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동네를 산책하다가 아파트 단지 곳곳에 피어 있는 봄꽃이 나의 시선을 끌어 사진으로 남겼다. 찍은 사진을 보니 나 혼자 보기가 아까워 서재에 올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라디너 분들은 책을 좋아하기에 책 이야기도 함께 올리기로 했다. 2018년(2018-04-30)에 올렸던 글이라고 북플이 알려 줬는데 글이 너무 길어서 몇 개만 뽑아 올린다. 그러니까 ‘4년 전의 어제’ 올린 글이 다음 글인 것이다.   



1.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저자가 집필한 산문집 세 권에서 아홉 개의 글을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이중 표제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1996년 어느 잡지사가 ‘카리브해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써 달라는 의뢰로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여행을 하고 나서 사람들은 이 여행을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라 생각해서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 같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 중 하나는 인간 심리를 알 수 있는 글로, 승객들이 왜 비용이 많이 드는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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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의 설명적 잡담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따로 있었다. ‘긴장을 풀다’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가올 한 주를 오래 미루었던 보상으로, 혹은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압박의 압력솥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여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으로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니면 둘 다로, 설명적 사연들은 길고 복잡하며, 어떤 것은 좀 무섭기까지 하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5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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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왜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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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친지를 간병했는데 환자가 끔찍하게 오래 연명하는 바람에 몇 달이 흐른 지금에야 겨우 땅에 묻고 (크루즈 여행에) 왔다는 얘기를 서로 다른 대화에서 두 번 들었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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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호화 크루즈 여행 계획을 잡아 놓고 그걸로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뎠다고 한다. 자신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는 것이니 창피한 일이 아니고 아무도 자신을 흉볼 수 없다는 말로 읽힌다.





 

2. 자기만족의 기쁨

















‘포르쉐’라는 자동차를 동경했다는 기타노 다케시는 돈이 생기자 바로 포르쉐를 샀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포르쉐를 타 보고 놀랐다고 한다. 포르쉐에 탔더니 포르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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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포르쉐의 열쇠를 건네면서 부탁했다.

“이 차로 고속도로를 달려줘.”

나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쫓아가며 내 포르쉐가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택시 조수석에 앉아서 “좋죠? 저 포르쉐, 내 거요”라고 했더니, 기사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직접 안 타십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바보군요, 내가 타면 포르쉐가 안 보이잖아요.”

- 기타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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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내가 왜 목걸이와 귀고리보다 반지와 팔찌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목걸이와 귀고리는 거울을 보지 않고는 볼 수 없으나 반지와 팔찌는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반지와 팔찌를 낀 내 모습에 자기만족의 기쁨을 느꼈던 것. 기타노 다케시가 포르쉐를 보기만 해도 좋은 것도 자기만족의 기쁨일 터.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건 사실이다. 타인이 자신을 유능한 사람으로 봐 주면 좋겠고, 타인이 자신을 부자로 봐 주면 좋겠고, 타인이 자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봐 주면 좋겠고. 반면에 타인과 무관하게 자기만족만으로도 행복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물음 하나. ‘타인이 나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한가,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한가?’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느끼는 행복이 훨씬 중요해지는 것 같다. 생각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지금의 생각으론 타인의 시선 따위가 하찮게 여겨진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사랑에 필요한 건 총명함


















카뮈는 <페스트>라는 소설에서 총명함이 없다면 진정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다고 썼다. 선한 의지를 가진 선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지하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총명함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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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대개의 경우 무지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또한 선한 의지도 풍부한 지식 없이는 악의와 거의 같은 정도로 많은 피해를 끼치는 수가 있는 법이다. 가장 구제 받을 수 없는 악덕은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이런 생각에 입각하여 사람을 죽이는 권리를 스스로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하기 짝이 없는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인 것이며, 가능한 한의 총명을 갖추지 않고서는 진정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 A. 카뮈, <페스트>,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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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이란 총명하기보단 어리석기 일쑤여서 ‘사랑’이 어려운 모양이다.






4. 봄꽃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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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5-01 12: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따라 어찌 꽃이 좋은지요
저도 곧 꽃을 좀 올려볼까 했는데 여기서 먼저 만나 까꿍하네요 ㅎㅎ 꽃은 늘 좋아요
까뮈의 문장 동감이에요 ^^
포르쉐 저 이야기 다시 읽어도 재미나구요.

페크pek0501 2022-05-01 12:50   좋아요 4 | URL
프레이야 님의 발빠른 첫 댓글로 그 부지런함에 감탄 감탄, 감사 감사...하트 하트!!!
여러 가지 일을 잘 하시는 분은 다 이유가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꽃은 언제나 보기 좋아요. 피어 있는 시기가 짧은 게 아쉬울 뿐이죠.
저도 구경하고 싶으니 꽃 사진을 꼭 올려 주십시오.

mini74 2022-05-01 13: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타노 다케시 ㅎㅎㅎ 는 보기 위한 포르쉐가 필요했군요 ㅎㅎ카뮈의 글 와닿네요. 꽃들이 넘 예뻐요. 저도 사진첩 뒤지니 꽃 우리집개 꽃 우리집개. 그 외는 생략되어 있네요 ㅎㅎ 예쁜 꽃 사진 보니 행복합니다 *^^*

페크pek0501 2022-05-02 10:40   좋아요 1 | URL
기타노 다케시 귀엽지 않나요? ㅋㅋ
카뮈의 글 - 사랑을 키워 가려면 인격, 인성 등도 보통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5-01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좋은 동네에 사시는군요. 동네가 정원 같아요 ^^
저도 보여지는 것보다는 나만의 만족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타인의 시선이 약간은 신경쓰이는건 사실입니다 😅

페크pek0501 2022-05-02 10:42   좋아요 1 | URL
저희 아파트 단지는 아니고 저희 집에서 이삼십 분 걸으면 닿는 곳에서 찍은 거예요.
제가 지하 주차장으로 다녀 못 보았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꽃이 활짝 피었더라고요.
그렇죠?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겠지요. 그래도 타인과 무관한 자기만족의 기쁨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scott 2022-05-01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화는 아니지만 크루즈를 타본 경험상
두번 다시 크루즈 여행은 하고 싶지 않응 ㅎㅎㅎ
두 발로 걸으며 기차 타고 트램 타고 이런 저런 여행지 구석 구석 탐방하는 재미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서울은 봄꽃 서서히 사라지고 꽃가루와 황사먼지 바람만 왕창!
페크님 오월 칼럼도
교훈과 사랑 가득 ^ㅅ^

페크pek0501 2022-05-02 10:45   좋아요 1 | URL
크루즈를 타 보신 분이군요. 좋은 경험을 하셨겠네요.
한 번이면 족한 모양입니다.
저도 걸으며 하는 여행이 좋습니다. 다리만 튼튼하거든요. ㅋㅋ
이곳도 서울입니다. 곧 꽃이 질 것 같아 빨리 사진으로 남겼죠. 어젠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걷다가 추웠어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5-01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철쭉 영산홍 겹철쭉 ...!

페크pek0501 2022-05-02 10:46   좋아요 2 | URL
백색의 꽃이 어찌나 풍성하던지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더라고요. 훌륭한 봄, 경이로운 봄입니다.

페넬로페 2022-05-01 22: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에도 철쭉이 많아요.
특히 요즘은 흰 철쭉이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꽃들도 유행을 타나 봅니다^^

페크pek0501 2022-05-02 10:47   좋아요 3 | URL
저도 흰 꽃을 보고 하필 이 색이 많은 건가 생각했어요.
흰 색 옆에 있으니 화려한 꽃이 더 화려해 보였답니다.

coolcat329 2022-05-02 06: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리스 저 책에서 크루즈만 읽었는데 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 꽃들 어딜가다 많은데 페크님 동네는 더 풍성한거 같네요.

페크pek0501 2022-05-02 10:49   좋아요 2 | URL
저도 저 책을 다시 찾아봐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유머가 곳곳에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아파트 단지를 잘 조성해 놓아 사진 찍을 곳이 많아요. 봄을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시작해서 좋습니다.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서니데이 2022-05-02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철쭉이 많이 피었네요. 여긴 이제 피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이번주 날씨가 좋을 것 같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22-05-03 11:57   좋아요 2 | URL
지역에 따라 날씨에 따라 꽃 피는 상태가 다르겠지요.
푸른 나무에서 저렇게 화려하고 고운 빛깔의 꽃이 피는 게 경이롭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편안한 하루,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기억의집 2022-05-02 2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케시 좀 이상하네요. 겉모양도 그렇지만 안의 승차감 뭐 이런 것도 느껴보지 않고!!! 저희 동네는 이제 철쭉 지고 있어요. 라일락도 다 지고 이제 장미 차례가 오는 5월이네요!!

페크pek0501 2022-05-03 12:00   좋아요 1 | URL
ㅋㅋ그렇네요. 승차감도 중요하지요. 차의 멋진 외양에 빠졌나 봐요.
벌씨 철쭉이 지는 지역도 있군요. 여긴 덜 피운 것도 있어요.
맞아요. 철쭉이 지고 나면 장미의 계절 5월이 있네요. 장미 보는 낙을 남겨 두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어요. 기억의집 님, 댓글 감사하고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희선 2022-05-03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보다 자신이 좋게 느끼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요새는 많은 사람이 보여주는 것에 더 마음을 쓰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2-05-04 13:26   좋아요 2 | URL
코로나 비대면 시대를 살면서 자기만족도 중요해진 듯합니다.
꽃 사진을 찍는 것도 자기만족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더라고요.
행복한 봄날을 지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22-05-04 2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낮에는 따뜻하거나 조금 더운 것 같아요.
그런 시기에도 철쭉이 많이 피어 있어서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기예요.
내일 어린이날 휴일 잘 보내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2-05-05 13:55   좋아요 2 | URL
집에서도 더워서 선풍기가 필요해졌어요. 그래도 봄꽃들이 있어 계절이 주는 즐거움은 있네요.
오늘이 어린이날이군요. 집에 어린이가 없다 보니 모를 뻔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2-05-05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06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5-09 0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번 사진 픽하셨군요^^ 2번, 가장 풍성해보여요

페크pek0501 2022-05-10 10:56   좋아요 1 | URL
풍성해서 2번 사진을 넣었다가 연초록잎 사진으로 바꿨답니다. 자주 바꿔 변화를 주고 싶군요.
13년 동안이나 같은 배경 화면을 사용했으니 바꿀 만하잖아요. 미리 보기가 되어 있어 바꾸기가 편리하네요. 좋은 봄날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