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우드 클리닉 아이들 마음이 자라는 나무 30
테레사 토튼 지음, 김충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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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고등학생 학부모, 심지어 대학생을 둔 학부모를 보며 부럽다고 하자 차라리 어렸을 때가 훨씬 마음 편한 것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당시는 설마했는데, 이제 우리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보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들이 나보고 다 키워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예전에 내가 들었던 그 말을 하면서 거기다 한마디 덧붙인다. 고민의 깊이와 무게가 다르다고.

 

  이런저런 일도 많았고 중요한 결정을 할 일이 많아서 유난히 정신없었던 방학을 보내고 나자 남편이 그런다. 만약 우리가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살까라고. 글쎄, 아이가 없다면 고민의 종류가 달라졌거나 양이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남편이나 나나 동의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도 성장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 키우면서 사람 됐다고.

 

  흔히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이야기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마음이야 안 그렇겠지만 어쨌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말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 책의 대니의 아빠도 그런 사람이 아닐런지. 아니 어쩌면 대니의 아빠는 적어도 자식이 잘 하길 바라는 욕심이라도 있지, 스크래치의 엄마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자신의 딸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을 남편으로 계속 인정하며 살 수 있을까. 게다가 스크래치가 정신병원에서 없어지자 소송을 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새아빠의 행동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의 행동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동생인 켈리에게 집착하는 대니나, 켈리 이야기만 나오면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케빈과 스크래치를 보며 켈리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동생의 죽음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아니 직접적인 관련은 없더라도 자신이 받았던 관심을 동생이 받을까봐 동생을 시기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대니는 점점 더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한다.(이처럼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청소년 소설에는 꽤 있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다가 결국 엄마의 무덤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두 개의 달 위를 걷다>와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이름은 망고>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들은 주인공이 방황하는 이유가 죽음인데 반해 <리버우드 클리닉 아이들>에서 죽음은 하나의 단서일 뿐이다.) 켈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혹시 아빠가 학대했던 것도 대니의 상상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했으나(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으나) 그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더 착잡했다. 간혹 밖에서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사람이지만 가족에게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은 나름대로 자기치유 능력을 갖고 있어서인지 대니는 엄마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스크래치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다. 이름을 되찾는 게 별 것 아닌 일 같지만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니까. 케빈은, 남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부모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성 정체성을 병인 것처럼 취급하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이 서로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거나 다른 고민이지만 힘들어 하는 현실의 청소년들도 이처럼 자신의 길을 찾게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수상이력을 줄줄이 달고 있는 책 뒤표지를 보며 처음에는 의미에 초점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원래 현실고발적인 작품이나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는 작품이 호응을 얻곤 하니까. 그러나 문학에 대해 잘 모르므로 작품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을 잡고 한번에 읽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재미 또한 갖추고 있지 않았나 싶다. 재미와 의미를 갖춘 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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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교과서, 세상에 딴지 걸다 생각이 자라는 나무 23
이완배 지음, 풀무지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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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이 경제와 관련되어 있지만 정작 '경제'라는 말에는 겁부터 먹는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애쓰지만 유독 경제 관련 분야는 선뜻 집어들지 않게 된다. 경제를 사회적으로 접근한 것에는 관심이 있지만 순수한 경제에는 관심이 없다고나 할까. 그래서 일단 경제 분야의 책이라고 하면 걱정을 하며 보게 된다. 아니, 머리 아프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아주 쉽다. 물론 청소년을 대상으로 경제의 기본 개념부터 설명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 얼른 읽고 경제 관련 책(이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경제는 잘 모르겠단다.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봐.

 

  어떤 아이는 6학년인데도 연산이 원활하지 않아 선생님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교 주변의 PC방에서 게임하는 것과 좀 더 번화가로 나가서 게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인지 알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거기까지 가려면 차비가 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차비를 빼고도 이득이기 때문에 거기로 간단다. 만약 그것을 수학 문제로 냈다면 그 아이가 과연 풀 수 있었을까. 내가 보기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듯 거창하게 경제라고 이름 붙여서 그렇지 우리의 삶 자체가 경제생활이다. 경제는 몰라도 경제생활은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도 그들의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서 설명하면 쉽겠네,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고 미국발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경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여러 용어들에 익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니 수정자본주의니 하며 케인즈주의자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도 듣는다. 선거철만 돌아오면 나오는 재벌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 알고 보면 이처럼 주변 곳곳에서 경제를 만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문으로 접근하려면 일단 겁부터 먹는 게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그렇다. 경제생활은 하고 있되 경제에 겁먹는 청소년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일단 쉽고 재미있어서 책장이 잘 넘어간다. 둘째에게도 얼른, 아니 꼭 읽으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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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3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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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추리소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야말로 그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탐정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중요한 조사까지 마친 그 명석함이 부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보다는 설명하지 못할 어떤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 보면 그와는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홈즈 시리즈를 읽으며 느꼈던 어떤 감정이 오늘 문득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너무 어렴풋해서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요즘에도 추리소설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인간의 본능에 그런 코드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의 추리소설은 읽어보질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으나 셜록 홈즈나 포와로 시대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며 독자가 도저히 범인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예전의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무언가 거리감이 있을 법도 하다. 기계화가 되어서 인간미가 줄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고기왕의 아빠처럼, 아니 작가처럼 나도 한때 추리소설을 엄청 좋아해서 탐정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은 없기에(초등학생인데도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신 형사가 될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물론 형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철없던 시절의 일이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책의 대부분은 추리소설이었으며 같은 반 친구네 홈즈 시리즈 책이 있다기에 빌려보기도 했다. 그 친구가 중간에 전학가는 바람에 많이 읽지 못했지만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얼굴의 형태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딸에게 엄마는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람을 기억 못하는 내게 이건 아주 대단한 일이다.)하고 있는 걸 보면 추리소설의 영향이 컸나 보다.

 

  고기왕과 아빠인 고명달이 사는 모습을 보니 참 재미있게 산다. 대신 주변사람은 속터져 죽겠지만. 엄마가 외국으로 파견근무를 나가자마자 집을 옮기고 카페 겸 탐정 사무소를 내고 사는 두 남자라니. 이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정말 이런 남자가 있으면 한숨밖에 안 나오겠다. 매월 세금 낼 거 걱정하고 어쩌다 들어오는 수입으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참 잘 지내고 있다. 도저히 우리 둘째와 비슷한 또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자랐다. 이런 아들이라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겠다. 그런데 그런 기왕이도 초등학교 때 커다란 시련을 겪었고, 다행히 잘 견뎌냈기에 오유리의 아픔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기왕이에게는 비록 아들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을까 의심이 되긴 하지만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아빠가 있었고 옆에서 묵묵히 함께 있어준 든든한 친구가 있었기에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유리는 그런 가족과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 다르다. 어쩌면 유리의 언니를 등장시켜 가족의 모습을 대비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런지.

 

  한 소녀가 친구들 문제 때문에 자살을 하자 기왕이가 주변 인물을 탐색해가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요즘 청소년들의 시니컬한 면 속에 감춰진 연약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자살이라는 큰 사건을 그냥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다룬 듯해 불편했다. 꼭 무겁고 어둡게 다룰 필요는 없지만 그야말로 '탐정놀이'의 소재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사실 기왕이처럼 주변 인물을 직접 탐색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지만.

 

  짧은 문장과 다음 수를 먼저 읽는 듯한 대화 덕분에 300여 페이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처럼 톡톡 튀는 듯한 글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묘사가 많은 글은 지루하다는 소릴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런 문장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쉽게 읽고 쉽게 잊어버리는 책보다는 잔잔한 내용이라 읽을 때는 조금 힘들더라도 읽고 나서 여운이 많이 남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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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 선생 죽이기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0
로이스 던칸 지음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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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책을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리뷰를 쓰기가 겁나는 경우가 있다. 무슨 말이든 하긴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한 책, 그런 책을 만나면 리뷰를 최대한 미루다 다른 책으로 감정이 조금 상쇄된 뒤에 쓰곤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을 이야기하는 책은 먹먹함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쓰는데 이 책은 피하고 싶기만 하다. 물론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숨가쁘게 읽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건이 어떻게 될까하는 호기심 때문이지 내용을 마음에 두고 싶어서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 입장에서 묘사하는 그리핀 선생님은 정말이지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학생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인간적인 교류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나라도 정이 안 가겠다. 한 마디로 아이들이 시각에서 본 그리핀 선생님은 진정한 선생님으로서의 자격미달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비호감 선생님이다. 그러나 그리핀의 일상을 보여주는 부분을 읽으면 그리핀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상당히 괜찮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솔직히 지나치게 사건을 과장하고 비약한 면 때문에 리뷰를 쓰기가 거북했다. 어떻게 아이들이 선생님을 죽일 생각을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장난처럼 납치를 하고 겁만 주려 했을 뿐 진짜로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마크나 벳시, 제프, 데이비드의 행동을 보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아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악마를 보았'다고나 할까. 문제는 그러한 면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는 점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이성으로 누르고 끄집어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일 뿐 아닐까.

 

  통상적으로 이처럼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가정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잔이나 데이비드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친구들에게 인기는 별로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재능도 있는 수잔이나, 훤칠하고 모범적이며 집에서는 다정다감한 아들이자 손자인 데이비드에게서 문제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잘못된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들의 잘못이라면 마크를 만났고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중간중간 잘못을 뉘우치거나 되돌리고 싶어하는 반면 마크는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를 하려고 한다. 그것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란다. 게다가 하나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사건을 저지르는 모습에 경악한 수잔의 용기로 그나마 더 이상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수잔이나 데이비드 같은 아이가 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상황이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이었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며, 혹은 읽고 나서 안타까웠던 이유 중 하나다.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에게 남겨진 상처가 너무 엄청나서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적어도 현실에서는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 위안해 본다. 자살을 다루는 책은 봤어도 진짜 살인을 다루는 책이라니…….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해도 실은 충격적이었다. 어른인 나도 이런데 과연 청소년 독자의 반응은 어떨까. 딸이 이젠 소설보다는 고전을 읽겠다고 하니 이야기 나눌 상대가 사라져서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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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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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친밀하고 서로 의지가 되어야 할 사이인 형제자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바람일 뿐, 정작 본인들은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한다. 나와 동생들도 그랬던가? 글쎄, 나는 다른 형제들과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사정상 그럴 필요가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은 어떨까. 둘째가 누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누나가 없었으면 심심할 뻔했다거나 동생이 있어 다행이라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은가 보다. 어렸을 때는 심하게 싸우더라도 점점 자라면 서로 의지하는 게 형제 아닐까. 이 책에서처럼 그토록 싸우고 상처가 깊은 경우는 소설 속에서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작가가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고, 간혹 아이들이 형이 맨날 때려서 괴롭다고 이야기하던 중학생을 떠올리면 주변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일 같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간의 갈등이 의외로 많은가 보다. 명절이나 큰 일이 있을 때 만나면 꼭 싸움이 일어나는 형제들을 보면 모르긴 해도 내재된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그만 이유로도 감정이 격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어른이 되어 서로 독립했어도 어렸을 때의 풀리지 않은 문제 때문에 서로 울고불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면 응어리진 것이 풀려서인지 그 후로는 좀 더 친해진다고 한다. 강민과 강수가 서로의 속마음을 드러낸 후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처가 될 만한 것은 감추려고 하나 보다. 그러나 그렇게 감추면 감출수록 무의식에서 자리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꼭 나오고 만다. 예전의 그 크기 그대로 나오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훨씬 커져서 나오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여파를 몰고 온다. 만약 강민이와 강수가 아빠와 함께 조금이라도 대화를 했더라면 그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미나도 진작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했더라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나 또한 여기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표현하는 건 서툴지만 적어도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알기 때문에 무조건 남 탓(남편 탓은 종종 하지만)을 하거나 다른 감정에 속지는 않는다. 이러기까지 의사소통 수업을 받고 그와 관련된 책도 읽고 생각도 많이 했더랬다. 즉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책을 읽으며 강민이 아빠가 처음에는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상담을 받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이 시대의 보통 남자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 특히 남자들은 그런 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거나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데 강민이 아빠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우리도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를 키운 지 6년이 되어 간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난리 친 집안을 정리하는 일은 둘째의 몫이다. 그래서 가끔 강아지가 밉다고 때리거나 면박을 준다. 특히 가끔 볼 일을 엉뚱한 곳이나 책에 보기도 하고 베란다의 화초들을 초토화시키면 방으로 슬그머니 데리고 간다. 그러다가 금새 강아지를 안고 돌아다닌다. 아마 화 내고 때린 것이 미안해서일 게다. 식구들이 집에 돌아오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누가 둘째를 건드리기만 해도 으르렁대며 난리를 친다. 강민이네 찡코처럼. 남편은 강아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강아지 얘기를 종종 한다. 마치 강민이 아버지가 찡코를 챙기지 않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처럼. 하물며 강아지에게도 이처럼 정이 들어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는데 자식은 오죽할까. 이처럼 어느 순간 강민이 아버지에 나를 이입해서 읽고 있다. 자식이 못된 일을 저질러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닐런지.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하는 건데 방법이 잘못 되다 보니 서로 오해가 생겨서 결국 가족끼리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다.

 

  강민이가 찡코를 죽였다고 했을 때, 이건 소설이니까 이처럼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지 실제 일이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생명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동물이라도 동물을 죽였는데 그런 걸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의문은 나중에 풀렸다. 그럼 그렇지. 최미나씨의 경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니까 그런 설정을 해도 괜찮지만 청소년인 강민이가 그러기엔 아직 우리네 인식이 그리 포용적이지 않은가 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는 나조차 마음이 찜찜했으니. 여하튼 찡코가 돌아오고 강민이네 가족이 폭력의 고리로부터 벗어나고 미나씨도 오빠와의 응어리를 풀 것임을 암시해서 책을 덮을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다만 우리네 책에서는 왜 항상 무거운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무거운 주제라도 위트있고 담담하게 풀어갈 수는 없는지, 결국 해결해 주는 건 왜 어른들이어야 하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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