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가 나에게 왔을 때, 소문으로 이 책의 분량이 적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기와 페이지 수가 훨씬 더 적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난 이 책을 남쪽 바닷가에 접한 소도시에 사시는 엄마를 뵈러가는 기차안에서 읽을 예정이었다. 번거롭게 다른 책을 한 권 더 가방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이 책은 얇았다.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적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두 가지가 궁금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라는 것과 그 아버지의 세대가 저지른 일본의 만행들을 작가는 어느정도까지 언급했을지의 여부였다.

 

70세가 넘은 작가는 잔잔하고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얽힌 일화를 얘기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어느 여름 날 오후 아버지와 해변에 암고양이를 버리러 간 일상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버려진 그 고양이는 자신들보다 더 먼저 집에 와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한참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보았다. 고양이가 어떻게 그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참 의아했다.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도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가족이란 이 믿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공유하며, 그 무한한 집적으로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부분과 끝부분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작가의 절묘함에 감탄했다. 짧고 압축적인 글에서 많은 것을 얘기할 수 능력이 있기에 이 작가에게 글은 길게 늘일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1917년에 태어난 작가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씨는 사립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이며 학문과 문학을 좋아하고 하이쿠를 열심히 짓는 분이셨다. 그러한 배경이 하루키옹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청년이 된 지아키씨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된다. 길지는 않지만 세 번이나 징집되는 그 시대의 청년은 불행할 수도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침략과 잔인함의 전쟁을 거시적이기 보다는 미시적으로 한 청년에 초점을 맞춘다. 문학과 학문을 좋아했던 청년에게 그 전쟁은 힘들고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이라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아버지도 사람을 죽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렇게 추측의 문장들로 아버지를 얘기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전쟁에 참여한 그 쳥년들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똑같이 잔잔하고 담담한 하루키의 문체가 전쟁을 얘기할 땐 굉장히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읽히는 건 단지 나의 느낌때문일까?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 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흐르고 연결되지만 그것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아마 하루키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선 지아키씨가 아닌, 지아키씨의 본연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다만 그것은 리얼하게 표현될 수 없기에 작가의 추측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키옹은 20년 이상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겨우 화해 비숫한 것을 한다. 그 갈등이 뭔지는 모르지만 가족이란 우연의 결과로 필연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난 그 두 사람이 안타까웠다.

 

예상치 못한 폭설과 한파, 코로나로 인한 걱정으로 난 결국 노모를 보러 가지 못했다. 기차가 아닌 집에서 '고양이를 버리다' 를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좋은 문장들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향에 계신 엄마를 생각했다. 정말 한 번 씩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너무 당신을 잊고 사는 딸이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요하고 신비로운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경이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자꾸 잊게되어 미안하다. 

 

세계적인 거장의 문장으로 표현되는 무라카미 지아키씨의 생애가 부럽다. 

불초한 난 이 밤에 잊혀진 내 아버지를 추억하는 걸로  미안함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P51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p63~64 - P62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P87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P93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 P97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고양이에 얽힌 또 하나의 인상적인 추억이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직 어린 내게 생생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 하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면 이렇게 된다.-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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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0 1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아버지가 오랜투병(엄청난 고통속에서 암,당뇨 합병증으로 고통받다가)을 지켜보면서 화해는 했지만 아버지에 과거를 아들이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솔직하게 세상밖으로 끄집어내서 사과를 해야할지 오랜세월동안 고민했었데요.
60세를 넘기고 부터 중국 난징일대를 돌아다니며 당시 일본이 점령했을때 자료들 수집하고 신문기사 아버지가 다녔던 학교들 샅샅히 뒤져서 조사를 했는데 서류를 펼쳐볼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고 손끝을 떨었을정도로 자신에 아버지가 잔혹한 만행에 주동자중 한명이였는지 아버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고 하더군요.
주동자 명단에 하루키 아버지 이름이 있었다면 중국정부에서 내버려두지 않았을거고 중국내 하루키 책은 금서가 되었을겁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속된 부대 지원부대에 물량공급이 늦어져서 행군을 못한 채 접정지역에서 몇주를 흘려보냈다고 하더군요.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원고를 5-6년동안 붙들고 있어서 담당 편집자들이 속이 바짝 타들어갔었다고 이글이 실렸던 문예춘추 잡지에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원했던 길로 갔던 아들이 아니였고 소설을 썼다고 아버지 한테 말했을때 아버지에 기묘한 표정을 잊을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루키 아버지는 주지 스님에 아들이였지만 다른절에 입양될뻔했고 건강때문에 다시 가족품으로 돌아왔지만 가족품에서 아들로 사랑받고 자라지못했다고 합니다. 입양-파양-전쟁-투병 이런 삶을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하루키 자신이 70을 넘겨서 깨닫았다고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작년초에 밝혔어요.
이런저런식으로 돌려서 말하던 하루키가 요즘은 대놓고 일본 정치인들 아베 스가 마구 비판해요
라디오 진행자 하루키옹은 수다쟁이 옆집 아저씨더군요 ^.^

페넬로페 2021-01-11 07:02   좋아요 4 | URL
네, 책에서도 작가의 아버지가
난징함락 그 후에 중국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하루키옹은 아버지가 난징의 주역이었을까봐서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 같아요^^
그의 아버지의 나이가 그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전쟁에 대한것을 빠뜨릴수가 없으니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여요~~
작가 후기에 역사의 흐름에 대한 썼지만 그걸 메시지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했어요**
scott님!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일어는 진짜 하나도 몰라요~~

바람돌이 2021-01-10 1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역사적 범죄의 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저 불안감. 그럼에도 그것을 묻는것이 아니라 불안에 떨면서도 찾아내고 일아내는 작가적 양심이 인상적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런 에세이는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페넬로페님이랑 scott님덕분에 하루키의 새 매력을 알았습니다.

페넬로페 2021-01-10 14:51   좋아요 2 | URL
저도 바람돌이님과 마찬가지로
하루키 소설 매니아는 아니예요~~
근데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가 글은 잘 쓴다는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책도 짧은 분량에 많은것을
담고있어 역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붕붕툐툐 2021-01-10 14: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부지도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화해를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기에 제가 어린 나이에 황망히 가버리셔서..ㅠㅠ

페넬로페 2021-01-10 14:54   좋아요 3 | URL
붕붕툐툐님께서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시겠어요~~
사람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그저 사랑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이런말 제가 하지만 저도 사실
실천이 잘 안돼요**
미움받고 미워하고 ㅎㅎ~~

붕붕툐툐 2021-01-10 15:07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저 사랑하며 사는게 답인데~진짜 그게 왜이렇게 실천이 어려운건지요?ㅎㅎ 다정하신 페넬로페님도 그러시다니 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헤헷~ 우리 더 열심히 사랑해 보아요!!^^

서니데이 2021-01-15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도착했을때 생각보다 페이지가 작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내용은 좋았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글일것 같기도 하고요.
페넬로페님 좋은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1-15 21:59   좋아요 1 | URL
네, 분량은 적어도 거기에 있는
내용은 충분한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것 같은데
또 주말이 왔네요~~
서니데이님!
주말 잘 보내세요**


scott 2021-02-10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하루키옹에 고양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힘
(*´﹀`*) 축!!카 ㅋㅋ

페넬로페 2021-02-10 17:1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일명 삼식이^^
이 집에는 2명, 옆집에는 3명,
심지어 저 집에는4명도 있는,
통계적으로 집집마다 보통 1명 이상 분포되고 있고,
일반적으로
그들은 가족간의 갈등과 반목의 원인과 대상이 된다.

우리집 삼식이는 나의 딸아이이다.
밤낮이 바뀐 삶을 사느라 나와 식사시간이 전혀 맞지 않고, 언제나 꾀죄죄한 모습으로 집안을 배회한다.
우리는 싸우지 않기 위해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며 자유롭게 살아보기로
암묵적 합의를 본 상태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순환으로 반복하는 삶의 과정에서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이클의 일치를 볼 수 있었다.
밥을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철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읽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이 흘러흘러 오고 갔다.

식사 후 커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딸아이는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고등학교때 배운 ‘생활과 윤리‘ 과목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혹시 철학 입문에 도움이 될 지 모르니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잘 정리된 딸아이의 노트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았다. 거기엔 사색과 토론과 논리가 없는
그저 수능을 위한 철학만이 있었다.
1문제 틀리면 3등급으로 밀려나고,
철학자의 이름과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만 달달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다 까먹어 버리는 그런 시험과목으로서만
존재하는 철학........오래전 내가 배운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나라의 교육.교육.교육.......

이런저런,
코로나, 교육현실, 우리들의 삼식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그냥 오늘 밤은
엄마를 위해 살며시 노트를 내미는
딸아아의 예쁜 마음만을 간직하기로 하자.

[밑줄긋기]

어쩌면 철학이란 당신을 향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애타게 말하고 있는 당신 내면의 목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시도하기 힘든 건 일단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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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06 0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내용이 있네요. 암기위주만 아니었더만, 저것들 중에 한가지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파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봐요. 노트 정리 잘 잘하네요 ^^

페넬로페 2021-01-06 09:42   좋아요 2 | URL
네, 철학이 워낙 방대한 분야라서 han님의 말씀대로 한, 두가지정도라도 관심가지고 알아가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1-06 1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사색과 토론과 논리가 없는그저 수능을 위한 철학만이 위에 한님 말씀처럼 한두가지 주제를 놓고 관련분야 영상 책 다큐등 찾아 봐도 좋을듯한데 학생들한데킄 수능이 우선이라서 ,,,,

글씨 예쁘게 잘쓰네요 ^.^

페넬로페 2021-01-06 09:59   좋아요 2 | URL
중고등학교의 교육이 전반적인 지식의 습득인건 알겠지만 너무 주입식인게 안타까워요~~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갖추게 할 수 있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붕붕툐툐 2021-01-06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 노트에 감동하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1-01-06 10:02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
감사합니다^^

라로 2021-01-06 1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고등학교를 졸업한 따님이 있어요??? 왜 반갑지??😅😅😅 암튼 그엄마의 그딸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왤까요?? 페님의 노트를 보면 비슷할 것 같은 느낌??😅

페넬로페 2021-01-06 13:27   좋아요 2 | URL
네 ㅎㅎ
저도 항상 반가웠어요^^
딸아이와는 닮은듯 아닌듯 해요**

페크pek0501 2021-01-06 1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따님을 두셨네요.
저는 이제야 페넬로페 님이 여성임을 확실히 알았다는...ㅋ

페넬로페 2021-01-06 14:12   좋아요 2 | URL
아이 페크님! ㅎㅎ
저는 여성입니다^^
제 글에서 그게 안느껴지나요?

파이버 2021-01-06 22: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따님 글씨가 정갈하네요 저는 글씨가 괴발개발에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 부럽습니다~

페넬로페 2021-01-06 23:10   좋아요 2 | URL
제 글씨도 많이 악필이예요 ㅎㅎ
그래서 딸아이가 글씨 배우기 시작할때 신경을 좀 쓴 것 같아요^^

초딩 2021-01-07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태성 큰별쌤의 ‘역사의 쓸모‘가 생각납니다.
ㅜㅜ 외우기로 지쳐 역사를 멀리하게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쓰신 책이요.

근데.. 따님 글씨 참 예뻐요.

페넬로페 2021-01-07 23:38   좋아요 1 | URL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안됐어요~~
공부가 재미 없으니 게임에 몰두하겠지요^^
초딩님!
날씨가 추워요~~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1-01-08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트에 감탄했어요.

전 삼식이 둘이랑 있어요. 큰애는 일명 문간방 총각이에요. 낮에 일어나면서도 세끼 다 챙겨먹는 야무진(?) 사람이에요. 그런데 엄마를 닮아 악필이고요. 저런 노트는 상상도 못할 걸요.

페넬로페 2021-01-08 12:50   좋아요 0 | URL
문간방 총각!
아! 표현좋고 절묘합니다 ㅎㅎ
삼식이의 시대를 회상할 수 있도록 빨리 코로나가 사라지면 좋겠어요^^

다락방 2021-01-26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트를 건네는 딸아이의 마음을 병 속에 담아 간직하고 싶네요. 뚜껑 꼭 닫아서요. 그러다 피곤하고 지친 어느 날이면, 혹여 서운한 어떤 날이면 열어볼 수 있게 말예요.

페넬로페 2021-01-26 14:2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다락방님 말씀이 맞아요~~
자식을 키운다는게 너무 힘들지만
한번씩 열어볼 수 있는 저런 유리병을 선물해줘서 숨을 쉴 수 있어요^^
다락방님의 글이 시 같아요^^
 

 

 

 

 

 

 

 

 

 

 

 

 

 

나에겐 철학이 너무 어렵다. 재미도 없다. 그래서 읽을 책을 살 때도 철학에 관련된 책은 항상 뒤로 밀린다. 내가 철학을 싫어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그 모든게 나의 역량부족이지만), 고등학교때 들은 철학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그때 질려버렸고, 심지어 그 선생님을 미워했다. 대학 1학년때 교양으로 들은 철학수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잘생긴 얼굴에 검정색 한복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강의를 하시던 강사분은(도올 선생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땅찮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받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들에게 휘몰아치는 질문들은, 우리를 더 주눅들게 하고 심지어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떻게 철학을 좋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철학은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은 오기일 수도 있겠다.

철학 조금 모른다고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겠지만 무슨 강박인지는 몰라도 꼭 알고 싶고, 그 세계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 2021년엔 일단 철학에 대한 가벼운 책들을 읽어 보기로 했다.

 

'소르본 철학 수업' 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빌린 책이다. '희망 도서' 는 책에 대한 나의 안목이 들어있는 것이다. 내가 신청한 책이 도서관에 계속 소장되고, 다른 사람들도 읽는 것이기 때문에 신청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낸 세금이 그 책에 들어있기에 내 돈으로 산 책은 던져두고라도(사실 처박아놓고) 웬만하면 희망도서는 꼭 다 읽고 반납하려 한다.

 

 '바칼로레아' 라는 단어만 들어도 존경스러운 프랑스, 그것도 소르본에서 작가가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고 모든 것이 철학적일 것 같은데, 이 책은 그 좋은 재료로 너무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 낸 듯하다. 내가 철학 이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험에 철학적인 것을 입힐 때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인용도 틀렸다. 새 책을 처음으로 받아 읽을 수 있는 희망 도서에 대한 사랑으로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사실 별로 좋지는 않았다.

 

좋은 재료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의 냉장고는 언제나 거의 비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요술처럼 나에게 뚝딱 아주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다. 좋은 재료를 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은 수년간의 경험과 연마와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음식을 해주시면서 "뜨끈하게 먹고 속이 일어나도록 해라"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책을 낸다는 것도 그런게 아닐까?

'정성스럽게 연마해서 독자들의 속을 일으키게 하는 것' 말이다. 

 

책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난 그저 나만의 느낌을 적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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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05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저에게도 먼가 숙제같은 것인데, 막상 시작이 잘 안되네요. ㅠㅠ

페넬로페 2021-01-05 08:51   좋아요 0 | URL
철학은 어렵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책이 있어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도 고민이 돼요~~
쉬운 입문서부터 차근차근 읽어볼까 합니다^^

다락방 2021-01-05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저는 어딘가에서 이 책 인용문 보고 이 책은 안읽기로 생각했는데 페넬로페 님의 이 글을 보니 역시 패쓰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럴 때 제가 읽은 좋고 또 쉬운 철학책을 똭- 권해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제가 철학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안타깝네요 ㅠㅠ

페넬로페 2021-01-05 08:5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별점을 많이 주셨더라구요~~
근데 솔직히 안읽으셔도 됩니다 ㅎㅎ
세상엔 읽을 책이 많고 좋은 책들을
읽을 시간도 부족하니까요~~

라로 2021-01-05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관심 갔는데 페넬로페 님의 글을 읽으니 예전에 읽었던 밑줄이 다였나?? 싶네요. 😅 철학책은 아니지만 혹시 아직 안 읽으셨다면 <코스모스> 강추해요!!! 우주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게 아니라 철학적인 (제 생각에) 얘기도 많이 나와요!! 저는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왜 이제 만나게 되었는지...다 인연이겠지만 이 책은 정말 대단해요!!!👍👍👍👍👍 철학책 읽으시기 전에 읽으심 좋을 듯요!😊

페넬로페 2021-01-05 08:57   좋아요 0 | URL
작년에 코스모스를 읽었어요~~
저도 미루고 미루다가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라로님! 바쁘신데 책도 열심히 읽으시는 모습에 늘 배우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1-01-05 09:02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라로님의 코스모스 독서를 보면서 내년에 코스모스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해봅니다. 2021년에는 성경, 2022년에는 코스모스!!

scott 2021-01-05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르본 철학수업
책제목만으로 봤을때 프랑스 입학시험에 철학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라고 추측만 ㅎㅎ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그리스 로마 철학을 다룬 인용이 틀렸다면
이책에 저자는 철학을 제대로 학습한것 같지 않아 ㅎㅎ 보이네요^.^

페넬로페 2021-01-05 11:07   좋아요 1 | URL
저도 제목만 보고 철학에 대해 좀 배울 수 있을줄 알았는데
저자의 개인적인 것들이 많았어요~~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헤더 로즈 지음, 황가한 옮김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헤더 로즈의 장편소설인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이 잘 된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여기저기에 자잘한 인물들을 많이 배치한다. 예술에 대한 것을 나타내고자 수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등장시킨다.

 

"수란이 익기를 기다리는 소년, 공원에서 음악을 듣거나 빗속을 걷는 사람들과 센강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벽 앞의 사내들을 겨냥한 총살형 집행대의 총, 활짝 핀 수련과 비통한 절규, 누구 마음속에나 있는 빨간 사각형, 밀밭을 가로지르는 색채의 리듬, 밤하늘에 소용돌이치는 별들."

(조르주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데스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2차원 농민 여성의 회화적 사실주의' 속칭 '빨간 사각형', 빈센트 반 고흐의 밀밭 연작과 '별이 빛나는 밤' -옮긴이 주) -p378

 

이 책에는 저렇게 나열된 문장들이 많다. 책의 뒷편에 책에 등장한 예술가들의 목록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물론 번역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앞뒤 맥락이 연결되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도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굉장히 흥미롭다. 여기에는 두가지 중요한 플롯이 있다. 이 두 개가 스토리를 이어가는 기둥이 된다.

 

첫번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되었다. 2010년 MoMA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아트리움에서  '예술가와 마주하다' 또는 '예술가가 여기있다' 라는 제목으로 마리나는 3월 9일 부터 75일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한 의자에는 마리나가 앉아있다. 빨간 색 드레스를 입고 하루종일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아주 꼿꼿이 앉아 있다. 마리나의 맞은편 의자에는 관객중 누구나 앉을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고만 있다. 시간제약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의 내면을 세상 사람들이 보거나 듣거나 비판하게끔 확대해서 보여줄 리 만무했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가와 마주하다》의 핵심일지도 몰랐다. '이리 와서 당신 자신이 돼라' 는 초대가. 의자에 앉아본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도전적이고, 낯선 일인지를 알게 됐다.-p242 〕

 

우리는 매일 매번 누군가를 바라보지만 사실 눈을 끝까지 맞추는게 쉽지 않다. 둘이서 계속 눈을 마주보며 바라본다면 사람마다의 반응은 다 다를 것이다. 마리나와 마주 앉은 사람들은 그녀의 눈을 보며 점점 그 너머를 보게 된다. 환각을 보기도 하고 지금 당면한 사실을 깊이 새겨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갔을 때의 울림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다.

 

두번째는 이 소설의 주인공 아키 레빈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레빈은 영화 음악 작곡가이다. 그녀의 아내 리디아는 잘 나가는 건축가인데 선천적인 유전병으로 인해 병약한 사람이다. 그런 리디아가 얼마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사람을 인지하지 못 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그런 그녀는 요양원으로 가고 법적으로 남편인 레빈이 그곳으로 오지 못하게 조치를 한다. 많이 아프기 전에 미리 그런 법적인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레빈은 아내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여러가지 고민에 빠진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라면 이 부분에서 누구나 생각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레빈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예술가인 레빈은 자유가 중요하다. 병든 아내를 돌보면서 창작을 해나간다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고 아내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일만을 한다면 도덕적인 책임에 직면한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서약을 한 부부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리디아의 입장도 있다. 그러한 조치가 남편을 사랑하기에 그에게 자유를 주고 싶은 의미도 있겠지만, 어쩌면 푹 꺼진듯한 자신의 육체와 초점잃은 눈빛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그 모습은 슬프다.

 

이 소설에서 또한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창작은 자유와 고립의 상태에서 일상적인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제거해야만 가능한가?

 

레빈은 그러한 고민을 거듭하며, 계속해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보러 아트리움으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제인은 "칼과 저는, 우리는 28년 동안 같이 살았어요. 하지만 이제 칼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생전에 못 한 말을 할 기회가 다시는 없어요. 제 생각엔, 오지랖 넓게 충고를 한다면-남자들이 항상 싫어하는 건 알지만-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셔야 해요. 저는 그냥 사랑이 부질없이 허물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해준다.

 

마리나가 '예술가와 마주하다'의 작품을  끝내기 하루 전에 드디어 레빈은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그는 그녀의 눈을 통해 리디아를 본다. 그리고 마리나가 말하는 듯한 소리도 듣는다.

 

중요한 건 편안함이 아니예요. 그는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마치 그녀가 그의 머릿속에 직접 단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편리함이 아니에요.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예요. 중요한 건 기억하는 거예요. 중요한 건 헌신이에요.

당신만이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겁내선 안 돼요.-p371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75일 716시간 30분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고 1500명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85만명이 그 장면을 관람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은  '예술가와 마주하다'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허구이다.

 

마지막에 레빈은 리디아를 찾아간다.

 

이 책을 다 읽고, 유튜브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가와 마주하다' 영상을 찾아 보았다. 그녀의 작품 시작 첫날에 울라이가 찾아와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울라이는 수 년 동안 마리나의 연인이었고 같이 공동 퍼포먼스를 한 작가였다. 그녀는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그에게 손을 내민다. 둘이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고 난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울고 말았다.

 

이 소설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라는 장치를 사용한 건 탁월했다. 그것이 너무 강렬해 작품속의 허구들을 조금 작게 만드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중심에 그것을 놓고 펼쳐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사랑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의 이야기가 많아 천천히 다시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겠다.

 

모든 프로젝트에는 일곱 단계가 있다:

인식, 저항, 굴복, 작업, 숙고, 용기, 선물

이 책의 순서이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수렴'이라는 단어에 넣는다.

 

우연은, 내가 듣기론, 하느님의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하지만 수렴은 그 이상이다.

그것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미지의 결과를 가져올 무언가다.-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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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이작품은 읽으면서 조루주 쇠라부터 모네 고야 고흐 그리고 현재 활발하게 활동중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까지 20세기 부터 21세기 예술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것 같아요. 제목만으로는 오르한 파묵에 순수 박물관을 떠올렸는데 ㅎㅎ

페넬로페 2021-01-03 21:42   좋아요 1 | URL
네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나와요~~
제가 모르는 작가들도 많이 나오구요^^
와 정말 알고 있어야할것들이 너무 많아요^^
 
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결혼과 죽음】이 있다. 거기엔 각자 나름의 사연들과 이유가 있고 그 결과들도 다 다를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인 '에밀 졸라'는 그 다양한 결혼과 죽음을 계층별(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그리고 농부)로 분류하고, 거기에 세태를 반영해 놓았다.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돈의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의 결혼과 죽음을 작가는 사실적이면서도 간략하게 말해주고 있다.

소설이지만 실제로는 각 계층에서 샘플링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난다.

 

〈결혼이란 얼마나 야릇한 제도인가. 인류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한쪽엔 남자. 다른 한쪽엔 여자를 배치해서 각 진영을 무장시키고는 이제 그들을 합류시키며 "평화롭게 살아보라니!" 〉

〈여기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자료를 특정화시켜 더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겠다. 대신 몇가지 예를 보여주련다.〉

-p14~15 ,서문에서

 

서문에서 밝힌 작가의 말대로 여기에서의 결혼은 각 계층별로 철저히 일반화된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한치의 양보가 없는 서로간의 거래로 계약서를 교환하고 결혼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이다. 그들은 얼마되지 않아 결혼이라는 허울만 유지할 뿐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제일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는 연인은 서민인 스물 다섯살의 발랑탕과 열 여섯살의 클레망스이다. 돈이 없어 성당에서 결혼식도 못 올리지만 그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된 클레망스는 그동안 아이 세 명을 기르느라 금발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상했다. 아이들은 울어대고 부부싸움이 나고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한다?????????

 

이 소란하고도 구차한 생활 속에서 어떤 땐 데울 불도 먹을 빵도 없지만, 낡고 뜯어진 커튼 아래 놓인 침대에서는 밤이면 사랑의 애무가 날갰짓이라도 하듯 파닥거렸다. - p61

 

모든 것이 많이 변했지만 19세기 프랑스, 결혼의  세태를 반영한 그들의 일반화에 지금 우리를 넣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삼포세대를 넘어 완포세대라는 말까지 생기는 요즘, 결혼은 자유의지에 의한 거부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한 삭제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포기하고 제외시키는 삶은 젊은 세대의 것만은 아니다. 이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결혼의 위기는 만만치 않다. 

 

19세기 프랑스의 결혼식에서는 계급의 차이를 불문하고 시청에서의 예식 후에 꼭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이 행해진다.

그들의 그 행위와 정서가 참 좋다.

 

죽음 역시 계층별로 일반화되지만 결혼보다는 다양하다.

 

각자 속으로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생활하면서도 겉으로는 좋은 관계의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드 베르트백작은 품위있는 죽음울 원한다.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아내의 간병도 원하지 않는다.

 

백작은 성가시게 고통을 끌면서 요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조용히 혼자 떠나려는 쓰디쓴 이기심을 오히려 음미했다....

그의 마지막 바람은 아무도 귀찮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고 떠났다고 세상이 말해줄 남자로

깔끔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p68

 

귀족의 죽음답게 성당에서의 장례식은 웅장하고, 성당 밖을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은 길다.

 

상류 부르주아에 속한 게라르 부인은 망나니같은 세 아들들을 믿을 수 없어 죽기 직전까지 돈 걱정을 하며 

장롱 열쇠를 움켜쥐고 있다.

 

어머니가 사망하면 다시 부자가 된다는 것을 그들도 아는 만큼 아무 일도 안 할 이유는 충분했다.-p80

게라르 부인은 그런 식으로 스스로 고민거리를 사서 만들었고 의구심 때문에 속이 타들어갔다. -p81

죽어가면서도 그녀가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집안의 소비를 관리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p82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을 갈취한다는 끔찍한 생각을 품고 숨을 거두었다.-p86

돈을 뺏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구두쇠 기질의 망자 성향이 그들에게서 깨어난 것이다. 돈이 죽음을 오염시키고 나면

죽음에서 뿜어나오는 것은 분노뿐이다. 그래서 관을 앞에 두고도 서로 싸워댔다.-p90

 

항상 기침을 달고 사는 병약한 아델은 남편 루소와 함께 문방구를 운영한다.

아프지만 가겠세를 내며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쉬지를 못한다.

 

장사라는 게 그렇다.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이 그 안에 파묻혀 죽어간다.-p92

그에게 아델은 아내일 뿐만 아니라 일을 할 줄 아는, 그것도 영리하게 할 줄 아는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녀를 잃으면 애정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장사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힘을 내야 했다. 슬픔에 잠겨 가게문을 걸어 잠글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눈물 그득한 눈으로 아델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일상은 또 계속되었다.-p93

루소 씨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우는 그를 아델이 되레 위로하며 여러 가지 조언까지 보탰다. 혼자 되어 외로우면 결혼도 하라고. 대신 젊은 여자 말고 좀 나이 든 여자를 선택하라고. 젊은 여자가 홀아비와 결혼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니까.-p98

루소 씨는 무겁디무거운 슬픔에 눌려 목이 메어왔다.

머리가 멍하고 사지까지 얼얼한 상태에서 더 열이 빠지 이유는 주중에 가게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p103

 

일도 없고 빵도 없고 집을 데울 불도 없는 가난한 모리소 가족의 열 살 난 아들 샤를로는 아프다. 돈이 없어 아이에게 치료를 해줄 수가 없다. 빈민 구제소에 등록하러 구청에 가봤지만 신청자가 너무 많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만 듣는다. 그렇게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샤를로는 죽고 그때 빈민 구제소에서 구호품을 가져온다. 아이 옆에서 굶는다고 아이가 되살아날 것도 아니라며 이웃이 권하는 음식을 모리소부부는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들은 샤를로를 허연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넓고 황량한 땅에 묻는다.

 

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모리소는 허탈하게웃었다.- p111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이 흐뭇할 지경이었다. 그 옆으로 어둠 속에서 백지장 같은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엄마의 두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더니 커다란 눈물방울이 빵 위로 뚝뚝 떨어졌다. -p112

비참함과 초상으로 덮인 들판,

파리 외곽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가득 찬 시체들 때문에 힘겹게 땀 흘리고 질질 끌리며 황량해진 들판.-p114

 

농부인 장 루이 라꾸르의 죽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힘들게 곡괭이질을 열심히 해야만 끼니를 이을 수 있는 형편이다.

농사일은 다 때가 있기 때문에 자식들을 추수하러 보내고 그는 혼자서 덤덤히 죽음을 맞이한다.

 

일하러 나가는 수밖에. 거기 남아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지금 더 돌봐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밭이었다.

만일 아버지가 숨을 거둔다면 그건 결국 아버지와 하느님의 일 아니겠는가. 대신 추수를 망치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

그는 피로로 쓰러지고 나서 한구석에 죽도록 방치해둔 늙은 말과 비슷했다. 장 루이는 육십 년 동안 일해왔다.

그러니 이제 떠나도 된다. 삐걱대는 나무나 마찬자기인데 자르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있겠는가?-P139

젊은이들은 앞서간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은 채 서서히 늙어가고 각자의 차례를 기다린다.

햇볕을 잔뜩 받는 평화로운 죽음, 시골의 고요함 속에 자리하는 영원한 숙면이다.-p127

 

죽음은 그 무엇이라도 슬프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지만 자신이 살아 온 삶과 철저히 연결되어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영화 '봄날은 간다' 의 테마곡인 'one fine spring day' 의 음률처럼 인생의 화려한  한 부분이 지나가면 누구나 그저 쓸쓸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인생이,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죽음 역시 우리와 비슷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우리보다 자연적이고 조용하다. 그 이유가 어쩌면 의학의 발달일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는 몸의 어딘가가 아프면 그때부터 병원을 계속 다녀야하며,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치매에 걸리고 요양원으로 가야한다.  우리의 죽음은 번잡하고 점점 품위를 잃어가고 있다.

 

에밀 졸라의 '결혼, 죽음' 은 책의 크기가 작고 분량도 전체 153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9개의 단편들은 1875년 러시아 잡지 '유럽의 메신저'에 실린 것이다. 마지막 편인 '어떤 사랑'은 1866년에 발표되었고, 그 후 '테레즈 라캥'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출간된다. 이 짧은 소설은 잘 읽힌다. 그러나 휘리릭 읽으면 그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삶의 중요한 두 개의 축일 수도 있는 '결혼과 죽음'이 지나치게 일반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한번씩 이런 대표성으로 나타내어진 것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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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2-26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혼과 죽음, 그 두 가지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삶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시대도 계층도 다르지만 인용하신 글 속의 삶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9개 단편에 153페이지라니 의외로 얇군요.

페넬로페 2020-12-26 21:35   좋아요 3 | URL
마지막 짧은 단편까지
총 10개가 실려있는데
버릴 문장이 없을 정도로 작가가
압축적으로 잘 썼더라구요~~
저도 이 책 읽으며 먹먹했어요^^

scott 2020-12-26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기침을 달고 사는 병약한 아델은 남편 루소와 함께 문방구를 운영한다. 아프지만 가겠세를 내며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쉬지를 못한다. 장사라는 게 그렇다.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이 그 안에 파묻혀 죽어간다.] 이구절 참 슬퍼요 ㅜ.ㅜ

2020-12-27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0-12-27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결혼과 죽음을 계층별로 분류했다니 흥미가 확 생기네요~ 에밀졸라는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나봐요~ 읽고 싶은 책장에 넣었습니다. 제 뉴스피드에 페넬로페님의 후기가 추천으로 떠서 서재 구경 왔는데 매번 엄청난 독서량과 정성스런 페이퍼에 감동 받고 계속 받아보고자 친구신청도 살포시 누르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0-12-27 11:5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이름이 너무 귀여워요~~
결혼과 죽음은 분량이 아주 적은데도
사회의 모습을 세밀하게 잘 표현한 소설인것 같아요~~
아마 작가의 힘이 아닌가해요^^
붕붕툐툐님~~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열심히 쓰려구만 하고 있어요
독서량은 이곳에서는 전
하수에 속하구요**

2020-12-27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7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