 여유와 긴장은 내려놓지만  자기를 절제하고 생각의 자기관리속에서 세상의 유혹들을 물리치라는 말이다. 

 

치열한 색깔이 아름답게 수놓인 그림을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사람이 되자.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강렬한 색상에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평생을 가슴에 두고 사셨던 그 한마디다.

 머나먼 고국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그 한마디다.

" 담담하라...  담담하라...  때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담담하라! " 는 그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누구나 세상의 유혹에,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흔들리고 상처받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자신의 주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태산같은 자신만의 힘을 가지라는 말이다.  때로는 우직하고 미련할 정도로 자신이 가는 길에서 미쳐보라는 말이다.

다른 보통사람들과의 삶에서 보통의 생각으로, 보통의 일로, 보통의 열정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열하게 살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강렬한 색상에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자. 

열정의 불꽃이 피어오르면 대체 안 될 일이 무엇이냐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천재물리학자나 대통령,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전문산악인 같은 특별한 삶이 아닌한 대체 못할 것이 무어냐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통사람들이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피눈물나는 노력에 의해 그런 경지를 도달한 사람들이다.  타고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자.

 

 

지나가다 원두막에서 막걸리나 얻어 먹은 기억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고뇌에 몸부림 치더라도 멋진 카페에서 독한 양주를 마시는 그런 인생을 살자.

 

허세와 위장이 아닌 진솔한 삶을 살자는 말이다.

삶에 힘겨워 사람들의 비좁은 시간에 끼어서 이리 저리 방황하고 주관을 잃은 채 살자는 말이 아니다.

너무 안전한 삶에서 때로는 벗어나 보는 것이다. 누군가 다 필요한 사람들이다.

회사원도 청소부도 경비원 아저씨도 서점의 책 딜러들 심지어 식당에서 주차관리하시는 분들 까지도 다 소중하고 필요한 사회의 귀중한 분들이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가족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처자식을 핑계로 생활의 수단으로써 살자는 말이 아닌 것이다.

내 인생에 주인공으로써 진정 가고픈 삶의 이정표가 저기 보인다면 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준비하고 기회를 언제든지 얻어낼 수 있는 실력을 기르자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으며 쉬운 일이 있는가?

막걸리는 누구나 마시는 것이다. 막걸리만 매일 먹는 사람은 항상 막걸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줄 안다.

아니 왜 다른 술을 마셔보려고 생각도 안 해보는 것인가.

남이 채워주지 않으면 내가 채워 마시고 남이 먹는 자리에 가서 나도 한잔주시오 하는 똥 베짱과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기웃거리고 남의 싸움을 구경만 하지말고 내가 피범벅이 되고 살이 뼈를 뚫고 나오더라도 한판 붙어보자. 

 

 

더이상 말이 필요가 없는 대목이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남의 인생을 살아 줄 수는 없다.

어차피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연습도 재도전도 없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히 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갖자는 말이다.

후회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다.

이 순간 지금 있는 현실이 중요할 뿐이다.

나도 내가 이렇듯 30대 후반에 들어설 줄은 꿈에서라도 알았는가?

나에게도 푸른 빛을 내 뿜은 중고교 시절이 있었다.  방황이라는 시간속에 거리를 배회하는 20대 초반과 군대에서의 추운 겨울과 20대 중반의 당당함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살아온 날들과 아이를 기르면서 철부지 애 아버지 노릇도 했었다. 세상을알아가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30대 초반의 앞만 보고 가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게 된 줄은 나도 몰랐다. 30대 후반이면 분명 나도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나쁠 수 만은 없다.

다 그 나이에 맞는 놀이와 사람, 즐거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고 또한 재미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내 자신이 이루어놓은 시간과 일 들이다.

 

이 글을 읽노라면 그 어떤 강렬한 기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차력사의 힘이 느껴지도 한다. 불을 뿜어내고 쇠를 휘며, 날카로운 창끝이 목을 겨누고 있어도 도리어 그것을 부러뜨리는 기염...   언젠가 들었다. 차력사들에게 그 순간은 마지막처럼 온몸의 힘과 기를 정신력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일종의 초능력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이 있다. 다만 있다고 믿지도 않을 뿐이고 자신에게서 밖으로 표출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집중하고 내가 가는 그 길에서 최선의 몇배를 가하는 것이다.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로 제대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매순간 삶은 멈추었던 순간이 한번도 없었다.

삶을 이겨내고 이끌어나가는 나의 삶 또한 도전이다.

때로는 악착같은 악바리 정신도 있어야한다.  객기 비슷한 엉뚱한 생각도 있어야한다.  남이 다 가는 길이지만 나는 이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반대로 가는 삶을 살아도 보아야 한다.

올 한해 한가지만 약속하기로 한다.

한가지 목표를 위하여 미쳐보기로 한다. 미쳐서 끝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열정의 칼을 휘둘러 보기로 한다.

그리한다면 분명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분명 자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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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군대 라는 말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아픈 추억들이 있다.

이 아픈 추억 이라는 것 또한 절실하게 , 간절하게 배움 을 얻었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 이다.

하지만 얻고 배우는 인생의 크나큰 차이는 사뭇 개개인 다를 것이다.

나는 군대라는 그 자체가 힘들다  생각한다.

해병대, 특수부대를 나오고 힘들게 군 생활을 하여야만 군대 생활을 잘한 것은 아니다.

군대라는 그 안의 사회와 격리된 생활이 힘든것이다.

방위 생활도 나름데로 힘들고 취사병, 서무병도  다 나름 데로의 그 고충이 크리라.

군대는  군대 라는 그 자체가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들을 이겨냈다는 자체 만으로도, 몸건강히 잘 세월을 이겨 냈다는 자체만으로도 휼륭히 군생활을 잘 해낸 것이다.

 

추운 겨울 12월의  어느날 군대를 입대했다.

하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눈이 펑펑 밤새도록 내렸다.

첫날 그 어설픈 군인의 군복을 입고 내리는 창밖의 눈을 보노라니 과연 내가

제대 라른 것을 할날이 있을까?   정말 갑갑 하고도 보이지도 않는 그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퇴소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아내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훈련소 따라 오면 고무신 거꾸러 신는 다기에 전주터미널에서 군대가는 것도 아닌것 같이 가까운 곳에 가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버스에 올라 오지 않았던가?  같이 훈련소 까지 올것을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그 밤에 나는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못할것 같은  두려움에 밤을 지세워야만 했다.

과연 내가 이 훈련소를 나가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 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지독하게도 흘러 훈련소를 퇴소하고 후반기 교육을 광주에서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3개월 시간동안도 두려운 것은 어느곳으로 자대배치를 받는 다는 것인가?

아내가 면회오기 쉬운 곳으로 제발, 가까운 곳으로 자대배치를 받게금  해달라는 기도가

나의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두려웠다.

내 소원이  다해 원하는 곳으로 배치를 받아 자대 배치 받던 그 날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자대를 배치받아 신고식을 하려 하는데 날 쳐다보는 그 많은 고참들의 시선...

그 눈빛들이  비슷한 나이의 사람에게서 나는 그 눈동자가 참으로 두려웠다.

 

나는 기갑부대,  전차 조종수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를 그 때처럼만 했으면 아마 고시라도 합격했을 것이다.

배워야할 것도 많았지만 외워야할 것도 많았고 연이은 훈련과 밤의 근무, 나의 신병생활은 그저 냄새나는 그 구막사 화장실에서 아내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받을을 뿐이지

다른 어떤 곳에서도 희망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 힘겨움은 군대를 갔다온 사람만이 알아줄 것이다.

구타 근절이라는  목표아래, 구타가 사라지고 가혹행위가 점차 없어진다 고는 하는 그 시절이었지만 구타는 음성적으로 윗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만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판치고 있었다.

맞는 다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다.

윗 고참들 부터 맞는 그 소리, 그 소리가 무섭다.  내 차례가 다가오는 순간이 두렵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고 앞도 볼틈도 없이 그렇게 열심히 군생활을 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일병 2호봉 때쯤 어느 토요일 부대원들이 한 내무반에 모여 비디오를 보는 시간이 왔다.  그러던중 누군지 정중앙에 의자를 놓고 앉아 많은 병사들이 볼수가 없었다.

누군지 보니 하사관 출신인  나와 입대가 비슷한 하사였다.

기갑부대 특성상 하사관이 부대원 40%를 차지 하고 있었고,이 정중앙에 앉아있는 하사는 우리 고참들과 후임들이 가장 싫어하는 눈에 가시같은 하사였다.

고참들에게 교육을 당시 그렇게 받았다.  절대 하사관들에게 경어도 쓰지 말것이며 깡다구로 절대 지지도 말라고...

내 바로 앞에 않아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입에서는 쌍소리가 나오고 비디오 전세냈나..  들릴듯 하게 내가 내밷고 말았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리였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그 순간이 정말 싫었다.

그말을 듣고 말싸움이 붙었고 말싸움에서 몸싸움으로 가는 것은 오랜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당직사관에게 보고가되고 부대원전체가 군장을 싸고 연병장을 돌았다.

고참들은 잘 했다며 격려를 받았지만 나는 무언가 깊숙한 깊은 곳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결코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기분이...

 

적중했다.

중대장에게 보고가 되어  진술서를 시작으로 사고경위에 대한 내용증명과 여러 정황이 담긴 수십장의 종이를 쓰고 또 쓰고 밤을 거의 새우듯 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징계위원회와 사실처럼 하는 상황재연, 내가 배우가 된듯하다.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 가는 그 순간이 너무도 길었다.

어떻게든 정확한 말이 없고 군기교육대를 갈것이냐, 영창를 갈것이냐, 대체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앞을 알수 없는 그 시간이 고통의 두려움 이었다.

사람을 고통받게 하는 것은 몸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고통받게 한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10일간의 완전군장에 연병장을 도는 것으로 매듭 지어졌다.

내 안에서 나온 나의 말한디의 위력은 이처럼 나를 힘들게 15일의 댓가를 치루게 만들었다.

 

군인은 군인 다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내 주관이었고 고참들에게는 책임있는 후임,

후임에게는 솔선수범이지만 강하고 자기위치를 아는, 그리고 후임답게 하는 후임이 되게금 가르쳤고 어쩌면 강요를 많이 하였는듯 하다.

웬지 나약해지고 군인 답지 않은 느낌을 그 즈음 후임들에게서 느꼈다.

보상심리는 아니 었지만 저게 군인 맞나 하는 후임도 여럿이 보였다.

그때가 상병 6호봉 때이다.

이제 병장도 채 2달이 남지 않았다.

그러던중  내 인생의  관점과 군생활을 확 두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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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2007-11-1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lrutkdtkd

이쁜매미 2007-11-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글입니다. 항상 이렇게 좋은 글 살아있는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마시고 자신에게 일기를 쓰듯이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솔직하고 담백한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고향은 전북진안입니다.

흔히들 무진장 골짜기라고합니다.(무주,진안, 장수를 가르킵니다)

그래서저는 제자신이 시골깡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합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요...

제나이 7살로 기억이됩니다.

아버지께서 마을하고 한시간이 채 떨어진곳에 외딴곳에 집을 지으셨습니다.

이웃이라고는 한채도없는 홀로이  말그대로 외딴집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싶은 그런 외딴집이죠.

 

집앞에는 강이라하기에는 크고 냇가라하기에는 작은, 그런강물이 흐르고 그강물건너에는

200미터가넘는 작은산이 있었답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나누어 지으셨답니다.

한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의 형제들이 사는집.

두번째는 오리와 닭,소,염소,등등 짐승이 사는집.

세번째는 여러생리현상들은 하는곳과  농사지을때쓰는 연장넣어두는곳...

그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지대가 확트이듯 넓었답니다.

그넓은곳들사이로 논과 밭,그리고  여러곡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곳들...

친구들의집은 저멀리 잘보이지않는, 마을과는 참으로 멀리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요?

좋겠다구요?

어머 낭만있다...전원생활이다...저푸른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3주만 살아보십시요... 그말이 쏘옥 들어갈겁니다...ㅎㅎㅎ

 

 

그당시 시골이 다그럿듯 시골생활(도시생활도 별다를게없죠)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먹고살기위해 일하고 ,일하기위해 먹고, 먹은힘으로 또일하고 ...

먹고살기위해 일한다는표현이 참으로 맞을겁니다.

지금 30~40대 분들은 동감하시리라 생각해봅니다.

가난했는데, 그보다 더 가난했던지라(소있고 짐승있다고 다 부자가아닌시절)

어린시골생활 ,너나 할것없이 어린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죠..

국민학교때 (지금은 초등학교)2학년때인가 부터 소꼴베고, 모심고,돌나르고,

거름나르고 , 가을이면 낫으로 벼베고(지금이런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안믿는분도계십니다
)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느랴,밤이면 소죽을 끓이곤했죠.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고, 개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죠.

제자신도 했지만 ,30~40대분들은 (특히 40대분들)거의일상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가난하고 먹고살기가 참 각박하니까(지금도 어려운 이웃은 많습니다) 다들 그랬죠.

 

그래도 외딴집 (그곳을 다른분들은 액기제라고 그랬습니다)이라 재미있는일들도 많았답니다.

여름이면 고기를 많이도 잡았습니다.

천렵이라고 그러죠.

산수좋은곳에 찿아가서 웃통 벗어젖히고 멱감고 탁족(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담금)하며

물고기잡아 매운탕으로 소주한잔걸치는 (어린나이에는 술이라는 자체가싫었지만 보기에는 좋았음) 모습을 보며 어린나는 고기만 먹고, 나무그늘아래에서 늘어지게 한숨자는 그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지요.

강가에나가 멱(수영)도 하고 대수리(지금은 고동이나 다슬기라고하죠)도 많이도잡아

마을에나가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하기도하고 많이도먹었죠.

 

이사올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때쯤에는 엄청 크고 ,엄청 좋으맛을 자랑하기도 했죠.맛있다고 타지에서  손수 찿아와서 많이도 사가곤했죠.

당연히 그럴수밖에요.

추운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당시는큰돈)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키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배설물들과  거름등을 정성드려 키어온 결정체인걸요...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 고구마,콩 팥등을 캐내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라는것이 무언지모르는 때였지만 겨우내먹을수있는 양식이 있다는것은 지금생각하여도 흐뭇하고 , 뿌듯한 가슴에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비가많이오거나 홍수가 날때면 가슴이 콩알만해집니다.

100여 미터앞의 강에 비가많이만오면 항상걱정이됩니다.

물이 불기시작하고 ,그물들이 둑있는 집근처까지오면 어이구 그만와야지합니다.

84년도인가?

대홍수가 났을때에는 온천지가 다 바다였습니다.

논이며 밭이며 ,다 쓸어가버리고 나무며 , 온갖것들이 다떠내려오고 (심지어 돼지며,개,닭등)

집앞마당까지 넘쳐 금새 집안으로 오게되는상황에 앞산에서는 사람들이 다죽게생겼다고

몰려오고 핼리콥터까지뜨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많이오던비가  그런데 어찌된 상황인지, 집이 10분만 더비가오면 다죽게되는그상황에...

그많던 어머니의 기도덕분인지  기적이 일어나더구요.

멈췄습니다.

세상에 그 많이오던비가, 기적처럼 멈추더라구요.

전 그때 알았습니다.

기적은 존재하는구나.

그때 제가 물에빠져죽었음 이글도 남기지못하겠죠...ㅎㅎㅎ


 

 

차가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할일이 많지않습니다.

낮에만 땔감하는랴 몇시간시간보내고 ,저녁이면 짐승들 밥주고 소죽끓이고

불이들어오지않는 그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습니까?

어린그시절부터 전 책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인생의 가장큰스승을 만나게되었습니다.

호롱불이 들어오는 그불빛에서 읽는 그독서의 의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저절로납니다.  아스라이 잊혀진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나는 그때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 지루해지자, 눈속을 뚫고 마을로 한시간을 걸어가 친구들집집마다 다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즐거움은  아마 모르실겁니다.

한권한권,가방에 넣어 매고오는 약간은 가벼운 ,하지만 마음은 들뜸과 희열이나는 그기쁨

홀로집에오는 그발걸음은,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있어 외롭지않았고 발걸음은 더욱 제촉이됩니다.  방학때 이놈만 있으니  이제안심이구나...하는 마음이든거죠.

만화책도 엄청 많이도읽었습니다.

그때 읽은 만화책가운데  최배달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책을 가장 감동적으로보았죠.

방학기선생이쓰신 지금은 "바람의파이터"인데 영화로도 아마 나온다그러죠.

최배달선생의 무도의혼과 집념,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견줄정도로

돌아가시기전까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그분의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그당시 제꿈이 첫번째 무도가였고

두번째가 만화가이자  만화가게주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책과 저는 땔레야 땔수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죠...

어렵고 가난한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그날  부모님과 같이사는즐거움이 있었고,언젠가 우리도 저멀리보이는

동네로 이사갈것이라는 희망이있어 좋았답니다.

 

그런데 왜 농부이야기인가?

 

농부이야기? 글쎄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린시절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농부가 하는일이무얼까요?

겨우내 여러씨앗이며,거름,봄에쓰일 농기구들을 다듬고 봄이오는 그시기를 준비합니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모를심고, 대지위에 한해에지을 농사의 기초를 시작하게됩니다.

여름이면 무엇을 할까요?

어느덧 자란 벼에 농약을하고, 비료를 주고, 피를 뽑아주고(여기서 피라하면 사람몸에서나는피가아니라 벼와 똑같이생긴녀석인데,생긴것이 비슷하지만 자세히보면 전혀다르다.

이놈은 사람몸에 붙어 피를뽑아먹는 모기같아 벼성장과 발육에 큰 피해를준다)

물조절을 잘해주면서  벼농사에 가장큰 시기라합니다.

그래서 할일도많고 소중한시기죠.

 

맞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여정이 농부의 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가을 겨울이 옵니다.

언젠가는  추수할 곡식들이 나오는 가을 겨울이 올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부의마음처럼 이여름을 잘보내고저합니다.

 

인생이라는 논과밭에서 벼를가꾸고, 밭을 일구는 농부의마음이고저합니다.

농부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여름이라는 이 중요한 시간앞에서, 여정은 길고 시간은 많지만

하루하루를 조급하지는 안하도록, 헛되이 보내지말면서 살고저합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가뭄이들어 바닥이 갈라져서 밑이보이면 멍하니 하늘만바라보지않을것입니다. 어떻게든 개울물이라도, 옹달샘에있는 물이라도 퍼다가 가뭄을 이겨나갈것입니다.

이시기는 열심히 산다고하는데도 마음처럼 안되는 시기라생각이 듭니다.

비료도 때에따라 잘주어야겠죠.

요소비료,복합비료(이부분은 전략과 전술이라는표현이듭니다)로도 때에따라 잘주어야합니다.농약도 비가온후나 가물었을때 주는 방법과용기도 다릅니다.

이부분은 저는 자극이라는 표현이 맞을성 싶습니다.

잡초와 피도 잘 뽑아주고 처리해줘야하는데

저는 이부분은 실천과 도전이라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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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강재구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논산훈련소 30연대에서이다.

같은 중대, 같은 소대, 같은 내무반을 같이 쓰는 훈련소 동기이다.

이친구는 별 말이 없는 묵묵한 친구였기에 이 친구의 존재를 많이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당시 나는 훈련소에서 남들 다 쉴때에도 일하는 식사당번을 맡고 있었기에 아침,점심,저녁 식사후에 항상 하는 그 짬돌이 생활이 훈련소생활중 가장 힘들엇던 것으로 기억이된다.

남들 쉴때 쉬어도 체력과 몸이 덜 힘들판에 항상 쉬는 시간이 없었던 그 순간이 지금도 힘들게 느껴진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그 친구가 군오기전에 안양에 집이 있다는 그 말이 너무도 절절한 동지로 다가왔다.

안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뛸 때였다. 안양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던가?  항상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고 혹 꿈 속에서 만나면 만난 그 순간을 더 가슴에 느끼고 싶도록 아린 내 사랑하는 그녀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힘든 그 날카로운 군 훈련소를 견딜수 있었던 것은 내 사랑 그녀가 보내준 한통한통의 편지와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 강재구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견딘 삶이었다.




항상 귀담아 귀기울여 주었다.

내사람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하여 말이다.




훈련도 중반을 넘어서 그날밤 야간 사격하는 날이었다.

한겨울 12월에 입대한지라 사격하는 날도 1월의 칼바람으로 기억이 된다.

저녁을 먹고 야간사격장에서 자기 차례가 올때까지 아마 2시간은 기다려야 하였나보다.

춥고 더디게가는 그 시간에 나는 이 강재구친구와 무수히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양에서의 이야기들 , 제대후의 이야기들, 얼큰한 국물에 소주한잔 하고싶다.

우리 제대후 아니 휴가때 꼭 만나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추웠던 그 야간사격장의 밤은 그 친구가 있어 너무도 따뜻했다.




다음날 주간사격...

여전히 추웠던 날씨 

이친구와 시간만 나면 이야기하고 그 냄새나는 구화장실에서 추위를 피해 웃으면서 먹었던 그 식사와 담배 한가피....  그렇게 훈련은 서서히 가고 있었다.




퇴소후  나는 광주의 기갑학교로, 그 친구는 멀리 경기도 수원 특공연대로 제대를 명받았다. 그리고 가끔식 오가는 편지에서 많은 우정과 힘을 얻었다.

일병휴가때 친구 면회를 갔다. 나도 휴가가 금같은 시간인데 면회를 간다는 것은 보통정성이 아니겠지만 나는 면회를 갔다. 면회를 신청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 인지라 훈련을 나갔단다.   아쉬운 마음에 또 상병휴가때 면회를 갔다.

면회를 신청후 만나 수원역으로 호프집에 도착하여 회포를 풀었다.

몇잔의 술잔이 오간후 그렇게 할말이 많고 보고팠던 친구지만 막상 얼굴이 보니 할말이 없어 졌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린다는 것이 둘다 잠들어버렸다.

피곤하고 지친 군생활이 긴장의 끈을 놓지못하게 하였나보나...




드디어 군제대후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전화를 걸었다.

안양역쪽 본백화점이라는 곳에서 일한다 하여 찾아갔다.

그런데 그 친구를 멀리서 보는 순간 사자가 토끼들과 어울려 야성을 잃는 느낌을 받았다.

캐벼보조하면서 봉투에 물건을 집어넣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저녁에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마디하였다.

너하고는 도저히 맞는 일이 아니다.   포기하여라.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있는 법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인 듯 하다.

그냥 그렇게 잘 하고 잇도록 나둘것을

방황도 참 많이 했었다.  일찍 애 아버지가 된다는 마음에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에도 언젠가는 이 친구와 같이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쥐가 있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그 쥐를 잡아주다가 쥐가 최후의 반격을 하는 통에 쥐에게 물리는 일이 발생되었다.

피가 많이도 났다.  다음날 친구의 학교인 경기대를 가서 그 물린 자가 찝찝해서 병원에 들러서 주사를 맞게도 했다.




같이 수원 거목이라는 술집에서 술을 마셧다.

샌님처럼 생겨서 그리 힘을 쓸 것같아 보이지 않는데 정말 선수다.

무술과 노가다로 단련이 더 되다보니 어찌 그리도 힘이 좋고 일을 잘 하는지 그 바닥에서 아예 소문이 나버렸다. 거목에서 술을 마시고 나는 술이 쉬했다.

다음날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전철에서 담배를 피우는 파렴치한 일까지 저 질렀다는 것을 알고는 화끈한 마음에 ...




항상 나에게 힘이 되어준 친구이다.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친구이다.  그 자리를 항상 지키고 나를 지켜주는 친구.

항상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주면서 내가 옳지못한 판단을 내려도 묵묵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그 일이 비록 잘못되어도 탓을 하지 않는 그 친구.




사업이 어려워서 정말 울고 싶노라는 말을 하니...   자기가 가진 돈 이 있는데 빌려주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니 아무 부담같지 말고 쓰라는 멋진 친구...

내가 세상 헛 산것은 아니구나...

너무도 고마웠다.




경찰 10년이 다 되어간다.

경찰이 순찰 잘하고 일 잘하면 되는데 어찌도 그리 공부를 많이 하던지 내가 언젠가는 그렇게 공부하면 고시도 붙었겠다. 대단 하구나   하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고맙다 친구야    네가 있어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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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충동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답답한 갈증의 마음을  시원한 맥주로 날려버리고 싶은 그런 충동이 감사하게도 들었다. 몇 년을 만나지 못한 친구 혹은 떠나간 옛 애인이 몸 서리치게 보고 싶은 그런 충동의 글 말이다.  나는 이런 충동적인 글을 읽기도 좋아하고 가끔은 쓰기도 좋아한다.

 

 

글 이라는 게 그렇더라.  하나의 날카로운 칼이면서 부드러운 햇살이더라.

표현의 방식에 따라서 날카롭기도 부드럽기도 하더라는 말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깊은 내 안의 뜨거운 심장에서 자연스럽게, 아주 가볍게 끌어내어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마음을 잘 말하는 사람이다.  가식적이지도 않고 그리 포장하지도 않았지만 설득력있는 그런 말 말이다.  나는 솔직한 것이 좋다. 아니 직설적이라는 말이 더욱 좋다. 보여주려거든 다 보여주어야지  어설프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 솔직한 말.... 그런 말의 글을 말이다.

이제 솔직히 3편에 나누어 대화를 풀어보기로 하자.

좋다.  이런 감정의 글을 써보는 것이, 심장에서 솔직하게 내 보내는 글이 아마 3년만이지 않나 싶다.

가슴이 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길을 떠나는 느낌말이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결론을 먼저 말하고 싶다.

프로 세일즈맨은 있다!

그렇다.  프로 세일즈맨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프로세일즈맨인가?

내가 생각하는 프로 세일즈맨의 가장 기본적인 제 1원칙은 단 하나이다.

프로 세일즈맨은 내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있어야 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은 추위에 떨고 배고파 고통스러워하는데 남을 위하여 밥을 짓고 나르고 있다면 무언가 분명히 잘못 되고있는 것이다.

일단 가족을 비, 바람을 피하고 장작불이 방구들을 지피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도 둥둥 떠있는 계란말이도 있는 밥상을 차려 든든히 먹고 두툼한 이불속에서 발을 이불속에서 빼내어 행복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행복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기본인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시민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민족과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첫째가 아니다.

먼저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하여 프로세일즈맨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잠깐 내 어릴적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어릴적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인가 신문배달을 했다.  아버지가 그 신문지국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꾀임에 빠져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만나면 정말 때려 죽이고 싶지만 내 아버지의 판단이었기에 솔직히 남을 원망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할만한 분에게 그 자리도 맞겨야 되지 않냐는 말이다.

술 좋아하고 가정이라고는 전혀 신경을 쓰신 적이 없는 아버지께서 자식들 고생시킬 것이 뻔한 일을 시작하셨다.

조선일보이다. 지긋지긋한 그 조선일보를 내가 지금 아침마다 보고 있지만 당시 나는 진저리가 났다.

아침7시50분이면 정류장 의  버스 짐칸에 신문덩어리가 도착한다.

외 할머니댁으로 가지고 가서 각 마을로 가는 신문들을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 ( 이 봉투는 것이 힘들다. 몇번지, 이름을  매일 다 써야 한다. 날이면 날마다 쓰는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 50부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을 다 붙이고 아저씨들에게 드린다.

이 일은 내 누나가 했다.   우리 누나 정말 고생 징그렇게 많이 했다.

나와 동생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아마 80부 가까이 신문을 돌렸다.

이 일을 아마 5년 가까이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 특히 겨울방학때,비가 올때  비오면 비에 젖을 세라 힘들다. 행여 젖었다고 다시 가져다 달라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이 슬쩍 해서 또 가져다 주어야하는 힘든 점.

항상 신문배달후 늦게 등교를 하었기에 1교시가 시작되어 들어갔다. 수업중에 들어가는 그 쪽팔림은 힘들었다. 문이 드드륵 열리면 나를 향하는 그 많은 눈길들...

 

신문배달은 배달대로 힘들고 또 수금이라는 것이 남아있다.

어른들 ..지긋지긋하게 수금들 안해 주신다.

자식같은 사람이 비오는날에도, 눈오는 날에도 고물 자전거타고 1시간여를 달려왔는데도 수금 안해준다. 있어도 없는 척하는 어른들...  더위와 추위를 넘나들면서 나는 어린나이지만 느꼈다.

신문값  2500원...

" 정말 이 돈이라는 놈   무섭구나...!  "  수십번 수금 갔는데도 안 해주는 집에서는 정말 더럽구나.

 

누나가 구로공단에서 일해서 몇년을 일한돈으로, 정말 피같은 돈으로 1986년  300만원이라는 돈을 갚아주었다. 지금도 큰 돈이지만 당시는 더 큰 돈이었다.

난 정말 지긋지긋한 놈에게서 해방이 되었다.  돈 때문에 받은 고통을 돈으로써 해방되었다.

 

 

아기가 세상을 나오더라고 엄마 뱃속에서 10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프로세일즈맨도 태어나면서부터 준비해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대하여 젊음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 60대 젊은이가 있고 20대 노인도 있다.)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하여 예의가 아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는 이야기로 글을 풀어나간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돈이라는 괴물은 반드시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다는 것을 먼저 말함이다.

돈이라는 괴물에 휩쌓여 한 집안이 다 고생을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도 싫었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고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사실이고 정말 감사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이세상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못 할 세상의 단 한 분이신 내 어머니의 그 고생과 눈물의 한숨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어떤 단어로도 말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그릴 수 있는 그림도 아니다.

이 휼륭하고 아름다우신 내 어머니께서 한평생을 아니 지금도 고통속에서 사시는 삶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면 치료을 하여야 한다.  어떻게 어떻게....

 

 

 

왜 영업을 하는가?

돈을 벌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왜 꼭 영업이어야 하는가?  영업은 공평한 게임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같은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그리는 미술가나, 특색있는 음악을 선보이는 음악가와 같은 것이다.

 

영업은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하여야한다.  특히 뿌리가 깊은 나무로 성장하게끔 하여야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주어진 환경에 절대 탓하는 법이 없다.

벽두 절벽의 천길 낭떨어지에 가까스로 붙어있는 소나무를 본일이 있는가?

그 소나무의 그 질긴 생명력과 의지력.  제대로 영업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원망하지 고객을 원망하지 않는다. 주면 주는 대로 따사로운 햇살도 받고 광풍을 동반한 비바람과 모진 추위속에서도 춥다 덥다 하지 않는다. 주면 주는 데로 많다 적다 서로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

놓여진 자리에서 자기자리에서 이웃 나무를 질투하거나 넘보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나무는 산소를 공급하고 소음을 감소시키고 공기 속의 먼지를 걸러 주기 때문이다.

50년생 활엽수 한그루가 12명이 숨쉴 수 있을 정도의 산소를 배출한다고 하니 휼륭한 허파인 셈이다.

송곳을 꼿을 정도로 빈 공간까지도 찾아내 나무를 심는 그 심정으로 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고 몸값을 올려야한다.

내 자신이 일인 기업이 되어야한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프로세일즈맨이 되어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가까이에 계신 내 어머니와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나는 프로세일즈맨이 되어야한다.

 

어설픈 베트공100명보다 더 강한 일당백의 람보말이다. 

 

나는 아직 프로세일즈맨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대화한 마음이 가장 기본적인 세일즈맨의 정신이라고 생각해본다.

이제 거대한 숲속으로 들어가보도록하자.  자 가슴속에 있는 횃불을 하나씩 꺼내기로 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알고 보면 대단한 영능력자이다.

앉은뱅이 귀머거리, 장님, 나병환자 등을 그 자리에서 낫게하신 기적을 행했다.

예수님의 기적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예수님 고향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지만 치유의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고향사람들은 단지 어릴적 지인으로 예수를 생각하고 마술 같은 기적만 바랄뿐 신의 섭리를 믿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영능력을 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2년이나 하열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씻은 듯 완치되었다.

그 여인은 예수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 장하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했도다."

영능력은 남이 행사 할 수 이찌만 믿음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자기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제조건이 있다.

 

예수님이 로마병사에게 끌려가기 전날 밤, 베드로가 이를 막기 위해 제자장 경비병 귀를 자른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크게 꾸짖는다.

" 내가 청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열두 군단의 천사가 내려올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로마를 바로 멸망시킬 수도 있지만 힘이 없어서 가만히 당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예수님은 다음날 묵묵히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충분히 영능력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어설픈 베트공 10명을 싸워이기는  람보같은 용병으로 내 자신을 만들어야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사소한 바람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밝은 표정,환한 웃음,절대 긍적적인 생각의 웃음치료사 마이클심입니다.

 

억지로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사람만이  보물이다.

영업은 상대방을 도와 주는 것이다.  영업사원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가겠는가?

 

이 세가지로 시작된 마이클심님의 명강의 였습니다.

 

미소짓기.

웃는 얼굴에 침을 밷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날까?

어지간한 세상의 불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세가지 타이틀에서 말씀하신 억지로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습니다.

 

인사하기.

인사하기는 제 자신부터가 영업을 떠나서 살아가는 최고의 처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본이란 말하셨고 저 또한 공감가는 부분입니다.

제 아들 둘에게도 저는 이제껏 공부하라고 말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을 만나면 항상 인사하거라. 하루에 3번을  만나도 인사하거라. 공부를 잘 한다면 더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먼저 사람이 되어야한다. 어느 곳에서 건 인사잘하고 예의바르면 밥은 안 굶는다.

 

대화하기.

대화의 기본은 경청.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기본이라 하셨습니다.

유능한 영업인일 수록 질문을 많이하고 고객이 진실로 원하는 need를 제대로 말하는 것이지. 자기 재품만 앞세우고 설명하고 떠들어 대는 것은 실전영업이 아니다.

 

칭찬하기.

말하는 데 돈들어 갑니까?

칭찬하면 내 자존심에 흠집이라도 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식이 아닌 진실된 마음의 한마디 정이 섞인 칭찬이 부드러운 영업의 자리를 만듭니다.

다일지님의 명강의에서처럼  참  좋아지셨습니다!  이 말한마디가 협상에서의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을 알것같았습니다. 아니 자기 좋다고 하는 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불만, 욕설,험담,남 이야기 하는 사람 피하기.

사람은 끼리 끼리 어울린다고 했나요. 까마귀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우고 익힌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긍정적인 삶을 설계하느냐에 거인이 되기도하고 난장이가 되기도 합니다.

 

일류인생, 일류배우되기.

일류배우는 왕, 거지, 깡패 역활을 맡아도 어떤 배역이라고 소화를 해낸다 합니다.

하지만 삼류배우는 항상 어두운 배역의 깡패, 사기꾼, 도둑 역활등 불량한 배역을 합니다.

일류는 안성기, 최수종   최근에 모팔모역활을 맡았던 이계인도 많이 떴죠.

 

 

프로 세일즈맨은 없다.




프로 세일즈맨은 없다.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프로세일즈맨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끝이 없다. 프로 세일즈맨으로 가는 길은 끝이 없기에 쉬지 않고 갈고 닦아야 하는 외로운 길임을 나는 알고 있다.




벽을 타는 남자.

벽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가집을 넘어 벽을 타고 그집을 오를 수 있다. 3층집을 넘어서 그 집의 정상을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십층의 건물을 오른다는 것. 인생은 아니, 삶은 벽을 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을 타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방법에 따라서 생각과 방식에 따라서 그 오르는 방법은 다르고 타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계단을 따라서 끊임없이 나오는 땀을 닦으면서 쉼없이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온몸에 위험한 밧줄 하나에 매달려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다리를 동원하여 한계단 한계단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다.

나는 한가지로 된 (보험, 자동차) 영업보다는 여러 방면의 영업을 배우고 싶다. 한우물을 파던 시대는 지났다. 장잔점이 있지만 영업의 맥은 어쩌면 통하지만 상품의 여러 영업방식은 다르다.  여러 가지  판매한 사람은 무엇을 팔아도 잘 팔 수 있다.




아기가 세상을 나오더라고 엄마 뱃속에서 10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프로세일즈맨도 태어나면서부터 준비해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대하여 젊음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 60대 젊은이가 있고 20대 노인도 있다.)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하여 예의가 아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는 이야기로 글을 풀어나간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돈이라는 괴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이라는 괴물에 휩쌓여 한 집안이 다 고생을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도 싫었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고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사실이고 감사하는 일이지만 항상 가장 고생하시는 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못 할 세상의 단 한 분 어머니의 그 고생과 눈물의 한숨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어떤 단어로도 말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그릴 수 있는 그림도 아니다.




1. 왜 영업이어야 하는가?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이야기들, 부딪기면서 벌어지는 일들, 그 모든 것들이 모두가 영업 그 자체이다.  친구와의 만남과 이웃과의 인사와 조그마한 사소한 일들의 모든일들이 사실은 다 영업이다.

왜 영업을 하는 가?   보다 나은 수입으로 부가가치의 창출과 자유로 가는길이라고 들 말하는데 어려운 말 빼고 다 잘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말 그대로 등 따습고 배불리 걱정없이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일을 해야 하는 가? 

평범한 사람이 불알 두쪽 가진 사람이 무얼 해야한다는 것인가?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천재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라면 무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밑천없이 하려는 사업.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다.

잘먹고 잘 사는 법으로 가장 기본은 영업이라는 것이다.

강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 또한 영업이다.

강자가 강자가 주위에 모인다.

스타가 되면 스타가 옆으로 모여든다. 언젠가 장동건이 신문에 나온 기사를 유심히 읽었는데 스타가 되니 스타가 주위에 몰려 들더라는 것이다. 무명때에는 그리도 스타를 만나려하고 가까이하려 해도 힘들엇단다. 그래서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고 몸값을 키우자 그리 어렵던 것들이 자신이 스타가되니 만나달라고 사정과 부탁을 하더라는 것이다. 

로또 당첨자의 85%가 당첨된후 이전의 삶보다 더 불행하고 힘들다고 하더라.

심지어 어릴적 세달던 주인집사람이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통 떼를 쓰고 협박을 하는 통에 도저히 힘들어 못살겠다고 한다.




화려한 발차기가 아닌 제대로 된 필살의 주먹한방




프로 세일즈맨으로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 승강기는 없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 것인가이다.

제대로 된 세일즈를 하기위해선 그 어떤 방법으로 든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어야한다.

별의 별 시행착오와 실패를 밥먹듯이 하기를 바란다.

실패한 사람들을 연구해 보는 것도 일견 좋은 방법인 듯 하다.

왜 저 사람은 항상 열심히 한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데 저렇듯 실적이나 영업이 제대로 안되는 것인가..   하고 연구해보는 것도 쾐찮다.

역경.   제대로 된 역경을 먼저 겪어야 제대로 된 영업관리와 실력이 배양되는 것이다.

수년을 수련하고 쌓은 무술가가 싸움만 해 온 건달들에게 패하는 이유는 화려한 발길질과 공중돌려차기가 아닌 이것이 아니면 나는 죽는다는 필승의 신념과 위기의식속에서 잠재된 본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탁상공론보다는 실전인 것이다.

 

2.영업마인드편




영업사원은 도둑님이다.

여자의 마음을 훔치듯이 나도 모르게 훔쳐야한다.

진정한 영업사워이란 내가 생각하기에 도둑님이다.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 일종의 위치이동이다.  고객의 주머니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내 주머니로 자발적으로 옮기게 하는 이동인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진심어린 마음이 필요한 법이다.

진심이 통하면 소비자는 기꺼이 지불한다.  스스로 지불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객스스로 만족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소비자가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면 만족한 느낌으로 만들면 된다.

예) 예전에 강남 대치동 청실아파트로 고객에게 납품을 간적이 있다.

200백만원 가까운 제품을 납품하는데 소비자가 절반이하는 못마땅한 표정과 까다로운 이미지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얼굴도 ....

그분과 자세히 하나 하나 치수를 맞쳐보고 같이 섭렸했다.

1시간 가까이 문제가 되는 부분의 일을 해결하고 다시 해주기로 하고 결말을 지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고객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하루벌어 하루 사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터무니 없는 가격은 아니다.

맟춤이지만 어울리고 형편에 맞게...

선의의 거짓말도 섞이는 만족을 주는 착각을 심어주는것이다.

내가 만족하고 상대방도 만족하는 거래. 일방통행이란 없다.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겸손함과 배려가 있어야한다.

오늘 비록 손해가 오더라도 웃으면서 다음을 기약한다.

종교인들을 보아라 . 무슨 사명감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술집에서 대놓고 집사님하면 반 이상이 쳐다본다고 하지 않는가...




유심히 본 신문기사가 있다.

영화 “ 수”  의 주연배우 지진희의 말은 충격이었다.

그가 몸 만들기의 비결을 묻자 꼭 살을 빼야 할 대는 하루에 7.8시간식 운동을 하는데 3시간씩 뛰고 윗몸일으키기를 1만번 이상 했다고 한다.

1만번이라...  1시간에  3600초니까 1초에 한 번씩 쳐도 꼬박 3시간이 걸린다.

계속 할 수는 없을 테니 최소 5시간.   그도  “ 하다 보면 배가 아파서 떼굴떼굴 구르고 조금 있다가 또 한다” 고 했다.  “ 몸이 재산이니까 하지 일반인은 도저히 못 할 겁니다”

배우들의 몸무게는 뉴스가 아니다.고무줄 몸무게의 대명사는 설경구이다. 그는 역도산을 찍을 때 100kg 가까이 늘렸다가 그놈목소리를 찍을 대는 60kg 대를 유지 하였다  한다.그들은 한결같이 말하고는 한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아요. 열정의 문제이지요.

물론 좋은 트레이너를 만나고 돈과 시간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 장동건이 해적을 찍을 때 이이상 더 많이 살을 빼면 몸이 망가진다고 했다.

장동건 왈 찍다가 죽어도 좋다. 그러며 종일 양상추만 먹으면서 몸을 만들어 피골이 상접한 해적역을 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일을 꼭 이루겠다는 절박한 프로의식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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