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이 많았던건 어쩌면 남성입장에서 많이 불편한 영화였기때문일 것이다,

스릴러이고 정치판이 나오고 홈홈 스위트 홈이 나오고 소녀들이 나오고 실종이 나오고 야심이 큰 남자가 나오고 에쁘고  환상적인 여성이 나온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기대하는 건 가족간에 생긴 갈등을 야심이 큰 남자가 자기 야심을 죽이고 해결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딸이 가진 또다른 소녀소녀한 모습을 발견하고 예쁘고 환상적인 여자는 옆에서 울부짓으며 부들 부들 떨면서 남자에게 기대야 하고 그리고 남자는 모든 악을 물리치고 피가 흥건한 붕대를 감은 채 복근을 드러내며 마무리를 지어야 하건만,.....

이 영화는 당취 그런 기대감을 부숴버린다,

 

중학생 엄마를 하기에 손예진은 여전히 예쁘고 젊지만  어릴 적 좀 놀았고 공부머리 없고 가수가 되겠다고 대책없이 굴다가 한때는 영부인이 되는 속물적인 꿈을 꾸었던 전라도 광주출신의 여자 연홍은 경북 대산시 (아마도 대구?)에서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슈퍼히어로가 되어간다,

그러나 따뜻하고 정의로운 슈퍼히어로는 아니다,

딸이 실종됨에도 선거에만 몰두하는 남편과 맞장뜨고 난 후 한번도 화를 풀지 않는다,

무표정하고 화난 얼굴로 미친년처럼 머리를 풀어해치고 여기저기 해집고 다닌다,

학교로 경찰로 종횡무진 다니고 심지어 굿판에서 엎드려 빌거나 무당과 함께 쌍욕을 해댄다,

누구에게도 애둘러 말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하고 싶은 것 해야할 일은 그대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범인을 죽임으로서 끝나는게 아니라 두고두고 수치감을 느끼고 살아가도록 배려(?)한다.

 

어딘가 친절하지만 살벌한 금자씨 같기도 하지만 금자씨만의  으스스한 나긋나긋함은 없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오는 김혜자 엄마도 생각난다, 그러나 그 엄마는 아들을 위해 나긋나긋하게 떄로는 비굴하게 웃어가며 결국은 원하는 걸 성취하지만 결국 스스로 그리고 아들이게도 지옥을 선사할 그런 끔찍한 엄마라면

손예진의 엄마는 두눈 부릎뜨고 딸을 위해 미친년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고 오직 직진만을 고수하며 여기저기 부딪치고 그리고 통쾌하게 해결해버린다,

김혜자의 엄마는 의외로 나긋나긋 여성성을 드러내며 문제를 해결하지만

손예진의 엄마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어도 가슴이 깊이 패인 원피스를 입어도 그냥 무대뽀 로 진실만을 향하는 엄마다, 대책이 좀 없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되는 두 엄마의 삶은 어떠할까

김혜자 엄마는 잘생긴 아들 원빈과 그냥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을까

문득문득 순진한 아들의 얼굴에서 섬찟한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자신에게서 지울 수 없는 괴물을 발견하고 힘들어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 엄마는 그래도 엄마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내 아들을 더 지키려고 도끼눈을 뜨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손예진 엄마는 .. 이미 가정은 깨졌고 딸은 죽었고 추문은 남았고 자신도 망가졌다,

무엇하나 남지 않은 대산에서 그는 어떻게 살까

어쩌면 바다건너 케빈의 엄마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갈까

 

군데군데 거칠고 화면도 내내 어두워서 이제 노안이 온 나로서는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봐야했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오기지니가 부르던 와일드 로즈 힐 노래는 처량하면서도  섬뜻하고 애잔하면서 아름답다,.

이렇게 여자가.. 그것도 강한 여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는 얼마만알까

주위에 저마다 속셈을 가지고 눙치면서 계산하는 남자들과 달리

이 영화는 여자가 사건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들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사건을 풀어간다,

연홍도 민진도 여교사도 모두자 스스로 움직인다,

솔직히 여기서 남자들은 모두 찐따다,

 

불편하고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통쾌하고  아름답다.

세상엔 너희가 원하는 아름다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무식하고 단순한 화가 난 직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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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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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책을 읽을 때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모양이다,

만약 내가 지금 이순간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불쾌해 했을 수도 있고 읽다가 말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과학문맹이라 우주에 대한 이야기도 낯설고 스텐딩코메디라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무한도전이나 일박이일같은 버라이어티 예능은 좋아하지만 개콘이나 코빅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우주와 스텐뎅 코메디가 주된 배경이고 소재이다.

 

김중혁의 책은 한없이 가벼워보였다,

내가 그의 소설은 딱 두권밖에 읽지 않아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제목들이 주는 느낌이 참 가볍다.. 라는 것이었고

에세이는 좋게 읽었지만 가벼움이 주된 흐름이었다,

가벼워서 나쁘다는 건 아니고 가볍게 툭툭 치고 지나가지만 내가 한번 문득 생각했던 거라든가 스치고 지나는 상념같은 걸 기가막히게 잘 케치해서 슬슬 풀어낸다,

내겐 그런 부분이 참 공감이 갔다,

이거 나도 생각했었는데

아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되게 재미있고 말 잘하는 친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툭툭 던지면서 시시껄렁하게 말하는데 그 땐 웃으며 가볍게 넘겼는데 밤에 이불을 덮고 누우면 그 말의 이면이 문뜩 떠오르는 그런 기분 ..

뭐 암튼 그런게 있었다,

 

나는 농담이다도 그렇다,

우주와 스텐딩 코메디도 내 취향은 아니었고

아무래도 코메디 멘트들이 섹스나 배설에 관한 소재가 나오다 보니 영 별로긴 했지만

이상하게 여기서는 딱딱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우주로 날아가 이젠 생사를 알 수 없는 ... 아니 생사가 이제 의미가 없어진 존재가 되어버린 이일영과 낮에는 컴퓨터를 고치고 밤에는 클럽에서 스텐딩 코메디를 하는 송우영의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의외로 자꾸 다가가게 만든다,

불쑥 불쑥 치고 나오는 대사에도 생각할게 많아지기도 하고

그냥 스쳐지나는 관계 어쩌면 몰랐을 수 도 있을 남남들이 만나는 관계

가장 밀접한 관계가 오랫동안 소원했던 이유등등을 보면서

세상엔 내가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몰랐음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쪄면 세상은 우주와 같아서 내가 아는 건 지극히 일부분이고 모르는 그 거대한 세상엔 또 다른 무언가가 함께 지금도 살고 있다는..

우주적인 시점을 순간 가지게도 된다,

일영의 우주와 우영의 코메디는 어쩌면 엄마가 같다는 것만 아니면 접점이 없다,

그러나 일영은 우영을 통해 농담을 알게 되고 우영은 일영을 통해 넓고 넓은 우주를 만난다 비록 두 사람이 마주한 시간은 순간이었고 일방적인 시간이었지만...

 

이야기가 병속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송우영이 일부러 꺼집어내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굳이 꺼낼 필요강 ㅓㅄ는 이야기도 있고 병 속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도 있다, 코미디를 할 때도 그런 혼동이 자주 있었다. 웃긴 이야기들은 이미 그 자체로 웃긴 이야기들인지 아니면 자신이 하면서 웃겨지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123

 

당연하지 바보야 당연한거야. 그걸 이해할 수 있다고 떠드는 놈들이 사기꾼이야. 감정은 절대로 전달 못해 누군가 슬프다고 얘기해도 그게 전달 되겠어? 각자 자기 방식대로 그걸 받아들이는거야. 진짜 아픈 사람은 자기가 아픈 걸 10퍼센트도 말 못해 우린 그냥.....

뭐라고 해야하나 그냥  각자 알아서들 버티는 거야 이해 못해준다고 섭섭해할 일도 없어 어짜피 우린 그래 어짜피 우린 이해못하니까 속이지는 말아야지  위한답시고 거짓말하는 것도 안되고  상처받을까 봐 숨기는 것도 안돼 그건 다 위선이야.

                                                                                  191

 

별 거 아닌 어쩌면 전체 흐름과 상관없을지도 모를 문장들에 마음이 움직이면서 한권을 다 읽었다, 가볍게

그냥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고 심각해질 필요도 없이

그래도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이

때로는 이렇게 가볍게 한없이 떠오를 것처럼 가볍게 읽어도 되지 않을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소설이 무겁든 가볍든 ...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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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01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받아 놓고 아직 펼치질 못했는데,,리뷰만 읽어도 우째 다 읽은 기분 들까요 ㅎㅎㅎ

푸른희망 2016-11-01 10:4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냥 편하게 펼치고 읽으시면 되어요 ~~^^
 
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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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이며 파키슨병을 앓고 있고

두 딸의 아버지이지만  아내와 별거 중인 남자

조지프 올로클린교수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도 그랬고

첫 장면의 리암  베이커의 에피소드도 그렇고

왠지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는 전개가 진행되겠구나 싶었다,

온정주의라고해야할지 인권보호라고 해야할지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리맘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부분을 읽으며 불편하다 싶은 순간  우리의 주인공 조 (조지프 올로클린)가 한마디를 날린다.

 

저는  사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개인입니다,

 

뭔지 몰라도 계속 읽어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다,

 

어느날 딸 아이의 절친 시에나가 피칠갑을 하고 집앞에 나타나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시에나는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모든 상황과 모든 증거들이 시에나를 가르킨다,

그 아이가 남긴 증거가 가장 많고

그 아이가 받은 상처들이 오히려 그 아이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중요하고 사람이 받은 상처의 무게보다 그 상처나 상황이 가르키는 방향이 더 중요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는 오로지 시에나만을 바라본다,

심리학자답게 아이의 심리를 파고 들면서 사건을 바라본다,

저 아이는 절대 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앗다,

어쩌면 맹목적이고 그저 자기 직관에만 의지된 그 믿음 하나로 사건에 뛰어든다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사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가정폭력으로 치부될 사건이 아니었다,

가정과 학교가 얽혀들고 시에나의 품행이 오르내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판단이 뒤섞인다, 그리고 더큰 인종차별문제가 얽히면서 사건은 점점 복잡해진다,

 세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작품을 읽으며 한 때 딸이었고 지금은 딸들을 가진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다.

현관만 벗어나면 세상은 정글이다,

어디서 누가 내 딸을 노리고 있을지 이용해먹으려고 할지 속되게 자빠뜨리려고 할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다정함은 두려운 것이고  친절함이 독이 된다,

 

임상작업은 매우 본능적입니다.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짐을 나눠지는거죠. 내게 관심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심리학자인 조는 본능적으로 시에나를 믿고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지만 시에나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아이는 이미 트라우마가 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면 좋겠고 나를 바라봐 주고 예쁘다고 해주면 좋겠다는 아이의 인정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누군가가 있다

내가 널 사랑해줄게

내가 널 이뻐해줄께

대신 넌 내게.....

시에나는 거부할 수 없다, 나를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에게 전부이고 싶고 내겐 그가 전부이다.,

 

어린애가 양친을 잃으면 고아라고 하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를 부르는 이름은 없지

아... 이 작가는 도데체 어떤 인간이지? 싶었다

딸이 사라지고 이미 죽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한마디다,

그렇구나

자식을 잃은 사람은 불리는 이름조차 없는 거구나...

자식을 잃은 부모 자식이 죽었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스스로 죽여버린 삶을 살아가는 부모 그들은 잊혔다,

자식을 찾아주려고 애쓰던 형사들은 이제 없고 의심스러운 사위는 잘 살고 있다,

그들의 고통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투명인간이었고 그들의 아픔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고통은 계속된다. 살아있는 동안은

 

한 가족에게 이토록 많은 불행이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게 경악스러울 뿐이다. 평생 계속될 장애를 얻은 딸 살해당한 아버지 인종차별주의자 아들 살인혐의를 받은 아이 잃은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는 흔한 말은 진실이 아니다. 어쩌면 게임에서는 그럴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아니다.

 

죽음이더라도  그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면 괜찮다,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갈 수 있다면  괜찮다

때로 죽음을 애도하는 것 조차 금지를 당하기도 하고 죽음이 부정되기도 하고 의심받기도 해서

슬픔조차 애도조차 편안하게 할 수 없는 개떡 같은 상황도 있다,

불행은 하나씩 오지 않는다. 몰려온다는 건 정설이다,

그러나 그 불행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던지는 것이다,

일이 힘든게 아니고 어떤 상황이 힘든게 아니다

그 상황속에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 혹은 특정한 누군가가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더 불행하게 하는 법이다,

현실은 어떤 개떡같은 소설보다 더 개떡이다.

 

 

당신은 모든게 완벽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기를 원해 그런데 '그래 보이는 '거랑 실제로 그런 건 달라.

 

가끔 완벽한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하면 그 뒤엔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마련이다,

완벽이란... 어쩌면 생각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상상이든 이상이든 공상이든

누군가의 눈에 행복해보이는 것 완벽해 보이는 것

가족은 함께 해야하고 행복해야하고 헤어져서는 안된다는 당위가 중요한게 아니라

제각각 어떤 위치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가끔 우리는 티비 광고에 나오는 장면들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자꾸 자기의 현실을 남루하다고 불평한다. 내 현실도 충분히 반짝반짝 할 수 있다

의외로 그들도 그다지 완벽하지 않다.

 

부모노릇이란 공중곡에같다. 언제 놓아줄지 알아야 하고 아이가 공중제비를 돌고 다음 순간 손을 뻗어 고리를 잡는 ,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은 언젠가 그 애가 이 쪽으로 다시 날아올 때  잡아줄 준비를 하고 다시 세상으로 쏘아보내주는 것이다.

 

미스테리추리물답게 끝까지 반전을 보이며 사건을 마무리짓는다.

시에나는 아직 상처는 남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경험은 소중하다,

외로워서 아무에게나 기대서도 안된다는 호된 경험도 했다,

우리의 조도 가족에 대해 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무조건 감싸고 보호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결국 이 책은 어쩌면 조지프 올로클린이 아버지로 성장하는 과정이 더 중심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이혼을 했고 모든 관계가 정리되었지만 그가 두 아이의 아빠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멀리서 지켜보는 일 그리고 기다리는 일 그는 그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아버지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사실 딸들이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그럼에도 내 딸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다독이기위해

이 책이 썩 괜찮지 않을까

 

이 행동하는 심라학자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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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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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verse

 

무엇이 뒤집어졌다는 말일까

마지막 한줄?

그것을 그 문장을 무심하게 읽었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앉아 바라보다,

그리고 급하게 책의 첫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결국 그건 내 여자친구가 받았다는  편지의 문장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걸까?

대학시절  같은 강의를 듣던 친구들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친구 한명을 사고로 잃었다,

그리고 모두 나름의 부채의식을 지닌채 살아간다

어느 날 제각각은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너희들은 살인자이다"

그리고 그 중 죽은 친구와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후카세는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아니 사건을 조사하고 더불어 과연 내가 친했던 그 친구 히로사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대학시절 채 1년이 되지 않않은 교제 기간 이외의 그는 알지 못한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뗜 유년시절을 보냈고 여자친구는 있는지 ...

그리고 후카세의 조사와 함께 희미했던 히로사와는 점점 윤곽이 뚜렷해졌다,

 

듬직한 친구

유능하고 똑똑한 친구

말없는 친구 키가 큰 친구

누구에게나 다정한 친구

언제나 약한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 주었던 친구

투명에 가까운 색을 가져서 누가 가진 어떤 색이든 흡수해버리는 친구

그래서 오히려 눈에 띄지 않고 쉽게 여기기 쉬웠던 친구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스스로 희생하는 친구

 

히로사와를 알아갈 수록 후카세는 자기가 알던 친구가 점점 옅어지고 또다른 인물을 만나는 느낌이다. 그를 아는 사람을 만나 증언을 듣고 추억이 담긴 에피소드들을 들으면서

어쪄면 내가 그를 쉽게 이용했고 쉽게 여겼고 나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다고 여기지만

정작 진실을 아는 히로사와는 지금 여기 없다,

죽어버렸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그때 우리들이었을까

그리고 나 였을 까

아니면 그의 다정하고 손해보고 마는 성격이었을까

 

내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건 커피 뿐이고

내가 남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커피 뿐이고

내가 다정함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커피뿐이었는데

그 커피가 결국은 모든 원인이었다,

몰랐다는 건 결국 그게 죄다,

 

중간중간 히로사와의 동창들의 그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부분에서

왕따당하는 친구에게 티나게 도와주는 일

혹은 그래서 그에게 용기를 내라고 다그치는 일이 오히려 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타인의 입장이 되보지 못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이

<우아한 거짓말>과 겹쳐진다,

그래서 이 책이 <우아한 거짓말>의 남성버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알기 힘들다

그를 공감하고 알아간다는 건 어저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절친이라고 믿고 싶었던 후카세는 자기가 보고 싶은 히로사와만 보았고

어쩌면 히로사와도 후카세보다 더 소심하고 섬세하게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한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조금 아팠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이제 다 읽었다고 책장을 덮는 순간...

표지가  없는 빈 몸의 책 뒷편에 한줄... 진실이 써 있다,

잔인하게

이 책이 읽는 동안 왜 '이야미스'인지 몰랐는데

그 뒷페이지의 소심한 세 줄에서 정말 이야미스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 참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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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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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나나 나기의 이야기

 

사랑이 넘쳐서 애자인 애자는 사랑하는 남편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후 삶을 놓아버린다.

이미 사랑을 잃은 애자에게 남은 건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녀는 그대로 삶을 방치한다, 그의 삶의 일부였던 두 딸 소라와 나나 역시 그녀 곁에서 방치된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죽음 같은 삶을 사는 애자 옆에서  소라와 나나는   이웃집 순자와 나기를 만난다,

기묘하게 생긴 방을 절반을 잘라 생활하는  소라 나나와 순자와 나기

소라 나나는 순자의 밥을 먹고  성장한다. 그리고 나기와 오누이처럼 함께 자란다,

 

성인이 된 소라는 단 한명 소라만 있는 소라부족이 된다,

그녀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롯이 소라부족이 되어 언젠가 그 소라부족이 전멸되는 날을 기다린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누구도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안으로 안으로 스스로도 버거워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

가시나무처럼 그 속엔 소라만으로도 가득해서 소라는 누구에게도 쉴 틈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이미 애정이 없어진 애자가 보이지 않기도 하고 좋은 걸 늘 골똘이 생각하지만 자신은 전혀 좋지 않다, 어릴적 집 벽에 붙었던 나방처럼 이미 말라버린 씨주머리는 남기고 사라진 나방처럼 그렇게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라는 애정결핍이다, 애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애자에게 요구할 수 없었다,

애자는  어느 순간 사랑이 매말라 버렸고 스스로가 바삭하게 말라서 스스로 허물어져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언니 소라뿐이지만 그녀도 언젠가 자신을 놓아버릴거라는 게 느껴진다,

나나는 외롭지만 아닌 척 한다,

예민하고 소심한 나나는 엄마가 죽어간다는 걸 눈치 채고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은 방법을 알지만 스스로 잔인해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어린 짐승을 괴롭히는 일

그러나 어느날 나기를 통해 남의 고통을 모르는 괴물이 되지 않기위해 노력한다, 아마 노력했을 것이다,

모세를 만나고 아이를 가진다, 그리고 그의 가족을 만나지만 나나는 알 수 없다,

나나는 애정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어쩌면 도심에서 늑대소녀처럼 키워졌는지 모른다,

세상의 통념이라는 것 당위라는 것이 나나에겐 없다,

당연히 그러해야하는 것이 없고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궁금해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타인을 통해 그것을 얻어간다,

원시적이고 예민하지만 그래서 나나는 괴물이 아니다,

모세는 지극한 당위의 세계 사람이다,

그가 말이 없는 건 어쩌면 모든  세상이 당연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부부사이란 의당 그래야 하고 가족이란 저래야 하고 연애란 이러이러해야한다는 당위성속에서 행동하지만 생각이 없고 행동이 서툴다, 타인을 알지 못한다,

자기를 둘러싼 당위의 세계를 깨지 못하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나가 이상할 뿐이다,

그래서 둘은 헤어진다,

 

나기는 이웃의 오라버니이고 친구이고 가족이다,

말없이 들어주고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미소를 가진 나기

어느 날 지기들 모자의 삶에 불쑥 끼어든 소라 나나 자매를 처음엔 곧 사라질 사람이라고 여겼다, 불쑥 왔다가 불쑥 사라지는 도깨비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자매는 도깨비를 무서워했고 생각보다 오래오래 그 모자의 삶에 끼어들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자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 함께 음식을 하고 함께 등하교를 하고 ....

그러나 나기에겐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이 있다,

아름다워서 사랑했던 대상에게 비웃음을 산 기억이 있고 죽도록 맞은 경험이 있다,.

그 사랑이 어떻게 되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면서 독백처럼 편지를 쓴다,

언젠가 내 엎에 나타나기를... 그런 기다름을 나기는 자매와 함께 보낸다

누구에게도 기다림을 제 사랑을 말하지 않고....

 

그 세사람은 나나가 모세와 헤어지기 위해 싸움을 하고 나나 혼자 아이를 낳겠다고 겲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제 단단한 삶의 껍질을 깨기 시작한다,

소라는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나나는 조금 세상과 함께 하기로 했고 나기는 언제나 그렇듯 좋은 미소로 함께 지켜줄 것이다,

자기 아이를 가질 일이 없을  나기는 나나의 아이에게 아빠같은  삼촌이 되어줄 것이고

손자를 가지고 싶어하는 순자는 좋은 할머니가 될 것이고

소라는 아이의 이모가 되어 바람막이가 될것이다,

애자는...우리의 사랑을 잃은 애자는  그냥 애자가 될 거 같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말이 가지는 무게를 몰랐다,

삶을 이어가겠다는 말.. 그럼에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애쓰겠다는 말

누군가와 관계를 하겠다는 말

타인을 이해하겠다는 말

그렇게 힘들게 자기를 고백하고 삶을 이어갈 것을 계속하겠다고 나나는 몇번을 말한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가장 힘든 선택을 했을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괴물로 보일 나나가

삶을 어떻게든 계속해보겠다는 말이 그래서 어쩌면 든든하다

 

계속 하겠다도 아니고 계속 해보겠다니...

잘 할지 알 수 없고 깨질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일단 해보겠다고 쉬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해보겠다는 말이 참 묵직한 울림이다,

 

문장에서 묘하게 리듬감이 느껴져서 이걸 낭독하면 더 좋겠다 싶었는데 낭독해 놓은 게 있다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누가 낭독을 했을지 궁금하다,

묘하게 끌리는 황정은 작가의 목소리로 낭독이 되었다면 참 매력적이겠다

낯선데 묘하게 끌리는 문장의 리듬을 따라... 끊어내지 못하고 주욱 계속 읽어나갔다,

 

대단치 않은 인간들

그럼에도 사랑스럽고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들

사랑하지만 어느 정도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사랑

그렇게 스쳐지나갈 지 모를 당신 과 나

역시 지금 여기서 계속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나나와 소라와 나기처럼....

 

 

논어에서 공자께서 말하시길..

알고 저지르는 잘못과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중 무엇이 더 큰 잘못인가 하는 질문에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이 더 크다고 하셨다,

왜 그런지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잘못과 알지 못함 이 두가지의 무게가 더 크다는 거...

흔히 알고도 저지르는 잘못이 고의성이 있으니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잘못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잘못이란 모르는 것도 배워야 하고 잘못도 인지해야하므로 그런 것일까

가끔 보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본인이 그런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자기들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위안부 문제라거나  일제 강탈기에 일본이 다른 나라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배우지 않는다고 그저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얼마나 당했는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를 배우기 때문에 몰랐다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배우지 못해서  조상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사과를 요구하는 다른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배상했고 이미 지나간 일에  왜 연연하는지...

무엇때문인지 알지 못했다는 말을 했었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배우지 못했다는 말은 기억한다)

몰랐다는 게 그렇게 모든 일에 면죄부가 되는 일이 아니다,

모세는 몰라서 나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다고 믿었고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의 상식이 없을지 모르는 나나와 소라는 어쩌면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우고 익히는 중이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그 이면까지 볼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상식의 평범한 세상에서는  오히려 그들이 이상하고 기이한  부류이겠지만 그들에게는 모세야 말로 이해할 수 없는 당위성 덩어리였던것처럼...

명절의 가족간의 단란함이 누군가의 희생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누군가는 당연하게 요강에 변을 보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씻어야 한다는 것

나의 새로운 아파트에 기왕이면 임대주택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들에게도 복지는 주어져야 하지만 그건 내 바운더리 밖이었으면 좋겠고

당연한 모성과 당연한 엄마로서의 의무가 사실은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는 것

모든 것을 모른 채 당연하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세상은 균열하고 세상은 팍팍해진다,

세상엔 모세도 있지만 나나도 있고 소라도 있고 나기도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나의 계속해보겠다는 말은 어쩌면 이 세상의 당위에 대해 더 생각해보겠다고

좀 더 타인을 이해해보겠다고 그래서 적어도 괴물을 되지 않겠다는 소심하지만 강한 다짐처럼 들렸다,

모르고 그랬어...

그런지 몰랐어

이 말이 주는 아주 말갛고 청순한 폭력이 아직도 세상엔 많이 있다고

그래서 배워야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여러가지로 생각을 해야한다,

아 ... 이건 이 책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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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도 크지만,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을 모르는 것도 큽니다. 이런 사람과 엮이면 고구마 두 세 개 연달아 먹는 기분이 들어요... ^^;;

푸른희망 2016-10-10 17:55   좋아요 0 | URL
그렇기도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