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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우리 엄마야 ㅣ 놀 청소년문학 14
로즈 임피 지음, 서민아 옮김 / 놀(다산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너무도 발칙한(?) 제목에 이끌린 작품이다. 도대체 이 가족에 어떤 문제가 있길래, 엄마를 '그 여자'라고 칭하게 된 걸까? 포크레인에 앉아있는 엄마를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는 소년의 모습을 담은 표지가 심각성을 느끼게 하지만, 왠지 코믹함도 묻어난다. '가족애'는 굉장히 흔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주제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사춘기 딸을 키우고 있는 내 입장에서 엄마와 자녀의 문제를 다룬 작품에는 늘 마음이 끌린다. <<그 여자가 우리 엄마야>>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열세 살 조던 기본스는 집에서 1.5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곳에서 땅속 2미터 아래 상자에 사는 엄마가 걸어온 전화소리에 깨어났다.
'설사 무슨 문제가 생긴다 한들, 이 이상 더 큰 문제가 어디 있겠어.' (본문 9p) 조던에게는 산 채로 땅에 묻힌 엄마의 문제가 너무도 심각했다.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오래 전 수립했다가 빼앗긴 '구덩이 속에서 오래 버티기' 세계신기록을 다시 되찾기 위해 땅 속에서 살고 있다. 세계 신기록 갱신을 코앞에 두고 있어, 아빠와 형은 엄마를 심란하게 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 터라, 조던은 엄마에게 따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또 눌렀다.
엄마가 땅 속으로 들어간 이후 조던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학교에 지각하는 것은 물론이요, 학교 생활도 엉망이 되었고, 성적은 점점 떨어졌으며 썩는 냄새가 폴폴 나는 옷을 입고 다녀야했고,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 어는 누구도 신경 써주지 못한 탓에 습진은 도져버렸다. 무엇보다 엄마가 없는 허전함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조던이 엄마가 없는 허전함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어린 강아지 젯을 키우게 했지만, 조던의 정신을 쏙 빼놓는 젯이 그 허전함을 채워줄리 만무하다.
산 채로 땅속에 묻히겠다는 엄마를 둔 애는 몇이나 될까? 그것도 기껏 기네스북에 오르겠다는 이유로, 외할아버지가 30여 년 전에 세운 그 한심한 기록을 되찾아보겠다는 이유로! (본문 15p)
엄마의 세계 신기록 도전을 반대한 누나는 할머니 집으로 가출을 했고,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상황 속에서 조던을 위로해주는 것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즐기던 낚시였다. 낚시터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시간을 추억하는 일은 조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조던은 생활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마저도 엉망이 되었는데, 엉망이 된 자신의 생활이 엄마의 한심한 도전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엄마에 대한 원망이 점점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던은 18일이 남은 순간부터 하루하루 날짜를 세어가며 엄마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사실 조던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힌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엄마는 도채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인다는 사실. 엄마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건 바로 그런 사실들 때문이었다. (본문 113p)
이렇게 엄마를 원망하지만, 조던은 엄마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고 있다. 그 동안 엄마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는 사실도.
10일 후면 상황이 종료됨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위험때문에 엄마의 도전이 기네스북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끝까지 목표를 채우려 한다는 사실 그리고 오히려 그 기간을 연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던은 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엉망이 된 상황은 조던을 조여오고, 결국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조던의 감정이 터지고 만다.
......하루하루 사는 게 엄청 재미없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다 끝마쳤을 때, 지금 이 과정이 꼭 토할 때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말을 하는 동안 끔찍하고 괴로웠지만, 모두 다 게워내고 나면 한 결 편안해지는 것처럼 말을 다 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본문 299p)
가족애를 다룬 많은 작품에서 내놓는 결론은 바로 '소통'이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었던 엄마의 부재,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는 아빠, 강압적인 형으로 인해 조던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친구 아난드. 마틴과의 관계도 얽혀버린 탓에 조던은 철저히 외로워진다. 그것을 모두 엄마의 부질없는 신기록 수립 탓으로 돌려버린 마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마침내 조던이 힘들고 지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을 때 가족은 더 가까워졌다. 가족간의 갈등 그리고 화해라는 주제는 사실 너무도 진부하고 뻔한 결말을 내놓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감동과 유쾌함을 전달하는데 <<그 여자가 우리 엄마야>>는 엄마의 세계 신기록 수립이라는 다소 엉뚱한 소재로 그 진부함을 털어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엄마는 2미터의 땅 속에 있었고, 이들은 파이프나 수신감도가 떨어지는 핸드폰을 통해서만 소통이 가능했다. 이 2미터라는 거리는 가까운 가족간에도 서로 마음의 거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보여주는 소통의 도구는 가족간의 소통의 한계를 비유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조던 외에도 그의 친구 아난드와 마틴 역시 서로 다른 가족간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처럼 가족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을 갖고 있으며,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너무도 가까운 사이라고 서로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서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사춘기를 겪은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딸이 원하는 바를 잘 알지 못하고, 딸 역시 엄마가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작은 오해가 큰 갈등을 빚을 수 있음을, 그렇기에 지금 사춘기 딸과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임을 너무도 잘 일깨워 준 작품이다. 다소 엉뚱한 소재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그 엉뚱함 속에 진부한 소재를 웃으며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