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모방의 천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햄릿>은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온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 인’이라는 이탈리아 작품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갖고 쓴 것이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옛 것’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한 작품이 오히려 그 ‘옛 것’을 뛰어넘어 탁월한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가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에서만 ‘모방’이 필요한 것일까.




1.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
 

 



 

최근 출간된 책으로,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이다. 저자는 천재들과 훌륭한 기업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새롭게 발전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책은 혁신과 창조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번뜩 떠오른다는 데 반기를 든다. ‘바로잉(빌려오기)’의 의미처럼, 저자인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이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없다”며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를 제안한다. 또 ‘남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행위’는 지적인 절도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 기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구글 가이즈뿐 아니라 아이작 뉴턴, 조지 루카스 등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한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알라딘, 책소개)


바로잉이란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빌려오기(또는 모방)를 통한 창의성을 강조함으로써 누구든지 학습하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주장하는 책이다. 여기서 저자가 제안한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란 남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해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1) 문제를 정의하라 2) 빌려라 3) 결합하라 4) 숙성시켜라 5) 판단하라 6) 끌어올려라 등을 말하고 있다.




여태까지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창의성이 넘치는 몇몇은 남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거나 표절했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았다. 아이작 뉴턴이 그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과 도둑질이 종이 한 장 차이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 35쪽.





새로운 독창성은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을 도둑질해서 태어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다. 이 책 속에서 발견한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창의성의 비밀은 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앨버트 아인슈타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려면 아이디어를 도둑질할 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단순히 모방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뛰어넘는 재창조를 함으로써 빼어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말한 셰익스피어처럼.



2.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


내가 읽은 유명한 저술에는 유난히 ‘인용문’이 많았다.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그랬고,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도 그랬다. 이렇게 저술에 인용문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유명한 저술가들조차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저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은 곧 기존의 낡은 저술을 학습해야만 뛰어난 새로운 저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바로잉>의 저자가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면, 나는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다.


‘인용문’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은 의외로 많았다. 그 중에서 다음의 세 권을 뽑아 정리해 보았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저자는 근대인에게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에 연구를 집중하여, 근대인을 속박으로부터 구했던 ‘자유’가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는 한편 고립과 무기력도 동시에 가져왔음을 지적하고, 결국 자유가 주는 부정적 측면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 비록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전체주의의 심리적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자유’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찰할 기회를 갖게 한다. 
 


129쪽 : 개인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자유롭다고 느낀다. 즉, 그는 혼자 떨어져 있으며, 낯설고 적의에 찬 세계와 대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불쌍한 동물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양도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고자 하는 강한 염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뛰어난 서술을 인용해 본다.


189쪽 : 히틀러는 오직 평화와 자유만을 바라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합리화의 첫 번째 예는 <나의 투쟁>의 ‘만약 독일 국민이 역사적 발전에서 다른 나라 국민이 향수한 것과 같은 집단적 통일을 가지고 있었다면, 독일제국은 아마도 오늘날 이 지구상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히틀러, 휴즈, 샤피로, 루터, 칼뱅, 그린, 발자크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가장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리보다는 오히려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밝혔듯이, 사물을 보는 그의 개성적 견해를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정열’로 보고, “사상교육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정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 유머감을 중요시하며, 중국인의 한적한 생활을 예찬한다. 그의 사고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어떻게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150쪽~151쪽 : 노자가 거의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맹자와 장자는 다음에서 일치하고 있다. 즉, 인간은 무언가 중대한 것을 잃고 있으며, 철학의 임무는 그 잃은 것, 여기서는 맹자의 이른바 ‘적자지심’(赤子之心, 죄악에 물들지 아니한 깨끗한 마음)을 발견하여 그것을 되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뛰어난 현인이란 그 적자지심을 잃지 않는 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문명의 기교적 생활이 인간의 나면서부터의 생생한 마음에 주는 영향을 산림의 남벌(濫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52쪽 : 장조(張潮)의 말처럼, “정이 있는 사람은 늘 이성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성을 사랑하는 자가 늘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정은 인간세계의 밑바닥을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 재(才)는 그 지붕을 채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맹자, 장자, 노자, 장조, 도연명, 김성탄, 월트 휘트먼, 소로우, 플라톤, 퍼거슨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세속적인 성공만을 위해 바쁘게 사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소로우는 실제로 문명을 등지고 월든 호숫가에서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했는데, 그 생활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203쪽~204쪽 : 다음 시는 어떤 방문객이 명함 대신 노란 호두나무 잎에 적어 놓고 간 스펜서의 시이다. 이것을 내 오두막의 표어로 자랑스럽게 내걸 수도 있겠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오두막을 가득 채웠으나

도락이 원래 없는 곳이니 도락을 찾지 않는다.

휴식이 그들의 만찬이며 모든 것이 뜻대로이다.

가장 고귀한 정신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359쪽 : 저술가 길핀은 영국의 숲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숲을 무단출입하거나, 개인의 주택이나 울타리가 숲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옛 삼림법에서는 중대한 불법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행위는 새와 짐승을 놀라게 하고 삼림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불법 삼림 침해라는 죄명으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이 책은 스펜서, 길핀, 공자, 맹자, 사아디, 이블린, 카토, 초서, 커비와 스펜스, 오비디우스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3. 결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학문에서든, 예술에서든, 기업에서든 기존의 것을 단순하게 모방만 하면 '표절'이 되지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들을 결합하고 재배열하고 숙성시켜 새로움을 낳는 재창조를 할 때 ‘창조’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모방’에 관한 명언을 옮겨 둔다.


“모든 것에 관련되는 세 가지 기술은 이용하고, 만들고, 모방하는 것이다.”(플라톤)


“모방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창조를 위해 필수적인 예비 작업이다.”(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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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3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올린 글을 포함해서, 마이리뷰 17편, 마이페이퍼 82편을 올린 것이니 그동안 총 99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에 한 편만 더 올리면 100편이 됩니다. 제가 저를 자랑스러워해도 되나요? 물론 다른 유능한 블로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로선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글을 올리고 나면 쑥스럽고 자신없고 그렇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대충 이런 문장인 듯)이라는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자랑스럽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부끄러운 일기장 같은 것을 용기 있게 공개하는 일이므로... 그것도 자신 없어 하면서... 앞으로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런데, 왜 쓰느냐구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

그럼 다음에 100번째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200편, 300편의 글이 쌓이길 희망하면서...

stella.K 2011-08-31 13:05   좋아요 0 | URL
오, 축하합니다.
사실 이날까지 블로그질 하면서 왜 쑥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도 중요한 건 성실하게, 진실하게가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정말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죠?
앞으로 계속 좋은 글 써 주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1-08-31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글을 꽤 많이 쓰시던데, 직장생활하시면서도(글 보니깐)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직장 다닐 때 휴일이면 무조건 쉬어야 했는데... 베개가 푹 들어갈 정도로 잠을 자곤 했는데... (잠시 배게인지, 베게인지, 헷갈렸음ㅋ)

stella.K 2011-08-31 19:56   좋아요 0 | URL
헉, 저 직장 안 다니는데요...ㅠ
그러니까 이만큼 쓸 수도 있는 거죠.
안 그랬다면 이렇게 쓰기 어려울 걸요?
단지 봄부터 조그만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그만 무기한 연기가 되서 놀고 있습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지 않나요? 그러면 연락주세요.ㅋㅋ

페크pek0501 2011-09-01 00:4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쓴 이 글 때문임- “어제는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는데” - 이걸 읽고 퇴근하는 것으로 보니 직장 다니시는군, 했어요. 아, 나의 실수!‘퇴근’이라는 말에 그만...

일손이요? ㅋ 저는 논술선생질을 10년간 해서(작년까지요) 요즘처럼 노는 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몰라요. 경제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렇게 블로거질이나 하면서 살고 싶은 걸요. 그런데 내년부턴(아마도) 일을 갖게 될 것 같아요. 놀려니깐 친정엄마, 시어머님 눈치가 보여요. 왜 돈 벌 수 있는데, 안 버느냐고 하시는 것만 같아서. 다행히 학생들 독서글쓰기 강의를 주겠다는 곳이 있어요.^^^

신지 2011-09-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공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그저 박수만 치고 있습;; ^^ 그런데 pek님도 자신 없으시다니 저는 좀 용기가 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ㅡ 저는 글은 고사하고 댓글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
이건 (바로잉이라는 책과는) 좀 다른 얘긴데, 저는 책 중에서 '인용문'이 많은 책을 특히 선호하는 편이어서 이 글이 반갑습니다. (반면 가장 싫은 책은 여백이 많고 글씨가 큰 책). 특히 사회과학 쪽에서는 국내 저자들의 문장력이 대개는 일반인 블러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불만입니다. 두번째 불만은 저는 저자들이 좀 자신이 아는 것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말을 함부로 전하는' 책들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인용을 하지 않고 저자가 남의 말을 전하는 책은 대부분 왜곡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 사람들의 책은 마치 논술교재 같습니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철학자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이 말합니다. ^^
뭐랄까 다양한 인용문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책을 사는 데 있어 가장 뿌듯함을 주는 목적이랄까요. 인용문은 대체로 핵심적이고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또 인용문이 많다는 것은 저자가 독서가이거나 전공자일 확률이 높아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명언을 모은 책이나 잠언 책은 곧바로 반품하는데, 좋은 말이나 문장도 어떤 글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만 공감이 되더군요. 너무 당연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가령 저는 강준만의 책도 그런 면이 오히려 좋습니다만. 전에 보니까 바로 그점(인용문이 많다.) 때문에 싫다는 분도 많이 계시더군요.

어떤 사람이 인용한 문장은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왜 저 말을 인용했을까? 저 문장이 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좋은 걸까?
그리고 인용한 문장이 (나도) 좋을 때, 또 글에 적절한 인용일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글에서 글쓴이가 인용하는 문장은 글쓴이를 나타내주는 표현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이번엔 어떤 책일지, 어떤 인용문이 있을지, pek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그점도 매번 흥미롭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다락방님도 그런 페이퍼를 많이 쓰십니다.) 취향이 그러므로 꼭 아는 분이어서가 아니라, 저는 pek님 글같은 책이 나오면 아무말 없이 사는 편입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페크pek0501 2011-09-01 00:51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쓰시다니... 꾸벅 감사드리고 싶네요. ^^^

제 책을 사고 싶으시다고요? 아, 대박입니다. 제가 댓글 받아본 중에 최고의 찬사예요. 힘을 주시는 군요. 만약 책이 나오게 되면 제가 선물로 한 권 보내드려야 할 것 같군요. 대박의 댓글이었으니까요.^^

자신 없음에 대하여 - 이것 정말입니다. 제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글 중 아직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게 많은데 이‘자신 없음’때문입니다. 수준 미달이라고 스스로 느껴져요. 그렇다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다 괜찮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는 인용문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이상하게 인용문이 많더라구요. 구입할 땐 인용문을 보고 구입하진 않았는데. 오히려 인용이 많아 읽다가 놀라게 되는 경우죠. 명저에 특히 인용문이 많은 것 같아요.

인용 많이 하려면 그 주제에 대해 필자가 이미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통찰력이 없으면 인용이 불가능해요. 같은 문맥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거든요. (저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인용을 하고 있지만요.)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이 인용을 많이 하면서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죠. 명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인용을 많이 하면 하류로 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인용을 하든 안 하든 글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겠죠.

저도 강준만 저자의 책 좋아해요. 제게 필요한 책이 무언지 알려 주거든요.

아, 누가 더 길게 썼나요? ^^^

루쉰P 2011-09-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리뷰를 통해 제 서재 글쓰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 방황을 하며 지내다가 이렇게 모처럼 들어와 가슴 깊이 박히는 리뷰를 보내요. ㅋㅋ
게다가 100편에 육박하는 리뷰까지 대단하심, 전 아직 24편 ㅋㅋ! 암튼 대단하셔요. 근데 자신이 없으시다니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둔황'을 쓴 이노우에 야스시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그의 딸도 시인인데 좋은 시를 쓰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고 하자, 하루에 100편 씩 써라! 한 달에 몇 편 쓰고 거기서 대작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멍청한 짓이다 라고 했죠 ^^
또한 루쉰 선생은 자기를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천재 따위는 없다. 난 타인이 커피 마실 시간에 쓴 것 뿐이다 라고 하셨죠. 정말 커피를 안 마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오로지 노력이라고 말씀하신 뜻이라 봅니다.
근데 저보다 더 뛰어나신데 자신감이 없으시면 전 어떻해요. T.T

페크pek0501 2011-09-01 17:4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웠는걸요. 루쉰님의 '분노하라'의 리뷰를 보니깐 책의 내용과 자신의 생활을 잘 매치시켜 쓰셔서, 나도 이렇게 써야지, 했는걸요. 그 리뷰, 좋았습니다. 조지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중 '서점의 추억'이란 글을 연상시켜요.

책 리뷰가 필요한 이유는 하루에 백 권 넘게 쏟아지는 신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읽어내겠습니까. 리뷰를 쓰는 사람도, 리뷰를 읽는 사람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리뷰들을 묶어 낸 책은 대부분 기본 이상은 팔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루쉰님의 리뷰를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노력!!!!!!!!!!!!, 정말 중요하죠. 문제는 집중력인 것 같아요. 요즘 기업인들의 자녀들이 경제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아버지를 닮아서도 아니고, 그만큼 본인이 집중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늘 글쓰기와 관련한 생각을 하고 신문을 봐도 방송을 봐도 책을 봐도 글쓰기에 관련해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글쓰기를 좋아하면 저절로 집중력이 생기고 그 집중력이 모든 것에서 글감을 얻어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결론은 '집중력을 가진 노력'인 것 같아요. 요즘 든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남들이 커피를 마실 때 자신은 글을 쓰고 있는 그 집중력!

또 뵙기를... 갑자기 나타나셔서 더 반가웠다는...것.

노이에자이트 2011-09-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자기 글인 것처럼 시치미 떼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지 잘 모르더군요.외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표절이 큰 범죄임을 가르친다는데...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이 맞다면 출처를 제대로 밝혀야겠죠.이런 개인블로그에서도.

페크pek0501 2011-09-01 18: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표절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도덕적 양심을 위해서도 인용의 출처를 꼭 밝혀야지요. 블로그도 자기 맘대로 운영할 수 있는 개인적(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이 공개된다는 점에서 공적 공간인 만큼 사회적 예의를 지키는 글쓰기를 해야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칙하는 스포츠맨과 같죠. 글쓰기든 스포츠든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에 앞서 우선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반가웠어요. 노이에자이트님.^^^

노이에자이트 2011-09-02 16:49   좋아요 0 | URL
궁하면 개인블로그라는 것을 강조하여 요리조리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한심해요.남에게 공개하는 글이라면 책임을 져야하는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11-09-03 14: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님의 제2의 파브르곤충기를 읽고 오는 길입니다. 무엇인가를 관찰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에요. 저는 꿀병을 향해 한 줄로 줄 서서 기어오는 개미들의 행진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질서정연하답니다. 아마 꿀병의 겉에 꿀이 묻어 있었던 모양.

빵조각을 들고 가는 개미들의 협동정신에는 감탄을 했어요.

앞으로도 동물의 세계를 많이 보여 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11-09-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재미있을텐데...

저도 이야기 거리를 열심히 골라보겠습니다.
 

1.  좋은 시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요즘 이 시집이 많이 팔리고 있어요. 그만큼 좋은 시가 많은 모양입니다. 이 시집의 리뷰를 쓰신 블로거님의 글에서 가져왔는데, 그 블로거님이 이해해 주시겠지요. 제가 양심은 있어서 댓글은 남기고 왔으니까요.

(여러분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오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신부들은 아마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겠지요.

(당신은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저는 졸업한 학교마다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2. 좋은 영화 

늦여름입니다. 어젯밤에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밤12시가 넘었습니다. 늦여름의 시원한 밤바람이 얼마나 좋았던지 길에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았습니다.(누가 봤다면 돌았다고 했을 것임) 그렇게 늦은 시간에 길을 걷는다는 게 즐겁기도 했어요. 다른 날 같았으면 벌써 잠이 든 시간입니다. 저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영화, 참 재밌습니다.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그럴 때 성공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얘기를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서 볼 만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권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유쾌하도록 하하하 웃으며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제가 본 것 중에서 <7광구>보다 훨씬 재밌고 <써니>보다 조금 더 재밌고 <캐리비안의 해적>만큼 재밌습니다. 

<7광구>는 스릴이 지나쳐 지루하지 않고 집중력은 갖게 하나 관객으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너무 받게 하여 또 보고 싶지 않은 영화.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써니>는 단순한 시나리오지만 연출이 뛰어나 기분좋게, 신나게 감상하게 하는 영화. 마치 신나는 음악 감상을 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좀 작위적인 결말이 흠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볼 수 있는 영화. 특히 인어아가씨가 출현하는 신비로운 장면은 압권이다. 또 봐도 좋을 듯.  

<세 얼간이>는 의미 있게 교훈적이고, 눈물 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웃게 만드는 영화. 또 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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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쓰기 시작하다가 글이 길어져 그냥 페이퍼로 올립니다.

제겐 짧게 쓰는 기술은 없는 듯합니다. 쓰다 보면 자꾸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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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뭐가 길다고 그러십니까?
저만 할까요.ㅎ
영화 많이 보시네요.
전 귀찮아 개봉영화 언감생심이고 지나간 영화 IP TV로 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1-08-30 10:2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손님, 환영합니다.

이 글이 댓글로는 길고 페이퍼로는 짧지요? 댓글로 썼더니 너무 길어져서 옮겼어요. 저의 집에서 극장 간판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데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보기가 쉬워요. 멀다면 자주 못 봤을 거예요.

스텔라님은 영화리뷰를 길게 쓰는 게 아니라 실속 있게 영양가 있게 쓰시는 거죠.
저도 시나리오에 관심 많아요. 시적인 대사도 좋지만 사유 깊은 대사는 외우고 싶어지죠. 사실은 영화리뷰 써 보려고 영화 관련 서적을 한꺼번에 5권이나 샀었는데, 지금까지 영화리뷰를 한 편도 못 썼다는 것.ㅋ 저는 칼럼이나 쓰고 스텔라님의 영화리뷰 감상이나 해야겠어요.

순오기 2011-08-2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저녁상을 물리고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밤입니다.^^
시인은 정말 대단해요, 저런 표현을 잡아내다니...
오늘 독서회원이 '세 얼간이'재밌다고 추천하기에 금욜 심야로 볼까해요.

페크pek0501 2011-08-30 10:24   좋아요 0 | URL
고향손님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오셨네요. 제게 용기를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처음 저와 비슷한 연령이신 걸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순오기님의 무궁한 발전을 늘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그저께 극장에서 영화 보다가 갑자기 순오기님 생각이 났어요. 방문해야겠다고 하면서...

2011-08-2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1-08-2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ㅡ>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주인공이 안 다치면 화나죠ㅋㅋ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칼로 찌르거나 고문 장면 같은 거 나오면 못보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안 됐거나 아픈 사람이 나오는 '다큐'는 ㅡ 예를 들어 인간시대 ㅡ 같은 걸 도무지 못보겠더군요. 너무 실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들 잘 보고 감동을 받으면, 저는 이해가 잘 안 됐었는데, 저걸 어떻게 견디며 보는 걸까 싶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감정이입하는 부분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반면 영화로는 웬만큼 긴박하고 잔혹해도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걸 보면 아무리 현실감이 있어도 영화는 영화로 느껴지나 봐요.

페크pek0501 2011-08-30 10:3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아픈 환자 나오는 프로는 채널을 돌리게 돼요. 저는 친구도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전 그런 친구에 대해 질투 안 해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7광구 같은 영화는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보는 내내 정신적으로 고단했어요. 처음으로 생각한 건데, 딴 생각 못하게 사람을 강하게 집중시키는 영화가 꼭 좋은 영화인가, 가끔은 옛 추억을 더듬으며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은 게 아닌가, 생각 들었어요. 써니처럼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교시절을 떠올리게 되죠. 아련히 추억에 젖게 해요.

신지 2011-08-31 01:43   좋아요 0 | URL
저는 pek님의 다른 글에서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이 되더군요. ㅡ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

저도 경쟁심이 많은 사람은 간혹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시기심 질투심은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pek님의 글들을 보면 노력한다기보다 무언가 그것을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그점이 좋아 보였어요. 영화 본 건 적어 놓는데 지금 보니까 마지막으로 극장 간 게 작년 12월에 '부당거래'네요. 올해는 한 번도 극장에 못 가봤다니, 초딩때 이후 처음인듯 ㅠ

실은 (글도 반갑지만) pek님 이런 가벼운 페이퍼는 처음이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꼭 칼럼이나 단상이 아니어도 이번처럼 가볍게라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08-3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8월 24일 최종 투표율 25.7%로 개표가 무산되며 무상급식정책은 현행대로 유지된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중학교는 내년부터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게 된다. 현행 무상급식은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1개구가 4학년에 무상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중략) 오세훈 시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면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이 33.3%에 미달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시장직을 걸었다.”(NEWSEN뉴스엔, 2011. 8. 25.)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르면 내일, 늦어도 오는 28일까지 시장직 사퇴 시기 등 자신의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보입니다.”(YTN, 2011. 8. 25.)


오세훈 시장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보며, 오세훈 시장에게 지금 필요한 건 훗날을 기대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퇴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1. 패배할 땐 웃기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늘 과묵한 내가 갑자기 즈베르꼬프하고 격투를 벌인 일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휴식 시간에 친구들과 미래의 정부(情婦)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강아지처럼 들뜨기 시작하더니, 자기는 영지 마을의 계집애들을 하나도 그냥 놔 두지 않겠다, 그건 - droit de seigneur(귀족의 권리)이므로 만약에 농부들이 건방지게 반항한다면 그 따위 텁석부리 악당들은 모조리 곤장을 먹인 후에 인두세를 곱절로 물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얼빠진 동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나는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마을 계집애들과 그 아버지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이런 풋내기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운 좋게 이겼지만, 즈베르꼬프는 바보이긴 해도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므로 허허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실은 나의 승리도 완전한 것은 못 되었다. 마지막으로 웃은 것만큼 그가 덕을 본 셈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 글은 상대의 웃음 때문에 자신이 완전한 승리자가 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상대편에서 보면 그 웃음 때문에 완전한 패배자가 될 뻔한 것을 면한 것이다. 그 웃음이란 바로 마음의 여유인 것이다. 즈베르꼬프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이겼다. 네가 이겼다고 인정해 주지. 그런데 그게 뭐 대단한 건가.”


그런 마음의 여유가 ‘허허’ 웃게 만든 것이리라.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창피를 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에 처했을 때 그래서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면서 그 상대에게 분노를 느껴 화를 벌컥 낸 적이 있는가? 그럴 땐 화내는 대신 시치미 떼고 웃어 버리자.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인지 모른다.)


2. 꿈을 웃으며 바라보기


내게도 꿈이 있다. 책을 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꿈꾸어 오던 일이다. 하지만 난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내 능력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꿈은 그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행복하다’가 된다.


설령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불행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꿈은 갖고 있는 그 자체로써 충분히 행복을 선사하니까.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 년 뒤에 책을 내든 십 년 뒤에 책을 내든 언제 내면 어떠한가, 또 책을 내지 못하면 어떠한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생활의 발견>에 있는, 임어당의 이 말씀이 맘에 든다.




“인간이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은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자기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에서.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 인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 사퇴로 인해 인생이 끝났다고 여기는 정치인, 그들은 자기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해서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어떠한 좌절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해 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느긋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는다. 오세훈 시장도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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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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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혹시 이 글을 보시고 조회는 1인데, 어찌해서 추천 수는 10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을 위해 말씀 드립니다.

위의 조회는 다음 사이트에서 오시는 방문자들만의 조회를 의미합니다(그런 것 같음). 그 옆에 있는 추천도 다음 사이트 방문자가 누르는 것이고요.

밑에 있는 '추천'은 알라딘을 통해 들어오시는 방문자들이 누르시는 것입니다. 아무나 눌러도 상관은 없지만요. 알라디너들의 조회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알라딘은 다음 사이트와 제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새 글도 없는데, 계속 들어오시는 방문자님들을 위해 올린 글입니다.
(이 시라도 읽으면 좋으실 것 같아서...) 어느 블로거님의 리뷰에서 가져왔는데, 옮긴 것에 대해 그 분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1.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며 산다


나는 나의 선택을 의심한다.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집에 가면 늘 고민한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하고. 문제는 어느 것이 더 먹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 다 먹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것인데 말이다. 또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맘에 드는 두 가지 옷을 골라 놓고 내가 어느 것을 더 사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맘에 드는 게 분명 있을 것인데.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싶은지, 글을 쓰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둘 다 하고 싶지만 분명히 어느 쪽을 내가 더 하고 싶을 거야. 다만 내가 어느 쪽인지를 모를 뿐.’


이처럼 내가 뭘 더 원하는지 몰라 무엇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갈등하곤 하는데,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문제를 다룬 신간이 있어 관심이 간다. 레이 허버트 저, <위험한 생각 습관 20>이란 책이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방 25%’보다 ‘무(無)지방 75%’라는 라벨을 붙인 햄버거를 더 맛있고 덜 느끼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위험한 생각 습관 20’의 저자는 이를 ‘산수 휴리스틱(arithmetic heuristic)이라 부른다. 낮은 숫자보다 높은 숫자에 더 끌리는 현상이다.”(조선일보, 2011. 8. 20.)


나도 어떤 음식을 먹으려 할 때 지방 25%라고 표기된 것보단 무지방 75%라고 표기된 것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그런데 난 숫자보다 ‘무지방’이란 낱말에 끌려서일 것 같다. ‘무지방’이라고 하면 일단 안심이 되니까.


이와 같은 예를 다른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같은 약인데도 의사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선택이 달라진다.




A라는 약에는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10퍼센트 있다. 그리고 B라는 약에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있다. 그러면 환자는 B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는 의사가 그것을 긍정적인 문맥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 니콜레 랑어 저, <심리학>, 63쪽.




그렇다면 배우자의 선택에서는 어떨까.


“미국의 한 결혼 전문가가 이혼 여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은 애당초 결혼이 오래 가지 못할 것, 출발부터 불행할 것임을 대강 짐작하면서도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꿈꿔왔던 남자, 이상적 남편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시집을 갔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1. 8. 18.)


인간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며 사는지는 자신을 살펴봐도 잘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짬뽕을 선택하여 먹으면서 곧바로 ‘자장면을 먹을 걸 그랬어’하고 후회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또 구입한 옷을 잘못 산 것 같아 다른 옷으로 바꾼 경험도 있지 않은가.


 

2.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알지 못한다고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지난 50년간 밝혀낸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 왜 그런 식으로 판단했는지, 어떤 것을 왜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지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제공자가 아니라는 점이다."(68쪽)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취향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이 어디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올바른 결론을 얻어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고, 정반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72쪽.





아마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감정이나 생각 따위)을 당장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하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누구나 경험을 통해 어제(과거)의 판단과 오늘(현재)의 판단이 달랐기 때문에 내일(미래)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남녀 사이에서는 서로의 소중함을 이별한 뒤에야 안다고 한다. 늘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선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A. 카뮈 저, <페스트>라는 소설 속의 한 부부가 ‘페스트’라는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리되어 별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우친 진실은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부부의 경우에도 함께 있을 땐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몰랐던 것일까.




그 부부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결혼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페스트로 인해) 이 돌발적인, 더욱이 오래 계속된 별거 생활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같이 명백해진 진실 앞에서 페스트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 A. 카뮈 저, <페스트>, 80쪽.





아인슈타인은 직관을 중요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바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생각의 탄생>, 29쪽~30쪽.




결국 우리의 이성적 판단력을 신뢰해선 안 된다는 것. 오히려 이성보다 직관이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그러므로 심사숙고한 선택이라고 여겨질 때, 그럴수록 진짜 최고의 선택인지를 꼭 의심해 봐야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한 태도이다.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72쪽.





우리는 이성으로써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현명한 자가 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런데 도대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내가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매우 어처구니없는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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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레이 허버트 저, <위험한 생각 습관 20>

니콜레 랑어 저, <심리학>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A. 카뮈 저, <페스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생각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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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 - 나오키상 수상작가 무코다 구니코의 유쾌한 인간관찰기
무코다 구니코 지음, 곽미경 옮김 / 강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독서는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신과의 대화’라고 한다. 그 이유를 이 책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 알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독서가 작가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독자인 ‘나’를 읽는 행위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 작가로 알려져 있는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 38편이 담겨 있는 책이다. ‘유쾌한 인간관찰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인간이 가진 불편한 진실에 주목했다.


불편한 진실 첫 번째.




길을 걷다보면 맞은편에서 부모형제가 걸어오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어쩐 일인지 너무 당황스러워 갈팡질팡하며 어디다 시선을 둘지 모르고 만다.


아, 하고 무심코 손을 들어 알은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알아봤다는 걸 상대가 눈치 채지 않도록 모른 체한다. 서로 스쳐 지나가기 직전에 그제야 알아본 듯이 좀 무뚝뚝하게 말을 건다.


- ‘아는 얼굴’, 22쪽.





이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 자신의 경험을 딴 사람이 글로 옮겨 놓은 듯해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이십대에 있었던 일이다. 혼자 가는 길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는데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고 싶었다. 그런 기분에 대해 그 누구하고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가 이 글을 읽고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음을 알았을 정도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런 걸 끄집어내어 글로 쓸 수 있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밖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반가워서 달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피하고 싶은 당혹감은 왜 일어날까. 어색함과 쑥스러움 때문일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까. 상대가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일까.


불편한 진실 두 번째.




(태풍 오는 날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화장실에 가고,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흥분되는 일이었다. 형제간 싸움도, 부부 싸움도 태풍이 부는 밤만큼은 휴전이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약간 서먹한 기운도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온 식구가 하나로 뭉쳤다. 나는 그런 게 너무 기뻤다.


이제나저제나 몹시도 긴장하며 기다렸던 태풍이 빗나가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또 있을까.


어른들의 말투나 몸짓에서도 (태풍이 빗나간 것에 대해) 분명 아쉬움 같은 게 느껴졌는데, 겉으로는 그런 걸 요만큼도 내색하지 않는 게 조금 얄미웠다.



- ‘태풍 오는 날’, 74쪽~75쪽.




인간 안에는 분명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걱정하던 태풍이 무사히 지난 간 것에 안심하기보다 어떤 아쉬움 같은 게 남아 있는 이 경우도 그렇다. 이제 더 이상 긴장감을 느낄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가족애가 오가는 시간이 끝났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불편한 진실 세 번째.




식사 시간에 온 손님은 반드시 밥을 먹고 왔다고 한다.


“뭐, 괜찮지 않은가요. 초밥 먹을 배는 따로 있다지 않아요.”

“정말 먹고 왔다니까요. 조금도 들어갈 배가 없어요.”

“아휴,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드셔보세요.”

“그럴까요? 그럼……”


아침을 어중간하게 먹어서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는 손님에게는 “그냥 맛이라도 ……”라고 권하면 대부분은 접시를 깨끗이 비운다. 하지만 먹고 왔다는 말을 해놓고 도중에 노선을 변경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끝까지 젓가락도 대지 않고 돌아가는 손님도 있다.


- ‘뻔한 인사말’, 86쪽~87쪽.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보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사람은 다 같은 모양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밥 먹고 왔다는 말을 한 것까진 괜찮다. 그런데 만약 한 젓가락쯤 먹고 싶은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젓가락을 대지 않아야 한다면, 그런 인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다음과 같이 작가의 유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주는 글도 있다.




(안경테가 망가져서) 노안경을 손보려면 (잘 보이지 않아) 또 하나의 노안경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손전등으로 손전등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만 있어도 그걸로 충분하다.


깨끗하게 해놓지 않으면 혼이 날 것 같아 나는 비누를 씻기 위한 비누를 찾았다. 물론 비누를 깨끗이 하려면 더러워진 그 비누를 쓰면 된다는 걸 곧바로 깨닫고 혼자서 웃고 말았지만.


- ‘혼자서 웃고 말았다’, 78쪽~82쪽.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글도 있다.




시대극을 볼 때 가장 마음 아픈 건 애송이나 하급관리가 죽는 장면이다. 악당 두목을 따른 죄밖에 없건만, 버러지같이 무참히 죽는다.


나 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배우들이 과격한 난투 끝에 숨이 가빠졌는지 참았던 숨을 후우 하고 내쉬거나, 거친 숨결 때문에 배가 불룩거리는 걸 보았을 때이다. 엄격한 연출가는 이런 장면을 NG로 판단해 다시 찍자고 하는데, 제발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아아, 다행이다. 정말 죽은 게 아니야. 이제 저 사람들은 1만 엔이든 1만 3천 엔이든 일당을 받고 돌아간다. 이렇게 안심하는 마음 약한 관객도 있는 것이다.


- ‘베다’, 220쪽~221쪽.





이처럼 작가들의 훌륭한 점의 하나는 우리들이 무심한 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잘 포착해서 글감으로 만드는 그 ‘찾음’의 능력일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책세상 출판)>에서 인용한 다음의 글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

오래오래 전부터 그것은 거기에 있었고

시인은 다만 그걸 찾아내는 것일뿐.”(얀 스카첼)  
 

나는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 배달되던 날, 책을 펼치자마자 그날로 다 읽어 버렸다.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 출판)>와 비교한다면, 조지 오웰의 에세이가 세계의 ‘무거운’ 진실을 전하는 글이라면,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는 개인의 ‘가벼운’ 진실을 전하는 글이다.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매력이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정치적 목적을 중시하는 조지 오웰의 글에 더 가치의 무게를 둘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란 그런 무거움만으로 채워져 있지도 않고 또 무거움만으로 채워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 ‘가벼운’ 내용의 책은 읽을 만하다. 코믹한 영화를 보듯 웃음 짓게 만드는 유쾌함과 봄 소풍을 가는 발걸음 같은 경쾌함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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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8-1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과 같은 이의 글만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일종의 허영심이겠죠.평이하고 잔잔한 글도 좋은데 말이죠.하긴 조지 오웰의 글도 늘 심각한 주제만 다룬 것만은 아닌데요.

페크pek0501 2011-08-19 11: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 좋을 대로'와 같은 가벼운 에세이도 있어요. ㅋ

평이하고 잔잔한 글의 매력을 아신다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