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내 유년시절은 4번의 전학으로 기억된다,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대구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서울로 유학하고 직장을 다니고....

어린시절 대구라는 지역적 특성에 물들기도 전에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었다

나름 잘 살았다고 믿었는데 서울은 별천지였고 아이들은 너나 할거 없이 예뻤고 말투도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거랑 똑같았다, 나는 지방에서 온 아이가 아닌척 하고 잘 묻어서 다녔지만 늘 한구석에 들킬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 촌티를 그들이 알아차릴까봐 전전긍긍했던 거 같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사교적인 것도 아닌 나는 다가오는 친구들이랑 친했고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늘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다시 대구로 돌아갔지만 그땐 서울에서 온 낯선 아이가 되어 그 무리에 끼질 못하고 잠까 있다가 부산으로 갔다,

부산은 대구와 같은 경상도지만 많이 달랐던거 같다,

조금 더 억쎄고 솔직하고 남의 바운더리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다,

그 곳에서 나는 조금은 당당한 척 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늘 타향같은 느낌이었다,

바다도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여름방학때 친척들이 놀러와 함꼐 놀던 바다는 그냥 휴가지같아서 그들이 떠날 땐 나도 함께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늘 나는 남겨졌다,

그래도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도 거칠어지고 많이 닮아갔다고 느끼는 순간 서울로 유학갔다,

서울은 익숙한 곳도 있지만 낯설었다,

일단 부산이나 대구에는 없던 눈이 내렸고 내 생일 있는 3월도 욕이 나오게 추웠고 눈까지 내렸다, 서울에서 처음 맞는 내 생일에 눈이 내렸던 게 기억난다,

그 광경이 너무 낯설어서 혼자 오래오래 눈을 보면서 망연자실했었다,

그 이후 나는 눈이 싫었다,

차고 미끄럽고 지저분해지는 눈이 좋아질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낭만도 없고 애교도 없는 무뚝뚝하고 어떤 지역색도 가지지 못한 여자어른이 되어갔다,

 

이후 취직하고 결혼하고 서울살이를 하다가 신도시로 이사왔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서로 폐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교양이라고 여기던 (적어도 나에게는) 서울에서 옮겨온 신도시는 처음 부산을 내려갔을 때만큼 낯설었다,

서울이랑 멀지도 않은 이곳 사람들은 억척스러워보였다,

누구나 혼자 다니는 사람이 안보였고  정보도 곧잘 풀어주고 물음에 대답도 시원시원하고 무리에도 잘 끼워주었지만 이상하게 곁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함께 있어도 이방인이었다,

아이들도 솔직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똑 부러졌다,

신도시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고 특유으 문화가 있다고 했다,

주변인이라는 것 뿌리째 이식되어진 식물처럼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미 20년이 된 신도시지만 그런 척박한 땅에 삭막한 아파트가 삐죽 올라올때 부터 익혀왔던 날 서고 날것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 역시 뿌리채 다시 심어져야할 상황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지러웠다, 그들은 이미 다시 심기가 끝난 상태였으므로...

 

이 책은 그 신도시의 시작부터 살아왔던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논밭뿐인 곳에  엉뚱한 바벨탑처럼 아파트가 솟아나기 시작했을 무렵 파주에서 신도시로 통학을 하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디로든 옮겨심기가 되지 않고 그자리에 뿌리를 내린 친구들의 이야기는 부러웠다,

읽는 동안 작가가 쓴 발랄한 문체와 대화들 그리고 인물들의 톡톡 튀는 개성에 빠져서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들이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고 아픔을 겪으며 함께 성장한다는 것

서로 데면데면해질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함께 나이를 먹고 변화하는 모습을 함께 보고 시간을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어릴 적 잦은 전학으로 어떤 유년의 친구도 없고 중고등 동창도 만나는 이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오래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모였다, 각자 그런 일도 일어난다는 것을 통감하고 나서야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엣친구들이 제격인 걸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략)

위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 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겁지 않았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그 사이에 다시 가가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할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고 먼 도시에서 살 것이었다, 영운히 쿨한 갱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해도 어쟀건 나는 거기 소속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친굳릉 만나는게 어째서인지 편안했다,

서로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민웅이의 무기력에 대해 찬겸이의 엘리뜨 주의에 대해 주연이의 쓰디쓴 부분에 대해 송이의 방랑벽에 대해 아마 친구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아주고 있을 것이다, 일단 애도장애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그 시기를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변화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지도 직억을 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얕은 수와 비굴한 계산까지도 웃음으로 넘겼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깝게 되고 나서 우리는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늘 함께 하지 않더라고 무슨 일이 있을 떠오를 수 있는 얼굴이 있다는 건 든든한 빽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함께 아픔을 겪었고 그래서 서로 마주하기 힘든 일도 있지만 여전히 이렇게 저렇게 함께였다,

한 때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처럼 말했던 게 있다,

모임이 오래 지속되려면 구성원 모두의 비굴함과 누군가 한명의 적당한 카리스마만  있으면 된다고 모두가 정의로워서 모난돌이 되어 흩어지지 않고 모두가 카리스마나 지도력을 가지려고 다툼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무책임하고 비굴해서 모임조차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기만 하면 함께 하고 그냥 적당히 눈감기도 하고 맞추고 다투고도 다시 마주 보는 정도의 정이 있으면 가장 좋은 모임이 오래 유지 된단다,

이들 역시 오랫동안 보아온 정이 있고 아픔을 눈감을 수도 있고 적당히 모른 척 해줄 수도 있는  적당한 거리감을 익힌 사이였다,

주인공은 그 친구들을  동영상으로 열심히 찍었다, 어떤 의미도 없고 의도도 없는 장면들 말들 그리고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하나하나는 의미가 없지만 그것들은 그들의 시간의 기록이다,

함께한 시간들 그리고 그 두께만큼의   애증들이 나는 진심으로 부럽다,

낯선 신도시 근처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그들도 애쓰고 있었구나

뿌리채 뽑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오래된 가로수들을 이질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은 오래도 한 곳에 지긋지긋하게 뿌리를 내리며 서로 엉켜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몹시 부럽다,

늘 어디론가 실려가서 뿌리를 내려야 하거나 그것조차 포기했던 내가 못했던 일이어서...

이만큼 가까이...

그 거리만큼 그들은 여전히 함께 한다,

 

 

정이현의 작품 "안녕 내 모든 것"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 친구들은 함께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간을 나누었다,

그러나 한 순간 하나의 사건을 함께 넘고 뿔뿔히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까 언젠가

그만큼 가깝게? 그들이 엉뚱하게 몹시 궁금해진다,

 

문득 나만큼 많은 전학을 다녔던 언니가 궁금했다,

그렇게 전학을 다녔는데 언니는 나와 달리 각 학교마다의 친구들을 아직도 만난다,

같은 경험인데 다른 결과다,

언니가 유난히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데 나는 없는 유년기의 친구와  어떻게 아직 이어지고 있지?

내가 문젠가?

한번 언니를 만나면 그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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