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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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2년 만에 처음 세상에 내 놓은 백수린 작가의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는 작가가 이 소설을 얼마나 고심해서 썼는지가 한 눈에 보였다. 여러 에피소드가 교차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거기에 관련된 인물 각자의 삶 모두가 의미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 작가의 노력이 한편으로 종합 선물 세트에 들어 있는 과자를 먹는 듯한, 여러 맛의 과자를 먹어 결국 내가 먹은 것이 어떤 맛인가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했다. 소설가가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 장편 소설을 쓰는 것이라면 백수린은 잘 통과했다고 봐도 좋지만, 압축적인 뭔가가 없어 아쉬웠다. 아마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 배치한 반전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 부분이 가장 아쉽고 식상했다. 차라리 그냥 평범했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살다가 갑자기 눈앞에 없어진 가족이 있다면 남아있는 사람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맘대로 웃지도 못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조차 죄가 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그들을 향한 평가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해미에게 갑자기 사라진 언니는 해미에게 늘 그늘을 주었고 사랑에 대한 감정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미와 우재의 사랑을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응원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실업난과 외화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인력수출의 일환으로(p.44)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에 대한, 그들의 독일에서의 삶도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대다수 집안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독일행을 택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의 젊음과 청춘은 빛났고, 각자의 꿈과 신념을 좇아 사는 모습이 멋졌다. 1973년 국제 석유파동의 여파로 재독 간호사들이 강제송환될 위기에 처했을 때 빨갱이라는 오해를 받아도 앞장서서 서명을 받고 독일과 공개 토론회를 열게 하는 그들의 모습도 너무 좋았다.

 

K.H를 찾기 위해 선자이모의 일기를 읽고 열심히 추리해나가는 해미, 레나, 한수의 우정도 재미있었다. 중간쯤 선자 이모와 K.H의 관계에 대해 예상했지만 근호라는 이름이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며 크게 납득되었다.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선자 이모의 여러 권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이 구절은 선자 이모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이 소설의 끝이 식상하다고 얘기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각자의 삶에 식상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선자 이모와 K.H의 삶은 존중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불행했을 것이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지?”.....

내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 테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답지?”

-p.74]

 

눈부신 안부를 읽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아 캐나다를 여행 중인, 자신이 매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지인에게 사진 찍어 보내줬다. 더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지인이 한 번쯤은 자신보다 더 아래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어렵겠지만 자신에게 탈출해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도 물어줄 수 있는 용기를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은 제주도의 야자수에 대한 이야기다. 본래 제주에는 야자수가 없었는데, 남국의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심어진 야자수(p.307)가 이제 제주의 일부가 되었다. 야자수 스스로도 힘을 내고, 그 야자수를 잘 키우기 위해 누군가도 노력했을 것이다. 어딘가에 필요하고 잘 살 수 있는 것은 본래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나의 지인이 알게 되기를.

 

눈부신 안부는 삶의 아득함을 많이 느끼는 길 잃은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 책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아 눈부신 세상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p.315)’라는 작가의 말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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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8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제주도 야자수 이야기와 페넬로페님의 멘트가 인상적인데요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는 삶이란 없겠지요 ...... 오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팔월도 거의 다 갔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8 12:44   좋아요 2 | URL
서곡님, 감사합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은 따뜻함이 있어 좋은데 뭐든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지니 기분이 좀 이상해요. 가을이 오나봐요.
이번주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미미 2023-08-28 1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p.74 인용문을 사진찍어 보내신 페넬로페님의 따뜻한 마음이 그 분께 잘 닿았으면 좋겠어요.
살 맛 나게 해주는 풍경, 글, 음악, 미술같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가는 거 삶에서
어떤 영양제보다 중요하다고 느껴요. 저는 몇 년 전에는 홍광호 노래 듣다가 살아 있음에
감사했더랬습니다.(페넬로페님덕분에 요즘 그의 노랠 다시 듣는 중이라 생각남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8-28 13:40   좋아요 2 | URL
책 읽다가 저런 문장 만나면 가슴이 벅차요. 음악, 미술, 풍경 다 정말 그렇죠(공감, 공감)
이 소설도 좋은 문장 많았어요.역시 작가란 대단한 사람이예요!!!

새파랑 2023-08-28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 재미있어서 카페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ㅋ 재미있긴 했는데 결말이 너무 아쉬웠어요. 평범하게 끝내도 됐을거 같은데 ㅡㅡ

그래도 좋았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8 22:05   좋아요 1 | URL
네, 잘 읽히고 내용도 좋았어요
결말에 대한 평가가 저와 똑 같으시네요. 저도 평범하게 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읽는나무 2023-08-28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합선물세트 상자 안에 담긴 과자를 먹는 것 같단 생각에 저도 공감되는 바 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관계와 저 관계가 연결되는 것 같아 보이긴한데 어떤 것이 더 부각되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파독 간호사들의 주체적인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주된 것인 듯한데 읽고 나니 제겐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한 주인공의 심경이 더 크게 다가와 파독 간호사였던 선자 이모의 삶이 일부는 기억이 희미해졌달까요?
선자 이모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였을텐데 말이죠.^^;;;
암튼 첫 장편이 그래도 그리 나쁘지 않다. 전 그리 판단하고 두 번째 장편도 기대해봅니다.^^
단편은 참 좋았었는데...예전에 김초엽 작가의 단편을 읽다가 장편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좀 비슷했었네요.ㅋㅋㅋ

페넬로페 2023-08-28 23:42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생각이 저와 똑같아요. 백수린 작가가 좀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들만큼 읽고 나서 확실한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읽기 좋았고 따뜻했지만 뭔가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어요.
이 소설은 한 사람이 주인공은 아닌것 같고 선자이모의 얘기가 영화 윤희에게와 좀 비슷했어요.
우리가 백수린 작가를 좋아하니 두 번째 장편을 기대해 보아요^^

희선 2023-08-29 0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래 제주에 야자수 없었군요 그것 때문에 제주도가 다른 나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던데... 그걸 제주에 심고 그렇게 키운 사람이 있었겠네요 독일에 일하러 간 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겠지요 그때 이야기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좋은 건 처음부터 없겠지요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8-29 09:18   좋아요 1 | URL
제주도의 야자수를 무심코 봐 왔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가난때문에 파독 간호사가 되어 독일에 간 경우도 많겠지만 자신의 꿈을 키우거나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도 많더라고요.
주위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삶이 쉽지 않죠.
사는게 참 그래요.

독서괭 2023-08-31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합선물세트 ㅎㅎ 단편만 쓰던 작가가 장편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욕심을 내면 독자가 그걸 느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분이 꽤 있으셨군요^^ 인용문 좋네요. 글을 받으신 분의 마음도 움직였으면...

페넬로페 2023-08-31 19:13   좋아요 1 | URL
장편도 좋았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어요.
단편을 워낙 좋게 읽어 더 그럴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용문 읽을 때 넘 좋았어요.
그 느낌에 공감했거든요^^
 

그리고 바람이 분다.
사방에서 바람이 분다. 연보랏빛 저녁 바람, 분홍빛 아침 산들바람, 으르렁대는 시커먼 돌풍.
오늘의 책들은 종이로 되어 있다. 어제의 책들은 가죽이었다. 성서는 공기로 이루어진 유일한 책, 잉크와바람의 범람이다.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책이다. - P11

아이는 천사와 함께 떠났고, 개가 그 뒤를 따라갔다.
이 문장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게 딱 들어맞는다. 우린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믿으며 그 사람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의 참모습을 놓치기 일쑤니까.  - P12

가난한 사람들의 계층이다. 13세기뿐 아니라 20세기에도 존재하는 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하느님만큼이나 늙고 말이 없는 계층. 하느님만큼이나 노쇠와 침묵 속에 길을 잃은 자들. 이 계층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게 진정한 얼굴을 부여하게 된다.
교회 목재 조각상들의 얼굴보다 훨씬 아름다우며,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얼굴보다 훨씬 순결한 얼굴이다.
가난한 사람의 단순한 얼굴. 가난한 사람, 바보, 거지의초라한 얼굴.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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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로라 엘 마키.기욤 갈리엔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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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안타까웠다. 나와 별로 연관이 없는 곳이었지만(물론 내가 가톨릭교도이지만) 우리의 남대문 화재가 발생했을 때처럼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들려온 소식에 나는 경악했다. 불과 며칠 만에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성금으로 1조 원의 돈이 모였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천억도 아니고 1조 원이 모이다니, 도대체 프랑스인들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가 무척 궁금해진 순간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소식을 듣고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유시민 작가도 유럽도시 기행1’에서 노트르담이 도대체 뭐기에?”라고 쓰고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 역사의 격변기마다 노트르담 성당은 여러 차례 타격을 입어 부서졌고 19세기 초에는 너무 손상되어 철거시키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존폐의 기로에 선 노트르담을 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1831)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시민들은 노트르담 복원 기금 조성 캠페인을 벌여 성당을 완전하게 복원했다.

-p.370/494,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하나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계속 존재하게 했다. 문학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확인해준 셈이다.

 

몇 년 전에 읽은 파리의 노트르담은 어릴 때 읽었던 노틀담의 꼽추와는 너무 다른 소설이었다. 물론 카지모도도 등장하지만 위고는 지루할 정도로 건축 양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시대에 따른 건축 양식의 변화와 대성당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특히 찬미할 정도로 고딕 양식을 사랑했다. 파리와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서술도 어찌나 매력적이든지 가지 않아도 내가 그곳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소설을 읽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켜내겠다는 프랑스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했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뮤지컬로 감상한 레미제라블역시 빅토르 위고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가난, 민중, 인간의 본성, 혁명, 희생 등, 이 소설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왕정주의자였다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가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에 즉위하는 모습을 보고 공화주의자(보수진보)로 노선을 바꾸고, 반체제인사가 되어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던 위고는 작가인 동시에 정치가였다. 위고는 민중과 가난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사형제도도 반대했다. 이러한 위고의 사상은 그의 앙가주망 문학, 연설과 담론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렇지만......

빅토르 위고는 너무나도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위고의 아내 아델 푸셰는 결혼 후 6년 동안 내리 5명의 아이를 낳는다. 위고의 형 외젠과 친구인 생트뵈브는 아델을 사랑했다. 외젠은 이러한 광기로 인해 나중에 정신병원에 간다. 위고의 막내딸 아델 역시 정신병을 앓았다. 위고 옆에는 평생 무수한 여자가 있었다. 정부 쥘리에르 드루에는 아델이 죽고 나서도 위고와 함께 했고, 위고와 불륜에 빠진 레오니 비아르6개월 동안 수녀원에 감금되기도 했다. 위고가 망명 시절에 적은 검은 수첩(p.68)’의 정체는 경악할만한 수준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나의 리비도는 통제할 수 없다는 위고의 행적을 보면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말한 사람이 빅토르 위고(출처-나무위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위고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린 재능 많은 사람이었다. 소위 강남좌파(출처-나무위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식 네 명을 자신보다 먼저 보낸 아픔을 겪었고, 손주에게는 자상하고 따뜻한 할아버지였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한 말인 위고, 유감스럽게도!(p.197)”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위대하지만 유감스러운 면이 많은 사람이 빅토르 위고다

 

빅토르 위고와 함께하는 여름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를 제작한 라디오 방송국 PD로라 엘 마키의 작품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이 프랑스 앵테르 방송에서 여러 패널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담은 책이라 이 책의 내용도 그렇게 방송에서 다루어진 것으로 추측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43개의 짧은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빅토르 위고를 여러 모습으로 서술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되어 좋았다. 4장인 에르나니논쟁은 그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았고, 우리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이다.

 

장 발장과 자베르 경감은 각자 다른 마음으로 신께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장 발장은 늙은 자신을 데려가고(죽게 하고) 젊은 마리우스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한다. 자베르는 끝까지 죄수 장 발장을 쫓아가 단죄시키겠다고 신께 맹세한다. 자신의 신념대로 충직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여주며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위고는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맞닿아있다. 유감스럽기도 한 빅토르 위고지만 이러한 면이 이 사람을 위대하게 한다.

 

 [위고를 읽는 건 하나의 약속이다.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요동친 세기 중 하나를 가로지르는 약속이고, 숭고함을 스치고 무한을 경험하게 해주는 약속이다. 우연이 구해낸 고아들을 만나게 해주는 약속이고, 절름발이들이 사랑을 만나는 걸 보게 해주는 약속이다. 그리고 정치적 용기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약속이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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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23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도 미술 전시장을 여러 용도로 활용해 기금을 상당히
모금한다고 알고 있는데 프랑스는 더 그럴 것 같아요.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위고의 영향도 컸을 테고요 1조원이라니 놀랍네요!

장 발장도 자베르도 시대의 희생양으로 느껴졌었어요.
홍광호 노래 좋아해서 페넬로페님이 올려주신 곡 반갑게 잘 들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3 16:12   좋아요 1 | URL
그런면들이 사실 엄청 부러워요.
문화라는 부분만큼은 프랑스인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 1조원 모였다는 소식 듣고 정말 놀랍고 부러웠어요.

어떤 해석은 자베르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라고도 해요
가을엔 레미제라블 읽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올해 최재림 배우 주연으로 뮤지컬 올린다는 소식이 있어요.
티켓팅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뮤지컬 다시 보고 싶네요^^

독서괭 2023-08-23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만...˝ 뒤에 나오는 위고, 놀랍네요! 그렇게 매력이 있었을까요?? 바람둥이..
레미제라블 뮤지컬 영화 정말 좋아하는데, 공연은 아직 못봤어요. 보고 싶네요 ㅠㅠ 노트르담 대성당을 위해 1조원이라니!! 문학의 힘이란. 국민작가라 더 그렇겠죠?

페넬로페 2023-08-23 19:06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의 내용으로 봤을 때 프랑스인들은 그런면에서 엄청 관용적인 듯 해요.
레 미제라블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는데 사실 노래가 좀 그랬어요. 동시녹음을 해서 그렇다더라고요.
1조원 넘, 놀랍죠~~

희선 2023-08-24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을 때 프랑스 사람이 1조원이나 모으다니 대단하네요 빅토르 위고 소설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군요 빅토르 위고 소설은 거의 뮤지컬로 만든 듯하네요 뮤지컬뿐 아니라 다른 걸로도... 엄청난 바람둥이였다니 그건 이번에 알았네요 빅토르 위고와 불륜에 빠진 레오니 비라르만 수년원에 갇힌 것 같군요 여자한테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런 건 어디나 다르지 않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8-24 01:12   좋아요 1 | URL
몇 년전 뉴스에서 그 얘기 듣고 정말 놀랐어요. 그것도 거의 3, 4일만에 1조 원이 모였거든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레미제라블 뮤지컬이 저의 최애 뮤지컬이예요. 내용도, 넘버도 다 좋고 감동적이예요.
희선님 말씀처럼 위고는 무죄로 풀려났는데 레오니만 그렇게 되었어요. 불공평하지요^^

그레이스 2023-08-31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 어떤가 궁금해요
호메로스와 함께 하는 여름 살까말까 고민하다 제게 있는 책이랑 내용이 겹치는듯해서 장바구니에서 덜어냈는데....

페넬로페 2023-08-31 16:12   좋아요 1 | URL
호메로스는 우리가 아는 내용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저는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어요.
여름동안 라디오에서 집중적으로 호메로스를 다룬다는 점이 부럽네요~~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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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가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분류되지만 정작 난 그녀의 소설보다 두 권의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다정한 매일매일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서의 작가의 문장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잔잔한 바다의 수평선 같은 것이었다. 단 하나의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은 것 같은, 꽉 찬 문장이 좋았다. 거기다 다정하기까지 해 백수린의 에세이는 나에게 힐링을 주었고, 나도 이런 문장과 비슷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이번에 처음 읽은 백수린의 소설은 에세이를 읽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단정하고 잘 정돈된 문장은 그대로였지만, 백수린의 글은 섬뜩하리만치 나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바늘같이 뾰족한 뭔가에 계속 찔리는 기분도 들었다.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8개의 단편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한 번에 직접적으로 다가왔고,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글로벌한 다양한 소재의 글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어떤 종류의 만남이라도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사실 상대방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시간의 궤적에서 서른 살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두고 파리로 공부하러 온 나와,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언니는 어학원에서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과 외로움에 공감하며 서로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여름의 빌라에서의 주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스와 베레나부부의 따뜻한 친절을 받는다. 뜻밖의 만남은 우정으로 이어지고, 그것으로 인한 웃음은 사랑보다 더 끈끈해 질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토해질 만큼의 끈끈함은 식민지 사관에 젖은 독일 남자의 생각에, 술만 마시면 이미 유부남이 된 전 애인에게 전화하는 여자에게 그것은 옳지 않다고 이해시킬 수 있는 부드러운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부당함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나와 지호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고 만다.

 

 

내 삶에서 지나온 무수한 관계(우정)를 생각해본다. 따뜻했고 기뻤던 순간들이 쌓여 나를 풍요롭게 하고 내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주었지만 모멸감으로 인해 끝난 관계는 절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그 누군가는 더 불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다. 그럼에도, 내 힘듦의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모멸감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순간 대체 왜 언니에게 그런 말이 하고 싶어졌는지......그리고 언니의 눈빛도. 행복에는 정해진 양이 있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다급히 내가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라고 언니에게 말했을 때의 그 눈빛.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만 끝내 물에 녹아내리는 물감처럼 한없이 희미해지던.

-p.56, ‘시간의 궤적중에서]

 

아무리 애쓰며 살아도 경계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삶도 있다. 차라리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해있다면 그 삶이 주는 관습과 터부에 얹혀살면 그만이다.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시의 외곽, 조만간 재개발이 이루어질 곳에는 언제나 적나라한 극단이 존재한다. 그 경계에서 냄새나지 않는, 안전한 삶으로 넘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시민은 희망만을 보아야 한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그 결과는 경계 밖에 남겨질 것들을 외면해야만 얻어진다.

 

고요한 사건, 아주 잠깐 동안에의 나와 그는 마음으로는 가난과 약함을 돌아보지만 끝내 자신을 대문 안에 가둔다. 용기도 없을뿐더러 귀찮음과 내 손에 더러움을 묻히기 싫은 이기심이 더 강해서이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항상 뭔가에 쫓기듯이 살며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 들어서는 더 늘씬하고 높은 새 아파트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동안 난 뭐하고 살았나?’라는 자괴감만이 내 속에 가득 차 있다. 이 소설들이 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p.104, ’고요한 사건중에서)’에 확인 사살 당한다.

 

 

엄마로서의 삶은 무엇일까? 20년이 넘도록 엄마로 불리며 살고 있지만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도시의 외곽이 물리적 삶의 경계를 나타낸다면, ‘엄마라는 것은 나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경계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들러붙는 무수한 단어들이 내 본성을 바꾸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존재보다 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랑보다는 책임감이 더 큰 상태로 아이를 돌보았다.

 

사랑을 위해 아이를 떠났던 폭설에서의 엄마, 아이를 안고 있던 순간에, 낯선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아이의 존재보다 자신의 욕망에 순간적으로 사로잡혔던 아주 잠깐 동안에의 엄마를 나는 이해한다. 아이를 떠났지만 평생 그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 것이 분명하고, 다른 남자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몰입했지만 곧 아이에게로 다시 집중하는 사람이 엄마인 것이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나의 할머니에게에서 흑설탕 캔디가 제일 맘에 들었었는데, 책으로 읽은 이 소설은 역시나 좋았다. 작가도 이 단편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열여덟 살 때 쓰다 만 습작 장편의 서두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흑설탕 캔디의 주인공인 난실 할머니는 내가 닮고 싶은 노년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다. 독립적이지만 자식이나 손주에게 이기적이지 않고, 그들을 위해 침묵할 수 있는 할머니, 물리적인 늙음은 받아들이지만 낭만과 자기 자신은 한순간도 잊지 않는 그런 멋진 할머니.....

 

딸아이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날 때 엉뚱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딸아이가 프랑스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한다고 하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것인가였다.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면 난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을 거지만, 처음엔 반대했을 것이다. 언어와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노력해야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위랑 말 한마디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프다.

 

난실 할머니와 프랑스 남자 브뤼니에 씨와의 관계는 사랑이기보다 잠깐 동안의 우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흑설탕 캔디가 녹아 없어져 슬픈 게 사랑이라면, 그 달콤함이 지속되어 난실 할머니의 나머지 생에 기쁨을 주는 것이 우정이라 믿고 싶어서이다.


며칠 전 도서관 가는 길에서 본 남자 고등학교 담벼락에 있던 텅 빈 자전거 거치대이다. 그곳 좁은 공간에서 매미는 큰소리로 합창을 하고 있었다. 온통 매미 소리만 들렸다. 순간 나 혼자만 있다는 느낌이 들며 백수린의 이 책이 생각났다. 더위를 피해 모두들 떠난 그곳에서 오히려 여름을 생각할 수 있었다.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나온 여러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의 삶을 그려보며 나 자신도 그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천진한 달콤함이라니. 각설탕을 입안에서 굴리자, 단맛이 서서히 퍼지고,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져내릴 때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p.200~201, ‘흑설탕 캔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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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8-21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흑설탕 캔디는 백수린 소설 중에 손에 꼽히게 좋더라구요. 할머니 소설 장인 ㅋㅋㅋ

페넬로페 2023-08-21 16:39   좋아요 2 | URL
저도 좋았어요.
배경이 프랑스라 더 낭만적이었던 것도 같고요.

얄라알라 2023-08-23 00:17   좋아요 2 | URL
할머니 소설 장인...ㅋㅋ열반인님, 열반인님 서재에서뿐 아니라 이젠 페넬로페님 서재에 놀러와서도 제가 뿜고 갈 뻔요 ㅎ 즐겁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페넬로페님, 저는 백수린 작가님의 잘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았었는데, 덕분에 감사드려요^^

페넬로페 2023-08-23 01:04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아마 이 소설이나 에세이 읽으시면 백수린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시게 될거예요^^
그리고 좋았으면 좋겠어요.

서곡 2023-08-21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집 잘 읽었는데요 성실하고 세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편은 어떨지 다음 기회에 읽어봐야겠습니다 오후 마저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08-21 16:48   좋아요 2 | URL
이번에 장편도 같이 읽었는데 단편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씨가 계속 더워요.
건강 잘 챙기시길요^^

독서괭 2023-08-21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흑설탕 캔디 참 좋았어요~^^ 단편은 금방금방 잊히는데, 페넬로페님이 언급한 작품들 다 생각나는 거 보니 역시 인상깊은 소설집이었다 싶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엄마들을 이해한다는 말씀에도 공감이요!!

페넬로페 2023-08-21 20:12   좋아요 0 | URL
‘흑설탕 캔디‘ 넘 좋죠.
이 단편집에 있는 소설이 다 좋았어요. ‘폭설‘에서 엄마에게 퍼붓는 장면과 그것을 묵묵히 듣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울컥하기도 하고요^^

독서괭 2023-08-22 09:42   좋아요 0 | URL
오늘 1년전 오늘 쓴 글로 이 책 리뷰가 뜨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별 네개를 줬었네요. 이토록평범한 미래가 다섯개고 이 책이 네개인건 안 맞는데 ㅋㅋㅋ 제가 최근 별점이 후해진 건가 싶습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3-08-21 1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의 빌라>가 좋았어요. 우리에게 덧입혀진 의미들을 다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만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그 가까이에라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단편이예요.
다시 펴보고 싶지만 ...!

페넬로페 2023-08-21 20:14   좋아요 3 | URL
여름의 빌라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더라고요. 캄보디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게 더 맞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미미 2023-08-21 20: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글 정독하려고 PC를 켜고 들어오길 잘했네요 ^^
글을 읽으면서 ‘바늘같이 뾰족한 뭔가에 찔리는‘기분 저도 좋아해요!
거기다 ‘확인 사살‘이라니 찜해야겠어요. 그러고 보면
페넬로페님도 마조히스트적 독서를 하시는 것 같아요ㅎㅎ
(사드를 읽어내신 저 위에 열반인님도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8-21 21:45   좋아요 2 | URL
네, 미미님!
제가 그런 독서와 책을 좋아해요.
그래서 요즘 연애소설이 잘 안 읽혀요.
이 책 읽고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어렵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 오더라고요^^

희선 2023-08-22 0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설탕 캔디>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소설 앞부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쓰다니... 대단하네요 할머니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름이지만 서늘한 이야기기도 하군요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남한테 상처주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 말이 하고 싶을 때는 잠시 말을 안 하는 게 좋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3-08-22 07:13   좋아요 2 | URL
작가들은 그 어떤것에서도 얘기를 연결시켜 쓸 수 있는 사람들인가봐요.
이 소설집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걸 읽은 제 맘이 서늘해질 때도 많았어요.
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3-08-22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설탕 캔디> 단편을 할머니 관련 소설집에서 처음 접하곤 아...이 작가는 찜해야겠다.로 시작해 <여름의 빌라>를 읽고서 와, 이 작가는 최애작가로 등극시켜야겠다.란 생각을 품게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제겐^^
페넬로페 님 리뷰도 꼭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듭니다. 소설 하나, 하나 느끼신 그 감동을 저도 다시 전해 받게 되네요.^^
한 달 전 딸이 <여름의 빌라>를 읽고 있길래 어떤 게 맘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폭설>이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거에요. 폭설이 내렸을 때 엄마와 딸의 대화에서 딸은 원망을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안 할 수가 있냐구요. 그래서 엄마의 입장에서 내가 뭐라고 설명을 해주긴 했었는데....어린 딸은 딸의 입장이라 완전 이해가 안되는 것 같은..ㅋㅋㅋ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문득 백수린 작가는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중년과 노년 여성들의 감정선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란 생각이 들어 뒤늦게 놀라웠습니다. 마치 그 삶을 살아본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곤조곤 소설을 엮어나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턱하니 얹어 놓는 게 좀 지혜롭단 생각도 했구요.
백수린의 소설은 줄곧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란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3-08-22 12:48   좋아요 2 | URL
이 책에 대해 쓸 말이 많았는데 너무 많이 쓰기가 그랬어요.
폭설도 좋았어요.
따님의 의견도 이해하겠어요.
따님의 입장에서 당연히 그 엄마가 이해가 안되겠지요.
저의 딸아이도 이 책 읽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느낄지 궁금한데요.
그래도 제 리뷰를 보여주기는 싫어요 ㅎㅎ
저도 책나무님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다 경험하지 못한 것 같은데 어쩌면 이리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생각하고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 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독어를 배워갈수록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생겼고, 독문학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대학 때에도 교양독어 수업을 들을 만큼 독일에 대한 애정은 계속되었다. 한때 인기 있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도 독일 소설이라 당연히 읽었다. 지금 그 책의 내용은 다 잊었지만, 잘 모르면서 소설 속 분위기에 젖었던 느낌만은 남아 있다.

 

최근에 읽은 백수린의 소설, 눈부신 안부에 작가 루이제 린저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온다.

 

[몇 번의 검색 끝에 나는 루이제 린저가 꽤 독특한 삶의 궤적을 지닌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녀는 히틀러 정권에 반발해 출판금지를 당하고 심지어 투옥당한 적까지 있는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고, 독일 작가치고는 특이하게도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 관련 저서를 여러 권 집필하기도 했던 것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2011년 그녀의 사후 백 세 생일을 맞이해 출간된 전기에서 실제로는 루이제 린저에게 나치를 찬양한 이력이 있으며 작가가 훗날 자신의 일생을 나치에 투쟁한 이미지로 미화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는 점이었다.

-p.158, ‘눈부신 안부’, 백수린, 문학동네]

 

눈부신 안부에 등장하는 인물인 선자이모는 그녀가 쓴 여러 권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 항상 생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문장을 똑같이 적었다. 그 당시 선자이모는 이 소설을 좋아했다.

 

작가 루이제 린저의 이력을 미리 알았더라면 난 생의 한가운데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이력을 알게 되어 실망했더라도 선자이모나 내가 생의 한가운데를 읽으며 느낀 감정이나 감동, 소설을 읽었을 당시의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인지 모르니 내 나이와 그 생각이 떠 오른 장소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강렬한 햇빛 아래에 서 있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 햇빛 아래에 선 그때 갑자기 이방인의 뫼르소가 생각났고, 완벽히 뫼르소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문학은 작가보다는 매번 이렇게 작품의 내용이나 인물로 다가온다. 미술작품과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지껏 내가 만난 위대한 작품이 너무 많기에 그것을 만든 작가들 모두 좋아한다. 평생 단 하나의 작품만 남겼더라도 그것이 내게 깊은 울림과 영향을 주었다면 난 그 작가를 좋아할 것이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고흐, 모네, 고갱은 출생부터 거의 모든 삶의 모습이 달랐다. 모든 것이 달랐기에 인상주의에서 시작된 그들의 작품은 방향이 달라졌고, 삶의 마지막도 각기 다르게 끝을 맺는다. 모네는 초반에는 고생했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는 부와 명성을 누리며 인상주의 화풍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고흐는 생전에 작품을 하나만을 팔 수 있었으며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갱의 삶은 가장 파란만장했다.

 

[그는 자의식이 강한 현대적 주제와 화풍을 추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으며, 그의 접근법은 독특했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규칙과 이론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 전면적으로 저항했다. -p.5, ‘디스 이즈 모네

 

고갱에게 예술가란 예지력으로 사물의 외양 너머를 보고 삶의 심오한 신비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p.5, ‘디스 이즈 고갱

 

빈센트 반 고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신의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인간의 존재를 고뇌하며 가장 감성적인 인상주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p.5, ‘디스 이즈 고흐’]

 

그들이 얼마나 달랐는지는 화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This is~~’ 시리즈에서 이 세 화가의 특징을 나타낸 설명으로도 알 수 있다. 세 화가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보면 물론 그들에게도 약점은 많다. 여러 이유로 모네 가족은 상인인 에르네스트 호슈데의 가족과 같이 살기 시작했고, 모네는 호슈데의 아내 알리스와 가까워진다. 모네의 아내 카미유가 몸이 좋지 않을 때, 알리스는 카미유를 돌보았고, 카미유가 죽자 알리스는 모네의 아내 역할을 한다. 호슈데는 알리스와 이혼해주지 않았고 알리스는 호슈데가 죽고 나서야 정식으로 모네의 아내가 된다. 모네의 아들 장은 알리스의 딸과 결혼한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13살 정도의 소녀와 동거했고, 두 번째 같이 산 소녀에게는 두 명의 아이를 낳게 한다.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메테는 고갱을 이기적이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편지에 썼다.(p.44)’ 고갱이 낙원으로 생각했던 남태평양의 타히티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갈취당하고 있었다.

 

고흐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신경병적인 기질로 인한 괴팍함은 사람과 멀어지게 했으며, 그는 짧은 생애동안 외롭게 살았다. 고갱과 고흐는 사창가에 자주 갔으며 고갱이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에 대해 고흐는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도 그들도 사람인지라 깊이 알아 가면 실망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 앞에 서면 그런 세세한 것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그 그림 자체만을 보게 된다.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깊이와 아우라는 말과 생각이 필요 없게 만든다. 이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게 고민 했을지가 느껴질 뿐이다.


 고흐, 모네, 고갱, 모네, 고갱과 고흐의 자화상(디스 이즈 고흐, 모네, 고갱에서 발췌)


박하경 여행기에서 이나영은 제자 한예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술이 하고 싶은 거잖아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모두 예술을 한다. 그들 중 삶이 개차반인 인생이 있다 하더라도(그렇다고 다 용납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자체에는 열정과 성실, 혼신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작품을 만든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다. 절판되었지만 좋은 책이 틀림없는 디스 이즈~~시리즈의 저자 조지 로담도 좋아하고, 내가 고갱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예술혼을 사랑하게 만든 달과 6펜스』의 작가인 서머싯 몸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다 말하려면 밤을 새워야 할 것 같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현실과는 조금 빗겨있는 위대한 예술은 나를 약간 두둥실 떠오른 상태로 살아가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오히려 내가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힘을 예술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이 들어가며 생각하고 있다.

 

행복하게도 아직 만나지 못한 좋아할 작가가 너무 많다

그들을 계속 찾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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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15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엇, 루이제 린저가 정말 그랬단 말입니까?
그래도 뭐 양심적이긴 하네요. 한국 관련 책도 썼다니
결코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의 한 가운데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할 것 같은데...

페넬로페 2023-08-15 21:52   좋아요 3 | URL
책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맞을거예요. 작가 루이제 린저가 실망스럽지만 저도 ‘생의 한가운데‘는 꼭 다시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바람돌이 2023-08-15 2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루이제 린저의 반전 놀랍군요.
어릴 때 저도 지금은 기억도 안나지만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반했었고, 심지어 대학때는 그녀의 북한여행기도 읽었습니다. 그때 당시 금서.... ㅎㅎ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정나미가 딱 떨어지는..... 약간 작가의 개인사에서도 정도차가 있는거 같아요. 저 에드워드 호퍼 좋아하는데 얼마전에 그 사람이 아내를 때리는 가정폭력범인거 알고 또 정나미가 뚝..... 작품은 좋은데 작가는 싫고 이거 딜레마에요. ㅠ.ㅠ

페넬로페 2023-08-15 21:59   좋아요 2 | URL
아마 그때 생의 한가운데 안 읽은 사람 없을 정도로 엄청 인기 있었죠. 그 소설의 느낌만은 계속 갖고 싶어요.

얼마 전에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에 다녀왔는데 호퍼의 아내가 거의 호퍼 작품의 모델이더군요.
조세핀도 화가였는데 호퍼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 호퍼만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어요.
호퍼가 폭력남이라니 넘 놀라워요 ㅠㅠ

미미 2023-08-15 2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에 대한 호불호와 소설에 대한 관점...정답이 없는 문제겠죠.
작품을 ‘낳는다‘고 출산에 비유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쓰고 출간을 하면 소설은 마치 자식처럼 독자적인 길을 간다고 공감하게된 표현이었어요.
그래도 저 역시 어떤 작가들은(최근)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

페넬로페 2023-08-15 22:41   좋아요 2 | URL
네, 이 문제를 파고 들면 각자의 의견도 여러가지 일 것 같아요. 좋아했다가 실망한 작가도 많아요.
물론 지행합일하는 작가가 최고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도 해요. 작가에 대한 정보와 비판의식을 가져야하는데 제가 작품에 풍덩 빠지는 스타일이예요 ㅎㅎ

희선 2023-08-16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일제 강점기 때 친일한 작가를 작품과 떼어서 보라고도 하더군요 그런 일이 없었다면 더 좋을 텐데... 작품과 작가 아주 생각하지 않기 어렵기도 하네요 작가도 사람이기에 안 좋은 점도 있겠지요 그런 게 이해되는 사람도 있지만,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8-16 01:54   좋아요 1 | URL
아무리 좋은 작품을 남겼더라도 전 친일한 작가는 절대 용납하기 싫어요. 제가 한국 사람이다보니 그런면에서 다른 나라 작가에 비해 민감해져요.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ㅠㅠ

서니데이 2023-08-16 2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90년대에는 루이제 린저 책이 한 시기 유행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 프랑스어 선택 학교도 적지 않았고요.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밤되세요.^^

페넬로페 2023-08-17 16:32   좋아요 2 | URL
루이제 린저 열풍이 엄청 불었어요 ㅎㅎ
그것도 다 지나간 추억이 되었네요.
서니데이님!
날씨가 계속 더워요
건강 유의하세요^^

페크pek0501 2023-08-17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방인, 달과 6펜스. 생의 한가운데 등은 완독했지만 재독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페넬로페 2023-08-18 09:37   좋아요 2 | URL
재독하고 싶은데 읽어야 할 새로운 책이 너무 많아요.
매번 다음으로 미루네요.

그레이스 2023-08-17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이제 린저 읽었었죠 ㅎㅎ

페넬로페 2023-08-18 09:36   좋아요 2 | URL
그땐 웬만하면 ‘생의 한가운데‘를 다 읽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