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독어를 배워갈수록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생겼고, 독문학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대학 때에도 교양독어 수업을 들을 만큼 독일에 대한 애정은 계속되었다. 한때 인기 있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도 독일 소설이라 당연히 읽었다. 지금 그 책의 내용은 다 잊었지만, 잘 모르면서 소설 속 분위기에 젖었던 느낌만은 남아 있다.
최근에 읽은 백수린의 소설, 『눈부신 안부』에 작가 ‘루이제 린저’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온다.
[몇 번의 검색 끝에 나는 루이제 린저가 꽤 독특한 삶의 궤적을 지닌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녀는 히틀러 정권에 반발해 출판금지를 당하고 심지어 투옥당한 적까지 있는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고, 독일 작가치고는 특이하게도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 관련 저서를 여러 권 집필하기도 했던 것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2011년 그녀의 사후 백 세 생일을 맞이해 출간된 전기에서 실제로는 루이제 린저에게 나치를 찬양한 이력이 있으며 작가가 훗날 자신의 일생을 나치에 투쟁한 이미지로 미화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는 점이었다.
-p.158, ‘눈부신 안부’, 백수린, 문학동네]
『눈부신 안부』에 등장하는 인물인 선자이모는 그녀가 쓴 여러 권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 항상 ‘생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문장을 똑같이 적었다. 그 당시 선자이모는 이 소설을 좋아했다.
작가 루이제 린저의 이력을 미리 알았더라면 난 ‘생의 한가운데’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이력을 알게 되어 실망했더라도 선자이모나 내가 ‘생의 한가운데’를 읽으며 느낀 감정이나 감동, 소설을 읽었을 당시의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인지 모르니 내 나이와 그 생각이 떠 오른 장소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강렬한 햇빛 아래에 서 있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 햇빛 아래에 선 그때 갑자기 『이방인』의 뫼르소가 생각났고, 완벽히 뫼르소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문학은 작가보다는 매번 이렇게 작품의 내용이나 인물로 다가온다. 미술작품과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지껏 내가 만난 위대한 작품이 너무 많기에 그것을 만든 작가들 모두 좋아한다. 평생 단 하나의 작품만 남겼더라도 그것이 내게 깊은 울림과 영향을 주었다면 난 그 작가를 좋아할 것이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고흐, 모네, 고갱은 출생부터 거의 모든 삶의 모습이 달랐다. 모든 것이 달랐기에 인상주의에서 시작된 그들의 작품은 방향이 달라졌고, 삶의 마지막도 각기 다르게 끝을 맺는다. 모네는 초반에는 고생했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는 부와 명성을 누리며 인상주의 화풍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고흐는 생전에 작품을 하나만을 팔 수 있었으며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갱의 삶은 가장 파란만장했다.
[그는 자의식이 강한 현대적 주제와 화풍을 추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으며, 그의 접근법은 독특했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규칙과 이론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 전면적으로 저항했다. -p.5, ‘디스 이즈 모네’
고갱에게 예술가란 예지력으로 사물의 외양 너머를 보고 삶의 심오한 신비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p.5, ‘디스 이즈 고갱’
빈센트 반 고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신의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인간의 존재를 고뇌하며 가장 감성적인 인상주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p.5, ‘디스 이즈 고흐’]
그들이 얼마나 달랐는지는 화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This is~~’ 시리즈에서 이 세 화가의 특징을 나타낸 설명으로도 알 수 있다. 세 화가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보면 물론 그들에게도 약점은 많다. 여러 이유로 모네 가족은 상인인 에르네스트 호슈데의 가족과 같이 살기 시작했고, 모네는 호슈데의 아내 알리스와 가까워진다. 모네의 아내 카미유가 몸이 좋지 않을 때, 알리스는 카미유를 돌보았고, 카미유가 죽자 알리스는 모네의 아내 역할을 한다. 호슈데는 알리스와 이혼해주지 않았고 알리스는 호슈데가 죽고 나서야 정식으로 모네의 아내가 된다. 모네의 아들 장은 알리스의 딸과 결혼한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13살 정도의 소녀와 동거했고, 두 번째 같이 산 소녀에게는 두 명의 아이를 낳게 한다.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메테는 ‘고갱을 이기적이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편지에 썼다.(p.44)’ 고갱이 낙원으로 생각했던 남태평양의 타히티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갈취당하고 있었다.
고흐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신경병적인 기질로 인한 괴팍함은 사람과 멀어지게 했으며, 그는 짧은 생애동안 외롭게 살았다. 고갱과 고흐는 사창가에 자주 갔으며 고갱이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에 대해 고흐는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도 그들도 사람인지라 깊이 알아 가면 실망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 앞에 서면 그런 세세한 것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그 그림 자체만을 보게 된다.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깊이와 아우라는 말과 생각이 필요 없게 만든다. 이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게 고민 했을지가 느껴질 뿐이다.
고흐, 모네, 고갱, 모네, 고갱과 고흐의 자화상(디스 이즈 고흐, 모네, 고갱에서 발췌)
‘박하경 여행기’에서 이나영은 제자 한예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술이 하고 싶은 거잖아”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모두 ‘예술’을 한다. 그들 중 삶이 개차반인 인생이 있다 하더라도(그렇다고 다 용납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 자체에는 열정과 성실, 혼신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작품을 만든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다. 절판되었지만 좋은 책이 틀림없는 디스 이즈~~시리즈의 저자 ‘조지 로담’도 좋아하고, 내가 고갱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예술혼을 사랑하게 만든 『달과 6펜스』의 작가인 ‘서머싯 몸’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다 말하려면 밤을 새워야 할 것 같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현실과는 조금 빗겨있는 위대한 ‘예술’은 나를 약간 두둥실 떠오른 상태로 살아가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오히려 내가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힘을 예술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이 들어가며 생각하고 있다.
행복하게도 아직 만나지 못한 좋아할 작가가 너무 많다.
그들을 계속 찾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