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7
이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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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권으로 된 어린이용 책을, 실은 내가 읽고 싶어서-그러나 아이들이 읽으면 좋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학기 도서 구매할 때 구입해 놓고(참고로 한시적으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시간만 재고 있었다. 모임에서 이 책을 포함해 판타지 책을 읽었을 때 비록 나는 못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기에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차에 마침 합본으로 된 청소년용 책이 나왔단다. 이럴 때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고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가운 책이다.

  이현, 이미 여러 책들을 통해 만났던 만큼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그동안의 작품은 약간의 환상성은 있을지언정 주로 현실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던 반면 이 작품은 완전한 판타지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이현이라는 작가는 톡톡 튀는 글을 판타지에 어떻게 적용할까 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IT 관련 쪽에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작품에 몰입을 잘 못하는 편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글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개의 SF 소설이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비슷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그다지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는 원인도 있다. 미래는 디스토피아이며 돈과 권력에 의해 신분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사회라는 공통된 점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점이 그간 보았던 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거의 사람과 똑같은, 아니 어쩌면 몸이 자라지 않을 뿐이지 감정도 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저장된 정보를 꺼낼 수 있으며 시각 청각 등 모든 면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로봇인 나로와 아라, 네다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셋이 똑같이 만들어져서 출하되었지만 나중에 만났을 때는 각자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비록 셋이 로봇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어느 정도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로의 경우 인간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다는 로봇의 원칙 때문에 바이러스를 심지만 네다의 경우는 바이러스를 심지 않아도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만 보아도 이미 네다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디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베타인이면서도 로봇이나 델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횃불들처럼 말이다. 백곰 할아버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신은 현재 그 상태로도 많은 권력을 누리고 아쉬움 없이 살 수 있지만 자기보다 못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욕심을 대표하는 인물이 피에르 회장이었다면 로봇의 욕심을 대표하는 인물은 노란 잠수함이다. 아무리 슈퍼 컴퓨터라도 자신을 자각하고 다른 컴퓨터를 조종한다는 설정이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인공지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아는 게 병이다.) 대개의 SF에서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이나 로봇이나 누구든 완전한 평등이란 그야말로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읽었던 다른 SF소설이나 영화가 모두 오버랩되었다. 나로와 아라, 네다는 겉모습이 인간과 똑같다니 피부에 상처가 나면 그 안에 있는 기계들이 드러나는 <터미네이터>가 생각나고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아이 로봇>이 생각난다. 자신을 절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로봇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애쓰는 인간 형사의 모습에서는 백곰 할아버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여하튼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적으로 로봇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과 미래를 들려준다. 그래서 인간이 조종하는 로봇의 삶을 살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는 로봇들의 미래가 불안하지만 희망을 품게 한다. 그래, 언제 어디나 희망은 있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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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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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노래하는 책은 잘 안 읽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또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도 못 되기에(하긴 한창 사랑을 시작하는 풋풋한 시기에 읽었다면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책은 고전이니까, 한번 정도는 읽어둬야 한다는 의무감에 읽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참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고 해서 자살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젊은 시절, 이 책을 안 읽었기에 만약 그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편지 형식의 소설이라 베르테르가 들려주는 이야기 외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나중에 답답하리라 생각했는데 괴테도 그것을 염두에 뒀던지 나중에 편저자가 등장해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이야 워낙 다양한 형태의 소설이 많아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 이런 형식의 소설은 파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괴테의 첫 번째 소설이라니. 아마 경험에서 나온 소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 사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라 그다지 마음을 끌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감수성이 예민한 베르테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방식이라던가 고뇌에 차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방황하는 모습이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맞아, 나도 그 때는 그랬었지하며 말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툭 하면 자신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질풍노도 문학이라는 장르가 있단다. 계몽주의적인 분위기에 반대해서 나왔다는데 이 책도 실러와 클링거의 작품과 함께 대표작에 속한다고 한다. 대신 이런 풍조는 젊은이들이 중심이어서 사회적인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생명력이 길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뒷부분에 잘 나와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작품을 작품으로서만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지만 나처럼 문학적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는-매번 느끼는 것이지만-그러한 정보가 상당히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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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할라 - 누가 이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앤디 멀리건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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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암동 하늘공원에 가면 그곳의 예전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사진과 쓰레기 산(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만치 쓰레기가 쌓여있다.) 주변으로 천막이 늘어서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진들. 그랬던 곳이 지금은 하늘공원이라는 예쁜 이름과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져서 사람들이 산책하러 간다. 물론 그 밑에서는 쓰레기가 썩고 있어서 매년 조금씩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하늘공원이 생각났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하늘공원이기 전에 난지도의 쓰레기 산이 생각났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그곳에서도 살아지는 게 사람이다. 우리나라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기에 그러한 모습이 전혀 낯설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베할라의 사람들이 안됐고 불쌍하게 여겨질 뿐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는 슬프다. 그래서 때로는 그러한 이야기를 선뜻 집어들지 않게 된다.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이 책도 분명 그런 마음이 들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다른 때 같으면 나중으로 미뤘을 책이건만 <빌리 엘리어트>의 연출자가 영화화한다는 글귀를 보고 혹 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뒷표지의 글귀가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쓰레기 하치장에 사는 라파엘과 가르도는 우연히 가방을 줍는다. 헌데 그 가방안에는 꽤 많은 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열쇠와 지도가 들어 있다. 마치 보물섬을 찾는 듯한 분위기다. 만약 경찰이 가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지 않았다면 라파엘과 가르도는 돈만 챙겼을 것이고 당연히 그 다음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헌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가방을 찾기 위해 베할라의 쓰레기를 샅샅이 뒤지자 라파엘은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라파엘과 가르도는 수녀님과 래트의 도움으로 열쇠의 비밀을 찾고 덩달아 상당히 많은 돈을 손에 넣지만 셋이 쓸 만큼만 챙기고 나머지는 죽은 자의 유언에 따라 그 돈을 여러 사람이 나눠갖는 방법을 선택한다. 마치 뤼팽이나 임꺽정처럼 아주 극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세 아이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처음 이런 책을 읽으며 가졌던 걱정이 해결된 셈이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 처음에는 헷갈렸다. 그냥 별 생각없이 한 명의 서술자가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조금 지나자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서 보니 서술자가 달라져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한 명에게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는 대신 다양한 시선에서 사건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하튼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잘 해결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삶 덕분에 초조하고 움츠러들지 않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저자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조건을 충족했다고나 할까. 다만 진짜 현실에서도 이처럼 낙관적인 일이 자주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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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2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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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조지 오웰의 작품을 차근차근 읽고 있다. 아무래도 혼자 마음 먹고 읽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당장 읽어야 할 책을 먼저 읽게 된다. 그래서 여럿이 읽을 기회가 생기자 얼른 동참했다. 그때는 일단 <1984> 먼저 읽고 다음에 <동물 농장>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을 읽으며 문득 어떤 그림책이 스쳐 지나간다. <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라는 책으로 모든 일을 오리에게 맡기고 농장 주인은 일을 하나도 안 하자 주위의 동물들이 회의를 거쳐 주인을 몰아낸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책에서 오리는 주인에게 반기를 들지 않고 동료들이 주인을 몰아내는지조차 모르며 주인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장면도 없다. 혹시 작가가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 아닐까. 어차피 창조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유에서 변형시키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그림책 이야기는 그만해야겠다.

  여기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 모습이 나온다. 또한 구체적으로 누군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동물들이 처음에는 대의를 가지고 장원농장의 주인인 존스를 몰아내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존스를 대신할 누군가가 있다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만인이 평등한 나라라고 해도 그 나라를 누군가가 다스려야 하고, 그러려면 계급이 생기게 마련이다. 처음 마르크스의 이론에 입각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정말로 모두 평등하고 다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란 마약과 같다고도 하지 않던가. 한 번 맛을 들이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것.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이미 그 권력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서로 자기가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이전 존스보다 더한 착취와 노동을 강요한다.

  책을 읽다 보면 대충 누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어떤 사건 혹은 어떤 종류의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연상시킨다. 벤저민은 아는 게 많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회의주의자를, 클로버는 교육 받은 무기력한 중산층을 의미하는 듯하다. 역사에는 언제나 강온이 대립되어 나타난다. 큰일을 치를 때는 힘을 합치지만 막상 목적을 이루고 나면 노선이 갈라지곤 한다.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다 어느 한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기본적인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비록 구소련을 풍자하는 이 책을 여전히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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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꿈 - 14세에 남장하고 금강산 오른 김금원 이야기 진경문고
홍경의 지음, 김진이 그림 / 보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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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림 출판사의 진경문고 시리즈를 좋아한다. 주위 사람들이 이 시리즈 책 중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무척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그랬고.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왼쪽 상단에 찍혀 있는 '진경문고'라는 글자가 마냥 반갑기만 했던 이유다.

  신분제가 엄격하고 남녀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여자의 몸으로 금강산을 다녀온 김금원에 대한 이야기란다. 김금원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긴 주류 역사에서 벗어난 인물이니 모를 수밖에. 남자라도 서얼 출신이라면 제약이 많았던 시절, 어머니가 기생인지라 금원은 소실의 자식인데다 여자였으니 최악의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금원도 어머니를 좇아 관기로 등록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금강산을 다녀오고 여러 곳을 유람하면서 내면적으로 많이 성숙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여자가 금강산을 다녀올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여자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금원의 부모님은 극구 말렸던 것이고. 하지만 워낙 뜻이 강하고 당찬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자의 몸으로서는 불가능하니 방법은 하나다. 바로 남장을 하는 것. 만약 금원의 부모님이 무척 고지식하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면 딸이 간절히 원하더라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금원의 부모도 어느 정도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교우하며 시를 짓는 모임을 만들었다니 비록 신분 제한 때문에 마음 고생은 심했을지 몰라도 한때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모 기각과 시를 주고 받으며 위안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본문 곳곳에 여러 사람의 시가 나오는데 워낙 고전과는 거리가 먼데다 시와도 친하지 않아서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특히 한자로 된 시가 있는데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사실을 나열한 듯한 문장이라 <책만 보는 바보>와 같은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뭐랄까, 그냥 김금원의 행동을 따라다닐 뿐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섬세한 묘사는 없었다고나 할까. 김금원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뿌듯했지만 책을 덮고 나서 여운이 남지는 않았다. 그 점이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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