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거실을 청소하다가 청소할 만큼 몸이 건강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를 지병으로 가지고 있는 데다 '테니스 엘보'라는 병을 앓게 되어 팔의 통증이 심할 때였다. 팔에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녔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집안 청소조차 하지 못했고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청소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삶인가.



그러고 보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의 아이엠에프 사태로 인해 남편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나서 아이엠에프 사태 이전에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적도 있었다. 돈 걱정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임을 절감했던 것이다. 왜 인간은 불행을 겪어야만 겸손해지고 감사를 배우게 되는 걸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마을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마을의 랍비를 찾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우리 집은 게딱지만한데 아이들은 주렁주렁 딸린 데다가, 제 아내만한 악처는 다시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나라에서 가장 악처일 겁니다. 아,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자네 염소를 가지고 있는가?"


"물론이죠."


"그렇다면 염소를 집안에 들여놓고 기르게나."


농부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튿날 다시 찾아와 말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악처에다 염소까지……! 더는 못 참겠습니다."


"닭을 기르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럼 닭을 전부 집안에 들여 기르게나."


사나이는 또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이튿날 또 찾아왔다.


"이젠 세상이 끝장입니다!"


"그렇게 괴로운가?"


"마누라에다 염소에다 열 마리 닭에다! 오오! 하느님 맙소사!"


"그럼 염소와 닭을 모두 밖으로 내몰고 내일 또 한 번 찾아오게나."


이튿날 그 가난한 농부는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혈색도 좋고 마치 황금의 산에서 나온 것처럼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염소와 닭을 모두 내몰았습니다. 집은 이제 궁전 못지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과 나중의 '삶의 조건'이 변한 게 없는데도 불행한 사람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결과를 보여 줌으로써 행복은 마음의 문제임을 일깨워 준다. 그저 어려움을 경험하고 나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인간의 결점 중 하나는 다리를 다쳐서 걸을 수 없는 불행을 당하고 난 뒤에야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게 행복하고 감사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다리를 다친 뒤에나 깨닫게 되는 건 두 다리로 걷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통해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는 나라에서 사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자유와 평화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미세먼지'라는 말이 일기예보에 등장하기 전에 깨끗한 공기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는 당시보다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리라. '코로나19'가 뉴스에 등장하기 전에 마스크 없이 거리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는 당시보다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리라. 감사할 줄 모르는 건 불행한 일이다. 감사는 행복의 출발점이기에. 아니, 감사는 행복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기에.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가 있었던 까닭에 요즘 공기가 맑은 날이면 기쁨을 맛볼 수 있듯, 건강을 위협하는 코로나19가 있었던 까닭에 앞으로 팬데믹이 끝나면 우리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불행을 겪고 나면 얻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오늘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은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20429010005906







.....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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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29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지인과, 쉼없이 ˝감사합니다˝를 종이 가득 적으시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어요. ˝감사는 행복의 출발점이기에˝라는 페크님의 말씀, 참 좋습니다. 청소 할 수 있어 감사함을 느끼신다는 페크님의 마음 넓이도 감히 짐작하고요

페크pek0501 2022-04-29 10:00   좋아요 1 | URL
많아 아파 보면 겸손과 감사를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팔이 심하게 아팠을 땐 커피가 든 머그잔을 드는 것도 힘들어서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내려놓고 또 마시고 내려놓고 그랬답니다.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 오십견도 일년간 앓았어요. 누가 팔을 건드리기만 해도 되게 아파서 거리를 다닐 때 팔을 보호하며 다녔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 감사한 거죠.^^

감은빛 2022-04-29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건강을 잃기 전에는 건강한 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없죠.
온 몸의 관절 통증을 갖고 산지도 벌써 여러해가 지났는데, 그 관절 통증이 없던 시절이 이젠 실감나지 않아요. 더이상 건강하지 않은 몸에 익숙해지며 살아가야겠죠.

페크pek0501 2022-04-29 11:25   좋아요 1 | URL
벌써 여러 해가 지난건가요?
완치되지 않았어도 찾아보면 분명히 감사하게 여겨할 것들이 있는 법이죠.
건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겠지만요.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약골, 로 소문이 났어요. 은근 병치레하는 스타일...ㅋㅋ

물감 2022-04-29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 알지만 그것마저 집어삼키우는 당장의 힘듦과 괴로움을 이겨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페크pek0501 2022-04-29 11:27   좋아요 2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더 낮은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완벽한 행복은 없지요.
그나마 어려움을 이겨 내고 살 만한 즐거운 취미 생활이 있다면 감사할 일인 거죠.
저는 고민이 생기거나 하면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힘써요. 그것밖엔 달리 할 게 없더라고요.

새파랑 2022-04-29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번 클릭 완료 ^^
탈무드의 격언 처럼 살고 싶은데 쉽지않다는 ㅜㅜ

매일매일 반성에 반성입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22-04-29 11:48   좋아요 2 | URL
히히~~ 열 번씩이나 클릭해 주시다니... 매우 감사합니다.
조회 수에서 꼴찌를 면하자는 게 제 목표.
잘리지 않을 만큼은 글을 써야겠다, 가 제 목표.
큰 욕심은 포기했어요.^^

mini74 2022-04-29 1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삽화가 귀여워요. ~ 잃은 후에 알게 되고 놓친 후에 알게되고 떠나보내고 알게 되는 것. 젊을땐 몰랐다가 나이 드니 조금 더 알게 되더라고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페크님 ㅎㅎ 열심히 클릭했어요 *^^*

페크pek0501 2022-04-30 09:56   좋아요 1 | URL
저도 저 삽화 보고 웃었어요. 전체 내용을 압축해 그리려니 어려워서? 그냥 첫 문단의 글로 그렸나 봐요. ㅋ
열심히 클릭, 에 감사드립니다.*^^*

hnine 2022-04-29 14: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좋아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고 싶어하는 글 아닐까 합니다.
나이 들어가며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어요. 현재를 감사할 줄 아는 삶.

페크pek0501 2022-04-30 10:00   좋아요 1 | URL
경험을 그대로 쓰는 거였어서 쉽게 썼어요. 멋지게 시적이고 추상적이고 사유 깊은 글을 써야 하는데 제 주제를 파악하고 제 수준에 맞게 썼어요.ㅋㅋ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다가도 어떤 일로 뒤통수를 맞으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나, 하고 기분이 가라앉지요.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현재를 감사할 줄 아는 삶, 을 벽에 써 붙여야 하려나요.^^

페넬로페 2022-04-29 15: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겪어보지 않으면 행복을 잘 못 느끼지요. 목디스크로 고생을 했는데 요즘 2년 간 엘보가 아파서 계속 병원 다니고 있습니다. 잘 낫지가 않아 우울하기도 하고~~ 근데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으니 저 혼자만의 외로움이 있어요.
그래도 아직 열심히 걸을 수 있다는데에는 감사하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22-04-30 10:03   좋아요 2 | URL
저의 동족이군요. 저도 디스크에 테니스 엘보까지 있어 몸을 조심하며 살지 않으면 안 돼요. 무거운 물건을 드는 건 금기 사항이에요. 금방 탈이 나요.
저 역시 튼튼한 다리만이 제 자랑입니다. 많이 걸었거든요. ^^

파이버 2022-04-29 1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이미 돼지우리이기 때문에 주말에 대청소 한번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성비 집입니다 ㅎㅎㅎ 힘들게 염소와 닭을 구해 올 필요가 없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2-04-30 10:06   좋아요 2 | URL
남자 형제들이 많은 집이 대체로 그렇다고 하던데 파이버 님도 그런 경우인가요?
주말에 대청소 한 번이면 깨끗해지니 맘놓고 어질러도 되지 않을까요. 요즘 이런 생각으로 삽니다. 몸이 아팠던 경험을 하고 나니 집안 청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엔 깔끔을 떨어서 집안이 깨끗했었죠. 몸이 부서져라 청소를 열심히 했어요. 이젠 못해요. ㅋㅋ 저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커피 한 잔 하렵니다.

파이버 2022-04-30 23:25   좋아요 3 | URL
슬프게도 남자형제는 한 명뿐인데 집이 단정치 못합니다ㅠㅠ제 성격인듯요... 오늘 흰운동화도 빨고 밀린 빨래도 하니 개운하네요ㅎㅎ 페크님 소소한 행복이 함께하는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2-05-01 12:53   좋아요 1 | URL
식구 중 남성이 많은 경우 그렇지 않나 생각했어요. 뭐 여성들이라고 해서 다 깔끔하게 치우고 사는 건 아니지만요. 이젠 청소에 목숨 걸지 않기로 했고 이게 현명하단 생각이에요.
앗, 저도 흰 운동화를 살 예정인데... 후후~~~ 여름에 신을 얇은 걸로 끈 없는 흰색으로 사려 합니다.ㅋ 좋은 봄날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4-29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건강은 있을 때는 잘 모르는데, 없어지면 그 전에 건강했던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매일 건강한 사람은 잘 모르지만, 약한 부분 있으면 조심하면서 사는 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페크pek0501 2022-04-30 10:09   좋아요 2 | URL
건강할 땐 잘 몰라요. 건강한 게 얼마한 큰 복인지 말이에요.
서니데이 님의 말씀이 맞아요. 갑상선 암 환자가 아무 병 없는 사람들보다 더 장수한다는 결과가 나온 연구가 있어요. 병이 있으면 그만큼 조심하면서 몸 관리를 잘하게 되어서겠지요.
아 벌써 오늘이 주말이네요. 그리고 4월의 끝자락이네요. 4월이 간다고 섭섭해 하지 말고 오는 5월을 반갑게 맞기로 해요. 고맙습니다. ^^

2022-04-30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01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2-04-30 1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진짜 사람은 어찌보면 간사하고 어찌보면 단순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에요. 요즘 햇살이 반짝이다가 다음날 바로 비가 오고 이러니까 해가 나는 날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러다가 비가 너무 안 오면 비가 와야할텐데 하면서 비가 오면 또 고맙구요.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 잊지 말아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2-05-01 12:56   좋아요 1 | URL
인간이란 정말 간사한 존재지요. 여름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엔 여름이 그립고요.
저도 비가 어쩌다 오면 반갑더라고요. 장마가 계속되면 지루해지지만요.
감사를 저도 잊지 않고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희선 2022-05-01 0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잘 모르기도 하죠 잃고 난 다음에야 그게 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네요 그 뒤에 그걸 소중하게 여기면 좋을 텐데... 당연하다 여기는 건 누군가 애를 써서 그런 거겠습니다 자신이 가진 걸 잘 보면 좋겠네요 건강도 그러네요

페크 님 오월 즐겁게 맞이하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2-05-01 12:59   좋아요 1 | URL
가진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겨 감사할 줄 모르죠. 건강도 몸이 아파봐야 감사를 알게 되어요.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5월이 시작됐어요. 코로나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어 모두에게 행복한 5월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즐겁게 봄을 만끽하세요.^^

프레이야 2022-05-02 16: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섯번 클릭요! 지금 제게 딱 맞는 말씀이에요
절실히 깨닫고 있답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모든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잊지 않아야겠어요. 주어진 적지 않은 것들에 감사를^^ 달나라에 사는 여인, 영화를 봤는데 거기 행복에대하여 라는 책이 나왔는데 때마침 페크님의 이 칼럼을 읽게 되네요. 호홋~

페크pek0501 2022-05-03 11:55   좋아요 2 | URL
여섯 번이나 클릭하셨다니 감사, 감사합니다. 제가 필자들 중 조회 수에 있어서 꼴찌는 면하겠어요. ㅋㅋ
아파 보면 감사하지 않고 오만하게 살았다는 반성이 들곤 해요. 그리고 또 잊고 살게 돼요.
프레이야 님은 영화를 많이 보셔서 글쓰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영화를 보려고는 맘 먹고 있는데 많이 보게 되질 않네요.
프레이야 님 덕분에 힘이 솟네요. 몸 회복 빨기 되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