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와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반 고흐’전은 그동안 32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제법 감상했기에 이번에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러갔다.
카라바조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화가였다. 그의 본명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이며 카라바조는 화가의 이름이 아니라 밀라노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베르가모 지역의 도시 이름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이름이 같아 그와 구별하기 위해 출신 지역인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것이다.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성격이 별나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쳤다. 소아성애이자 술버릇이 나쁘고 다혈질인 그는 자주 폭행사건을 일으켰고, 1606년에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카라바조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 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 곳을 전전했고 결국 로마 남쪽의 한 해변에서 객사하고 만다. 이런 이야기들이 정확하지 않거나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카라바조가 불한당이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17세기에서 18세기 유럽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을 아우르는 예술 양식인 바로크(포르투갈어로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뜻)의 출발은 성소에서 그림과 조각을 몰아낸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에 맞선 트리엔트 공의회의 반종교개혁의 공표였다. 그들은 오히려 신심을 고양시키고 로마(가톨릭)의 우세를 위해 그림, 장식, 문양을 장려했다.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는 것과,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한다.(나무위키)’ 그러한 특징의 바로크 미술은 카라바조에 의해 시작되었고, 루벤스와 램브란트가 그 뒤를 이었다.
[카라바조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신비롭고 혁신적인 화가이다.
카라바조는 회화에서 뒷날 바로크 예술이라 이름 붙는 시기의 정점에 있었다.
그는 직설적인 언어와 극적 효과에 대한 탐구가 결합되어 빛과 어둠의 대조에서 오는 순간적인 긴박감을 그림에 부여했다.
- 『카라바조 1571~1610』, p.7, 47]

-“카라바조 그림에서 조명은, 위에 달린 단일 광원으로부터 반사광 없이 빛을 뿌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치 검정으로 도배된 방안으로 단 하나의 창문을 통해서 빛이 유입되는 것 같았다.”
-줄리오 만치니-
‘빛의 대가’답게 카라바조의 그림은 대부분 배경을 어둡거나 검은색으로 처리하고 사람이나 사물만이 채색되어 있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한 줄기의 빛이 포인트가 되어 강조하고 싶은 곳에 머물렀다. 배경이 어두운 탓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아 엄청 집중이 잘 되었다. 한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종교화가 많아 가톨릭교도인 내가 생각할 것이 많았고, 경건하고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미켈란젤로 메리시
곱슬머리 소년의 모습에서 카라바조의 얼굴이 보인다. 귀 뒤에 꽂은 꽃은 두 개의 잎사귀가 달린 흰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상징한다. 소년의 오른쪽 눈꺼풀 아래 고통의 눈물이 보인다. 개인 소장인 이 작품 외에 다른 두 버전이 있다.
[도마뱀에게 손끝을 물린 순간, 소년의 놀란 표정은 ‘영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과 결부된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제시하였다....초록색과 갈색으로 칠해진 과일들은 오직 빛의 반사를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카라바조』, p.84]

-<성 토마스의 의심>-
예수는 스승이 부활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제자 토마스에게 창에 찔린 자국에 직접 손을 넣어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체포>-
배신자 유다는 그리스도에게 입맞춤으로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린다.
[카라바조는 그리스도, 유다, 성 요한의 다채로운 모습을 그리면서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옆모습을 보이며 도망가는 성 요한은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병사들의 검은색 갑옷을 번쩍거리게 하는 빛은 화면 전체에 역동성을 더해 주는 동시에, 인물이 왼쪽으로 치우친 구도에서 균형을 맞춰 준다.
- p.123]

-‘조토’와 ‘두초’의 <유다의 입맞춤>, ‘난처한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p. 148
배신자 유다의 입맞춤은 워낙 유명해 같은 소재로 여러 화가가 작품을 남겼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살아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골리앗의 머리가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윗이 들고 있는 칼날에 적힌 글씨는 ‘겸손함은 오만함을 죽인다’라는 뜻이다.
-p.150]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프란체스코 바사노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와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삶의 기쁨에 전념하는 여인으로, 마리아는 관상하는 삶의 모범적인 예를 상징한다. 조르조네 화풍의 풍경에서 빛은 구름 낀 하늘을 환히 밝히며, 이 순간의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성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약간 울분을 토한 부분이 ‘마르타와 마리아’가 등장하는 구절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두 자매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르타는 하루 종일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의 시중만 든다. 이에 마르타는 불만을 느끼지만 도리어 예수님은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이라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같이 성경 공부했던 멤버들은 거의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들이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 구절이 전하는 본래의 의미는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경청하라는 것인데, 다들 마르타에 빙의되어 마치 우리가 그런 일을 겪은 양 억울해하며 흥분했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나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마르타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생각하니 여전히 마리아가 얄미워 보였다.

바로크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림에 ‘허무’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러 정물 작품에 해골이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인간은 살면서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끝은 죽음이니 그냥 제멋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 후의 세계를 의식해야 하는지 언제나 확실하지 않다. 카라바조는 현재를 선택한 건 아닐까? 그러다 매번 눈물과 회한으로 구원을 기도하며 성 프란체스코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황홀경을 그린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