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방법만 보이는 법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없다.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내가 마라톤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마라톤 그 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큰일난다!"

 

"뛰다가 죽는다!"

 

"철인들이나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뛸 수 있다.

자신안의 게으름과 나태함,의지를 극복하겠다는 열정이 없을 뿐이지.

 

 

 

 

 

2013년 10월27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고구마와 바나나 차을 한 잔 마시고 안양천을 4KM뛰어서 사무실에 도착,

카메라를 챙겨들고 청량리행 전철에 올랐다.

 

청량리에서 춘천행 청춘열차를 타고 내린 시각에 8시.

 

 

 

 

 

 

 

 

 

 

 

 

2만5천명의 수많은 사람들.

마라톤이 무엇이기에 전국에서 이렇듯 사람들이 몰려드는가?

 

 

 

 

 

 

 

 

 

 

 

 

 

 

 

 

 

 

 

 

출발 10분전,

인증삿을 담아본다.

 

10월 3일부터 오늘까지 24일 기간 중 22일을 연습했다.

그것도 무리하지 않게 하루에 1~2시간 뛰거나 걷는 것을 반복했다.

 

 

 

 

 

 

 

 

 

 

 

 

무엇이든 처음이 힘들다.

마라톤,

까짓 것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도전과 응전의 이런 순간이 좋다!

 

 

 

 

 

총소리가 올리고 9시25분,,

드디어 출발을 했다.

 

 

15KM까지는 무난하게 뛰었다.

 

22KM반환지점에서 먹었던 초코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초코파이를 3개 먹고 2개를 뛰면서 더 먹었다.

내 인생에 가장 맛있던 초코파이였다.

 

 

 

 

 

 

 

30KM를 눈 앞에 두고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마라톤 기록은 6시간 안에 도착해야 인정해준다.

 

나는 5시33분을 목표했다.

 

속력을 내어서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다.

주위의 사람들도 뛰거나 걷거나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다.

 

다들 그렇게 힘들어보이지 않는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방송이나 사람들의 오버다!

할 만하다.

무슨 마라톤이 사람 잡는 행위도 아니고....

 

 

 

 

34KM지점,

마의 힘든 코스다.

여기에서 가족에게,연인에게,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1분 발언대가 있다.

 

나도 한 마디했다.

 

 

 

 

 

35KM부터 정말 힘들었다.

불과 7KM를 남겨두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힘들다! 정말 죽겠구만! 하는 신음소리가 난다.

 

이제 40여분만 가면 되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고 무릎이 아파온다.

악으로 깡으로 40KM까지 도착,목적지가 보이는 2.2KM구간이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5시간 40분 만에 골인점에 도착했다.

 

 

완주했다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제 당분간 마라톤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실 수 있다는 점,

역시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방법만 보이는 법이다.

 

 

 

 

 

 

 

 

 

 

 

 

 

 

 

 

 

 

 

 

 

 

 

완주를 마치고 포즈를 잡았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추억을 담아 보고....

 

 

 

 

 

 

 

 

 

 

 

 

 

 

 

 

 

우리집 가보로 남을 완주기념 메달을 자랑스럽게 바라 보았다!

 

 

 

 

 

 

 

 

 

 

 

 

 

 

 

 

 

 국밥을 주문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내가 이 맛을 느끼려고 그렇게 달렸구나.

 

해보니까 할 만하다.

 

"이봐~~해 봤어?"

 

 

마라톤을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교한다.

삶은 끝없는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달리면서 생각해야지,생각만하면서 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해보지 않고 뭐든 지레짐작하는 그런 망상은 하지 않겠다.

 

어떤 극기의 상황에서든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만 찾겠다.

 

춘천마라톤을 뛰고 나서 생각한 것은 역시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것,

이 행복이 나를 살게하고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다.

 

가을의 전설,춘천 마라톤을 뛰면서 나는 행복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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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1번가에서 아내를 만났던 때가 20살이었다.

안양5동 그리고 비산동에서 25년째 안양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내와 나의 짧고도 긴세월의 추억들이 안양곳곳에 묻어있다.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보아야 어른이 된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고 철이 드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가끔 아내의 잔소리가 귀엽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잔소리도 듣기 싫고 짜증 날 때가 있다.

화도 나고 속에서 확 올라오는 무언가 있다. 특히 짜증섞인 말이면 더 하다.

아침부터 "청소는 왜 이렇게 구석 구석 안 했어요"   "수도물 아껴쓰라고 안 했어요."  청소 할 때 문부터 환기시키고 해야지요,'양말은 뒤집어서 놓는 게 아니에요.' 

"신발 정리 좀 해주세요" ' '옷은 벗어서 제 자리에"

모든 잔소리가 거의 맞는 말이다. 생활에서 조금만 신경쓰면 되는 그런 사소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내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아~~ 나를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구나,나에게 옳은 길을 알려주는 구나,

좋은 습관을 길러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부터 속에서 올라오는 것이 덜 하다.

그래... 아내의 말이 맞다.

남편과 두 아들,3부자가 하나씩만 어질러도 아내는 세 가지를 치우고 청소해야 한다.

사소한 것들을 도와준다면 아내는 일이 적어진다.

아내의 입장이 되보자.

집안일이라는 게 안하면 표시가 확 난다.

해도 그렇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안하면 집안이 엉망이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집안일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니냐고 생각지 말고 아내의 잔소리를 감사하게 생각하자.

관심과 사랑이 있기에 그렇게 말하고 좋은 습관을 하게 만드는 각성의 소리라 생각하자.



아내의 잔소리를 사랑하고 대처하는 나의 방법은

 

첫째-아내의 잔소리는 사랑한다는 표시로 받아들여라!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잔소리 하는 거다.

너그러히 겸허히 받아들이면 다 약이 된다.

 

둘째-아내 말 들어서 손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다가도 아내 말 들으면 자다가 떡이라도 생긴다.

여자 말 잘 들어서 손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자들의 그 쥐뿔도 없는 똥고집 버려야 한다.

 

세째- 인내,인내를 배운다.

직장생활,영업에서 그리 힘든 경우에도 잘 참는 사람이 집에서 아내의 잔소리도 못참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늘도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두 아들과 나는 비산동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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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5살의 지난이야기

 

 

25살의 나는 방황과 혼돈의 시기였다.

무언가 큰 사고를 치지는 않았지만 분명 힘든 시기였고 정신적인 힘겨움이 많았다.
24살에 큰 아들을 가졌지만 난 군제대를 바로 한 직 후였고 무엇 하나 준비된 것 없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다.  
이제는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그런 막중한 책임이 어깨에 무게 잡고 있는 순간이었다.24살이라는 나이가 한 집안을 책임지기에는 내 자신은 너무도 어렸고 세상의 유혹도 많았다.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책임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보는 관점과 생각에 따라 굉장히 빠를 수도 그리 늦은 것도 아닌 시기였지만 나는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였다.

솔직히 군3년 가까운 시간을 나 하나 바라보고 기다려준 아내만 생각한다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것 같았지만 현실은 나를 비웃고 있는 듯 했고 나는 분명히 마음이 약해져있었다.

나이로 시간이 갔음을 알 수가 있었지만 나는 분명히 어렸다.

 

큰 아들이 첫돌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용접일을 하였다.배운 것이 도적질이라고 군대 가기전과 군제대후에 내가 하는일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겄고 나이만 먹었을 뿐 나는 그저 제자리걸음만 하였던 것이다.나는 이 용접일을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또 다시 용접을 하게 된 것이다.

용접일은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항상 더위와 추위에 떨면서 하는 일이엇다.어떤때는 3층 높이에서 보호장비도 없이 위험천만한 일들도 많이 했었고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은 쇠속에서 하루내 페인트 칠도 해댔다.

사는 것이 그리 넉넉해지는 느낌도 없었다.돈은 어느곳으로 가는지 모르는 궁핍의 연장이었다.일은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이 계속되는 삶이었다.아이는 커갔고 아내는 나로 인해 힘들었다.   계속 이런 삶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돈이라는 물체가 나와 내 사랑하는 아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어서 빨리 이 고통에서 벋어 나고픈 마음 뿐이었다.



용접일은 야간작업은 없었다.그러던중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양에서 가까이 사는 사촌형이었다...

 

같은 안양에 살고는 있었지만 나이차이도 나고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사촌형이었다.
어릴적 여러 일들인지 나는 친척들과 친하게 지낸적도 별로 없거니와 애써 친척들이 남보다 더하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도움이 되기는 커녕 왜려 우리 가족을 힘들게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촌보다  더 이웃에 사는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사촌형은 야간 6시부터 밤 11-12 까지 하루 5시간정도만 일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7일 정도만 도와주면 섭섭치 않게 야간수당 값까지  일당을 두둑히 쳐 주겠노라고 분명히 분명히 말하였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없는 살림이지만 방황과 힘겨움이 있는 삶 속이지만 내 가족과 같이 한다는 그 희망은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아야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하루내 내가 속해있는 직장에서 추위과 힘겨움에 떨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밤6시 이후에는 사촌형이 맡아서 하는 관공사 국민은행 확장공사를 헤댔다.아침이면 피곤하고 지친몸이었지만 그렇게 두가지 일을 8일 가까이 헤냈다.

밤 12시가 넘는 새벽까지의 일들도 몇번 있었지만 요령피우지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그 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 날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끝난 공사에서 사촌형은 나에게 가는 길에 한마디 했다.1주일 넘게 참 고생많았다.  그리고 담에 전화하마   하고는 집으로간다고 그냥 걸어간다.

나는 속으로 이게 아닌데...   나는 분명히 일당을 준다고 했고 받아야 하는데..사촌형이 잊어버리고 그냥가는 것은 아닌가...   분명히 준다고 약속했는데....
저멀리 그냥 걸어만 가고 있다.
나는 힘이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다.  무기력하고 온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간다는 말이 이런 말이었구나..
분명 느낌이 그랬다.  사촌형은 나를 이용만 한 것이었다. 내가 친척이고 하니 동생이니 그냥 쉽게 생각하고 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느낌이 분명 들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다면 저녁늦게 끝난 동생에게 해장국에 소주 한잔 사줄 수도 있지 않았나..

그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제수씨 가져다 주라고 과일한봉지 라도 사주기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도 안지난 조카에게 분유나 기저귀 한통 값이라도 몇만원 주었더라면 나는 그리도 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터벅터벅 집안에 도착한 나의 반 지하 방에서 한참을 방안에 앉아 있르려니 아내가 무슨일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노라고 했더니 아내는 아무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새벽녁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두 눈을 부릅 뜬 눈을 차마 감을 수가 없었다....제대로 배운 것이다. 
수험료를 제대로 지불하고 배운 것이다.

내 스스로 힘을 키운다면 내 친형제들에게는 내가 제대로 힘을 주리라...  그리고 남은 힘을 정말 어려운 이들에게 힘을 나누어 주리라      봉사를 하리라 ...  하지만 내 주위의 혈연을 빙자한 그 어떤 사람도 이제는 곁에 두지를 않으리라...밤을 거의 세운 살아가는 큰힘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사촌형에게는 아무런 전화가 오지 않았고 단 한번 전화가 왔다. 자격증 빌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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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는 외로은

후배가 코치로 있는 복싱체육관을 입관한 것은 작년 11월경이었다.

복싱체육관을 선택한 것은 나만의 몇가지의 생각에 독특한  발상이었다.
새벽에 시간을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한 업체를 하였었고 정상적으로 낮동안은  나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저녁이면  먼 미래를 위하여 나만의 준비를 나름데로 충실히 하고 싶었다. 

체육관에서  런닝머신을 많이 달려 보았었다.
건강을 위하여 뛸 수도 있고 체력을 기르려 뛸 수도 있다.
런닝머신 숫자에는 몇키로를 뛰고 있다고 숫자 상으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뛰는 순간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 아닌가?  
 인생이라는 장에서 목표를 위하여  내 스스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 않나 깊은 생각을 해 보았다.

수많은 성공학 서적과 마인드 강좌에서 나오는
"도전해보아라..!  "    " 시도해 보아라...!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  "   라고 수도 없는 표현을 하고는 한다.  너무나 통속적인 그런 말들이 웬지 싫었었다.

그렇게 노력하고 성실히 최선을 다한다면 무언가 댓가가 어느정도는 도달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까 ..!     과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인가?
나는 인생이라는 단 한번 뿐인 마라톤에서 나는 런닝머신 앞에서 뛰는 것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것인가?

아니면 42.195 km  를 위하여 땀으로 한걸음 한 걸음 쉼없이 전진하고 노력하는가...?
 게임이다.
괴로움을 적에게 보이면 지는 게임이다.
요행이나 운이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에 충실한 운동이자 자기가 훈련하고 인내한 그 만큼만 댓가를 인정받는다. 
사각의 링안에 들어서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외로운 게임이다.
복싱을 선택하였던

 

 -첫번째 이유는 새벽아르바이트와 신풍물산을 열심히 꾸려 병행한다지만 저녁시간을 이용하고 싶었다. 허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나만의 정신강화 훈련과 세상을 향한 싸움에서의 강한 체력을 기르고 싶었다.

 

 -두번째 이유는 세상에 대해 제대로 눈을 똑바로 뜨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는 그런 정신을 지니고 싶었다.
무술과 권투의 공통점은 상대의 눈을 피하지말고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권투는  맞는 순간에도 눈을 뜨고 있어야한다. 그렇다 !  삶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고 피한다는 것은 세상에 지쳐가는 나의 변명과 게으름일 것이다.  눈을 제대로 뜨고 삶을 주도하면 살아가자.

 

-세번째 이유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결코 지지 않겠다는 이유다.

30대 중반 이지만 내가 남은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절대로 지지않겠다.
꼭 필요에 의한 불의에 대응해야하는일이 내 앞에서 벌어진다면 그 자리에서 겁이나서 곁의 사람들처럼 방종하지 않고 싶다. 꼭 싸워야 할 싸움이라면 분명히 이겨야한다.
약한 이에게 내가 보아 저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길수 있는 상대가 나를 가격한다면 한대 맞아줄 수도 있다.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다. 내가 분명 이길수 있는 상대이기에 비굴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한 강자에게 절대로 지고 싶지는 않다.  한판 붙어 보려면 제대로 된 힘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3개월을 열심히 다녔다.
남들보다 더 한 땀을 흘리려 노력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니 만큼 열심의 의미는 분명했다.
그러나 신풍의 일은 더 힘들어갔다.
그래...  마음의 여유를 더욱 가지자...   지금은 그저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을하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투자한 사업에서의 일들은 내가 생각한대로 수익이 나지 않았고 동종업계에 있는 경쟁자들은 너도 나도 사업을 줄이고 또는 매도하고 자금난에 시달려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곳을 가나 그런 소리는 항상 들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두 번이지  지겹다.  그런소리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또 무어냐는 말이다.그래서 나는 그런 소리가 나는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그런 소리를 징징거리는 사람들을 배척했다.

경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하고있는 사업또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분명 경기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무언가 수익을 올려도 더이상 올라가지않는다면 이것은 나에게 문제이다.
나는 이렇게 권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운동이라는 것 또한 사치이다.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어야 겠구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어차피 누구에게나 주어진 단 하나의 소중한 자원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자만이 살아가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창출하여야한다...   길은 분명히 있다.  내가 찾지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둠속을 밝히고 싶으면 빛을 찿아라.  정답이다..  그러면 찿으러가자.

 

그즈음 이어지게 후배가 일을 도와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내가 한달전에 미리 귀띰을 한적이있었다.

후배의 제의가 있을 때 자존심이 내가 상했을까? 

솔직히 조금은 상했다.  하지만 그런 자존심은 하수구에 다 버려라.지금은 묵묵히 시간과 배움을 귀중히 하는 시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항상 일과 삶에 바쁜 사람이 됙고 싶다. 한가하고 바쁨이 없는 시간은 일상에서 다른 헛 생각을 동반한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권투를 당일날 그만 두었다. 이 권투는 내 삶에서 시간이 지나도 할 수있는 운동이다.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이다. 내 삶에서의 전환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고 나는 지금 일에 미치고싶다.
밤 업소를 전문으로 하는 후배는 저녁 아르바이트가 이어진 것이다... 
후배의 일은 경기와는 완전 다른 일 자체였다.
후배가 하는 일에서 또 다른 업체를 인수하여 경기가 어렵다는 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같았다.
그렇게 내가 모르는 다른 분야의 일 한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배움이었고 스타일이 다른 그의 영업스타일에 영업의 다른 세계를 만난 듯 하였다.

밤 10까지 그 밤 아르바이트를 헤냈다.
결코 쉽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후배의 일은 거의가 등짐이었고 2-3층은 예사였다.
새벽부터 시작한 나의 아르바이트 그리고 신풍물산의 일, 그리고 밤의 아르바이트..   이 3가지일은 어쩌면 무모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니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도 들 터였다.
이 열정을 나의 온 일에 더한 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몸을 혹사할 바에는 느긋하게 몸관리를 하면서 때를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또다른 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약한 내 마음의 자신에게 합리화당해서 가만히 두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세월을 기다려 빈 낚시바늘에 고기를 몇년씩 낚으면서 세월을 낭비하는 강태공이 될 수도 없었고 그 옜날 선비들 처럼 집안에 쌀이 떨어져 집안에서 애들이 울던지 말던지 비가 세던지 말던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라도 참고 그저 책이나 읽는 선비가 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 자신에게 아니 세상에게 끌려 다닐 바에는 나는 살아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허비하는 것이다. 시간과 삶을 낭비한 범죄인 것이다. 핑계는 내 자신이 만들어 내는 가장 익숙한 무능의 대명사이다.

 피곤하고 고된 삶이었다.
힘이들어 계단으로 음료를 들고 가던중 어깨위에 놓인  이 음료수를 박살을 내고 싶다. 아니 박살 내고 지근지근 밟고 싶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한다는 말인가?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서 참 초라함도 느껴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잠자리에 누워보지만 나는 쉽게 잠을 들지를 못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말인가? 
위기감이 몰려오고 진정한 나의 삶으로 나는 살고 싶었다.  피곤하지만 잠을 이룰 수가없다.

여러 일들을 하고 있었지만 미래에대한, 저 멀리 알 수없는 내 삶에 대하여 너무도 두려웠다.
그저 위안이 된다면 나는 지금 그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살고 잇는 듯한 그 심정하나만이 조그마한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이 위기만 넘기면 될 듯하다.  아니 이 시련만 넘으면 내리막이 보일듯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기로 하자...  그러다가 나는 잠이 드는 듯하다.  언젠가 분명히 이루어진 나의 그 꿈을 상상하면서....

그 힘든 피곤한 몸과 지친 마음을 이겨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희망은, 이상하리만큼 새벽녘까지 불면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잠을 청하던 그 마음에 꿈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분명 이 시련만 넘는다면 분명히 나에게 비상을 시켜 줄 것만 같은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아니 그 시간이 아무리 멀어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이 힘든 삶을 지켜나가리라.

당시 아르바이트 만으로 어지간한 기업의 월급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한푼도 낭비하지않고 모아두었다.  너무 피같은 돈이라서 차마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 분명히 기회는 찾아왔다.
새벽아르바이트 7개월 (새벽아르바이트는 나름데로 의미가 깊다. 모방송에 출연도 했으니), 밤 아르바이트 4개월 만의일이다.2005년 4월 15일로 기억이된다.
그날 나는 다짐하였다.  내 인생에 아르바이트는 이제 다시는 없다.
그리고 지금이순간까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고 있다.

 
나는 분명히 돈을 쫓고 있었다.
돈은 빠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거침없이 주위을 의식하지 않는다.
돈만의 향기와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항상 비켜서가는 미구라지 같은 녀석이다.
돈은 그 만의 돈을 아끼고 사랑하며 진정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같다.

나는 돈을 쫓고 있었다.
지금은 글쎄 돈이 가는 방향을 조금은 조금은 아는 사냥꾼이 된 듯 하다.
쫓고 사냥하는 방법은 잘 몰라도 제대로 잡는 덫을 놓는 방법은 조금 터득한 듯 싶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 독서라면 물질의 힘을 키우는 것은 실전인 듯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고 맨땅에서 두손으로 이루려한다면 진정한 실전의 바다에서 배워야한다.
쫓는자, 그리고 쫓아오는자,  나는 이제 그 중간의 길에서 그물을 쳐놓고 낚을 수있는 비법을 배운듯하다. 
세상은 단순하다.  누구나 다 정석을 알고있다.

남이 열번 도전해서 이룬 일 이라면 나는 백번을 땀흘려 일하면 되는 것이요,  남이 가는 그 길이 쉬어보인다 보이면 얼마나 그가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나 를 겸손히 반성하는 것이다.
길은 하나다.  일단은 천천히 저질러 보는 것이요...  그리고 그일을 끊임없이 이루려 노력하는 것이다.
변명이 많은 사람이 되지 말자.   모든 것은 다 내탓이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세상이 모두 시련투성이, 고난, 힘겨움이라는 것들로 가득찬 것들이라면 그것들을 이제는 내 스스로 못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나는 그 힘겨움 투성이를 모조리 힘껏 망치로 두들기는 목수라고 생각하자.  얼마나 신나고 재미나지 않겠는가...

 
2006년이 벌써 2월을 몇일 남기지 않고 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심을 끝까지 지켜가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내 자신에게 물어보니 꾸준히 노력하려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번 물면 죽어도 놓지 않는 지독한 근성이 없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과를 너무 초조하게 기다리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일을 시작하면 결과를 멀리하고 한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 백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리를 가고 나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 "
이러한 자세를 내 몸과 마음에 세기자.  이러한 정신을 가진다면 눈앞의 결과에 절대 초조하지 않을 것이다.
" 자라는 다리가 짧아서 엉금엉금 기어갈 수 밖에 없다.그러한 자라도 천리를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남이 나를 바라보는 그 어떤 시선도 나는 두렵지않다.
나는 기본과 상식에서 판단과 선택을 하려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나만의 주관을 찿고 싶다.세상에 공짜가 어디 하나 있는 것 같은가..?
세상은 댓가를 원한다.  진정한 땀과 그 노력의 댓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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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첫눈이 내리고있다.

지금 시각 12월 4일 새벽 03시 02분  ... 나는 새벽을 깨우고 있다.

 

 

간밤에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또 먹는 것이지만 삼겹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아니하고 참으로 최고 음식이다.
사랑하는 내 아내는 항상 준비가 대단하다. 
나는 마늘에고추, 상추면 된다고 우기지만 아내는 항상 버섯, 솔 ( 부추라고도 한다.) 여러 갖은 야채를 많이도 준비한다.  이렇게 준비를 많이해서 먹어야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이렇게 음식 잘 하는 아내를 만난 것은 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이다....

꼼꼼한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털털한 나는 힘으로 하는 불판이며 휴대용버너, 삼겹살 먹을 준비를 한다.  결코 부드러운 그릇이며 세심한 것은 나를 시키지 않는다. 다 깨 먹는다고...

한가지...  소주는 항상 한병 냉동실에 넣어놓는다. ( 살짝 김이 서리 내린 것처럼 얼린 소주가 제 맛이다.)

 두 아들들의 먹성은 참으로 좋다. 음료수도 흘려가며 아내의 잔소리도 들어가며 밤이 깊어가면서,시끌 법석한 소리가 집안을 울려도 그래도 삼겹살은 하염없이 잘도 익는다.
예전에는 바짝 익힌 살짝 탄 삼겹살이 좋았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삼겹살이 참으로 좋다.
상추를 펴서 먼저 밥을 넣고 삼겹살을 올리고 쌈장을 넣은 다음 마늘과 고추를 넣는다.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은후...   "  캬~    "  를 꼭 한 번 한다.    이 소리가 나야  맛이 더나지...그리고 삼겹살을 먹으면 그 맛은 임금의 수랏상보다 더한 맛을 준다.
아내와 한잔 건배를 한후 두 아들의 먹는 모습을 보면 잘도 먹는다... 그래 내가 열심히 살아야 겠구나.  저놈들 입안에 저 맛나게 먹는 삼겹살을 먹게 해 주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 겠구나.... 하는 경각심도 생긴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두런두런 아내와 세상사는 이야기 또는 요즘의 나의 일과 근황도 솔직히 일러둔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위로해주고 알아주는 나의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는 삶의 최고의 할력소이다.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최고의 희망이고 행복의 처음이다.
가족 ....
세상에서 가장 긴 끈이다.  내가 살아가고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 혼자만의 삶이 었다면 나는 이렇듯 세상을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에게는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못난 나에게 와서 온갖 고생에 듬직한 아들 둘 낳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는 아내는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소주 한 병을 비운후 아내와 맥주로 입가심을 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두 아들놈들은 연신 장난이다.
나는 슬슬 취기가 올라오면서 눈이 졸리다.  오늘은 토요일.. 참으로 추운 날이었지.... 그리고 나는 아홉시도 못 되어서 일찍 잠이 든다..... 쿨쿨쿨 ...
행복은 이런 것이다.........   항상 잔잔하고 내곁에 미소를 짓는다...

 

깨었다....  아침인줄 알았다.   새벽 2시 30분 여분 ...
아내는 그때까지 잠도 안자고 내가 빌려온 톰크루즈의 우주전쟁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이 시간이 몇시인데 안자고 있냐니  오늘이 토요일이고 내일 애들 학교도 안가고  지금 창박에 첫눈이 온다고 한다.
뭐야 ... 나는 커튼을 젖혔다.   참말로 첫 눈이 소복이 온 세상을 덮쳤다.  아니 다 흰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아내가 한 마디한다.  자기하고 나하고 바뀌었단다.  자기는 눈오면 눈 치우고 길 미끄러워서 여러가지로 싫은데 여자처럼 저리 눈 좋아한다고 한마디 한다.
이 사람아  첫눈 오는데 여자고 남자고 어디가 있어 ....   얼마나 좋아  나는 한 마디하고 나와 본다.

정말로 아름답게도 눈이 온 세상을 다 덮어버렸다.
참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이구나...  그런데 왜들 아웅다웅 힘들게들 살아가는지.....
하얀눈을 하나 뭉쳐서 저기 나무에 던져보았다. 단 한 번에 명중이다.
저기 오르막에 차 한대가 미끄러워서 올라가지를 못하고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아예 멈추어섰다.   헛웃음이 나오고 잘 올라가기를 기도해본다.
아 그랬지 ....  그날도 이렇게 첫눈이 내렸지....

나는 또 내 열아홉살의 기억, 1989년의 기억속으로 또 떠나보기로 한다....

 

 

.

 



 기차는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항상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주고는 한다.
덜컹덜컹 소리도 좋지만 통로를 지나는 곳에서의 밖의 풍경은 웬지 영화 인 듯한 느낌도 준다.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후~  하고 내뿜으면 그 담배냄새 마저도  운치를 전하는 느낌이다.
통로사이로 삶은 달걀있어요,  음료수 있어요, 시원한 맥주도 있어요~   하고 감정이 없는 듯한 아저씨의 말에는 기차에서만 볼 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돈이 없다.   그나마 내 몸엔 동전 몇닢도 되지 않는다.

생각이 교차한다.  이리에 내려서 친구들에게 소주도 한잔 사 달라고 하고 차비도 신세지어 내일 다시 인천으로 올라갈까?    아니면 무작정 서울까지 가 버릴까?    친구들에게 다시 찾아가서 신세를 진다는 것은 쪽 팔리겠지....    아니야... 친구 좋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서울에 도착해도 열 두시가 넘을 것 같다.
서울에서 인천가는 전철이 끊기면 어느곳에서 밤을 세운다는 말이냐...  시간도 어중중 한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돈이 없음이다.   없는 탓이다.  아니 무능하고 준비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일단 잠을 한숨 청하자....   얼마후에 긴장한 탓인지 깨었다..
검표원들이 가끔 확인을 하고도 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리역을 10여분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무려 3시간 가까이를 온셈이다.  시간은 어느 덧 저녁 9시를 다 된 것 같다.
결단을 내렸다..   무조건 가고 보자.  쪽 팔리게 신세를 지기도 뭐하고 전철이 끊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자리를 내어 주어야한다.  나이 지긋한 분이 한분 앉으신다. 나는 이제 자리가 없는 신세 ...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올라가 보자...  기차값은 이리까지 이지만 서울역에서 어떻게 말로 떼우든 아님 담을 뛰어넘든 인천으로만 가자   그 생각 뿐이었다.    서서 가는 시간은 길고도 지루하다.
담배도 피워보고 창박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더딘 시간은 멈추어 버린 듯 하다.
쪼그려도 앉아보고 서있기도 해 보고 이런 저런 자세로 있다 보니 몸의 피곤이 더 찾아온다.
검표원들의 눈도 피해보고 쪼그려 잠도 살짝 청해보고 서울로 가는 길은 피곤하구나.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식 차비좀 넉넉히 좀 주지...

아니 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그리 생각이 짧다는 말이냐...  비상금이라는 것도 모른다는 말이냐...   그렇게 기차는 나의 의지와는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이 가고만 있다.

삶은 판단의 연속이다. 생각의 차이가 나를 키우고 작게도 만든다.어떤 판단을 하든지 나홀로 책임을 지어야한다.

 
어느덧 기차는 서울에 진입하여 용산역을 다다르게 된다.
시간은 12시를 넘어서있었다.
스산한 날씨에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기차를 많이 타보진 않았지만 웬지 플랫홈에서 더한 바람이고 낯선곳에서의 추위는 더욱 살을 에는 듯하다.   사람들이 종종 걸음으로 모두들 개찰구를 나가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들과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에 잠겨본다.

표받는 아저씨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사정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고 정문으로 나가야하나... 아니면  저 내 키보다도  2배는 훨씬 높아 보이는 저 방호벽을 넘어서 몰래 월담을 하여야하나 ..   월담하나는 자신이 있지를 않는가?  철 구조물 사이사이를 건너서 높겠지만 다리 조심하고 펄쩍 뛰면 그만이 아닌가?  

 
여러 생각에 잠기는 순간 사람들은 어느새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결정을 내렸다.

개구멍을 통과하느니 당당하게 걸어나가자...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여 정중히 사과하자..  도망치고 내 앞의 현실을 대충 살지는 말자..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간다음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몇분에 걸쳐서 상황 설명과 사정을 이야기하니 아저씨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면서 웃으며 나를 내보내 주셨다.

드디어 나는 서울에 온것이었다.
뛰어서 전철역으로 가보니 20여분 전에 막차는 끊어지고 말았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나는 일단 용산역광장에 우뚝 선채 갈피를 잡지를 못하고 있다.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한끼만 걸러도 죽을 것 같은 내 위장은 나를 많이도 원망하는 듯 꼬르륵 소리가 났고 호주머니에는 채 200원도 안되는 동전 몇개만 있을 뿐이다. 담배도 열차에서 많이도 피워대어서 몇가피 남지도 않았다.
내 몰골이 한심해 보였다.
겉은 겉멋만 잔득 들어서 정장에 바바리코트 까지 입고 머리는 무스까지 발랐지만 나는 빛좋은 개살구 아닌가?     
저기 포장마차에 들러서 우동 한그릇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천원만 있어도 저기 심야 만화방이라도 가서 대충 시간을 보내어 잠든후 첫차를 타면 될텐데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를 않는구나..
여관 아닌 여인숙에 갈돈도 없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도 비싼 요금이었다.

정글의 세계에서 나는 기본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돈은 약속아닌가?  내가 행하고 그 것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힘을 나는 잃었다... 

 

서울에 아는이도 특별히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그렇구나  댓가를 치루어야지.
저 네온사이 반짝이는 그 어떤 곳에서 나를 반기고 내가 반기면서 들어갈 곳이 없다면 나는 움추리고 이 새벽을 보내어야겠지...
용산역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쾌 사람이 된다.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 하는 구나   그래 4시간 정도만 버티자.  첫차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중에서 겨우 4시간 아니냐...  난방시설이 되어있지만 추워 얼어죽을 정도도 아니고 참을만 하지도 않느냐...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참으로 한심한 내 자신이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이런 결과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 많은 삶중에서 이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따뜻한 곳도 저리도 많은데 이렇듯 초라하게 있는 것은 또 무엇이냐...   얼마나 무능력하느냐...
친구가 많이도 원망도 들었다.   자식 매정한 놈 차비줄 것이면 돈 만원 더 주었으면 이리 고생은 안하지 .. 친구를 이렇게까지 거지로 만들어서 이리 고생을 시켜야하느냐....

아니다  아니다....  다 못난 내 탓이다.  사람이란 최선의 비상금은 챙겨서 유사시를 대비하여야지 그 많던 돈 친구들과 술 퍼마시다가 다 쓴 나의 탓이다.

돈은 있고 보아야 한다.  여유있게 있어 보아야 한다. 남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나라도 그리 되지 마라는 법은 그 어느곳에도 없다. 써보고 나서 있는 놈들을 이야기 해 보아야 한다 ?
 ( 아니다 !  있는 놈들이라고 하면 안된다.  있는 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독히 고생하여 부자가 됐는데 누가 나보고 있는 놈이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나...)
고생 단단히 해 보아야  다시는 이리 못난 꼴 안 보이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맴돌았다.

 

어른들이 그랬던가?
추운 겨울 날에는 뱃속이 허하면 안된다.  따뜻한 국물 챙겨먹고 밥 많이 묵고 다녀라...
다른 것은 다 참겠다. 하지만 이 배고픈 이 속만큼은 참지를 못하겠다.

새벽 2시가 넘고 역안은 난방시설이 없어서 을시년 스럽게도 더욱 추워졌다.

오리털 파카를 단단이도 껴입은 저 아저씨가 너무도 부럽다.
가까이에 웬 게슴치리한 눈빛을 한 아줌마가 나에게 슬며서 다가와서 조용이 이야기한다.
총각 놀다 가지 않을라우?  뭘 놀다가라는 이야기 인가?
남의 속도 모르고 염장을 지르고 있구나....   아줌마 됐어요...
인상을 팍섰다....   한시간후 또 다른 아줌마가 연애나 한번 하고 가라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이렇듯 더디게 간적이 없는 듯하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추어서 서서 걷기도해보고 앉앗다 일어섰다  해보았지만 정말 시간은 멈추어 버린듯 하다.
마지막으로 피워버린 담배도 이제는 다 떨어졌다. 
새벽 3시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2시간은 더 버텨내야 한다는 말인가?
옛일들을 생각도 해보고 여러 잡념의 생각에 생각을 또 하고 해 보았다.
잠을 청해 보려고 눈을 감고 아무리 있어도 추위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갈 수록 느쪄지는 것은 정말로 배가 고프다...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개장이나 해장국을 한그릇만 먹었으면 어린놈이지만 소주도 한잔만 했으면 ...  상상 속에서 나는 몇그릇을 먹었고 몇병을 비워됐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 4시가 넘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저기 아저씨에게 용기를 내어서 담배한가피를 얻어서 피웠다...  정말 꿀 맛 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이것도 불이라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필터까지 피운 듯하다.

이제 한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한시간이다.  한시간이면 된다.....

 
그렇게 버티어서 나는 5시 20분 첫차 인천행전철에 올랐다.
차비도 없었고 차표도 없었기에 그냥 뛰어넘었다.   죄책감도 들지 않았고 미안함이나 남의 시선따위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누가 왜 무임승차 하냐고 묻는다 해도 이제는 모든 것에 지쳤다.
전철안은 너무도 따뜻했다.   이렇듯 따뜻한 곳은 어머니 품속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살았다.... 나는 이제 살았다...   정말 살았다...  이런 생각이 너무도 들었다.
전철안에서 바라본 세상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 !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동인천역에 도착하였다.
누가 보건 말건 또 넘었다.   광장에 나오니 사람들도 없었고 아직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아 참  택시비도 없지... 택시로 20분은 족히 가는 하는 길이었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할 수도 없다.  그래 걸어가자 ..  이제까지도 왔지 않느냐...
걸으면 한시간 조금 더 걸리지 않겠나.... 무작정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참으로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 가상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가....

세상에 하얀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방울, 한방울 정말로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펑펑 너무도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낭만도 잠시 눈과 바람에 얼마나 심하고 세차게 내리는지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눈과 추위와 바람에 아 !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이어지는 이런 고통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니 흘리고 싶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걸은지 30분 만에 마지막 용기를 내어서 택시를 잡아탔다. 진작에 탈 것을 ...
아저씨에게 사정얘기를 하고 회사기숙사에서 돈을 가져다 드리고 1000원 더 드린다고 했더니 아저씨 참으로 친절도 하다.   나는 그리도 열심히도 걸었던 그 길을 택시는 무슨 타임머신 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새 10분 만에 회사에 도착하였다.

자는 친구놈 깨워서 돈을 빌려서 택시비를 주었다.  아직 어두운 시간 아침 7시가 되지 않은 아침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의 새벽이었고 긴하루 였다.
판단의 미숙으로 생긴 나의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만들어낸 나의 불찰이었다.
돈이라는 생활의 일부를 무시한 극악한 처방이었다.  누구도 원망 할 수가 없는 시간의 다툼이었다.
나는 제대로 돈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없음에 대한 고통의 댓가를 치루어낸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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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을 간다는 것은 한걸음, 한걸음  그 한걸음이 모여서  이루는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후배가 코치로 있는 복싱체육관을 입관한 것은 작년 11월경이었다.
복싱체육관을 선택한 것은 나만의 몇가지의 생각에 독특한  발상이었다.
새벽에 시간을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한 업체를 하였었고 정상적으로 낮동안은  나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저녁이면  먼 미래를 위하여 나만의 준비를 나름데로 충실히 하고 싶었다. 
체육관에서  런닝머신을 많이 달려 보았었다.
건강을 위하여 뛸 수도 있고 체력을 기르려 뛸 수도 있다.
런닝머신 숫자에는 몇키로를 뛰고 있다고 숫자 상으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뛰는 순간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 아닌가? 

 인생이라는 장에서 목표를 위하여  내 스스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 않나 깊은 생각을 해 보았다.
수많은 성공학 서적과 마인드 강좌에서 나오는
"도전해보아라..!  "    " 시도해 보아라...!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  "   라고 수도 없는 표현을 하고는 한다.  너무나 통속적인 그런 말들이 웬지 싫었었다.
그렇게 노력하고 성실히 최선을 다한다면 무언가 댓가가 어느정도는 도달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까 ..!     과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인가?

나는 인생이라는 단 한번 뿐인 마라톤에서 나는 런닝머신 앞에서 뛰는 것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것인가?
아니면 42.195 km  를 위하여 땀으로 한걸음 한 걸음 쉼없이 전진하고 노력하는가...?
등산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정상을 밟는 희열을 자극한다.
코끼리를 한번에 다 먹을 수 없고 한입에 한번씩 먹다보면 서서히 다 먹을수 있다는 것처럼 나는 과연 끓임없이 얼마나 노력을 했다는 말인가?

살아가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중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을 간혹 가다가 보고는 한다. 나도 포함이겠지만  돈은 중요한것이 아니더라... 마음만 편하면... 그저 내 등뉘이고 먹고 살 걱정 안하고 살면 되지 않겠나... 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은  이랬다.    " 이놈의 경기가 문제야 ! "      " 대통령을 잘못뽑고 정치하는 이들이 항상 쌈 박질하니 우리같은 서민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냐 ! "    " 추석지나고 김장철이라서 더 경기가 이모양이고 장사가 안되는 것이야....  "    정말 말들도 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기탓, 대통령 정치인탓, 겨울로 오는 초입의 어려운탓이라고 말들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탓이다.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더 열심히 하지못한 내 게으른 탓이다.  돌파구를 찾아야한다,  돈이 되는 일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한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을 반성하는 이들을 본적이 없다.
세상을 바꾸려 한적은 없다.  가장 쉬운 내 자신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데...
모든 것을 쉽게 판단하고 결정짓는 자기 합리화인 것이다...

 

나에게서 수많은 돈에 대한 사연들이 많지만 이 지난3 가지 이야기는 참으로 잊혀지지도 않고 각기 다른 느낌과 아픔과 생각을 하게 만든 일 들이었다.
나는 생각의 전환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생각의 전환은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내 몸안의 또다른 나이자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3가지 이야기는 내 삶에서 결코 잊고 싶지도 않고 나를 키운 거인같은 반성과 지혜를 주는 이야기이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나에게 깊은 반추를 상념케하는 나의 지난 이야기속으로 나는 떠나 보기로한다...

 

 
어린시절 지난이야기 1.

 

 

 
어린시절  동생과 나는 심부름을 하고는 했었다.
한달에 한번 정도였을 것이다. 간혹 가다가 두달에 한번 일  때도 있었고 ...
그것은 내가 살던 집과 참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시공부를 하시는 삼촌에게 김치며 여러 반찬을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참으로 자동차로 십여분이면 가는 길이었지만 그 예전 그 도로는 비포장에 굽이 굽이 멀기도 참으로 먼 곳이었다.  

삼촌은 마을과 두어시간 떨어진 곳, 마이산이라고 근처에 있는 이산묘라는 절에서 고시공부를 십년가까이 한 듯 하다.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와 내 동생은 계절마다 반찬을 가져다주는 그 일들이 많이도 힘들었다.

외딴집에서 걸어나와 정류장까지 1시간을 걸어야했다.  만만찮은 무게의 반찬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게의 강도가 더해갔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들은 언제나 지겨웠다.
늦게나마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십여분을 가서는 화전마을에서 내렸다. 그 마을에서 부터는 또 한시간을 더 걸어서 들어가야만 했다. 김치며 국물이 있는 반찬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요동질에 새기도한다.
팔은 참으로 아프다.  이 쪽 팔로 조금가다 이 팔로 다시 바꾸기를 수십번 하는 내내 참으로 힘이 들다는 것은 몸으로 느꼈다.
어린마음에도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여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3시간여를 고생고생하여 삼촌있는 그곳에 도착하면 삼촌은 그리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어린조카들이 몇시간을 고생하여 땀 흘리면서 가져온 그 음식들을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항상 받으셨다.
그리고 이렇다할 여러 말들도 없이 동생과 나는 다시왔던 그 길로 되새김을 하듯 다시 걸어오고는 했다.
양손에 들것이 없다는 그 사실 만으로 기뻣다.
삼촌은 특별하게 차비를 준다던가..  아님 과자값을 준다는 그런 정은 없었다.
그저 그 배송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갈일이 남았구나   하고 돌아오근 했다...   그때가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버스시간이 맞지 않았을 때에는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길이 힘들기도 했지만 음식들이 무거워서 팔이 빠질 것 같아 어쩌면 요령이 생긴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았다. 족히 자전거로도 두어시간을 갔지만 길은 비포장에 울퉁불퉁하여 모난 곳에서는 넘어지는 일들도 즐비햇다.   가다보면 덥기도 했었고 허기가 져서 배가 고프기도 했었다.    그러던 언젠가 한번은 토마토밭을 지나다가 몰래 토마토를 몇개 훔쳐먹은 일이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먹었는지도 모르고  입안 가득 집어 넣은지 한시간만에 설사와 복통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 그 이후로 나는 도마토를 싫어한다.)

그렇게 항상 고생고생하여 찾아간 삼촌에게서는 항상 따듯한 말 한마디도 그리 들은적도 없었고 돌아가면서 차비나 아이스크림 값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린나이 였지만 참으로 싫었다.
씨...   과자값이라도 좀 주지.... 내 안에서의 솔직한 바램이었다.
어머니가 주신 차비로 가다가 아이스크림이나 사먹고 걸어가거나 아님 자전거로 가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어려서 마음만으로 삼촌을 이해하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렸다.
댓가를 받는 생각보다는 내가 고생한 그 부분의 따뜻한 말과 정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고생한 일들을 칭찬받고 진심어린 말 한마디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정있는 눈빛으로 차비와 아이스크림 값으로 내 노력의 댓가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백번의 마음속 고마움보다 한번의 행동을 바랬다.   몇년이 흘러 내가 중학교 초기까지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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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살의 지난이야기 2.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취업을 나가서 6개월 가까이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취업기간을 다 채워
웠다.   취업기간내 꼭 한번 가고싶었던 곳이 있었다면 내가 몸담았던 학교였고 그때의 친구들 이었다.
지금것 살아오면서 나름데로 행복한 날들이었다지만 고교시절 만큼 열정과 힘이 있는, 철 모르고 즐거웠던 시간은 다시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돌아가고 싶다...
이리 (익산)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로 일사천리 였고 너무나 친숙한 듯한 그 도시의 향수들을 즐겼었다.
그러던중 고교때 유난히 친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는데 이리에서 3시간여 떨어진 목포에 있노라고 모든 것을 다 책임질테니 몸만 오라는 소리에 한 달음에 목포에 갔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앞해도라는 섬으로 배를 타고 30여분을 들어갔다.
그곳에서 또 차를 타고 20여분을 또 들어갔다.
웬지 고립되어버린  세상과는 차단된 곳으로 유배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나와 친구는 새벽녁까지 소주에 술잔을 기울리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내일부터 같이 일을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섭섭치않게 일당도 조금 주겠노라는 말도 들었다.  친구 끼리 일당은 뭐하고 돌아갈 때 차비나 두둑히 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친구는 포크레인 운전을 하였었다. 나는 옆에서 도와주는 잔일을 하는 조수역할을 했었다...
당시 나는 몇천원도 남지 않은 신세였다...

 

몇일을 도와주는데  이것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지못한 친구의 이기적인 모습들이 하나둘 보이는 것이었다. 친구의 우정으로써 데려운 것이 아니고 이 답답한 섬에서의 시간을 같이 보낼 그런 시간의 대상으로 나를 데려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같이 2년을 같이 함께했고 좋은 친구라 느꼈었지만 나는 의리라는 청춘의 가소로음을 믿고 있었던 그 당시였고 지금은 먹고 사는데 어쩌면 투쟁하는 삶 앞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나는 친구에게 짐을 느꼈나보다...  친구라는 의리로 나는 친구의 진정한 포장을 벗겨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친구의 삶이 있듯이 나의 삶도 있었다.
이 외딴 섬에서 내가 하는 포크레인 조수일이 나의 일은 아닌 듯했고 섬의 답답한 기운이 싫었다.
나는 다시 가야만 했다.  내가 가고 싶은 인생이 있는데 정지해버린 것은 삶이었다.
그날 밤 친구와 소주한잔을 하면서 살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눈치를 챘는지 웬지 서운한 기색이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목포까지는 데려다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하루에 배편이 두번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날은 한번 뿐이었었고 시간이 늦어 탈수가 없었다.
다시 하루를 기다라자니 답답해서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않았다.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저너머에서 배 (택시)를 불러 달라고 주민들이 애용하는 교통 수단이었다.

친구는 굉장히 아까워하는 듯 하다...

 

그리고 나에게 차비나 하라면서 만원을 건네는 것이었다.
만원이면 서울 까지 가는 기차비에 인천까지 가는 전철비하면 딱 맞는 금액같았다.
도저히 담배를 사거나 밥을 한끼 먹고는 갈 수가 없는 금액이었다.
야 !  친구끼리 일당을 달라고 한것도 아니고 빌려서라도 다오   내가 나중에 갑을 테니까...
친구는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눈빛을 보았다.  내가 사람을 아주 잘못보았구나...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 내 탓이다.   그래 차비주는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더냐...
배를 타고 목포로 가는 배에서 바라본 몇일동안의 그 섬은 웬지 슬쓸해 보였다. 내마음도 차가운 바닷물처럼 처량맞는 느낌이 업습했다...

 

 

주어진 만원한장으로 배에서 내려 먼저 한일이 담배를 한갑사는 일먼저 했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면 남는 돈은 오천원 가량...
밥을 먹지 않는다면 서울 까지는 갈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나는 배가 고프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배고픈 것은 잘 참지못하는 것이 내 성격이 아닌가...

그렇다면 일단은 먹고 보자... 남은 돈이라면 이리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까지 가려면 이리가 딱 중간지점이 아니던가...   어떻게든 되겠지.... (이것이 항상 문제였다.   무책임하고 안일한 이 생각들이 항상 문제이다.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맛나게 국밥 한 그릇을 국물 한방울 남기지않고 깨끗이 먹어 치웠다.
맛나게 담배를 한대 물고 저멀리 몇 일있었던 그 섬을 바라보았다.  다시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구나... 사람은 그저 사람사는 곳에 있어야한다.

나는 그렇게 목포에서 서울행 통일호 기차에 올랐다.   그때가 해가 누엿누엿 저가는 차가운겨울 그리고 내 열아홉살의 12월의 중순경이었다....  그리고 기차는 쉿소리와 요란한 바퀴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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