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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중 세 번째로 읽은 『올랜도』는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과는 달리 의식의 흐름이 아닌 전기문의 형식이어서 처음엔 읽기 쉬웠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시대부터, 울프가 ‘올랜도’의 집필을 끝낼 때까지의 여러 시대에 걸친 배경과 판타지적인 요소, 풍자와 해학까지 있어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읽는 내내 여러 번 돌아가 읽은 곳을 다시 읽어야 한다) 울프 문장 해석의 어려움으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읽을수록 빠져드는 문장의 풍미와 그 적절한 비유로 작가가 글 하나는 참 잘 쓴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매번 드는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쓰고,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 문장 하나하나에 저런 엄청난 비유와 은유를 동원해 글을 쓸 수가 있는 것인지 늘 감탄한다. 울프의 글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난 그런 이유로 울프의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올랜도』를 신나게 읽어 갔다. 그러다 악명 높다는 말은 그저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울프여사의 글답게 점점 이 소설은 어려워지기 시작해서 결국 마지막 10분의 1정도의 내용은 거의 이해를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27~1928년의 ‘울프 일기’(솔출판사, 박희진 옮김-에서 발췌)의 여러 곳에서 울프는 『올랜도』의 집필 과정을 서술한다. 울프는 재미삼아 장난스런 문체로, 반은 농담조로 반은 심각하게 이 소설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마음먹고 과장된 부분을 뿌려놓을 것이라고 계획한다. 『올랜도』는 매우 활발하고, 재기 넘치고,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한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장난삼아 시작했던 것이 길어지고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은 격이라고 했다. 마지막 장에서 고전하고 있고 지루해져 있으며, 뒤에 가서 진지해져 통일성이 부족해졌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이해 못한 것이 내 탓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울프는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고, 이 책 전체가 농담이니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울프 여사님!
1922년 울프는 ‘비타 색빌웨스트’라는 시인을 만났고, 두 사람은 로맨틱한 관계를 맺었고, 그 후에도 평생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이택광 지음, 휴머니스트-에서 발췌). 『올랜도』는 울프가 비타를 모델로 해서 썼고, 그녀에게 헌정된 소설이다. 울프 일기에서는 『올랜도』가 비타, 바이올렛 트레퓨시스, 라셀라스 경, 놀, 러시아 공주 사샤, 그리고 해리엇 공주에서 소재를 구하고 근거를 두었다고 한다. 36세가 될 때까지 삼백사십이 년을 살아온 ‘올랜도’를 서술한 이 책의 서사는 무척 흥미롭다. 전기문의 형식을 띤 이 소설의 특징으로 수많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영국 켄트 주의 ‘놀’이라는 곳의 거대한 성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사랑, 시대의 변화와 요구, 귀족과 서민, 명성과 무명, 결혼 등을 말하고 있다. 남성으로 태어난 올랜도가 중간에 여성으로 바뀌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포인트다.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신화, 비극작품, 인물이 등장하고 여러 곳의 지역이 나오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은 ‘올랜도’의 성장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많은 것들이 이 책에 등장하지만 난 페미니즘과 여성으로서의 삶, ‘올랜도’가 계속해서 가슴에 품고 다니는 ‘참나무, 한 수의 시-The Oak Tree, a Poem'로 나타내는 글쓰기, 인간 안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공존추구로 이 소설을 받아들였다. 비타를 모델로 하고 있지만 이 책의 전기 작가와 주인공인 올랜도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고 그녀가 추구하고 바라는 삶의 방법들이다.
남성으로 살아가는 ‘올랜도’의 삶은 거침이 없다. 여왕의 총애와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만이 받는 가터훈장을 무릎에 달고 있으며, 원하면 언제라도 대사직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로 바뀐 ‘올랜도’는 그 순간부터 <순결, 정절, 겸손>(열린책들판 올랜도에는 <청순, 정절, 정숙>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여사의 방문을 받는다. 사교계에 진출해 남자들의 끝없이 쏟아지는 따분한 말들을 듣고 있어야 한다. 결혼이 강요되는 시대에 결혼 안 한 여성의 불이익과 남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염려되어 추한 반지를 하나사서 남들처럼 끼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여성을 옭아매는 시대정신에 여자, ‘올랜도’도 비껴갈 수 없다.
[나팔 소리가 잠잠해지고, 올랜도는 완전히 벗은 채로 서 있었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그 어느 인간도 그보다 더 매혹적일 수는 없었다. 그의 모습은 남자의 힘과 여자의 우아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성의 변화가 비로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p123
두 성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섞여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양성은 유동적이며,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옷뿐이고, 그 속의 성은 겉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흔히 있다.-p167]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싫어했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한 사람이다. 그러나 울프는 극단적인 여성과 남성의 대결로써 여성의 권리를 찾기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여성과 남성을 발견하고 그것의 조화를 이루어내자고 항상 주장했다. 『올랜도』가 그 후에 저술된 ‘자기만의 방’과도 이런 이유로 연결된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이다”라고 말한 콜리지의 말을 인용하면서, <양성적 마음>이란 타인의 마음에 열려 있고 공명하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고, 본래 창조적이고 빛을 발하며 분열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자기만의 방, 민음사, 이미애 옮김-에서 발췌)
장난삼아 시작한 이 소설에서 ‘올랜도’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시킨 이유도 울프의 양성 공존적 의미가 담겨있다. 본문에 나와 있듯이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요구들을 자신이 몸소 감내해야 한다고 탄식한다.
[왜냐하면 여자들은(여성으로서의 나의 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p139]
결국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삶을 다 경험해봐야만 이성간의 사랑과 이해가 가득한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지금은 없는, 고정관념으로 꽉차있는 이 현실에서 서로간의 소통을 어떻게 이루어낼지 암담하다. 울프는 그러한 울분을 글로 표현해냈고 후세의 여성들에게 그 해결책을 숙제로 남겼다. 요리는 전혀 못하지만 바느질은 너무 꼼꼼히 잘해내는 남편과, 불의를 참지 못해 큰소리를 내고, 바느질과 뜨개질은 잘 하지 못하는 나 역시 남성과 여성이란 정체성으로 양분되지 않고, 그 역할을 바꿔 잘 수행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사회적 편의를 위해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남성으로서의 ‘올랜도’가 계속 가슴속에서만 참나무를 간직하고 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28년,3월 22일 울프 일기에서, 울프는 농담치고는 너무 길고, 진지한 책치고는 너무 경박한 이 책을 끝내고 더 이상 어떤 것들을 생각하기도 싫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이 어렵고 난해한 소설을 독자인 나에게 던져주고 본인은 태양과 포도주의 나라로 훌쩍 떠나버린다. 코로나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곳에 있는 난 한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만 한다. 좀 시원해지면 산책을 가고, 돌아올 때 시원한 맥주라도 하나 사와야겠다. 여행은커녕 알코올의 힘을 빌려 이해하지 못한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겐 ‘파도’라는 기념비적인 울프의 어려운 책이 또 구비되어 있다. 여전히 난 ‘버지니아 울프’가 두렵고, 그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