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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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친밀하고 서로 의지가 되어야 할 사이인 형제자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바람일 뿐, 정작 본인들은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한다. 나와 동생들도 그랬던가? 글쎄, 나는 다른 형제들과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사정상 그럴 필요가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은 어떨까. 둘째가 누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누나가 없었으면 심심할 뻔했다거나 동생이 있어 다행이라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은가 보다. 어렸을 때는 심하게 싸우더라도 점점 자라면 서로 의지하는 게 형제 아닐까. 이 책에서처럼 그토록 싸우고 상처가 깊은 경우는 소설 속에서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작가가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고, 간혹 아이들이 형이 맨날 때려서 괴롭다고 이야기하던 중학생을 떠올리면 주변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일 같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간의 갈등이 의외로 많은가 보다. 명절이나 큰 일이 있을 때 만나면 꼭 싸움이 일어나는 형제들을 보면 모르긴 해도 내재된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그만 이유로도 감정이 격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어른이 되어 서로 독립했어도 어렸을 때의 풀리지 않은 문제 때문에 서로 울고불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면 응어리진 것이 풀려서인지 그 후로는 좀 더 친해진다고 한다. 강민과 강수가 서로의 속마음을 드러낸 후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처가 될 만한 것은 감추려고 하나 보다. 그러나 그렇게 감추면 감출수록 무의식에서 자리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꼭 나오고 만다. 예전의 그 크기 그대로 나오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훨씬 커져서 나오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여파를 몰고 온다. 만약 강민이와 강수가 아빠와 함께 조금이라도 대화를 했더라면 그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미나도 진작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했더라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나 또한 여기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표현하는 건 서툴지만 적어도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알기 때문에 무조건 남 탓(남편 탓은 종종 하지만)을 하거나 다른 감정에 속지는 않는다. 이러기까지 의사소통 수업을 받고 그와 관련된 책도 읽고 생각도 많이 했더랬다. 즉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책을 읽으며 강민이 아빠가 처음에는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상담을 받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이 시대의 보통 남자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 특히 남자들은 그런 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거나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데 강민이 아빠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우리도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를 키운 지 6년이 되어 간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난리 친 집안을 정리하는 일은 둘째의 몫이다. 그래서 가끔 강아지가 밉다고 때리거나 면박을 준다. 특히 가끔 볼 일을 엉뚱한 곳이나 책에 보기도 하고 베란다의 화초들을 초토화시키면 방으로 슬그머니 데리고 간다. 그러다가 금새 강아지를 안고 돌아다닌다. 아마 화 내고 때린 것이 미안해서일 게다. 식구들이 집에 돌아오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누가 둘째를 건드리기만 해도 으르렁대며 난리를 친다. 강민이네 찡코처럼. 남편은 강아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강아지 얘기를 종종 한다. 마치 강민이 아버지가 찡코를 챙기지 않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처럼. 하물며 강아지에게도 이처럼 정이 들어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는데 자식은 오죽할까. 이처럼 어느 순간 강민이 아버지에 나를 이입해서 읽고 있다. 자식이 못된 일을 저질러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닐런지.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하는 건데 방법이 잘못 되다 보니 서로 오해가 생겨서 결국 가족끼리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다.

 

  강민이가 찡코를 죽였다고 했을 때, 이건 소설이니까 이처럼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지 실제 일이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생명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동물이라도 동물을 죽였는데 그런 걸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의문은 나중에 풀렸다. 그럼 그렇지. 최미나씨의 경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니까 그런 설정을 해도 괜찮지만 청소년인 강민이가 그러기엔 아직 우리네 인식이 그리 포용적이지 않은가 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는 나조차 마음이 찜찜했으니. 여하튼 찡코가 돌아오고 강민이네 가족이 폭력의 고리로부터 벗어나고 미나씨도 오빠와의 응어리를 풀 것임을 암시해서 책을 덮을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다만 우리네 책에서는 왜 항상 무거운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무거운 주제라도 위트있고 담담하게 풀어갈 수는 없는지, 결국 해결해 주는 건 왜 어른들이어야 하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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