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쳐 줄게 사계절 성장 그림책
앤더 글.그림, 신혜은 옮김 / 사계절 / 2010년 11월
절판


이 책은 아이들 피아노 교육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으레히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는데
과연 피아노 대회에 나가는 게 좋은지, 안 나가는 게 좋은지...
아이가 좋아서 피아노를 배우는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지...

음악소리가 나오는 피아노 모양의 음악상자를 좋아하는 캐시를 위해 엄마는 진짜 피아노를 사 주었다.
캐시는 한시도 새 피아노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뭐라도 흘릴까 봐 피아노 근처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캐시는 피아노를 마구 두들겨대는 동생이 싫었고,
책이 없으면 피아노를 칠 수 없을거라고 책을 빼앗았다.
하지만 씩씩대는 캐시도 사실은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었다.ㅋㅋ

캐시는 엄마가 모셔온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뛰어난 아이라고 칭찬을 했다.
캐시는 칭찬에 춤추는 고래처럼 실력이 나날이 좋아졌다.

선생님은 두 달 뒤에 있을 연주회에 캐시가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아노 연습 시간이 길어지면서 캐시의 즐거운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연주회 날이 가까워지면서 예민해진 엄마는 몇 번이고 되풀이시키고...
캐시는 예쁘게 차려입고 연주회에 가면서도 안 나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캐시는 불안하고 긴장해서 선생님의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마침내 차례가 되어 등 떠밀려 무대로 나갔다.

작은 연주회장이었지만, 캐시에게는 관객들로 꽉 찬 오페라극장처럼 느껴졌다.

캐시는 몹시 떨렸고, 조명은 눈이 부셨고, 발은 사막의 모래 위를 걷는 것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캐시는 피아노 앞에 앉아 나쁘지 않게 연주를 시작했지만,
곧 너무 빠르게 치고 몇 번 음이 틀리면서 연주는 엉망이 되어 갔다.
캐시는 마지막 반복을 하기 전 연주를 멈추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당황한 캐시가 무대 밖으로 달려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순간...
엄마가 캐시를 끌어안았고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엄마와 캐시는 인사했다.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캐시의 마음에 남아, 전처럼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와 선생님이 격려해주었지만 캐시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소중했던 피아노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냥 탁자가 되어갔다.

피아노를 좋아하던 캐시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린 연주대회는 지금도 계속 된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해 가르쳤지만 썩 즐기지는 않았다.
큰딸은 다섯 살부터 초등 3학년까지, 둘째는 일곱 살부터 2학년까지, 막내도 일곱 살부터 2학년까지 체르니 30번이나 40번까지 배웠지만, 그만하고 싶대서 악보를 못 읽거나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답답함은 면한 거 같아 그만 두었다. 피아노쌤한테 대회에 내보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피아노를 즐기거나 소질도 없는데 비싼 참가비 내고 트로피를 나누어 받는 거 같아 사절했다. 하지만 삼남매가 무대에 서는 경험을 통해 뭔가 느낄 수 있던 걸 원천봉쇄한 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답을 알 수 없다. 다만 캐시처럼 그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게 위로가 된달까...

어느 날 심한 열 감기에 걸린 캐시의 동생은 사정없이 울어댔고...

캐시는 동생을 달래 주고 싶어서, 잡동사니를 치우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울지 마. 누나가 피아노 쳐 줄게!"

피아노 소리는 아름다웠다.
가문비나무가 평생을 자라야만 좋은 피아노로 만들어진다고 알려 줬던 아빠 말씀이 생각났다.
가문비나무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소리처럼, 숲 속에는 오색 빛깔 영롱한 나비들이 나풀거리고 신비로운 꽃향기가 가득했다.

우리아이들은 피아노 없이 자라서, 어디서든 피아노가 있으면 좋아하며 달려들었다.
어릴 땐 그런 모습이 귀여워 친척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큰딸은 초등 3학년에 그만 둔 피아노를, 중학교 때 다시 배우고 싶대서 동요와 가요반주를 배웠다. 다행히 어려서 배웠던 피아노 솜씨가 금세 되살아났고, 그때 다시 배웠던 덕에 교대의 음악 교육과정을 나름대로 따라 가는 것 같다.

캐시의 동생처럼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면서 띵동띵동 소리를 내보는 아이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학원을 다녀도 수준이 높아지고 연습량이 많아지면, 특별한 소질이 없고 즐기지 않는 아이들은 그만두고 싶어한다.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게 제일 좋다는 걸 알지만,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서는 종종 현명함을 잃게 된다. 아이들 어릴 때의 피아노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 아닐까? 어쩌면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부모들의 한풀이 내지는 대리만족일지도... 이 책을 읽으며 자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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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1-03-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은 보며 행복할지 몰라도 우리 딸도 보면 피아노 치는 것도 싫어했고, 대회 나가는 것은 기겁을 했죠. 초등 2학년 때까지 치다 미련없이 그만두었어요. 사고의 전환~ 내가 피아노 치지 말고 남이 치는 거 들으면서 살면 되지 뭐..

순오기 2011-03-02 07: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피아노를 즐길 줄 아는 아이로 키우면 되는데...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은 자식들 일에는 종종 까먹는 거 같죠.^^
남들이 치는 거 들으면서 즐기자~~~~ 동감이에요.ㅋㅋ

송도둘리 2011-03-0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렸을 때 선생님한테 혼나가면서 배워가지고..으..아직까지도 별로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아요.^^; 근데 마지막 사진을 보니까 마음이 푸근해지네요. 그러고보면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순오기 2011-03-02 07:47   좋아요 0 | URL
무얼 배울 때 혼나면서 배우면 좋아하던 것도 싫어지겠죠.^^
우리 애들은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피아노 있는 집에 가면 꼭 두들겨 보려고 했어요.ㅋㅋ
어쨋든 답답함은 면하라고 어려서 피아노를 가르치긴 했어요~

2011-03-0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1-03-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교대를 다니나 보군요. 혹여 제 후배가 아닐런지... (서울 교대)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리고 축하 드립니다.

순오기 2011-03-11 00:18   좋아요 0 | URL
유감스럽게 후배는 아니네요.ㅜㅜ
 
샌드위치 바꿔 먹기 -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문화 그림책 인성교육 보물창고 13
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 글, 트리샤 투사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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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문화 그림책'으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샌드위치를 소재로 했는데 별다섯을 줘도 아깝지 않다.^^

문화의 다름을 체감하는데 음식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2007년 아이들 중학교 원어민샘 홈스테이할 때
이슬람교였던 그의 음식 문제로 난감하고 언짢았던 경험 때문에 감정이입이 됐다.
자기가 먹는 것 외에 새로운 것은 절대 먹어보려 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상했고, 나중엔 괘씸하기까지 했었다.
본인이 선택해서 온 한국이라면, 적어도 한국 문화를 알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모든 이야기는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로 시작되고 후무스 샌드위치로 끝난다.
후무스 샌드위치는 병아리콩 으깬 것과 기름, 마늘을 섞은 중동지방 음식이란다.

이 책은 내용도 좋지만 그림도 마음에 쏙 들었다.
큼지막하게 펼쳐진 파스텔톤 그림이
학교에서 가장 친한 셀마와 릴리의 정다움을 잘 보여준다.

셀마와 릴리의 다정한 모습은, 보는 내마음까지 환해진다.

단짝 친구와 할 수 있는 놀이에도 즐거움이 배어나온다.

점심시간의 소근소근 시끌시끌한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맛난 음식 냄새까지 풍겨올 거 같은...

하지만 아무리 친해도 먹는 음식은 다르다.
릴리는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를, 셀마는 후무스 샌드위치를 먹었다.

릴리는 셀마의 샌드위치가 괴상해 보이고 역겹고 싫었고
셀마는 릴리의 샌드위치가 이상해 보이고 메스껍고 끔찍했다.
처음엔 말하지 않았지만 참을 수없어 그만 선을 넘어 버렸다.
"우웩, 구역질 나!"
"웩, 토할 것 같아!"
이건 정말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친구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셀마는, 아침에 샌드위치를 반듯하게 자르며 미소짓던 엄마가 떠올랐고
릴리는, 샌드위치를 완벽한 삼각형으로 자르며 휘파람을 불던 아빠가 생각났다.

완벽한 단짝이었던 셀마와 릴리는 그날 오후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림도, 그네도, 줄넘기도...

나는 이 장면에서 가슴이 아팠다. ㅠㅠ
아이들이 단짝 친구를 잃는 건, 우주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릴리와 셀마의 샌드위치 싸움은,
아이들이 패로 나뉘어 무례하고 모욕적인 말을 했으며 마침내 음식 싸움으로 번져버렸다.

교장실로 불려간 릴리와 셀마는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 들 수 없었고,
다음 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샌드위치를 바꿔 먹게 된다.
선생님이 이래라 저래라 개입하지 않고도 해결책을 찾아낸 아이들~
하나, 둘, 셋!에 친구의 샌드위치를 먹는다니 얼마나 귀여운가!
낯선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도 아이들답게 사랑스럽다.^^

이 책에서 가장 따뜻하고 맘에 드는 장면이다.

친구의 샌드위치를 먹어 보고 맛있다고 인정하며 껴안는 셀마와 릴리.
어른들은 왜곡된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데
쿨하게 인정하고 화해하는 걸 보니, 역시 어른들의 스승다운 어린이 모습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펼침 장면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전교생의 샌드위치 파티다!


이 책은 놀랍게도 요르단의 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가 썼는데,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가 아침마다 후무스 샌드위치를 싸 줬고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를 싸온 친구가 권해서 먹었더니 맛있었단다.
그날 얻은 교훈으로 <샌드위치 바꿔 먹기>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고 한다.

나와 다르다고 편견을 갖거나 왜곡 비방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인성을 기르기 위한 멋진 그림책이다.

다문화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2학년 아이가 쓴 독서일기는 주제를 잘 이해한 훌륭한 일기였다.^^

이 책을 보더니 다 큰 우리 딸들은 샌드위치가 먹고 싶댄다.
아마도 아이들과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엄마가 귀찮을 수도 있다는 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일 듯...^^

이 책을 보고 우리 큰딸이 만든 이름하여 '자취생 샌드위치' ^^

요건 내가 만들었던 샌드위치로 딸이 만든 자취생 샌드위치와 재료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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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3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족이 동화책을 쓰다니,, 엄친딸인데요 ^^
동화 속 샌드위치 바꿔 먹기처럼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존중하는 것도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라면 참 좋을거 같아요. 특히 이제 막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어린이들한테는 이런 책을 읽으면 더 좋을거 같구요 ^^
그리고 이제 막 댓글 남기면서 알았는데 서재 바탕화면이 바꼈네요.
저는 순간 양철나무꾼님 서재인줄 알았어요...^^;;
예전에는 감은빛님이 또 비슷하게해서 착각했었거든요ㅎㅎ

설 연휴 잘 보내시고 연휴 스트레스 조심하셔요 ^^

순오기 2011-01-30 23:42   좋아요 0 | URL
동화를 쓴 왕비를 엄친딸이라 하니 실감이 확 나는데요.^^

클스마스 지난지가 한참인데도 여전히 클스마스 스킨과 이미지로 설을 맞을 수는 없으니 바꿨는데,
며칠 후면 다시 바꿀거라 양철나무꾼님과 감은빛님 서재스킨이라 같은거 아는데 그냥 썼어요.^^
이미지가 너무 작아 세배하는 걸 잘 알아볼지 모르지만...
며느리 연차가 20년도 넘었고, 시어머님도 돌아가시고 형님댁에서 명절을 지내니 명절증후군은 없네요.

마녀고양이 2011-01-3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을 다 제외하고,
유독 샌드위치 접시만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 밤에 위경련을 일으켜서
먹는거 주의해야 하는 이 시점에 말이죠.... 흑흑. 언니 미워~

즐거운 명절 되셔여.

순오기 2011-02-01 17:42   좋아요 0 | URL
으윽~ 우리 애들도 샌드위치 노래부르다 재료 사러 갔어요.ㅋㅋ
위경련이라면 먹는거 조심해야겠군요. 난, 무쇠라도 소화시키는...
즐거운 명절은 세뱃돈 두둑해야 누리는 거 아닌가~~~~~ ㅋㅋ

희망찬샘 2011-02-1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포토리뷰 당선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좋네요. 마음에 담아두었다 올 해 도서관 책 주문할 때 신청해야징~~~ 하고 생각해 봅니다.

순오기 2011-02-14 00:23   좋아요 0 | URL
예~ 책내용이 참 좋더라고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흡수될 수 있는 내용이죠.^^
 
여행자의 옛집
최범석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마음산책 이벤트에 꽂혀 열심히 질렀는데 미역국 먹었다.ㅜㅜ 어떤 기준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지, 알라딘이나 혹은 마음산책이 직접 선정하는지 모르지만, 이벤트 기간내 책을 많이 산 사람을 당첨자로 선정하겠지? 음, 내 책과 회원들 책까지 제법 질렀는데, 욕심이 앞서면 행운이 빗겨간다는 걸 다시 확인한 셈이다.    

어제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차분해져서 그런지 크게 낙심되지는 않았다. 사실 사놓기만 하고 못 읽어서 어제부터 마음산책 읽기에 돌입해, 종일 이 책 한 권 읽었다. 저자의 추억여행에 동참하다보면 어느새 내 추억 속을 거닐고 있어, '방금 내가 뭘 읽었지?' 되짚어 읽어도 기분 상하지 않을 부작용이 종종 생긴다.ㅋㅋ  

14개의 꼭지로 나누어진 책은 시인과 작가들의 좋은 글로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시를 음미하고 문장을 곱씹어 보는 일석이조의 글읽기다. 책 뒤에는 인용된 시집과 작품이 정리돼 있어, 독서영역을 확대하는데도 길잡이가 된다. 멋진 표지 사진과 곳곳에 배치된 사진이며 여유있는 편집은 책의 품격을 높였는데, 학소도를 말하는 지인들의 찬사가 8쪽이나 되는건 과유불급.ㅠㅠ  

  
 
마흔이 넘은 싱글남으로 20대에 70여개의 나라를 여행했다는 저자는 확실한 직업과 영, 독, 불어까지 능통한 남부러울 것 없는 남자다. 인왕산 자락에 아버지가 집을 지어 중학교 1학년 독일로 떠날 때까지 살았던 서대문구 홍제동의 옛집에 둥지를 틀고 12년째 살고 있다. 이 책은 왜 20년만의 귀향에 폐가처럼 버려진 옛집에 둥지를 틀게 됐는지, 어떻게 나무와 꽃을 가꾸게 되었고, 자연에서 배우고 깨달은 게 무엇인지 들려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집에 관한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자라 고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도시인들도 추억의 한 자락에 슬며시 끼어들 자리를 내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의 집은 30평 정도의 1층 슬라브 집으로,100평 정도의 땅이 절반으로 나뉘어 앞뜰에 집 건물이 있고, 옥상과 같은 높이에 뒷뜰이 있는 특이한 구조다. 그래서 텃밭과 유실수를 심어 놓은 뒤뜰에 가려면 현관을 나와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단다. 학이 날아드는 태몽을 꾸었다는 아버지가 붙여 준 이름 학소도(鶴巢島). 학이 둥지를 튼 이 집은 북쪽과 동쪽이 아파트에 둘러싸인 섬같은 곳이다. 본래 있던 대문이 막혀서 아버지가 아파트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아파트 담장을 1미터 정도 털어내고 출입구와 주차공간을 얻어냈다고 한다. 저자가 옛집에 사는 걸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2년 뒤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가 손수 쓰고 낙관을 찍은 학소도를 발견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찡했다. 지금은 거실에 걸려 있고...  

   

마지막 세입자가 떠난 후 고물상에서 문짝과 창틀까지 떼어가 폐가로 방치된 옛집을, 지인들과 페인트를 칠하고 하나씩 고쳐가면서 사람이 살만한 집으로 탈바꿈했다. 무료로 나누어 주는 나무를 얻으려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주민번호까지 빌렸다는 이 남자, 그 넓은 세상을 여행했어도 우리네 보통 사람의 성정과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친밀감이 들었다.^^ 그렇게 얻은 나무 키우기는 실패했지만, 책을 읽어가며 나무와 채소, 풀꽃을 가꾸는 지식을 습득해 이젠 전문가 수준이다. 손수 키운 채소를 먹고 정원에서 딴 과실은 술을 담가 지인들과 호사를 누린다니 부럽기 그지없다. 개들과 함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집, 비가 오면 알몸으로 비를 맞기도 한다는 저자는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듯.^^  나오는 나무와 풀꽃들은 시골에서 자란 내게는 그닥 낯설지 않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내 고향집 뒷산에 많았던 자귀나무는,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나무라 더 반가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은지 20년이 넘은 우리집도 어떻게 좀 고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계획도 세워보는 즐거움도 누렸다. 큰 돈 들이지 않고 형편이 되는대로 손수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아파트를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해 평수 늘려가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겐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지만, 한 곳에 붙박이로 살며 대를 이어 추억을 쌓아가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집은 재산으로의 가치 뿐 아니라, 가족의 보금자리로 휴식과 재충전의 행복공간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집이라는 주거 공간에 대한 개념정리가 다시 되는 기분이다. 2002 월드컵때 차두리 누나를 비롯한 지인과 외국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옥상에서 방방 뛰며 응원했다는 에피소드는, 시댁 형제들과 목포 아버님댁에 모여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응원했던 우리의 추억도 되새기게 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집에 관한 추억이 많은 저자가 회상하는 그 곳에 가보고 싶은 유혹도 나쁘지 않았고, 그 중에 프랑스 파리 뷔셔리 가 37번지의 셰익스피어 서점 2층 작가의 방에서 지냈던 건 굉장히 부러웠다. 셰익스피어 서점은 대단한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20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셰익스피어 서점 이름으로 초판이 나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대학강의실과 지구촌 여행길,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들을 옛집이 가르쳐 주었다고 고백한다. 땅을 일구어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로 농부의 땀방울과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자연을 통해 정직한 사랑을 배웠다고 한다. 채소와 풀꽃, 나무들을 키워내는 흙이 가르쳐준 것들은 세상 어디에서 배운 것보다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옛집 학소도는 과거의 자신과 오늘의 자기를 확인시키고 부모님이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금도 들려준다며 마무리한다.  

인간은 Home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자가 되고, 궁극적으로 영혼의 고향인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들이다.  

나의 학소도는 어디인가? 내 유년기 추억 속의 옛집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훗날 우리 삼남매가 돌아올 학소도를 잘 보존하며 살아야겠다는 현실적인 다짐을 해본다. 내가 꿈꾸는 마을도서관은 우리 삼남매의 기념관을 겸한 것이라, 아이들의 낙서조차 버리지 않고 보관중이다. 혹시라도 빚 때문에 집을 넘기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의 학소도는 보존할 수 있겠다. 물론 물리적 공간인 학소도 뿐 아니라 행복한 안식처로서의 학소도를 잃지 않는게 더 중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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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1-1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정말 글 잘쓰신다!!!!!!!!!!!
암튼, 마음산책 이벤트 결과 나왔어요????????그렇구나~~~~~~~~.

그런데 언니도 이벤트에 낙방하는 경우가 있다니!!!!!!!.음.....
암튼, 암튼, 색글씨에 밑줄까지 쳐 주셔서 그런지 이 글 너무 좋아요~.>.<
"인간은 Home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자가 되고, 궁극적으로 영혼의 고향인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들이다."
맞는 말씀!!

순오기 2011-01-11 02:47   좋아요 0 | URL
잉~ 잘 쓴 글은 아니고, 이 책을 참 맛있게 읽어서 리뷰를 잘 쓰고 싶었어요.^^
눈으론 책을 읽고 있는데 머리는 내 추억을 더듬고 있기가 부지기수였어요.ㅋㅋ
부담없이 읽으며 집이라는 안식처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좋아요.

글샘 2011-01-1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가 저런 집 한 채 물려주면... 잘 가꿀 수 있는데요. ㅎㅎ
솔직히 저는 집 같은 데 신경 안 쓰고 사는 아파트가 좋습니다. ㅋㅋㅋ

저도 마음산책에선 낙방했습니다만, 뭐, 마음산책처럼 좋은 출판사가 우리 옆에 있단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죠. ㅎㅎㅎ

순오기 2011-01-12 20: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런 집을 아무나 물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글샘님도 마음산책 신경쓰셨구나, 그럼 우린 낙방동지군요.ㅋㅋ
2010년엔 마음산책을 알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었어요.^^

양철나무꾼 2011-01-11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 한 유니크 하시는 분이더라구요.
전 책은 못 읽었구요, 저희 친정 근처여서 얘기만 좀 들었지만 말이죠.

맞아요, 책은 추억과 맞물리면 더 근사해 지기도 하더라구요.
근데, 이 리뷰 좋은 거 맞거든요~~~^^

순오기 2011-01-12 20:57   좋아요 0 | URL
아~ 친정이 그 근처라니, 살짝 학소도에 가보셔도 되겠네요.^^
양철나무꾼님이 좋은 리뷰라고 해주시니~~~ 그렇다고 믿을래요.ㅋㅋ

후애(厚愛) 2011-01-1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다섯개네요. 이 책 찜해야겠어요.^^

순오기 2011-01-12 20:58   좋아요 0 | URL
하하~ 저는 별점을 후하게 주는 편이죠.
나는 리뷰 몇 줄 쓰는 것도 어려워하는지라~ 책 쓰신 분들께 아주 후해요.^^

마녀고양이 2011-01-1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너무 이쁘네요, 언니 리뷰도 너무 푸근하구요. 아이, 참 좋당....
저도 마당있는 집에 살고 싶어요, 언니네는 저번에 보니까 마당도 있으시던데.
집을 가꾼다는거, 정원을 가꾼다는거.. 정성과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거 같아요.
언젠가는 해보겠어요.

순오기 2011-01-12 21:01   좋아요 0 | URL
마당 있는 집 좋지요~~~~~~~
우리집은 사방을 모두 남겨서 정원이라 할수도 없는, 정말 손바닥 만해요.ㅠㅠ

단독주택 사렴서 정원가꾸기는 도시인의 로망일지도... ^^

꿈꾸는섬 2011-01-1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글도 정말 예쁘네요.^^
마을도서관을 꿈꾸시는 순오기님, 언젠가 그 꿈을 꼭 이루시겠죠.^^

순오기 2011-01-12 21:01   좋아요 0 | URL
책이 이뻐요~ 사진도 좋고요.
제대로 된 마을도서관을 이루기까지~~~~~ ^^

2011-01-1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1-12 21:03   좋아요 0 | URL
어~ 정말요?
우린 그거 먹어 본지 한 10년은 된 거 같아요.
강원도 철원 형님댁에서 형제들이 모두 모일 때, 남편이 주문했었거든요.
그때 과메기가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던거 같아요~~~ ^^

같은하늘 2011-01-1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이 참 예뻐요.
저 같은 사람은 줘도 가꾸지 못하겠지만, 마당있는 집에서 살고싶어요.^^
저도 작년에 마음산책 책 몇 권 구입했는데, 왜 이 책을 못봤을까요?
이번에 찜~~~ㅎㅎ

순오기 2011-01-14 22:10   좋아요 0 | URL
마당 있는 집은 다들 좋아하는군요.
마음산책 10권쯤 사들였는데 새해부터 읽기 시작했어요.ㅋㅋ
 
외톨이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청소년소설집 푸른도서관 39
김인해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가의 청소년소설집인데, 단편의 매력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 두 번이나 읽었다.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한 김인해의 <외톨이> 이주현의 <캐모마일 차 마실래?> 6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한 <살리에르, 웃다>의 문부일 작가의 <한파주의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단편적인 소재를 길게 늘려 장편으로 만든 작품이 있는가 하면, 짧으면서 강한 인상을 주는 단편 수작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 장편 위주의 청소년문학상인데, 단편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푸른문학상을 높이 평가한다.   

단편의 최고 매력인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신인작가답지 않다. 유은실 작가의 <만국기 소년>을 보면서 감탄했던 단편의 매력이<외톨이>에도 넘치고 있어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전개와 극적인 순간의 속 마음을 수선떨지 않는 내면묘사로 잘 보여주었다. 작가들은 심리학이라도 공부한 걸까?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다. 청소년기를 거처온 작가라고 해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하겠지만, 이 책에 묘사된 주인공들의 심리는 잔잔히 흘러가는 물결처럼 자연스럽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어색한 설정과 억지스런 장면 없는 개연성이 돋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물에 합류하듯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표제작인<외톨이>는 그림을 잘 그리는 시욱이가 같은 반 재민이를 '너'라고 지칭하며 관찰자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너'라는 지칭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는데, <외톨이>의 '너'라는 지칭에는 재민이를 업수이 여기는 시욱이의 마음이 들어 있다. 학급 회장으로 선출된 재민이가 '학급회장을 맡을 만큼 책임감도 많지 않고, 더구나 제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폼나게 사양하며 아우라를 형성했기에 아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 시욱이는 조용히 공책에 만화만 그려 '샤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저 외톨이만 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욱이는 재민이의 부름을 입어 무리에 끼었지만, 한 순간 재민이의 뜻을 거스려 외톨이로 전락한다. 닭살스런 문자까지 주고받던 관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한 시욱이는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주먹을 날려 허세뿐인 재민이의 실체를 공개한다. 재민이의 아우라에 기죽어 있던 아이들은 시욱이를 따르며 자신들의 속내를 대리만족하려 든다. 걷잡을 수 없이 휘둘려진 시욱이는 자신의 뜻과 다르게 재민이를 응징하는 주먹이 되었을 뿐이다.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이 재민이를 외톨이로 만들어버렸지만, 자기야말로 철저한 외톨이가 되었다는 처절할 깨달음만 안겨줬다. 재민이의 아픈 비밀을 폭로한 시욱이는 자신이 진짜 용기가 뭔지 모르는 비겁한 겁쟁이라는 자괴감에 빠진다. 어쩌면 우린 모두 진실을 밝히기보다 속내를 감추고 비겁하게 숨어버린 외톨이들이 아닐까... 

아이들은 내 주먹을 믿고 나중에는 무얼 요구할까? 갑자기 움켜쥔 내 주먹이 외톨이처럼 느껴졌다. 손톱 밑에 낀 빨간 너의 피가 나를 비웃는 듯했다.(31쪽)

중학교 2학년 때 촌에서 도시 학교로 전학했던 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외톨이'로 지낸 적이 있다. 작은 키로 맨 앞자리만 고수하던 내가, 전학생에게 부여된 68번으로 맨 뒤 빈자리에 앉아야 했던 기억은 아직도 마음이 시리다. 조용한 관찰자로 지내며 마음에 드는 아이를 발견해 친구가 되고 싶다고 쪽지를 보냈는데, 내가 보낸 쪽지 뒷면에 친구되기를 거절했던 그 아이의 메모는 참담한 아픔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난 한참을 친구 사귀는게 힘들었고 마음을 숨기고 사는 아이로 지냈다. 그 후 치룬 첫 시험에서 새까만 촌닭이었던 내가 그 친구의 눈에도 들었는지 가까이 다가왔지만, 나는 친구가 되고 싶던 간절한 설레임은 일지 않았다. 그 애는 제법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였기에 나같은 촌닭이 친구되자고 해서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그럴수 있겠다고 이해하지만 내게는 오랫동안 딱지가 지지않는 상처였다. 그 아이는 나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영화 '타짜'에서 '나 이대 출신이야!'라고 말했던 김혜수처럼 그녀는 이대출신으로 잘 살고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캐모마일 차 마실래?>는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복지시설에 간 나(석이)와 왕재수(지연)의 갈등 구조다. 나는 왜 왕재수가 청소도 못하게 청소기를 빼앗고 걸레를 빼앗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생활지도 선생님 지시에 따라 화장실 청소도 하고, 시각장애 아저씨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동무도 해드린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아이들의 연주회를 위해 부족한 악기(리코더, 탬버린)를 가져간 석이를 타박하면서도 거두는 것으로 해결된다. 연주회 자리에 함께 한 석이에게 지연은 캐모마일 차를 컵에 나눠주는 것으로 마음의 손을 내민다. 어쩔 수없이 억지춘양으로 하는 봉사활동의 문제점도 내비치고, 마음을 다친 지연이에게 인정받고 공감을 얻기까지 석이도 조금씩 여물어간다. 복지시설에서 지내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 사이의 오해와 간극을 좁히려면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지연이의 말은 봉사하는 사람을 움찔하게 만든다.     

소리가 잘 나는지 몰라. 다들 저런 쓰레기 갖다주고 생색내는 걸 보면 정말 웃겨. 우리가 무슨 거지인 줄 아나? 넌 청소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 확인시간 필요해서 하는 거잖아. 그깟 청소 내가 하면 되니까 다음부터 오지 마. 재수없어.(49쪽)

우리 막내도 올해는 2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작년에는 서둘러서 도서관이나 어린이집 봉사로 마무리 했는데... '남들 봉사활동 하러 다닐 때 뭐 했느냐고 화를 내는 엄마가 떠올랐다.'는 글을 보고, 나도 잔소리를 하려다가 그만 두고 대신 이 문장을 읽어줬다.^^ 


세번째 <한파주의보>는 한겨울에 얼어버린 수도관과 인간관계의 한파주의보가 해제되는 중의적 의미를 살려낸 수작이다. 2주 전에 아빠와 결혼한 새엄마 뽕미씨와 단둘이 있게 된 진오의 난감한 상황을 밀도있게 그려간다. 얼어버린 수도관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들이붓거나 가열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간관계도 급속하게 친해지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가며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춘기때 새엄마와 함께 지내는 게 괴로웠던 뽕미씨는, 자신이 진오의 새엄마가 되어서는 그런 아픔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배고픔을 겪어보고 새엄마와 힘들었던 성장기를 가진 뽕미씨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인간적인 소통과 공감으로 둘 사이의 한파주의보가 해제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공부는 열심히, 유흥은 틈틈히" 나봉미 여사의 멋진 어록은 청소년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킬 거 같다.^^  


청소년의 마음에 먼저 공감해주고, 그네들의 조용한 외침과 몸부림까지 들어주는 어른은 많지 않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제자, 친구와 친구 사이의 소통부재는 결국 모두를 외톨이로 만들고 한파주의보로 얼어붙게 만든다. 외톨이가 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한파주의보를 해제시키는 힘은 따뜻한 캐모마일(꽃말-굴하지 않는 강인함, 고난 속의 강한 희망) 차를 나누는 것일지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세 작품을 한 줄로 꿰면,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와 고민을 해결할 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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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수정 중인데, 저는 추천 눌러버렸네요. 아하하.
뒷부분이 좋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

저두 학창시절에 외톨이인적 있었는데. 그런데 물어보면 다들
그럼 경험있대요. 아마, 누군가를 외톨이로 만든 적도 있고 제가 외톨이가 된 적도 있는데,
제 억울함만 기억나는걸까요?

순오기 2010-12-21 19:07   좋아요 0 | URL
으~ 수정중.ㅋㅋ
역시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이 돼야 좋은 책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을 갖고 있어요.^^
 
시험 괴물은 정말 싫어! 작은도서관 31
문선이 글.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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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초등생들의 마음을 딱 알아주는 동화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하루에 한 챕터씩 읽어줬는데, 15분이 넘어가도 싫증내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다.
들으면서도 자기들 마음과 같은 대목이 나오면 "맞아요!" 하면서 추임새를 넣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는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만 봤다.
하지만 요즘엔 중간. 기말 시험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학력을 평가하는 일제고사도 본다.
성적이 나쁘면 학교 망신이라며 예비시험도 치고
엄마들은 그에 앞서 한 발 먼저 가르치려 난리를 떨어 아이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시험 괴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외치겠는가!


"아직 어려서 안쓰러워요. 겨우 초등학생인데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다 봐주다간 저만치 앞서간 아이들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돼요.
그때 땅 치고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니까요." (14쪽)


도대체 이제 겨우 초등학생한테 늦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남들이 하니까 우리 아이만 가만두면 뒤떨어질까봐 불안하고 초조한 엄마들의 돈지랄(?)에 아이들은 녹초가 된다. 
많이 배운 엄마일수록 더 많이 가르치려고 드니 정말 아이를 공부하는 기계로 보고,
엄마의 조종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초등생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학원을 전전하고 있으니 책 읽을 시간은 있겠는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서현, 100점! 서현이는 이번에도 날 실망시키지 않았구나. 잘했어."
"68점, 넌 공부랑 원수졌냐, 공부 좀 해라. 공부해. 공부해 남주냐?" (20~21쪽)

시험을 잘 본 서현이와 점수가 낮은 준석이에게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옳지 않다.
'격려'란 잘 못한 아이에게 오히려 더 필요하다. 그리고 요즘은 '공부해서 남 주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잖아도 제 잘난 맛에 이기적인 아이들이 공부해서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봐 무섭다.
공부해서 저혼자 잘 먹고 잘 사는게 아니라 남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문선이 작가는 직접 그림까지 그려, 글과 그림으로 아이들 마음을 잘 표현했다.
학교 선생님이라 아이들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은데, 선생님의 역할은 좀 부정적이다.
아마도 작가가 경험한 초등 선생님들의 안 좋은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주면서 "여러분 선생님도 이래요?"하고 물었더니, 다행히 아니라고 답했다. 
오늘도 엄마들 모임에서 "어린 아이들한테 함부로 말하는 선생님에 대한 성토가 줄줄이 나왔다.
대체로 교사 경력이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아이한테 함부로 하지 않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가 괴로운 준석이, 방과후에 남아서 공부하는 70점 이하의 아이들은 괴롭다.
시험 괴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준석이는 우연히 주운 시계 때문에 환타지를 맛본다. 
환타지 세계의 경험으로 시험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상상의 자유도 없다면 숨통이 막혀 살 수가 없을 것이다. ㅠㅠ

 


공부를 잘하면 잘 할수록 하나라도 틀릴까봐 전전긍긍하는 서현이. 
엄마는 서현이가 한개만 틀려도 이라크로 보내버린다고 했단다.
이라크는 전쟁중이라 죽을까봐 걱정이 된 서현이는 급기야 컨닝까지 하고. 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걸까?  
시험괴물 때문에 괴로운 아이들 심리를 잘 그려냈지만, 어른의 시각으로 묘사된 것은 살짝 걸렸다. 
예를 들면 아래의 표현은 어른들의 묘사고, 아이들 정서에 맞는 표현을 찾아야 될 거 같다. 

오늘은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맷돌처럼 무거운 게 꼭 전쟁터로 가는 것 같습니다.(18쪽)
정말 이런 날은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같이 학교에 가기 싫습니다.(19쪽)
"엄마가 알면 날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당장 이라크로 보낼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
한 개라도 틀리면 이라크로 보내 버린다고. 전쟁터에 가면 나 죽을지도 모르잖아."(74쪽)

오히려, 1학년 아이가 쓴
"하느님, 부처님, 산신령님! 살려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라는 표현이 아이들 감성에는 더 적절한 거 같다.

 


준석이는 점수가 나쁜 친구들에게만 비밀을 알려주고 함께 모여 공부를 했는데,
놀랍게도 준석이 반 아이들은 모두 시험을 잘 봤다.
100점 받은 아이들이 수두룩, 대체 어찌된 일일까? 
준석이와 친구들은 그래도 의리와 우정을 아는 녀석들이라, 시험괴물을 만든 어른들보다 낫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공감 백배라면, 엄마들은 살짝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는 책이다.
아이들한테 시험 잘보게 공부만 하라고 닥달하는 엄마가 되지도 말고,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다고 뻥치지도 말자.ㅋㅋ
아이들 스스로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주고, 
아이가 무얼 좋아하고 어떤 소질이 있는지 찾아내도록 지켜보는 엄마로 거듭나야 할 거 같다.  

대체로 시험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시험을 괴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부모들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두둑한 포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이 있다.
과연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시험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이 책은 아이들이 시험 괴물을 이겨낼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시간투시기를 함부로 이용했다는 죄 때문에 시간 경찰과 같이 미래의 감옥으로 간 3학년 2반 친구들은 어떻게 됐을까?
책이 끝나고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동화로 1.2학년 어린이도 재밌게 읽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시험 괴물이 없는 세상을 만들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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