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모방의 천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햄릿>은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온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 인’이라는 이탈리아 작품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갖고 쓴 것이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옛 것’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한 작품이 오히려 그 ‘옛 것’을 뛰어넘어 탁월한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가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에서만 ‘모방’이 필요한 것일까.




1.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
 

 



 

최근 출간된 책으로,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이다. 저자는 천재들과 훌륭한 기업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새롭게 발전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책은 혁신과 창조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번뜩 떠오른다는 데 반기를 든다. ‘바로잉(빌려오기)’의 의미처럼, 저자인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이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없다”며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를 제안한다. 또 ‘남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행위’는 지적인 절도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 기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구글 가이즈뿐 아니라 아이작 뉴턴, 조지 루카스 등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한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알라딘, 책소개)


바로잉이란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빌려오기(또는 모방)를 통한 창의성을 강조함으로써 누구든지 학습하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주장하는 책이다. 여기서 저자가 제안한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란 남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해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1) 문제를 정의하라 2) 빌려라 3) 결합하라 4) 숙성시켜라 5) 판단하라 6) 끌어올려라 등을 말하고 있다.




여태까지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창의성이 넘치는 몇몇은 남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거나 표절했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았다. 아이작 뉴턴이 그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과 도둑질이 종이 한 장 차이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 35쪽.





새로운 독창성은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을 도둑질해서 태어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다. 이 책 속에서 발견한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창의성의 비밀은 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앨버트 아인슈타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려면 아이디어를 도둑질할 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단순히 모방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뛰어넘는 재창조를 함으로써 빼어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말한 셰익스피어처럼.



2.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


내가 읽은 유명한 저술에는 유난히 ‘인용문’이 많았다.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그랬고,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도 그랬다. 이렇게 저술에 인용문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유명한 저술가들조차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저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은 곧 기존의 낡은 저술을 학습해야만 뛰어난 새로운 저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바로잉>의 저자가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면, 나는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다.


‘인용문’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은 의외로 많았다. 그 중에서 다음의 세 권을 뽑아 정리해 보았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저자는 근대인에게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에 연구를 집중하여, 근대인을 속박으로부터 구했던 ‘자유’가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는 한편 고립과 무기력도 동시에 가져왔음을 지적하고, 결국 자유가 주는 부정적 측면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 비록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전체주의의 심리적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자유’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찰할 기회를 갖게 한다. 
 


129쪽 : 개인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자유롭다고 느낀다. 즉, 그는 혼자 떨어져 있으며, 낯설고 적의에 찬 세계와 대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불쌍한 동물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양도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고자 하는 강한 염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뛰어난 서술을 인용해 본다.


189쪽 : 히틀러는 오직 평화와 자유만을 바라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합리화의 첫 번째 예는 <나의 투쟁>의 ‘만약 독일 국민이 역사적 발전에서 다른 나라 국민이 향수한 것과 같은 집단적 통일을 가지고 있었다면, 독일제국은 아마도 오늘날 이 지구상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히틀러, 휴즈, 샤피로, 루터, 칼뱅, 그린, 발자크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가장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리보다는 오히려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밝혔듯이, 사물을 보는 그의 개성적 견해를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정열’로 보고, “사상교육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정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 유머감을 중요시하며, 중국인의 한적한 생활을 예찬한다. 그의 사고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어떻게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150쪽~151쪽 : 노자가 거의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맹자와 장자는 다음에서 일치하고 있다. 즉, 인간은 무언가 중대한 것을 잃고 있으며, 철학의 임무는 그 잃은 것, 여기서는 맹자의 이른바 ‘적자지심’(赤子之心, 죄악에 물들지 아니한 깨끗한 마음)을 발견하여 그것을 되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뛰어난 현인이란 그 적자지심을 잃지 않는 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문명의 기교적 생활이 인간의 나면서부터의 생생한 마음에 주는 영향을 산림의 남벌(濫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52쪽 : 장조(張潮)의 말처럼, “정이 있는 사람은 늘 이성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성을 사랑하는 자가 늘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정은 인간세계의 밑바닥을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 재(才)는 그 지붕을 채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맹자, 장자, 노자, 장조, 도연명, 김성탄, 월트 휘트먼, 소로우, 플라톤, 퍼거슨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세속적인 성공만을 위해 바쁘게 사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소로우는 실제로 문명을 등지고 월든 호숫가에서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했는데, 그 생활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203쪽~204쪽 : 다음 시는 어떤 방문객이 명함 대신 노란 호두나무 잎에 적어 놓고 간 스펜서의 시이다. 이것을 내 오두막의 표어로 자랑스럽게 내걸 수도 있겠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오두막을 가득 채웠으나

도락이 원래 없는 곳이니 도락을 찾지 않는다.

휴식이 그들의 만찬이며 모든 것이 뜻대로이다.

가장 고귀한 정신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359쪽 : 저술가 길핀은 영국의 숲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숲을 무단출입하거나, 개인의 주택이나 울타리가 숲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옛 삼림법에서는 중대한 불법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행위는 새와 짐승을 놀라게 하고 삼림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불법 삼림 침해라는 죄명으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이 책은 스펜서, 길핀, 공자, 맹자, 사아디, 이블린, 카토, 초서, 커비와 스펜스, 오비디우스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3. 결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학문에서든, 예술에서든, 기업에서든 기존의 것을 단순하게 모방만 하면 '표절'이 되지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들을 결합하고 재배열하고 숙성시켜 새로움을 낳는 재창조를 할 때 ‘창조’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모방’에 관한 명언을 옮겨 둔다.


“모든 것에 관련되는 세 가지 기술은 이용하고, 만들고, 모방하는 것이다.”(플라톤)


“모방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창조를 위해 필수적인 예비 작업이다.”(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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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3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올린 글을 포함해서, 마이리뷰 17편, 마이페이퍼 82편을 올린 것이니 그동안 총 99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에 한 편만 더 올리면 100편이 됩니다. 제가 저를 자랑스러워해도 되나요? 물론 다른 유능한 블로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로선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글을 올리고 나면 쑥스럽고 자신없고 그렇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대충 이런 문장인 듯)이라는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자랑스럽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부끄러운 일기장 같은 것을 용기 있게 공개하는 일이므로... 그것도 자신 없어 하면서... 앞으로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런데, 왜 쓰느냐구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

그럼 다음에 100번째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200편, 300편의 글이 쌓이길 희망하면서...

stella.K 2011-08-31 13:05   좋아요 0 | URL
오, 축하합니다.
사실 이날까지 블로그질 하면서 왜 쑥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도 중요한 건 성실하게, 진실하게가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정말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죠?
앞으로 계속 좋은 글 써 주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1-08-31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글을 꽤 많이 쓰시던데, 직장생활하시면서도(글 보니깐)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직장 다닐 때 휴일이면 무조건 쉬어야 했는데... 베개가 푹 들어갈 정도로 잠을 자곤 했는데... (잠시 배게인지, 베게인지, 헷갈렸음ㅋ)

stella.K 2011-08-31 19:56   좋아요 0 | URL
헉, 저 직장 안 다니는데요...ㅠ
그러니까 이만큼 쓸 수도 있는 거죠.
안 그랬다면 이렇게 쓰기 어려울 걸요?
단지 봄부터 조그만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그만 무기한 연기가 되서 놀고 있습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지 않나요? 그러면 연락주세요.ㅋㅋ

페크pek0501 2011-09-01 00:4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쓴 이 글 때문임- “어제는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는데” - 이걸 읽고 퇴근하는 것으로 보니 직장 다니시는군, 했어요. 아, 나의 실수!‘퇴근’이라는 말에 그만...

일손이요? ㅋ 저는 논술선생질을 10년간 해서(작년까지요) 요즘처럼 노는 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몰라요. 경제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렇게 블로거질이나 하면서 살고 싶은 걸요. 그런데 내년부턴(아마도) 일을 갖게 될 것 같아요. 놀려니깐 친정엄마, 시어머님 눈치가 보여요. 왜 돈 벌 수 있는데, 안 버느냐고 하시는 것만 같아서. 다행히 학생들 독서글쓰기 강의를 주겠다는 곳이 있어요.^^^

신지 2011-09-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공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그저 박수만 치고 있습;; ^^ 그런데 pek님도 자신 없으시다니 저는 좀 용기가 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ㅡ 저는 글은 고사하고 댓글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
이건 (바로잉이라는 책과는) 좀 다른 얘긴데, 저는 책 중에서 '인용문'이 많은 책을 특히 선호하는 편이어서 이 글이 반갑습니다. (반면 가장 싫은 책은 여백이 많고 글씨가 큰 책). 특히 사회과학 쪽에서는 국내 저자들의 문장력이 대개는 일반인 블러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불만입니다. 두번째 불만은 저는 저자들이 좀 자신이 아는 것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말을 함부로 전하는' 책들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인용을 하지 않고 저자가 남의 말을 전하는 책은 대부분 왜곡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 사람들의 책은 마치 논술교재 같습니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철학자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이 말합니다. ^^
뭐랄까 다양한 인용문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책을 사는 데 있어 가장 뿌듯함을 주는 목적이랄까요. 인용문은 대체로 핵심적이고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또 인용문이 많다는 것은 저자가 독서가이거나 전공자일 확률이 높아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명언을 모은 책이나 잠언 책은 곧바로 반품하는데, 좋은 말이나 문장도 어떤 글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만 공감이 되더군요. 너무 당연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가령 저는 강준만의 책도 그런 면이 오히려 좋습니다만. 전에 보니까 바로 그점(인용문이 많다.) 때문에 싫다는 분도 많이 계시더군요.

어떤 사람이 인용한 문장은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왜 저 말을 인용했을까? 저 문장이 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좋은 걸까?
그리고 인용한 문장이 (나도) 좋을 때, 또 글에 적절한 인용일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글에서 글쓴이가 인용하는 문장은 글쓴이를 나타내주는 표현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이번엔 어떤 책일지, 어떤 인용문이 있을지, pek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그점도 매번 흥미롭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다락방님도 그런 페이퍼를 많이 쓰십니다.) 취향이 그러므로 꼭 아는 분이어서가 아니라, 저는 pek님 글같은 책이 나오면 아무말 없이 사는 편입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페크pek0501 2011-09-01 00:51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쓰시다니... 꾸벅 감사드리고 싶네요. ^^^

제 책을 사고 싶으시다고요? 아, 대박입니다. 제가 댓글 받아본 중에 최고의 찬사예요. 힘을 주시는 군요. 만약 책이 나오게 되면 제가 선물로 한 권 보내드려야 할 것 같군요. 대박의 댓글이었으니까요.^^

자신 없음에 대하여 - 이것 정말입니다. 제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글 중 아직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게 많은데 이‘자신 없음’때문입니다. 수준 미달이라고 스스로 느껴져요. 그렇다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다 괜찮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는 인용문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이상하게 인용문이 많더라구요. 구입할 땐 인용문을 보고 구입하진 않았는데. 오히려 인용이 많아 읽다가 놀라게 되는 경우죠. 명저에 특히 인용문이 많은 것 같아요.

인용 많이 하려면 그 주제에 대해 필자가 이미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통찰력이 없으면 인용이 불가능해요. 같은 문맥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거든요. (저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인용을 하고 있지만요.)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이 인용을 많이 하면서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죠. 명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인용을 많이 하면 하류로 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인용을 하든 안 하든 글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겠죠.

저도 강준만 저자의 책 좋아해요. 제게 필요한 책이 무언지 알려 주거든요.

아, 누가 더 길게 썼나요? ^^^

루쉰P 2011-09-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리뷰를 통해 제 서재 글쓰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 방황을 하며 지내다가 이렇게 모처럼 들어와 가슴 깊이 박히는 리뷰를 보내요. ㅋㅋ
게다가 100편에 육박하는 리뷰까지 대단하심, 전 아직 24편 ㅋㅋ! 암튼 대단하셔요. 근데 자신이 없으시다니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둔황'을 쓴 이노우에 야스시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그의 딸도 시인인데 좋은 시를 쓰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고 하자, 하루에 100편 씩 써라! 한 달에 몇 편 쓰고 거기서 대작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멍청한 짓이다 라고 했죠 ^^
또한 루쉰 선생은 자기를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천재 따위는 없다. 난 타인이 커피 마실 시간에 쓴 것 뿐이다 라고 하셨죠. 정말 커피를 안 마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오로지 노력이라고 말씀하신 뜻이라 봅니다.
근데 저보다 더 뛰어나신데 자신감이 없으시면 전 어떻해요. T.T

페크pek0501 2011-09-01 17:4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웠는걸요. 루쉰님의 '분노하라'의 리뷰를 보니깐 책의 내용과 자신의 생활을 잘 매치시켜 쓰셔서, 나도 이렇게 써야지, 했는걸요. 그 리뷰, 좋았습니다. 조지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중 '서점의 추억'이란 글을 연상시켜요.

책 리뷰가 필요한 이유는 하루에 백 권 넘게 쏟아지는 신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읽어내겠습니까. 리뷰를 쓰는 사람도, 리뷰를 읽는 사람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리뷰들을 묶어 낸 책은 대부분 기본 이상은 팔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루쉰님의 리뷰를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노력!!!!!!!!!!!!, 정말 중요하죠. 문제는 집중력인 것 같아요. 요즘 기업인들의 자녀들이 경제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아버지를 닮아서도 아니고, 그만큼 본인이 집중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늘 글쓰기와 관련한 생각을 하고 신문을 봐도 방송을 봐도 책을 봐도 글쓰기에 관련해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글쓰기를 좋아하면 저절로 집중력이 생기고 그 집중력이 모든 것에서 글감을 얻어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결론은 '집중력을 가진 노력'인 것 같아요. 요즘 든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남들이 커피를 마실 때 자신은 글을 쓰고 있는 그 집중력!

또 뵙기를... 갑자기 나타나셔서 더 반가웠다는...것.

노이에자이트 2011-09-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자기 글인 것처럼 시치미 떼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지 잘 모르더군요.외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표절이 큰 범죄임을 가르친다는데...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이 맞다면 출처를 제대로 밝혀야겠죠.이런 개인블로그에서도.

페크pek0501 2011-09-01 18: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표절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도덕적 양심을 위해서도 인용의 출처를 꼭 밝혀야지요. 블로그도 자기 맘대로 운영할 수 있는 개인적(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이 공개된다는 점에서 공적 공간인 만큼 사회적 예의를 지키는 글쓰기를 해야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칙하는 스포츠맨과 같죠. 글쓰기든 스포츠든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에 앞서 우선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반가웠어요. 노이에자이트님.^^^

노이에자이트 2011-09-02 16:49   좋아요 0 | URL
궁하면 개인블로그라는 것을 강조하여 요리조리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한심해요.남에게 공개하는 글이라면 책임을 져야하는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11-09-03 14: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님의 제2의 파브르곤충기를 읽고 오는 길입니다. 무엇인가를 관찰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에요. 저는 꿀병을 향해 한 줄로 줄 서서 기어오는 개미들의 행진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질서정연하답니다. 아마 꿀병의 겉에 꿀이 묻어 있었던 모양.

빵조각을 들고 가는 개미들의 협동정신에는 감탄을 했어요.

앞으로도 동물의 세계를 많이 보여 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11-09-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재미있을텐데...

저도 이야기 거리를 열심히 골라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