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클래식)에서 2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있다. 한 작가의 전작읽기가 약간 지루하지만, 발자크의 소설이 워낙 방대하고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어둠 속의 사건’, ‘골짜기의 백합’, ’사기꾼‘, ‘미지의 걸작’, 잃어버린 환상‘, ’루이 랑베르‘, ’나귀 가죽‘, ’사라진샤베르 대령‘ ’결혼 계약을 읽었다.

 

알려진 대로 발자크의 실제 삶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보다 더 소설적이고 파란만장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유모의 손에 맡겨지고 오랜 기간 기숙학교에서 생활한 발자크는 부모의 정을 전혀 받지 못했다. 법과 대학에 다니면서 소송 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힌 발자크는 자신의 길이 글을 쓰는 것임을 깨닫고 칩거하며 희곡과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첫 작품인 희곡 크롬웰이 실패하자 부모는 다시 법조계 쪽으로 발자크가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가 그것을 거부하자 부모는 발자크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그는 부모에게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돈이 충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자크는 필명으로 그 당시 유행하던 여러 소재의 대중소설을 엄청나게 써 댔다. 소설 공장처럼 찍어낸 그의 소설은 인기가 있었고, 발자크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그 후 출판업, 인쇄업, 활자 주조업 등 사업에 손을 댔고, 손대는 족족 실패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는 6만 프랑의 빚이 있었고, 발자크는 신이 그에게 주신 능력인 글을 써야만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만약 빚이 없었다면 발자크는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본명으로 출간한 첫 소설인 올빼미 당원결혼 생리학이 성공했고 죽을 때까지 빚과 함께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사망한 발자크 인생 전반에는 격변한 프랑스의 역사가 있다.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에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것을 그대로 담아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90여 편의 소설이 들어 있고 등장인물이 25백 명 정도이다. 그 중 500명은 <인물재등장기법>에 의해 여러 다른 소설에 계속 나온다. 이 인물을 발견하는 것도 발자크 소설을 읽는 재미중 하나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낭만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작가들은 아름다움, 숭고함, 열정을 노래했고, 이상적 사랑을 꿈꾸었다. 독자들은 빅토르 위고의 세계에서 사회악을 고발하고 맞서 싸우는 숭고한 영웅 장발장에 열광했다. 그러나 발자크의 세계에는 숭고함도 세상을 구원할 영웅도 없었다. 인간극은 모순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그가 그린 세상은 명료하지 않다. 정답도 없고, 해결책도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종종 혼란스럽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발자크 문학의 정수다. 인간의 희망과 실제가 다르고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그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발자크의 위대함은 인간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에 있다. 그것이 바로 발자크의 현대성이기도 하다. 대놓고 돈을 숭배할 용기도 대놓고 경멸할 용기도 없는 현대인, 거짓과 위선과 기만을 감추고 사는 이들은 발자크가 묘사한 모순적인 인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서문에서]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며 계속 양가감정에 빠져있다. 그가 그려낸 세계와 입체적 인물, 문장의 표현이 대단해 소설 읽는 재미가 있지만 읽고 나서 여운이 별로 남지 않는 단점이 있다. 너무 사실적인 내용과 거의 모든 것이 설명 되어진 글이 소설적 상상력을 제한시킨다. 그것이 소설로서의 더 깊은 의미를 얻는데 방해가 된다. 송기정 저자의 말대로 발자크는 현실의 자각과 폭로를 그대로 해주고 있고 독자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로서의 역할이 조금 미미하다는 것에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다.

 

발자크는 그 시대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적나라하게 시대를 재연해주는 작가의 풍성한 글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다보면 200년도 지난 지금과 19세기 프랑스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물론 겉모양은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법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고, 아니 앞서 나가 다가올 시대를 예견하며 그것을 수많은 작품에 남겼다는 사실이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또한 그러한 면에서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금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인식할 수 있다.

 

 

송기정의 오노레 드 발자크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둘 다 발자크에 관한 책이지만 성격은 다르다. 송기정의 책이 발자크 작품과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면, 츠바이크는 발자크라는 인물 자체에 더 집중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발자크 작품의 주요 무대인 파리에서 시작해 발자크의 역사관, 정치관, 과학, , , 철학 연구를 통해 발자크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파헤친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가 알다시피, 19세기는 대부분 발자크의 발명품이다라고 말했듯이 19세기 프랑스에 대해 모르고는 발자크를 읽을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발자크 읽기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자 설명서이다.

 

인물 평전에 대해서라면, 츠바이크는 그 자체로 전설이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생애를 따라가며 발자크라는 인물을 흥미롭고 위대하게 만들면서 결국 자신의 글을 부각시킨다. 어느 순간 발자크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 속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츠바이크가 그려낸 발자크에 사실이 아닌 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으로 발자크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드러낸다.

 

발자크 소설을 읽기 위해 이 두 책을 같이 읽기를 권한다.




내가 참여하는 <클래식 독서동아리>가 도서관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다. 이때까지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올해 발자크를 읽고 있어 별 고민 없이 발자크 연구자이자 번역자인 송기정 선생을 모시고 발자크에 대한 강의를 듣기로 했다. 선생은 발자크의 여러 소설에 담긴 19세기 프랑스의 전반적인 배경에 대해, 특히 은행과 신용거래, 대혁명 이후의 돈의 흐름, 어음 사기와 채무의 사례, 돈과 결혼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 번역작인 결혼 계약를 통해 그 당시 여성의 지참금 제도와 여성에게 불리한 여러 관습과 법에 대해서도 강의했다.

 

발자크 문학의 정수인 인간극은 모순 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가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인간극의 인물들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국한되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발자크의 현대성이다

 

이렇게 정리하며 선생은 강의를 끝맺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송기정 선생의 번역작 두 권에 사인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2017년 여름, 다른 도서관에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번역자인 안인희 선생의 강의를 6주간 들은 적이 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내용으로 훌륭한 강의를 해주어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저기에 페넬로페가 앉아 있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송기정 선생과 독일어를 전공한 안인희 선생의 강의는 전문가답게 막힘이 없었고 열정적이어서 듣는 사람을 한 단계 더 지혜로운 인간으로 상승시켜 주었다. 번역이란 단순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국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 많은 배경 지식과 소양이 있어야만 잘 된 번역의 책을 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두 선생의 번역에 신뢰가 간다.

 

앞으로 계속 좋은 번역 해 주시기를 바란다.

특히 발자크와 츠바이크 책에 대한 번역을 많이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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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5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츠바이크가 썼군요. 오래 전에 동생 책장에 꽂혀있던 책인데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상상만 했을뿐 읽지는 못했는데… 오래전부터 문학 강좌를 들어오셨군요. 번역자의 강의를 직접 들으셨다니, 알찬 강의였겠어요. 번역자는 아니시지만 전 로쟈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지요.

페넬로페 2024-11-25 09:31   좋아요 1 | URL
제 책장에도 광기와 우연의 역사 구판이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 않고 있어요.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지네요.
번역자 두 분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 저한테 좋은 기회였어요.
로쟈님의 강의도 좋았겠습니다^^

청아 2024-11-2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페님 혹시 검정색 셔츠?ㅎㅎㅎ 발자크를 비롯해 의외로 생전에 어려움을 많이 겪은 작가들을 접할때면 내가 뭐라고 글 쓰기를 힘들다 했나? 반성하게 되더군요.^^;
저는 페페님 독서모임 당연히 지원금 쭉 받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아무튼 기쁜 일이고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4-11-25 10:20   좋아요 1 | URL
놉, 반대로 흰색이예요 ㅎㅎ
그동안 지원금 받을 기회가 많았지만 회원들 모두 조용히 책만 읽기를 원해서 그저 책만 읽어 왔어요.
이번에는 리더이신 그레이스님과 다른 신입회원분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셔서 저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은 편안히 강의 잘 들었어요.

네, 정말요.
발자크가 글을 쓰기 위해 5만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수도복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의 인내심과 노력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청아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4-11-25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흰색옷을 입으신 분이 몇분 계셔서 어느 분이신지..? ㅎ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군요. 그레이스님이 리더로 섬기시고. 오래 전부터 그레이스님하고 페페님하고 어딘가 잘 어울리시는 거 같은데 이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ㅋ

페넬로페 2024-11-25 11:09   좋아요 1 | URL
앞쪽 입니다 ㅎㅎ
지금보니 사람의 뒷모습도 변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에 찍은 사진의 뒷모습과 2017년의 뒷모습이 다르네요.
훨씬 건강하고 젊게 보여요.

그레이스님과는 같은 책을 오래 읽어오고 개인적으로도 자주 시간을 가져 맘이 통해요^^

coolcat329 2024-11-26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페넬로페님 부럽습니다.
저도 이런 독서모임 하고 싶네요. 정말 멋진 독서 동아리에요. 페넬로페님의 진지한 독서자세 볼때마다 배우고 갑니다.
저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제가 발자크를 좋아하게 만든 1등 공신입니다. 저도 츠바이크 책 개정판으로 새로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메리 스튜어트. 어제의 세계 이런 책들요.

페넬로페 2024-11-26 13:01   좋아요 1 | URL
쿨캣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츠바이크 평전이 정말 발자크를 읽고 싶게 만든 책이 확실합니다
메리 스튜어트, 어제의 세계도 찜 해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