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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딸, 마들 - 제1회 한우리 문학상 우수상 ㅣ 한우리 문학 높은 학년 2
김하늬 지음, 백대승 그림 / 한우리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어린이를 위한 '역사동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났다. 역사동화는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장르로, 소용돌이 치는 사건 속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데, 마치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듯 역사적 사건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함으로써 역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동화적인 감동이나 성장할 수 있는 소스로 함께 수록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요 근래 역사동화를 몇 편 읽어보았는데, 가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가야의 딸, 마들>>이 내게는 처음이다.
가야의 역사는 워낙 소략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가야사를 복원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도 가야는 극히 미비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반 만 년 역사에 속에 가야 역시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야의 역사는 여러 소국 중의 하나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사국시대를 열어갔지만 잊혀져간 가야, 그 비운의 나라 속에서 씩씩하게 성장했던 마들의 이야기는 가야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더 큰 감흥을 준다.
열두 살이 넘었지만 아직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는 마들이는 겁나거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 닥치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도록 구역질을 한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엄마, 왕비의 무덤에 함께 껴묻힌 아버지, 세상에 마들이는 오빠 산내와 딱 둘 뿐이다. 임금님의 항복으로 철의 왕국, 가락국이 신라의 속국이 되면서 마들이와 산내는 신라 어린이들과의 싸움으로 형제의 나라인 또 다른 가야국을 찾아 길을 나선다.
"수로왕은 커서 가락국을 다스리고, 나머지 다섯 명은 다른 마을로 가서 나라를 다스렸다더라. 그래서 우리 가야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더라."
"참말로? 그러면 우리 가야가 여기 말고 또 있나?" (본문 28p)
마침내 이들은 안라국에 도착하고,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사공일을 하는 치우의 도움을 받은 마들과 산내는 안라국에 정착하게 되지만, 마들은 약방의 드난살이를 하게 되고 산내는 가마에서 도공일을 배우게 된다. 달포 후 마들이는 부엌에서 내쫓기면서 약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혼자 약초를 캐러 다닐 정도가 되었다. 위험한 산에서 혼자 약초를 캐는 일을 겁내했던 마들은 처음 보는 약초를 먹고 쓰러졌다가 산 속에서 할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그는 가락국의 왕실 호위 무사로 왕이 신라에 항복하고 예물을 바치러 가는 날 길을 벗어나 이 곳 산에서 머물고 있었던 것인데, 이 인연으로 마들은 무사 할배로부터 검술을 배우게 된다.
"왜 용감하고 씩씩해지려느냐?"
"저도 남들처럼 강하고, 두려움 없이, 살고 싶습니다." (본문 75p)
몸이 부서지도 아파 슬그머니 꾀가 생기기도 하지만, "버텨라. 네가 강해지고 싶다면 버티고, 또다시 힘없고 가난한 백성으로 떠돌고 싶다면 내려도 좋다!" (본문 80p) 라는 무사 할배의 말에 마들이의 가슴 밑바닥에 웅크려 있던 무언가가 마들이를 다잡아주었다.
한편 왜 도공이 됐는지, 어떻게 도공이 됐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지도 못했던 산내는 토우 만드는 것이 좋아졌고, 자신이 아는 모든 가락국 사람들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후 마들을 걱정하는 산내로 인해, 산내와 치우도 무사 할배에게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치우야, 너는 뭐가 되고 싶노? 꿈이 뭐꼬?" (본문 113p)
벗아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질긴 끈이 할아버지와 치우를 옭아매고 있어 치우는 고된 직업이지만 사공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치우는 마들의 물음에 할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생각해본다.
"너는 네 맘대로 살 수 있다. 너는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다. 할배한테 물어봐라. 내 말이 틀린가." (본문 114p)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본 약방 멀방 어른은 그들을 첩자로 몰아세웠지만,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가야국인 반파국으로 향한다. 이 즈음 반파국은 스스로를 지키기 우해, 철의 왕국인 가야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흩어진 가야의 젊은이들이 모여 힘을 모으고 있었고, 무쇠처럼 강하고 단단해지겠다는 마들이는 그 꿈을 향해 노력하여 토약질하던 겁쟁이에서 단단한 무쇠가 되었다.
"행님, 저 무덤은 뭔데 사람들이 자꾸 찾아오고 쳐다보고 합니까?"
"그런 여자애가 하나 있었제. 그 애는 걸음이 느리고, 잘 울고, 겁이 많았제. 너무 겁이 나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땐 꺽꺽 토악질을 해 댔제....그 애는 자라서 무쇠가 되려고 했제. 쇳물이 굳어 쇳덩이가 되는 것처럼 강하고 단단해지려고 했제."
"그래서요?"
"결국 그렇게 됐다. 자, 이제 일이서라. 쇠는 완전기 굳기 전에 두드려야 무기가 되든 농기구가 되든 되는 거다. 세상에 태어났는데 우리도 뭔가 하나는 돼야지?" (본문 177,178p)
마들이가 여전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엄마 신라 병사들하고 싸우려는 게 아니라 자신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가난하고, 힘없고, 약하고, 겁쟁이 울보에다가 공벌레인 자신과 싸우고 싶었던 거였다. 나를 극복해 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보기 위함이었다. (본문 167p)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나약해졌다는 말씀을 하신다. 컴퓨터의 보급, 물질풍요 등으로 풍족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앞에서는 맥없이 주저앉는다.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탓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주저하다 그대로 돌아서버리기도 하고,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나는 그것밖에 못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큰 아이를 보면서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겁쟁이었던 마들이는 한번 더 힘을 내면 그 한계를 넘을 수 있음을 내 아이에게 그리고 용기내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린 어린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마들이 뿐만 아니라, 꿈조차 꾸어보지 못하고 그저 고된 사공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한계점을 그어놓았던 치우, 엄마와 헤어진 뒤 입을 닫아버리고 아버지의 옷자락에 숨어 살던 교, 자신들을 지켜 주지 않고 떠난 부모에 대한 미움을 가졌던 산내 역시 마들 못지않게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주인공들이다.
"뭐가 안 되는데? 왜 안되는데? 네가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안 되는 거다!" (본문 114p)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마저 빼앗겨야했던 가야국의 비극적인 역사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들의 마음가짐과 노력을 더욱 가슴에 와닿게 해주는 배경이 되었던 듯 싶다. 동화적 스토리에 가미된 가야의 탄생설화와 가야의 풍습 등은 반 만 년의 역사의 한 줄기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라진 고유어를 접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려운 단어였지만, 단어 옆에 쉽게 풀이해줌으로써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도록 도와주면서, 아이들에게는 잊혀져가는 고유어를 접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선물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까지 전하는 결말까지 너무도 마음에 드는 구성이다.
"..........한 핏줄이니까. 나도 거슬러 올라가면 가락의 공주라더라. 가야와 신라, 백제와 고구려가 본래 한민족이었다더라." (본문 122p)
가야 역사에 대한 평가가 옳고 그르든 간에, 가야 역시 우리의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꿈, 희망, 용기 등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 제공하고 있지만, 또 하나 기억할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 속에 우리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이런 바램이 이야기 속에 주인공들을 통해서 잘 스며들었던 거 같다.
(사진출처: '가야의 딸, 마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