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충동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답답한 갈증의 마음을  시원한 맥주로 날려버리고 싶은 그런 충동이 감사하게도 들었다. 몇 년을 만나지 못한 친구 혹은 떠나간 옛 애인이 몸 서리치게 보고 싶은 그런 충동의 글 말이다.  나는 이런 충동적인 글을 읽기도 좋아하고 가끔은 쓰기도 좋아한다.

 

 

글 이라는 게 그렇더라.  하나의 날카로운 칼이면서 부드러운 햇살이더라.

표현의 방식에 따라서 날카롭기도 부드럽기도 하더라는 말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깊은 내 안의 뜨거운 심장에서 자연스럽게, 아주 가볍게 끌어내어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마음을 잘 말하는 사람이다.  가식적이지도 않고 그리 포장하지도 않았지만 설득력있는 그런 말 말이다.  나는 솔직한 것이 좋다. 아니 직설적이라는 말이 더욱 좋다. 보여주려거든 다 보여주어야지  어설프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 솔직한 말.... 그런 말의 글을 말이다.

이제 솔직히 3편에 나누어 대화를 풀어보기로 하자.

좋다.  이런 감정의 글을 써보는 것이, 심장에서 솔직하게 내 보내는 글이 아마 3년만이지 않나 싶다.

가슴이 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길을 떠나는 느낌말이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결론을 먼저 말하고 싶다.

프로 세일즈맨은 있다!

그렇다.  프로 세일즈맨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프로세일즈맨인가?

내가 생각하는 프로 세일즈맨의 가장 기본적인 제 1원칙은 단 하나이다.

프로 세일즈맨은 내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있어야 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은 추위에 떨고 배고파 고통스러워하는데 남을 위하여 밥을 짓고 나르고 있다면 무언가 분명히 잘못 되고있는 것이다.

일단 가족을 비, 바람을 피하고 장작불이 방구들을 지피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도 둥둥 떠있는 계란말이도 있는 밥상을 차려 든든히 먹고 두툼한 이불속에서 발을 이불속에서 빼내어 행복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행복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기본인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시민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민족과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첫째가 아니다.

먼저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하여 프로세일즈맨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잠깐 내 어릴적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어릴적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인가 신문배달을 했다.  아버지가 그 신문지국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꾀임에 빠져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만나면 정말 때려 죽이고 싶지만 내 아버지의 판단이었기에 솔직히 남을 원망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할만한 분에게 그 자리도 맞겨야 되지 않냐는 말이다.

술 좋아하고 가정이라고는 전혀 신경을 쓰신 적이 없는 아버지께서 자식들 고생시킬 것이 뻔한 일을 시작하셨다.

조선일보이다. 지긋지긋한 그 조선일보를 내가 지금 아침마다 보고 있지만 당시 나는 진저리가 났다.

아침7시50분이면 정류장 의  버스 짐칸에 신문덩어리가 도착한다.

외 할머니댁으로 가지고 가서 각 마을로 가는 신문들을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 ( 이 봉투는 것이 힘들다. 몇번지, 이름을  매일 다 써야 한다. 날이면 날마다 쓰는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 50부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을 다 붙이고 아저씨들에게 드린다.

이 일은 내 누나가 했다.   우리 누나 정말 고생 징그렇게 많이 했다.

나와 동생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아마 80부 가까이 신문을 돌렸다.

이 일을 아마 5년 가까이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 특히 겨울방학때,비가 올때  비오면 비에 젖을 세라 힘들다. 행여 젖었다고 다시 가져다 달라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이 슬쩍 해서 또 가져다 주어야하는 힘든 점.

항상 신문배달후 늦게 등교를 하었기에 1교시가 시작되어 들어갔다. 수업중에 들어가는 그 쪽팔림은 힘들었다. 문이 드드륵 열리면 나를 향하는 그 많은 눈길들...

 

신문배달은 배달대로 힘들고 또 수금이라는 것이 남아있다.

어른들 ..지긋지긋하게 수금들 안해 주신다.

자식같은 사람이 비오는날에도, 눈오는 날에도 고물 자전거타고 1시간여를 달려왔는데도 수금 안해준다. 있어도 없는 척하는 어른들...  더위와 추위를 넘나들면서 나는 어린나이지만 느꼈다.

신문값  2500원...

" 정말 이 돈이라는 놈   무섭구나...!  "  수십번 수금 갔는데도 안 해주는 집에서는 정말 더럽구나.

 

누나가 구로공단에서 일해서 몇년을 일한돈으로, 정말 피같은 돈으로 1986년  300만원이라는 돈을 갚아주었다. 지금도 큰 돈이지만 당시는 더 큰 돈이었다.

난 정말 지긋지긋한 놈에게서 해방이 되었다.  돈 때문에 받은 고통을 돈으로써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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