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온 세월 중에 ‘일상’(日常)-{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단어가 요즘처럼 실감날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바람에 사람과의 만남은 고사하고, 그나마 잠깐씩 가서 책을 읽던 카페마저 가기가 두려워진다. 맞벌이를 하는 딸과 사위를 위해 손녀 두 명을 돌봐주고 있는 큰언니가 점심으로 콩국수를 했다고 올린 카톡의 사진에서도 일상이 보인다. 어느 순간 내 눈에는 더운 여름철의 별미인 콩국수가 시원하고 먹음직스러우며, 침이 고이게 하는 맛있는 음식이 아닌, 불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의 결과와 고단함으로 보인다.
음식을 뚝딱 해낸다는 말이 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 때 ‘뚝딱’이라는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내가 한 번도 만들지 않은 콩국수만 해도 그렇다. 음식 재료를 사와 콩을 불리고 삶아 그것을 믹서에 갈아야한다. 국수를 삶아 헹구고, 그 사이에 고명으로 얹을 계란을 삶고, 오이를 채 썰고, 방울토마토를 씻어 반을 가른다.(언니가 보내준 사진의 콩국수위에 방울토마토가 얹혀져 있었다) 그리고 먹는 건 잠시이고, 음식을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해야 한다. 설거지는 다음 끼니를 또 해 먹기 위한 준비이니 언제하든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는 김훈 작가가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자전거(그 자전거에 이름도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를 타고는 집에 돌아와 아내가 끓여준 냉이 된장국을 먹으며 그 맛과 느낌을 표현한 구절이 있다. 그 구절뿐 아니라 자전거 여행에서 서술된 다른 문장들도 좋아 난 이 책을 좋아했지만 왜 요즘 들어서 냉이가 들어간 된장국을 끓여내는 그의 아내의 고달픔이 보이는지 이상하다. 가족이나 타인을 위해 해주는 사랑과 따뜻함이 이 시국으로 인해 달라져 보이고 변색되어 씁쓸하다. 내가 지금 해주고 있는 음식들도 이렇게 변색되어 내 식구들의 속에서 끓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오늘은 내가 한번도 뵙지 못한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어머니는 매년 이 날이 되면 더운 여름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원망하지만 제사를 그만 지내자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코로나 확진자의 급증으로 이번 제사에는 참석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 전을 부치는 노동이 면제되었다. 솔직히 너무 기쁘지만(코로나가 딱 한 번 고마운 순간이다) 그 대신 큰형님과 딸아이의 고모님들이 수고를 하셔야 하는 생각에 맘이 조금 무겁다. 그래도 좋다. 결론은 아주 좋다.
이 기쁨에 보태어 나에게 주어진 서프라이즈 선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선물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사실 나에게도 절친인 알라딘 서재 친구가 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철없는 나를 이끌어주고 알라딘 서재의 AI답게 책에 있어서는 나의 스승이시다. 그 친구가 날도 덥고 코로나도 끝이 없으니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라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 나에게 보내준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책을 선물받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내가 받은 책은 교보와 민음사에서 콜라보하는 거라 알라딘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판매했다면 내 친구는 분명 알라딘에서 이 책을 구입했을 것이다. 더운 여름에, 일상에 지친 나에게 좋은 선물을 보내준 친구가 너무 고맙다. 헤밍웨이작가의 작품은 영화로만 접하고 책으로는 읽어보지 않았다. 집에 있는 다른 헤밍웨이의 책과 함께, 이 책을 가을쯤 읽으려고 한다. 지금은 읽기로 한 책이 쌓여 있고, 왠지 헤밍웨이의 작품은 가을에 어울릴 것 같아서이다. 세상에 책이 엄청나게 많고 난 죽을 때가지 그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책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은 나의 일상을 이기는 무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