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3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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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추리소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야말로 그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탐정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중요한 조사까지 마친 그 명석함이 부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보다는 설명하지 못할 어떤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 보면 그와는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홈즈 시리즈를 읽으며 느꼈던 어떤 감정이 오늘 문득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너무 어렴풋해서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요즘에도 추리소설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인간의 본능에 그런 코드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의 추리소설은 읽어보질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으나 셜록 홈즈나 포와로 시대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며 독자가 도저히 범인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예전의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무언가 거리감이 있을 법도 하다. 기계화가 되어서 인간미가 줄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고기왕의 아빠처럼, 아니 작가처럼 나도 한때 추리소설을 엄청 좋아해서 탐정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은 없기에(초등학생인데도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신 형사가 될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물론 형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철없던 시절의 일이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책의 대부분은 추리소설이었으며 같은 반 친구네 홈즈 시리즈 책이 있다기에 빌려보기도 했다. 그 친구가 중간에 전학가는 바람에 많이 읽지 못했지만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얼굴의 형태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딸에게 엄마는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람을 기억 못하는 내게 이건 아주 대단한 일이다.)하고 있는 걸 보면 추리소설의 영향이 컸나 보다.

 

  고기왕과 아빠인 고명달이 사는 모습을 보니 참 재미있게 산다. 대신 주변사람은 속터져 죽겠지만. 엄마가 외국으로 파견근무를 나가자마자 집을 옮기고 카페 겸 탐정 사무소를 내고 사는 두 남자라니. 이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정말 이런 남자가 있으면 한숨밖에 안 나오겠다. 매월 세금 낼 거 걱정하고 어쩌다 들어오는 수입으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참 잘 지내고 있다. 도저히 우리 둘째와 비슷한 또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자랐다. 이런 아들이라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겠다. 그런데 그런 기왕이도 초등학교 때 커다란 시련을 겪었고, 다행히 잘 견뎌냈기에 오유리의 아픔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기왕이에게는 비록 아들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을까 의심이 되긴 하지만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아빠가 있었고 옆에서 묵묵히 함께 있어준 든든한 친구가 있었기에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유리는 그런 가족과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 다르다. 어쩌면 유리의 언니를 등장시켜 가족의 모습을 대비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런지.

 

  한 소녀가 친구들 문제 때문에 자살을 하자 기왕이가 주변 인물을 탐색해가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요즘 청소년들의 시니컬한 면 속에 감춰진 연약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자살이라는 큰 사건을 그냥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다룬 듯해 불편했다. 꼭 무겁고 어둡게 다룰 필요는 없지만 그야말로 '탐정놀이'의 소재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사실 기왕이처럼 주변 인물을 직접 탐색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지만.

 

  짧은 문장과 다음 수를 먼저 읽는 듯한 대화 덕분에 300여 페이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처럼 톡톡 튀는 듯한 글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묘사가 많은 글은 지루하다는 소릴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런 문장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쉽게 읽고 쉽게 잊어버리는 책보다는 잔잔한 내용이라 읽을 때는 조금 힘들더라도 읽고 나서 여운이 많이 남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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