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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궁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 번씩 딸아이와 함께 가고, 자주 혼자 간다. 사는 곳이 흩어져있는, 1년에 서너 번씩 만나는 대학 동기들과는 중간 지점인 종로에서 만나 그들과도 가끔 궁에 들러 산책을 한다. 덕수궁 앞에서는 와플을 사 먹고, 경복궁에 갈 땐 인사동에 들리고, 창경궁이나 덕수궁에 갈 땐 대학로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에게 궁은 외롭고도 씁쓰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조선의 역사가 어디 한 번이라도 찬란할 때가 있었는가 말이다. 궁에 가면 그저 쇠락하거나 비굴했던, 제대로 된 개혁도 하지 못한 힘없고 우유부단한 왕조만 생각난다. 특히 덕수궁이 그렇다. 고종과 민비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고희를 즐겨 마셨으면 뭐하겠는가?
그래서 궁에 가면 되도록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냥 자연을 본다. 궁은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좋다. 인공적으로 수더분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져 있어 그곳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낭만적인 감상에 젖기 좋다. 창경궁은 가장 풍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봄이나 여름은 푸름으로, 가을은 온갖 색깔로 물드는 낙엽으로 운치가 있고 종묘와 같이 있어 그것도 매력적이다.
창경궁은 한때 창경원이었다. 일본이 식민지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시키기 위해 궁을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만들었다는 가장 많이 알려진 대로 나는 알고 있다. 역사의식이 있든 없든, 창경원은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봄에 벚꽃이 필 때 수많은 상춘객이 몰려들었다. 케이블카까지 있었다.
내가 창경원에 처음으로 간 건 초등학생 때였다. 서울 누하동(지금의 서촌)에 살던 이종사촌언니와 단둘이 버스를 타고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납득이 잘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때는 초등학생이라서 지방 소도시에 살던 내가 분명 서울에 혼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나 언니와 함께 갔을 텐데 창경원에는 대학생이었던 사촌언니가 왜 나만 데리고 갔는지 잘 모르겠다. 창경원 안에서 뭘 구경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언니와 버스를 타고 창경원 앞에서 내렸다는 사실만 또렷하다.
강화의 석모도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가 본적이 있다. 차를 배에 싣고 갔다. 보문사에도 가고 바닷가도 갔다. 이 소설에서 석모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를 읽을 수 있었다. 강화도 쪽만의 사투리인지, 인천 사람들도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으며 자꾸 나와 연관된 생각만 했다. 좋은 소설은 소설의 알맹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내가 있고 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하고 공유할게 있으면 더 좋다. 소설과 어우러져 어느 곳에서 만나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단지 한 순간, 한 지점 일지라도 나에게 그 소설은 좋은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지 못했다. 끝가지 기대에 못 미쳤다. 마지막에 뭔가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실망한 상태에서 책을 덮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이라서 나의 노스탤지어를 끌어오고 인물에 대한 연민도 가져보고 그들도 이해했지만 끝내 버무려지지 않았다. 내가 끌어온 것에 내 것만 남았다.
뷔페에 가면 오늘은 정말 많이 먹으리라 결심한다. 작정하고 음식에 달려든다. 이 코스 저 코스로 다니며 한 가지씩이라도 다 맛보자며 접시에 조금씩 담는다. 배가 불러와도 일어나 새로운 접시를 가지고 다른 음식을 담아 온다. 배가 터져도 맛있는 디저트를 포기할 수 없다. 커피를 계속 들이키며 여러 종류의 디저트를 먹고, 마지막에 꼭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그렇게 많이 먹고도 뷔페를 나올 때, 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맛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내가 낸 돈 만큼, 뷔페의 장점인 가성비를 달성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내 몸 속은 부조화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딱 이 소설이 그랬다. 많은 맛있는 것이 이 소설에 들어 있었다. 창경궁의 대온실 수리,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담당자라는 좋은 소재가 있었다. 정독 도서관과 원서동, 낙원 하숙이라는 과거(나에겐 진한 노스탤지어다)와 거기에 얽힌 영두, 안문자 할머니, 리사, 산아 등 여러 인물이 있었다. 창경원 대온실을 설계한 일본인의 회고, 문화재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행태, 일제 강점기, 육이오 전쟁, 대온실 지하의 미스터리 등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결국 이것들이 하나로 버무려지지 않고 끝까지 각자 겉돌아 아쉬웠다. 장편 소설이지만 여러 단편 소설을 읽는 듯했다.
오랜만에 ‘수리’라는 말을 들었다. ‘대온실 수리‘라는 눈에 보이는 변화 이면에 깔리고 쌓인 여러 모습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각자의 수리보고서에는 과거로부터 시작된 역사와 환경, 사람, 슬픔, 인내, 아픔, 상실, 수난이 들어 있다. 수리되어 더 웅장하고 멋지게 변한 창경궁 대온실 처럼 나와 우리들의 삶의 수리도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많이 믿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내린 나는 주차해둔 차를 찾아 원서동으로 갔다. 낙원하숙도 대온실도 들어갈 수 없는 시각이지만 오늘은 그 공간 곁에 있고 싶었다. 창경궁으로 걷는 내 옆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고 발을 내밀면 잠시 아무것도 없는 공중인 것도 같았지만 허방을 짚는 듯한 실패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치 팔짱을 끼듯 할머니의 스케이트를 옆구리에 끼고 고궁의 담장을 따라 걸었다.
-p.375]
-작년 6월에 갔을 때의 창경궁 대온실
이 소설을 다 읽고 창경궁에 다녀오자고 했다. 깡통만두 식당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11월에 폭설이 내렸다. 아직 나무에 빨간 단풍이 매달려 있는데 그 위를 하얀 눈이 급습해버렸다. 아무래도 내년 봄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