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업을 하는가?

돈을 벌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왜 꼭 영업이어야 하는가?  영업은 공평한 게임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같은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그리는 미술가나, 특색있는 음악을 선보이는 음악가와 같은 것이다.

 

영업은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하여야한다.  특히 뿌리가 깊은 나무로 성장하게끔 하여야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주어진 환경에 절대 탓하는 법이 없다.

벽두 절벽의 천길 낭떨어지에 가까스로 붙어있는 소나무를 본일이 있는가?

그 소나무의 그 질긴 생명력과 의지력.  제대로 영업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원망하지 고객을 원망하지 않는다. 주면 주는 대로 따사로운 햇살도 받고 광풍을 동반한 비바람과 모진 추위속에서도 춥다 덥다 하지 않는다. 주면 주는 데로 많다 적다 서로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

놓여진 자리에서 자기자리에서 이웃 나무를 질투하거나 넘보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나무는 산소를 공급하고 소음을 감소시키고 공기 속의 먼지를 걸러 주기 때문이다.

50년생 활엽수 한그루가 12명이 숨쉴 수 있을 정도의 산소를 배출한다고 하니 휼륭한 허파인 셈이다.

송곳을 꼿을 정도로 빈 공간까지도 찾아내 나무를 심는 그 심정으로 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고 몸값을 올려야한다.

내 자신이 일인 기업이 되어야한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프로세일즈맨이 되어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가까이에 계신 내 어머니와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나는 프로세일즈맨이 되어야한다.

 

어설픈 베트공100명보다 더 강한 일당백의 람보말이다. 

 

나는 아직 프로세일즈맨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대화한 마음이 가장 기본적인 세일즈맨의 정신이라고 생각해본다.

이제 거대한 숲속으로 들어가보도록하자.  자 가슴속에 있는 횃불을 하나씩 꺼내기로 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알고 보면 대단한 영능력자이다.

앉은뱅이 귀머거리, 장님, 나병환자 등을 그 자리에서 낫게하신 기적을 행했다.

예수님의 기적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예수님 고향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지만 치유의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고향사람들은 단지 어릴적 지인으로 예수를 생각하고 마술 같은 기적만 바랄뿐 신의 섭리를 믿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영능력을 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2년이나 하열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씻은 듯 완치되었다.

그 여인은 예수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 장하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했도다."

영능력은 남이 행사 할 수 이찌만 믿음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자기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제조건이 있다.

 

예수님이 로마병사에게 끌려가기 전날 밤, 베드로가 이를 막기 위해 제자장 경비병 귀를 자른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크게 꾸짖는다.

" 내가 청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열두 군단의 천사가 내려올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로마를 바로 멸망시킬 수도 있지만 힘이 없어서 가만히 당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예수님은 다음날 묵묵히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충분히 영능력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어설픈 베트공 10명을 싸워이기는  람보같은 용병으로 내 자신을 만들어야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사소한 바람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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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세상을 나오더라고 엄마 뱃속에서 10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프로세일즈맨도 태어나면서부터 준비해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대하여 젊음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 60대 젊은이가 있고 20대 노인도 있다.)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하여 예의가 아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는 이야기로 글을 풀어나간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돈이라는 괴물은 반드시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다는 것을 먼저 말함이다.

돈이라는 괴물에 휩쌓여 한 집안이 다 고생을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도 싫었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고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사실이고 정말 감사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이세상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못 할 세상의 단 한 분이신 내 어머니의 그 고생과 눈물의 한숨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어떤 단어로도 말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그릴 수 있는 그림도 아니다.

이 휼륭하고 아름다우신 내 어머니께서 한평생을 아니 지금도 고통속에서 사시는 삶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면 치료을 하여야 한다.  어떻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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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충동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답답한 갈증의 마음을  시원한 맥주로 날려버리고 싶은 그런 충동이 감사하게도 들었다. 몇 년을 만나지 못한 친구 혹은 떠나간 옛 애인이 몸 서리치게 보고 싶은 그런 충동의 글 말이다.  나는 이런 충동적인 글을 읽기도 좋아하고 가끔은 쓰기도 좋아한다.

 

 

글 이라는 게 그렇더라.  하나의 날카로운 칼이면서 부드러운 햇살이더라.

표현의 방식에 따라서 날카롭기도 부드럽기도 하더라는 말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깊은 내 안의 뜨거운 심장에서 자연스럽게, 아주 가볍게 끌어내어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마음을 잘 말하는 사람이다.  가식적이지도 않고 그리 포장하지도 않았지만 설득력있는 그런 말 말이다.  나는 솔직한 것이 좋다. 아니 직설적이라는 말이 더욱 좋다. 보여주려거든 다 보여주어야지  어설프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 솔직한 말.... 그런 말의 글을 말이다.

이제 솔직히 3편에 나누어 대화를 풀어보기로 하자.

좋다.  이런 감정의 글을 써보는 것이, 심장에서 솔직하게 내 보내는 글이 아마 3년만이지 않나 싶다.

가슴이 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길을 떠나는 느낌말이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결론을 먼저 말하고 싶다.

프로 세일즈맨은 있다!

그렇다.  프로 세일즈맨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프로세일즈맨인가?

내가 생각하는 프로 세일즈맨의 가장 기본적인 제 1원칙은 단 하나이다.

프로 세일즈맨은 내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있어야 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은 추위에 떨고 배고파 고통스러워하는데 남을 위하여 밥을 짓고 나르고 있다면 무언가 분명히 잘못 되고있는 것이다.

일단 가족을 비, 바람을 피하고 장작불이 방구들을 지피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도 둥둥 떠있는 계란말이도 있는 밥상을 차려 든든히 먹고 두툼한 이불속에서 발을 이불속에서 빼내어 행복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행복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기본인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시민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민족과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첫째가 아니다.

먼저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하여 프로세일즈맨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잠깐 내 어릴적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어릴적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인가 신문배달을 했다.  아버지가 그 신문지국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꾀임에 빠져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만나면 정말 때려 죽이고 싶지만 내 아버지의 판단이었기에 솔직히 남을 원망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할만한 분에게 그 자리도 맞겨야 되지 않냐는 말이다.

술 좋아하고 가정이라고는 전혀 신경을 쓰신 적이 없는 아버지께서 자식들 고생시킬 것이 뻔한 일을 시작하셨다.

조선일보이다. 지긋지긋한 그 조선일보를 내가 지금 아침마다 보고 있지만 당시 나는 진저리가 났다.

아침7시50분이면 정류장 의  버스 짐칸에 신문덩어리가 도착한다.

외 할머니댁으로 가지고 가서 각 마을로 가는 신문들을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 ( 이 봉투는 것이 힘들다. 몇번지, 이름을  매일 다 써야 한다. 날이면 날마다 쓰는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 50부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을 다 붙이고 아저씨들에게 드린다.

이 일은 내 누나가 했다.   우리 누나 정말 고생 징그렇게 많이 했다.

나와 동생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아마 80부 가까이 신문을 돌렸다.

이 일을 아마 5년 가까이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 특히 겨울방학때,비가 올때  비오면 비에 젖을 세라 힘들다. 행여 젖었다고 다시 가져다 달라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이 슬쩍 해서 또 가져다 주어야하는 힘든 점.

항상 신문배달후 늦게 등교를 하었기에 1교시가 시작되어 들어갔다. 수업중에 들어가는 그 쪽팔림은 힘들었다. 문이 드드륵 열리면 나를 향하는 그 많은 눈길들...

 

신문배달은 배달대로 힘들고 또 수금이라는 것이 남아있다.

어른들 ..지긋지긋하게 수금들 안해 주신다.

자식같은 사람이 비오는날에도, 눈오는 날에도 고물 자전거타고 1시간여를 달려왔는데도 수금 안해준다. 있어도 없는 척하는 어른들...  더위와 추위를 넘나들면서 나는 어린나이지만 느꼈다.

신문값  2500원...

" 정말 이 돈이라는 놈   무섭구나...!  "  수십번 수금 갔는데도 안 해주는 집에서는 정말 더럽구나.

 

누나가 구로공단에서 일해서 몇년을 일한돈으로, 정말 피같은 돈으로 1986년  300만원이라는 돈을 갚아주었다. 지금도 큰 돈이지만 당시는 더 큰 돈이었다.

난 정말 지긋지긋한 놈에게서 해방이 되었다.  돈 때문에 받은 고통을 돈으로써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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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고향은 전북진안입니다.

흔히들 무진장 골짜기라고합니다.(무주,진안, 장수를 가르킵니다)

그래서저는 제자신이 시골깡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합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요...

제나이 7살로 기억이됩니다.

아버지께서 마을하고 한시간이 채 떨어진곳에 외딴곳에 집을 지으셨습니다.

이웃이라고는 한채도없는 홀로이  말그대로 외딴집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싶은 그런 외딴집이죠.

 

집앞에는 강이라하기에는 크고 냇가라하기에는 작은, 그런강물이 흐르고 그강물건너에는

200미터가넘는 작은산이 있었답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나누어 지으셨답니다.

한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의 형제들이 사는집.

두번째는 오리와 닭,소,염소,등등 짐승이 사는집.

세번째는 여러생리현상들은 하는곳과  농사지을때쓰는 연장넣어두는곳...

그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지대가 확트이듯 넓었답니다.

그넓은곳들사이로 논과 밭,그리고  여러곡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곳들...

친구들의집은 저멀리 잘보이지않는, 마을과는 참으로 멀리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요?

좋겠다구요?

어머 낭만있다...전원생활이다...저푸른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3주만 살아보십시요... 그말이 쏘옥 들어갈겁니다...ㅎㅎㅎ

 

 

그당시 시골이 다그럿듯 시골생활(도시생활도 별다를게없죠)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먹고살기위해 일하고 ,일하기위해 먹고, 먹은힘으로 또일하고 ...

먹고살기위해 일한다는표현이 참으로 맞을겁니다.

지금 30~40대 분들은 동감하시리라 생각해봅니다.

가난했는데, 그보다 더 가난했던지라(소있고 짐승있다고 다 부자가아닌시절)

어린시골생활 ,너나 할것없이 어린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죠..

국민학교때 (지금은 초등학교)2학년때인가 부터 소꼴베고, 모심고,돌나르고,

거름나르고 , 가을이면 낫으로 벼베고(지금이런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안믿는분도계십니다
)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느랴,밤이면 소죽을 끓이곤했죠.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고, 개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죠.

제자신도 했지만 ,30~40대분들은 (특히 40대분들)거의일상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가난하고 먹고살기가 참 각박하니까(지금도 어려운 이웃은 많습니다) 다들 그랬죠.

 

그래도 외딴집 (그곳을 다른분들은 액기제라고 그랬습니다)이라 재미있는일들도 많았답니다.

여름이면 고기를 많이도 잡았습니다.

천렵이라고 그러죠.

산수좋은곳에 찿아가서 웃통 벗어젖히고 멱감고 탁족(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담금)하며

물고기잡아 매운탕으로 소주한잔걸치는 (어린나이에는 술이라는 자체가싫었지만 보기에는 좋았음) 모습을 보며 어린나는 고기만 먹고, 나무그늘아래에서 늘어지게 한숨자는 그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지요.

강가에나가 멱(수영)도 하고 대수리(지금은 고동이나 다슬기라고하죠)도 많이도잡아

마을에나가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하기도하고 많이도먹었죠.

 

이사올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때쯤에는 엄청 크고 ,엄청 좋으맛을 자랑하기도 했죠.맛있다고 타지에서  손수 찿아와서 많이도 사가곤했죠.

당연히 그럴수밖에요.

추운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당시는큰돈)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키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배설물들과  거름등을 정성드려 키어온 결정체인걸요...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 고구마,콩 팥등을 캐내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라는것이 무언지모르는 때였지만 겨우내먹을수있는 양식이 있다는것은 지금생각하여도 흐뭇하고 , 뿌듯한 가슴에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비가많이오거나 홍수가 날때면 가슴이 콩알만해집니다.

100여 미터앞의 강에 비가많이만오면 항상걱정이됩니다.

물이 불기시작하고 ,그물들이 둑있는 집근처까지오면 어이구 그만와야지합니다.

84년도인가?

대홍수가 났을때에는 온천지가 다 바다였습니다.

논이며 밭이며 ,다 쓸어가버리고 나무며 , 온갖것들이 다떠내려오고 (심지어 돼지며,개,닭등)

집앞마당까지 넘쳐 금새 집안으로 오게되는상황에 앞산에서는 사람들이 다죽게생겼다고

몰려오고 핼리콥터까지뜨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많이오던비가  그런데 어찌된 상황인지, 집이 10분만 더비가오면 다죽게되는그상황에...

그많던 어머니의 기도덕분인지  기적이 일어나더구요.

멈췄습니다.

세상에 그 많이오던비가, 기적처럼 멈추더라구요.

전 그때 알았습니다.

기적은 존재하는구나.

그때 제가 물에빠져죽었음 이글도 남기지못하겠죠...ㅎㅎㅎ


 

 

차가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할일이 많지않습니다.

낮에만 땔감하는랴 몇시간시간보내고 ,저녁이면 짐승들 밥주고 소죽끓이고

불이들어오지않는 그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습니까?

어린그시절부터 전 책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인생의 가장큰스승을 만나게되었습니다.

호롱불이 들어오는 그불빛에서 읽는 그독서의 의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저절로납니다.  아스라이 잊혀진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나는 그때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 지루해지자, 눈속을 뚫고 마을로 한시간을 걸어가 친구들집집마다 다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즐거움은  아마 모르실겁니다.

한권한권,가방에 넣어 매고오는 약간은 가벼운 ,하지만 마음은 들뜸과 희열이나는 그기쁨

홀로집에오는 그발걸음은,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있어 외롭지않았고 발걸음은 더욱 제촉이됩니다.  방학때 이놈만 있으니  이제안심이구나...하는 마음이든거죠.

만화책도 엄청 많이도읽었습니다.

그때 읽은 만화책가운데  최배달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책을 가장 감동적으로보았죠.

방학기선생이쓰신 지금은 "바람의파이터"인데 영화로도 아마 나온다그러죠.

최배달선생의 무도의혼과 집념,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견줄정도로

돌아가시기전까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그분의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그당시 제꿈이 첫번째 무도가였고

두번째가 만화가이자  만화가게주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책과 저는 땔레야 땔수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죠...

어렵고 가난한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그날  부모님과 같이사는즐거움이 있었고,언젠가 우리도 저멀리보이는

동네로 이사갈것이라는 희망이있어 좋았답니다.

 

그런데 왜 농부이야기인가?

 

농부이야기? 글쎄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린시절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농부가 하는일이무얼까요?

겨우내 여러씨앗이며,거름,봄에쓰일 농기구들을 다듬고 봄이오는 그시기를 준비합니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모를심고, 대지위에 한해에지을 농사의 기초를 시작하게됩니다.

여름이면 무엇을 할까요?

어느덧 자란 벼에 농약을하고, 비료를 주고, 피를 뽑아주고(여기서 피라하면 사람몸에서나는피가아니라 벼와 똑같이생긴녀석인데,생긴것이 비슷하지만 자세히보면 전혀다르다.

이놈은 사람몸에 붙어 피를뽑아먹는 모기같아 벼성장과 발육에 큰 피해를준다)

물조절을 잘해주면서  벼농사에 가장큰 시기라합니다.

그래서 할일도많고 소중한시기죠.

 

맞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여정이 농부의 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가을 겨울이 옵니다.

언젠가는  추수할 곡식들이 나오는 가을 겨울이 올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부의마음처럼 이여름을 잘보내고저합니다.

 

인생이라는 논과밭에서 벼를가꾸고, 밭을 일구는 농부의마음이고저합니다.

농부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여름이라는 이 중요한 시간앞에서, 여정은 길고 시간은 많지만

하루하루를 조급하지는 안하도록, 헛되이 보내지말면서 살고저합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가뭄이들어 바닥이 갈라져서 밑이보이면 멍하니 하늘만바라보지않을것입니다. 어떻게든 개울물이라도, 옹달샘에있는 물이라도 퍼다가 가뭄을 이겨나갈것입니다.

이시기는 열심히 산다고하는데도 마음처럼 안되는 시기라생각이 듭니다.

비료도 때에따라 잘주어야겠죠.

요소비료,복합비료(이부분은 전략과 전술이라는표현이듭니다)로도 때에따라 잘주어야합니다.농약도 비가온후나 가물었을때 주는 방법과용기도 다릅니다.

이부분은 저는 자극이라는 표현이 맞을성 싶습니다.

잡초와 피도 잘 뽑아주고 처리해줘야하는데

저는 이부분은 실천과 도전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요즈음 !!

경기가 lmf 보다 정말로 안좋고, 힘들고 어렵다고합니다.

사랑보다, 인정보다 더욱 조이고 힘들게하는게,고통을 주는것이 이 돈이라는게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렵고 힘든 (저도 경기로인해 타격이큽니다)이 시기에 저의글이 힘든하루중에서 여러님들에게, 단한분이라도  피식웃음이라도 억지웃음을 드리고, 같이이야기하고 같이 힘들다는 이세상에서 같이 공유하고저합니다.

 

어려운 부동산 재테크이야기도아니고, 일상에서 일어나는일들이나,

일하면서 느껴지는 만남속에서의 마인드들을 같이생각하고 고유하고저합니다.

술한잔마시면서 배우고 느낀점, 영업하면서 느낀점들 ,시장 노점하시는분께물건을

사면서느낀점들 ....

지극히 사소하고,그렇게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그런이야기를 하고저합니다.

 

팽팽이당긴 옷감을 단숨에자르는 가위처럼

울고웃는 신바람나는 마인드를 같이하고저합니다.

강한자가 이긴것이 아니라, 이긴자가 강한것이다...  처럼요.

농부가 무얼 많이알고, 잘하겠습니까?

그저 편한마음으로 선한부자가 되도록 노력하자구요...

절대기대는 금물입니다....

오늘도 지혜로운 삶을 사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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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친한친구와 삼겹살에 소주한잔을 하며 여러이야기를 나누엇었다.

워낙에 막역한친구이고 소중한 친구다보니 항상 허물이없고 마냥 고마운친구이다.

고생을 같이해서그런가 .. 군생활 그러니까 논산훈련소에서 같이 군생활을 같이한 동기다.

 

엄동설한 그추위에 날씨가 너무추운지라 화장실안에서 같이밥도 먹었던기억이

생각이나는 귀중한 친구이다.

소주한잔에 여러이야기가 오가고 친구와나는 타임머신도 타고가고 현실에 대하여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책이야기에 깊은 토론을하게되엇다.

 

친구와나는 책을 굉장히많이읽는 , 좋아하는 독서가이다.

소설도 좋아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책고 굉장히많이보는편이다.

나는 주로 경영서와  이병철 회장이나 고 정주영회장같은 현실적인 세계에서

큰업적을 이룬분들의 책을 읽으며  와신상담하며 배울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간접적인 배움을 얻고저 부동산에 관련된서적과

마인드를 배우고저  제테크서적을 빠지지않고 읽고잇는편이다.

책값에 상당한부분을 투자하는 전형적인 독서로 마음을 다스리고저하는 일반소시민인데

친구와나는  한가지가 다른부분이있다.

 

친구는 책값의 약간의 부담때문에 빌려서 완독한후 대여점이나 이웃에게 가져다준다는

것이고 나는 원칙이 책은 무슨일이있어도 사서 완독한후 책장에두고 언제고 다시 완독할책은

분류를 해서 놓는다는것이다.

 

나는 책이 한권한권 쌓일때마다 은행에 돈을 예금하는것처럼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자금읽고있는 책이있더라도 읽고싶은 책을 먼저 구해다놓으면 어린이가

자기만아는 공간에 남몰래 과자를 숨겨놓는것처럼 기분이 ,마음이 부자가되는걸느꼈다.

 

그런데 친구왈  친구야 요즘책값 너무 비싼것 아니냐  하는것이다.

하기사 나도 그런생각이 없잖아  몇번 들은적이잇었기도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못한 지식을 ,해보지못한 리스크 에 대하여 생각해본다면

난 책값이란 그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을 햇었었다.

 

오히려 만원안팍또는 이상을 투자해 없는 부가적인 가치는 내가살아가는데 몇십배이상의

고부가치성이라고 생각도했었다.

 

하지만 요즘 부동산 또는 제테크서적은 기본이 만원이상에 잘나간다싶으면

만이삼천원이다.

없지않아 조금 씁슬해지는마음이 드는건사실이다.

경기가 어려워 삐삐가 다시부활한다 , 이런 물황은  lmf때보다 더하다 난리인데

 

철강값에 밀가루 라면 등 모든 생필품들은 전부들 오르기만 하는데..

한가지 그들책등의 머리글에 이런말이 떠오른다.

 

이책들을 읽으시고 전부  노력하시고 힘내시고 ,자기성찰하시고,부자되시는데 제가일조하였으면 정말 좋겠다고 쓰셨는데  그것이 그책을읽는 많은 분들을 위해서였다면 인세를 조금

포기하시고 책제질을 고급은 아니더라도 다소 책제질이 떨어지더라도 종이값이라도

낮추시어 책값,....그 제테크 경영서적이라는 책값에  거품을 조금만 빼셧음 좋지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진정 독자들이  많이배우고 행복하게 살수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

 

주절없이 제생각을 거내놓아보았습니다.

이것은 제생각일 뿐이니 오해하지말아주셨음 좋겠습니다.

 

하지만 나의 한가지 원칙 하나..

 

책은 그 값에 만배로 꼭 보답 해 준다는 사실이다...

 

그냥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푸념이었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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