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빈아!

아빠다.

 

 

듬직한 우리 아들이 요즘 장이 안좋고 감기에 걸려서 고생이 많지.

항상 열심히 모든일에 잘 해주어서 아빠는 너무도 고맙구나.

 

집에서는 큰아들로써 듬직하고 멋지게 잘하고, 학교에서는 반장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태권도에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하는 우리 아들이 아빠는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빠가 항상 말하지.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은 항상 예의가 바르어야 한단다.

인사도 잘하고 대답도 잘하고 어른에게 공손하고 예의바른 설빈이가 아빠는 너무도 좋고 사랑스럽단다.

 

아빠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동생이 아직 어리니까 조금만 더 이해하고 잘 해주었으면 한다.

항상 엄마 말씀 잘 듣는 것 잊지말고..

 

 

항상 아빠는 설빈이 편     자 우리 아들   파이팅

 

 

 

2007년 10월 24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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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한다 !

 

 

살아가면서 정과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간혹 있다.

그 말 한마디의 정이 어쩌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지친 삶에 피로해복제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존중하고 싶고, 더불어 웃음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열심히들 살고 있다 하는 그 아끼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쫒기는 삶을 살고는 한다.

무언가에 걱정하고, 무언가에 지친 어깨를 떨구면서 홀로인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고는 한다.

근심어린 눈빛속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것은 위선이다.

설사 그런 눈빛속에서 웃음이 나왔다는 것 또한 멋진 용기일 것이다.

 

사랑이 내 친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직장상사의  권위위식을 가진 빈정거리는  말 한마디가 내 친구의 하루를 망칠 수도 있었다.

친구는 쥐 죽은 듯이 세상에 순종 하듯이 살고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들 때문에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여러 삶들의  홍수 속에서, 이 자본주의에 세상 속에서 살아본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돈과 얽기고 설킨  수많은 사연들 때문이었다.

 

사랑이, 사람이, 직장상사가, 경쟁관계의 사람들이 힘들게 하는 것보다  몇배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돈이었다.

 

돈 ...

이 돈 이라는 것은 어느덧 살기위하여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있고 지금 이 순간처럼 내 몸과 친구의 곳곳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새벽녁에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밤늦도록 저녁도 거르면서 김밥한줄을 먹으면서 운전하게 만드는 무서운 괴물이다.

내 주위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저렇듯 아침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출근하고, 직장상사의 그 꾸지람에도 참고 , 가족들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하나로 살고싶은데 하지못하고 쓸쓸히 걷는 가장의 지친 어깨에서 나는 느낀다.

왜 저렇듯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

그래도 정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나도 말하고싶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처자식을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청부범죄를 저지르게 마는 무서운 세상이다. 꼭 남의 나라 이야기같고  나와는 동떨어진, 머나먼 사람들 이야기같지만 엄현히 지금 현실 속에서 자행하는 일들이다.

살아가는 모든 목적의 시작과 끝이 이 돈이라는 것일까?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 어린시절, 유독이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남들은 그저 먹고 살만하게도 살았던 그시절..

왜 우리집만은 더 어렵게 살았나..    다른이들은 잘 사는데 왜 우리집은 잘 살지 못할까?

하는 그 생각에 나는 이담에 크면 꼭 부자가 되고 말리라...

다짐에 다짐을 더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꿈은 막연하다.   막연한 꿈은 가시적이고 큰 힘을 한번에 쏫는 응집된 힘이없다.

막연해서는 안된다.  구체화 적이고 기록적인, 검증이 필요한 확실한 목표설정이 필요하다.

 

 

내가 절실히 부자의 꿈을 , 큰 꿈을 이루기위한 간절한 바램을 바랬던것은 그 24살의 새벽밤 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떤 특별한 계획이나 앞길이 확 잘 될것이라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자신감으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거대한 벽은  나를 순식간에 허물어 버렸다.

젊고 마냥 잘 되겠지는   여지없이 나를 비웃고 세상의 차가운 바닥의 고통을 주었다.

제대 몇달후 아내는 첫째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임신을 하면 먹고싶은 것도 많은 법이고, 정기적으로 병원도 다녀야하는 경제적으로 돈이 상당히 필요한 시기이다.

안정된 그 어떤 것  하나 없이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나는 새벽에 안산으로 인력시장, 막노동을 다녔다.    말 그대로 인력시장 이라는 그 단어 그대로였다.

봉고차에 실려 어디인지도 모르게가서 내려서 지시하는 , 힘으로만 하는 그 일들을 했었다.

웬지 내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그저 하루 일당에 사람을 판정짓는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한곳으로 다녔으면 덜 했을 텐대 항상 변하는 일터와 사람들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10%를 떼고 받는 그 날의 노임이 나를 평가하는듯 하여 더욱 지쳤다.

 

그러던 어느날...

일하다가 대못에 발바닥을 깊숙이  찔려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 생겼다.

피를 짜내어 응급처치는 했지만 나의 그런 현실이 싫었다.

일이 끝나 친구와 함께 포장마차에 들려 지친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큰 빛을 보기도 힘들었고 그 어떤 희망도 내 앞에서 근사하게  보이지를 않았다.

그저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술에 취하여 나를 놓고 싶었다. 나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날밤  자정 가까이에 월세집으로 내몸을 쉬러 들어가 보았다.

아내는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고...  술은 왜 요즘 자주 먹느냐고...

몇마디 하는, 아니 걱정하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와 버렸다.

 

안양역 앞 광장에서  벤취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 보았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군대3년 가까운 세월을 기다린 아내에게 , 아이를 가진 아내에게 나는 정말 몹쓸 남편이다.  많은 것을 아니해주어도 그리 큰 돈을 안가져주어도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했는데 나는 나 자신이 힘든 것만을 생각한 힘없는 철부지 가장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24살... 군대를 막 제대한 내가 이제 애 아버지가 된다.

나는 현실을 탈피하고 싶었다.  아니 이 현실이 어쩌면 꿈이기를 바랬다.  나는  너무 젊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에 누워있는데 인기척이 느꼈다.

사랑하는 내 아내였다.

큰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곳에 와서 누워있느냐고...

힘든 당신마음 아는데, 이렇게 까지 꼭 내색을 하고 나를 힘들게해야 속이 시원하냐고...

무서운 이 새벽에 걱정이되어 여기저기 포장마차를 들러서 나를 찿아 헤메였노라고...

어느덧 배가 상당히 나온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느꼈다.   그것은 비장한 마음이었다.

이제 다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들게 하지 않겠다.

이 벌어진 현실 또한 내가 노력하고 준비하지 못한 무능한 나의 탓이다.

이제 다시는 돈 이라는 것 때문에 내 사랑하는 사람을 눈물 흐르게 하지 않겠다.

이것은 막연한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 겠다.  절대 돈이 없어서 내주위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

 

그밤에 나는 아내를 껴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 그 말 또한 맞는 말이지만  다시는 돈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부자가 되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 새벽의 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이 있기에 나는 오늘 하루도 부자가 되어야 하는 간절한 꿈에 서서히 다가 가고 있다...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살아 부모님께 근심을 드리는 것도 불효이다.

돈이 없어 내 형제들에게 궁핍한 생활과 안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내 스스로 가난하여 사람들에게 , 나를 아는 이들에게  지쳐가는 모습과 처진 어깨도 미안한 일이다.

도움을 받는 쪽 보다,  될 수있으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질질 끌려가지 말고 이제는 세상이라는 장에서 내가 주도하여 칼자루를 내가 휘들러야 한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한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도 부자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한다....!

 

부자는 항상 쓰레기더미 에서 처럼 , 거친 곳에서 움추리고 있다.

우리는 그 쓰레기더미의 포장을 걷어내고 부자의 기회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진정 부자가, 자수성가하는 부자는 달라야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하고, 고정관념을 깨고 피와 땀을 흘려야한다.

나의 가슴에는 타오르는 부자에 대한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위한 눈물겨운 밑바닥체험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그 열정이 우리를 꼭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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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은 방학입니다.

 

큰 아들은 올해 5학년이고 둘째아들은 올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유치원생이니 겨울방학은 겨울방학인 셈입니다.

하지만 저의 집 방학 풍경은 조금 더 남다릅니다.

 

두아들...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몸이 차돌보다 더 더욱 단단하고 체력은 산삼을 삶아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활동하니 집안은 언제나 전쟁터같고 누가 말 않듣나 내기를 하는 말썽꾸러기, 개구장이라는 말이 너무 어울립니다.

이런 두아들을 챙기고  고생하는 것은 아내 몫입니다. 어찌보면 두 아들보다더 힘이 센 사람은 아내라는 생각도 듭니다. 

허지만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가장 큰 소망이지만 저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한가지입니다.

 

이 겨울 방학에 저는 아들들에게 그저 학교 안가고 노는 것이 아닌 방학이 되도록 도와 주고 있습니다.

방학중 가르쳐주고 싶은 몇가지는

 

공부보다더 저 중요한 것은 인사를 잘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어른을 뵈면 90도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안녕하세요  하는 라고 말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어른에게 예의를 갖추는 좋은 습관을 먼저 가르치고 싶습니다.

저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아들들이 어릴때부터 공부 잘하라고는 말 안했지만 인사잘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가장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학중 더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컴퓨터다 오락이다, 여러 놀이문화에 너무 많이 젖어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바둑은 지난봄부터 복지관에 보내어 가르치고 장기는 지난 추석때부터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챙피하지만 바둑은 막내인 8살 자리에도 지고 장기는 제가 한수 위지만 질때도 가끔 있을 정도로 잘 둡니다. 어린 아들이라고 우습게 보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저의 퇴근후 시간은 아이들과의 장기와 바둑으로 이어집니다.

매일 저희 둘이 하루 몇판씩 두지 , 제가 또 저녁에 두 판씩 둬 주니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들들이 너무 재미있어해서 책까지 사와서 공부를 해서인지 참으로 잘 둡니다.

 

가끔 아들들에게 지면 챙피하기도 하지만 흐믓합니다.

녀석들 많이 컸구나  기쁘기도 하지만 세상 안좋은 놀이문화가 아닌 전통놀이를 하니 부모로써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바둑이 끝나고 장기도 끝나고 두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에는 너무 행복합니다.

어린이 명작동화나 전래동화를 재밌게 흉내내어 읽어 주면 어느새 잠드는 아이들...

잠든 두 아들을 보노라면 이제상 모든 행복이 제 행복인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다는 요즘 . 서민경제,, 저라고 피 해갈 수는 없지만, 정치적으로도 말도 많고 어느 기업에서의 노사문제, 살을 에는 듯 힘든 요즘이지만 저는 그저 제자리에서  제 할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아툼베게를 껴안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귀엽게 자는 저 아이들에서 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불끈 솟습니다.   너희들의 방학이 끝날 때까지 항상 아빠가 지켜주마....



참 요즘 방학때 큰아들과는 아침마다 뒷산에 있는 체육공원에 운동도 하러갑니다...

춥다고 움추리지만 말고 아빠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있는 것을 연구 했으면 합니다.

가족은 가장 소중한 저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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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지난  비가 오는 한 여름의 일이다.

 

집에 일이 있어 오후에 출근하게 되었었는데 7년지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 형 어데야...? 

 "어..  여기 집이다. 웬일이냐? "

"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

10분후 다시 전화가 왔다.

" 형 !  지금 도착했는데 아파트 1층으로 내려와 !  잠깐이면 돼. 

간편한 복장으로 아파트입구에 내려갔다.
" 허... 이상하다 통닭집하는 녀석이 바쁠텐데 어쩐 일이지.. 별일이네  그것도 우리집에... "

녀석은 웃음 띤 얼굴로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 형!  놀랬수? "   말을 던지면서 몇 바구니 비닐바구니를 건넸다.
자세히 보니  ----- 배추, 얼가리배추,상추며 갖은 야채가 든 큰 비닐바구니를 내미는 것이었다.
" 아니 이게 뭐다냐? "  황당하기도 하고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유를 막론하고 공짜가 아닌가?
궁금하고 으아해하는 순간  가까이에 차의 윈도우가 내려지면서 낯익은 분들이 보였답니다.

 동생녀석의 부모님이셨다.

" 어...잘있었남?  오랜만이여 ..."  하시며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며한손엔 시골서 빻아온 고추가루 라면서 큰봉다리에 한자루,다른손엔 오시면서 김치를 담구으셧다면서 김치를 한 무더기를 또 주셨다.
순간 어이가 없으면서 너무 감사하기도 했지만  감짝 놀랬다.
세상에 전북 무주에서 안양까지는 얼마나 먼거리인데 어떻게 이리도 많이도 가져오셨담.
어찌나 감사하던지 무슨 복권에 당첨된 기분도 들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이 일었다.
" 어 ...  여기 안양 아들네 오는데 자네 생각이나서 가져왔네.. 그냥 올 수가 있나. "
하시는데 나는 할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 아이고 자식들도 네 분이나 계시는 분이 피 하나 안 섞인  이 사람을 이렇게 생각해 주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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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휴가 때였다.

두 분을 처음 뵌건 5년전 음료회사를 같이 다니던 설씨성을 가진 회사 동생과 워낙 친하고 막역하게 지내던터라 " 형!  이번  휴가때에는 꼭 우리집 무주에 한번 꼭 오슈" 했다. 

고향이 진안인지라 고향 들른후 그 곳 무주에 가게 되었다. 같은 무진장 골짜기지만 은근히 멀다.  용담댐을 경유하면서 유람하듯이 가게 되었다.
톨게이트에서 부터 동생녀석 형제들이 마중나와 주는데 귀빈대접이 따로 없다.

 

동생 녀석 집에 도착하니 참으로 인상좋고 허물없이 대해주시던 두분.
내집에 온 것 마냥 편안하게  대해주시고 그저 내집이려니 편안하게 지내고 놀다가 가시게나  하시는 두분 부모님께 부담이 전혀 들지가 아니하고 정말 내 집처럼 편하게 대해 졌다.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시골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마당건너 편에는 소가 풀을 뜯고 있고 저멀리 강이 보이는 곳으로 고기 잡고 물놀이 할 것을 약속하면서 마지막 남은 숭늉 한대접까지 남기지않고 먹게 하신다.

" 형! 이곳이  너무 시골인지라  일급수만 산다는 쏘가리도 잡고 꺽지며 여러고기도 잡아봅시다...! "큰소리치는 동생을 따라 낚시대며 여러 채비를 하고 강을 ( 냇가가 하면 작다.) 건넜다.

아내와 두 아들은 무더위에 지쳤다.

아내도 두 아들도 더워 죽겠는데 무슨 고기를 잡느냐... 이 땡볕에 있느니 집에 가자고 성화다.
낮은 냇가 돌들로 자리를 만들어 주고 조금만 참아라 하고 물을 끼엊어 주었다.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동생형제들은 난리가 났다.
여기는 쏘가리네...   여기는 꺽지네 하면서 고기 잡았다고 난리가 났다.
아닌게 아니라 손바닥 만한 고기들을 금새 몇마리 잡아냈다.

아내와 아이들이 신기한듯이 연신
"우아 ! 와 !   고기다.... "
잠시후 신난 것은 웨려 나였다.
동생의 낚시대를 빼앗아 직접 닐 낚시대를 힘껏 던지니 묵직하기도, 작은 울림의 느낌도 몇번의 손맛을 보는데 신이 나버렸다.

아빠가 고기를 잘 잡은이 아이들도 신났다.

동생의 남동생이 작은 칼을 꺼내어서 능숙한 솜씨로 쏘가리 회를 썰고 있다.
동생과 나는 초고추장과 소주한병을 준비했다.

돌위에 가지런히 놓인 쏘가리들은 내가 그리 많이 보던 횟집에서와 달리 너무도 멋지고 군침이 도는 모습이었다.  레이디퍼스트   아내에게 먼저 쏘가리 회 한점과 소주한잔을 건넸다.
아까까지 무더위와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다고 투정을 부리던 아내였다.
소주한잔을 독하다고 마시고 쏘가리 회를 먹고난 아내의 웃음띤 그 미소와 맛있다 !   를 연발하는 그 모습에서
무안한 행복을 느꼈다.
내가 먹어도 진짜로 맛있다.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하다니....   독한 소주가 단맛이 나 버린다.

초고추장을 듬뿍 묻혀서 인가...    주거니 받거니 잔을 돌리는 그 순간에 어느덧 저녁노을이 드리운다.
찾아온 피로도 다 풀리고 강가에 물을 담군 발은 시원도 하구나...
세상 시름 다 잊은 듯하다...  풀벌레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어두움이 깊어 갈때즘 강건너를 작은 배를 타고 건너는 행운도 치뤘다.  동생후배라는 사람이 대수리 ( 고동, 소라라고도 한다.)를 전문적으로 저녁에 잡는 일을 직업으로 여름에만 한다고 한다.

경운기의 엔진으로 배를 제작한 배는 모터소리를 내면서 잘도 간다.
한없이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저녁엔 귀한 손님왔다고  몇일전에 그물로 잡은 자라로 끓인 용봉탕과 멍멍탕도 같이 주신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 음식이다.
얼큰하면서도 간이 잘 뵌 깜끔한 음식들...  같이 어울린 갖은 야채와 향토음식들...
마당에는 모기들을 쫒으시려는지 피오놓은 쑥대잎이 연기를 내면서 타오른다.
달이 떠올랐다...   둥근 달은 우리 가족들을 보면서 웃는 듯 하다.
저 멀리 개소리며, 새소리, 풀벌레소리들이 너무도 정겹다.
이 모든 것이 다 정겹지만 가장 정겨운 것은 동생녀석의 부모님이시다.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이렇듯 쏫는 이 정겨움말이다.
밤이 깊어가고 소주에서 시원한 맥주로 술잔을 이어갔지만 술은 전혀 취하지를 않는다.
냉동실에서 내오셨다는 수박한입을 먹어 보니 얼음덩어리같구나...
작은 아들은 엄마품에서 언제 잠들어 있는지 색색거리면서 꿈나라를 향하고 있다.
한가지 소망이 들었다...

 

 "  시간이 이대로 멈추어 버렸으면.......  " 

 이튿날 직접 재배하셨노라하시며 수박이며 고추며 상추 여러 야채들을 차에 실어주시는 데 얼마나 감사하던지.....차가 멀어지는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두 분.....

" 아!  낳아주신 부모님만  부모님이 아니구나.............! "

 

안양에 도착 후 나는 가전제품 가게에 들러 선풍기를 하나 산후 바로 무주로 보내드렸다.
두 분이 계시는 시골은 너무 더워 선풍기 하나만 더 있으면 좋으련만 ...하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엇다..  보내드리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고 흐뭇하고 시원하던지...
그 후로도 1년에 한 두번 오시면 꼭 인사드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갈비집에 모시고가서 고기도 대접 해드리고 식사도 대접해드리면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너무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리는데 드릴께없어 아버님,어머님 차비라도하세요
하며 3만원을 드리는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한사코 안 받으시겠다는 두분께 정말 잘먹겟습니다.  하고 부끄러운 손을 내밀면서   차가 저 멀어질 때까지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사람사는 정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
이 글을 다 써내려간 지금 창밖에는 찬바람을 동반한 눈이 내리고 있다.
지금 이순간 왜이리 그해 여름 그 햇살과 바람이 많이도 그리워지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어린 마음이다.

진심어린 마음이란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상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가장 하고픈 말은 한가지이다.
내게 해가 되는 몇몇사람을 제외하고 항상 정으로써 상대를 배려하고 긍정적으로 대하기로 하자.
하지만 내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이 되도록하자.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간직하돼 또 다른 내면은 미래를 위하여 일정 부분은 인내하기로 하자.
비록 지금은 고통이 따르더라고 조금만 더 참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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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정말 내 아들이지만 멋지고 잘 생긴 아들들이다.




나의 분신인 셈이다.  낳아준 나의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첫째 아들은 내가 군대를 제대한지 몇 달후 가진 아들이다.

너무도 어려운 시절이었고 뭐하나 가진 것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삶을 살았던 시절에 가진 아들이었다. 군대를 제대하면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을 것만 같았고 자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던 힘든 삶에서 24살에 가진 아들이었다.




아내를 마중 나간 대방역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하였는데 임신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나 두렵고 세상에 대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없기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내는 어차피 가진 아이니 낳자고 하엿다.  준비가 덜 된 나는 조금만 시간을 갛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낳기로 한 결정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고 잘 한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도 감사히 생각한다.




많은 방황고 힘겨움 끝에 일번가 신형순병원에서 3.5킬로그램으로 탄생한 나의 아들.

힘 딱 두 번 주고 태어난 멋진 아들. 간호사가 안고 나오는데 세상에 나하고 똑같이 생긴 녀석이 나오는 것이었다. 1996년 1월10일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날 인 것이다.

아내는 쿨 쿨 잘 자고 있고 나는 밤새 몇 십번을 깼는지 모르는 밤이다.




나하고 똑같이 생긴 녀석.  하지만 성격은 나하고 아내하고 반반을 닮은 듯 하다.

어려서부터  한 고집 하더니 매일 놀이터에서 하루내 살았다.

칠성 아저씨들만 보면 인사해서 용돈받고 녀석 정말 힘들이지 않고 키운 듯 하다.

없는 살림이지만 칠성에서 열심히 일한 시간이지만 나에게 아들은 듬직한 녀석이었다.




아들이라는 존재가 나의 분신이라는 존재가 그렀더라.

내가 삶을 떠나면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아들은 또다른 나이기에 언제나 웃음 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아들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없다. 단지 건강하고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사람으로 예의 바른 사람으로만 살아주기를 바랄뿐이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언제나 고기를 잡아 줄 수는 없다.

너희들에게 고기잡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언제까지나  이세상을 잘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그런 존재말이다.

세상은 때론 힘들고 지칠때가 많은 법이다. 그런 세상에서 현명하게 잘 살 수 잇도록 아버지가 그런 길을 안내하고 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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