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쳐 줄게 사계절 성장 그림책
앤더 글.그림, 신혜은 옮김 / 사계절 / 2010년 11월
절판


이 책은 아이들 피아노 교육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으레히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는데
과연 피아노 대회에 나가는 게 좋은지, 안 나가는 게 좋은지...
아이가 좋아서 피아노를 배우는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지...

음악소리가 나오는 피아노 모양의 음악상자를 좋아하는 캐시를 위해 엄마는 진짜 피아노를 사 주었다.
캐시는 한시도 새 피아노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뭐라도 흘릴까 봐 피아노 근처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캐시는 피아노를 마구 두들겨대는 동생이 싫었고,
책이 없으면 피아노를 칠 수 없을거라고 책을 빼앗았다.
하지만 씩씩대는 캐시도 사실은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었다.ㅋㅋ

캐시는 엄마가 모셔온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뛰어난 아이라고 칭찬을 했다.
캐시는 칭찬에 춤추는 고래처럼 실력이 나날이 좋아졌다.

선생님은 두 달 뒤에 있을 연주회에 캐시가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아노 연습 시간이 길어지면서 캐시의 즐거운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연주회 날이 가까워지면서 예민해진 엄마는 몇 번이고 되풀이시키고...
캐시는 예쁘게 차려입고 연주회에 가면서도 안 나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캐시는 불안하고 긴장해서 선생님의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마침내 차례가 되어 등 떠밀려 무대로 나갔다.

작은 연주회장이었지만, 캐시에게는 관객들로 꽉 찬 오페라극장처럼 느껴졌다.

캐시는 몹시 떨렸고, 조명은 눈이 부셨고, 발은 사막의 모래 위를 걷는 것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캐시는 피아노 앞에 앉아 나쁘지 않게 연주를 시작했지만,
곧 너무 빠르게 치고 몇 번 음이 틀리면서 연주는 엉망이 되어 갔다.
캐시는 마지막 반복을 하기 전 연주를 멈추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당황한 캐시가 무대 밖으로 달려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순간...
엄마가 캐시를 끌어안았고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엄마와 캐시는 인사했다.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캐시의 마음에 남아, 전처럼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와 선생님이 격려해주었지만 캐시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소중했던 피아노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냥 탁자가 되어갔다.

피아노를 좋아하던 캐시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린 연주대회는 지금도 계속 된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해 가르쳤지만 썩 즐기지는 않았다.
큰딸은 다섯 살부터 초등 3학년까지, 둘째는 일곱 살부터 2학년까지, 막내도 일곱 살부터 2학년까지 체르니 30번이나 40번까지 배웠지만, 그만하고 싶대서 악보를 못 읽거나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답답함은 면한 거 같아 그만 두었다. 피아노쌤한테 대회에 내보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피아노를 즐기거나 소질도 없는데 비싼 참가비 내고 트로피를 나누어 받는 거 같아 사절했다. 하지만 삼남매가 무대에 서는 경험을 통해 뭔가 느낄 수 있던 걸 원천봉쇄한 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답을 알 수 없다. 다만 캐시처럼 그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게 위로가 된달까...

어느 날 심한 열 감기에 걸린 캐시의 동생은 사정없이 울어댔고...

캐시는 동생을 달래 주고 싶어서, 잡동사니를 치우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울지 마. 누나가 피아노 쳐 줄게!"

피아노 소리는 아름다웠다.
가문비나무가 평생을 자라야만 좋은 피아노로 만들어진다고 알려 줬던 아빠 말씀이 생각났다.
가문비나무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소리처럼, 숲 속에는 오색 빛깔 영롱한 나비들이 나풀거리고 신비로운 꽃향기가 가득했다.

우리아이들은 피아노 없이 자라서, 어디서든 피아노가 있으면 좋아하며 달려들었다.
어릴 땐 그런 모습이 귀여워 친척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큰딸은 초등 3학년에 그만 둔 피아노를, 중학교 때 다시 배우고 싶대서 동요와 가요반주를 배웠다. 다행히 어려서 배웠던 피아노 솜씨가 금세 되살아났고, 그때 다시 배웠던 덕에 교대의 음악 교육과정을 나름대로 따라 가는 것 같다.

캐시의 동생처럼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면서 띵동띵동 소리를 내보는 아이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학원을 다녀도 수준이 높아지고 연습량이 많아지면, 특별한 소질이 없고 즐기지 않는 아이들은 그만두고 싶어한다.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게 제일 좋다는 걸 알지만,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서는 종종 현명함을 잃게 된다. 아이들 어릴 때의 피아노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 아닐까? 어쩌면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부모들의 한풀이 내지는 대리만족일지도... 이 책을 읽으며 자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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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1-03-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은 보며 행복할지 몰라도 우리 딸도 보면 피아노 치는 것도 싫어했고, 대회 나가는 것은 기겁을 했죠. 초등 2학년 때까지 치다 미련없이 그만두었어요. 사고의 전환~ 내가 피아노 치지 말고 남이 치는 거 들으면서 살면 되지 뭐..

순오기 2011-03-02 07: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피아노를 즐길 줄 아는 아이로 키우면 되는데...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은 자식들 일에는 종종 까먹는 거 같죠.^^
남들이 치는 거 들으면서 즐기자~~~~ 동감이에요.ㅋㅋ

송도둘리 2011-03-0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렸을 때 선생님한테 혼나가면서 배워가지고..으..아직까지도 별로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아요.^^; 근데 마지막 사진을 보니까 마음이 푸근해지네요. 그러고보면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순오기 2011-03-02 07:47   좋아요 0 | URL
무얼 배울 때 혼나면서 배우면 좋아하던 것도 싫어지겠죠.^^
우리 애들은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피아노 있는 집에 가면 꼭 두들겨 보려고 했어요.ㅋㅋ
어쨋든 답답함은 면하라고 어려서 피아노를 가르치긴 했어요~

2011-03-0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1-03-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교대를 다니나 보군요. 혹여 제 후배가 아닐런지... (서울 교대)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리고 축하 드립니다.

순오기 2011-03-11 00:18   좋아요 0 | URL
유감스럽게 후배는 아니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