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팟케스트를 알고 낄낄대며 들었다,

결정장애를 가진 현대인들의 결정을 도와준다는 컨셉도 참신했고 두 사람의 케미도 유쾌하고 좋았다, 누군가를 깍아내리거나 면박주지 않고 스스로 망가지면서도 청취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대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태도도 좋았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상담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껀한껀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다,

한명은 먼저 지르면서 나서면 다른 한명은 조곤조곤 정리하고 마무리하거나  보기보다 허당인 면을 드러내는 한명에게 면박을 주면서 함께 깔깔대는 모양새가 오래 알고 이해하지 않으며 나오지 못할 조화였다,

사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해결책은 늘 알고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만 그 선택이 옳다고 지지받고 싶고 때로는 해야하지만 한번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가 다잡아주길 바라는 것

그런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설령 도무지 해결책을 알지 못하는 문제이더라도 알지못하므로 무엇이든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어~ 하고 내가 몰랐던 부분을 들을 때가 있고 아리송한 걸 명쾌하게 납득시키기도 하고 이건 너무 엉뚱하잖아하고 무시하다가도 언젠가 불쑥 다른 곳에 써먹을 수도 있다,

나는 두 사람이 벌써 데뷔한지 20년이나 지난지 몰랐다,

하긴 김숙이 난다김을 하면서 삼천만 땡겨달라고 했을 때는 나도  젊었을때고 한창 송은이가 만원의 행복을 할때는 첫아이 이유식을 먹이면서 본 거 같기도 하다,

한번도 대단한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분야에서 20년을 지내왔다는게 세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꾸준하고 진득한 사람 그래서 오래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난 한번도 진득하게 뭘 해본 적이 없다,

졸업무렵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덜컥 취직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채 몇년 되지 않아 이게 적성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사표를 내버렷고 글을 쓰겠다고 맘 먹고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시작했지만 그것도 내 재능에 대한 고민고민만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공부하는 상담도 늘 회의적이고 어떤 유용한 가치를 가지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커다란 대가리만 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오래 진득하게  버티는 카테고리는 사람. 여자 이것밖에 없는 거 같다 ㅜㅜ

각설하고....

 

팟방을 많이 듣진 않았지만 두가지 사연이 기억에 남았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할까요 라는 사연에 홍석천과 연결했던  사연

그때 홍석천이 그랬다 가능한한 오래오래 하지 말라고...

어떤 조언보다 진정성 있게 들렸던건 그의 경험이 상처가 녹아 있었던 것은 말 할것도 없고

무엇보다 상담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알기때문에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면 상처받고 안하면 죄책감이 든다면 차라리 죄책감이 낫다는 것

속이는게 아니라 내가 좀 더 튼튼해지고 막말로 혼자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때 까지는 버티고 버텨야 한다는 조언이 울컥하면서 와 닿았다,

뭐 부모니까 이해할거라든가 부모를 속이지 말자든가 하는 도덕적인 판단이 아니라

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니가 우선이라고 너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내게도 푹 꽂혔다,

 

그리고 김생민이 조언한 돈을 쓸까요 모을까요?

그 답게 돈은 모으라고 있는거지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는 말을 키득거리면서 들었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내 방식을 고수하는 뚝심이 은근히 부러웠다,

계속 이어지는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들으면서 짠돌이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나름 철학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외국여행을 가라 어쩌라는 말을 다 자르고 딱 10만원으로 통영을 다녀오라는 고의 결론이 그래서 더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공감해야한다는 건 알지만 막상 그 '공감'이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알아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공감이다,

'앵무새 죽이기'에도 나왔듯이 남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한다는 말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타인을 본다, 그래서 어설프게 충고를 하고 연민만 해버린다,

공감은 어떤 결론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아니다,

어떤말로도 위로가 될 수없다고 외면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직면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마음

각자 각자의 입장에서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음을 알고 만져주는 것이 공감이다,

 

 

" 난 잘하는게 없어,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힘들고 남자애들이든 여자애들이건 먼저 말거는 것도 어려워 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겠어 자존감이 너무 낮은거 같아 ......그래 맞아 어쩌면 너무 나자신한테 엄격한걸지도 몰라 너무 나에 대해 기대가 커서 왠만하면 잘하는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어 자꾸 자신이 없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건 정말 많은데 좋아하는 건 모르겟어..."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듣게 되는 딸아이의 하소연이다,

내가 너무 엄격하게 키웠나 키우면서 뭘 잘못했나 시간을 헤집어서 기억을 꺼집어 내보면 후회할 것들만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결정적인건 없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안들 수 밖에 없다지만 조금은 무모하고 자기에 대해 과대망상을 해도 괜찮은 나이에 너무 쪼그라들기만 한 아이를 보면서 나를 보기도 한다,

나도 싫은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뭘 좋아하니? 하고 물어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쪼그라들지만 그걸 누군가가 알까봐 황소개구리만큼 몸을 부풀리기도 하고 아닌척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살고 있다, 그냥 이제 나한테 익숙해져서 어쩌라구 하는 똥뱃장으로  살긴 하지만 그런 유전자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는 아직도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치는 자꾸자꾸 하늘만큼 높아지고 뭐 그런 중이다,

책은 우리의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흔히 수치심과 죄책감을 혼돈해서 쓰는데 저자는 명확하게 구분해준다,

어떤 잘못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죄책감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한 비난이고 부끄러움이고 반성이지만 수치심은 나자신에 대한 비난이고  분노가 된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건 죄책감이고

나란 놈이 그렇지 늘 이모양이꼴이야 나는 한심한 놈이야 ... 하게 되면 수치심이 된다,

죄책감은 고칠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수치감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그 수치감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속한 가족 사회 집단에서 주입하는 어떤 가치관에 의해 내가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기준이기도 하고  내 속에 자리잡은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녹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누군가의 의도적인 혹은 의도치 않은 말한마디로 건드려지고  폭발해버리거나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 수치심은 어쩌면 내 안에 자라지 않은 아직 어린 아이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같다,

나 아직 여기 있으니 좀 봐달라고... 나 좀 안아주고 위로해달라고

그 아이가 내 속에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아마 누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은 아이를 한명씩 품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아이를 알아주고 마주보고 위로해주는게 필요할 뿐이다,

그 아이는 나와 영원히 함께할 존재이니 잘 지내야 할 뿐이다,

누군가의 말한마디 행동하나에 상처받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수치감을 느끼고 그래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스스로가 가치없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느낀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갖는다,

적은 세월을 산 아이라고 아픔이 없지는 않다,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지에 따라 내게 수치감을 줄것인지 그저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일지가 결정된다,

누군가에게 수치감을 주는 언어가 아닌 공감하고 자비로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데 그건 알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고 공감하는 것

결국 수학을 풀듯이 계속된 연습문제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위로이지만 그게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내 마음에 숨은 수치심을 건드려서 마주하고 싶지 않고 그 상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단다.

먼저 나를 마주하고 나에게 관대할 때 타인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는 말이 훅 다가온다,

 

내가 눈군가를 달래주고 안아주는 일이 서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정하지만 무뚝뚝했던 부모님은 어색해서 아마 표현을 안 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해서 나는 늘 그게 어색했다,

애교도 없고 다정하지 않은 건 성격탓이 아니라 내가 경험이 없고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다정한 위로보다 툭툭 던지는 적확한 한마디의 말을 더 신뢰하고 편해하는 것

그래서 나조차 누구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기 보다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진단하는 말을 던지는게 더 편했다, 그게 상대에게 상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가식적이지 않고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갑옷이었던 거 같다,

위로로 무너지고 싶지 않고 징징짜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단단하게 나를 무장시키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어른대 어른으로서는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지만 상대가 어린 아이일때는 그것만큼 가혹한 것도 없다,

감정은 눌러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나는 늘 조언하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니다 싶어 모든 감정을 감추지 말고 말하라고 했더니

그 응대가 너무 힘들다,

배운대로 하는 건 뭔가 가식적이란 생각만 들고 그저 바라봐주고 안아주는 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라는 거냐고....

생긴대로 살자니 그게 아닌것 같은데 바꾸자니 그건 내 옷이 아니다,

수학 영어 국어 과탐 사탐만 아니라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 표현하는 것 그리고 공감하는 것 모두가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고 시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며 알게 되지만 늘 용기내어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지만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세상에 나는 또 하나가 더 없다,

단 하나인 나는 단하나여서가 아니라 그 존재로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불완전하고 누군가와 달라보이고 어딘가에 끼어들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여전히 의미있는 존재다,

누구나 아프지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 다른 누군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고 의미있다,

내가 그렇듯이...

나를 알고 조금 용기를 내서 한걸음 내딛는 일

그리고 부끄러움이 영원히 내옆에 머무는 건 아니라는 것

의외로 타인은 쉽게 잊을 테고 남의 판단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잊게 되고 그 이상으로 나를 덮치는 수치심을   없애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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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작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작품속에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발칙하게 생각했다,

통속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 통쾌했었다,

착한척하거나 의도적으로 위악을 떨지 않아도 인간이란 족속은 무른 속내와 이익앞에서 무엇보다 자기 욕심이 앞서는 존재이다, 그것으로 착하다 악하다고 판단을 할 수 없다,

인간이란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늦게 등단했다고 누구나 많은 이야기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것이고

다사다난한 역사를 관통했다고  그것이 문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산 누구나 작가가 될 것이고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털아낼 수 잇을 것이다

여러번의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을 끈 것은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면서 나중에 이걸 꼭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견뎠다는 말이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보다 살아남아서 나중에 이 이야기를 꼭 써서 복수하겠다는 결심

그건 극단으로 몰린 처절함이기도 하고 동시에 순진한 어린소녀의 결심같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늦게 시작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나보다,

닥쳐온 일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단단해진 속에 이야기가 쌓여갔다,

부러웠다,

일단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고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골방에서 머리를 싸매는 일보다 더 의미있다는 것을 작가는 들려줬다,

어떤 고귀한  선언이나 주장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내는 사람이 더 귀하고 가치있음을

그리고 그  바닥에서 알아가고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 자기자신의 오기를 가지는 것 그말도 좋았다,

부끄러움과 자긍심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인간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쉽고 잘 읽히는 소설이 좋고

누군가는 통속적이라고 폄하할지라도 살아가는 일이 통속적일 수밖에 없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현실에서 살지 이상속에서 살지 않는다,

나 자신도 짜잘한 인간이라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현실적으로 정직하고 당당하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그런 사람이 더 좋다, 어떤 이상은 없어서 비굴해보일지라도 내 주변을 챙기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더 좋다,

그래서 여러번의 인터뷰중에서도 균일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작은 것을 아끼는 마음  작은 일에 가치를 두는 마음이 좋았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예전엔 몰랐던 봄꽃이 에쁘다고 느껴지고 본홍색 노란색 그 색들이 촌스럽지 않고 정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의 아름다웠다는 정원이 궁금하다

그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작가의 책을 다시 먼지를 털어 읽어야겠다,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다

비슷한 위선에 동질감도 느끼고 소소한 복수에  차사한 후련함도 함께 공유하면서 나만 속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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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나이젤 슬레이터 지음, 안진이 옮김 / 디자인이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먹은 음식은 오랫동안 몸이 기억한다,

그때 어떤 맛이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게 된다,

어떤 분위기였느지 누구랑 먹었는지의 기억도 희미해지겠지만 그 맛이 주었던 감정은 남게 된다,

즐겁다거나 슬펐다거나 억울했다거나하는 맛을 내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고 있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울할때 기운이 나는 ,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내게 힘을 주는 음식도 그렇고 왠지 가까이 하기 싫고  누구나 좋아하지만 나는 끌리지 않은 그 음식에도 그런 감정이 함께 할 것이다,

 

병약하지만 아름다웠던 엄마는 요리솜씨는 엉망이었다,

반조리 식품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토스트 조차 잘 태워먹고 조리도구는 먼지가 덮이고 구석에 방치되어 있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볼품 없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음식이 주인공에게는 천상의 맛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하나하나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그 추억이 다 맛깔스럽지는 않다,

똥  구토물 침 등등 역겨운 배설물들이 함께 등장하고  불쾌한 냄새 우울하고 무서운 기분 어색했던 순간들이 함께 기록된다,

그런 상황에서  반조리식품의 조리법이나  건조된 야채들 그리고 캔디 초코바 젤리 케익등등의 간식과 디저트가 펼쳐진다,

사실 내 마음의 소울푸드가 모두 슬로푸드고 몸에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엄마 몰래 문구점에서 사 먹었던 강렬한 색깔 제각각 모양의 조잡한 군것질들

차가 다니는 도로의 먼지와 소음을 모두 머금은 길거리 음식들

하교길에 옹기종기 모여 입이 반쯤 벌어진 것도 모르고 바늘로 콕콕 찌르며 하나더를 기다하던 뽑기 달고나

리어커에서 퍼 주던 냉차들

야자를 땡땡이치고 몰려가서 먹었던 학교 가까운 중국집의 짜장면

먹어도 먹어도 계속 불어나던 대연시장  구석에서 필던 칼국수

시험끝나고 친구들과 몰라겨서  바가지를 쓰는 줄도 모르고 절대 친절하지 않은 험상궃은 좌판 아줌마들한테서 사먹었던 비빔 당면

국물한 번 찍어먹으면 아줌마 호통에 쫓겨날 수도 있던 하교길 포장마차 떡볶이

사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정갈한 건 아니었던거 같다,

라면도 끓여먹고 스팸도 구워먹고

사발면도 박스째 사다놓고 온가족이 먹은 기억도 있다,

찬밥에 콩나물 대가리만 남은 잔반만 놓고 먹은 기억도 있고

제사 일주일이 지나 아직도 남은 전들을 모아 잡탕찌게를 만들어 아무 생각없이 퍼먹었던 기억도 있지만

밀가루 반족을 해서 얋게 밀고 직사각형으로 자르고 가운데 금을 긋고 그 사이로 두번 꼬아서  기름에 튀겨주던 타래과의 기억도 있고

밤 콩 과일 통조림 등등을 넣어 밥통이 폭 쪄준 영양빵의 기억도 함께한다,

무엇을 먹든 음식은 그 당시의 기억이 더 오래 가는 법이다,

그렇게 맛은 내 속에 들어와서  기억되고 추억이 되고 그리고 그리움이 된다,

 

주인공 나이젤도 그랬다,

친엄마의 엉망인 솜씨로 만든 요리들이 따뜻한 추억이 되고

맘에 들지 않았지만 조안 아줌마의 화려한 음식들도 불안하지만 이젠 추억으로 남았다,

음식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풀어놓은 것은 작가 자신의 성장이야기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

사랑하는 엄마가 죽고 아빠와 함께한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시간들 새로운 여자의 등장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시절 외롭고 소외받은 기억들

그리고 요리에 대한 관심과 성장기 소년이 갖는 성적인 호기심과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

한국이나 영국이나  더러운 주방을 가진 식당들도 있고  대충대충 만들어 장식에만 치중하는 연회요리도 있다,

 

이야기 하나씩 하나씩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다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더 이상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년의 이야기가 뭉클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낯선 음식들 케잌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따뜻한 추억이 함께 하는 음식은 뭐든 맛있어 보인다,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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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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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리뷰는 아니다.

 

책을 다 읽었다,

산 지  일년이 조금 되었을까? 책장에 꽂아놓고 계속 노려보고 부담만 느끼다가 펼쳐들었다,

아니 이전에도 읽었었다,

첫부분 수바시와 우다얀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읽다가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은 그냥 순식간에 그냥 읽어치워서는 안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휘리릭 읽어버릴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도역사를 모르고 70년대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니까 라고 핑계를 대기도 했고

첫 몇장면에서 뒤의 이야기가 충분히 유추되고 그게 마음이 짠해져서 이렇게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버려두고 계절은 바뀌었다,

그리고 어제 다 읽었다,

내 예상이 맞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문도 있었다,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다얀과 수바시의 이야기는 맞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가우리의 등장은 예상치 못했다

 

인도에 남아 혁명에 가담한  적극적이지만 서툴렀던 우다얀

현실을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내내 이방인으로 돌면서 마음 한 구석에 빚진 기분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수바시

그들 사이에서 아내로 제수로 다시 아내로 살아내다 자기 삶을 찾아 떠나버린 가우리

그리고 그들의 아이 벨라

모두가 제각각 제가 서있는 곳에서 자기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삶을 시작한다,

그 시작점은 같았을 지라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여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고 무늬가 달라졌다,

형제였어도 부부였어도 그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갔다,

이야기는 우디얀에게서  수바시에게서 가우리에서  그리고 벨라에게서 조금은 두 형제의 엄마로부터 보여지고 느껴지고 생각나는 것들을  서술한다,

각각 자기의 입장이 있다, 누구의 삶이 누구의 삶보다 못하다거나 누구에게 피해만 준다고 할 수도 없엇다,

물론 가우리는 많은 부분을 수바시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

수바시가 동생에게 느끼는 빚진 기분과는 다르게 정확하게 무게를 달수 있는 형태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를 떠나게 했고 새 삶을 살게 했고 그녀가 원하는 공부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남자를 배신하고 떠나는 그녀가 곱진 않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해도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변병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우리가 느낀 답답함 죄스러움  그리고 도무지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지 않은 삶에서의 해방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누구나 모성이 있는게 아니고 누구나 남들처럼 흉내내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선택을 적어도 나는 지지한다,   불쌍한 년보다는 차라리 나쁜 년이 낫다,

 

수바시의 삶은 어딘가 스토너를 연상시킨다,

미국으로 떠나와 자리 잡은 그곳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고 삶을 이어온 그의 모습이 미주리 대학을 떠나지 않고 견뎌온 스토너와 겹쳐진다,

자기만의 시간속에서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저항해온 두 남자는  답답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도 수바시가 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적어도 앨리스보다 벨라는 행복할 것같다)

 

신념과 투쟁으로 짧은 삶을 마감한 우디얀

그는 순수하지만 서툴렀고 다정하지만 이기적이었다,

누군가를 해방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집에서는 대접받기만을 원했던 모순적인 그의 모습은 낯선 타인이 아니다,  그런 그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우리를 끌어들인 행동의 결과가 평생 가우리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죄책감을 남겼다

뭘 그런 걸로... 라고 하기엔 가우리에게 남은 무늬는 너무나 선명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휘청거리게 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무늬를 그리면서도 사람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낸다,

뭐라고 하든 그것은 나의 삶이고 나의 문제였다,

제각각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무심함이 되더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이 슬프지만 단단하다

자기만의 공간..

책에서는 가우리만이 자기만의 공간을 원한다고 표현되어있지만

결국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그 속에 웅크린다,

벨라의 옷장속도 그런 공간이고  평생 한 연구소를 떠날 수 없는 수바시의 그 대학도 그의 공간이다, 인도 켈거리가 우디얀의 공간이듯이

그들의 어머니는 이층 테라스가 그녀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희망도 보았지만 결국 가장 잔인하게 아들의 죽음도 목격하는 그녀만의 공간이다,

 

책은 세 사람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지만

공간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이야기하며

사람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고 서로의 무늬에 침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지대에 고여서 흐르지 않은 물처럼 때로는 서로 멈춰서 엉기기도 하지만

끝내 말라버린 저지대의 물기처럼 그렇게 제각각의 삶으로 돌아간다,

 

두께에 비해 쉽게 읽혔고

쉽게 읽힌데 비해 오래오래 생각하게 한다,

단편보다 별로야 별로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마지막장을 덮었고 그리고 그 말은 이제 안하기로 한다 더 낫다 아니다 라는 평가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좋겠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다음 책은 어쩌면 조금 오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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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반년만에 책을 다 읽었다,

알리딘이었던거 같은데 누군가의 서재에서 이 책을 소개받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었는데 그때 어디서 추천을 받았는지 도통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혼자 이 책을 구입할 리가 없다,

이런 책의 존재를 알 리도 없었으텐데

 

첫장은 무심하게 지하철 안에서 폈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읽을 만하다 싶었고 의외로 쉽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묘사가 이어지고 속 마음이 이어지는 문장들을 두세번 반복해감 읽으면서도 꽤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쉽게 다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양이 많지 않아서 금방 읽을게 두려웠었다,

아껴 읽어야지 했다가 중간에 다른 책들이 끼어들고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고 계속 순서에서 밀려나고 지하철 안에서 읽기엔 뭔가 아쉬운 생각도 들고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반년을 끌었다,

그리고 루스의 이야기를 다 읽었다,

구시의 이야기이고 동생 루실의 이야기이고 할머니 엄마 할아버지 이모의 이야기다,

house keeping 이라면 집안일이란 의미일텐데

집을 쓸고 닦고 가꾸며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 이란 말일까

정착민들이 집을 가꾸고 닦고 쓴다, 언제든 떠날 사람에겐 불필요한 노옹이 집안일일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   그것도 집안일이지만 그 이상의 가꾸고 보존하는 일도 집안일이다,

훌쩍 떠날 사람이라면 그렇게 미련을 두지 않는 법이니까

할머니와의 삶이 끝나고 이모와의 삶이 시작되면서 불안해졌다,

언제 떠날까

이모가 아이들을 두고 떠날까? 아니면 그래도 책임으로 house keeping을 이어나갈까?

집은 있지만 불안하게 떠도는 자매가 자꾸 걸렸다,

훌쩍 나갔다가 이슬에 젖어 들어오는 이모도 불안했다,

제목과 이렇게 안맞는 소설은 뭐지 싶었다,

내가 가서 그 집의 먼지를 털어내고 거미줄을 치우고 쌓여있는 종이와 깡통들을 치워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좀 씻기고 머리도 자르고 옷도 빨고...

도무지 생활의 묘사는 없고 늘 쌓여있는 먼지 마을의 중심이 고여있는 호수

불안한 철도와 기차이야기들 뿐이다,

눅눅한 계절  건조한 계절  도무지 씻는 묘사는 보이질 않아 책장을 넘기며 근질거렸다,

그래서 반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끝이 났다,

루실은 남았고 루스는 떠났다,

뭐가 옳고 그르고 잘했고 잘 못되었고는 없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책임만 지면 된다,

누구 탓을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다시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글에서 보고 알았을텐데 어떤 글이었는지 궁금하다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다른 건 모르겠고 루스가 묘사하는 창밖에서 들여다 보는 누군가의 얼굴에 대한 것만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내가 문득 내다보는 창밖에 낯선 얼굴이 내 집안을 나를 들여다 보고 있다면....

그 더럭 놀랄만한 상황이 자꾸 걸려서 계속 내 집 창밖만 보게 된다,

 

이 책을 다른 님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언젠가,,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다,

지금은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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